방송 불만

하나마나 푸념 2010. 11. 23. 23:38

온 나라가, 아니 뉴스를 보노라면 전 세계가 동요할 만한 일이 벌어져 전쟁세대이신 왕비마마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으신지 벌벌 떨며 불안해 하셨다. 집에 쌀과 비상식량(라면)은 얼마나 있는지부터 챙기시는 걸 보면 정말 겁에 질린 게 확실한데, 무덤덤한 딸은 '천인공노할 북한의 군사도발'이 어디 한두번 있는 일이냐며 시큰둥 무시했다. 물론 남한 영토와 민간인 지역을 직접 공격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지만, 북한도 생각이란 게 있을진대 전쟁이 그리 쉽게 날까.

또 다시 귀중한 인명이 희생되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고, 예의주시하고 경계할 일이라는 데는 동감하지만 천안함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호들갑을 떨어대는 언론을 보노라면 또 한번 역겹다. KBS에서는 무려 밤새도록 24시간 뉴스특보를 진행중이다. 거의 모든 정규방송이 중단된 채(그래도 아시안게임 중계는 하더라마는, 공교롭게도 쥐20과 시작 날짜가 겹쳐져서 아시안게임도 예년처럼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지는 못했었다) 계속해서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져 불타는 장면과 해군함정에서 포를 발사하는 장면들이 반복해서 보여진다. '전쟁이 따로 없다'며 인천으로 대피한 연평도 주민의 흥분된 인터뷰 또한 되풀이된다. 단순한 왕비마마는 그런 뉴스 속보에서 계속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아직까지도 계속 남북이 '교전중'이라 금방이라도 북한군이 밀고 내려올 거라는 상상으로 괴롭다. 어쩌면 다수의 국민들이 불안에 떨며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식한 내 견해로 봐도 북한이 '본격적으로' 다시 군사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다. 두번의 포격으로 뜻하는 바를 (또 한번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어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이미 이루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협상 테이블에서 칼자루를 쥐겠다는 북한군의 어이없는 도발은 참으로 짜증스럽지만, 그럴 때마다 난리법석을 떨어대는 언론과 당국의 태도는 그야말로 '야로가 있다'고밖엔 보여지지 않는다. 바닥으로 떨어진 지지율과 민심을 북한의 위협과 연계해 만회해보려는 위정자들의 행태는 대체 왜 변하지 않을까.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단지 '휴전중'이라는 남북대치 상황이 끝나지 않는 한 권력자들이 되풀이해 이용해먹기에 더없이 좋은 장치란 말인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도발의 원흉' 북한을 욕해대는 대신 호들갑 떠는 언론과 당국을 더 못마땅해하는 나에게 안보의식이 흐리니 어쩌니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지켜본 게 그러한데 어쩌랴. 동해안에서 북한 잠수함이 발견되고, 무장공비가 잡혔을 때마다 온 국민은 공포에 떨었다. 금강산댐이 연일 뉴스에 등장해 서울이 물바다로 변하는 '시뮬레이션'까지 방송되었을 땐 겁에 질려 눈물을 보이며 나 역시 평화의댐 성금을 냈었다. 김일성이 사망하면 반드시 전쟁이 날 거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던 때가 있기도 했다. 김정일의 후계 계승문제에 불만을 품은 북한의 군지도부가 전쟁을 불사할지도 모른다는 일부의 예측은 미안하지만 과거에도 되풀이되던 레퍼토리다. 

겨우 1박2일 동안 대체 무슨 일을 얼마나 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쥐20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나라의 품격'이 올랐다며 국민들에게 고맙다는 공익광고를 지겹도록 내보내던 관계자들은 지금 또 다시 '불바다' 화면을 되풀이해 틀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설마 전쟁 위험국 순위 1위로 '나라의 품격'을 높이려는 작정은 아니겠지? 이 땅에서 방송이야 늘 권력에 이용되는 도구였지만, 군사정권 때 못지않게 정부 입맛에 맞게 춤을 추어대는 꼬락서니를 보자니 한숨이 다 나온다. 온종일 틀어놓는 TV가 유일한 삶의 낙인 왕비마마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방송의 호들갑이 부디 내일은 좀 진정국면에 접어들기를 바라랄 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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