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뒤뷔페 전

놀잇감 2010. 11. 21. 16:56

모 백화점에서 장 뒤뷔페 작품을 들여다 전시회를 했다. 까마득한 옛날엔 백화점마다 꼭대기층에 갤러리를 마련해두고 괜찮은 전시회를 자주 열었던 것 같은데(특히 '미도파'와 '신세계'에서), 장사에 눈이 어두워 이젠 갤러리라고 해봤자 코딱지만하게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고 대부분은 아예 갤러리를 없애버리고 그 대신 '문화센터'를 운영한다. 몇십주년 기념으로 장 뒤뷔페 전시회를 한다는 요란한 '뉴스'에 나는 반색을 하며 아무리 백화점 갤러리라도 '우를루프' 작품들을 중심으로 가져왔다니 28점이라는 적은 수라도 설마 소품 위주는 아니겠지 안도했다. 하지만, 새로이 본점을 엄청 크게 지은 백화점이고 돈도 많아 미술관도 운영하는 재벌이니 백화점 갤러리라도 좀 다르려나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내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미술관이 꼭 커야하는 건 아니지만, 백화점 규모에 비하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인색하게 작아서, 요번에 가져온 28점의 작품을 한곳에 다 진열도 못하고 반대편 에스컬레이터 앞 벽에 장식처럼 걸어놓기도 했다. 그것도 빛 반사 때문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식으로 유리 진열장 안에 가둬서! 나 뭘 기대했던 거니.. 으휴. 그나마도 뒤뷔페 작품을 보게 해줬으니 감사해야하는 건지도 모르겠으나,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식당가와 이벤트 상품 나눠주는 행사장과 달리 담당 직원만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갤러리가 한가로운 건 고마운 일이어도 뒤뷔페 작품을 생각하면 서글펐다.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건 사진찍는 걸 막지 않았다는 점.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모든 갤러리에서 강박적으로 카메라 들이대는 걸 금지하는게 나는 늘 너무도 궁금했는데, 여기선 갤러리 반대편 쪽 에스컬레이터 앞 벽에 넣어둔 작품(<피아노>랑 또 한 작품)만 찍지 말라고 하더군. (갤러리 내 작품은 괜찮고 밖에 있는 작품은 왜 안되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암튼 그래서 되는대로 이것저것 휴대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찍어왔다. 우를루프는 비슷비슷한 느낌이라 나중에 뭘 봤는지 기억도 잘 나질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내 기억을 믿을 수 있다면 몇년전 덕수궁 미술관에서 한 전시랑은 겹치는 작품이 거의 없었던 듯하다. <물주전자> 같은 작품은 제목은 같았어도 그땐 그림이었는데 요번엔 조형물로 온 식이다. 

갤러리 입구 사진인데, 가운데 작품이 제목만 남기고 사라졌다.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설마 훼손된 건 아니겠지...
포스터에 들어간 작품 제목은 알레고리쿠스였다. 제목을 보고 나니 귀엽다는 느낌. ㅎㅎ


기억을 도우려고 작품 제목이랑 일부러 같이 찍어 왔다. <물주전자>말고도 <중사>도 낯이 익은 걸 보면 이미 본 작품일지도... 평범한 사물과 인물을 보고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냈을지 정말 볼수록 뒤뷔페는 천재다. +_+


알록달록한 우룰루프도 예쁘지만 나는 이렇게 푸른빛으로 간결히 표현한 우를루프가 더 좋은 것 같다. 하나 훔쳐가라고 하면 이 작품으로 하겠다고 속으로 찜했음. ㅋ
작품 제목은 <푸른 요소 III>.









요번엔 우를루프 이외의 회화 작품이 몇개 오질 않았는데, 드물어서 더 인상적이었던 인물풍경화 두 점. 각 제목이 <인물이 있는 붉은 풍경>과 <네 사람이 있는 풍경>이었던 것 같은데 헐... 하루만에 까먹었다. ㅠ.ㅠ 역시 제목과 같이 찍어왔어야 한다는 의미.

서울에선 22일까지 전시하고 이후 부산과 광주에서 순회전시를 한다고 한다. 요번주에 짬 못내면 일부러 KTX타고 부산에 놀러가서 뒤뷔페 그림도 보고 바다도 보고 회도 먹고 그러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혼자 흐뭇해하다가 정신을 차려 게으른 몸을 움직였다. 그림 구경만 하려고 부러 백화점 나들이를 한 사람은 그날 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전시를 기획한 측에서는 작품 감상 후 '쇼핑'을 유도했겠으나, 나는 알량한 모양새의 갤러리에 대한 질타의 의미로 눈을 질끈 감고 곧장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사흘 내내 유일하게 건설적이고 칭찬해줄 만한 '짓'이었다.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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