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올린 글의 맥락파악도 할 줄 모르는 건축가 이창하씨의 권리침해 신고로 나의 글이 임시삭제조치 된 것은 지난 10월 2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블로그는 그날로부터 정확히 2년 전인 2006년 10월 2일에 개설되었다.
이 묘한 날짜의 일치를 나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꽤나 고민했다. 블로그질을 작파하라는 누군가의 계시일까, 블로그질 2주년을 기념하는 일종의 (몹쓸) 축하 장치일까, 아니면 그냥 정말로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어쨌든 전의를 불태우며 나 또한 법적조치를 불사할 것이라는 다짐을 이곳에 적어 알린 뒤 한달을 기다렸다. 처음엔 실제로 소송이 시작될 경우 얼마나 돈이 들까, 과연 돈과 권력으로 막강한 변호사를 대동할 게 뻔한 그자를 내쪽에서 이길 수는 있을 것인가, 티스토리에서 같은 날 나와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 같으니 그들과 연대를 해볼까, 더러운 진흙탕 싸움이 몇년씩 지속될지도 모르는데 과연 나는 그런 걸 견딜 인내심과 열의를 발휘할 수 있을까, 처음 며칠은 심히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 자체에 내가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것조차 아깝게 느껴져 한달동안은 잊고 살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고 나서 30일이 훨씬 지난 11월 5일, 트랙백으로 연결해둔 문제의 글을 클릭했으나 여전히 <권리침해 신고로 임시 삭제조치된 글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뜰 뿐이었다.
30일간 권리침해 신고자가 추후 법적조치나 해당기관에서 명예훼손 여부를 입증받아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 임시 삭제되었던 글은 복원된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일까. 그간 나는 법원이든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해당기관에서 이 문제로 아무런 전갈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글이 복원된다고 해서 앞으로 또 다시 같은 사안으로 권리침해 신고가 접수되는 일은 피할 수 있다거나 명예훼손 소송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티스토리/다음 측에선 같은 글이 앞으로 또 문제의 소지가 되더라도 거듭 글만 삭제조치할 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밝힌 바 있다.

어쨌거나 30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티스토리/다음 측에 화가 난 나는 담당자에게 세번째로 이의를 제기했다. 함부로 글이 삭제된 것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것도 억울한데 왜 약속도 안지키느냐고.
이창하씨가 권리침해에 대한 법적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에 약속 기일 내에 글이 복원되지 않은 것인지 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오늘에야 비로소 담당자의 메일이 왔는데, 운영툴 오류로 복원이 늦어졌단다.
"아무쪼록 고객님의 너그러운 양해를 바랍니다"라지만 나는 양해도 못하겠고 이해도 안된다.
포털사로서 중재의 역할과 책임에 충실할 생각은 전혀 않고 실질적인 권리침해 여부도 관심없이 삭제조치는 득달같이 시행하더니, 복원조치는 일주일도 넘게 지연시켰으면서 운영툴의 오류로 늦어졌다며 사과 한마디로 끝이라니.

게다가 권리침해를 신고한 이창하씨 측의 의도는 또 뭐란 말인가? 자칫 명예훼손 소송을 당할 수 있으니 니가 알아서 깨갱하고 꼬리를 내려 자진해서 글을 삭제하라는 협박을 대신하여 권리침해 신고를 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방통위에서 내 글의 권리침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먼저 방통위의 사면을 받아보려고 접속했으나 이창하씨의 주민번호를 비롯한 인적사항을 알아야 신고가 가능하다기에 포기하지 않았던가. 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나도 이미 동의하긴 했지만, 티스토리/다음 측에선 나의 허락 없이 저쪽에 내 인적사항을 알려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밝혀왔고 아직 해당기관의 소환장 비슷한 연락은 받아 본 적 없다.)
단순히 1년전 사건인 학력위조 파문으로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렸던 사실이 싫어서 무조건 관련글을 권리침해로 신고하는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짐작하려 해도 도무지 앞뒤가 맞질 않는다. 허위학력으로 교수임용이 된 것은 아니라는 무혐의 처분을 받고 난 뒤, 불과 몇달 전에 본인이 직접 TV쇼에 나와서학력위조 파문을 겪었던 그간의 심정을 직접 토로도 했다던데? 다 잊은 사건을 굳이 들고 나와 해명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괜찮았을까?
오히려 나는 이번 권리침해 신고 사건 때문에 별 관심도 없는 그 사람이 TV에 나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무혐의 처분을 받은 내용이 교수임용당시 서류에 허위학력을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 그의 저서나 약력에 사용된 일부 학력이 허위였음은 본인도 유감임을 밝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거늘! 

티스토리의 글 복원이 늦어진 것도 내겐 의심스럽기만 하다. 운영툴의 오류라고? 운영툴의 오류가 일주일 가까이 지속됐는데 모른단 말인가? 30일 이후에 자기 글이 복원되었는지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닌 한, 은근슬쩍 글의 임시 삭제상태를 유지하거나 영구 삭제하는 것이 혹시 관행은 아닐까?
어차피 같은 글이 복원된 후 또 문제가 된다해도 자기네는 아무 책임 없다면서, 추후 귀찮은 문제를 피하려면 자진삭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함의를 담은 은근한 압박까지 느껴지는 과거의 안내문을 보아도 확실히 포털사에서는 권리침해 조항의 남용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할 의향이 없다. 

요즘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인사 사고가 아닌 한 경찰관이 개입을 회피하며 쌍방합의로 해결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도 같다. 하기야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났을 때 가만히 서 있다가 받친 게 아닌 한 요즘은 웬만하면 쌍방과실이기도 하고 경찰관이 정식으로 개입해 사건을 보고하면 공연히 범칙금만 더 나오니, 그건 차라리 현명한 해결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경찰관은 최소한 정식으로 개입하지 않더라도,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잘못을 억울하게 덮어씌우려는 얌체 운전자를 지그시 말려주기라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30일이 지나면 별 일 없었다는 듯 학력위조 파문을 다뤘던 나의 글이 복원되고 스리슬쩍 잊혀질 확률이 80%라고 짐작은 했지만, 어쨌거나 현재 아무것도 말끔히 해결된 것은 없으니 기분이 아주 더럽고 불쾌하다.
얼마전 <일단 소송을 걸었다가 아니면 말고... >라며 물러나는 무고죄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기사를 읽은 것도 같다. 글의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무조건 권리침해 운운하며 신고를 해도 당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상황도 사이버 세상의 무고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한나라당에선 아직도 사이버모욕죄 신설를 추진하고 있는 모양인데, 현행 법률로도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고 표현의 자유를 저해할 수 있는 소지가 높음을 실감하고 나니 그들이 하는 짓거리가 더욱 치떨리게 싫다. 방송과 언론도 장악하고 싶고, 국민의 입과 손가락까지 재갈과 족쇄를 물리고 채워서 과연 그들은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이번 권리침해 사건이 하찮고 불쾌한 해프닝일지, 앞으로 또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인지 힘없는 일개 국민인 나로선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해도 우리는 계속 바위에 달걀을 던져야 한다.
깨진 달걀이 바위로 스며들고 썩어 자양분이 되고 미세한 틈에서 이끼가 생겨 언젠가는 바위에 금이 가 깨질 날이 올 것라고 믿으면서. 
달걀이 아깝고 귀찮기는 하겠지만 나는 부족한 운동삼아서라도 던질란다.
퍽!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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