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든 싫든 방송에서 흔히 만나던 사람의 죽음은 마치 먼 친지의 부음을 들은 것처럼 충격적이다.
더욱이 얼마전까지 엄마가 즐겨보시던 재방 드라마에서 매일 얼굴을 보던 그가 세상을 떠났다니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우울증도 무섭고 남의 말 함부로 해대는 사람들의 입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더는 군말과 억측 없는 세상에서 편안하기를,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런데 황망한 심정으로 곧이어 컴퓨터를 켜자 내 블로그의 게시글에 대한 권리침해신고가 접수되었다는 다음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일단은 게시글이 임시 삭제조치 되고, 명예훼손 여부에 따라 영구 삭제될 것인지 복원될 것인지가 한달 안에 결정된다고 한다.
문제의 글은 학력위조 파문과 관련된 개인적인 소회를 적었던 2007년 8월 16일자 <가방끈>.
벌써 1년도 더 된 글이라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글관리로 가서 검색해보니 아예 검색도 되지 않아, 나는 버럭 화부터 났다.
제 아무리 본인이 쓴 글이지만 어떻게 1년 전에 쓴 글의 내용까지 속속들이 기억한단 말인가?
무슨 글을 썼었는지 내용이라도 알아야 삭제조치에 동의를 하든, <관련기관의 구제>를 받든 할 게 아닌가!
일단 내 글부터 내놓으라는 글을 다음 고객센터에 올리고 나니, 일반 검색으론 안 보이던 글이
글목록을 하나하나 점검하니 나타났다.  -_-;;
내가 착각했던 것인지, 그새 글이 되살아난 것인지 진실은 알 수 없다.

아무튼 내 입장에서 그 글은 결코 명예훼손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없다고 믿는다.
당시 학력위조 파문에 휩싸였던 사람들의 이름을 주르륵 나열했을 뿐 그들을 근거없이 비난한 적도 없다.
글의 주요 내용도 이 나라의 학력중시 경향과 관련한 나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이었다.
어쨌거나 문제가 된 글의 도입부는 아래와 같고, 아마 권리침해 신고자도 이 도입부를 문제삼았을 것이다.

신정아, 김옥랑, 이창하, 심형래, 정덕희, 윤석화...
요즘 학력위조 문제로 꼬리에 꼬리를 물듯 언론에 등장한 사람들이다
.
다들 느끼는 기분이겠지만

나는 정교하게 학력을 위조하고 보란듯이 그 지위를 이용한 저들에게 분노하는 마음 보다
여전히 가방끈에 목매다는 이 사회 풍조가 어처구니 없고 슬프다.
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얼마나 학력이 중요하면 검증 잣대로 폭로될 수 있다는 불안한 가능성을 담보로 저런 짓을 해댈까
.

물론 학력위조 파문에 휩싸였던 이들이 소송을 거쳐 더러는 무혐의 처분을 받기도 했고, 그 과정의 시끄러움과 상관없이 이런저런 절차로 다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하지만 블로그의 글은 기사가 아니다.
온라인과 풍문에서 떠도는 악성 루머를 옮겨놓은 것도 아니고, 당시 뉴스만 틀면 떠들어댈 만큼 사회화 되었던 '사건'을 접한 개인적인 의견을 적어 놓은 글이 명예훼손이고 권리침해라니.

그럼 이런저런 정치 사회 문제들을 블로그에 언급했을 땐, 언론의 <오보 공고>처럼, 그 추이와 결과를 1년 뒤에라도 일일이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말인가? 
나 역시 근거 없는 악성 루머나 인신공격성 악플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부 철딱서니 없는 인간들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으며, 익명성을 이용한 책임감없는 비난과 구설수 문화가 마뜩찮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아무리 악감정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해도, 사석에서 구시렁구시렁 욕을 해대는 건 있을 수 있겠지만 모든 이들과 공유하는 공개된 블로그 공간에서 근거없이 인신공격을 해댈 정도의 몰염치한 인간유형에 속할 마음은 없다. 
그래서 더더욱 내 글을 명예훼손이니 권리침해니 하는 사안으로 신고한 장본인(저 위에 실명으로 거론된 인물 가운데 단 한사람이다)에게 화가 나고 티스토리/다음 측에 열이 받는다. 
아마도 그 장본인은  내 게시글의 내용 따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하수인 누군가가 제 상전의 이름과 <학력위조>라는 말이 동시에 등장한 글들을 검색하여 일괄적으로 권리침해 신고를 했겠지.

약관 동의와 함께 내 게시글에 대한 삭제권을  티스토리/다음 측에 넘겨주었는지 어쨌는지도 나는 지금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발끈한 나는 당장 사이버 권리침해 분쟁 구제 관련기관이라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유해정보신고센터 http://www.singo.or.kr/>에 달려가 구제신청을 하려 했다.
그러나 <명예훼손-혐의없음>을 심사받기 위한 신청을 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인적사항(이름, 주소, 전화번호, 주민번호까지!) 알아야 한단다.
기가 막혀서...
물론 나는 내 글을 신고한 자의 이름 석자밖에 모르는 상태다.
하는 수 없이 한발 물러나, 다음 측에서 보낸 글을 면밀히 정독해보았으니 여전히 이해부족이다.
저쪽에서 한달 내에 추후 신고를 해야 내쪽에서 뭔가 반응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뭔지...

물론 까짓것 게시글 하나 삭제에 동의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할 순 있겠지만
이 문제 또한 내겐 힘없는 일개 블로거(게다가 죄도 없는!)에 대한 돈과 힘을 지닌 권력자(그는 분명 나보다 막대한 돈과 권력을 지닌 인물이다!)의 횡포라고 느껴져서 그냥 가만히 있을 순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의 권리를 침해당하고도 힘이 없어서, 그리고 귀찮아서 아무 노력도 안해보고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이런 하찮은 사건 하나로 블로그를 때려치우는 사태까지 벌어지진 않기를 바라지만,
블로그랍시고 난생처음 시작해 2년여를 가꿔온 이 공간에 대한 회의가 심히 드는 날이다.

정말로 권리를 침해당하고 명예훼손을 당한 억울한 이들이 재조명되는 시류에 편승하여 
힘 있는 저들은 엉뚱한 사람들까지 다시 억울한 일을 당하게 만들려는 것인가?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