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집에 있다보면, 울리는 전화의 절반은 쓸데없는 것이다.
어떤 날은 제대로 용건이 있어 걸려온 전화는 한두 통이고 나머지는 죄다 사기전화이거나 텔레마케터의 집요한 세일즈 전화다.

이미 보이스피싱이라고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듯한 공공기관 '사칭' 전화들은 아직도 심심치 않게 걸려온다.
서울 지방 검찰청인데 몇월 며칠 출두명령을 어겼으니 다시 나오라는 사기 전화.
우체국인데 소포 배달을 못하였으니 물품 수령을 원하면 9번을 누르라는 사기 전화.
의료보험공단인데 진료비가 과다청구되어 환급금이 있으니 담당자와 통화를 원하면 9번을 누르라는 사기 전화.
**카드회사인데 신용카드가 부정발급된 것 같으니 확인을 요한다는 사기 전화...

그뿐인가.
위약금 다 물어줄 터이니 인터넷전용선 바꾸라고 꼬드기는 텔레마케터.
여주에 좋은 땅이 싸게 나와 연락했다는 부동산중개인.
홍대 근처에 새로 생긴 무슨무슨 건물에 상가 분양을 받으면 앉아서 얼마를 벌 수 있다는 부동산중개인.
대뜸 급매물로 나온 콘도 분양을 안내하겠다는 어여쁜 목소리의 아가씨.
신용카드 계속 사용해주어 감사인사차 전화했다고 해놓고선 슬쩍 보험상품 팔려는 텔레마케터.
아 참, 벨소리 한두번만 울리게 한 뒤 이내 끊어 부재중 전화번호를 남기는 교묘한 스팸 전화도 있다.

유선, 무선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공해 전화 때문에 극도로 예민해져 있을 때는 거의 노의로제에 시달린다.
발신번호가 낯설면 아예 전화를 안받는 사람들도 많다지만, 나는 직업의 성격상 모르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받는 경우도 많고 좀 규모가 크다싶은 회사에 다니는 지인들은 발신번호가 늘 달라지기 때문에 무턱대고 전화를 따돌릴 수도 없다. 한번은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라 무조건 스팸 전화인줄 알고 안받았더니만, 그건 평생 전화번호 안바꾸고 쓸 수 있는 인터넷 전화의 식별번호였다.

재수없는 인간답게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에 가까운, 자그마치 천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옥션 사고에도 연루되었으니 오죽하겠나마는, 이쯤되면 정말이지 세상사람들이 내 정보를 모두 공유하고 써먹으려고 공모하고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아직은 정신적인 피로감 이외엔 크게 피해를 입지 않았다지만, 언젠가는 크게 허를 찔려 뭔가 손해를 보게 되지 않을까. 범죄는 날로 교묘해지는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와 당국은 아무리 주시해도 믿을만한 구석이 털끝만큼도 없으니 결국 모든 뒷감당은 개개인이 해야할 터. 이래저래 허수룩한 구석이 많은 나 같은 인간은 그저 부들부들 떨고만 있을 뿐이다.

가뜩이나 예민해진 마당이라 귓구멍을 파고드는 전화벨 소리에 버럭버럭 짜증이 치밀어
이참에 쓸데없이 방대해진 인간관계도 정리할 겸 확 전화번호를 다 새로 바꾸어버릴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럼 그 전화번호가 또 노출되기까진 전화공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_-;
이래저래 나는 자꾸 사회부적응자의 면모를 띄게 되는 듯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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