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본능

하나마나 푸념 2008. 6. 26. 17:53
작업실과 우체국과 마트에 갈 일이 있어서 잠시 외출을 했었다.
또 오래도록 버려져 있던 작업실의 탁한 공기 속에 관리인 아저씨가 들여놓은 우편물을 풀어
다시 반송 꾸러미를 만들어 우체국으로 향하는 길에 정말이지 나는 그 길로 차를 몰아 어디론가 아주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라디오에선 신나는 음악이 흘러 나왔는데, 여름 뺨치는 더위에 에어컨까지 켜고 있으니 얼굴을 잔뜩 가리는 선글라스 하나 걸쳐쓰고 나무향기 그윽한 숲이든 비린내 나는 바닷가든 잠시라도 현실의 짐을 벗어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순간이동하고 싶었다.

현실은 너무도 짜증스럽다.
마감일에 쫓기는 와중에 연일 무수리 생활에 쪽잠을 잤더니 얼굴에 빨간 뾰루지가 다섯개나 돋아나 가관이다.
척추골절은 치료가 끝났지만 골다공증이 무서워 몸쓰기를 두려워하는 엄마는 다시 예순여덟살 먹은 큰애기로 돌변했다. 당근과 채찍 요법을 쓰며 엄마를 채근하고 있는데 자꾸 채찍 쪽에 강도가 실린다. -_-;;
낡은 다가구주택은 시세를 알아보니 두채를 팔아도 두 모녀가 살 만한 작은 아파트를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두들겨도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 철옹벽 같은 정부는 결국 쇠고기 고시를 강행했고
촛불을 든 사람들은 연일 언론에서 폭력 시위자로 매도당하더니 초등생 애엄마 가릴 것 없이 잡혀갔단다.
대체 이젠 무슨 방법이 남은 것인지 모르겠다.

짜증나는 현실 속에서 나의 질주본능은 결국 비겁한 도피본능이다.
결국 도망치지도 못할 주제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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