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를 따라 문산쪽으로 얼마간 달리다 보면 통일전망대가 나타나는데, 그 근방은 언제부턴가
'통일동산'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이루어져 지금은 헤이리 예술마을이니, 영어마을 파주캠프니 해서
꽤나 복잡한 곳이 되고 말았다.
사진이 예쁘게 나오고 볼 거리가 있다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는 열성을 보이는 사람들은
예쁜 카페와 갤러리가 있고 책 전시장이며 멋진 건축물이 있다는 헤이리에 꾸역꾸역 참 많이도 찾아가는 듯하다.
나 역시 일년에 서너 번 이상 그들과 같은 길을 따라 달려가긴 하지만
언제나 내 목적지는 헤이리가 아니라 그 번듯한 '예술마을'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펼쳐져 있는
동화경모공원, 쉽게 말해 '공동묘지'다.
어찌된 경유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동화경모공원은 이북5도 출신의 실향민을 위해
그나마 고향인 이북땅을 바라보는 듯한 자리의 강가 언덕배기에 조성된 공원묘지였고
평안북도가 고향이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나란히 그곳에 누워계신지 13년째다.
그러니까 헤이리니 영어마을이니 해서 그 동네가 북적이기 이전부터 우리 가족은 간단한 먹을거리와
술을 싸들고 소풍삼아 공원묘지를 찾았다는 뜻이다.

어린시절엔 '공동묘지'라는 말이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TV에서 <전설의 고향>을 할 시간이 되면 겁이 나서 채널도 잘 못 돌리는 겁쟁이였던 나는
무서운 이야기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동묘지'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하얀 유골이 굴러다니고 파란 도깨비불이 날아다니며 어디선가 불쑥 머리를 길게 풀어헤진 소복입은
여자가 입가에 피를 흘린 채 나타나는 공포의 장소로만 인식했다.
그래서 가끔 '망우리 공동묘지' 앞을 지나가는 차라도 타고 있으려면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렸고
전국 어느 곳을 가나 만날 수 있는, 야트막한 산이나 언덕배기에 동그랗게 봉분을 올린 가족묘를 보고서도
무서움에 떨었던 것 같다.

이북 출신이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장수하셨기 때문에 서른이 다 되도록 제대로 성묘란 걸 하러
공원묘지를 찾은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더욱 그런 편견이 자라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도 한식때, 추석때, 설날에 찾아갈 묘소가 생긴 뒤로는
죽음이 삶의 연장이듯 공동묘지도 그저 삶의 한 공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동그란 봉분이 모여있는 것만 보고도 무서움에 떨던 어린시절의 나와 달리
어린 조카들은 공원묘지에 줄지어 있는 봉분 사이를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고 메뚜기를 잡고
고모에게 술래잡기를 하자고 청한다.
처음 몇년은 성묘하러 갈 때마다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리느라 다들 분위기가 무거웠지만
이제는 어른들도 소풍나온 사람들처럼 두 분 묘소 앞에 깔아놓은 자리에 앉아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 아버지,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 몇달 있다 또 올게요!"라고 큰소리로 인사하고는 돌아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우리 식구들에게 헤이리 예술마을은 난데없이 공원묘지 앞에 생겨난 '이상한 동네'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전국이 묘지화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돈많은 예술인들이 돈자랑을 하듯 세운 공동체 마을이
드넓은 공원묘지 코앞이라는 사실에 아무렇지도 않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리고 최근엔 아버지를 그곳 납골당에 모셨으니
우리 가족 같은 사람들이야 '묘지'보다 '공원' 느낌으로 친근해졌음에도
헤이리에 놀러간다는 건 어쩐지 배신 같기도 하고
어차피 돈이 많아 끼리끼리 모여든 그곳 예술인들에게 비싼 입장료까지 내며 그들을 배불려주고 싶은
생각 또한 없기에 지금껏 나는 한번도 헤이리에 들어가본 적이 없다.

물론 헤이리를 마뜩찮게 여기는 건 나 뿐인듯
어제도 설날 성묘를 미리 당겨 공원묘지를 찾았더니, 헤이리 마당엔 사방에서 몰려든 차들이 빼곡했고
주변에 마련된 식당 마을에도 사람들로 버글거렸다.
그들은 모두 일찍이 삶과 죽음이 바로 이어지는 연장선 위에 있음을,
그래서 공원묘지 바로 옆의 아트갤러리에서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멋진 사진을 찍는 것은
마치 시신을 떠내려보내는 갠지스강에서 바로 그 물로 태어난 아기의 몸을 닦으며 신의 축복을 비는 것과
같은 행위임을 깨닫고 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아니면 예술인 마을 바로 옆에 거대한 공원묘지가 있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고 신경쓸 겨를도 없었기에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인지 문득 몹시 궁금했다.
어쩌면 공원묘지에 큰 의미를 두는 건 <전설의 고향> 세대인 나 같은 노땅에게나 해당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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