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산 꽃다발과 과일, 간식, 스타벅스 1호점에서 산 컵들을 호텔방에 내려놓고는 일단 저녁을 먹은 뒤 스페이스니들에 가는 것이 남은 오후의 일정이었다.

창가 테이블에 놓여있던 얼음통을 활용해 내가 얼른 꽃꽂이를 하는 사이 E언니는 이왕 사왔으니 먹어보자며 딸기와 블루베리를 씻었다. 그렇다면 또 인증샷을 남겨야지 ㅋㅋ

5천원짜리 꽃다발치고 정말 풍성하고 예쁘지 않은가?! 금방 시들지도 모른다고, 튤립이 원래 얼마 못간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내일 아침에도 멀쩡하면 차에 싣고 다닐 거라고 내가 예고했다. 니가 은근 꽃순이구나, 라며 언니들이 놀렸다. 넹, 맞아요...

과육이 단단한 딸기는 한국 딸기랑은 정말 느낌이 다르고 단맛이 덜한 반면 훨씬 싱싱하다. 블루베리는 뭐 한국에서 먹는 거랑 별 차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역시나 싱싱하고 알이 되게 굵었다!

그나마 대도시엘 왔으니 저녁은 한식집을 찾아가서 먹어도 크게 실망하진 않을 것이라는 E언니의 판단 하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국 식당을 찾아갔다. 음식점 이름은 Chili and Sesame. '고추와 참깨'다. ㅋㅋ 손님은 우리 말곤 한국인들 하나도 없었고, 한국인 주인이 어디서 오셨냐며 반색했다. 프라이드 치킨부터 김치찌개까지 ㅠ.ㅠ 온갖 음식이 다 망라되어 있는 메뉴판을 보며 우린 좀 불안해졌다. 이거 메뉴가 너무 많다.. 주력상품이 없다는 뜻이다. 옐프 앱의 별표도 세개 반이라던가..

암튼 그래도 일단 다들 많이 먹고 있는 '치맥'을 시킨 뒤 순두부찌개, 김치찌개, 비빔밥을 골랐다. 닭고기를 튀기면 웬만해선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지만 ㅋㅋ 좀 짰던 것 같고, 밑반찬을 계속 종류별로 리필해주는 인심 때문에 계속 감사하긴 했으나 솔직한 맛 평가는 그저 그랬다.  

참이슬 가격좀 보라지! 처음처럼.. ㅋㅋ

LA주민들은 한식은 역시 LA가 최고라며 지난번 한국 가서 먹어보니 어떤 건 LA가 더 낫더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일단 한국은 양이 너무 적어서 불만이라나 ㅋㅋ

암튼 이날 저녁 우린 미국 시애틀까지 가서 굳이 카스 생맥주에 '프라이드 양념치킨 반반 무마니'를 즐겼고, 배부르다며 치킨을 남긴 대신 밥과 찌개도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메뉴가 하나하나 나오는 바람에 이날 저녁엔 메뉴판 말고 음식 사진이 없다. 잔해만 찍기도 뭣하고 해서...

음식점 이름 기억하려고 메뉴판을 찍은 건데 나중에 술 이름 영어표기 보며, 그 가격대 때문에 한참 낄낄 웃었다.

 

7시가 다 됐어도 아직 바깥은 환한데 걸어다니는 사람은 진짜 드물었다. 범죄율은 LA보다 낮다면서 자꾸만 안심시키려드는 E언니가 오히려 겁을 냈던 게 아닌가 싶다. 미국선 워낙 걸어서 시내를 활보하는 일이 없다보니 그럴 만도 한듯.

몰랐는데 시애틀에도 트램이 다닌다. 반가워서 얼른 한장 찍었음.    

두블록 쯤 걸었던가.. 드디어 스페이스니들이 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높은 데 싫어하는 나도 서울 관광 와서 서울타워 꼭 가보는 사람들 마음이 돌연 마구 이해가 됐다. 게다가 서울타워보다는 스페이스 니들이 더 도시의 상징성을 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을 비롯해서 영화에도 좀 많이 나왔어야지.. ㅎ

전망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페이스니들에 올라가는 비용은 1인당 $22. 평일 저녁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아 금방 올라갔지만, 줄 안서고 빨리 올라가는 특별표도 따로 팔던데 30달러던가? 33달러던가... 역시 자본주의의 나라라고 우리가 한마디씩 했다. 노인, 장애인 우대도 아니고 돈 우대 줄이 따로 있다니 원... (비행기에서 퍼스트클래스 먼저 타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하여간 날씨도 좋고 하늘도 새파래서 노을구경 야경구경에 기대가 컸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탈 땐 몰랐는데, 아니 월요일 저녁에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곳곳에 놓인 테이블엔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둥근 전망대를 한바퀴 돌면서 호시탐탐 빈자리를 노리는 수밖에...

 

 

 

서쪽 바닷가 위쪽 하늘엔 주황색 노을이 물들고... 반대편 동쪽 시내 방향은 분홍색 하늘이 펼쳐졌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둥근 금빛 철구조물은 스페이스 니들 가장자리에 달린 것. 저거 없이 잘 좀 찍어보고 오래 난간에 매달려 있으면 멀미가 나서리 ㅠ.ㅠ 

마지막으로 더욱 활활 타오르는 노을. 그날의 실감이 반도 안난다 ㅠ.ㅠ

드디어 서쪽 하늘에 남아있던 햇빛과 노을이 꼴까닥 사라지고... 하늘이 깜깜해지면서 본격적인 시애틀의 야경이 별밭처럼 드러났다.

 

시애틀 그레이트 휠을 중심으로 한장 더.. ^^;

환하게 불을 밝힌 배가 주인공

가운데 보이는 배가 움직이는 건지 아닌지 그걸 확인하느라 엄청 오래 지켜봤던 것 같다. 파티라도 벌어지는 듯 너무도 환하게 불을 밝힌 배는 아주 조금씩 부두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뭐하는 배일까... +_+

 

내가 찍고도 흐뭇했던 사진! ㅎ

본격적인 야경이 펼쳐지기 전까진 아무도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더니 그래도 완전 깜깜해지자 테이블 하나가 간신히 비었다. 오렌지 주스와 카모마일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앗.. '공짜 디저트' 먹으려면 우리 9시 전에 호텔로 돌아가야해! 킬킬대면서 전망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물론 기념품 가게도 빠지지 않고 들렀으나 뭐 딱히 사고싶은 건 없더라는;;

뚜벅이로 걸을 땐 또 내가 구글맵의 도움으로 앞장을 서서 길을 찾는 것이 요번 여행의 암묵적인 임무였다. 본인의 방향 감각을 몹시 믿는 편이지만 가끔 오작동을 하기 때문에 살짝 긴장을 했고, 더욱더 인적이 사라진 시애틀의 밤길을 언니들이 워낙 무서워해서 엄청 빨리 걸어갔던 것 같다.

다행히 격자무늬 도로는 방향만 잘 잡으면 헤맬 이유가 없었고, 언덕길을 20분쯤 걸어서 해변으로 내려온 다음 부두와 기차길(예전에 석탄과 하역용 짐을 실어나르던 기찻길이라는데 딱 경의선 숲길--일명 연트럴 길--느낌이다 ^^ 사라진 철길 따라 앙상한 나무 심어진 것까지도;;)을 따라 호텔에 무사히 들어갔다. 오히려 구글맵은 주소를 찍으면 호텔은 눈앞에 있는데 이상한 뒷길로 더 가라고 가르쳐주더만! 헷...

우린 곧장 로비라운지 디저트 코너로 돌진했으나, 시간이 너무 늦은 탓인지 과일은 없고 쿠키류와 브라우니, 피칸 파이만 조촐하게  남아있었다. 브라우니보단 피칸파이가 더 맛있다며 배부른 여자들 같지 않게 한 조각씩 먹어치우고는 아줌마 정신 발휘해서 한조각씩 더 싸 가방에 넣으며 또 킬킬 웃었다. 아... 일주일만에 정말 허릿살 뱃살이 장난이 아니라면서... 오늘 섭취한 열량은 아마 평소의 두배쯤 될 듯! (평소 거의 점심 한끼만 먹고 사는 S는 3배라고 투덜댔다. 깡마른 친구는 드디어 청바지가 안맞기 시작했단다. 다행히 난 죄다 고무줄 바지를 가져갔기 때문에 ^___^v 상관없었다. 

이날밤은 정말로 배가 불러서 식곤증으로 다들 일찍 잠들었던 것 같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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