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를 떠나는 날 아침. 여전히 흐렸지만 차츰 날이 개려는 듯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파란 하늘이 보였다. 에잇! 우리가 떠나려고 하니깐 날씨가 좋아지고 난리! 아쉬워도 어쩌랴... 전망 좋은 호텔방 창앞에서 이리저리 풍경을 구경했다.
앞 건물 옥상 정원 부러워라;;
호텔 바로 건너편에 고급 아파트가 있었는데 아침 일찍 옥상 정원에 나와서 어슬렁 거리는 사람들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저런 데는 월세가 얼마나 하려나 ㅎㅎ K언니는 마음에 드는 도시마다 아파트 하나씩 사놓고 싶다고 E언니에게 시세를 물었다.
암튼 밥보다 잠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S가 국물 먹고싶다며 전날 저녁에 사놓은 '농심' 사발면(1개만 샀는데도 결국 남김)을 비롯해 먹어치울 게 너무 많았기에 우린 쿨하게 조식 뷔페를 포기한 뒤 방에서 각자 짐 챙기고 화장하는 동안 왔다갔다 주섬주섬 사과와 토마토, 우유, 견과류, 요구르트로 아침을 '배불리' 때웠다.
짐 가방을 다 챙겨 차에 싣고 10분쯤 거리에 있는 페리 항구로 향했는데, 아이고 입국 심사 대기만 1시간 30분이 걸린 끝에 드디어 10시 30분 배를 타고 다시 포트앤젤레스로 출발~.
항구 가는 길에 본 의회였던가 도서관이었던가 시청이었던가... ㅋㅋ 차에서 후딱 창문 열고 건진 사진
아마도 수상택시이거나 연안경비정인 듯한 동그랗고 귀여운 배한테 마음속으로 마구 손을 흔들며 단풍국에겐 작별을 고했다. 빅토리아 항구엔 파란 하늘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주시고... 쳇.
국경너머 포트앤젤레스에 도착하니 12시 또 점심시간이었다. 중간에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점심 먹을 음식점으 찾느니 차라리 점심 먼저 먹고 시애틀까지 내쳐 달리기로... 그러나 배는 안 고픈 상태이므로 이번엔 정말로 '간단하게' 수프나 먹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
그리하여 선택된 Toga's Soup House
여기선 정말로 버섯수프와 파니니, 커피만 먹는데 성공! 심지어 언니들은 커피도 한잔 덜 시키고는 뜨거운 물 달라고 해서 전날 산 허브차 티백으로 차를 제조해 마셨다.
커피 맛에 관한 한 워낙 내가 좀 까다로워서 ^^; 미국 커피는 어딜 가나 질보다 양이라고 시큰둥해 했었는데 이집 커피는 원두의 종류도 다양하게 선택해 시킬 수 있고, 역시나 커피 맛도 괜찮았다. 내가 딱 좋아하는 강배전, 쓰면서도 탄내는 아니고 구수한 맛이 났다. 흐뭇해 하며 리필해서 한잔 더 마셔주고도 컵에 잔뜩 따라가지고 차에 올랐다.
시애틀로 향하는 길은 올 때와는 다른 고속도로여서 주변 풍경도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메드퍼드에서 올라갈 때는 죄다 들판과 시골이었는데... 시애틀로 내려가는 길은 계속 도시 고속도로의 느낌. 마치 강북강변도로나 88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
새삼 포트앤젤레스에서 시애틀까지 거리가 궁금해져 찾아보니 82마일이란다. 환산하면 130킬로미터 정도. 3시쯤 시애틀에 도착했으니 2시간 40분 걸린다는 저 시간도 얼추 맞았던 것 같음.
시애틀에 연중내내 그렇게 비가 많이 내린다고 들은 것 같은데, 우리가 갔을 때는 날씨가 완전 쾌청! 새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아주 가끔 떠다녔다. 미서부로 이민간지 30년도 넘은 S도 시애틀은 처음이라면서 신기해했는데 우왕... 샌프란시스코만큼이나 언덕 지형이 많았다! 언덕배기 우리 동네만 와도 S는 경사가 무섭다고 비명을 지르는데 ㅋㅋ 거의 45도쯤 느껴지는 급경사 일방통행도로를 잠시 오르내리며 호텔을 찾아가는 동안 S는 E언니의 운전솜씨에 계속 감탄했다. 자긴 이런 길 절대 운전 못한다면서...
암튼 가파른 언덕을 쭉 내려가 바닷가에 자리잡은 메리엇 호텔(Seattle Marriott Waterfront Hotel)에 체크인을 했다. 우왕... 역시 대도시에 있는 호텔답게 일단 건물도 높고! ㅋㅋ 규모도 크고 실내인테리어도 호화스러웠다. 일정 중 가장 큰 호텔이었던 것 같음. 그래서 E언니가 프런트데스크에서 수속 밟는 사이 우린 막 로비를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구경하고 촌스럽게 사진찍고 그랬다. ^___^
게다가 관대하게도 로비로 들어가는 현관 바로 앞에 커피머신이랑 주스, 생수가 얼음과 함께 마련되어 있어서, 음료수 마시며 로비에서 그냥 노닥거리기만 해도 흐뭇할 것 같았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였던가... 식당 옆에 마련된 디저트 바도 무료이용가능하다고 했다. 좋았어, 오늘 저녁엔 달디 단 미쿡 디저트까지 먹어주마 작정을 했다.
E언니의 설명으론 곳곳에 걸린 그림도 가구들도 꽤 유명하고 비싼 거라고... Marriott 체인 중에서 오너가 신경을 꽤 많이 쓴 지점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쿠션 하나도 막 예사롭지 않게 보이고.. +_+
꽤 높은 층이었던 호텔방에 올라가니 무시무시한 테라스로 나가면 전망이 꽤 좋은 곳이었으나... 나는 차마 무서워서 테라스로 발을 못 내밀고 창문 안쪽에서 대충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카펫 무늬도 고급지다 ^^ | 벽 모퉁이에 매달린 페가수스 귀엽;; |
테라스로 나가는 창문쪽으로 다시 찍은 사진... ㅋㅋ
실루엣으로 보이는 분은 수많은 멋진 사진을 공유해주신 K언니다.
방구경만 후딱 마친 뒤엔 부리나케 뚜벅이 시애틀 시내 투어에 나설 계획이었다. 일단은 시애틀까지 와서 들러보지 않을 수 없다는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 Pike Place Market부터 가기로 했다. 다들 가보면 실망한다지만 어쨌거나 언니들과 S는 스타벅스 1호점에서만 파는 시그니처 머그잔을 여러 개 구입하는 게 하나의 미션이어서...
마음 편히 '볼일'을 좀 보고 내려오겠다는 언니들을 방에 남겨둔 채 나는 친구와 먼저 로비로 내려갔다. 호텔 건물 두채가 연결되어 있는 건지 ㄷ자 모양인지 암튼 로비 메인 출구 말고도 여기저기 후문이 있어서 호기심에 거리로 나갔는데 ㅋㅋ 호텔에서 나갈 수는 있어도 외부에서 열고 들어갈 순 없는 문이었다. 에고... 꼼짝없이 길바닥에서 기다리게 생겼네 젠장...
깃발 달린 데가 주출입구이고.. 노란건물 앞쪽 툭 튀어나온 차양 아래가 호텔후문이었다.
근데 호텔 후문 바로 옆 건물 앞에 어떤 아저씨가 검은 개를 한마리 데리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아오.. 거리 사진 찍다 괜히 아저씨 인사를 받아주는 바람에 원치 않은 대화에 끌려들어갔다.
빤질빤질 윤기나는 털에 박힌 검은 눈도 잘 안보이는 늘씬하게 생긴 개였는데 그간 엄첨 심심했었는지(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정말 드물긴 하다!) 이 아저씨가 막 괜히 친한 척하면서 자기 개가 very friendly하니깐 어서 만져보라 그러고... +_+ 주인 말을 들었는지 검은 개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나한테 막 코를 들이밀고... ㅋㅋㅋㅋ 개도 싫어하고 한국어 이외의 언어로 말시키는 사람 싫어하는 미쿡시민권자 S는 저만큼 홀로 달아나버렸다.
개 애호가도 아닌데 시애틀에서 괜히 남의 개를 쓰다듬어주고 앉아 있으면서 속으로 이 언니들 왜 빨리 안 내려오나 ㅠ.ㅠ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일어나 이 아저씨와 개를 벗어나나.. 그런 고민을 했다.
기다리던 언니들은 쉬 안 나타나고 결국엔 친구 핑계 대고 도망쳤던 것 같다. 뭐 암튼... 나름 재미난 에피소드와 사진으로 남았으니 됐다. ^^;
호텔에서 두세 블록 쯤 떨어진 스타벅스1호점엘 가보니 정말로 커피 사는 사람보다 기념품 사는 사람이 더 많고 줄도 꽤 많이 서 있었다. 가게가 워낙 작기 때문! 무시무시하게 생긴 옛날 인어그림을 별로 안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커피 맛이나 보련다.. 싶어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는데 우쒸... 왜 지들 맘대로 시럽을 넣어주고 난리?!
그럴 땐 주문 잘못 받았다고 반드시 바꿔먹어야하는 데가 미쿡인데... ㅠ.ㅠ 또 다시 줄 서기 귀찮아서 걍 참고 마셨다. 미치도록 달게 시럽을 넣은 게 아닌 걸 보면 분명 종업원이 실수로 찔끔 짜넣다가 말았다고 우리끼리 궁시렁거렸다.
보다시피 실내엔 자리 잡고 앉을 테이블도 거의 없다. 창가쪽으로 높고 둥근 탁자가 두세 개 정도 있었던 듯... 처음이고 한번이니까 찾아가보는 거지만, 굳이 또 갈 필요도 없고 아예 안 가도 그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확실히 나는 스타벅스 팬이 아니여... ㅎㅎ
그치만 주변 거리와 시장은 구석구석 예쁘고 신나고 구경할 게 많았다! 아쉽게도 평일이라 임시 장터 같은 시장은 일찍 파하는 분위기라 좌판에서 파는 유리알 반지를 사오라는 친정엄마의 부탁을 들었던 S는 잠시 난감해했다.
분위기가 딱 연남동 동진시장 소품공방 같은 분위였던 공예품 좌판들은 이미 다 사라지고 간판만 남아있었고, 그나마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꽃좌판들만 문 닫을 준비를 하면서 꽃다발을 막판 세일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꽃다발처럼 엄청 화려하고 포장기술 뛰어난 건 아니지만 하얀 종이에 둘둘 말렸어도 꽃 자체가 싱싱하고 탐스러운 꽃다발을 10- 20달러면 살 수 있었다.
여행까지 가서 꽃다발 사고 싶어 들먹들먹하는 내가 좀 웃겼지만 달랑 5달러에 떨이 판매하는 꽃다발을 본 순간, 하루만이라도 호텔방에 꽂아두고 즐기겠다면서 +_+ 굳이 내가 오지랖을 떨었다.
5천원의 행복이랄까나... ㅋㅋ 과연 꽃이 얼마나 갈지 그것도 궁금했다. 암튼 스타벅스 1호점 기념품 컵 보따리 대신에 나는 꽃다발을 들고 시장구경을 다녔고, 과일, 생선, 과자류.. 따위의 먹거리에 더 눈을 빛냈다. 생선 좌판에도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생선과 바다가재, 새우, 조개 따위가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는데... 어딜 가나 생선가게는 호객행위가 심한가? +_+
조용한 과일가게 점원들과 달리 생선가게 주인들은 막 호객행위를 하며 자꾸 친한 척을 하려고 들어서 차마 민망해 사진도 찍지 못했다. 우쒸..
터키 갔을 때도 그러더니... 과일가게는 어디나 '깔별로' 종류별로 과일을 줄맞춰 진열해놓고 판다.
시장인데도(아니 시장이니까?) 당연히 한쪽 옆에 시식코너도 마련되어 있어서.. 이것저것 먹어본 우리는 딸기와 블루베리를 한봉다리씩 샀고, 과일과 야채를 말려 튀겨놓은 천연과자(?)도 한 봉지 사들었다.
그러고는 일단 짐이 많아 다시 호텔로 후퇴. 내 꽃다발이 창피해서 그러죠! 킥킥대며 언니들한테 난 꽃다발 한밤중까지 들고 다녀도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머그잔과 텀블러가 사실 너무 무겁긴 했다.
다시 걸어서 바닷가 호텔로 돌아가는데.. 우왕.. 저 멀리 뭉게구름은 예쁘고 햇살은 눈부시고... 홀로 길바닥에 앉아 있는 청년(?)은 어쩐지 크리스 마틴을 떠오르게 하고... ㅎㅎ 좋구나~
원래는 런던 아이 비슷한 Seattle Great Wheel도 갈 계획이었으나 다들 딱히 높은 델 좋아하지 았았고, 어차피 스페이스니들도 갈 건데 하며 멀리서 구경하는 걸로 때웠다. 풍경사진 왼쪽에 동그란 바퀴 같은 게 보인다.
부두 왼쪽으로 솟은 거대한 바퀴 ^^ 길엔 벌써 퇴근하는 차들이 가득.. | 일광욕 인파가 많았던 공원이었는데 건물 그림자가 너무 진하다 ㅠ.ㅠ | 도심 언덕쪽에서 부두쪽으로 가는 경사 보행로가 곳곳에 있었다 |
에구 너무 길어서 일단 여기서 중단.
스페이스니들에서 찍은 야경사진 대방출 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