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드디어 예약해둔 배를 타고 국경을 넘어 캐나다 빅토리아섬에 들어가는 날이라 새벽부터 일정이 바빴다. 전날 잠들기 전, 7시엔 출발을 해야 늦지 않게 포트앤젤레스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배를 탈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름도 비슷하지만 포틀랜드부터 포트앤젤레스까지는 아예 주도 달라지고(오레곤 주에서 워싱턴 주로)또 다시 4시간쯤 380킬로미터나 더 가야했다.
밥보다 잠이 더 중요하니깐 ^^; 아침은 그냥 먹지 말고 가자며 7시 좀 못 돼서 가방 다 싸들고 로비로 내려가 열쇠 돌려주고 체크아웃을 했는데 로비 한 귀퉁이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풍겨나오는 커피랑 빵 냄새가 너무 유혹적인 거라... ㅋㅋ E언니가 즉각 계획을 수정해 간단하게 베이글이나 머핀에 커피 한 잔씩 먹고 가자고 말했다. 녜녜, 좋지요... 그러나 먹는 것에 관한 한 E언니는 절제를 모르는 사람! 언니 홀로 주문하러 보냈더니 베이글과 머핀 뿐만 아니라, 오트밀과 과일까지 또 완벽한 끼니를 시켜놓았더라는;;
워낙 준비 느린 스타벅스 웨이트리스를 원망하듯 쳐다보며 하나 하나 메뉴가 나올 때마다 전투적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그래도 2-30분만에 호텔을 나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호텔 조식을 먹을 걸. ㅋㅋ 째뜬 날이 흐려 아직 어두컴컴한 분위기 속에서 차를 미친듯이 달려 포트앤젤레스에 무사히 11시쯤 당도했다. E언니도 브레이크 자주 밟는 거 싫어하고 속도를 좀 즐기는 살짝 터프한 운전 스타일이 나랑 약간 비슷하다. ^^;
캐나다행 페리는 12시까지 국경 검문소로 진입하면 되므로, '간단히' 점심을 먹으러 항구 코 앞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고를 것도 없이 눈에 띄자마자 선택된 코코펠리 그릴.
메뉴판을 받아든 나는 간단하게 햄버거나 먹겠다고 말한 뒤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좀 이따 테이블을 뒤덮은 접시들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ㅎㅎㅎ 게살 샐러드에, 새우튀김에, 또 뭐가 있었더라.. ㅠ.ㅠ 사진이 없으면 기억도 안남는다. 에효... 암튼 아침도 대충 때웠으니 점심은 제대로 먹어야한다는 언니들 쵝오~!
K언니가 찍어준 이 음식 사진에서 주목할 것은 햄버거를 자르는 나의 길쭉한 손가락! ㅋㅋ 휴대폰의 왜곡이 틀림없는데도 괜히 좋아라 했었다. 맨 오른쪽은 서둘러 배를 타러 나가는 나의 친구 S와 E언니의 뒷모습을 2층에서 찍은 것이다. 이제 슬슬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는데 우린 이미 식사 끝내고 나가는 중.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거나 육로로 미국/캐나다 국경을 넘을 땐 별도로 비자가 필요없다. 그냥 출입국 사무소에서 자동차에 앉은 채로 4명 여권 죄다 걷어서 주면 스윽~ 보고 캐나다에 뭐하러 가냐고 묻는 게 끝이다. 그러고는 안내원이 시키는 대로 줄줄이 차를 주차시켜놨다가 순서대로 줄줄이 배에 싣는다. 세월호 트라우마가 떠오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캐나다와 미국을 오가는 페리가 안전하겠지, 혹시 사고나면 물 차가워서 그냥 죽는 건데 그래도 가족한테 보상금 엄청 많이 나올 거야, 염려 마.. 뭐 그런 얘길 웃으며 친구와 주고받았다. ㅎㅎ
캐나다 빅토리아 항구까지는 1시간 반 거리. 계속 축복처럼 화창했던 날씨는 이날부터 꾸물꾸물.. 먹구름이 끼더니 드디어 후드득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중독처럼 틈틈이 포켓
틈틈이 포켓몬고 ㅋㅋ
몬 잡기에 열중했던 나는 이날 포트앤젤레스 항구에서 나름 희귀몬인 루주라를 잡아 희희낙락했다! 포켓몬을 잡으면 맨 밑에 장소가 기록되어 있는데 캬캬캬 이번 여행에서 꽤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마리를 잡아놓고 혼자만 괜히 열어보고 좋아하는 중이다.
페리 화물칸에 차를 세워두고는 곧장 위로 올라갔다. 일찍 올라가야 테이블도 있는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데, 이미 주차순서에서 밀린 우리는 테이블 좌석 차지 실패. 그나마 자리는 많아서 선실 좌석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바람 쏘이러 갑판으로 나갔다가 들낙날락했다. 바깥 풍경이 자꾸 바뀌는 차로 달리는 4시간보다 희뿌연 수평선만 보이는 1시간 반 뱃길이 훨씬 더 지루하게 생각되었다.
가도 가도 계속 이런 바다만 보이니 원... 재미가 있나. 그래도 1시간쯤 지나자 저 멀리 캐나다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대충 찍어도 그렇지 수평이 하나도 안맞은 것 같다. ㅠ.ㅠ
째뜬 드디어 곧 도착한다는 선내 방송이 나오고 빅토리아 항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오오 단풍국이다!! 귀엽게 생긴 배가 캐나다 국기를 매달고 연안을 오가고, 항구에 정박된 커다란 다른 배들도 눈에 들어왔으나 날도 흐리고 후두둑 빗방울도 떨어지기 시작하여 사진이 죄다 깜깜하게 나왔다. (그나마 클릭해서 키우면 좀 더 잘 보입니다)
어쩐지 유럽 느낌 물씬 나는 건물들과 분위기가 완전 신기했는데 우잉...
그래도 뭔가 디스토피아 분위기 난다며, 비오는 캐나다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냐고 위로했다.
캐나다 입국도 차를 타고 줄줄이 출입국사무소에서 4명 여권 같이 주고 도장 하나씩 콩콩 받으면 끝이었다. 촌스럽게 여권에 여러나라 입국 도장 찍는 걸 좋아하는 나는 작년에 갱신한 새 여권이라 과연 캐나다 출입국 때 도장을 찍어줄까 안 찍어줄까, 그게 엄청난 관심사였는데 ^^;; 입국때만 옜다~ 하나라도 찍어주어 감지덕지. ㅎㅎ
빅토리아섬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끄트머리에 있고, 초창기 유럽 정착민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기 때문인지 유럽풍 건물이 많았다. 캐나다에서도 돈 많은 은퇴자들이 선호하는 도시라는 것 같다. 곳곳에 심어놓은 꽃도 예쁘고 가로수도 예쁘고...
일단 항구 근처에 있는 빅토리아 매리엇 이너 하버 호텔(매리엇 호텔이 시내쪽에 하나 더 있다는 듯)로 가서 체크인부터 했다. 방에 짐만 갖다 두고 얼른 시내 투어에 나설 참이었는데.. 오옷... 전망 좋아!
바로 앞에 보이는 하얀 지붕 건물은 나중에 알고 보니 무슨 컨벤션 센터였다. 호텔 주변에 주요 관광지가 다 있어서 저녁 내내 걸어다녔음.
E언니가 미리 짠 동선 대로, 일단 우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로열 BC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러나 박물관 로비에서 뭔가 특별 행사를 하고 있고(클래식한 자동차와 옛날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뭐였는지 까먹음 ㅠ.ㅠ) , 입장 마감시간(4시)도 지났단다. 쳇... 로비구경과 기념품 가게만 둘러보곤 이리저리 정처없이 거리 구경에 나섰다.
ㅎㅎ 고풍스런 교회만 찍은 사진이 없어서 막 독사진 방출. ㅠ.ㅠ 클릭해도 안커집니다. 한국의 장승 같은 역할을 하는 원주민 토템 기둥이 있는 곳은 로열 BC 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무슨 공원이었는데... 역시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ㅎㅎ아무리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법이라지만, 어떻게 잔디밭이 저렇게 촘촘하고 선명한 초록색인지 신기할 정도였다. 똑같이 흐린 날 이토록 선명하게 나온 사진들은 다 K언니의 아이폰7으로 찍은 거다. 사진 잘 찍지도 않으면서 여행 내내 아이폰 개비할까보다고 괜히 탐냈음. +_+ 하지만 결론은 서툰 목수나 연장 탓하는 것이지... 그냥 K언니가 워낙 사진을 잘찍으시는 걸로!
ㄴ
주말인데도 흐린 날씨 때문인지 거리는 아주 한산한 편. 간간이 관광객인 듯한 동양인들 무리를 만난 것 말고는 박물관에서 본 사람들과 거리에서 본 이 두 노인이 전부였던 것도 같다.
서울도 요새 철철이 거리에 꽃장식 엄청 신경쓰지만... 고풍스러운 가로등도 그렇고 곳곳에 놓인 꽃화분들도 느무느무 예뻤다. 비가 많이 와서 훨씬 더 싱싱한 느낌이어서 그랬으려나?
그냥 길 뚫린 대로 아무데나 걸어다녀도 좋았던 것 같다. 점심 때 먹은 걸 또 소화시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으니 괜히 서점도 들어가보고, 마트마다 들어가서 캐나다 물가도 확인해보고... ㅎㅎ
길거리 큰 화분에 이런 탐스런 튤립이
막..
날씨도 궂은데다 기온도 내려가 저녁은 국물이 있는 걸 먹기로 했기 때문에, 역시나 YELP 앱의 도움으로 일식 라멘을 판다는 Nubo Japanese Tapas란 델 찾아갔는데 아마도 한국인이 주인인 듯! 종업원이 한국말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메뉴판을 보니 SNS에 태그 붙여 사진 올리면 디저트를 공짜로 준다네. ㅋㅋ 유일하게 SNS를 하는 내가 얼른 라멘과 튀김 사진을 찍어 페북에 올려놓고 보여주어 공짜 아이스크림을 얻어내고는 후딱 지워버렸다.
우리가 이른 시간에 찾아가서 그렇지, 나름 맛집으로 유명한지 나올 땐사람들이 막 줄을 서 있었음.
일식집엘 왔으니 또 사케 정도는 마셔줘야지... ㅎㅎ
헌데 따뜻하게 데워달라고 했었던가 차게 마셨던가 그게 기억이 안난다. ㅠ.ㅠ
나는 미소라멘을 시켰고, 얼큰 한 걸 먹고싶어했던 친구는 탄탄면을 시켰는데 별로 안 맵다고 실망스러워했다. 내 입엔 꽤 맵던데...
언니들은 뭔가 밥과 롤을 시켰던 것 같은데 후다닥 먹느라 사진이 없다. 튀김 사진 끄트머리에 살짝 보이는 걸 보니, 돌솥밥을 시켰던가? 흠...
미소 라멘에 구운 맨 김 주는 거 좀 이상했지만, 그래도 냠냠 맛있게 먹었다. 확실히 미국 음식점보다는 한국 집의 음식 양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미치도록 배가 부르진 않아서 다행이랄까...
이것이 우리가 굳이 얻어먹은 녹차 아이스크림.
이집은 음식맛도 맛이지만 플레이팅과 비주얼에 엄청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옆 테이블에서 먹는 롤과 스시류도 되게 정성스럽고 예술하는 (?)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내가 녹차를 싫어하듯, 녹차 아이스크림도 안 좋아한다는 게 함정. ㅋㅋ 생크림만 할짝거리고 먹은 뒤 친구와 언니들에게 강권했다. 굳이 공짜로 받아내서 남기면 안되잖아요...
다들 술을 마다해서 사께를 나 혼자 거의 다 마시고는 몸도 후끈해지고 헬렐렐레 취해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호텔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