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놀잇감 2015. 6. 5. 17:59

* 스포일러 있음

정말로 간만에 대학로로 연극을 보러 갔다. 대학에서 희곡을 가르치는 친구가 학기중 한두번씩 학생들이랑 '할인' 단체관람을 간다기에 기회 되면 나도 끼워달라고 미리 옆구리를 찔러두었다. 학기초엔 <M버터플라이>를 봤다기에 아, 난 <아버지>보다 그게 더 보고 싶은데! 라며 속으로 아쉬웠지만 이번에라도 끼워준 게 어딘가 감지덕지했다.

<아버지>는 작년인가에도 이순재/전무송 더블캐스팅으로 꽤 화제를 일으킨 연극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세일즈맨의 죽음>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란다. 올해는 아버지 역에 전무송/권성덕/김명곤 트리플 캐스팅이었고, 우리는 수요일 수업에 맞춘 관람이라 권성덕 씨가 아버지로 나왔다. 까마득한 옛날 수업시간에 배운 <세일즈맨의 죽음>보다는 확실히 절절한 신파 분위기^^가 전해졌지만 그래도 한국 현실에 맞게 꽤나 잘 각색한 느낌이었다. 

엄청 촉망받는 축구선수였다가 한순간에 일용직 인생으로 몰락한 아들과 백화점 계약직 딸의 이야기가 꽤 비중있게 추가됐다. 색달랐던 건 극중 아버지 이름이 '장재민'인데 아들 동욱 역할 배우를 '박재민'이 했다는 것. 요즘 TV에서 안보인다 했더니 연극을 하고 있었더군. 일요일 아침에 아직도 하나 모르겠는데 <출발 드림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리키김이랑 막상막하 운동하는 모습만 본 것 같은데 무대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박재민이 누구냐면^^

연극 보면서 아들 나올 때마다 속으로 우와, 키 되게 크다, 얼굴 진짜 작다, 잘생겼다! 감탄하며 봤음. ㅋㅋㅋㅋ 나도 이럴 정도니, 젊은 연예인들이 종종 연극무대로 눈길을 돌리는 건 퍽이나 반가운 일이다. (너무 유명한 아이돌이 티켓파워로 갑질하는 건 문제겠지만서도...) 쉬는 시간없이 1시간 50분쯤 쭉 공연하는데 내용을 알기 때문일까 막판엔 좀 지루했고, 아버지 역할의 비중이 워낙 크고 대사도 압도적으로 많아서, 가끔 대사 처리가 매끄럽지 않고 버벅거릴 땐 조마조마 하기도 했으나(내가 왜? ㅋㅋ) 무대가 워낙 아담해서 몰입하기엔 좋았다. 

평일이었고 메르스 공포가 슬슬 시작되고 있을 때라 그랬겠지만 관객이 너무 적어서 내가 더 걱정됐다. 단체로 간 우리 말고 일반 관객은 열명도 안됐던 듯. 동양예술극장 처음 가보는데 소극장치고 깔끔하고 위치도 조용하고 괜찮던데... 문화사업, 예술하는 사람들 좀 안 망하고 잘 사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나. (연극 좀처럼 안보러 다니는 주제에 이런 말 하는 거 좀 웃기긴 하다) 

째뜬 할부 인생, 소모품 인생 소시민 아버지의 애환을 담은 연극 끝나고서 몇몇 아이들이 눈물을 훔치는 걸 보았다. 하지만 난 신파엔 도저히 눈물이 안나올 뿐이고 ㅜ.ㅡ

극장이 작지만 객석은 1, 2층으로 나뉘어 티켓은 1층 객석이 5만원, 2층 객석이 3만5천원. 오픈런인지 언제 끝난다고 안 적혀있었던 것 같다. 주조연 이외에도 더블캐스팅, 트리플 캐스팅이 많았고, 배우들의 연기는 대체로 좋았다. 연극배우 특유의 발성법과 목소리가 나는야 좋더라. 워낙 오래 공연한 검증된 작품이라 그렇겠지. 하여간에 간만에 문화생활 허영기를 채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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