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예쁜 곳

놀잇감 2013. 6. 4. 14:47

2주가 참 금방 간다. 한달에 두 번 그까이거 아무것도 아니지, 라고 생각하지만 한달에 두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뭔가를 배우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 하도 오랜만에 하다보니 퍽이나 고되게 느껴진다. 누가 시켜선 절대로 못할 '귀찮은' 일을 자진해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기함과 존경은 여전하다. 나와는 확실히 '다른 부류'의 사람들인 듯. 나처럼 이기적인 사람은 섣불리 덤벼들어선 안될 일이다. 

째뜬 주어진 시간동안 많이 보고 들으며 예쁜 광경을 눈에 머리에 담아두자고 생각하고 있는데, 제대로 사진 찍을 여유도 사실 별로 없다. 한가로운 '관광객' 모드로 돌아다니질 못하니 원...  ㅎㅎ 그래도 눈치 슬쩍슬쩍 보면서 볼수록 예쁜 곳을 휴대폰에 담아두고 심심할 때 감상한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옛기술과 지혜와 솜씨와 감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는 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자꾸 보고 설명을 들어도 통 모르겠다 싶은 경복궁에서 그래도 제일 마음에 드는 곳 사진 몇장 골랐다. 

여긴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때, 자기 아들을 왕위에 올려준 조대비 신정왕후에게 가장 화려하게 지어바쳤다는 자경전의 꽃담. 3월에 찍은 사진이라 나무들이 앙상하다. 지금은 초록잎이 무성한데... 세월 무상.

일일이 색기와를 구워 액자처럼 꽃나무를 표현하고 바탕은 삼화토로 마무리해 갈라지는 법이 없다는 저 그림 하나하나에도 각기 다른 사연이 숨어 있단다. 앵두나무에 걸린 보름달을 표현한 첫번째 그림은 중국어 발음까지도 관련이 있다던데... 복잡해서 다 까먹었다. ㅎㅎ 암튼 경복궁에 있는 침전 중에서 옛모습 그대로 간직된 전각은 자경전이 유일하다. 그래서 보물 809호. 전각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도 나는 훼손되면 기술 재현이 불가능해 복구할 방도가 없다는 저 꽃담이 훨씬 더 예쁘고 정겹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모든 무늬는 강녕과 장수를, 아름다운 꽃나무는 부귀영화를 의미한다네. 

자경전 뒤에 있는 유명한 십장생 굴뚝도 지나칠 수 없다. 온돌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굴뚝을 담장과 연결하고 이런 장식을 하다니 옛사람들 정말 천재가 아닌가 싶다. 자경전과 별도로 이 십장생 굴뚝도 보물로 지정, 810호다. 정면에서 찍어 안보이지만 굴뚝 옆으로 돌아가 보면 맨 꼭대기엔 박쥐가 매달려 있다. 박쥐의 한자 이름이 '편복'이어서, 과거엔 복을 주는 동물이라 여겼다고. 십장생 말고도 연밥, 포도, 불노초 등 다양한 장식을 새겨놓았다. 볼 때마다 숨은그림 찾기 하는 기분.. ^^;

예쁜 굴뚝이라고 하면 교태전 뒤 화계에 세워진 아미산 굴뚝도 빼놓을 수 없다. 굴뚝마저도  육각으로 예쁘게 쌓고 꼭대기엔 기와처럼 지붕까지 올려둘 생각을 하다니... 아무리 중전마마 보기 좋으라고 생각해냈다지만, 참 아기자기한 발상이다.

 

교태전 전각 자체는 1995년에 복원한 새것이지만, 아미산 굴뚝은 옛것 그대로라 역시나 보물 811호. 자경전부터 번호가 쪼르륵 붙어있어 욀 생각이 없었는데도 각인되었다. ㅋㅋ 요즘은 교태전과 강녕전 전각을 개방해놓아, 신벗고 들어가 대강이나마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데, 이 아미산 굴뚝은 반드시 교태전에 들어사 툇마루 쪽에서 바라보아야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고... (그러나 툇마루엔 못나가게 관리인 아저씨가 지키고 있다. 쳇;; 전각 뒤쪽 계단으로 올라가 보아도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는 낫지만, 상상으로라도 중전마마 놀이 하기엔 역부족! ㅋㅋ)

마지막으로 향원정이다. 중고등학생때 수없이 그려댄 향원정을 딱 그 구도로 찍어오고 싶었으나, 그러려면 좀 더 왼쪽으로 가서 다리를 비스듬하게 잡아야하는데 해설 중 눈치보여서 그러지 못했다. 저 다리의 이름은 향기에 취한다는 뜻을 지닌 '취향교'. 원래 아치 형태로 건청궁 쪽으로 나 있었으나, 한국전쟁때 폭격 맞아 파괴된 것을 복원하며 반대쪽에 직선으로 놓았다. 건청궁은 최근에 복원하였으니 오래도록 그 자리는 그냥 빈마당이었고, 관람객 편의를 위해 다리도 반대쪽으로 놓았던 거다. 2030년까지 계속된다는 경복궁 복원사업이 끝나기 전에 저 다리 역시 건청궁 쪽으로 되돌려진다는 듯.

향원정에서 또 하나 웃겼던 건 수많은 연꽃들이 사라진 이유였다. 정말로 내가 중고딩때 그림 그리러 갔을 땐 연못 한 가득 잎 하나가 거의 우산만한 연잎이 수면을 가득 메워, 그것만 전문으로 그리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었다. 나도 몇번 시도해보았다가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던 것 같다. 근데 김영삼 정부 시절, 기독교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자 '알아서 아부하는 관리들'이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을 경회루와 향원정 주변에서 죄다 뽑아버렸단다. (미친 거 아냐!?) 이젠 다시 작은 수련들이 생겨나긴 했지만 암튼 이 나라 행정의 무식한 무대포 정신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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