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일도참없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7.18 또 잉여짓 10

또 잉여짓

놀잇감 2014. 7. 18. 17:24

등산용품 선망에 이어 요번엔 또 생활한복 타령이다. 등산이든 요가든 낚시든, 뭘 하든 상관없이 본격적으로 시작도 전에 그와 관련된 옷과 장비부터 사고보는 사람들.. 나도 이젠 절대로 손가락질 못하겠다. 그 사람들이 옷 욕심이나 허세가 많은 게 아니고,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 아닐까 싶어지는 요즘. 한달에 한두번도 안되는 기회를 바라며 끊임없이 쓸데없이 계속해서 등산복과 생활한복에 눈독을 들이며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고 있으니 으휴... 그나마 알량한 수입과 지출 규모를 따져서 막 질러대진 않으니 다행이랄까.


궁궐 안내 나가는 날 입는 생활한복도 이제 계절이 완전히 한바퀴 돌았으니 분명 새로이 더 옷을 사지 않아도 입을 옷은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너무 머슴스럽지 않으면서 예쁜... 그러나 너무 거추장스럽지는 않은 한복에 대한 로망은 좀체 꺼지질 않는다. 평소 입는 옷도 남들의 시선보다는 혼자만의 자기만족이 더 큰 기준인데;; 작년 여름 수습기간 중에 덜컥 싼맛에 장만한 여름 옷은 소재만 마일뿐, 사실 그냥 긴 통치마에 매듭단추가 달린 블라우스 형태였다. 푹푹 찌는 폭염엔 그 정도로도 나름의 복장규정('지킴이는 활동시'최소한' 생활한복을 입고 안내하여한다'는)에 위배되진 않는 모양이지만, 도통 한복스럽지 않다며 나 혼자 마음에 안들어했다. 


그러다가 작년에 여름도 다 가는 9월쯤 하얀 적삼 비스무리한 걸 하나 인터넷으로 사들였다. 


정식 옷고름은 아니지만 고름 비슷하게 변형된 리본도 달려있고 (요즘은 또 일반 한복도 옷고름이 짧고 얄상한 게 유행이다) 한복여밈 같은 깃선이며 홈질로 마무리해놓은 장식도 마음에 들었다.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하얀색이 시원해보이지...


생활한복류는 아무래도 젊은사람들이 입는 옷이 아니다보니 小자가 66 사이즈부터 시작된다. 해서 막상 택배온 옷을 입어보니 꼭 남의 걸 얻어입은 듯 허수아비 같았다.. ㅋㅋ

얼른 품도 줄이고 소매통도 안으로 꿰매 좁히고 뒤쪽으로  

허리부분에 대충 다아트를 넣어 어벙벙한 느낌을 줄였다.

그러고 야심차게 궁에 입고 갔더니만....


-_-; 반응이 별로였다. 일단 형광 하얀색이라 푸르딩딩한 기운이 도는 흰옷이랑 나랑 별로 안어울린다는 총평. 게다가 또 내가 뭐 화장을 막 진하게 하는 편도 아니고 립스틱도 바르는 둥 마는둥.. 하다보니 딱 환자복 입은 아픈 사람 같단다. (거울로 내가 봐도 그건 인정 ㅋㅋ 평소 흰색&검정 배색을 자주 입고 다니지만 그냥 티셔츠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역시 궁궐에선 화려한 색깔이 어울린다는 고수들의 조언. 결국 딱 한번 입고 더는 안입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올해 여름...  반드시 다려야 입을 수 있는 마블라우스 대신에 저 적삼(이름이 구김마 꽃적삼이던가;;)을 산 이유도 그냥 빨아서 말렸다가 대충 입으려던 거였는데! 싶어지면서 또 다시 인터넷을 눈빠지게 검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옷은 다시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색깔로 또 한번 사 볼까 어쩔까 고민하다 퍼뜩 든 생각은, 염색을 해입자!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천연염색과 관련된 정보를 폭풍검색, 비트로 염색을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홍색과 보라색의 중간쯤으로 물이 얼마나 예쁘게 들까 마구 기대하면서... 


일부러 재래시장에 가서 비트 두 덩이를 사다가 대충 썰어 믹서기로 갈아서 매염제로 필요하다는 백반까지 함께 넣어  천연염료를 만든 뒤 신나게 옷감에 비벼댔다. 그러나 핏빛처럼 진했던 비트의 진분홍색은 백반을 섞으니 약간 갈변하는 듯? 어쨌거나 손목 아프게 주물러대다가 (30분간 담가 주무르라고 어느 블로그에;;) 대강 물이 다 든 것 같아 좀 꾸둑꾸둑 말려 염료를 고착시킨 뒤에(그러는 과정에 여기저기 얼룩덜룩 ㅋㅋㅋ 그러나 그게 천연염색의 묘미지.. 라며 내심 뿌듯;;) 물에 헹궜다.

그런데 으악... 헹구는 과정에서 염료 물이 다 빠지네그려!  ㅠ.ㅠ


결국 1차 천연염색은 실패로 판명났다. 비트든 포도든 양파든 천연염색 매염제는 '백반'이라고 하던 모든 블로그들이 다 '뻥'이었던 거냐! 나 원참... 나의 옷은 저 형광 하얀색에서 하도 오래 입어 더럽게 때 탄 흰색으로 돌변했을 뿐이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다시 폭풍검색을 했다. 이번엔 실제로 본인이 천연염색을 해본 건지 어디선가 풍월로 들은 걸 옮겨적어 놓은 건지 알 수 없는 블로그 포스팅은 다 무시.. 주로 실패담을 읽었다. 신나게 염료 물 들였다가 들은 풍월대로 매염제로 백반을 사용했더니 색이 다 빠졌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유가 뭘까. 백반 물의 농도가 중요한가? 


그러다 유레카!  천연염료에 관해 쓴 논문을 발견했다. 95도로 30분간 끓여 만든 각종 천연염료의 발색 과정을 옷감의 종류(면, 마, 견)에 따라 매염제(백반, 소금, 식초, 사용 안함) 별로, 고정 상태와 착색 정도를 담은 내용이었다. 결론은 견직물이 효과가 제일 좋고, 염색을 세 차례 실시한 결과, 착색효과는 매염제를 썼을 때나 안썼을 때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 나중에 빨아도 물이 안빠진단다. 옳거니.


백반도 남았겠다. 2차 시도에 돌입. 다시 비트를 사왔다. 백반의 농도가 중요할지 모르니깐 뜨거운 물에 10% 용액을 대체로 맞춰 준비해놓고 잘게 자른 비트를 망에 담아 푹푹 끓였다. 아 색깔 좋고... 그러나 모든 흰색 옷감에 형광증백제가 들어가기 때문이겠지만 쉽사리 그 선연한 진분홍색깔이 저고리에 침투하진 못했다. 어쨌든 염료 30분, 매염제 30분씩 담그는 절차를 3번 하면 되렸다....  허걱. 기껏 분홍색으로 물든 저고리를 백반물에 담갔더니 다시 흰색으로 환원! ㅠ.ㅠ 열받아서 백반물은 확 쏟아버렸다. 다시 물에 헹궈낸 뒤엔 그냥 비트물에 소금 좀 넣고(어디선가 TV에서 본 적 있다. 소금이 천연염료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던가) 4, 5시간 푹 담궈놓았다. 논문에서 매염제 안써도 효과는 똑같다고 했으니깐...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옷값에 비트값에 쓸데없이 돈만 엄청 버렸구나 싶은 낭패감이 들었다. 잘못하면 염료 산화되서 색깔 완전 이상해진다던데 에라 모르겠다. 쳇. 간간이 들여다보니 분명 염색물은 진자주색인데 옷감 색은 분홍도 아니고 갈색도 아니고 요상망측. ㅋㅋㅋ


그쯤했으면 최선을 다했다 싶어 그나마 누런 흰색은 모면한 저고리를 꺼내 깨끗한 물에 주물러 헹궜다. 신기하게도 보라자주 기운이 돌던 저고리가 헹구면 헹굴수록 갈색으로... 그나마 얼룩덜룩했던 1차 염색의 후유증은 다 사라졌다. 그럼 됐지 뭐... 

옷걸이에 걸려 말렸더니, 그럴싸한 베이지색이 되었고, 원래 옷감에 든 꽃무늬 부분은 은은하게 약간 더 갈변한 느낌. 아싸~


결국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천연염색 저고리가 완성되었다. ^^; 칙칙하다고 누가 뭐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만 흡족하면 됐지! 볏짚 색이랄지, 베이지색으로 변한 저고리엔 진밤색 치마가 제격(생활한복 치마 아니고 시원해서 여름마다 내가 애용하는, 무인양품에서 산 긴 랩스커트를 활용했다)이라며 희희낙락 지난 활동일에 입고 다녔다. 이번엔 다들 칭찬해주는 분위기... 색깔 은은하고 예쁘네...라면서. 


그러고 보니 또 다시 커지는 욕심... 이왕이면 리본 고름을 다른 색으로 달고 시프다... 어흑.. 

결국 며칠 전엔 퍼뜩 떠오른 아이디어 대로 오밤중에 고름만 떼어서 패브릭 마커로 칠을 했다. ㅋㅋㅋ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