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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이 무서워

놀잇감 2011. 4. 23. 04:05

대학 1학년 때 친구들 몇이 당구에 중독되어 수업 빼먹기를 우습게 알고 대출  부탁을 남발한 적이 있다. '좀 놀아본' 전적이 있는 친구들은 이미 고등학교 때, 아니면 재수 삼수 시절 당구장 출입 경험이 있어 다 겪은 일이었던 반면, 비교적 '순진함'을 유지하다 대학 입학 후 온갖 잡기와 음주를 처음 접한 아이들은 거의 정신을 못차렸다. 전공필수라 도저히 빼먹을 수 없는 강의에 하는 수 없이 들어와서도 물론 수업은 뒷전이었다. 강의실 뒤쪽에 몰려 앉아서는 나와 앞자리 친구들에게 머리를 왼쪽으로 십센티미터만 옮겨보라는 둥 황당한 주문을 하며, 모든 인간 머리를 당구공으로 상상하는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자려고 누우면 천장이 당구대로 보이고, 밥상에 놓인 반찬그릇만 봐도 어떻게 몰아쳐서 하수에 불과한 자기 점수를 올릴까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매주 영자신문 사설을 읽히고 쪽지시험을 봐 칼같이 성적에 반영하던 전공과목에서 결국 그런 친구들은 대거 F학점을 받았고 학사경고의 충격에 시달려야 했다.

나도 당구장에 심심찮게 따라다녀봤지만 운동신경 둔한 데다 단신의 아픔까지 지닌 몸으로 배우기에 당구는 별로 재미있는 오락이 아니었다. 게다가 담배냄새 자욱한 그곳에서 주판알이나 넘겨주는 신세도 당연히 싫었다. 수십년 후 4구 대신에 그보다 만만한 포켓볼이 유행할 때도 재시도해봤지만, 나로선 도저히 모든 인간의 머리가 당구공으로 보이고 네모나고 평평한 건 죄다 당구대로 보이는 경지에 이를 수가 없었다. 지난번 아이폰 게임 어플 이야기할 때도 고백했지만 오락실이 대유행할 때도 스스로 '중독' 수준이라고 심취하는 게임은 없었다. 그저 나는 게임형 인간이 아니거나, 게임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인가보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내가 익힐 정도의 게임이면 꽤나 단순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반복하고 나면 흥미가 사라지기도 했다.

아이폰에 다운받아 놓고 꽤나 미친듯이 하던 '애니멀팡팡'은 게임 클리어 후 거의 외면하고 있으며, '컷 더 로프', '앵그리 버드'도 무료 버전으로 한참 신나게 하다가는 유료어플을 살까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긴 했어도 실천에 옮길 만큼 절실한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게임 중독을 막아주는 면역 DNA라도 타고난 줄 알았던 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음이 최근 드러났다. 나뿐만 아니라 최근 일부 이웃분들은 다 중독 대열에 들어선 '타일 게임' 때문이다. (여기에서 할 수 있음)


ㄱ 이나 ㄴ 모양으로 같은 색깔의 타일을 찾아 클릭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게임인데, 이웃분들의 간증이 이어진 데서 알 수 있듯 중독성이 정말 심하다! 어찌 보면 단순해서 내게 딱이었던 애니멀팡팡 게임 어플과도 아주 비슷하다. (아이폰 어플로도 존재한다는 것 같다만; 클릭질도 잘 못하는 내 수준에 터치로는 어림없는 수작이라 찾아보지도 않았다). 게다가 재미도 있으면서 반복할수록 점수가 높아져 점점 발전해가는 성취감과 뿌듯함을 안겨주되, 절대로 (내 실력으론) 완파할 수 없다는 불가능의 매력까지 갖추었으니!! >,.< 

처음 게임을 소개받고 시도해봤을 때는 어리바리 규칙에 적응하느라 무려 30점대의 점수가 나왔다. 피식 웃기면서도 뭔가 오기가 생겨 순식간에 1시간 이상 분노의 클릭질을 해댔더니 점수는 금세 80점대에 진입했다. 100점을 넘기기까지는 아마도 며칠이 걸렸던 것 같은데, 최고점수를 내고 나서도 조금만 방심하면 점수는 다시 뚝 떨어져 내려갔다. 이웃 분들의 최고기록을 들으면 좌절해서 맥이 빠져 그만하자 싶다가도 또 어느새 타일을 깨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허걱. 이를 어쩌나. 인터넷도 중독인데 이젠 인터넷 게임까지.. +_+ 이렇게 일 제쳐두고 놀다가 또 얼마나 마감일을 어기려고.

100점을 전후로 수십점씩 등락을 거듭하던 나는 며칠 전 147점을 기록하고 기쁨에 사로잡혀 캡쳐를 해두고는, 그것이 내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했으며 즐겨찾기에서 지워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이웃들은 본인들의 경험인 양 관두라고 말했다. 지웠다가도 금세 다시 이웃 블로그나 트위터를 찾아 다시 타일을 깨고 있게 될 거라고. 안봐도 비디오란 말은 참 잘도 생겨났다. 해서 귀 얄팍한 나는 옳타구나 즐겨찾기를 지우진 말고 하루에 시간을 정해 '적당히' 즐기는 쪽으로 다시 마음을 바꿔먹었다. 근데 이미 심해진 중독증상이 어딜 가겠냐고!

딱 한시간만 잠깨기 용으로 시작했다간 3시간 넘게 반복 클릭을 하다가 새벽을 맞아 급기야 팔은 마비되고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누워야하는 형편이 되었다. 그렇게 누워서 눈을 감고도 망막엔 계속 알록달록 저 예쁜 색깔의 타일들이 아른거렸다. 아까 거기서는 그렇게 먼 데 걸로 깨는 게 아니었는데.. 속으로 막 이렇게 중얼거리는 거다.

이제 결론은 하나. 애니멀 팡팡 때처럼 '진짜로' 내 한계가 어딘지 최고점수를 기록하고 나면 시들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이미 게임고수 이웃분들은 198점, 197점, 196점을 각기 최고점으로 찍었음을 알기에 이 게임의 만점이 200점이란 것도 알게 됐다. 147점이 내 실력의 한계라고 여겼던 것이 무색하게도 나는 이틀 뒤 다시 159점으로 최고기록을 세웠다. 음화화홧, 대체 나의 한계는 어디인가! 신이 나기도 했다. 그러고는 또 다시 이틀 내리 평균점수는 130점대로 추락했다. 이쯤해서 한계를 인정하고 앞으로는 정말로 심심풀이 삼아서만 '자제력'을 발휘하며 즐기는 방법을 모색해봐야겠다고 느꼈다. 30점대에서 시작해서 이 정도도 얼마나 장족의 발전이란 말인가!

중독의 문제는 그런 논리와 이성이 통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당연히 나는 그 이후로도 하루에도 몇 시간씩(일단 타일 게임 사이트를 여는 순간 1시간은 눈 깜박할 새에 지나간다;;) 타일을 깨댔다. 기록엔 이제 별 관심도 없어졌다. 때로는 눈에 힘을 빼고 무작위로 여기저기 클릭해서 최저점수 내기(이 기록은 6점이다 ^^;;) 따위의 놀이도 홀로 하고 앉았다. 그게 또 시들해지면 다시 자신과의 경쟁에 돌입하는 것이고.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여 최고기록은 차츰 높아져 드디어 170점대에 진입하더니만 급기야 어제는 놀라운 기록을 갱신했다. ㅠ.ㅠ


이 이전까지 대여섯번 연거퍼 100점 미만의 저조한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었기에 나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마침 뉴스에선 청소년들의 게임 셧다운 제도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는데, 나로선 어느 쪽을 지지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타일 게임에서 내가 얻은 성취감과 행복을 감안한다면(나도 노력하고 연습하니깐 되네, 아싸!!) 12시부터 6시까지 아예 청소년은 게임사이트에 접속도 못하게 한다는 건 엄연히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억압이다. 게다가 금지된 것은 원래 더 욕망을 부르게 되어 있어 하고 싶은 놈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접속하고야 말 거다. 그러나 일도 팽개치고 잠을 줄여가며 팔이 빠지도록 클릭질을 해대고 있는 타일게임중독자로서의 모습을 떠올리면(시도 때도 없이 타일 깨고 앉아있으면 일은 언제 하려고!), 청소년의 수면권 보장을 위한 조치라는 그들의 논리가 맞는 것도 같다. 어휴...

사실 이 포스팅은 애니멀팡팡 어플 때 여기다 고백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점수 기록을 몇번 갈아치운 뒤 단기간의 중독에서 벗어난 경험을 되살리기 위한 자구책이다. 한편으로는 다른 청정 이웃들에게도 '전염' 시키겠다는 음험한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지만서도! ㅋㅋㅋ 아무려나 현재 나의 평균점수를 감안하면, 저 최고기록은 그야말로 소 뒷걸음치다 쥐잡은 격이며, 다시는 깨지지 않을 확률이 90퍼센트 이상이다. 그래도 며칠이나 몇 주일, 길게는 몇달 간 계속해서 분노의 클릭질에 힘쓰겠지만 쉽게 좌절하고 싫증도 잘내는 단순무지한 성품을 최대한 불러일으키면 이번의 중독도 결국엔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바라고 있다. ㅎㅎ 그러니까 이 글은 F학점과 학사경고를 받고서야 비로소 앗 뜨거라 놀라 당구 중독에서 벗어났던 친구들처럼 되지 않기 위한 나름 현명한 노력이다. 이제 또 타일이나 깨러 가야겠다. 캭!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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