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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음파 공연

놀잇감 2012. 4. 22. 17:41

지난 금요일 상상마당에서 한 한음파 단독공연에 다녀왔다. 공연 보러가는 일이 거의 연중행사인 내가 한음파 공연을 보는 건 벌써 세번째. 처음 구경은 작년 여름 일산 호수공원에서 무슨 페스티벌을 할 때였고, 두번째는 언젠가 홍대앞 '빵'에서 Lowdown30이랑 합동공연을 했을 때고, 요번이 드디어 2집 발매기념 단독공연. 얼마전 EBS 공감 녹화때도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감중이라 고사했었다. 늘그막에 뜬금없이 이 무슨 팬질인가 싶은데, 사실 난 아직 한음파의 팬이라고 할 수 없다. 열혈팬의 '열심전도'에 부화뇌동하는 정도랄까? ^^;

 

 

한음파라는 밴드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가 공연을 따라다니게 된 건 순전히 이 밴드의 리드보컬(포스터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붉은 재킷 입은 분)에게 '마두금'을 배운다는 지인 덕분이다. 악보도 못 보는 주제에 악기 열망은 또 늘 품고 있는 사람이다보니, "마두금 한번 배워보실래요?"라는 떡밥에 돌연 솔깃했다. 일단 어떻게 생긴 악기인지 구경부터 하고, 또 캔맥주 마시며 사이비이건 아니건 작게나마 록 페스티벌 분위기를 느껴볼 욕심에 따라나선 것이 첫 만남. 몽고의 토속 악기라는 마두금은 꽤나 멋지게 생겼는데, 줄이 두개 뿐이라 얼핏 느끼기엔 해금의 확대판 같다. 톤은 다르지만 소리도 비슷한 듯하고... '마두금'이란 이름에서 짐작되듯, 갈기까지 달린 말 머리모양의 악기다. 허나 내가 배우고픈 악기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랑은 뭔가 안 어울리게 생겼어!

 

게다가 이 밴드의 음악도 내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느낌이었다. 내가 '일렉트로닉, 사이키델릭' 이런 걸 워낙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단 너무 어렵고 장중하고 암울하다고나 할까... 뭐 그런 묵직한 음악이 듣고 싶을 때도 있겠으나 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듯한 소통의 순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난 역시 과거지향적인 어쿠스틱 파. ㅋㅋ 따끈한 2집 신곡을 일부 들을 수 있었던 두번째 공연에서도 역시 같은 느낌. 연주도 잘하고 사운드도 빵빵한데 CD를 선뜻 사고싶진 않았다. 그런데 또 EBS 공감에 나온 걸 보니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어라 꽤 좋은 곡도 있었네.

 

해서 요번 단독공연은 한음파를 계속 주시할까 말까를 결판짓는(?) 나름의 잣대로 삼을 작정이었다. 2집에 실린 곡들은 많이 발랄, 경쾌해졌고 대중성도 좀 겨냥한 것 같다고 지인은 부추겼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게스트로 나온다는 블랙백과 국카스텐의 라이브가 궁금한 마음이 더 컸다. ;-p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확실히 예전보다 경쾌해진 곡들이 있기는 했으나, 밴드의 연륜(?) 때문인지 파릇파릇 블랙백이나 국카스텐의 음악과 비교하면 역시 대체로 묵직 웅장. (보컬 본인은 '어둡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나는 보컬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편인데 창법이랑 목소리도 내 취향엔 별로. 발음 꼬아부르는 거 싫엇! 2부 게스트로 나온 국카스텐이  노래 흉내내는 데 빵 터졌다. 맞다 맞다, 나는 가사전달 정확한 발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컨디션도 별로 안 좋은데 스탠딩 공연을 보려니 힘들어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바닥에 앉기도 하고 벽을 차지하고 기대도 보았으나 공연 후반부, 나는 결국 의자 하나 없는 공연장 맨 뒤 깃발 디딤돌 같은 곳에 걸터 앉아야 했다. 에구구. 게다가 공연장 에어컨이 어찌나 빵빵한지 손이 시렵다 못해 지릿지릿 저려왔다. 편하게 공연 보겠다고 가방이랑 재킷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들어왔는데, 에어컨을 그렇게 세게 틀 줄이야. ㅠ.ㅠ 덜덜 떨리고 허리 아파서 공연이고 나발이고 어서 끝났으면 하고 바랐던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행운권 추첨이 시작됐다. 내가 예매할 때만 해도 겨우 40번째라 공연장 완전 썰렁하면 어쩌나 괜한 걱정을 했었는데, 공연장은 얼추 꽉 찼고 어쨌거나 최측근 팬들과 초대권으로 온 사람들과 별도로 매긴 듯한 예매 관객 행운권 순번 가운데 내가 70번이었다. 행운권 추첨 같은 거엔 워낙 운이 없는 걸 알면서도, 다섯 명 중 한 사람은 기타를 준다니 혹시 내가 타게되면 열심히 기타를 배워야지! 턱도 없는 꿈을 잠시 꾸었다. 그런데 맙소사, 세번째로 싸인 CD를 받는 사람에 70번을 부르는 게 아닌가! ㅋㅋㅋ 맨 뒤에 앉아 있다가 얼결에 홍해를 가르는 모세처럼 사람들을 헤치고 맨 앞으로 나아가 CD를 받아들곤 민망하여 얼른 다시 맨 뒤로 도망쳤다. 

 

행운권 추첨에 고무된 나는 결국 2집 CD를 사서 공연후 사인회를 하는 멤버들에게 사인도 받았다. 글씨 잘 쓰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대체 선망 없는 분야가 뭐냐!)도 있는데, 우와 두어분은 글씨체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사인이야 뭐 뮤지션이니까 늘상 연습해서 멋지게 만들었겠지만 글씨를 잘 쓰는 건 타고나야 하는 것. 게다가 허클베리핀에서 십여년간 드럼을 치다 한음파로 합류했다는 드러머의 미모(?)와 말간 피부가 코앞에서 보니 단연 빛이 났다. ㅋㅋ 공연 볼 때 옆에서 교수님, 교수님! 외치며 미친듯이 열광하는 아가들이 있더니만, 드러머가 그 교수님이라는 듯(포스터 사진 제일 왼쪽;;).  

 

나랑은 좀 안맞는 밴드라고 생각하면서도 공짜 CD 한장에 사인회 줄서기까지 하다니, 참 부화뇌동의 진수를 보여주는 게 아닐지. 째뜬 자꾸 들으면 좋아지려나 더 들어보긴 해야겠다. ㅋㅋ

 

왼쪽이 행운권 추첨으로 받은 EP <잔몽>

오른쪽이 새로 나온 2집 <Kiss from the Mystic>.  

팬도 아니면서 이런 인증샷까지 찍어올리다니 이 무슨 짓인가 싶으면서도, 일단 이런 인디 밴드들은 좀 더 널리 알려 혹시 모를 팬 확보에 도움을 주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랑은 안맞아도 누구에겐가는 잘 맞는 음악일 수도 있으니까. ^^;

 

더불어 마두금도 소개. 이웃들 가운데 마두금에 관심 있는 분들도 문의 환영. ㅋㅋㅋ  

열광하는 밴드든 아니든, 저질체력으로 서서 구경하기가 힘들었든 말든, 어쨌거나 한참 뒤에도 귀가 찡찡 울리는 라이브 공연을 보았던 건 좋았고, 맛있는 치맥 뒤풀이는 더 좋았다! 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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