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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16 세밀가귀 - 리움미술관 6


​추석전까지는 좀 탱자탱자 놀면서 여름 내 소진된 심신을 재충전하겠노라 결심했는데, 아직도 머리는 좀 더 쉬어야하는지 책은 눈에 잘 안들어온다. 그럼 전시나 보러 다니자 싶었으나, 이미 프리다 칼로는 날짜를 놓쳐버렸고(9월 4일까지였더라) 이 전시도 끝나기 이틀 전에 겨우 볼 수 있었다. 천만다행... 기대가 컸는데도 완전 감동했다. ㅠ.ㅠ

'세밀가귀'는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의 나전을 보고 칭송한 말이란다. '세밀함이 뛰어나 가히 귀하다'라는 뜻이라고. 

그런 말이 나올만도 하게 정말 섬세하고 치밀하고 정교하고 아름답고... 더 묘사할 말이 생각 안났다. 일부러 그런 작품들만 모아놓은 전시인데도 으아.. 감탄스러웠다.

오래 전 대만갔을 때도 박물관 가득 정말 신기하고 정교한 세공 공예품들을 많이 봤지만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나 재주가 놀랍다고 느낀 건 많았어도 '감탄스럽게 아름답다'는 느낌은 덜했던 것 같은데 내가 팔이 안으로 심히 굽었다고 쳐도 우왕... 구석구석 섬세한 아름다움이 유물마다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참 놀랍게도 잘 골라서 모아놨다고 생각했음. ^^; 


게다가 웬일로 전시장에서 사진찍는 걸 제지하지 않았다. 물론 전문작가가 찍은 더 멋진 유물사진을 찾아 볼 수도 있겠지만, 눈으로 보고 그 자리에서 그 감동을 찍어와 홀로 넘겨보며 새삼 흐뭇해하는 기분은 또 다르다. 

해서 남들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나도 열심히 찍어왔고, 며칠 핸드폰 앨범 넘겨보며 아웅 예뽀라... 실실 헤벌쭉 행복했다. 


저 유명한, 청동기 <다뉴세문경>!!부터 시작해서 신라, 백제, 가야, 고려, 조선시대까지 유물 종류가 다양했는데, 조선시대엔 섬세한 아름다움이 주로 회화쪽이다보니 자주 보던 풍경화, 초상화 전시실에선 감동이 덜했다. 물론 터럭 하나도 사실과 똑같이 묘사한 집요하리만치 세밀한 초상화를 실물알현한 건 기뻤지만, 내가 주로 감탄했던 건 신라와 가야의 금세공품, 전돌, 고려 청자와 나전, 불상 등등이었다. 


기껏 휴대폰 사진에 그 감흥을 얼마나 담아왔겠냐마는 그래도 일종의 자랑질. ^^;

이 둘은 사리함이다. 옆에 있는 유리병 크기가 손가락보다 작음..  신라시대 유물이었던 것로 기억;;하는데 뭐 확실하진 않다. 저 함 외부에도 죄다 세밀한 부처와 구름무늬 등등이 새겨져 있다. 

위 사진 셋 중 왼쪽은 고려청자인가보다.. ㅠ.ㅠ 나전인 줄 알고 셋이 붙였는데 아 놔...

맨 오른쪽은 실물이 아니라 디지털 화면으로 찍어온 통일신라시대 나전 거울이다. 가운데 보이는 고려 나전함은 거북이 등딱지에 전복껍질과 기타 재료를 입혔다는 것 같다. 신라시대 나전은 무늬의 세밀함이 좀 떨어지는 것도 같지만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은 역시나 최고. 아.. 저런 보석함이랑 거울 갖고 시프다.. 뭐 그런 말도 안되는 욕심을 품었다. 죄다 국보 아니면 보물. ㅋㅋ

불경을 보관하던 화려하고 기품 있는 경전함도 여럿 전시되어 있었는데 전시실 양쪽에서 볼 수 있는 유리함에 들어 있어서 사진에 잘 담기질 않았다. 거의 일본과 유럽에서 빌려온 유물이었던 듯. 유출된 보물 환수 문제가 늘 뜨거운 감자인 건 알지만, 중국이나 일본 유물로 잘못 알려지지 않는다면 세계 유수 박물관에서 그 아름다움을 떨치고 있는 것도 나름 가치있는 일인 것 같다. 모두가 탐낼만 한 보물인 것을 어쩌겠어! 외국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초라한 한국관 유지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흠.. 암튼 좀 민감한 사안이긴 하다. 



이 섬세한 유물 세 세트는 죄다 '전돌'(塼돌) 혹은 '전석(塼石)'이라고 부르는 전통 바닥장식이다. 일종의 타일!

신라나 고려시대에 지은 오래된 사찰 대웅전 가운데는 종종 바닥에 아직도 저런 국보급 전돌이 깔려있는 곳이 있다. 칠갑산 장곡사 갔을 때도 연꽃무늬 전돌을 본 적 있다. 도자기 빚듯이 기와와 전돌에도 저렇게 다 무늬를 새겨서 가마에 구워 사용했다는 얘기다. 옛날 사람들의 미적 감각과 '인테리어' 욕심은 정말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손잡에에 앉은 작은 개구리, 몸통에 새겨진 소년무늬가 정교했던 고려청자 주전자 사진은 아무리 찍어도 잘 안나와서 실패하고.. 그 대신 투각으로 만든 두침(?) 찍어왔음. 목침은 나무로 만든 베개라는 걸 그날에서야 깨달았다. ㅋㅋ 고려시대 귀족들은 낮잠자는 베개도 저런 화려한 청자로 구워서 사용했다뉘.... 어휴... 



그 옛날 교과서에서 주로 봤던 것 같은 고려청자도 새삼 감탄하며 구경했다. 어떻게 도자기로 저런 그물 같은 걸 표현해내는지 원... 왼쪽 술병(?) 무늬 아오... 저런걸 '당초'(唐草)무늬라고 하는데, 옛날엔 당나라에서 유입된 무늬라고들 했지만, 그게 아니고 '덩굴풀'을 이두로 음차하면서 그렇게 표기한 것뿐이라는 게 최근의 결론이다. 주로 인동덩굴 무늬를 저렇게 표현했대고, 왕조나 나라의 영속성을 기원하는 의미로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도 발견되는 유서 깊은 무늬라고 함. ^^v

아 근데 저 오른쪽 도자기의 용도가 뭐였더라? 감탄하며 보다가 그걸 놓친 듯.. 연적이었던가... -_-a

불교신자인 울 오마니는 암만 다녀봐도 신라와 고려 불상이 전 세계적으로 제일 '잘생겼다'고 주장하신다. 근데 사실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비례미도 그렇고 섬세한 표현도 그렇고.... 중국이나 일본, 심지어 인도 불상도 어쩐지 '쨉'이 안되는 느낌이다. 이 사진들은 둘 다 부처가 아니고 무슨 '보살'인데 오른쪽 사진은 귀여운 동자처럼 나왔지만 실물로 봤을 땐 잘생긴 느낌이었다. 흔히 절에 다니는 아줌마 할머니들을 '보살'이라고 부르지만 보살은 여성이 아니고 그냥 성을 초월한 무성일 걸 아마... 왼쪽 사진 유물은 브로셔에도 들어 있는 <금동보살좌상>. 14세기 고려 보물이고, 일본에서 빌려온 거란다. 아까비... 


그밖에 작고 앙증맞은 금동불상도 하나같이 정교하고 아름다웠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맨 오른쪽 불상의 유연한 자세! 잘생기기도 했지만 저렇게 우아하고 편안하게 약간 비스듬히 나른하게 앉은 모습을 금속으로 표현해내다니 으으.. 기막힌 솜씨로다. 


관람료가 8천원이었는데, 전시장 나오기가 아쉬워서 반바퀴쯤 더 돌아본 뒤 미적미적 걸어나오며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품격'이라는 말은 역시 아무데나 붙이는 단어가 아니었다. 지난주말로 전시가 끝나버려서, 일찌감치 구경하고 와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러가라고 포스팅으로 권하지 못한 게 안타깝네그려. 

그래도 몇몇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니 언제고 발품을 팔면 또 볼 수 있으려니...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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