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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6.19 애슐랜드로! 4/20(목) 8

자동차 여행 셋쨋날이자 온천 리조트가 있는 애슐랜드로 향하는 날이 밝았다. 호텔이 있는 페어필드는 포도주로 유명한 나파밸리 근처라 다음 주에 돌아오는 길에 본격적으로 근방을 둘러볼 예정이어서 순전히 잠만 자러 들른 도시였다. 전날 밤 잠들기 전에 E언니가 말하길, 호텔이 너무 작고 시골이라서(메리엇 호텔 체인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Courtyard by Marriott Hotel의 경우는 비즈니스호텔 규모로 보면 된다고;; 그러나 내가 보기엔 4, 5성급 족히 되는 것 같던데! ㅋ), YELP 앱으로 확인해보니 조식이 별로라며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 브런치는 따로 나가서 먹자고 했었다. 거의 매일 짐을 쌌다 풀렀다 호텔을 옮기는 자동차 여행에서 하루 쯤 조식 포기하고(가난한 여행자 마인드로는 사실 좀 아까웠음을 고백한다;; ㅎㅎ) 푹 자는 거 좋쥐! 

물론 이론상 그랬다는 거다. 친구와 단둘이 편하게 잘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실컷 넓은 침대에서 뒹굴며 숙면을 취했으면 좋았겠지만, 마감 앞두고 출판사 몰래 놀러간 거라 양심상 이날은 새벽 4, 5시까지 구석에서 노트북 켜고는 굶주린 뱃속에 쿠키와 커피, 차를 쏟아 부으며 일을 했다. 친구가 온갖 소음과 불빛에 상관없이 머리만 닿으면 자는 스타일이라 어찌나 고마웠는지... 돌이켜보니, 이날 호텔 조식을 포기하고 늦게 일정을 시작한 건 내게 밤새 일 할 시간을 주려는 E언니의 배려였던 것 같다. (실제로 바로 다음날 출판사에서 원고 마무리 잘 되어가냐는 확인 전화를 받고 뜨끔했다. ㅠ.,ㅠ)

암튼 새벽에 잠들었어도 꽤 많이 자고 일어나 30분만에 후다닥 준비를 마치고는 10시반쯤 호텔을 나왔다. 브런치를 먹으러 간 곳은 허클베리스. 메뉴판이 타블로이드 신문 같은 종이라서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신문지를 전천후로 활용하는 한국인의 본능이 불쑥 동하여 (요즘도 명절 때는 일부러 제일 두꺼운 신문을 한 부 사오기도 한다. 거실 화분 치울 때 책상에 깔아야해서리;;;) 기념으로 한 부 집어올까 살짝 충동이 일었으나 관뒀다. ^^; 다 짐이야!

이것이 메뉴라니오믈렛보다 저 감자가 엄청 맛있었다!와플은 뭐 흔히 먹는 맛..

이렇게 인쇄된 메뉴를 마구 소모할 정도면 아마도 체인점이 아닐까 싶다. 평일 오전인데도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와글와글 시끌시끌... 설마 다 여행객은 아닐테고, 차림새를 보아하니 운동하다 들어온 동네 주민인 듯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동남아시아 쪽만 아침밥을 밖에서 사먹는 게 아닌 모양이라고, 여자들이 가사노동에서 점점 멀어지는 건 세계적인 추세인 모양이라고 우리끼리 함부로 일반화 결론을 내렸다. 

와플과 오믈렛, 팬케이크에다 추가로 머핀까지 골고루 시켰는데 으어 진짜 양이 푸짐해서 점심때를 넘기고도 당연히 한참이나 배가 꺼지지 않았다. (가운데 사진 속 머핀은 결국 남겨서 싸가지고 나와선 밤참으로 내가 먹었다 ㅎㅎ)

친구가 주문했던 핫케이크와 해시브라운

메뉴판만 내가 찍은 거고 오른쪽 두 음식사진은 K언니 작품이다. +_+  내가 찍은 건 이렇게 성의가 없고.. 확실히 덜 맛있어보인다. ㅠ.ㅠ 

캘리포니아 근처에서 생산되는 country reds라고 하는 종의 감자를 깍뚝썰기 해서 오븐에 구운 것 같은 저 감자도 그렇고 해시브라운도 그렇고 사이드디시 선택으로 나온 감자가 특히나 느무느무 맛있었다. 추릅;; 

저 기름진 음식과 함께 커피를 각각 거의 두 주전자쯤 마시고는 드디어 출발~!







캘리포니아주를 벗어나 드디어 오레곤 주로 넘어가는데 우와... 저 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 설산?!!

사진으로 보면 구름과 하얀 설산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달리는 차안에서 창문 열고 어렵사리 찍어서 편집했더니 두 사진의 규격도 잘 안맞는다. 암튼... 지난 겨울과 봄에 비와 눈이 하도 많이 와서 캘리포니아 북부에서도 8월까지 스키를 탈 수가 있다나 뭐라나. 실제로 친구 동생네는 주말에 근교로 스키여행을 떠났다며 스키타는 사진을 보내왔었다.  

전날 낮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더워 더워를 외치다 하루만에 다시 눈앞에 설산이 펼쳐지니 얼마나 신기한지 굽은 길을 돌아 새로운 설산이 나타날 때마다 감탄했지만... 2시간쯤 지나 계속 눈덮인 산이 나타나자 다들 시큰둥.. 뒷좌석에 앉은 나와 친구는 그냥 쿨쿨 잠만 잤다. ㅎㅎㅎ

오레곤 주는 다른 주보다 실업률이 높다나 뭐라나, 셀프 주유가 당연한 미국 땅에서 놀랍게도 운전자가 주유기구에 손을 대면 안되고 무조건 우리나라처럼 주유원이 와서 기름을 넣어주고 카드 결제도 처리해준다. 캘리포니아 주민인 E언니와 친구는 그걸 까먹고 갈 때 올 때 모두 오레곤주에 들러 기름을 넣을 때마다 아차차 당황했었다. 심지어는 맥도날드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도 테이블에 세워놓는 번호표를 주고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나중에 종업원이 쟁반에 고이 담아 갖다준다! 패스트푸드 점에서도 무조건 홀 종업원을 더 고용해 서빙을 시켜야하는 것이 오레곤 주의 법이라고. 

우리나라처럼 고속도로에 자주 휴게소가 있는 게 아니라서, 미국 프리웨이를 달릴 때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무조건 인근 도시로 나와서 주유소나 카페 화장실을 들러야하기 때문에 몇시간에 한번은 스타벅스나 주유소, 맥도날드를 이용했는데 오레곤 주만 법이 달라서 재미있었다. ㅎㅎ

또 다시 400킬로미터를 넘게 달려 드디어 애슐랜드 리디아 온천 리조트에 도착했다. 애슐랜드는 인구가 2만명 남짓한 작은 도시라는데, 셰익스피어 연극 페스티벌도 열리고 오래된 전통 목조건축이 많이 남아있다나 뭐라나. 

리디아 스프링스 리조트 로비 하우스 건물이다 저기 누워 책 읽으며 종일 빈둥거려도 좋겠다

온천 물이 좋아서 꽤 유명한 관광지라는데 우왕 이렇게 소박하고 귀여울 수가 있나... ㅎㅎㅎ 딱 펜션 느낌이다. 통나무집 지어놓은 우리나라 펜션들도 당연히 이런 데를 벤치마킹했겠지? 캘리포니아도 그렇고 오레곤도 그렇고... 대도시가 아니고선 워낙 땅덩어리가 넓고 여유로우니 딱히 건물을 높이 지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호텔도 기껏해야 2, 3층으로 낮게 지은 곳이 많았다. 

E언니와 K언니를 로비 하우스에 들여보내놓고서는 기웃기웃 주변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언니들이 일단 로비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웰컴 티와 과일, 머핀이 준비되어 있으니 일단 좀 먹고 방으로 가자면서... 

로비 안쪽 아담한 티룸(?)이 마련되어 있고 구석 테이블엔 삼단 접시에 꽃과 함께 담긴 과일, 각종 차와 머핀, 쿠키 등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다른 손님들이 하도 조용조용 테이블에앉아 먹고 마시는 중이라 차마 철컥철컥 사진은 못찍고... 얼른 과일을 담아가지고 테이블에 앉았다. (아이폰7을 미쿡에서 공수받았다는 K언니의 휴대폰은 사진을 찍어도 철컥철컥 소리가 안난다! 내 아이폰6보다 사진도 훨씬 정교하고, 카메라 소리도 안나는 걸 보며 나 역시 미쿡에서 아이폰7을 사가지고 갈까 몇번 고민했다. 암만 생각해봐도 무조건 누구나 예비 몰카족 범인 취급하듯 모든 휴대폰 기기에 철컥 소리 나게 사진 찍는 걸 법으로 만든 우리나라 넘 구리다;;) 

이 사진 역시 조용한 K언니의 아이폰으로 찍은 것. 우리나라 딸기보다 훨씬 과육이 단단한 미국 딸기는 단맛도 훨씬 덜하지만 정말 싱싱한 느낌이 입안에 퍼진다. 한국의 모든 과일에 경쟁적으로 당도표시까지 붙이고 달게 만드는 거 난 반대하는 입장이라 (차라리 설탕물을 먹지!) 과일 본연의 맛이 나는 이런 딸기 맛있어서 조식 부페 때 나오면 엄청 먹어댔다.  

일단 사진 촬영 용으로 우아하게 이렇게 담았지만, 촬영이후엔 그간 싱싱한 과일에 주려 있던 우리가 과일 접시를 모조리 비워버리곤, 또 갖다주면 더 먹어야지 하며 좀 기다렸었다. 우리 다음으로 체크인 하러 들어온 젊은 부부와 아이 손님한테 미안하게도 한참이나 과일을 채워주지 않았다! 쩝;;

그러나 우리가 포기하고 막 로비를 벗어나려는데, 갓 썰어낸 과일 접시를 든 종업원이 주방에서 나왔다. 아까비... ㅋㅋ

배정받은 숙소로 들어가니 오옷... 멋져멋져... (가짜) 벽난로도 있고 주방도 넓고 방도 뭔가 아기자기 여성스럽고 클래식한 느낌?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하늘색을 주조로 꾸민 인테리어라 너무 행복했다. 나의 짧은 다리로는 걸터앉기도 좀 버거웠던 ^^; 저 높다란 침대는 예쁘고 넓긴 하였으되 너무 푹신해서 다음날 아침 언니들의 요통을 유발하였다. ㅎㅎ 

K언니가 찍은 멋진 사진엔 벽난로가 안나와서 또 내가 찍은 알량한 사진을 하나 공개하면.. 이렇다. ㅋㅋ

노란 등이 내려와 있고 하얀 의자에 나의 꽃무늬 베낭을 놓아둔 저 자리에서 나는 또 다시 밤샘 번역작업에 힘써야 했다. ㅠ.ㅠ

일단 가방만 방에 들여놓고선 우린 숲길이 아름답다는 리디아 공원으로 차를 몰고 나갔다. 워낙 작은 도시라 5분 거리에 모든 관광지(?)가 다 있었다.

캠핑하는 가족들도 종종 보이고 맑은 물이 흘러내리던 리디아 공원 산책로를 따라 꽤나 많이 걸어다녔는데, 이 코스 역시 등산 다니는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늘 차로 움직이기 때문에 하루에 500보도 걸을 일이 없다는 은행 지점장님 E언니와 사모님 포스 철철 풍기는 K언니, 그리고 은행원인 나의 친구 S모두 사흘만에 3년치 걸을 거 다 걸었다고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과 나무, 숲, 잔디... 곳곳에 피어있는 주먹만한 꽃들.. (진짜로 미국은 꽃송이도 정말 크더라!) 싱그러운 공기와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하느라 휴대폰을 수시로 꺼낼 마음도 들지 않았었다. 어차피 숲속에선 그늘이 깊어 사진도 잘 안나오고...

영화 매디 카운티의 다리 같은 나무 다리를 여러번 건너 계곡을 이쪽저쪽으로 따라 걷다가 드디어 경사가 급해지면서 등산로가 나타나 미련없이 뒤돌아 나왔다. 

짧기 그지 없었던 애슐랜드 메인스트리트 주변 건물들도 예뻤는데 이상하게 사진엔 잘 안나와서 속상해하며 다 지웠다. 약간 고지대인듯 이미 해가 넘어가기 시작해서 막상 찍으면 죄다 이렇게 어둡게 나오고... 노출을 조절하면 너무 하얗게 바라고...

암튼 이 사진은 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너무 예뻐서 지우지 않고 남겨두었다. 

아무 가게나 들어가 구경하다 중고 음반가게에서 비틀즈와 콜드플레이 LP판을 살까말까 망설이다 나온 바로 직후였던 것 같다.

여전히 배는 안 꺼졌지만, 딱히 더 할일도 없어서 일찍 저녁을 먹은 후 자쿠지에서 온천욕을 할 예정이었으므로, 거리를 쏘다니다 보아둔 음식점  Hearsay로 들어갔다. 

메인스트리트에 나름 바글바글 젊은 사람들이 많은 음식점도 물망에 올랐으나, E언니가 YELP 앱으로 확인해보니 평점이 안좋다며 다른 곳으로 정한 거였는데, ㅋㅋ 거의 깜깜하고 고전적인 분위기의 이 음식점은 나이든 사람들 취향인지 죄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몰려들더라는;; ㅋㅋㅋ

인테리어가 이런 식이고, 붉은 벨벳이 덮인 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먹기엔 음식값도 비싼 편이라고 나중에 K언니가 슬쩍 귀띔해주었다. 여행에선 무조건 푸짐하게 최고로 잘 먹어야한다는 게 E언니의 지론이어서 우린 늘 행복하게 배를 두들겼고, 주문 받는 웨이터들은 우리가 메뉴를 읊어대면 종종 그만하면 넷이 먹기 충분하다고, 그만 시키라고 말렸을 정도다. 그리고 한국인 뿐만 아니라 동양사람들은 대체로 각각 시킨 음식을 나눠먹는 문화라는 걸 인지한 듯, 나눠먹을 개인접시 줄까? 하고 묻는 경우도 많았다. 옆 테이블 살펴보면 웬만한 미쿡 사람들은 절대 나눠먹지 않는다... 야박하게스리.. ㅋ

스테이크와 해산물 수프, 버섯 리조또만 사진에 남았다. 산처럼 높이 쌓여 나온 치킨 샐러드는 촌스럽다고 깔깔 웃다가 사진도 못 남김. ㅎㅎ 음식은 대체로 흡족해서, 배 안고프다고 언제 그랬나싶게 싹싹 다 긁어먹었다. 온천욕하면 다 소화될 거야, 괜찮아.. 그러면서 애슐랜드에서만 판다는 지역 에일 맥주도 홀짝홀짝. 

원래는 마트에 들러서 과일이랑 맥주나 와인을 사다가 온천욕 하면서 더 먹고 마실 계획이었는데, 다들 술도 너무 약하고 또 배도 심히 불러서 관뒀다. 숙소로 돌아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는 곧장 온천욕만 하기로!

온천 자쿠지는 이런 모습;;

밤이 되니 기온이 내려가서 과연 야외 온천욕을 얼마나 할수 있을까 염려하며, 타월로 둘둘 싸매고 밖에 나갔는데 우와.. 물이 엄청 뜨거웠다! 일본 온천 갔을 때 생각날 만큼 물이 뜨끈뜨끈해서 처음엔 발목만 담갔다가 조금씩 들어가야했다. 우리보다 먼저 온 중년 백인 부부도 풍덩 못 들어가고 발목만 담근 채 우릴 보며 Isn't it crazy? It's so hot!! ? 이라고 아는 척을.. ㅠ.ㅠ 

밤에 온천욕 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완전 착각이어서, 좀 있으니 십대 여자애들도 나타나 거침없이 자쿠지에 들어갔다 금방 나와선 찬물 수영장으로 곧장 다이빙! 허허 니들은 역시 젊구나...그랬다. 

샤워를 한꺼번에 할 수가 없으니 친구와 내가 먼저 온천물에서 노닥거리다, 언니들과 바통터치를 하기로 했는데 차가운 공기 속에서 뜨거운 온천물에 몸담그고 땀빼는 상쾌함이란 으어... 정말로 하나도 안추웠고, 빨갛게 달아오른 몸을 타월로 슥슥 닦고는 방으로 돌아가며 좀 아쉬울 정도였다. 

이 사진 역시 마지막까지 남아 온천욕을 즐기고 온 K언니가 공유해준 거다. 당근 나는 휴대폰 챙겨갈 생각도 안했음. ㅎㅎㅎㅎ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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