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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전

놀잇감 2010. 12. 24. 15:36

2004년에 이어 6년만에 똑같은 장소인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하는 샤갈 전시회에 다녀왔다. 내년 3월 27일까지 예정이라 12월 3일부터 전시 시작이라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나는 줄곧 머리를 굴렸다. 과연 언제 가야 가장 한가하게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대형 기획전시는 노심초사 기다렸던 사람들 때문에 첫주가 꽤나 붐비는 편이란 걸 알기에,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겨울방학 해서 바글바글 애들이 몰려오기 전에 가자는 것이었다.

미술관 입구를 그림으로 꾸민 건 맘에 든다

그렇게 해서 잡은 거사일이 바로 어제였고, 찬바람에 인적 드문 정동길을 지나 시립미술관 언덕을 오를 때만해도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호라, 내 짐작이 맞았구나 하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나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매표소와 광장 앞엔 사람들이 별로 없었건만, 건물 안엔 우글우글... 아니, 평일 오후에 웬 할 일없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시끄러운 아이들만 없었지 관람객의 연령대도 몹시 다양했다. 여름방학 중이라 도깨비 시장 같은 분위기에다 거의 줄서서 돌아다니느라 사람들 머리 너머로 그림을 봐야했던 6년 전 그날만큼은 아니었지만, 와글와글 북적북적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전시장을 절반도 돌기 전에 피곤해서 카페로 피신해 숨을 돌려야 할 정도였다. 게다가 원래도 시립미술관 도슨트 설명이 워낙 부실한 건 알고 있었음에도, 하필 그마저도 제일 형편없는 알바생 같은 '인공미녀' 도슨트가 걸린 바람에 어찌나 버벅버벅 말을 씹는지 한숨이 다 나왔다. 전시관마다 겨우 두세 작품 설명하고 넘어가는 걸 그리도 내용을 못 외운단 말이냐! 오디오 가이드는 그나마도 30점 정도 작품을 설명해준다니, 혹시 한번 더 보러 가게 되면 시도해볼 생각이다.  

대형 기획전시 때마다 자랑스레 반복되는 광고는 늘 '사상 최대규모'라는 것이고 이번 샤갈전도 '아시아 최초'라거나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이례적인 기획이라는 '소문'을 들었고 164점이라는 작품 수도 나의 기대를 부채질했다. 그런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은 이번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큰 법. 2004년에 감탄하며 보았던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 '샤갈스러운' 그림들은 그

산책, 캔버스에 유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러시아 미술관 소장

리 많지 않았다. 물론 인상적인 그림들도 꽤 있었다. 요번 샤갈전의 메인으로 쓰인 그림인 <도시 위에서>는 6년 전에 왔을 때 얼마 전시를 못하고 돌려줘야 해서, 내가 보러 갔을 땐 아쉽게도 복제품이 대신 걸려 있었다. 그런데 요번엔 전시기간 내내 원본을 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지난 전시에도 인상적이었던 러시아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벽화로 걸려 있던 패널 그림 네개 <무용>, <음악>, <연극>, <문학>도 다시 왔는데, 그뿐만 아니라 그밖의 대형 장식화들이 불타버린 천장벽화 빼고 모두 한꺼번에 전시되고 있었다. '아시아 최초'이고 '마지막' 전시라는 미사여구는 그러니까, 샤갈이 러시아 시기에 그린 이 예술극장 장식화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뜻이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같은 시기의 <산책>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김춘수에게 영감을 주어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를 낳았다는 <비테프스크 위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색채의 마술사 샤갈'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화려하고 몽환적인 그림들은 확실히 지난 전시회 때 더 많았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엔 주제별로 그림을 나누어 놓은 전시관 구분이 좀 억지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샤갈의 그림들이 워낙 당대의 미술사조와도 다르고 독특한 양식이라 일정 주제로 뭉뚱그리기 힘들다지만, 그래도 유대인 예술극장 전시관과 마지막 석판화 작품방 빼놓고는 어쩐지 계속 중구남방 정신사나운 느낌이 드는 걸 피할 수가 없었다. 지난번엔 똑같이 성서를 주제로 작품을 모아놓았어도 통일성이 느껴지면서 아름답기만 하던데...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아가서> 시리즈가 몇 작품 오긴 했어도 이상스레 자질구레하게 붙여놓은 듯 시선이 집중되질 않았다. 작품 수만 많았지, 정말로 대형 작품 몇 점 빼놓고는 죄다 오종종 작은 그림들을 다닥다닥 붙여놓은 때문일 수도 있겠고, 주제별로 작품을 나누느라 들쭉날쭉한 작품시기가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 전시는 유대인 예술극장 벽화 시리즈에 가장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나는 은연중에 화려하고 색감이 다채로우면서 신비로운 샤갈의 그림들만을 '샤갈스럽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 그리고 그런 시각으론 서커스, 사랑과 연인 주제로 나눠놓은 전시관 그림들이 제일 좋았다. 특히 서커스 전시관은 벽이 온통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약간 의아했는데, 다 돌아보고 나니 그게 작품과 어울렸던 것 같다. 어쩐지 크리스마스스럽기도 했고.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이번 샤갈전은 내 경우 '샤갈 그림을 원없이 봤다'는 충족감이 아무래도 좀 떨어진다. 바로 옆 덕수궁 미술관에서도 3월까지 <피카소와 모던아트전>을 하고 있는데 원래도 가려 했지만 거기도 몇 점 포함된 샤갈의 그림이 뭘까 궁금해서라도 꼭 보러갈 작심을 했을 정도로. 나는 자꾸만 2004년 전시와 요번 전시를 비교하며 실망스러워했는데, 그 전시를 놓쳤던 일행들은 90년대에 있었던 호암아트홀 샤갈전과 비교를 하며 아쉬워했다. +_+ 이러니 전시 기획하는 쪽에서도 참 사람들 입맛 맞추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쨌거나 원래도 샤갈이 즐겨 사용한 상징인 새와 수탉 때문에 (그놈의 새 공포증 -_-;) 나로선 소장할 작품을 찾으려면 한참 고민해야 하는 형국인데 (누가 준대나? ㅋㅋ) 전시장을 두어바퀴 돌고도 어느 그림을 가질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도시 위에서>나 <산책>은 너무 작품이 커서... 

대신에 엽서 몇장 사들고 왔다. 클림트 전시회 때 독일 직수입이라면서 엽서 한 장에 3천원, 5천원씩 받아서 심하게 욕한 적이 있다. 헌데 요번엔 프랑스에서 수입한 엽서를 국내 제작 엽서와 똑같이 저렴하게 팔아서 그건 몹시 기뻤다. ^^; 엽서 사들고 다시 전시장에 들어가 비교해봤더니 색감도 퍽 훌륭한 편이다.

아 참, 전시입장료는 12,000원. 별다른 할인카드는 없는 대신에 평일 저녁 6시 이후엔 2천원 야간할인이 된단다. 쌩쌩 강추위에 인적 드문 겨울 평일 저녁에 가보면 한가하게 전시장을 돌 수 있지 않을까나. 혹시 생각있으면 시도해보시기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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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천국

놀잇감 2009. 3. 17. 16:00

역시나 오래 별렀던 퐁피두센터 특별전에 다녀온지 일주일이 다 됐나보다. 감동은 벌써 많이 식었지만 늦게라도 적어두지 않으면 연말에 2009 베스트 정리할 때 멍하니 까먹을지도 몰라서 조바심이 났다.
베스트 3에 드는 전시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
<퐁피두센터 특별전-화가들의 천국>은 기대를 크게 했는데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드문 전시였다. 호앙 미로의 대작들은 비행기에 실을 수가 없을 만큼 크기 때문에 캔버스를 분해해서 다시 조립하는 예행연습을 파리에서 해본 뒤에 옮겨왔다는 둥, 이미 뉴스에서도 익히 선전을 했기 때문에 혹시나 과하게 기대하며 상상력을 부풀렸다가 펑 바람터진 풍선처럼 실망할까봐 걱정스러웠는데, 전혀 기우였다는 얘기다. 평일 오후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아서 그림을 좀 오래 감상하려다 보면 간혹 누군가와 부딪치거나 발을 밟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아쉽기는 했다. <꽃보다 남자>에서 윤지후가 시립미술관 휴관일에 금잔디만 홀로 데려가서 구경시켜주던데, 젠장 나도 그러구 싶단 말이닷~!! 언제부턴가 나 같은 문화허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아져 좀 유명하다 싶은 전시가 열리는 미술관은 언제나 도떼기 시장이다. 으휴...

과거 경험상 시립미술관의 도슨트는 덕수궁 미술관 도슨트들보다 워낙 성의 없이 설명을 하는 데다(늘 비싼 대규모 전시를 기획하기 때문에 관람객이 많아서 그러는 것일까?)  횟수도 몇번 없어 시간도 맞질 않아서 이번엔 거금 3천원을 들여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처음엔 매표소에 사람들이 없길래 도록을 사서 읽어보며 다닐 작정을 했는데 전시장에 들어가보니 그럴 여유는 없어 보였기 때문.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도 오디오 가이드 내용은 너무 피상적인 이야기만 담겨 있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이어폰이 귀를 아프게 하는 끼우기 형태가 아니라 다행이었고 미리 그림 공부를 많이 안하고 갔으니 없는 것보다는 나았음.

미로, 마티스, 피카소, 샤갈, 브라크, 보나르, 칸딘스키, 파울 클레... 이런 것이야 말로 <거장전>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가 싶은 멋진 작품들을 연이어 만날 수 있었으니 전시실을 옮길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했는데, 더욱 기뻤던 건 깜짝 선물처럼 장 뒤뷔페의 그림도 여러 작품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나 뉴욕에 가지 않는 한 다시는 뒤뷔페 그림을 보지 못할 거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가, 동행이었던 정민공주랑 나랑 거의 폴짝폴짝 뛰며 신나했다.

장 뒤뷔페 [행복한 시골풍경]

물론 이 사진의 색감은 원작보다 훨씬 흐려 속상하지만 동심의 세계를 담아낸 듯한 뒤비페의 그림들이 연상되는  시기의 작품. 미로의 대작 옆에 걸려 있던 검은 바탕의 암호같은 선들이 어지러이 그려져 있는 농-리유 연작도 인상적이었지만, 난 역시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좋다!

정말로 천국이 있는지 어쩐지, 아니 그런 건 없다고 거의 믿고 있지만, 정말로 천국이 있고 내가 거거 갈 수 있다면 나는 만날 멋진 화가들의 그림이나 휘휘 보러다니는 걸로도 충분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안 아프게 이왕이면 훨훨 날아 다니면서 ^^

앞에 서면 저도 모르게 흠칫 숨을 멈추게 되는 거장들의 대작이 많았고, 올리브 잎들을 모아 향기로 방을 꾸며놓은 페노네의 <그늘을 들이마시다> 같은 작품은 참으로 기발하고 놀랍고 싱그러워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1999-2000년에 만든 작품이라는데 지금까지도 그윽한 올리브 잎 향기가 처음엔 얼마나 더 강렬하고 생명력 넘쳤을지!

좋은 작품들이 하도 많아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동선과 상관없이 2, 3층을 여러번 오가며 특히 좋았던 작품을 보고 또 보고, 마음에 담아두려고 꽤나 노력을 하며 미술관을 나서기 전에 거의 언제나 습관적으로 하는 순위 매기기를 했다. 어느 그림이 제일 좋았는지, 누가 딱 하나만 가지라고 하면 어느 그림을 갖겠는지... ^^

사실 이번엔 좋아하는 화가들과 작품들이 많아서 선뜻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으나 추리고 보니 최종으로 남은 후보작이 둘 다 마티스였다.  

<폴리네시아-바다>와 연작이었던 이 <하늘>은 종이를 오려 붙인 단순한 콜라주 작품이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어찌나 눈이 시원해지던지...
아 참..
<꽃보다 남자>를 꾸준히 본 사람이면서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 카피가(사이즈가 훨씬 작음) 드라마 초반부에서 F4의 휴게실 벽에 걸려 있었음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
나는 전시회에 빨리 못가보는 대신 퐁피두전시회 공식 홈페이지에 하도 들락거려서 알고 있었으므로, 언뜻 뒷배경에 이 그림이 스칠 때마다 속으로 어서 그림보러 가봐야 할 텐데, 라고 부르짖곤 했다. ㅋ (구준표네 집엔 보나르의 <미모사가 피어 있는 아틀리에>와 마티스의 <목련이 있는 정물>, 페르낭 레제의 <여가> 등도  걸려있다! ㅎㅎ)

퍼온 사진으로는 역시나 원작의 생생한 감동과 느낌을 전하기에 역부족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굳이 사진을 퍼다 붙여넣는 것은 순전히 기억력 나쁜 나를 위한 배려다. 도록이 있기는 하지만, 매일 들락거리는 블로그만큼 접근성과 유용성이 뛰어난 건 아니니까...

암튼 <붉은색 실내>는 눈부신 빨간색이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만 같은 느낌...

샤갈의 <무지개>도 좋기는 했지만 나의 새공포증 때문에 그의 그림에 빠지지 않는 닭머리가 무서워서 집에 걸어두면 밤에 으스스할 것 같다. ;-p

누가 정말로 주겠다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미술관 카페에 앉아서 정말 꽤나 진지하게 어느 그림을 가질 것인가 오래 고민을 하다가 나중엔 속으로 킬킬 웃었다. 누가 준댔냐고!!
그래도... 어쨌거나... 나의 최종적인 선택은 마티스의 <붉은색 실내>.
만약에 집이 갤러리만큼 공간 많고 벽이 넓다면 마티스의 <폴리네시아-하늘>을 갖겠지만, 지금 당장 그림을 하나 집어들고 나가라고 한다면 당장 걸어둘 곳이 마땅칠 않으니까... 라는 것이 나의 변명이었음.
남들이 비웃거나 말거나, 미술관에서 좋은 그림을 보다가 만일 작품을 하나만 가질 수 있으면 어떤 걸 가져갈까 고민하는 과정은 가슴아픈 갈망이면서 동시에 대단한 행복이다.

아참..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불만은, 한장에 무려 천원씩이나 하는 공식 엽서들의 인쇄 품질이 바닥이라는 것!
차라리 하나은행에서 입장할 때 공짜로 주는 엽서의 인쇄상태가 더 나은 느낌이니 오죽할까.
원래도 미술작품의 색감을 제대로 살려내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이렇게 형편없는 색감의 엽서들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마티스의 붉은색을 완전 벽돌색으로 해놓질 않나, 보나르의 화사한 봄빛깔들을 칙칙한 갈색으로 해놓질 않나... 전시 관람 마치고 아트숍에서 엽서 몇장을 사는 것이 큰 낙이었던 나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한장도 살 수가 없었다. ㅠ.ㅠ 그나마 5천원짜리 소도록을 3천원에 할인판매하고 있어서 구입하고는 애써 위로를 했지만... 앞으론 부디 엽서 제작업체 선정에도 신경을 좀 써주면 좋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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