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나보다.
밥먹는 시간 빼놓고는 계속 작업에 몰입해도 모자랄 판국에 일이 너무 너무 하기 싫어졌다.
그럴때 또 푹 잠이라도 자면 좋으련만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잠은 얄밉게도 아무때나 찾아와주진 않으며 까탈을 떤다.
그래서 새벽 다섯 시에 정신나간 여자처럼 바느질을 시작했다. ^^
옷방을 뒤져 재료를 찾고 가위질과 바느질에 힘쓴 지 3시간 뒤..
몇번이나 바늘에 찔린 손가락은 너덜거려 아팠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환한 아침 창밖을 내다보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무리 일이 하기 싫기로서니, 잠안자고 바느질하고 앉아 있었던 내 모습이 두고두고 우스울 것 같다.
그래도 그 노력의 결실은 꽤나 뿌듯하기에 널리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집에 10년도 넘은 가필드 인형쿠션이 하나 있었다.
막내녀석이 장가도 가기 전에 누구에겐가 선물받은 것을 물려받아 그간 요긴하게도 써먹었다.
몽실몽실 푹신하여 낮잠 잘 때 베고 자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았고, 조카들 기저귀 갈 때 딱이었으며
최근까지는 공룡놀이 할 때 티라노사우루스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오래 된 터라 이젠 빨아도 때깔이 나지 않고 겉을 씌운 천이 너덜거리기에 이르러
버릴까 말까 고민을 하던 차였다.
온갖 추억이 깃든 가필드 인형은 바로 이것.
사진 속의 찬조출연 인물은 3살때의 정민공주다. ㅎㅎ (저게 평생 자란 머리칼이었음)
울 조카들 가운데 가필드랑 같이 사진 안 찍은 녀석은 하나도 없을 정도이니
제 아무리 오래 됐더라도 여러 추억이 깃든 물건을 선뜻 쓰레기봉지에 담아 버리기가 꺼려졌다.
그런데 오늘 새벽 문득 저걸 리폼해야겠단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옷방을 뒤져보니 쓸만한 수건과 천조각도 발견되었다.
집에 워낙 기념타월이 많은데다, 옛날에 쓰던 이불호청도 다용도로 남아 있다.
제법 큰 타월을 반으로 접어 대충 타원형으로 자르고, 귀 모양을 재단했다.
곰돌이 귀를 먼저 꿰매 뒤집어 안에 솜을 넣고는
얼굴을 꿰맬 때 귀를 붙일 자리를 잡아 안쪽에 넣고 함께 꿰매는 과정이 가장 어려운 난관이다.
(끙끙 거리느라 이 과정은 사진을 못찍었다)
아래는 솜 넣을 자리만 남겨두고 둥글게 꿰매서 샤사삭 뒤집은 모습.
가필드를 과감하게 찢어 안에 든 솜을 몽땅 분홍 곰돌이 얼굴에 집어넣고 트인 자리를 꿰매면
얼추 완성.
타원도 대충 그려 이불꿰매는 바늘로 듬성듬성 꿰맨데다 솜도 그냥 꿀렁꿀렁한 게 좋아서 균일하게 펼쳐 넣지 않아 모양이 섬세하진 않다.
암튼 여기까지 해놓고선 스스로 대견하여 뿌듯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곰돌이 모양을 전부 손으로 박음질했음은 물론이고 수건 가장자리의 올이 풀릴까봐 일일이 빙 둘러가며 시접에 감침질도 했기 때문에 오른손 검지손가락은 예전에 소파 천 씌웠을 때 만큼이나 너덜너덜해졌다.
ㅋㅋ
사실 저대로도 그냥 쓸만은 한데, 점심때 느즈막히 일어나 쳐다보니
눈알이 말똥말똥했던 가필드처럼 뭔가 표정이 있는 곰돌이가 좋을 듯했다.
하지만 온 집안을 뒤져도 곰돌이 눈에 쓸만한 큰 단추는 없었고, 가필드의 눈은 구멍을 뚫고 박아야 하는 것이라 재활용은 불가능했다.
뭔가 검정색 천으로 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찾다보니 제일 만만한 것이 양말이었다. ^^
제일 낡은 검정색 양말을 둥글게 오려 역시 가장자리를 감침질하고 오무려 안에 솜을 넣고
눈을 만들었다.
꿰매놓고 보니 눈이 너무 시커멓고 커서, 다른색 양말로 할 걸 그랬다 싶었지만
이만하면 훌륭하다고 자화자찬했다. 이젠 바느질에 관한 한 인내심에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남은 체크무늬 천으로 코는 좀 작게 붙이기로 했다.
얼마나 정교한 과정인지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만들기 중간에 촬영한 코.
가장자리에 홈질을 해서 실을 잡아당겨 예쁘게 오무리는 것이 관건인데
저걸 보니 문득 집에서 만든 만두가 먹고싶다. -_-;;
오무린 천에 솜을 넣어 꿰맨 뒤 입은 빨간실로 체인스티치(중학교 가사실습 시간에 한 것들이 아직도 기억 나다니!)로 마무리했다. 밖으로 실매듭을 나오게 할 수가 없어 나름 고민했는데 빨고 나면 실이 풀릴까봐 약간 걱정스럽다.
완성한 곰돌이의 모습~!
앞으로 또 10년은 거뜬하지 않을까 싶은데, 푹신푹신 쿠션으론 매우 훌륭해도 공룡놀이 소품으로 쓰기엔 너무 선하게 생겼다. ㅎㅎ
블로그에 허구한 날 제 솜씨 자랑하는 사진 올리는 사람들 슬쩍 비웃었는데 나도 별수 없다. 푸흣..
[#M_p.s. 화룡점정?|닫기|텅빈 눈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똘망해보이도록 눈에 하얀 단추를 추가로 달았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