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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

놀잇감 2007. 9. 20. 02:12

DIY... Do it yourself.
간단히 말해, 니가 직접 해라.
저 말 앞엔 괄호 안에 "돈 아깝거들랑", "딱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거들랑", 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착각의 늪에 빠져 우쭐해 하고 싶거들랑" 따위의 말이 생략되어 있을 게다.
어쨌든 DIY라는 슬로건은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도 꽤 유행인 듯하다.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자랑용' 블로그에는
무슨무슨 '리폼'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과 사진들이 수시로 보이고
내가 자주 가는 문방구 사이트에도 아예 DIY 코너가 생겨서 자투리 천과 재료들을 몽땅 갖춰 파는 DIY 인형이나 DIY 손지갑 같은 것도 있더라.

솜씨도 좋고 열정도 있는 나의 지인들 가운데선 정말로 목공을 배워
뚝딱뚝딱 전문가 뺨치는 커피탁자를 만들었던 이도 있고
퀼트 쪽으론 아예 전문가가 다된 이도 있으며
칼라시트 사다가 부분 벽지를 시도하더니 이젠 아예 제 방 도배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이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이들의 열정에 덩달아 부화뇌동하여 "별로 안 어렵다"는 부추김에 덜컥 넘어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몇 가지는 시도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결과의 만족 여부를 떠나서, 노동집약적인 그 과정은 늘 나에게 희열보다 짜증과 스트레스를 안겨주었기에 마지막엔 꼭 "다시는 하나봐라"며 손을 털었던 것 같다.

양쪽집 싱크대를 갈아치우자는 나의 주장이 비용 때문에 번번이 무산되었을 때
나는 두번이나 손수 칼라시트를 사다가(처음엔 수입 칼라시트를 사는 바람에  비용도 꽤 들었었다 ㅠ.ㅠ) 싱크대를 손봤고 (명절에 다니러 온 다른 가족들은 모두들 부엌 환해졌다고 칭찬했지만 정작 나와 함께 사는 두 노친네는 바쁘다면서 사서 생고생한다고 못마땅해 하셨기 때문에 잔소리 듣기 싫어서 두분 잠든 사이에 우렁각시처럼 해치우곤 했다. 쳇)

내가 지내는 쪽의 방문 두개와 화장실 문에 페인트를 사다가 칠하기도 했으며,
(밑바탕에도 칠을 해야한다는데 DIY가 꽤 유행하기 전이어서 무식하게 그냥 페인트만 사다가 칠해서 지금도 얼룩덜룩 가관이다 ^^;;)

직장생활을 잠시 쉬며 다른 회사로 줄을 갈아타는(?) 시기에 시간이 많이 남으면
"무려" 뜨개질을 해서 옷을 만들어 입거나, 손수 스커트 길이를 줄이기도 했다. ^^V

결론은 늘 "다시는 하나봐라"였음에도 가끔 또 그런 짓을 벌이는 걸 보면
그나마 내가 늘 바쁜 인간이라 다행이지 한가하면 집에 큰일 내겠다 싶다. ㅋㅋ

이번에도 원고마감과 추석 대비 집안정리에 바쁜 와중에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두 가지를 손수 해치웠다.
하나는 부엌 식탁 앞 흰벽에 그간 요리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은 더러운 벽지가 영 마음에 안들어, 단 두 폭만 접착형 벽지를 사다가 "포인트벽지"라고 주장하며 붙인 것과
몇년째 처분할까 천갈이를 할까 고민하던 내 방 앞 2인용 소파를 나름대로 '리폼'한 것.
ㅋㅋ
소파는 옛날부터 하도 더러워 몇년 전엔가 커튼 맞추면서 덮어씌워라도 놓을 요량으로 같은 천을 좀 끊어 놓은 게 있어서(몇년 전엔 소파에 덮어씌우는 눈가림용 천도 카탈로그 홈쇼핑에서 팔았던 적이 있다!) 그걸 대충 잘라 등받이와 바닥을 씌우고 옆은 대충 접어 꿰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덮어놓은 것인데, 그나마도 후다닥 해치우느라 손가락이 좀 과장하면 너덜너덜해졌다. 큼지막한 바늘에 이불 꿰매는 실을 꿰어 뒤쪽에다 듬성듬성 천을 고정시키느라 바늘에 수도 없이 찔렸기 때문이다. ㅠ.ㅠ

암튼 식탁 앞은 딱 내가 밥먹을 때 눈에 들어오는 부분 만이라도 깔끔해져 기분이 좋고,
소파도 버리거나 전문적인 천갈이를 하기 전까지 임시로 덮어둔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조카들이 쏟아놓은 얼룩덜룩한 주스 자국이 안보여 좀 낫다.

째뜬 생각해보면
DIY는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인 듯하다.
예전엔 겨울이면 엄마가 손수 떠주신 스웨터와 조끼, 털모자, 목도리, 장갑을 걸치고
아빠가 만들어주신 썰매를 탔더랬다.
해마다 가을이면 엄마는 방문에 창호지를 새로 바르고 여름 내내 책갈피에 말려둔 꽃잎과
새로 딴 단풍잎을 미닫이문 손잡이 주변에 장식하셨다.
내가 갖게 된 최초의 책꽂이도 아빠가 널빤지를 주워다가 톱으로 잘라 못을 치고 사포로 다듬어 니스까지 칠해주신 '사제품'이었다.
내가 중고등학교때 가사 실습 시간에 뜨개질이며 바느질, 한복 만들기에 월등한 솜씨를 보이며 으쓱해 했던 이유도 어려서부터 엄마의 솜씨를 눈여겨봤던 덕분일 게다.

요즘엔 뭐든 비싸야 잘 팔리고
단지 싫증이 났다는 이유로 멀쩡한 물건을 내다 버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누군가 내다버린 물건까지 냉큼 집어다가 손보고 칠하고 덮어서 새것처럼 만들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으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하나둘 늘어난다는 게
참 다행이다.

한올한올, 한뜸한뜸, 한뼘한뼘 손수 소중한 정성을 기울인 물건을 함부로 내다버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나 역시 16년전에 첫회사 관두고 1달간 쉬던 중에 손수 뜬 니트를 절대로 못버리고
1년에 딱 한번씩이라도 남들이 욕하건 말건 계절 맞춰 입어주려고 노력한다.
다행히도 유행은 돌고 돌아서 ^^;; 요샌 복고풍이 도래하여 내가 뜬 니트와 비슷한 옷들이 이른바 '튜닉'이라는 이름으로 더러 파는 곳까지 눈에 띈다.  
지난번 아줌마 파마머리 커버 용으로 입었다던 은색 반짝이 옷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아마도 작년엔 한번도 못 입었던 듯 하니 올해는 더 쌀쌀해지기 전에 마구 입어줘야겠다.
어차피 다른 이들의 시선을 머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려면 현란한 반짝이가 최고 아니겠나. ㅋㅋㅋ


구멍 숭숭 뚤린 손가락으로 자판을 치려니 손끝이 아려서 자랑질도 어렵군.
그래도 제자랑 실컷 하고 났더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역시 사람은 어느 정도 저 잘난 맛에 살아야 삶의 아이러니를 꽤 잊을 수 있나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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