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5.08 미술관 옆 동물원 18
아무리 생각해도 저 영화 제목은 참 잘도 지었다.
과천 현대미술관과 동물원을 동시에 떠올리면 자연스레 우리도 영화 찍는 기분이 드니까.
가까운 미술관은 더러 기웃거려도 과천까지 가는 건 제법 큰 걸음이라 생각했는지, 영화 찍는 기분으로 미술관과 동물원을 한쾌에 둘러볼 작심을 한 건 돌이켜보니 무려 십수년만이었다. 소풍가는 아이처럼 기린도 보고 미술관 구경도 하자고 조르던 지인과의 약속을 한 달이나 질질 끌다 전격적으로 어제로 날을 잡으며, 더 늦어지면 너무 덥고 냄새나서 동물원 구경하기 어려울 거라는 위기감을 느꼈는데, 여름날씨를 방불케 하는 어제 기온은 이미 너무 더웠다. 좀 더 일찍 올 것을 그랬다고 후회하면서도 5월의 신록이 하도 아름다워 그늘로 짚어다니며 기뻐할 수 있었으니 후회는 없다.
그 옛날에도 상설전시 중이었던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그대로였는데, 그 옆 벽엔 새로이 강익중의 <삼라만상>이 빼곡하게 뒤덮여 있었다. 25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손바닥 반만한 나무판자 그림과 조형물들은 아이들 장난 같은 모양이 하도 많아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겠다 싶었다. 20년 넘게 6만 5천개나 된다는 나무조각을 하나하나 작업했을 화가의 끈기가 놀랍다. 나 같으면 짜증내며 중간에 내팽개쳐버렸을 텐데... ^^

사실 우린 이 중앙 전시실보다는 층층마다 마련된 우리나라 근대미술 작품들을 다시 보려고 했던 것인데, 교체전시를 하는지 기대했던 그림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지난번 덕수궁에서 본 근대미술 걸작전 그림들을 몇 점 찾아내곤 뿌듯해 했으나, 나로선 영 이해도 못하겠고 훌륭한 줄도 모르겠는 현대 추상미술품들이 대부분이라 새삼 내가 왜 과천 미술관엘 십수년만에 왔는지 실감되었다. 미학적인 심미안 따위를 갖추지 못한 내 눈엔 추상적인 현대 미술품들이 죄다 젠체하는 화가들의 자기자랑일뿐 당최 '아름다운' 예술품이란 느낌이 안드니 어쩌겠나. 심지어 백남준 선생의 그 유명한 비디오 아트 작품도 난 그리 뛰어난 줄 정말 모르겠다. ㅡ.ㅡ;

이렇게 찍으니 예뻐보이는 것도 같고...

내눈엔 명멸하는 브라운관의 화면이 이루는 아름다움보다 작품에 뽀얗게 앉은 먼지가 더 눈에 들어오고 브라운관 아래 찍힌 제조업체 로고가 더 눈에 들어오는 걸 어쩌라고!

백남준과 강익중의 두 작품을 같이 전시해놓은 기획을 <멀티플 다이얼로그>라고 이름 붙였던데, 아쉽게도 나는 그 안에서 다양한 언어교류의 느낌을 받는 대신 새로 지은 건물이나 갓 도배한 집에서 나는 매캐한 본드 냄새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ㅎ
기획전시로 인도현대미술전을 하고 있던데, 역시나 현대미술품이라니 굳이 2천원씩이나 내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2, 3층 전시실 난간에서 내려다 보이는 코끼리 조각상과 금빛 오토바이 구경만으로도 우린 흡족했다. 

주린 배를 약소한 과일로 달래고 얼른 동물원으로 이동한 뒤에 허겁지겁 늦은 점심을 먹고나서 돌아본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그새 참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못보던 동물도 많고(특히 아프리카 동물들!) 이름도 외기 어려운 신기한 녀석들을 건성으로 보며 감탄을 했는데 뭐니뭐니해도 나는 동물원에서 기린구경이 제일 신나고 즐겁다. 길쭉길쭉 늘씬하고 우아하게 돌아다니는 걸음걸이도 그렇고, 마스카라를 칠한 듯 짙고 기다란 속눈썹도 그렇고, 아래턱을 좌우로 요란하게 움직이며 풀잎을 씹어대는 모양새도 그렇고... 기린사 앞에 전망대도 높이 올려 바로 코앞에서 먹이를 먹는 녀석들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게 해놓아 더더욱 탄성을 내지르며 한참을 지켜보았는데, 생김새부터 정말 볼수록 신기하지 않은가! 게다가 안내판에 적힌 글을 보니 우리 앞에서도 끊임없이 풀잎을 씹어대던 기린은 원래 하루 12시간 동안 내리 먹이를 먹는 반면, 잠은 틈틈이 짬짬이 눈을 감으면서 고작 하루 20분밖에 자지 않는단다! 켁...

기린 무늬의 아름다움을 새삼 실감

기린 뿔 두갠줄 알았는데 세개더라

하마의 저 똥똥하고 귀여운 자태!


다리 아프고 덥다는 핑계로 사자랑 하마 코끼리, 바다사자 빼고 다른 동물들은 셔틀버스 타고 차안에서만 대충 훑어본 터라 찍은 사진도 별로 없다. 사자 같은 녀석들은 어차피 가까이 찍을 수도 없어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평일인데도 미술관, 동물원 모두 사람들이 꽤 많아 조금 놀랐다. 주말엔 얼마나 더 바글거릴까. 벌써부터 퀴퀴한 동물냄새가 진동을 하는 동물원은 앞으로 또 십년쯤 있어야 가볼 마음이 생길 듯하지만, 숲과 나무가 싱그러웠던 미술관옆 산책로는 날이 흐린 날, 아니면 비가 오는 날 또 가보고 싶은 욕심을 품고 돌아왔다. 평일 퇴근시간과 맞물리는 바람에 돌아오는 길은 죽도록 막히는 괴로운 경험이었지만, 이 하루의 행복한 나들이로 부디 일주일은 나의 심술이 잠잠해지기를...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