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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원당 따라 걷기

놀잇감 2018. 7. 24. 18:13

역시나 시간이 막 남아돌던 시기에 양성평등 시각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강의를 좀 들으러 다녔다. ^^; 거기서 따라간 답사지가 또 나의 나와바리나 마찬가지인 홍지문과 세검정, 백사실 계곡, 부암동이었다. 

금원당은 1817년에 원주에서 태어나 14살의 나이로 부모의 허락을 받아 남장을 한 채, 제천 의림지, 단양팔경, 금강산, 관동팔경, 설악산, 한양을 유람했던 조선시대의 놀라운 여성 여행가란다. 세상에나... 그 옛날에! 꽤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음은 틀림없으나, 이름은 알 수 없고 '금원'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었다고 한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규방 깊숙이 들어앉아 여자의 길을 지키는 것이 옳은 일인지,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세상에 이름을 날릴 것일랑 단념을 하고 분수대로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일종의 여행기인 <호동서락기>에 담긴 호방한 글이다. (이 책의 한문 번역은 <강원여성시문집>에서 옮긴 것이라고 하니 나 역시 출처를 밝혀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물론 반나절 만에 금원당의 여정을 다 따라갈 순 없는 일이고 한양 나들이를 했을 때 걸었던 창의문밖 여행 행적을 좇았던 것인데;;; 그간 다 가본 곳이었어도 새삼 느낌이 다르고 놀라웠다. 겨우 열넷, 열다섯 살에 전국이나 다름없는 조선의 방방곡곡을 여행하고,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느껴 열여섯 살에 스스로 관기가 된 조선 여인. 20대 중반엔 양반의 소실이 되어 다시 관서지방을 여행했고, 한양으로 돌아온 30세 무렵엔 유명한 문인 선비들과 삼호정 시사모임을 하며 교류했다고 한다. 34세때 드디어 여행기인 <호동서락기>를 쓰고 37세에 사망. 

제주 거상 김만덕이 임금에게 청해 금강산 유람을 했던 것도 대단하다 생각했었는데, 조선 시대 '한미한 집안'의 십대 소녀가 금강산, 설악산 유람이라니 정말 신기하고도 놀라운 발견이었다. 우린 왜 입때껏 이런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걸까? +_+

​탕춘대성의 출입문인 바로 이 홍지문 앞에서 읊었을 법한 금원당의 여행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산이 몹시 험준한데 성가퀴가 견고하다. 이것이 바로 북한산의 성지이다. 계획에 빈틈이 없고 일을 도모함에 그 뜻이 크고 치밀하여 선왕께서 뒤의 자손들을 위하는 까닭을 여기에서 우러러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세검정에서 백사실 계곡으로 오르던 길에 자리잡았던 사찰. 19세기 초에도 있었다는 것 같다.너럭 바위가 어마어마..

​이날도 꽤 더웠는데 푸르른 녹음과 깨끗한 백사실 계곡의 물소리가 참으로 좋았다.​

얼마전까지도 부암동 답사때 여기가 백사 이항복의 집터라는 설명을 들었었는데;; (내가 국민학교때 소풍왔던 곳이기도 하다! ㅋㅋ) 뭔가 더 기록이 발견되어 추사 김정희 별장터로 밝혀졌단다.

풀이 무성한 연못엔 물에 발처럼 드리워졌을 정자의 주춧돌 기둥만 남아있다

부암동 어느 지붕과 들장미가 예뻐서무슨 드라마에도 나왔던 집이라는데 이런 나무 질감 넘 좋다

저 멀리 백악의 한양도성이 보이고...


부암동 언덕 어디쯤.. 아마도 카페였던 것 같은 한옥집들의 아리따운 자태.. (저 노란꽃 이름이 '루드베키아'라고)

마지막으로 창의문에서 답사를 마쳤다. 숭례문이 불타 복원되면서 자하문으로도 불리는 창의문(북소문)은 ​한양도성의 대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화재다. 창의문 문루 천장에 있던 이 그림이 뭐였더라. +_+ 봉황이 아니라고 들은 것 같은데 ㅋㅋ 까먹었다. ​

지난번 여러 화가들의 총석정 그림을 보며, 겸재의 금강산전도를 보며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어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나도 꼭 한번 금강산 구경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금원당 행적을 따라 걸으며 그 마음이 새삼 굳어졌다. 나름 '등산인'으로서도 금강산은 한번 가봐야하지 않겠나!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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