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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떼자전거

놀잇감 2009. 9. 14. 01:44

가을에 태어난 조카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주말에 막내동생네서 미리 파티를 했다. 하지만 파티보다 중요한 건 내 자전거를 싣고 가서 준우왕자와 함께 자전거로 일산 호수공원을 같이 돌기로 한 약속이었다. 조카는 새로 장만한 자전거도 자랑할 겸, 그리고 요즘 "내가 워낙 빨라서 아마 고모는 못 따라올걸!"이라며 큰소리를 쳤던 자전거 타는 솜씨도 보여줄 겸 기대가 큰 눈치였다. 토요일에 비가 좀 온다고 했다면서 어른스럽게 며칠 전부터 날씨 걱정을 할 정도로...
나 역시 주초부터 주간날씨를 열심히 살피며 토요일엔 비가 안오길 바랐지만, 금요일밤부터 억수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천둥번개까지 치더군. 그나마 오후부턴 날씨가 갠다기에 희망을 품었지만, 집 나서려던 2시쯤엔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들며 다시 소나기가 내려 마음을 조렸다. 
어쨌거나 소나기 후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사라지고 햇살이 쨍쨍 내리쬐던 토요일. 정민공주네까지 자전거를 두대나 싣고 와 꿈에 그리던 우리 가족의 호수공원 떼자전거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다혼의 우베공이 두대, 역시 다혼의 실버팁 한대, BMW 미니 자전거 한대, 삼천리 애팔래치아 한대, 성인용 자전거는 모두 미니벨로였고, 준우의 삼천리 넥스트 프로액션 SF, 지환이의 레스포 자전거, 지우의 삼천리 하이킥까지 모두 모으면 자전거가 여덟대였지만 어젠 올케가 우리 왕비마마 보필을 담당하는 바람에 준우네 자전거가 한대 빠졌고, 정민네도 자전거를 두대밖에 싣지 못해 총 여섯대가 호수공원으로 출격했다. (근데 멍청하게도 자전거 몽땅 모아놓고 사진찍는다는 걸 까먹었다. 뒤늦게 미니가 합류할 때쯤엔 조카들 건사하느라 내가 정신이 좀 빠져 있었던 모양...ㅠ.ㅠ 다음에 진짜로 다 모여 떼차질할 땐 꼭 기념촬영 해놔야지...)
9월 결심을 세운 날 딱 하루만 느루를 탔던 데다 밤새 아침까지 계속 시간대별 날씨상황을 알아보다 잠드는 바람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나는 호수공원 쯤이야..라며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거의 10년 전에 거의 주말마다 호수공원에 놀러가서 빌린 자전거로 두어바퀴 쯤 수월하게 돌고 나서 잔디밭에 앉아 음주를 즐겼던 전적을 믿었던 것.
그런데 변수는 놀랍게도 조카들의 자전거 실력이었다. 무조건 일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들은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도 나에게 절대 앞장서면 안된다고, 반드시 자기네 뒤에서 쫓아와야한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그러지 말라고 해도 걔들보다 빨리 타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아니 쬐끄만 녀석들이 속력을 어찌나 내는지!
그나마 중간중간 사람들이 많아 속력을 줄여야 했는데도 준우와 정민 두 녀석을 따라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고 나니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인데도 내가 집에서 월드컵 공원 다녀오느라 1시간 자전거 탄 만큼의 체력소모가 느껴졌다.
중간에 음료수 마시고 수다떨며 한참을 쉬기는 했지만, 막내가 앞장서 마지막으로 한바퀴를 더 돌기 시작하자 중간 무렵부터 난 도무지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_+ 헥헥대며 뒤쳐져 도착하는 나를 본 동생들은 얼굴이 허옇게 됐다면서 딴사람한테 자전거 넘기고 차라리 운전을 하라고 권할 정도. 하지만 그럴 정도로 지친 건 아니었다규!!
어쨌거나 새삼 놀라웠다. 쉬지않고 재잘대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체력이 대단한 것이야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고모 앞에서 계속 온갖 묘기(한팔로만 잡고 운전하기, 엉덩이 떼고 페달 밟기, 두 다리 쫙 벌리고 자전거 타기, 요리조리 계속 방향바꾸며 타기 따위)를 부리느라 지쳤는지 준우왕자 역시 두 바퀴째엔 나랑 같이 뒤로 쳐지긴 했지만, 집에 와서도 또 숨바꼭질하며 뛰노는 녀석들을 보니 내 체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정민공주는 제 삼촌의 뒤를 끝까지 바짝 쫓아갈 정도로 지칠 줄을 몰랐다는데, 한강변에서 제 아빠와 자전거를 오래 타도 어디쯤 오나 돌아보면 언제나 바짝 따라오고 있어 놀랄 정도라고 했다. 하기야 요즘 손과 발이 나보다 더 커버린 열두살 공주가 와락 나를 붙잡고 힘을 쓰면 나는 꼼짝없이 항복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완력이 세다.

주말에 조카들과 자전거를 타보고 깨달은 게 있다. 꼬박 1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그간 나름대로 중간중간 숨이 찰 때도 있고 일부러 완만한 경사를 올라 허벅지가 팍팍해지는 걸 느끼긴 했지만, 그동안 내가 얼마나 슬슬 쉬엄쉬엄 자전거를 탔는지. 기어도 늘 제일 높은 데 놓고 페달질을 게을리했는데 결코 그게 좋은 운동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개천변 자전거도로에 하도 사람이 많아서 빠르게 달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이 큰 핑계는 되지만, 월드컵공원에선 더 빨리 달리는 연습을 했어야 옳았다. 앞으로도 자전거를 얼마나 자주 탈지 장담할 순 없지만, 어쨌든 어린 조카들한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달리는 연습을 해두어야겠다. 그래야 이렇게 몇 시간 자전거 탔다고 담날 하루 종일 지쳐 뒹굴거리지 않을 수 있겠지. ㅠ.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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