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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04 바다 8
  2. 2007.06.02 공짜는 없다 5
  3. 2007.06.02 어제 지하철 목격담 8
  4. 2007.05.28 벌써 여름 10
  5. 2007.05.25 5월의 밤 2
  6. 2007.05.22 아등바등 6
  7. 2007.05.18 길눈 8
  8. 2007.05.15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7
  9. 2007.05.09 고맙습니다 5
  10. 2007.05.05 부모 노릇 7

바다

삶꾸러미 2007. 6. 4. 02:44
바다를 왜 그리워하는지 도무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가끔...
바다가 미치도록 보고싶어질 때가 있다.
막상 가보면 또 그렇게 물밀듯 감동이 밀려오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머릿속에서 아련히 그리움을 피워올리는 바다에 대한 동경은 잊을만 하면 한번씩 옆구리를 쿡쿡 쑤신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 살아서 원래 다들 그런 건지 어쩐지 잘은 모르겠지만
지인들 가운데선 정말로 불쑥 바다 보러 가자고 들쑤시는 이들이 꽤 되는데
그 주기가 다행히도 내 바다 지병(?)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5월 마지막날엔 바다를 보러 갔었다.
가끔은 철썩거리는 짙푸른 동해 바다를 '콕' 찝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찝질하고 비릿한 바닷내음과 모래사장과 드넓은 수평선과 시시각각 변하는 물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 때문에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가까운 서해 바다를 찾을 때도 많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다색도, 모래사장도, 파도의 크기도 거칠고 크고 깊은 동해바다는 늘 도도하게 거기 존재하고 있을 뿐 나를 딱히 반겨주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바라보러만 간 게 아니라 바다에 뛰어들러 간 한 여름에도 동해 바다의 소름끼치는 차가움은 나에게 더 가까이 오지 말라고 등을 떠미는 듯한 쌀쌀맞은 친구 같다.
새로 뚤린 영동 고속도로 덕분에 시간이 빨라지긴 했어도, 역시나 거리면으로도 동해는 내게 쉬운 범접을 거부하고 있질 않겠나.

어린시절부터 서해바다로 여름 피서를 다녔기 때문에 친근하고 아련한 추억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암튼 나는 서해 바다가 훨씬 더 정겹고 편해서 어느 계절에 찾아가든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친척 할머니 같다. ^^;;
썰물때 운동장처럼 넓게 드러난 서해 바다의 모래사장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신비의 체험장소이고, 또 아무리 바다로 걸어나가도 허벅지 깊이를 넘기기가 어려운 서해 바다에선 물도 워낙 따뜻해서 서툴게나마 수영도 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를 넘어 나에겐 일석 오조쯤 되는 듯하다.
게다가 서울에서도 지리적으로 서쪽인 우리집에선 몹시 가깝기도 하니까!

하여간 바다 지병이 도진 지인들과 아침부터 서둘러선
커피와 쿠키, 과일 정도만 조촐하게 싸가지고 영종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무의도와 을왕리엘 다녀왔다.
아주 잠깐이지만 배도 타야하는 무의도엔 '하나개' 해수욕장이라는 예쁜 해변이 있다.
대체 왜 이름이 '하나개'일까 늘 궁금했는데 이번엔 동네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그곳에 꽤 '위험한' 개울이 하나 바다로 흘러들었단다. 그래서 '하나개' 해수욕장이 됐다는데
우린 좀 더 그럴듯한 전설을 상상했던 터라 조금 실망이었다. ^^
세련되게 가꾸어진 곳도 아니고 (천국의 계단 촬영지로 꽤 알려지긴 했다더라) 편의시설이 많지도 않지만, 돗자리 하나 그늘막 하나 싣고 떠나서 바닷가에 누워 한가로이 수다떨다 보면
정말 신선놀음이 따로 없단 생각이 든다. (영종도에서 무의도로 건너갈 때 자동차는 뱃삯이 무려 2만원이나 하고 운전수 뺀 나머지 인원도 두당 2천원씩 더 내야 하는데도, 일년 내내 해변 입장료를 두당 2천원씩이나 받아서 좀 얄밉긴 하다;;)

때 이른 피서라기 보다는 그저 바다를 보러 간 것이었는데
멀리까지 빠져나간 썰물에 드넓은 모래사장을 밟으며 바다를 만나러 나가보니 물이 너무 따뜻해서 첨벙 빠져들고 싶을 정도였다.
정말로 '끼룩끼룩' 울어대는 갈매기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은빛 비늘 일렁이는 바다를 실컷 보고 돌아오며 '지병'을 다독거린 우리 넷은 행복하게 또 몇달 살아갈 에너지를 얻은 것 같아 참으로 흐뭇했다.
꼭 바다를 보고와야만  충전되는 에너지 저장소가 내 몸안 어딘가에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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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는 없다

삶꾸러미 2007. 6. 2. 18:08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던가
정말로 완전 공짜는 없는 게 맞나보다.

얼마전 싱글도 골드 싱글이 있냐고 푸념했던 사건의 발단은
친구의 주선으로 여차저차하여, 어느 잡지사에서 마케팅 일환으로 골드 싱글을 선정해
1년간 무료로 잡지를 보내줄 계획인데 나도 그냥 골드 싱글인 '척'하고
(그 친구 역시 내가 연봉 5천 이상의 전문직 여성에다 최소 1억 넘는 집을 소유한 부류가 아니란 것쯤은 너무도 잘 안다^^) 잡지를 받게 된 것이었다.
어쩐지 찝찝하지만 나름대로는 '전문번역가'의 위상을 좀 높여보겠다는(고소득 전문번역가도 분명 있긴 하니깐!! ^^) 알량한 취지로 그러마고 대답하면서 순진하게 '완전 공짜'인줄 생각했더니만;;;
역시 아니었다. -_-;;

어제쯤 두번째로 월간 잡지가 택배로 도착했는데
이번엔 안에 설문지가 들어있다. 켁...
제목하여 "고소득 싱글들을 위한 라이프 스타일 조사"
고소득이라니...
당연히 설문 문항에는 연봉을 기록하는 난도 있고, 월 지출 가운데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이 저축인지 유흥비인지, 쇼핑인지.. 기록하는 난도 있고
문제지가 서너장은 되는 듯하다.
얼핏 보다 골치아파서 그냥 던져두었는데
기분이 나쁘다.
공짜 효도 관광이라고 노친네들 죄다 관광버스 태워 데려가선 수십만원씩 하는 건강식품 팔면서 자식들이 그 정도도 못 사줄 능력이냐고 깐죽거려 노친네들 등쳐먹는다는 사기단을 만난 기분;;;에 비유하면 좀 심한가?
암튼... 짜증스럽다.

게다가 설문지 말고도 골드싱글 파티 초청장도 있는데
청담동에 있는 무슨 '클럽'에서 열린다는 파티에 동반1인 초대하니 오려면 미리 신청하라고도 적혀 있었다.
지인들과 밥먹고 술마시고 수다떨고 차마시는 거야 언제나 즐거운 파티지만
낯선 사람들과 우아하게 어울리는 파티 문화를 촌스러운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갈 생각도 하고 있진 않지만
겨우 두달째부터 이렇게 슬슬 잡지사에서 바라는 게 많다는 걸 깨닫고 보니
앞으로 남은 10달은 잡지가 날아올 때마다 빚독촉 받는 기분으로 봉투를 열게 될 것 같다.
게다가 난 광고 투성이에 기사랍시고 죄다 소비를 조장하거나 스캔들을 파헤치는
깨알같은 글씨의 잡지를 보면 십중팔구 머리가 아파져, 미용실엘 가도 그림만 휙휙 보다 말거나 아예 따로 읽을 거리를 챙겨가는 인간이란 말이지!

정말로 공짜라고 믿었던 나의 어리석음이 새삼 민망하다.
아마 나를 추천했던 그 친구도 정말로 공짜라고 생각했을 터인데;;;
쯧쯧쯧...

이론으론 뭐든 빠삭하게 잘 아는 것처럼 잘난 체 하면서
역시 난 실상에선 늘 뒤통수를 맞는 어리버리다.
정말이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다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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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놀러다니느라 컴퓨터 앞에 앉은 시간이 이틀 합해봤자 1시간도 안됐다.
-_-;;
역시 나는 집이든 작업실이든 일한답시고 컴퓨터를 끼고 앉아 있어야 블로그질도 열심히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저것 수다거리도 많지만 일단 아메바스러운 기억력을 믿지 못하겠으니
까먹을 것 같은 이야기부터 적어놔야지.

간만에 지하철을 타고 외출을 했는데 동네 근처 전철역에서부터 흥미로운(?) 일이
꽤 있었다. 벌써 어제가 되어버렸지만 심정상으로는 오늘 만난 지인들에게 벌써 털어놓은 이야기긴 해도 입이 근질거려 더 떠벌려야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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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름

삶꾸러미 2007. 5. 28. 17:15
기온으로는 확실히 벌써 여름이다.
날씨가 미치긴 확실히 미쳤나보다.
5월말에 30도를 넘는 기온을 보이다니.

암튼 더운 날씨 핑계로
어제부터 계속 아이스커피, 얼음물, 얼음 보리차... 따위를 입에 달고 산다.
어리고 젊었을 땐 ㅜ.ㅜ;; 더위를 조금도 안탔더랬다.
삼복중에 낳은 아이를 두툼한 솜이불에 싸서 키웠다는 전설 속의 그 모습 그대로
나는 한여름에도 걸핏하면 춥다고 짜증내며 혼자 긴팔 옷 꺼내입고 다니기 일쑤였고
별로 땀도 흘리지 않았다. 다 과거 얘기다.

정확한 기점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서른을 넘어서면서부터라고 생각되지만 암튼 체질이 바뀌었는지
갑자기 여름을 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추위에 강해졌느냐 하면 절대로 아니다.
겨울은 겨울대로 달달달 추위에 떨면서 날씨 추우면 동면하고 싶다고 징징대는 거 여전한데
설상가상 여름 나기도 수월하지 않게 된 거다.
목덜미로 주르륵 흐르는 땀방울 같은 거, 예전엔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요샌 한여름 더운날 청소라도 한 판 할라치면 땀줄기가 흐르는 게 느껴진다. 우웩~~ 간지러워서 처음엔 벌레인줄 알고 몹시 놀랐다. *_*

해서...
여름에도 반드시 뜨거운 커피를 즐기던 나는 사라지고
좀 덥다 싶어지면 냉동실 가득 얼음을 얼려놓고 수시로 우드드득 얼음을 깨먹고
아이스커피를 타먹고 얼음과 과일을 갈아 슬러시를 해먹으며 난리법석을 피운다.

좀 전에 얼음 잔뜩 넣은 아이스커피 한 잔 마시고도
육수 살얼음이 둥둥 떠 있는 물냉면
살짝 얼린 콩국에 쫄깃쫄깃 면발이 일품인 콩국수
이빨 시리게 차가운 육수에 갈은 무와 고추냉이 다진 파 넣고 담가 먹는 메밀국수
좀 달긴 하지만 여름에 역시 제격인 별다방 프라프치노
연유랑 생과일 듬뿍 넣은 과일빙수(오늘 윤종신의 '팥빙수' 노래 여러번 들었는데, 난 단팥이 싫어서 팥빙수도 별로다.)
새콤시원하게 말아 먹는 열무국수
(뭐가 또 있더라....)

같은 음식들이 계속 떠오르고 있다.
한여름 날씨 속에서도 식탐녀의 식욕은 도통 떨어질 줄 모르나보다 ㅎㅎㅎ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으니 냉동실 한 가득 얼음만 잔뜩 얼려놓았다.
어휴...
노트북과 컴퓨터의 열기마저도 끔찍하게 느껴지는 여름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될 것인가.
올해도 에어컨 때문에 전기요금 깨나 나오겠구나야. 된장...

5월은 좀 5월답게 마무리되면 좋으련만
이건 5월 날씨도 아니고 6월 날씨도 아니여~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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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밤

삶꾸러미 2007. 5. 25. 18:41
계절 중엔 봄을 제일 좋아하고
달 중에선 5월을 제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따뜻한 날씨와 싱그러운 신록.
나무에 연두 잎들이 돋아나 어느새 빽빽하게 가지를 뒤덮으며 커나가는 모습은 웬만한 꽃들보다도 아름답다.
그리고 또 하나 5월이 좋은 건 밤풍경도 예뻐지기 때문.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온 거리가 예쁜 알전구와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되듯
5월이 되면 온 거리에 연등이 매달린다.
사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연등이 달려 밤거리가 예뻐지긴 했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망스럽기 일쑤였다. 새카맣게 때가 끼어 찌들은 연등도 처량맞거니와 중간중간 등이 찢어져 나갔거나 이빠지듯 꺼져버린 등도 자주 눈에 띄어 을씨년스런 느낌도 전했으니까.
조계사나 봉은사처럼 엄청나게 큰 사찰 근처면 또 모를까 동네의 작은 절에서 내다걸었겠지 싶은 길거리 연등은 약간 눈에서 시력을 빼고 어슴프레하게만 바라봐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유심히 보아도 길거리에 장식된 등이 꽤 예쁘다.
몇년씩 쓰곤 하던 길거리 장식 등이 너무 낡아 드디어 새로 장만할 때가 되었던 걸까? ^^
'연등'이라기 보다는 일식술집이나 요새 유행인 중국식 선술집 앞에 매달린 홍등과 너무도 비슷하게 보이던 동그란 주름등 외에도 풍경을 매단 종모양도 있고, 가끔 길죽한 진짜 주름등과 함께 날렵한 팔각등도 보인다.

하필 부처님오신날이었던 어제는 온종일 비가 내려 절마다 행사 치르기가 쉽진 않았겠지만
정민이 등살에 못이겨 간만에 다 저녁때 올라간 절 마당에 빼곡하게 줄을 매달고 걸어놓은 등을 보니 빗속에서도 너무 예뻐서 기분이 좋아졌다.

5월도 며칠 안남았고
석탄일도 지났으니 이제 5월의 밤거리를 예쁘게 장식했던 연등들도 자취를 감추겠지.
아등바등 하느라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5월이 벌써 가버리는 게
너무 아쉽다.
오늘은 저녁 먹고 나서 밤산책이라도 나가보든지...
5월의 밤마실. 그거 괜찮겠다.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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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등바등

삶꾸러미 2007. 5. 22. 02:21
몇년째 돌아보면 늘 아등바등 조바심을 치며 살고 있다.
누가 억지로 강요한 것도 아니니, 죄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그렇지만 '남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얼추 따라갈 만큼은 '벌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자꾸 욕심을 부리게 되고, 그 어떤 것보다 '자유'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건만 이제 나는 늘 시간에 쫓겨 지내느라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벌이'가 월등히 나아진 것도 아니다.
아 물론 약속대로 모든 원고를 '제때' 넘겼더라면 나아졌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수시로 어기는 약속들 때문에 지지부진 밀린 원고는 쌓여가고
원고의 질이든 인간적인 신용도든, 늘 '믿음직스런' 사람이 되겠다던 빛나는 야망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이번에도 마감일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던 원고는
스스로 죽어도 지켜야할 데드라인이라 결심했던 월요일을 지나... 화요일 새벽으로 접어들었고 아직도 내 손에서 씀풍~ 떨려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긴장 상태에선 잠도 달아나던 소심증은
상습범 특유의 배짱에 짓눌려 도망쳤나보다.
오늘밤에도 어김없이 꾸역꾸역 밤참을 챙겨먹고 보니 또 졸리다.
변하지 않은 건 그저 위대한 나의 식탐뿐.

이런 자성의 효과도 아마 3초 뒤면 사라지고 말겠지.
약속시간에 습관적으로 늦게 나타나는 인간들 몹시 혐오하면서
정작 큰틀에선 본인도 그런 인간형으로 분류되는 걸 깨닫지 못하는 아메바.
아... 정말로 시간약속 잘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년부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겐 과연 어떤 변명을 해야 용서받을 수 있을지.
손댈 필요 없는 훌륭한 원고로 보답하겠다는 핑계는 이제 부끄러워 더는 못써먹겠다.
오늘밤에도 그저 아등바등하느라 째깍거리는 초침이 두렵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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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눈

삶꾸러미 2007. 5. 18. 16:21

어떤 유전자가 작용하는 건지는 몰라도
길눈이 밝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눈이 어두워 이른바 '길치'로 분류되는 사람이 있다.
한번 간 길은 단박에 찾아가거나, 대강 설명만 듣고도 별 어려움 없이 찾아가는 신공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번 간 길도 매번 헷갈려하며 헤매는 사람이 있는 법.
내 주변엔 길치들이 꽤 된다.
대표적으로 우리 아버지.
과거에 친척들 집에 갈 일이 있어서 퇴근길에 따로 찾아오시게 되면, 아버지는 몇번 가본 곳인데도 늘 엉뚱한 곳에 가서 헤매고 있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전철역까지 다른 곳에서 내려 이상스럽다며 한시간도 넘게 낯익은 골목을 찾아 들쑤시고 다니기도 했더랬다.
지금은 아예 내가 늘 모시고 다니지만, 그때마다 두분이 자동차 뒷좌석에서 중얼중얼 염려를 하신다. "나 혼자 여기 두고 가면 집에 못찾아간다..."고.
아버지가 지금도 약속시간보다 최소 30분, 많게는 1시간씩 일찍 가는 버릇이 생긴 것도 아마 하도 길치라 잘 못찾아갈 것을 염려해 시간 여유를 두기 시작하면서 비롯된 듯하다. ㅋㅋ

ER 동호회로 알게된 녀석들도 손꼽히는 길치여서,
9년째 변함없이 모임장소는 종로 탑골공원이다.
몇번 그 주변의 다른 곳으로 만나는 장소를 바꿔봤지만, 워낙 약속시간도 잘 안지키는 인간들이 엉뚱한 데서 헤매기 일쑤라 이젠 장소를 바꿀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종로3가 전철역에서 나와 탑골공원 오겠다고 택시를 타는 놈이 없나
탑골공원 오랬더니 종묘에서 마냥 기다리는 녀석이 없나
일단 만났더라도 인파속에서 서로 헤어지면 방향감각 없는 녀석들이 도무지 찾아올 줄을 몰라 휴대폰 통화를 하며 숨바꼭질을 해야 하니, 그 소문난 길치들을 만나면 어린이집 학생들 소풍 데려나간 선생처럼 늘 두리번거리게 된다. +_+;;

다행히도 나는 공간감각력이나 복합적인 지각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임에도
길눈은 밝다. 한번 갔던 곳은 웬만해선 찾아갈 수 있기도 하고, 대강 지리를 머리에 그려보면 방향감각을 발휘해 좀 헤매더라도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진 않는다.
처음 가는 곳도 네비게이션의 도움 없이 설명만 잘 들으면 별 어려움 없이 찾아가기 때문에 다들 꽤 신기해하는데, 나는 똑같은 설명을 듣고도 잘 못찾아오는 사람이 오히려 신기하다. *_*

길치의 유전인자나 사고방식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길치들은 길을 설명하는 것에도 당연히 둔하다. ^^ 아마도 주요 지표가 될만한 건물이나 표지판 따위를 허투루 보고 지나치기 때문인 것도 같은데...
암튼 만날 다니는 자기 집엘 데려가면서도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갈팡질팡 설명을 헤매는 길치들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마지막 회사에 다니던 시절, 누군가에게 전화로 사무실 오는 길을 설명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나는 늘 호출을 당해야 했다. 만만한 거래처면 미리 팩스로 약도를 보내주면 끝이지만, 웃기는 상사들은 누군가와 막 통화를 하다가 말고 '미스 ㅂ!"이라고 꽥 소리를 질러 나를 불러선 수화기를 내밀곤 했다. -_-;; "이 사람한테 우리 사무실 오는 길 좀 가르쳐줘라" (나한테 그런 걸 시킬 정도의 상사면 대개 반말이다)
나보다 길을 더 잘 아는 영업부 직원들은 대개 오전부터 온종일 외출중이었고, 사무실에 남는 건 주로 여직원과 간부들이니 그 중에 '구두 약도 설명'을 시키기에 제일 만만한 건 나였다.
내가 운전을 오래 한 탓도 있었지만, 상사들 본인도 운전경력이 나보다 길지만 늘 다니던 길도 막상 설명하는 덴 젬병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은 표지판을 제대로 안보고 다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난 운전하기 전에 버스 타고 다닐 때도(내가 지하철보다 버스를 더 선호하는 이유도 방향감각을 잃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청앞에 횡단보도가 생겨 다행이지만... 예전에 횡단보도 없을 땐 걸핏하면 내가 나가고 싶은 출구로 못나가고 실패해 화가 버럭~ 났었다) 주변 풍경을 열심히 관찰했기 때문에, 그런 경험조차 나중에 길을 찾아갈 때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어딜 가든 길거리와 사람들을 유심히 살핀다. 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란 말이지... (뭐 딱히 그런 생각을 품을 만큼 주도면밀하다기 보다는 그냥 세상구경에 관심이 많다 ㅋㅋ)

길눈에 꽤 밝다는 잘난 체 정신 때문에 나는 차에 네비게이션을 달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더라도 주절주절 떠드는 게 시끄러워서 끄고 지내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게다가 운전하며 네비게이션 화면 살피는 거, 운전중 휴대폰 통화보다 더 위험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멀리 여행을 가거나 처음 가는 곳을 찾아갈 때, 나는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경우 그대로 메모했다가 안내대로 찾아가고, 그게 아니면 미리 지도를 찾아보고 주요 지표가 되는 고속도로 나들목이나 지점 따위를 적어둔다. 혹시 미리 계획하지 않았던 곳을 찾아가게 되더라도, 지도를 찾아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물론 우리나라 도로 특성상 표지판이 간혹 있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사라지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럴 땐 동물적인 감각으로 찾아내면 되는 거다.
대부분 길은 어디로든 뚫려있고, 혹시 막다른 곳에 다다르더라도 되돌아오면 되는 거니까!

암튼...
오늘 막내 조카의 돌잔치를 앞두고, 어제부터 줄곧 전화통에 불이 나고 있다.
장소가 광화문 대로변에 있으니 어려울 것이 없는 데도, 며칠 동안 두 노친네에게 그리도 열심히 교육을 시켜놨건만 못미더워하는 친척분들이 계속 나를 찾아 위치를 다시 묻는다. -_-
제 아무리 네비게이션이 못미덥다지만 오지도 아니고 완전 도심인데  멀쩡히 새로 단 네비게이션을 두고도 길을 되묻는 동생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인간 네비게이션(=바로 나)이 더 훌륭해서"란다. 큭...

하긴 네비게이션 안내는 방향만 지시할 뿐, 방향을 바꿔야 할 지점에서 보이는 건물이 검정색인지 초록색인지, 그 앞에 커다란 조각상이 있는지 없는지, 가로변 공사장 펜스가 몇미터쯤 되는지를 설명해줄 순 없겠지.
아마 이따가도 또 다시 근처에 왔으니 길을 설명하라는 친척들의 전화를 꽤나 여러번 받아야 할 거다. 다 쓸데없이 길눈이 밝은 탓이니 어쩌랴. 친절하게 설명해드리는 수밖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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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토박이지만 내가 어렸을 땐 아카시아꽃을 한송이씩 따서 먹고 놀았다. -_-;;
하얀 꽃잎을 하나씩 입에 집어넣으면 달콤한 꿀맛이 입안으로 퍼졌는데
성급한 남자애들은 포도송이처럼 달린 꽃을 몽땅 입에 넣고 주르륵 줄기를 잡아당기기도 했더랬다.
그 추억 때문인지 나는 아카시아꽃이 참 좋아서
5월만 되면 이제나 저제나 아카시아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이제 공해 때문에 더는 꽃을 따먹을 순 없지만
온 동네를 휘감는 달콤한 꽃향기는 옛날과 다르지 않다.
어젯밤 처음으로 깨달은 아카시아꽃 향기 때문에 우리 동네 공기가 새삼 맑아진 것도 같다. ^^;
며칠 또 밤마다 온 창문 다 열어놓고 꽃잔치 기분 내야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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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삶꾸러미 2007. 5. 9. 02:18
어버이날
결국 난 부모님한테 고맙습니다.. 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나마 어린이날 미리 모여 먹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맥주로 건배하며
올케 따라 감사하다고 거들었으니 다행인가.

꽃을 좋아하긴 하지만...
카네이션도 죄다 중국산이고 값도 엄청 올랐다기에 몇년째 실속 위주로 한답시고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는 쑥스러운 절차는 생략한지 오래다.
그나마 막내올케가 주말 모임 때 카네이션 바구니를 만들어 와서 부모님껜 다행이었는데
카네이션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나는 좀 민망했다. ㅋㅋ

올해도 선물은 고민하다 두분 다 그냥 '현금' 봉투로 드렸다.
까다로운 두 노친네들 뭐라도 사드리려면 다리품을 꽤나 팔아야 하는데 이젠 그것도 귀찮고..
사실 사드릴 품목도 정말 마땅칠 않다. 핑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며칠 전 충동적으로(사실 주차비 아까워서 쇼핑한 거지만;; ) 사다드린 연분홍색 모자는 엄마가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나이든 아줌마들은 왜 그리도 '꽃가라'를 좋아하시는지... 안쪽에 꽃무늬 프린트가 들어가고 꽃모양의 장식도 붙어 있어서 내가 보기엔 약간 난한데
백화점서 여러 아줌마들에게 씌워보고 의향을 물으니 모두들 좋아라 하기에 울 엄마도 좋아할 줄 짐작은 했더랬다.

매달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생활비를 내놓는 착한 딸이 아니라
생신이나 명절, 어버이날 아니면, 가끔 원고료가 무더기로(!) 들어와 통장잔고가 매우 두둑해졌을 때만 봉투를 내밀다보니, 드리는 나도, 받으시는 부모님도 참 뻘쭘하다. -_-;;

째뜬...
그래도 나무토막같이 무뚝뚝한 딸이 콩닥콩닥 바쁘게 장봐다가 차려드린 저녁상으로
얼추 감사의 마음이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ㅎㅎ
현금봉투에다 장 본 값에다 주말에 먹은 저녁 값까지, 올해도 얹혀 사는 큰딸의 출혈이 제일 컸다는 걸 부모님은 분명 아시겠지만 ^^;; 그래도 제대로 된 인사는 여기에나마 적어두련다.
"엄니, 아부지, 고맙습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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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노릇

삶꾸러미 2007. 5. 5. 00:56

워낙 옛날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던 나는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아기들을 보면 절대 가만 두지 못하고 아이와 눈을 맞춘  뒤 재미난 표정을 짓거나 구슬러서 아가들을 웃기거나 관심을 끌곤 했다.
최대한 옆사람들이나 애 엄마한텐 안들키게 하느라 노력하지만, 아이가 까르륵 웃어버린다든지 하면 좀 곤란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20대쯤엔
결혼은 생각 없어도 어떻게든 애만 하나 낳아서 키우는 건 어떨까..도 꽤 진지하게 (?)
고민했더랬다. ㅋㅋ
남의 애들도 예쁜데 내 애는 오죽 예쁠까..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것.
물론 막연하게 홀부모의 힘겨움이라든지 아이가 받아들여야할 충격 같은 문제 때문에 그냥 아련하게 품은 '바람' 같은 것으로 남아 있었는데
드디어 내게도 '조카'라는 존재가 생기고부터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첫조카는 탄생 이전부터 우리 가족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우린 올케의 출산 이전부터 아가를 위해 돌아가면서 비디오를 찍고 (예비 삼촌인 막내동생은 기타 치고 노래도 불렀고, 나는 태명이 '짱이'였던 아가가 태어나면 고모가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장담했다. *_*)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출산준비물을 보러 다니고 장만하고...
그랬다.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생활을 했던 올케 대신 주중엔 작은 이모가 첫조카를 돌보고
주말엔 큰동생네가 아예 우리집에서 기거하며 조카를 돌봤기 때문에
비로소 나는 아기의 24시간을 옆에서 목격하고 육아에도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거의 3, 4시간마다 우유를 먹이고, 수시로 기저귀를 갈고,
안고 흔들어서 재우고, 매일 목욕을 시키고,
갑자기 고열이라도 나면 한밤중에 응급실로 뛰어가고
정해진 예방주사를 맞추러 다니고...

큰동생이 특수한 직업을 가진 터라 철야작업이나 외박도 수시로 했기 때문에
조카 병원행은 올케와 함께 주로 내가 보필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 나나 울 아버지가 안아주면 아기가 더 빨리 잠들기 때문에 서로 솜씨자랑 하느라 나서기도 했지만,
특히 그땐 내가 집에서 번역을 할 때라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동생들보다는,
밤중에 일하고 있던 내가 우유를 타거나 보채는 조카를 달래는 게 너무도 당연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 드디어 나도 깨닫게 된 거다.
아.. 육아는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하고.
겨우 주말에 이틀 조카와 함께 지내면서 깨달은 육아의 어려움은 조카가 점점 자라
유아원을 다니고, 유치원엘 들어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더니
언제부턴가는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특히 엄마들이 너무도 존경스러웠다.

얼마 전 친구 하나는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를 낳은 뒤 심한 우울증으로
아기를 몇달간 아예 떼어놓고 본인의 몸과 마음부터 추슬러야 하는 사태를 맞기도 했는데
그 마음이 나도 백번 이해가 되었다.
어느것 하나 혼자 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조그마한 새생명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엄마노릇을 오로지 본능과 의무감으로 해내야 한다는 건
초인적인 희생이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어디 갓난아기 뿐인가.
초, 중, 고, 대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식이 번듯하게 홀로서는 순간은 과연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직장인이 되어 제 밥벌이를 하기 시작했다 해도, 결혼이란 큰 행사를 앞두곤 여전히 부모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제도적 현실은 변하질 않고 있고(간혹 혼자 힘으로 버젓이 혼례를 치르는 장한 지인들도 봤지만, 남동생들 보니 전셋값이라도 장만할 때까지 여자친구 기다리게 했다간 끝이 없겠더라), 나만 해도 부모님이 결혼이외 독립은 죽어도 안된다고 버티고 계시긴 하지만 사실 독립하라고 등 떠밀어도 선뜻 나가지는 못할 형편 아닌가! *_*
심정적으로는 내가 이제 노부모님 모시고 사는 거라고 떵떵거리지만
실질적으로는 분명 내가 부모님께 얹혀 살고 있는 게 맞다.

설령 결혼이나 독립으로 부모님 그늘을 벗어났다고 해도
별안간 겁이 나거나 위험한 순간이 닥쳤을 때, 입에서 "엄마야!"라는 외마디가 나오는 한
엄마와 부모님에 기대는 우리의 마음은 여전한 거라고 여겨진다.
2년전 83세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그리워서 올해로 67살이나 먹은 딸(=울 엄마 말이다)은
아직도 몸이 심하게 아프고 힘들면 '엄마...'를 찾으며 울먹인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 대신 엄마를 토닥여주면서도, 은근히 구박한다.
"아니... 할머니는 여든이 넘어서도 엄마 김치까지 담가다 주면서 딸 챙기셨는데,  엄마도 나한테 씩씩하고 든든한 엄마가 돼 주진 못할망정 만날 왜 이리 엄살이야.." 라면서.
그치만 속으론 만날 병들어 비실비실한 엄마라도 내 곁에 있어주셔서 다행이라 여긴다.(아 물론 긴 병엔 효자 없다고 -_-;; 나도 힘들땐 별별 생각 많이 하지만...)
 


암튼 오늘 또...
자의식이 몹시 강한 조카 정민공주 때문에 저녁때 한바탕 집안에 난리가 벌어져
올케와 조카, 두 모녀를 어렵사리 화해시킨 후 집으로 돌려보내며
또 한번 부모 노릇의 어려움을 실감했다.
논리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기들의 부모 노릇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말귀가 통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부모 노릇은 정신적으로 힘들다더니만
정말로 훌륭한 부모가 되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특히 나처럼 덜떨어진 정신연령을 갖춘 이로선 감당할 수 없는 것인듯...

이젠 절대로 내 입에서 "결혼은 말고 애나 하나 낳아서 키워볼까" 하는 만용은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부모 노릇, 엄마 노릇 씩씩하게 해내고 있는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늙은 딸 보필에 오늘도 여념 없으신 나의 부모님께
그저 갈채를 보낼 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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