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꾸러미'에 해당되는 글 198건

  1. 2007.09.14 다이어트 4
  2. 2007.09.05 정리 3
  3. 2007.09.01 9월이다 15
  4. 2007.08.29 나사가 풀렸나 6
  5. 2007.08.28 Mind the Gap 10
  6. 2007.08.27 현행범 11
  7. 2007.08.26 땜빵 4
  8. 2007.08.23 6박7일 12
  9. 2007.08.08 게릴라성 폭우 9
  10. 2007.08.06 텃밭 8

다이어트

삶꾸러미 2007. 9. 14. 19:59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울 엄마가 그렇다.
자기는 끼니 외에 별로 먹는 것도 없고, 당뇨 때문에 과일도, 달콤한 빵도 먹고 싶은 만큼 못 먹고 살며 운동도 매일 하는데 도무지 살이 안빠진다고 화를 내신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절대로 '물만 먹어서' 살이 찌는 게 아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나름대로 먹는 걸 절제하느라 꽤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평범한 사람보다 확실히 많이 먹는다. ^^;;

지난 두달간 허허로움 때문인지 자꾸만 간식에 손을 대는 엄마에게 시시콜콜 잔소리를 했더니 엄만 그걸 '딸의 구박'이라고 여기며 서러워했다.
당뇨에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초기 증상까지 골고루 갖춘 엄마에게 먹을 것 때문에
내가 잔소리를 한 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건만, 엄마는 새삼 그걸 남편 없는 서러움으로 연결시켰다. -_-;; (물론 아버지는 나보다 엄마의 식탐에 관대했던 게 사실이다)
나도 과부 된 엄마를 구박하는 못된 딸이 되고 싶지 않았으므로, 한동안은 잔소리를 포기하기로 하고 결과를 지켜보았다.
신이 난 엄마는 운동한답시고 동네 친구들과 산책을 나가선 자랑스레 호떡을 사먹고  찐옥수수 한 봉지까지 사들고 들어오곤 했다. 옥수수는 다이어트 음식이라면서. -_-;;
나의 예상대로 엄마는 단 5일만에 2킬로그램이 늘어 체중 75킬로그램을 돌파했고
허리둘레 36인치짜리 바지들이 다 맞지 않게 되었다. ㅠ.ㅠ
(참고로 울 엄마 신장은 159센티미터다.)

그 상태로 나가다간 혈당과 혈압도 겉잡을 수 없이 올라갈 형편이라
나는 또 다시 지독한 악역을 맡고 있는데, 참...
식탐 유전자를 나에게 물려주신 울 엄마의 끊임없는 식탐을 말리는 게 너무도 힘겹다.
끼니 외엔 간식을 못드시도록 냉장고를 거의 비워놓다시피 해도
주말에 조카들이 다니러오면 모든 게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원래 한참 크는 애들은 수시로 입에 먹을 걸 달고 살지 않나?
착한 올케들은 차마 나처럼 혹독하게 엄마에게 먹을 걸 차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잠시 한눈을 팔기라도 하면 다같이 홀라당 아이스크림, 도넛, 햄버거 같은 걸 거침없이 먹어치우시는 거다.
아니 왜 금방 밥먹고 나서 또 다들 출출하다는 건지!!! *_*

엄마 때문에 음식의 칼로리 계산에 빠삭해진 나는 김밥 한줄, 아이스크림 하나, 햄버거 한 개의 추가 열량(각각, 2, 3백 칼로리는 족히 나간다) 소모하려면 2시간 동안 열심히 걸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우리 엄마의 운동이라곤 고작해야 쉬는시간 30분을 합하여 1시간 동안 동네 근처를 걷는 것뿐이다.
그나마도 운동을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알량한 운동을 핑계로 간식을 덥썩 먹는다는 게 문제인데;; 본인께서는 "나름" 간식을 쬐끔밖에 안 먹었기 때문에 양에 안 차 그게 다시 스트레스로 남는다. 흑...

그렇다고 당뇨병 환자인 엄마를 마구 굶길 수도 없는 일이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혈당이 더욱 올라가니까.
괜히 출출하면 간식 찾아먹을 생각 말고 물을 드시라고 아무리 충고해도 못들은 척
냉장고를 뒤지던 엄마에게 오후에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은 뒤 바쁜 일을 핑계로
작업실로 도망쳤는데 은근히 걱정이다.
내가 없는 틈을 타서
토마토 한 광주리, 포도 몇 송이, 귤 10개쯤은 순식간에 우습게 '작살내던' 과거의 과일킬러 실력을 발휘하고 계시면 어쩌나... ㅠ.ㅠ

뚱뚱한 딸 다이어트 시키려고 같이 헬스장과 에어로빅 다니는 엄마는 봤어도
뚱뚱한 엄마 다이어트 때문에 같이 운동 다니는 딸 얘기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이참에 구박만 하지 말고 나란히 헬스클럽엘 등록해볼까...
당뇨 합병증으로 손발 신경이 변형돼 오래 서 있지도 못하는 엄마를 데리고 헬스장엘
가서 과연 어떤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도 막막하긴 하다.
어휴.. 그렇지만 난 운동이 정말 싫단 말이지. (운동 싫어하는 것도 유전인듯;;)

어디 쉽고 간단한 다이어트 비법은 없는지.. 오늘도 나는 인터넷의 바다만 헤매고 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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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삶꾸러미 2007. 9. 5. 22:59
사람을 간단히 두 유형으로 나누어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과 정리정돈을 못하는 사람으로 가른다면
나는 당연히 정리정돈에 젬병인 사람에 속한다.

뭐든 되는대로 널브러뜨려놓고 사는 게 어쩐지 인간답고 정감있다는 편견은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원천이기도 한데
그런 인간이 철저한 정리를 도맡으려니 참 쉽지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누군가 마무리하고 정리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마음 속 방들을 칸칸이 정확히 나누어 그 안에 생각과 감정들을 차곡차곡
정돈할 수 없는 것처럼, 제아무리 피붙이라 해도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정리한다는 건 어쩌면 말도 안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이 떠난 자리엔 반드시 정리할 게 꽤 많다.

두달이 넘도록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버지 책상엔 피우시던 담뱃재까지도 재떨이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나로선 차마 하나라도 손을 대기가 싫었다.
웬만한 공과금 자동이체는 해지시켰지만, 아직도 통장이며 카드도 마냥 그대로만 두고 있으면서, 누군가에게 독촉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마지못한 듯 하나씩 '정리'하는 시늉을 하는 중.

워낙 아버지가 깔끔했던 분이라 딱히 어려울 것도 없는 정리건만
마냥 헤매고만 있는 나를 보면서, 제일 강렬히 드는 생각은 내 삶을 가능한 한 간소하게
정돈해 놓고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 속의 나는 자꾸만 너저분하게 일을 벌려만 놓고 도무지 정돈할 줄을 모르고 있다. 어떻게 하면 단정하고 소박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인지, 과연 나 같은 인간도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니 한심하다.

폭탄 맞은 것처럼 어지러운 삶을 남겨두고서야 어찌 부끄러워서 편히 떠날 수가 있겠나.
생전에 스스로 묻힐 곳이며 입고 갈 옷까지 다 장만해두어야 더 오래 산다고 믿은
옛 사람들의 지혜가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좀 알겠다.
굳이 더 오래 살고 싶은 마음에 매달려 노년의 생을 바락바락 연장하고 싶은 없지만
편한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건 역시 지혜로운 선택이다.
이제라도 최대한 간소하게 주변을 정리하며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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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다

삶꾸러미 2007. 9. 1. 16:22
몇십년 후엔 한반도가 아열대기후에 속해 일년의 절반 이상 절절 끓는 여름이 될 거라 하고
장마철로는 감당이 안되는 여름철 집중호우 때문에 '우기'라는 말을  도입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9월을 며칠 앞두고 기온이 팍 떨어지더니
비와 함께 시작된 9월은 제법 서늘하다 못해 스산하다.
여름 내내 민소매와 반바지로 지냈던 나의 '홈패션'은 급기야 한기를 못이기고 반팔 티셔츠와 7부 추리닝으로 바뀌었다.
감기기운 때문인지 순전히 날씨 때문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나도 모르게 '으 추워~' 소리가 절로 나와, 따뜻한 커피 한잔의 온기를 감싸쥐고 한참을 웃었다.
인간이 어쩜 이리도 간사스러운지...
그저께부터는 한여름용 홑이불만으로 도저히 한기가 가시질 않아 결국 봄가을용 이불을 덮고서야 잠들수 있었다. 포근한 온기가 어찌나 반갑던지,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기가 싫어 한참을 이불 속에서 뭉기적거렸다.

9월이 되면 가을이 오고, 그래서 뭔가 다 잘 풀리고 잘 될 것 같던 느낌은 여전하지만
뭐든 저절로 잘 되는 일이 없다는 게 확실하고 보니, 커지는 건 조바심뿐이다.
드디어 원고독촉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피학성향을 즐기는 인간처럼 그들의 독촉과 채찍질이 은근히 반갑다.
역시나 나란 인간은 자율적인 의지만으론 제대로 일을 해나갈 수 없었나 보다.
그들이 몰고가는 대로 잘만 따라가면 또 무사히 이 가을을 넘길 수 있겠지.
9월 끝자락에 들어 있는 추석엔 다시 에어컨이 필요할 만큼 더울 수도 있으니
공식적으로 가을이 왔음을 선언하기엔 아직 미심쩍지만
어쨌든 9월은 가을임을 실감한다.
잘왔다, 9월.
원래 가을은 내가 겨울 다음으로 싫어하는 계절이지만, 올해만은 반겨주마.
올 여름은 너무 길고 힘겨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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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가 풀렸나

삶꾸러미 2007. 8. 29. 01:09
갑자기 비실비실모드.
그간 조여놨던 나사가 어느새 다 풀렸나보다.
낮에는 에어콘, 밤엔 선풍기를 끼고 살 수밖에 없었던 늦더위 때문에
계속 목이 살짝 부어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오늘부턴 급기야 요란한 재채기와 함께 콧물이 줄줄줄 흐른다.
가만히 있다가 손쓸 겨를 없이 후르륵 흘러버리는 말간 콧물.
아 조만간 코밑이 빨갛게 헐을 게 눈에 선하다.

그러더니 난데없는 소화불량.
돌덩이도 녹여버릴 만한 소화력을 갖춘 덕분에 우리 집엔 두통약은 몰라도 흔한 소화제 하나 구비되어 있지 않은데, 별로 먹은 것도 없이 배가 불러 터질 것처럼 가스가 차더니만
식은땀까지 흘러 저녁 내내 드러누워 있었다.
물론 소화제가 집에 있었대도 굳이 먹지 않았겠지만, 지금 시간쯤이면 밤참을 달라고 빈 속에서 아우성을 쳐야할 상황에 아무런 기별이 없는데다 여전히 더부룩한 듯하니 사알짝 걱정이 된다. 근거없는 '건강염려증'이 재발했나? +_+
 
암튼 코푼 휴짓조각으로 온통 둘러싸여 방바닥에 누워있다가
잠은 오지 않을 것 같아 비실비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당연히 이런 멍한 머리로 일에 힘쓰는 건 불가능할 터.

이상하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나사가 풀리는 건, "빡세게" 원고마감을 넘기고 났을 때나 허락되는
여유이거늘, 이놈의 몸뚱이는 어쩌자고 대책없이 발을 뻗는단 말인가.
다시 최면을 걸어 나사를 조여봐야지.
정신차려라, 정신차려라, 정신차려라...

어느덧 9월이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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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the Gap

삶꾸러미 2007. 8. 28. 15:47

런던에 다녀오신 해리님은 이 제목을 보시고 퍼뜩 알아차리셨으려나 모르겠다. ^^;;
런던 지하철에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던 저 말은
나중에 알고보니 런던 관광상품 여기저기에서 새겨질 만큼 독특하고 고유한 표현인듯.

처음 영국엘 간건 순전히 출장이라 남쪽 작은 항구도시의 거래처를 방문한 뒤
귀국하던 날 반나절쯤 시내를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돌아본 터라 제대로 런던구경을 하지 못했던 나는 몇년 뒤, 프랑크푸르트 출장을 빌미로 파리를 거쳐 친구가 살던 런던으로 놀러갔었다.
처음과 달리 정기권까지 사들고 주로 전철과 지하철로 홀로 시내관광을 하다 저녁이면 친구를 만나 뮤지컬도 보고 저녁도 먹고 그랬는데, 지하철 문이 열릴 때 마다 방송에서 웅웅거리던 "요상한" 말을 나로선 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친구가 가르쳐주는 바람에 비로소 굵직한 아저씨 목소리가 정류장마다 "불친절하게" 외치는 소리가 바로 한국에서 흔히 듣는 "이 역은 승강장과 객차의 간격이 넓사오니 발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얼추 맞나??^^;;)의 뜻인 "Mind the gap"이란 걸 알게된 나는 거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요샌 어쩌려나 모르겠지만 심지어 'please'도 안 붙었다)
아쒸.. 그렇게 간단한 말을 못알아듣다니...
영어로 밥벌어 먹는 거 맞나 싶었던 것. -_-;; 
그러고 보니 모든 관광지의 기념품에서도 "Mind the Gap"이란 문구를 자주 본듯했다.
마지막 두 회사에서 영국 회사와 거래를 하느라 나름 영국식 영어와 발음에 익숙해졌다고는 생각했지만(말랑말랑한 미국영어만 익숙했던 나는 회사를 옮기고 나서 처음엔 거래처에서 전화만 와도 식은땀을 흘렸고, 콧소리 강한 영국식 발음이  내게는 '독일어'처럼 낯설기만 했었다) 며칠 놀러다니면서도 못알아먹은 말들이 너무도 많아 비감에 젖었던 것 같다.

벨로도 언젠가 얘기했지만
격식차린 회의 같은데서 상담하는 것보다, 시시껄렁 밥먹는 자리 같은 데서 나누는 생활영어가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처음 미국출장 가서도 직원들 사이에서 빠르게 오가는 농담들을 못알아먹고 그저 따라 웃느라 개탄하기도 했었는데, 시기적으로 훨씬 전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 "Mind the gap"에 버금가는 '충격'(?)으로 다가왔던 단순한 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I will." ^^;;

미국인들이 낯선이들에게 수시로 말을 걸고 친절하게 대하며 먼저 인사를 하는 건
총기난사와 무시무시한 범죄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난 너를 해칠 의사가 없다"는 걸 밝히던 수단이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암튼 미국인들은 괜히 인사하기를 정말로 즐긴다. -_-'''

건물 로비를 지나든 백화점을 서성이든
꼭 누군가 "Have a nice day."또는 "Enjoy your day." 정도의 인사를 건넨다.
("Hi"나 "Hello"라고 인사를 걸어주면 물론 아주 고맙다. 대꾸도 똑같이 하면 되니까^^)
보통은 OK나 All right, thanks, You too 정도로 답하니 나도 따라하는데
간혹 인간들이 대꾸하는 말을 나로선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웅얼웅얼 얼버무리듯 지껄이고 지나가는 그 짧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느라 나는 참으로 오래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뭐 결국엔 동료 직원에게 물어서 그 대답이 "I will."("즐거운 하루 보내라" -- "그럴게" 정도의 대꾸였던 것!)이란 걸 알게됐지만, 그땐 참 심정이 어찌나 참담하던지.
유심히 살펴보면 천편일률적인 대꾸를 싫어하는 영어권 인간들은 단순한 인삿말에도 참 다양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How are you?"에 대하여 "I'm fine, thanks. And you?"라는 판에 박힌 대꾸가 뇌리에 박혀버린 우리네와는 퍽 다르게 말이다. ^^;;

회사일이나 영어수업, 여행 때문에라도 영어를 가끔이나마 씨부리고 살았던 게 벌써
까마득한 옛날 일 같다.
그나마 정민공주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영어는 매일매일 씨부려줘야 안까먹는 거라고 당부하면서 나는 단순한 말조차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심하게 엉켜 버벅댈지라도 문득 여행이 떠나고프다.
영어가 공식언어라면서도 영어를 쓸 필요가 완전히 없었던 "필리핀" 같은 데 말고 ^^;;
(여행사 따라 간 덕분이기도 했지만, 거기 사람들 한국말 잘도 하더라)
또 다시 언어 때문에 내 뒤통수를 툭 쳐줄만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먼나라로 말이다.

파리에서 작은 호텔이라 종업원조차 영어가 안통해 45가 프랑스어로 무언지 친구 남편에게 전화로 물어 겨우겨우 "실부쁠레 샹브르 꺄트르쌩끄"(나름 "45호실 부탁합니다"라고 한 말이었다 ㅋㅋ)라고 한 담에야 친구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던 진땀나는 기억 때문에
여행에서 돌아와 한동안 프랑스어를 열공하여 제대로 프랑스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둔 기초 프랑스어 책이 어디에 있더라??? +_+  

헉.. 그때가 벌써 9년 전인가 보다.
오 유럽유럽...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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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범

삶꾸러미 2007. 8. 27. 15:20
나는 죽도록 놈들을 싫어하는데
놈들은 나를 퍽이나 좋아한다.
그저 예방이 최선이라고 애를 써도 여름이면 가끔씩 놈들에게 허를 찔리고 마는데
어제는 악독한 범행을 내눈으로 목격하고 현행범을 단숨에 "죽여버렸다".
다름 아닌 모기 얘기다. -_-;;

이상하게도 나는 모기에 잘 물린다.
한집에 살아도, 아니 심지어 나란히 잠을 자도 나만 모기에 물리는 경우가 많다.
벌레 좋아하는 사람 없겠지만
특히나 나는 벌레를 죽어라 못견뎌하는 인간이라, 일단 모기의 움직임이 포착되면
모기약 스프레이를 들고 따라다니며 놈을 죽여야 마음 편히 자거나 앉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모기의 습성 따위는 완전히 꿰고 있다.
모기는 벽, 검정색, 향수, 땀냄새, 체온 높은 사람을 좋아한단다.
같은 방에서 자도 벽쪽에 자는 사람이 불리하다는 얘기.

그래서 요즘 같은 여름엔 사방 벽에서 떨어져 방 한가운데 이불을 펴고 자며
(나는 구세대인이라 방구들을 지고 자는 이불체질이다^^; 가끔 여행가서 잠깐씩 침대에서 자는 건 몰라도, 모름지기 여름엔 보송보송한 이불에서 자다가 시원한 방바닥으로 다리 한 쪽 내밀었다가 들였다가 하는 게 최고다)
몸에 별로 안좋다는 얘길 들었지만 그래도 모기에 물리는 것보다 낫다고 여겨 모기매트를
끼고 산다.
게다가 잠든 후에 모기 꼬일까봐 샤워도 거의 자기 직전인 밤에 하고, 여름이라 화장품이며 바디로션도 거의 안바른다.
그런데 요새 영악한 모기들은 매트를 켜놓아도 가끔 나를 깨물어놓는다. ㅠ.ㅠ
하물며 낮에 활동하는 모기들도 있으니 참 할 말이 없다.

이상한 점은 땀은 나보다 울 엄마가 더 흘리시고, 왕비마마는 매일 샤워도 잘 안하며 게으름을 부리는데도 모기들은 엄마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
모기마저도 왕비와 무수리를 차별하는 것인가?

어제 저녁엔 설거지를 하는데 종아리가 따끔해서 내려다보니
아 글쎄 '시커멓고 커다란' 모기(흔히 집에서 보는 가늘가늘 가녀린 갈색 모기가 아니라 무섭게 생긴 산모기 같았다 ㅠ.ㅠ)가 무릎 바로 아래서 흡혈활동을 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내리쳤더니 세상에...
순간적으로 얼마나 탐욕스럽게 내 피를 빨았는지 다리에 피가 흥건히 묻어났다. >.<
금세 약을 바르긴 했지만, 무서운 생김새 답게 부풀어오른 자리는 다른 모기 흔적의 세배쯤이었고 계속해서 따가웠다. 흑...

얼마전까진 비가 하도 많이 와서 모기유충이 다 떠내려가
한여름동안엔 모기가 별로 없었는데 계속 날이 더워 오히려 얼마전부터 가을까지 모기가 극성을 부릴 거라고 한다.
하기야 아파트단지엔 모기들이 온수 하수구에 오글오글 모여 겨울을 나기도 한다지 아마.
작년에도 거의 9월 내내 모기매트를 끼고 살았던 것 같은데
올해도 만만치 않겠다.
여름 지나면 모기매트를 파는 진열대도 없어지니 미리미리 많이 사두어야지.

그나저나 모기 물린곳은 그저 벅벅 긁어줘야 시원한데
많이 긁으면 다음해 여름까지도 모기물린 자국이 남게 되는 형편이라
오늘은 꾹 참으며 약만 바르고 있다.
아 된장..
모기가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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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빵

삶꾸러미 2007. 8. 26. 15:28

간만에 땜빵질로 바쁜 이틀을 보냈다.
이 나이에 소개팅 땜빵을 나갔을 리는 없고 ^^;; 급한 일 마무리에 동원됐단 의미다.
언제부턴가 거절을 못해 맡은 일 때문에 다른 일까지 크게 피해를 입는 사건을 연이어 겪은 이후로는, 일 면에선 워낙 잘난 체를 하는 터라 이젠 감히 내게 땜빵을 요구하는 이들이 드문데 가끔 동생놈이 무대포로 들이미는 일이 있다.

EBS 영화쪽 일이 워낙 번역료가 낮아서
일이 좋아 선심 쓰는 셈치고 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사실 꾸준히 하기가 좀 억울하다. ^^
한 8년 가까이 한동안은 일부러 짬을 내서라도 한달에 한 두 편은 EBS 영화 번역을 했지만
출판계 쪽 계약건만으로도 일에 치여 짬을 내기 힘들어진 다음부턴 아예 동생에게 말도 못꺼내게 했었다.

그렇지만 동생 놈 회사 일에 간혹 펑크가 난다거나, 번역 감수에서 걸린다거나
단기간에 번역이 쏟아지는 다큐멘터리 축제 기간 같은 때는 어쩔 수 없이 도와야한다.
아쉬울 때 동원되어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역시 핏줄이라나 뭐라나.. 쳇..

하여간 이번에 땜빵을 하게 된 건 포도주 산업에 관한 다큐멘터리 물.
총 130분 이상의 길이였는데, 번역하는 사람이 둘로 나뉜 테이프의 뒷부분은 아예 있는줄도
모르고 일을 넘겨 뒷부분 40분 정도 분량을 새로이 작업해야 하는 상황.
기막히게도 방영일자가 오는 화요일이란다. ㅋㅋ
원래 번역한 사람은 일요일에나 추가 번역 대본을 보내줄 수 있다고 했다는데
자막 편집 작업을 해서 납품하고 검수까지 받으려면 늦어도 토요일 오후까진 번역대본을 넘겨야한다는 것이 동생놈의 요구사항.

책이든 영화든 원래 그간 내가
번갯불에 콩구워내듯 빨리 "해치우는" 번역에 동원된 경험이 많긴 하지만
이번엔 좀 겁이 났었다.
컴퓨터 앞에 1시간 이상 오래 버티고 일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된지 어언 석달이 다 되가는
시점이기 때문.
양쪽 발등에 불이 떨어져 활활 타고 있어도 뜨거운 줄 모르고 있는 내가 아닌가 말이다. -_-;;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영어가 마구 혼용된 다큐멘터리를
영어대본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눈치껏 테이프 보며 시간 맞춰 자막 길이 조절해서 한글 대본을 정리하는 과정은 예상대로 역시나 난항이었고
(번역 자체에 걸리는 시간보다, 때로는 TCR이라고 해서 작업용 테이프에 편의상 넣어놓은 시간을 보며 자막 길이 조절해 다듬는 시간이 더 걸리는데, 이번 작업은 뭔소린지 모를 외국어들의 총본산인데다 앞사람이 번역한 부분과 용어까지 통일하려면 앞부분도 죄다 다듬어야 했으므로 "겨우 40분 분량"이라는 말에 덜컥 일을 맡은 걸 죽도록 후회했다. ㅠ.ㅠ)
하필 메일로 받은 일부 원어 대본이 누락되는 바람에 오밤중에 생쇼를 거쳐 최종 마무리까지...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땜빵일은 무사히 토요일 오후에 끝이 났다.
어느덧 거대자본주의와 상업주의에 휘둘리게 된 유럽과 미국, 남미 포도주 산업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내용도 좋았고, 무엇보다 내가 다시 "빡세게" 몰아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음을 확인한 것이 큰 성과인 듯하다.

물론 알량하게나마 그것도 마감이라고, 어제 오후 이후 '번역일'은 단 한자도 하기 싫은
후유증에 시달리고는 있지만 슬슬 워밍업을 거쳐 본격적인 "마감성 번역기계 작업모드"로 돌입할 수 있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도 같다.

동생놈한테는 바가지로 욕을 퍼부어주기는 했지만(아마 이번 원고료도 대충 떼어먹겠지;; 큭)
이래저래 나름 보람있는 땜빵질이었던 듯하다. ^^;; (흠.. 근거없는 나의 낙천주의도 서서히 부활하고 있는 모양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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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박7일

삶꾸러미 2007. 8. 23. 02:07

고된 6박7일을 보내고 나니 쌓인 피로와 더불어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렸는지
저녁 먹자마자 식곤증으로 쓰러져 밤중까지 낮잠 아닌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6박7일은 원래 3박4일을 목표로 우리집에 다니러왔던 정민공주의 방학행차 날수다.
돌이켜 보건대, 온 몸을 다바쳐 공주를 보필해야 하는 무수리에게 7일은 정말 힘겨웠다.
3박4일만으로도 벅찼을 텐데...  -_-;;
물론 나도 어린시절 방학때면 당연히 일주일씩 방학숙제 싸들고 할머니댁에서 지내는 걸 중요한 전통처럼 되풀이했고, "우리 집에도 제발 와달라"(!!!)고 특별히 부탁하는 고모들 집에도 이틀쯤 가서 머물곤 했다. ㅎㅎ
이상스레 딸이 귀한 집안이라 고모들이 시끄럽고 부산스러운 사내녀석들과 달리
얌전하고(벗은 옷과 잠옷 같은 건 늘 머리맡에 얌전히 개어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끼니 땐 일손을 돕는 시늉이라도 하는(가령, 수저 놓기 같은;;) 나를 무척 예뻐했던 기억이 난다.

하. 지. 만.
정민공주는 무수리과에 속하는 나와는 전혀 다르다. ㅠ.ㅠ
샤워하기 전에 벗은 옷은 거실에 하나 방바닥에 하나씩 마구 떨어져 있기 일쑤고
(집에선 당연히 제 손으로 집어 빨래통에 갖다 넣는다는데, 우리집에만 오면 손가락 까딱 안한다. 어흑...) 수저 놓기를 도와주기는커녕, 밥이라도 잘 먹어주면 내가 고마워해야 한다.
그것도 공주가 '주문'한 특별메뉴(첫날은 짜장덮밥, 둘쨋날엔 카레라이스, 셋쨋날엔 매운고기[제육볶음을 의미한다]... 등등)를 해다가 바치면서 말이다.
머리도 매일 다른 스타일로 땋거나 묶어주어야 했고, 연일 즐겁게 놀아주거나 방학숙제를 도와야 했고, 어찌나 말을 안듣고 고집을 부리는지 거의 온종일 잔소리를 하며 싸워야 했는데 대부분은 내가 졌다. 으으으

사정이 이러니 조카들 버릇은 고모가 다 버려놨다는 핀잔을 10년째 듣고 있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정민공주에 관한 한 할아버지와 고모에겐 '안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정말로 불가능한 게 아닌 한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주었던 게 사실이니까.
예를 들어, 집에 사다 놓은 삼겹살이 없는데도 아침 댓바람부터 매운고기가 먹고 싶다며 공주가 앙탈을 부리면 공주의 할아버지는 얼른 나가서 삼겹살과 깻잎을 사오시고, 무수리 고모는 득달같이 고추장양념을 해서 만들어 먹이는 식이었다. (내가 미쳤지...)

처음 3박4일 예정이었다가 공주의 체류기간이 길어진 건
중간에 우리 아버지 49재도 있었고, 바이올린 교습이랑 그림공부하러 가야하는 날이 포함되는 바람에 공주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고모랑 하루종일 놀 수 있는 날이 단 하루 밖에 없어서 억울하다"고 제 엄마에게 항변했기 때문이었다.
제딴엔 할일 다 하고 숙제할 것 다하면서 지내는 게 억울했던 모양인데, 하필 개학을 코앞에 둔 시점에 다니러 와서 고모가 숙제까지 챙기느라 더욱 뼈빠지게 힘들었던 건 안중에도 없다. 쳇.

물론,
일주일 동안, 49재날을 제외하곤 정민공주 때문에 두 모녀가 눈물바람을 비칠 새도 없이 분주하고 시끌벅적했고, 울 엄만 난데없이 손녀딸과 함께 일요일 아침 조조영화를 보러가기도 했다. 엄마의 마지막 영화관람이 <태극기 휘날리며>였던 것으로 기억하니까, 귀차니스트 할머니에겐 실로 몇년 만의 쾌거이기도 하다. ^^;
그리고 사실 나 역시 귀찮고 힘들고 피곤하면서도, 도도한 공주를 보필하는 일은 순간순간 재미있고 뿌듯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말씀이 "손자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한다는데
고모 무수리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왕비마마 보필도 지치는데 공주까지 모시느라 고되고 힘들었으므로, 왕비마마까지 대동하여 친히 공주를 자택까지 모셔다놓고 돌아오는데 어찌나
마음이 홀가분하던지 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ㅋㅋ

그런데 못말리는 건, 벌써부터 공주가 보고싶다는 것. +_+
방학 전부터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만났고, 이번엔 아예 6박7일을 시달리고도 공주의 전화목소리를 들으니 왈칵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흐이구...
확실히 나는 못말리는 무수리 기질이 철철 흐르는 고모임에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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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성 폭우

삶꾸러미 2007. 8. 8. 14:54
사람들은 이름을 참 잘도 갖다 붙인다.
갑자기 손가락 굵기처럼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며 하늘이 깜깜해졌다가
다시 언제 그랬냐싶게 하늘이 맑아지고는 매미가 맴맴 울어대다가
또 다시 유리창을 두들기는 빗소리가 들릴 만큼 무서운 폭우가 이어지는 날씨가
온종일 되풀이되고 있다.
날씨가 참 변덕스럽기도 하다고 내가 중얼거렸더니
엄마가 "일기예보에서 오늘 '게릴라성 폭우'가 내린다고 했어"라고 대꾸하셨다.

'게릴라'라고 하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왔던 빨치산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봤던 잉그리드 버그만도 생각나고
요새 뉴스에서 하도 들어 친근한 아이스크림 이름처럼 들릴 지경인 탈레반도 생각나는데
이름 하나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과장하길 좋아하는지가 느껴진다.

'게릴라'도 무섭고, '폭우'도 무서운데
'게릴라성 폭우'라니...
남쪽에선 물난리가 나서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나로선 장마동안 비구경도 변변히 못한 것 같은 느낌 때문인지
꽤나 무섭게 내리다 그쳤다 또 하늘을 뒤덮는 먹구름의 험상궂은 심술도
'게릴라성 폭우'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보다는 훨씬 더 정겹고 만만하게 생각된다.
그저 커피가 유독 '땡기는' 날씨와 분위기를 조성하는 촉촉함이랄까.

아무래도 오늘은 잠이 오거나 말거나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될 것 같아서
비오는 날 으레 입게 되는 편안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 대신
커피향에 어울릴 것 같은 깡총한 검정색 미니 원피스에 샌들까지 떨쳐 신고 집을 나섰다.
기껏해야 행선지는 작업실이었지만
감미로운 음악 틀어놓고 좁은 공간 가득 커피향을 채운 속에서
우아한 청승을 좀 떨고 있으려니 기분이 아주 그럴싸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빗줄기는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변덕을 부리고 있어서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해야 하지만
굳이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충분히 서늘하고 촉촉한(남들은 눅눅하다고 하겠지;;) 날씨와 '게릴라성 폭우'가 나는 썩 마음에 든다.

앞으로 또 일기예보에서 '게릴라성 폭우'를 운운하는 날이면
난 아마도 오늘 입은 검정색 미니 원피스와 커피를 동시에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역시 비와 커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커플이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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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삶꾸러미 2007. 8. 6. 17:33
마음에 깊이 남은 상실의 아픔과 상처를 포도원과 텃밭 가꾸기로 다스렸다는
어느 저자의 책을 번역한 적이 있다.
그 책 옮긴이의 말에도 썼지만
그 책을 작업하는 사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어떤 위로의 말로도 섣불리 위로가 되지 않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자연 속의 명상으로 달래는 지은이의 시도에 나도 크게 공감할 수 있었기에 그 책은 (표지와 장정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지금까지도 꽤나 애착이 간다.
물론 나야 집안에 들인 작은 화분조차 죽여버리기 일쑤지만
대지와 초록 식물들의 생명력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며,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자연의 순환고리와 섭리도 어쩐지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어젠 서울 근교에서 텃밭을 일구며 사시는 외삼촌 댁엘 다녀왔다.
토마토며 오이, 가지가 너무 많이 열렸으니 바람 쏘일 겸 엄마 모시고 한 번 다녀가라는 외삼촌과 숙모의 당부에 못이기는 척 따라나선 길이었다.
그간 계속 내린 비 때문에 수분이 너무 많아진 탓에 바알갛게 익은 토마토는 가지에 매달린 채 쩍쩍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터져버린 크고 작은 토마토를 따다가 마당 수도에 씻어 그대로 입에 넣으면
토마토도 이렇게 달콤할 수 있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20년째 농약이며 비료를 쓰지 않았다는 외삼촌의 텃밭에선 용케도 채소들이 튼실하게 자라나고 있었는데, 텃밭 가장자리의 감자 줄기를 잡아당겨 삽으로 땅을 파내니 알알이 열린 감자와 함께 드러난 지렁이들이 사방에서 꿈틀거리며 달아났다.
다른 벌레 같으면 나 역시 징그럽다고 소리지르며 달아났겠지만 지렁이는 대지를 비옥하게 만드는 착한 일꾼이란 걸 익히 들어온 때문인지 제법 빠르게 제 구멍을 찾아 들어가는 지렁이까지 감탄스러웠다.
다음주 정도면 토마토를 모두 뽑아버리고 무를 심어야 한단다.
아직도 초록색으로 주렁주렁 매달린 토마토가 많던데 아까워서 어찌 뽑아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농사란 것이 그렇게 다 때를 맞춰 심고 가꾸고 뽑아버리고 또 가꿔야 하는 게지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어제 바리바리 싸주신 토마토와 옥수수, 감자, 늙은 오이, 햇오이가
삐죽이 얼굴을 내민다.
어제는 조카들과 텃밭을 쏘다니며 잘 익은 토마토와 오이를 따고, 또 먹는 것으로 고문을 당하다시피 오후 내내 먹어대느라 마음과 몸이 풍요롭다못해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는데
냉장고 그득한 텃밭의 선물을 보노라니 오늘까지도 마음의 풍요와 너그러움이 쉬 가시질 않는다.

그리고
생명의 신비가 넘치던 어제 그 텃밭의 밭고랑을 돌아다니며 맡은 흙냄새가 떠올라
또 다시 마당 넓은 집에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비록 잡초로 우거진 마당에 살게 되더라도 작은 텃밭 일구며 흙냄새 맡으며 살고프다.
그러면 내 뾰족함과 까칠함도 훨씬 뭉뚱그려져 선하게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마당 넓은 집의 꿈을 향해 조금이나마 다가가기 위해서라도
제발 일 좀 하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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