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투덜일기 2020. 2. 27. 14:20

10년 전에 엄마 칠순 생일 가족모임을 어떻게 준비하나 고민을 여기 블로그에 적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후딱 10년이 지났고 ㅜㅜ 주말에 왕비마마의 팔순 생신을 맞았다. 작년 생신때는 올해 팔순을 기약하며 아예 동생들도 집에 못오게 했었다. 그때도 병끝이라 엄마 상태가 부실했었기 때문이다.  1년전만 해도 칠순때처럼 팔순 역시 가까운 친척분들은 다 모시고 밥을 먹어야하는 게 아닐까 짐작했지만 1년새 생각이 확 바뀌었다. 다 귀찮아! 준비하는 나의 귀찮음이 가장 크겠지만, 오실 분들도 다 노친네들인데 오라가라 힘드니 안 부르는 게 서로 상책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불과 1달 전만 해도 엄마가 멀쩡히 외식을 하러 나갈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고, 그 말은 조울증세에도 해당된다. 엄마가 심히 아프기 전에 이미 의논했을 때 딴 식구는 절대 부르지 말자고, 우리 삼남매랑 손주들만 모여 평소처럼 조촐하게 밥 먹는 게 좋겠다고 주인공의 동의도 미리 받아놓았었다.

밥먹는 장소도 내 마음대로 정했고 3주전에 예약도 마쳤다. 경치가 밥값의 절반이라는 여의도 사대부집 곳간. 의외의 변수는 코로나19였지만 뭐 차로 이동하고 마스크 쓰고 가면 되겠거니 했다. 9식구 단촐하게 모여 밥먹는 자리라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팔순인데 하나쯤은 뭔가 달라야지 싶어 케이크토퍼를 주문했다. 토퍼까지 아예 세트로 보내주는 화려한 꽃앙금으로 만들어진 떡 케이크를 주문할까 말까도 오래 고민했지만 한식뷔페에 후식으로 떡이 지천일텐데 싶고, 우리 가족들은 몇번 사본 떡 케이크보다 역시 제대로 케이크를 더 좋아하므로 요맘때 제격인 딸기 케이크를 사기로 결정.

케이크토퍼 문구는 대충 샘플에서 이름만 바꾸고 주문했는데 바로 다음날 택배가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대구에서 확진자 폭발하기 직전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요즘엔 뭘 시켜도 빠른 배송이 어려울 만큼 사람들이 생필품까지 배달시키며 사는 듯. 휴...

'팔순축하드립니다' 대신에 '항상 건강하세요'를 넣어야하는 게 아닐까도 좀 고민했었는데 도착한 택배를 보니 이렇게 추가 문구와 하트 두개까지 서비스로 넣어 딱딱한 종이에 단단히 붙여서 보내주더군. 뭘 살 때 잘 모르면 돈을 더주는 게 낫다는 옛사람의 진리를 요번에도 실감했다. ㅎㅎ

토요일 오후, 예약시간보다 넉넉하게 집을 나섰는데 다들 바이러스 공포로 집에 콕 박혀 있을줄 알았더니만 길에 차가 꽤 많았고, 음식점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심지어 바로 옆 연회장에선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20200222. 2가 무려 5개나 들어가는 엄청난 길일이라 결혼식이 많다는 이야기는 진즉 들었지만 에고.

째뜬 계획했던 대로 조촐하게, 배부르고 뿌듯하게 이른 저녁을 다 먹고는 케이크를 준비해 조용조용 생일축하노래를 불러드린 뒤 엄마에게 소원을 비시라고 했다. 아들놈 하나가 웃으며 '팔십살에도 소원이 있나?'라고 코멘트하기에 속으로 버럭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도 바라는 거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참 내... 


8개의 촛불을 엄마는 네번에 걸쳐 힘겹게 불어 끄셨고, 난 좀 속이 상했다. 원래 케이크 촛불은 거의 한방에 불어끄시는 분이었는데 흠... 사진을 보니 초를 너무 벌려 꽂아놔서 끄기 힘들었던건가 싶기도 하다. 하여간 이로써 우리나이로 80세, 엄마의 팔순 모임이 무사히 지나갔다. 약이 과도해선지 아니면 기억력이 심히 떨어진 때문인지 걱정스러운 수준이 된 건망증도 자극할 겸 열심히 외우게 시킨 영어문장 중 하나. 아임 에이티 이어즈 올드. I'm eighty years old.

헬로우로 시작되는 내용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동생들에게 퍼돌릴만큼 신나게 읽고 연습하시기에, 이날 손주들 앞에서 뭔가 짧게 영어 스피치도 하시라고 할까 계획했으나 결국 그러진 못했다. 발음도 좋으시고 읽기는 잘 되는데 암기는 어려워. ㅠ.ㅠ  반복 연습을 시키며 내년엔 에이티원이라고 말씀드리니 싫으시단다. 만으로는 에이티잖아. 계속 에이티만 할 거야. 하긴 나도 맘같아선 계속 피프티만 하고 싶다.  

그나저나 나는 팔십세까지 몇년 남은거지? ㅠ.ㅠ 또 10년 뒤면 엄마가 구순이 되시고 난 육십대가 된다는 게 지금으로선 상상도 되질 않는다. 무섭게 흐르는 시간을 이럴 때나 실감하는 듯. 하지만 그냥 하루하루 무심하게 흘려보내며 사는 수밖에 별 뾰족한 수는 없겠다. 가능하면 나이는 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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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 저녁에 떠나서 순천에서 1박하고 9일 새벽에 순천만을 돌아본 뒤, 곧장 조계산을 오르는 빡빡한 일정에 따라 나섰다. 경기 강원 근교 산이야 뭐 마음 먹고 친구들과 스케줄 짜면 갈 수는 있겠지만, 남도 쪽에 있는 산들은 이렇게 단체로 버스 타고 가는 기회가 아니면 가보기가 쉽지 않다. 

서울 모처에서 7시30분에 출발. 밤길이고 거의 다 가서도 길이 꽤 막혀서 밤 12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버스에서 나눠준 김밥을 헐레벌떡 먹었지만 그래도 출출한 건 사실이고 결국 새벽 1시반에 라면에 계란 넣어 끓여먹고서야 뿌듯한 배로 몸을 뉘였다.

당연히 잠은 설쳤고, 계획대로 6시에 펜션을 출발해 순천만 돌아보기 시작. 으아.. 이 얼마만에 보는 여명과 일출인가.​

벌써부터 오리들이 꾸륵꾸륵 울어대며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높고 멀어서 사진엔 잘 안보이지만 맨 오른쪽 사진엔 활강하는 새 한마리가 찍혔다! 

7시 5분이 일출시간이라며 다들 헐레벌떡 용산전망대라는 곳을 오르는데... 에고에고... 날도 추웠고 길은 멀고.. 결국 맨앞 일행은 몰라도 다들 일출을 보는 건 실패했다. 그래도 올라간 보람이 있을 만큼 숲길도 풍광도 아름다웠음.

순천만 갯벌에서 자라는 갈대도 멋졌지만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동글동글한 섬과 구불구불한 물길, 멀리 보이는 섬들이 어쩜 그렇게 정겹고 에쁜지! 오른쪽 사진에서 붉게 보이는 건 '함초'라고 한다. 함초소금이 분홍색인 이유가 있었어!

전날 밤에 미리 라면을 안 먹었으면 어쩔뻔했냐고 계속 투덜댈 정도로 이미 뱃속은 허기져서 꼬르륵꼬르륵 울어대고, 방한에 신경을 덜 쓴 관계로 내려올 땐 손시리고 춥고... 아침 식당에 가자마자 꾸역꾸역 밥으로 속을 채웠다.

​다행히 조계산 정상 장군봉을 향해 가는 대신 이왕이면 여유롭게 가을산을 만끽하는 쪽으로 방향이 수정되어 선암사에서 송광사 넘어가는 길로 모두 향했다. 얼마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7대 사찰 중 하나인 선암사엘 드디어 가보는군 싶어 신이 났다. 까마득한 옛날 고딩 시절에 '여름수련회'로 갔던 통도사와 대흥사, 마곡사를 가본 걸로 친다면, 비교적 최근 답사로 다녀온 법주사, 부석사를 포함하고 이번 등산을 계기로 6개 클리어. 안동 봉정사만 가보면 되겠다. (그러나 통도사, 대흥사, 마곡사도 30여년전이 아닌 요즘 모습을 좀 보고싶다. ㅠ.ㅠ)


선암사에서 꼭 눈여겨보아야할 것들이 여럿이라고 현직 역사선생님이신 선배가 미리 준비한 동영상도 보여주고 설명도 해주는 걸 비몽사몽 대충 넘겼으나 그럼에도 선암사의 백미라는 승선교는 그 이유를 알겠더라.

승선교의 무지개 아치 안으로 쏙 들어오는 저 전각을 보려면 개울 아래로 내려가야하는데 ^^; 귀찮아서 난 내려가지 않았고 선배님들이 찍은 사진을 이렇게 퍼왔다. ㅎㅎ 내가 찍는다고 더 잘 찍을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이 사진은 내가 직접 찍었음. 파란 하늘과 앞서 걸어가는 일행들의 뒷모습과 노란 단풍이 정말 예뻤다.

올 가을은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잎들이 물들기 전에 말라버리거나 타버리거나 오그라들어서 단풍이 별로 안 예쁘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아직 단풍이 절정이 아닌 순천엔 예쁜 나무색이 정말 많았다. 

빨갛고 노란색, 그 중간색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여기저기서 탄성을 자아냄. 그러나 역시 휴대폰으로 담아온 사진들은 그 느낌을 제대로 살려내주지 못하고... 에효. 

이번에 처음 안 건 선암사가 조계종 사찰이 아니고 태고종 사찰이라는 것. 그래서 스님들이 입은 가사 색깔이 갈색이 아니고 새빨간 색이다. 태고종은 승려도 결혼을 할 수 있으니 각자 스님들별로 살림집이라고 할 수 있는 요사채가 곳곳에 나뉘어 있고 크고 작은 암자도 자잘하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런 구조의 절집은 정말 처음 보는 느낌.

 


어딜 찍어도 옆 건물 기와가 서로 겹쳐져 걸리는데 그게 또 매력이다. 한옥집 짓고 살며 처마에 나도 풍경 매달고 싶으다.. ㅠ.ㅠ 


어딜 봐도 고풍스러운 사찰의 매력이 느껴졌는데... 꼭 보아야할 것 중 하나가 원통전 모란무늬 문살이라고 해서 홀로 앞장서 다니며 마구 찾아다녔으나 실패. ㅋㅋ 결국 선배님이 가르쳐주셨다. 내가 보러 다녔을 땐 문을 열어 젖혀놓고 예불 중이어서 보였을 리가 없다. 아래 맨 오른쪽 사진이 바로 그 선암사 원통전의 모란문살이다. 진짜 정교하고 아름답고 단청을 새로 하지 않아 고색창연하고... 

선암사의 '뒷깐'까지 서둘러 구경을 마친뒤 송광사로 출발했다. 스님들이 노상 다니는 길이라 수월하다매! 기막혀서... 돌계단이 끝이 없고 구간구간 경사는 또 왜 그리 가파른지. 잘난 척 스틱 없이 오르다가 결국엔 헉헉대며 스틱을 펼쳐들고 몸을 실었다. 다행인 것은 조계산엔 중턱에 보리밥집이 있어서 굳이 도시락을 싸들고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바라보이는 산자락에도 동글동글 단풍색이 예뻤는데...


부침개와 도토리묵을 추가한 4인 상의 위용.





몇번의 헉헉대는 고비를 넘긴 끝에 깔딱고개를 넘고 넘어 '원조 보리밥집'에 도착했다. 산속에 보리밥집도 심지어 여러개! ㅋㅋ 비닐하우스를 곳곳에 짓고 그 안에 평상을 깔아놓은 식이었는데, 배도 고팠지만 우와 쌈채소도 싱싱하고 반찬이 다 맛있었다. 한잔 곁들인 동동주인지 막걸리도 환상의 맛!

아침을 배불리 먹은 뒤 1시도 안 되어 맞은 점심시간인데도 밥한 공기 다 비벼서 이 한 그릇을 싹싹 다 먹어치웠었더니만 진짜 잘먹는다고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아 예, 제가 간식은 안먹어도 밥은 엄청 잘 먹습니다요. 밥심으로 살지요.. 

이 원조집은 무려 1980년(!)부터 영업을 했대고 월요일엔 휴무란다. 도시락 없이 월요일에 조계산 등산하다 찾아가면 큰 낭패일듯. 혹시 모를 훗날을 위해 나도 기록해놓는다. (근데 과연 또 가게 될까? ㅠ.ㅠ) 



흡족하게 부른 두들기며 출발해보니 송광사까지 아직도 남은 거리가 3.5km쯤. 다시 수많은 돌계단과 비탈을 오르고 내려 드디어 송광사를 만났다. 정상만 안 갔지 거리로나 경사로 보나 힘든 등산은 똑같이 다 한 셈이었다. 다들 지치고 시간도 많이 지체되어 송광사 경내는 최대한 후다닥 돌아보기로. 

초록색부터 연두색, 노란색, 선홍색까지 모두 매달고 있는 환상적인 단풍나무들이 곳곳에 있었으나... 사진으로 찍으면 이 정도가 최선이다. ㅠ.ㅠ

​​선암사의 고색창연함에 너무 감탄했던 모양인지, 다분히 새것으로 갈아엎어 현대식 느낌이 풀풀나는 송광사는 상대적으로 별로 감흥이 없었다. 나름 멋진 건축이다 싶었던 회랑과 누각의 위용은 이 정도... ​

내가 귀찮아서 휙휙 찍은 사진들이 위와 같다면 다른 분들이 심혈을 기울여 찍은 모습은 또 좀 다르다. ^^; 

왼쪽은 내가 찍은 선암사의 해우소. 신발 벗고 들어가야 함! 그래서 난 안들어갔고.. 가보면 엄청 높아서 고소공포증이 느껴진다고 한다. 안 들어가길 잘했지. ㅋ

아이폰으로 대충 난사누군가 신형폰으로 찍어 공유해준 사진

이날은 아침 6시부터 펜션을 뛰쳐나가 집에 11시반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3만7천여보를 걸었더라. 하산 길에 무릎보호대를 했음에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른쪽 무릎이 아파 낑낑거렸고, 다음날 당연히 근육통에 시달렸다. 하지만 1박 2일간 이렇게 알차게 돌아보는 일정이 또 어딨겠나 싶어서 뿌듯했던 가을나들이. 단풍든 나무는 정말 실컷 다 보아서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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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도 식탐

놀잇감 2018. 7. 25. 21:55

​내 인스타그램엔 주로 먹거리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지만 하루에 인스타에 사진 여러개를 올리는 건 좀 민망하다. 그렇다고 블로그 포스팅 하루에 몇 개나 하는 건 안 민망하냐, 그건 또 아니지만... +_+ 블로그는 아무래도 부러 찾아 읽는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노출되는 매체이고, 인스타그램은 접속과 동시에 타임라인에 여러사람의 사진이 무조건 주르륵 떠버리니까 뭔가 많이 올리면 폐를 끼치는 기분?

하여간에 각설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열심히 해야하는데 또 하기가 싫어져서 (적당한 단어와 문장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핑계다 ㅠ.ㅠ) 오늘 해먹은 과카몰리 사진을 자랑해야겠다. 지난번 파피네 집들이에서 하도 맛있게 먹은 나초와 과카몰리가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마트 가서 밥블레스유의 지령을 받은 듯 나도 모르게 완도 활전복을 집어든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새 아보카도와 레몬, 베이컨을 카트에 담고 있더군. ㅎㅎㅎㅎ

그러고는 오늘 점심 때, 두부와 우유를 갈아 야매 콩국수를 해먹을까 싶었던 마음을 접고 과카몰리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아보카도 두개 중 하나가 좀 덜 숙성되어 잘 안 으깨졌지만 하는 수 없지. 파피한테 레시피를 좀 더 자세히 묻지 않았던 걸 후회하며 대~에충... 베이컨을 다져 볶아 키친타월에 기름을 빼놓고는 양파와 방울토마토 적당히 썰어 넣고 소금, 후추, 레몬즙 뿌려 과카몰리를 만들었다. 나초에 듬뿍 얹어먹듯, 오픈 샌드위치로 와구와구 먹을 작정으로다가. 

해서 미리 식빵 두조각을 넷으로 자른 뒤 과카몰리를 얹었다. ^^; 여기다 미숫가루 탄 우유까지 한끼로 먹으니 어휴 배불러...







좀 남은 과카몰리는 또 저녁때 양상추 샐러드에 얹어 먹었음.

빵에 얹어 먹을 땐 잘 몰랐는데 소금을 넘 많이 넣었는지 좀 짜더라. 암튼 파피한테 팁을 얻은 이 과카몰리의 매력은 쫄깃하게 씹히는 베이컨이 아닐지. 아보카도 사다가 절반 뚝 잘라서 껍질째 접시에 담아 발사믹 소스 살짝 끼얹어 숟갈로 퍼먹는 걸 '반찬'이라 우길 때도 있는데... 좀 귀찮긴 해도 여름이 가기 전에 한번 더 '시원한 점심 메뉴'로 과카몰리 샌드위치는 시도해봐야겠다.











밥블레스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프로그램 보다가 또 혹해서 삼복더위에 해먹은 음식이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잡채. -_-;; 최화정이 했던 말인가, 이영자가 했던 말인가.. 암튼 잔치 음식의 완성은 갈비찜과 잡채라는 말을 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명절 때 갈비찜과 잡채가 없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왜 있지 않은가? 사실 해마다 내 생일 즈음엔 왕비마마가 말짱하게 건강했던 적이 드문 것 같다. 해서 생일날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는 '요식 행위' 역시 매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왕비마마가 살림살이에서 손 놓은지가 몇년인데! 사실 간도 못맞추고 맛도 잘 못내신다. 그런데도 아들들이나 며느리들이, 혹은 친척들이 고명딸 생일에 엄니가 미역국은 끓여주었느냐고 묻는 질문에 흔쾌히 대답을 못하는 상황 또한 왕비마마가 못 견딘다는 것이 문제다. (아 제발 다들 좀 생일에 미역국 먹었느냐는 타령 좀 그만 하라규!)

아 난 정말 왜 요리를 잘해가지고! ㅋㅋ

째뜬 그래서 올해도 생일 전날 밤에 꾸역꾸역 노친네는 미역을 불리고 쇠고기를 참기름에 볶아 미역국을 끓여냈고(물론 나의 코치가 필요했다 ㅎㅎ), 생일날 아침 모녀가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그렇다면 또 내가 가만 있을 순 없지 싶어 아침부터 복닥복닥 땀흘려 만든 것이 바로 이 잡채다. ㅎㅎㅎ 갈비찜은 달아서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잡채는 가끔 먹고 싶어져서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만드는 반찬인데 뭐 내 생일 기념으로 못 만들쏘냐! 

칼질을 좀 무서워해서 채썰기가 서툴러서 그렇지 맛은 훌륭했다. 

아침부터 꾸역꾸역 미역국과 잡채에 밥을 먹고 나가 점심 때 또 함박스테이크를 먹어댔으며, 하필 초복날이라 저녁때 또 삼계탕을 끓였더니만... 요즘 가뜩이나 부실한 위는 탈이 나고 말았었다. 세끼를 다 과식하다니 원 멍청하기 이를 데가 없다. ㅠ.ㅠ


의식의 흐름처럼 또 이어서 생각나는 음식이 있으니 그것은 그 다음날 바로 해먹은 월남쌈이다. ㅎㅎㅎㅎ

생일이자 초복날 도저히 삼계탕의 닭을  다 먹지 못하고 죽만 좀 퍼먹은 뒤 다음 날에도 닭죽으로 연명했었는데;;; 아무리 영계라도 퍽퍽한 닭가슴살의 처리 방법이 고민이었다. 그렇다면 라이스페이퍼에 싸먹지 뭐... ^^; 쪽쪽 찢어 맛살과 함께 월남쌈을 해먹었단 얘기다. 

폭염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끼니를 건너뛸 수는 없다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더워도 입맛이 없어도 또 꾸역꾸역 먹으면 먹어진다는 게, 먹고 싶은 음식이 끊임없이 생각난다는 게 어쩐지 식충이 같아서 부끄럽다. ​하지만 이영자의 외침대로 인생 뭐 있겠냐고!더욱이 이젠 차츰 늙고 병들어가는 것밖엔 남지 않았다고 생각이 드는 중년의 인생이기에 더더욱 하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은 가능한 한 누리고 사는 게 옳다고 우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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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인 토요일. 매일같이 호텔 조식을 챙겨먹던 습관을 깨면 안된다면서 ^^; 친구는 전날 마켓에서 사온 버터식빵을 굽고 달걀 프라이 한개를 곁들여 커피와 함께 아침상을 차려주었다. 

원래는 친구 부모님 댁에 들러서 인사도 드리고 가져간 홍삼 선물도 전달할 계획이었지만, 쿨한 어머니께서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하셨다. 몸이 좋지 않아 손님 맞을 형편과 기분이 아니라고... 친정 엄마랑 만나면 괜한 잔소리 듣는 게 일이라면서 친구 S도 차라리 잘됐다고 했다. 물론 사실 나도 어르신들께 인사드리는 거 부담스럽고 싫었다! 만세이~ ㅎㅎ

더욱 여유로운 아침 시간... 전날 돌려두고 잔 빨래를 건조기로 옮겨 말린 뒤 차곡차곡 개며 벌써부터 슬슬 돌아갈 짐가방을 쌌다. 외출해서 종일 돌아다니고 밤중에 들어오면 짐 챙길 시간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

이날의 일정은 일단 S의 LA 친구들이자 나와도 안면이 있는 J님의 집들이에 가는 것이었다. 각자 먹을 것을 한두 가지 담당해 싸가지고 가는 식이었는데, 친구S는 워낙 요리와도 담쌓은 데다 전날까지 빡세게 서부일주 로드트립을 하고 온 걸 감안하여 디저트와 과일을 '사가기로' 담당했었다.

행선지는 그라나다힐스애서 LA를 거쳐 남쪽으로 좀 더 내려가야하는 피코 리베라. 주말이라 차가 안막히면 4,50분쯤 걸리는 곳이란다. 

화창하고 구름 한점 없는 날씨! 드디어 하늘색 미니의 뚜껑을 열고 좀 달려보기로 했다. 미친년 꽃다발처럼 너풀거리는 머리칼과 볼살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일종의 실험? ㅋㅋ

이날 찍은 미니 시승 사진을 여행기 첫편에도 올렸었지만 ^^; 암튼 속도계에 보이듯이 시속 2,30킬로미터까지만 뚜껑 열고 달리기에 적당한 느낌이었다. 시속 40킬로미터를 넘어서면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근데 또 너무 차가 빨리 달릴 땐 바람의 저항 때문인지 뚜껑을 덮는 게 불가능하단다. 로컬(지방도로의 의미?)에서 기분 낸다고 뚜껑 열고 달리다 어리바리 닫을 때를 때를 놓쳐 그대로 고속도로를 타게 되면 꼼짝없이 목적지까지 미친바람을 맞으며 가는 수밖에 없다고... ㅎㅎ

친구가 이미 겪어본 일이라나. 해서 우린 고속도로 진입 전에 얼른 뚜껑을 닫고 음악을 틀었다. 으음.. 미니를 장만한다고 해도 난 원래 컨버터블을 살 마음이 없었지만, 컨버터블이 아니어도 장거리 고속도로를 달리는 용으로 만들어진 차는 아니란 걸 완전 실감했다. 승차감이 어찌나 나쁜지! 게다가 뒷좌석은 또 얼마나 좁은지! ㅋㅋㅋ 예쁘니깐 다 용서가 되는 차이긴 하지만, 클래식하고 귀여운 외관과 달리 운전하는 느낌도 꽤나 육중하고, 일단 내 형편으론 한국 가격이 너무 비싸! 결국 이때를 기점으로 미니쿠페는 나의 (현실을 감안한) 드림카 목록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ㅠ.ㅠ

LA를 지났을 때쯤이던가... 고속도로에서 배트맨이 탔을 성 싶은 길쭉하고 희한한 차 발견! 그러나 워낙 빨리 슝~ 지나가버려 제대로 못찍었다. 미국 고속도로에선 생김새도 색깔도 워낙 다양한 자동차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맥퀸을 비롯한 애니메이션 <카> 주인공들이 막 도로에서 돌아다녀! ㅎㅎ

J님의 타운하우스엔 우리가 1착으로 도착. 한국에서 공수한 조각보와 커튼으로 정갈하게 꾸며진 집구경에 나섰다. 한국도 타운하우스가 유행이지만... 나도 능력이 된다면 아파트의 편리함과 단독주택의 독립성이 혼합된 타운하우스에 살고싶다. ㅠ.ㅠ 

곧이어 도착하신 분들이 한아름씩 안고 온 음식 덕분에 화려하고 어마어마해진 잔칫상을 보라! +_+ 이 중 떡볶이와 김밥만 '사'가지고 온 것이고 나머지는 다 손수 놀라운 솜씨로 만들어 온 음식들이다. 정말.. 배가 찢어지도록 과식을 했다. 친구 S는 넘 느끼하다고 괴로워했지만 내 입엔 해산물 크림 파스타가 단연 최고! 느무느무 진하고 맛있고 푸짐했다. ㅎㅎ

맛있는 두 종류 김치부터 시계방향으로... 해산물 크림 파스타, 떡볶이, 도토리묵 무침, 잡채, 김밥, 오징어 및 야채 튀김의 순이다. 내가 찍은 사진 아님 ^^;;

우리가 사간 케이크는 결국 꺼내지도 못했던 디저트 테이블...

예쁜 약식 또한 C님이 손수 만들어오신 것인데... 한국서 날아온 나 때문에 죄다 특별히 좀 더 신경을 쓰셨다고 해서 감동을 받았다. 내가 뭐라고;; ㅎㅎ 

배가 너무 불러서 거의 각자 여기저기 소파와 식탁 의자에 널브러져 괴로워하던 차.. 우리는 언니들의 호출을 받았다. 두 언니는 <라라랜드>에 나온 명소인 해변과 시장(?)을 돌아보고 쇼핑도 하며 하루를 보냈으니, 출국 전날 저녁은 다시 또 다 함께 만찬을 즐겨야하지 않겠냐는 것. 암요, 그래야죠. 

LA 시내 E언니 집에 친구의 차를 세워놓고 다시 넷이 한 차로 옮겨타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LA 바로 옆에 있는 올드 패서디나. 쇼핑가와 음식점들이 많이 모여있는 나름 관광지? 고급 부티크도 있고, 일반 쇼핑몰도 많은 거리엔 여행 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아시아인들이 특히 바글바글거렸다. 

큰 길에서 발레파킹을 부탁한 뒤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자 곳곳에 예쁜 카페와 음식점들이 이어졌다. 아직 해지려면 먼 캘리포니아 봄의 오후 햇살은 6시가 다 되어도 뜨겁고 강렬했다. 

우리의 마지막 만찬은 또 다시 이탈리아 음식 사촌인 그리스 음식. ㅋㅋ 미국식 대형 스테이크를 부담스러워하니깐 젤 만만한 게 파스타 종류일수밖에. E언니가 예약해둔 '산토리니'는 K언니도, 친구 S도 예전에 가본 곳이라고 했다. 나만 처음이야! S는 배가 너무 불러서 늘 시키던 그릴드 깔라마리 (구운 새끼 오징어? ㅋㅋ) 한두 마리만 먹고 말 거라며.. 2주 가까이 이어지는 먹부림 고문에 괴로워했다.   

식당에 올라갈 때만 해도 내려와선 야심차게 디저트로 젤라토를 먹어야지 했으나 나중엔 생각도 나지 않았다 ㅎㅎ



그치만 마지막 만찬인데 그냥 맨숭맨숭 깨작거릴 순 없지... 저는 상그리아도 마실래요! 

이 사진의 햇살과 분위기를 보고 누군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 갔다 왔느냐고 물었었다. 으음... 이왕이면 그리스라고 해주지..

째뜬 이 식당의 이름은 '산토리니'였다니까!

술이 약한 S는 곧 운전을 해야하고, 계속 감기로 고생한 K언니도 알코올은 조심해야 하므로 상그리아는 2잔만 시켰는데, 하필 안에 든 과일 중에 망고가 보여서... 망고 알레르기가 있는 E언니는 맛만 살짝 보는 정도로 그쳐야 했다. 

내 입엔 완전 맛있었는데... 친구 S는 한 모금 마셔보더니 독해서 싫으시다고...

연일 밤마다 술을 마셔댄 덕분에 여행기간 동안엔 나의 간이 튼튼해졌거나 혹은 알코올에 대한 면역이 생겼거나(둘 다 근거 없는 억측임을 잘 안다) 중독이 된 건지 정말로 저녁만 되면 술이 땡겼었고, 과음한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늘 거뜬했다. 요샌 밤에 맥주 한 캔 마시고도 다음날 힘들 때가 많은데.. 쩝.. ㅠ.ㅠ 



K언니가 이날 먹은 메뉴를 나중에 깔끔하게 정리해 보내준 사진이다. 

이제 보니 배부르다면서 많이도 시켰군.. ㅎㅎ 지중해식이라서 건강에 좋다고, 다 살 안찌는 음식이라면서 E언니가 또 이것저것 시켰던 것 같다. 주말에 예약씩이나 하고 와서 네 사람이 음식을 너무 적게 시키는 건 예의가 아니라면서.. ㅎㅎ 하긴, 총 음식값의 20-25%를 팁으로 주어야하니 음식을 적게 시킬수록 팁도 적어질테니 그말도 맞다. 암튼 이번 여행에선 매번 밥먹고 내가 팁을 계산해야하는 스트레스가 없어서 느무도 행복했다! 모든 귀찮은 일을 도맡아준 E언니한테 축복을!


오른쪽은 에피타이저 중에서 일행들이 가장 좋아라 먹곤 한다는 구운오징어. 그릴드 깔라마리 클로즈업한 거다.

개인접시에 덜어서 K언니가 따로 찍어 공유해준 사진. 이게 오징어라고? 꼴뚜기 아닌가? 내가 괜히 따지고 들며 궁금해하자 친구가 그냥 좀 먹으라고... 너 또 집에 가서 이거 해먹을라 그러지! 놀려댔다.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좀 볶다가 레몬갈릭 소스 뿌리고 시금치 넣으면 완성될 것 같긴 하다 ^___^




마지막날 기념으로  친구와 나의 사진을 찍어 주겠노라고 휴대폰을 들이대는 K언니에게 거의 보름간 얼굴이 이따만한 보름달이 되었다고 하소연하는 순간이 찍혔다. 너무 웃기기도 하고,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그리워서 스티커를 활용한답시고 마구 공개한다. 

한국에서 간 나는 덥다고 반팔차림으로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데, LA주민인 친구는 춥다고 외투를 걸쳤다. 하긴 전날까지도 아침저녁으론 오리털패딩을 입고 다녔던 친구다. 

6시부터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리가 나올 때쯤엔 바글바글 음식점 테라스 자리가 한군데도 빈 테이블 없이 꽉 들어찼는데,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은 정말 우리밖에 없더라. 서로 '비쥬'를 하며 쪽쪽 친한 척 한 사이도 자리잡고 앉으면, 각자 시킨 음식만 죽어라 먹을 뿐, 절대 한 입 먹어볼래 권하는 법도 없다. ^^;; 우린 또 그게 신기해서 주변 테이블 사람들이 '각자' 매몰차게 밥먹는 모습을 구경했다. 와.. 어떻게 피자도 한 조각 안 나눠주고 혼자 다 먹냐며... ㅎㅎ

식당에서 나와선 부른 배를 꺼뜨리느라 잠시 쇼핑을 하기로 했다. 처음엔 눈요기만 할 작정이었는데;; K언니가 남편 선물이며 딸 선물을 마구 고르기 시작하면서, 나도 괜히 갭에 들어가 할인하는 품목 중에 긴 랩스커트와 스트라이프 티셔츠, 모자까지 충동구매를 했다. 그러고 보니 요번 여행에서 치즈와 트러플 오일 말고는 나를 위해  처음 한 쇼핑이었다! 노느라고 쇼핑할 시간도 없는 여행이었구나야...

눈요기하다가 나중엔 언니들과 헤어져 전화통화를 하고서야 겨우 다시 만나, 발레 파킹 부탁했던 자리로 돌아왔는데 와... 우리 앞에서 차를 기다리던 두 아시아인(중국어를 썼다) 아가씨들은 옷부터 핸드백, 신발까지 샤넬로 도배를 했더군. 그러고도 명품 브랜드 쇼핑백을 바리바리 손에 들고 있었다. 어머나 관광객 아닌가봐, 무슨 차 타고 왔나 보자.. 그러면서 지켜보았는데 역시나 주차요원이 가져다준 차도 벤츠였다. 미국에선 벤츠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싸다지만 흠... 

중국 갑부들이 워낙 많아져서 유학보낸 자식들 중엔 그렇게 고급 차와 명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고 다니는 애들이 많다고 했다. 차이나 머니의 힘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도 구경하다니 오 놀라워라.

E언니의 차에 올라 다시 LA 시내로 들어갔다가, 헤어져 친구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암튼 뭐 그렇게 뿌듯하고 배부르고 꽉찬 여행의 마지막 밤이 깊어갔다. 집에 와서 마저 짐을 정리하며 냉장고에 남겨두었던 캔맥주를 또 마셨던가 말았던가... 그 기억은 가물가물.

친구가 팬클럽 활동(?) ^^ 때문에 휴가때마다 거의 1년에 한번은 한국에 나오고 있기 때문에 헤어짐의 아쉬움이 덜했던 것 같다. 예전엔 내가 미국엘 가든 친구가 한국엘 나오든 최소 3, 4년은 있어야 얼굴본다는 생각에 울컥 눈물이 쏟아지며 이별을 아쉬워했지만, 국내 있는 친구들보다 카톡도 더 자주하지, 1년에 한번 한국에 오면 우리집에서 아예 숙식하며 지내지... 그러다 보니 곧 또 볼텐데 뭐! 그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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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 나파밸리

여행담 2017. 12. 27. 21:42

시작한 김에 얼른 또 이어 써보자! ㅋㅋ 오늘이 12월 27일이니 딱 8개월 전의 일이다.

이렇게 혹독한 한국의 강추위 속에서 캘리포니아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게 어쩐지 비현실적인 느낌? 여행을 다녀온 게 벌써 너무도 까마득한데 올해였다니 에효..

암튼 이젠 7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스르르 눈이 떠지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수첩에 써있다. ㅎㅎ)

숙박객의 아침식사는 방키를 카드 리더기에 삐리릭~ 읽혀야 들어갈 수 있는 별도의 컨시어지 라운지에 마련되어 있었다. 비즈니스로 온 손님들이 많은 듯, 정장 차림의 남녀들도 있고 약간 민망한 조깅복 차림으로 들어오는 여자들도 있고... 과일과 머핀, 토스트, 스크램블드 에그와 삶은 달걀 정도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쿠키도 있었는데 대박 맛이 없어서 몇개 집어왔다 그냥 접시에 남겨두고 나오며 코스트코 쿠키 같다고 깔깔댔다. 그나마 초록사과 노란사과 빨간 사과 종류별로 사과가 싱싱해서 내가 특히 신나하며 골고루 잘라 먹고 한개 더 챙겨갖고 나왔다.

아마도 이것은 사이프러스 나무겠지?

오전 일정은 역시나 인근 소도시인 연트빌(Yountville)과 세인트헬레나(St. Helena)를 둘러보는 것. 내 머릿속에 상상한 나파밸리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와인 산지처럼 꽤 높은 언덕지형의 가파른 경사면에 키작은 포도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ㅎㅎ 캘리포니아 지형이 어딜 가겠나. 대체로 나지막한 언덕들이 거의 평지처럼 이어지고, 곳곳에 크고 작은 포도원들이 불쑥불쑥 등장했다. 그러고는 핫도그처럼 길쭉하게 생긴 가로수들이 귀엽게 서 있고... 우린 그 사이를 희희낙락 달려가고...


이날 들른 소도시 3군데, 연트빌, 세인트헬레나, 칼리스토가는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나파밸리에 오면 다들 들르는 관광지인 듯, 곳곳에 기념품 가게와 특산품(주로 유제품과 발사믹 식초 따위) 가게가 있고 알록달록한 트롤리 버스가 간간히 돌아다녔다. (하긴 서울 강남역에서도 우스꽝스럽게 트롤리 모양으로 장식한 버스가 돌아다니는 걸 본 적 있다!)


드넓은 한강에 익숙한 내 눈엔 애개개... 울 동네 개천이랑 비슷하군;;

바로 ​내가 딱 원하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미니 발견! 

​강가에 이런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앞에 산책로가 있고... 날씨는 화창하고 기분이가 삼삼했다. ^^;;

치즈나 버터, 와인, 발사믹식초, 수제비누 따위를 파는 ​특산품 가게에 들어가보면 꼭 생화를 같이 팔고 있었다. 완전 싱싱한 꽃들이 별로 비싸지도 않아! 

내가 양띠라서 그런지 양 인형을 보면 괜히 반갑다. 진열장 유리에 휴대폰을 딱 붙이고 찍어왔네그려.  

​연트빌 곳곳엔 공공미술(?)의 일환인지 여기저기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재미난 인물상도 있고, 이렇게 과일바구니도 있고... 이때쯤엔 언니들이 사진 찍게 얼른 가서 서 봐라 그러면, 예이~ 그럼서 달려가 찍히는 바람에 웬만한 조각상 옆에 다 내 얼굴이 들어 있어서 차마 공개를 못하겠다. ㅎㅎ​

점심은 연트빌과 뉴욕 딱 두곳에만 있다는 유명한 부숑(Bouchon)  베이커리에서 빵과 커피로 때우기로 했다. ​

노란 건물이 바로 그 부숑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빵과 커피를 사, 바로 옆 마당 테이블이나 길거리 벤치에서 먹던데... 바게트가 좀 맛있는 건 인정하겠으나 딴 빵이 그렇게나 맛있는 줄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맛있는 빵집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ㅎㅎㅎ

어쩌면 내가 그다지 빵순이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날의 내 감흥인듯... 빵 사진도 참 이렇게나 성의 없게 찍어놓았군. 



빵은 별 인상깊지 않았어도 날씨가 참으로 아름다웠고 눈돌리면 보이는 풍경도 다 예뻤다. 간간이 여기가 미국이구나 싶은 컨버터블 자동차를 보면 촌스럽게 당연히 휴대폰을 들이대게 되고.. ㅎㅎ 





​나 어릴 적 '총채'라고 불렀던 먼지 떨이개가 생각나는 야자수와 푸른 하늘과 연초록의 잎사귀들... 아이고 그리워라. 













세인트헬레나는 저녁 먹을 식당을 골라두고 다시 가기로 했기 때문인지 사진이 별로 없다.  '메인 스트리트'라고 해봤자 왕복 4차로인 도로 양쪽을 죽 걸어 올라갔다 걸어 내려오며 가게마다 들어가보고 갤러리도 하나 들어갔었는데 흠...

세인트헬레나에서 얼결에 들어간 갤러리. 철사 조형물이 멋졌다


암튼 오후 접어들어 다음 행선지는 주변에 다닥다닥 붙은 소도시인 칼리스토가(Calistoga). 예약해둔 와이너리 방문을 위함이었다. 성처럼 생긴 와이너리 이름은 카스텔로 디 아모로사(Castello di Amorosa). 벽돌로 지은 성채 건물보다 우리 눈에 먼저 띄인 건 보리수 아래 돌아다니고 있는 귀여운 양들! 와이너리에 웬 양이냐며 신기해했는데;; 다들 좋아하는 걸 보면 마케팅 신의 한수렸다. ㅎㅎ


어딜 가든 이런 회랑(?) 주랑(?)으로 이어진 공간을 좋아한다. 성채 안뜰 한 가운데 놓인 고풍스런 우물도 마음에 들고...  


바보 인증샷이 되고만 기념 사진 ㅠ.ㅠ

간단하게 건물을 둘러본 뒤 와인 시음장인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일정이었는데... 이렇게 연회실에 앉아 기념촬영을 한 나는 아 글쎄, 와인 테이스팅 티켓을 잃어버렸다. ㅠ.ㅠ 

분명 브로셔랑 같이 손에 들고 있었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손에 든 게 없어! 앗... 전날 셔츠를 잃어버릴 뻔한 순간에 이어진 대박삽질이었다. 

테이블에 올려두고 왔나보다 돌아갔지만, 흔적도 없었다. 이미 누가 집어가버린 것!

와이너리 입장만 할 수 있는 티켓이 있고

2잔만 시음할 수 있는 티켓이 있고

5잔, 10잔... 시음할 수 있는 티켓이 가격대별로 다 차이가 있는데 우린 5잔 용 $25짜리 티켓을 끊었었다. 

이 사진을 찍어준 K언니가 나중에 사진을 확대해보더니, 이땐 분명 브로셔랑 노란색 티켓이 내 앞에 놓여 있다고.. 누가 집어간 게 틀림없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5잔 더 마셨겠지. 흥!

째뜬 다행인 건 E언니가 4사람 티켓을 끊은 신용카드 영수증을 갖고 있어서 별 탈 없이 시음은 할 수 있었다. 매니저한테 영수증 보여주며 티켓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니 별로 따지지도 않고 노 프러블럼! 이라고 ㅠ.ㅠ 멍청하게 사진 찍다 티켓을 두고 나왔다는 자괴감에 빠져 거의 멘붕.. 낙담했던 게 무색해졌다. ㅎㅎ


암튼 시음장인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내부가 이렇게 생겼다. ​


친구는 옆에서 계속 달달한 와인만 시켜 마시는 동안, 나는 꿋꿋하게 드라이한 걸로 달라고 해서 벌컥벌컥 마셨다.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비앙코.. 와서 보니 수첩에 포도 품종만 적어놨네 ㅋㅋ 

그 가운데 무언지 모를 와인잔도 하나 찍어왔다. 딱 시음할 만큼 조만큼씩밖에 안 따라준다. ^___^

그래도 낮술이라 다섯잔 마시고 났더니 알딸딸... 

술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E언니와 친구S는 둘 다 샛분홍색이 되어 바로 운전해도 괜찮을까 잠시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금방 와인 몇 병 사들고 와이너리를 벗어났다. 





와이너리 이름도 좀 그렇긴 했지만... 사진을 다시 보니 캘리포니아가 아니고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다. ㅎㅎ



아마도 메도우랜드 가는 길..

세인트헬레나에서 미슐랭 별 2개짜리 식당에 6시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우린 다시 시간을 좀 더 때워야했다. 

해서 찾아간 곳은 근처 휴양림 비슷한 메도우랜드(Meadowland). 

숲 잎구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야외수영장이 있고, 군데군데 펜션인지 콘도인지 작은 오두막집들이 나무들 사이에 서 있었다. 고급스런 레스토랑 겸 카페 건물도 있었지만 굳이 들어가서 차를 마실 기분도 아니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그냥 쉬엄쉬엄 아스팔트 길 따라 걸으며 저 나무는 이름이 뭘까, 저 꽃은 왜 저렇게 크냐 그런 이야기를 한가롭게 주고받았다.

순전히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기 위한 배꺼뜨리기용 산책과 드라이브. ㅎㅎㅎ  









대망의 미슐랭 2스타 음식점 이름은 소박하게도 '마켓'. 식당 이름이 '시장'이란 얘기다. ㅎㅎㅎ 이름 때문인지 엄청 예술스러운(?)자태로 나오려나 기대했던 음식들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고, 맛도 엄청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체로 입이 까탈스럽지 않은데다가 서양 음식이 맛있어봤자지 뭐.. 이런 느낌? ㅋㅋ  느끼한 서양음식을 괴로워하는 친구 S는 미슐랭이라고 해서 비싸기만 하지, 흔하게 먹는 스테이크집이랑 뭐가 다르냐고 투덜투덜... 가성비를 따진다면 그럴만도 했던 것 같다. 이 정도 샐러드는 나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뎁! ㅋㅋㅋ

스테이크와 파스타도 더 시켰을텐데 K언니에게 넘겨받은 사진도 달랑 이 두장 뿐이다. 연어구이가 맛있어봤자지... 파스타가 맛있어 봤자지... 우린 막 이제 이런 분위기였다. 나는 딱히 김치나 한식이 땡기지 않았는데, 촌스런 입맛의 S때문에 모험은 거의 못하고 거의 이탈리안 음식점만 다니다 보니 다 그나물에 그밥처럼 느껴졌던 거다. S는 빨리 LA로 돌아가 짱뽕도 먹고 싶고, 김치도 실컷 먹고 싶다고... 아니 신라면을 끓여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안 그래도 내일이면 곧 돌아갈 거거든! 


마지막으로 이날 돌아다닌소도시 세 군데 중에서 가장 예뻐서 좀 살아보고 싶었던 연트빌 사진 두 장 더 투척.

이것도 연트빌 맞겠지? 세인트헬레나였던 것도 같고 ㅠ.ㅠ


암튼 거리와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멋진 클래식카를 발견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자동차 번호판이다. JIM♥CYN아마도 지미와 신디가 아닐까나? 냉소적인 우리는 저 번호판을 보면서 소싯적에 사랑이 넘쳐서 웃돈 주고 저런 번호판을(미국에선 돈을 내고 원하는 번호와 알파벳을 넣어 자동차번호판을 신청할 수 있댄다) 만들었겠지만 아마 지금쯤 이혼했을 거야.. 라고 일갈했다. 위자료로 전재산 아내한테 다 넘겨주고, 남편에겐 달랑 이 차 한대만 남아 배불뚝이 할아버지가 되도록 타고 다니는 거지.. (저 정도 클래식 카를 몰려면 부품 값이며 해서 꽤 돈이 많이 든다는 것 같다.). 그러면서 굳이 저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건 전처에 대한 사랑이나 미련 때문이라기보다는 귀찮아서일 거야... (상상력도 참... )  

헐.. 근데 조금 있다가 머리가 새하얀 백발의 늘씬한 멋쟁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분명 지미와 신디가 틀림없어 보이는!) 손을 잡고 걸어와 이 차에 올랐다. 할아버지는 우아하게 조수석 차문을 열고 할머니를 먼저 태운 뒤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에 탔다. 오마나, 옹졸한 우리의 오해였어! 번호판으로도 생색내고 싶을 만큼... 여전히 사랑 넘치는 아름다운 두 사람이었던 거야? ㅎㅎㅎ 우린 괜히 민망해졌다. 





이제 여행기도 겨우 사흘치가 남았다. 올해 안에 끝낼 수 있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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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 나파밸리

여행담 2017. 12. 27. 19:50

묵은 여행기를 다 마무리하기 전엔 블로그에 뭔가를 적기도 좀 떨떠름한데 와.. 정말 이제 5개월도 더 지난 이야기를 하려니 참 민망하다.

게다가 아무런 업데이트도 없는 블로그에 방문자 수는 왜 저런 걸까? ㅠ.ㅠ 실 방문자 수가 아니라 뭔가 티스토리 시스템과 관련된 '야로가 있는' 허수가 틀림없다. 뜬금없이 무서운 댓글이나 달리고 에효..

암튼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건 끝을 내보련다. 이요님의 몽골 여행기를 재미나게 읽으며 다시 여행가고 싶단 욕망이 꿈틀거렸고...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지난 여행 추억이라도 더듬어보자 싶어졌다. 가을 탓인지 요즘 특히나 사는 낙이 뭘까, 종종 우울감헤 휩싸인다. 이렇게 하루하루 이래저래 사는 소소한 낙이 다 사라지면, 누구에게나 어차피 맨 끄트머리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인생을 하루하루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들까 요즘엔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 더 맥이 빠진다. 그러니 더더욱 행복했던 그날의 기억을 복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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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8월이다. 그러고도 마무리를 못하고 또 넉달이 흘렀다. ㅠ.ㅠ 
올해 안에 여행기를 몰아서 다 쓰는 것을 며칠 남은 2017년의 목표로 삼겠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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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수첩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ㅠ.ㅠ) 아침 7시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졌으나 침대에서 꼼지락거리다 7시 반에 이부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미국 서부(특히 캘리포니아)의 수돗물은 대체로 석회가 많이 섞여 씻고 나면 피부도 머리칼도 뻣뻣해지기 일쑤다. 해서 여행기간 내내 거의 밤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잘 말린 뒤 최대한 얌전히 자고 일어나 다음날엔 세수와 양치만 하는 꼼수를 썼더랬다. 아침에 또 샤워를 하기엔 호텔 방을 하나만 쓰는 경우 네 여자의 욕실 사용시간이 너무 길어지기도 했고, 샤워는 후딱 한다고 쳐도 일단 머리 말리기가 귀찮아서! 

마침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서 이게 가능했지 요즘처럼 다시 숏커트라면 무조건 제비집이 생겨나 어쩔 수 없이 아침에 또 머리만이라도 감아야했을 거다. 그나마 옛날엔 미쿡 호텔에 샤워꼭지가 죄다 벽에 높이 고정되어 있어서 머리만 감는 게 불가능했지만 ^^; 간만에 가보니 요샌 호스 달린 샤워기로 바뀌어 있더군. 해서 가끔 머리를 너무 비비고 자 난감한 모양새가 됐을 땐 아침에 머리만 감는 일도 있었다.

하여간.. 대충 씻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 조식 뷔페를 먹었다. 딱히 인상적이지 않은 메뉴였는지 수첩에 기록도 없고 사진도 없다. ㅎㅎㅎ 다들 습관처럼 바나나는 하나씩 챙겨 가지고 나온 것 같은데..  

전날도 흐리더니 메드퍼드를 떠날 때도 다시 비가 내렸다. E언니는 나파밸리는 연중내내 화창하고 맑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우릴 안심시켰다. 또 다시 수백킬로미터를 달려야하는 대장정의 길... 전날에 이어 차안에서 간단히 바나나 등등으로 점심을 때웠고, 휴게소 대신 중간 즈음 화장실 이용을 위해 스타벅스엘 들렀다. 

그런데... 이날부터 나의 두뇌는 자꾸만 오작동을 시작한다. 아 글쎄 스타벅스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랑 마들렌을 먹은 뒤 차에 타고 보니 겉에 입었던 셔츠를 그냥 소파 뒤에 걸어놓고 나온 게 아닌가. 출발하기 전에 어랏, 내 옷 어딨지? 생각했으니 망정이지.. ㅠ.ㅠ

K언니가 걱정했다. 아니 우리 중에 제일 총명한 니가 이러면 우린 어쩌니... ㅋㅋ 아니나다를까 이후 나의 삽질은 계속된다. ㅠ.ㅠ

E언니의 말마따나 구름 한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늦은 오후 드디어 나파밸리에 도착. 

Marriott Napa Valley 호텔 1129호에 체크인했다. 땅 넓고 싼 지역엔 호텔들이 죄다 나즈막히 옆으로만 길고 넓게(여긴 달랑 2층 건물이었던가..) 지어져 있었지만1층방에 묵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와인으로 유명한 나파밸리답게 호텔 입구에도 막 포도나부가 정원수로 자라고 있었다. 앙증맞은 포도도 송알송알 맺혀 있고... ㅎㅎ

아 근데 참 사진 못찍는다 ㅋㅋ

걸어가며 대충 휘갈겨(?) 찍으니 이럴밖에. 뭔가 좀 잘 찍어보려면 여러 장 난사해서 하나쯤 건지고, 그 구도를 머리에 익히고 그래야하는데 난 워낙 게을러서... 사진 찍을 때마다 작품 사진 남기는 고수 경지에 오르는 건 아예 글렀다. ㅎㅎ


호텔에서 무슨 워크샵 같은 걸 하는지, 무슨 행사를 진행 중인지 로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더러는 와인잔을 손에 들고 담소 나누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호라 여기가 정말로 와인의 고장이구나 했던 것 같다. 

이 호텔에선 2박이나 하고 갈 거라서 일부러 구석구석 돌아보았는데;; 날씨가 좋고 따뜻하면 야외 풀장에서 수영도 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으나 한낮에 반팔을 입을 정도의 기온은 되었으되 찬물에 들어가기엔 느무느무 추웠다. 혹시나 물이 따뜻한가 (온천도 아닌데 왜?) 살짝 만져보니 앗 차거워! 우리의 수영복은 결국 두번다시 쓸모가 없게 되었다. (물론 실내수영장도 있으나, 수영 실력도 없는 사람들이 굳이 뭣하러 염소물에 들어가냐고!)

그래도 아쉬워서... 호텔방 키로 열고 들어가야 하는 수영장 철문을 굳이 들어가 확인해본 야외풀장은 이렇게 생겼다. 선베드에 누워 일광욕하기에도 날이 좀 흐려지기 시작했지만, 정말 개미새끼 한마리 없다!  가끔 추운 날씨에도 수영하고 그러는 용감한 외국인들 있던데 흠;; 


건물 뒤쪽 정원엔 책 읽기 좋을 것 같은 정자(?)도 보이고 화단과 잔디밭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는데; 거기서도 가든파티가 열리고 있어서 소심하게 그쪽으론 사진도 못찍고 게 걸음으로 건물벽에 딱 붙어 지나왔다. ㅎㅎ 














오후에 둘러보기로 한 곳은 인근 소도시인 소노마(Sonoma). 아마도 옛날에 캘리포니아 남부가 멕시코 땅이었을 때인듯, 멕시코 병영과 요새가 있던 작은 도시라서 200년된 집들이 상점과 갤러리로 탈바꿈해 관광객을 맞고 있었다. 

옛 건물을 보존해 복원해놓은 멕시코 막사 내부는 이런 모습. ^^;; 200년 전이라고 해도 몇십년 전 한국 군인들 내무반보다 더 환경이 나은 거 아니냐고 우리끼리 쑥덕거렸다. ㅎㅎ

박물관처럼 꾸며놓은 건물은 4시가 좀 넘었는데도 (문닫는 시간 5시!) 벌써부터 곧 문 닫을 거라며 나가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쳇...우리도 별로 오래 볼 거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나마 교회 건물은 현재도 사용하는 것 같았으나 들어가볼 수 없었고, 종이 매달린 나무 기둥이 어째 교수대 느낌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시절 서부영화를 너무 본 탓이여.. ㅎㅎ

 


건물 사이사이 예쁘게 꾸며놓은 레스토랑 뒤뜰과 가게들을 기웃거리다가 어쩐지 전주 한옥마을 같지 않냐?!고 했던 가게도 만나고...

괜히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눈이 똥그래질만한 가격의 공예품 구경도 했다.

별뚜껑 유리병이랑 촛대 예쁘닷..


점심을 (나름) 부실하게 먹었으니 저녁은 푸지게 잘 챙겨먹자며 거리를 쏘다니다 눈여겨봐둔 The Red Grape라는 식당엘 들어갔다. 요번에도 만만한 이탈리안. ㅎㅎㅎ

나파밸리에 왔으니 일단 와인! 와인 리스트를 참고해 E언니가 고른 건 만만한 스파클링와인이었다. 

오.. 좋아좋아!

술잔 뒤쪽으로 사진 찍히는 줄도 모르고 신나라 웃고 있는 게 좀 찔리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 윗부분 오려서 공개~. ㅎㅎ

홀짝홀짝 샴페인을 마시며 메뉴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담당 웨이터가 슬그머니 테이블에 병뚜껑 공예품(?)을 놓고 갔다. 우린 일제히 우와~ 그레잇! 감탄해주다가 곧이어 한국말로 덧붙였다. 언니, 저 아저씨 팁 많이 줘야겠어요. 이런 재롱도 다 부리고.. ㅋㅋ


음식점 추천 앱에 올라온 후기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피자 도우 위에 채소가 올라간 샐러드를 일단 시키고는 또 다시 피자와 파스타, 키시를 주문했다. 우리가 샐러드 포함 메뉴가 4개밖에 안되니깐 뭘 하나 더 시키려고 메뉴판을 안 내놓자, 웨이터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너네 그 정도면 충분해! ㅋㅋㅋ 오냐, 그렇다면...

거의 싹싹 다 바닥을 내 먹고는 E언니가 디저트를 더 먹을까말까 그러는 걸 우리가 말렸던 것도 같고... 암튼 또 다시 배꺼뜨리려고 이국적인 거리를 좀 걷다가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시선 닿는 곳마다 여기저기 포도원이 보이는 나파밸리... 느낌이 좋았다. 


호텔방에 돌아와 뭘 했는지도 안 적혀있다. ㅠ.ㅠ 2박하는 곳이니 분명 빨래를 했을테고..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 탱자탱자 각자 놀았던 거 같다. 여행이 끝나감을 마구 아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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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떠나는 줄을 알았는지 시애틀 날씨는 잔뜩 흐려서 전날 보았던 새파란 바다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비가 안오는 게 어디냐며... 이날 또 남쪽으로 아예 주 경계선을 넘어 오레곤 주 메드퍼드로 700킬로미터나 달려야하기 때문에 이 정도 날씨면 땡큐~ 그랬었다.

찾아보니 다행히 시애틀 메리엇 호텔에선 조식 사진이 있다. ㅋㅋ 전날 시장에서도 본 적 있는 통통한 블랙베리가 정말 싱싱하고 맛있어서 과일을 주로 엄청 가져다 먹었기 때문에 인상적이라서 일부러 찍어놓은 듯.

이게 내 접시..조촐해서 이 정도다 ㅋㅋ 그래도 뭐 오믈렛은 딱 하나만 시켰으니;;



다들 가져온 옷이 맞네, 안맞네 이러다 넷 다 미쉐린 타이어처럼 굴러다니겠네 반성모드에 살짝 접어든 바람에 대체로 조식 접시가 조촐했다. 다른 때 같으면 각자 취향대로 오믈렛이든 스크램블에그든 따로따로 주문해 먹었을 텐데... 오믈렛 저거 하나로 다들 한입씩 먹었다. +_+ 조각조각 큐브 모양으로 썰어놓은 치즈와 감자, 베이컨도 맛은 있는데 좀 짰던듯... 

그럴 거면 노상 간식을 먹질 말든지! ㅋㅋ 그러나 여행의 묘미는 간식이라며, 언니들은 끼니를 좀 덜 먹고 간식은 계속 먹겠노라고 선언. 역시 존경스런 여행파트너들이었다.

소중한 나의 꽃다발은 길이를 좀 자르고 아래쪽에 플라스틱 투명컵에 물을 담아 고무줄로 묶어서 다시 흰종이로 감싼다음 조심스럽게 자동차 컵홀더에 꽃았다. 

친구가 운전할 땐 조수석과 가운데에 꽃았다가... E언니가 운전할 땐 또 걸리적거리면 안되니깐 뒷좌석 컵홀더에... ^___^

하루만에 하늘하늘 미나리꽃? 같았던 노란색 작은 꽃들은 명을 달리했으나 나머지 튤립과 수선화와 스타치스는 여전히 싱싱... 꽃봉오리가 더욱 크게 벌어져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5불주고 참 잘 샀다고 칭찬 들었음 ^^;; 우리가 언제 또 차에 꽃꽂고 유난떨며 로드트립을 해보겠느냐면서.. ㅋㅋ






어느새 후두두둑 내리는 비... 시애틀에서 출발은 분명 E언니가 했었는데 이 다리 사진은 앞좌석에서 찍은 걸 보니 두어 시간 달린 뒤 친구와 운전석을 바꾼 다음에 찍은 거다.

꽤 넓은 강을 건널 땐 간간이 구글맵을 켜고 무슨 강을 건너고 있는가 궁금증을 해소했으나 찾아봤던 결과는 당연히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ㅎㅎ

암튼 이번 여행의 불문율은 운전대를 잡은 사람에게 음악 선택권이 있다는 것. (앞선 여행기에도 이미 썼던가?) 임태경의 광팬인 친구는 그의 CD와 mp3 파일을 몽땅 다 가져와 운전하는 내내 틀어댔고 난 물론 그 옆에서 DJ를 맡았다. ㅎㅎㅎ 비 내리는 철교 아래를 달리는데 아마도 우리나라 가곡이 나왔던 듯... 나름 어울리네 싶었으나, 뒤늦은 후회를 마구 했다. 내가 국제면허증을 만들어갖고 와서 종종 운전대를 잡고 핸드폰에 잔뜩 들어 있는 콜드플레이랑 스팅이랑 비틀즈랑 꽝꽝 틀어놓고 달리는 묘미를 누렸어야 하는데 싶었던 거다. 요즘 차들은 블루투스 기능으로 연결하면 다 되던데.. ㅠ.ㅠ 물론 아이튠즈 스트리밍 서비스를 받고 있는 E언니가 콜드플레이 음반을 한 개 틀어주긴 했지만 ^^; 내가 막 또 틀어들라고 부탁하긴 좀 그랬다. 사실 E언니는 클래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뒷좌석에서 꾸벅꾸벅 졸기에도 딱이었다! ㅎㅎ

갈길도 워낙 멀고, 배도 별로 안 고프고 (차안에서 물론 우리는 각자 1개씩 챙겨왔던 바나나와 과일칩과 문어다리 쥐포 따위를 계속 먹어댔다;;) 점심은 주유소 편의점에서 커피만 사가지고 차에서 대충 때우기로 했다. 전날 호텔에서 챙겨온 브라우니와 피칸파이도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 한국돈으로 천오백원쯤 하는 '멕시칸 카푸치노'를 시켜보았는데 달콤하긴 했지만 꽤 맛있었다. 컵도 완전 커서 거의 벤티사이즈 만하고! ㅎㅎ


메드퍼드는 올라갈 때도 그랬지만, 내려갈 때도 다음날 나파밸리로 가기 위한 중간 거점 정도여서 메드퍼드 스프링힐 매리엇 호텔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오후였다. 

도착하자마자 또 꽃다발부터 얼음통에 꽂아두고... ^^;   근처 베어크릭(Bear Creek) 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소도시라 저렴하다며 이날도 방2개로 나눠썼음. 근데 또 방은 엄청 넓고! 

3인용 소파에다 맞은편엔 기다란 책상도 있었다앙증맞은 웰컴 캔디는 손도 안대고 두고옴 ㅎㅎ

침대 머리맡에 아이팟 스피커가 있어서 기뻐하면 뭐하나... 우리 아이폰으론 꽂을 수가 없는 걸 ㅎㅎ 

1회용 커피드리퍼


호텔방마다 디카페인, 일반 커피 모두 마련되어 있던 1회용 드리퍼 사진을 다 지운 줄 알았더니 하나 있네그려.

옛날 많이들 쓰던 커피메이커처럼 통에 물을 붓고 티백처럼 생긴 커피원두가 담긴 트레이(?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암튼 네모난 플라스틱통에 커피가 티백처럼 담겨있는데 그 플라스틱째로 드리퍼에 꽂는식이다)를 꽃으면 끝이다. 여긴 아래 주전자가 있어서 커피메이커랑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다른 호텔엔 기계가 더 작고 커피 추출구에 잔을 놓으면 바로 드립되는 식이었다.  

호텔방마다 4개씩 놓여있던 드립백 커피는 죄다 나와 친구가 챙겨왔다. ^^;; 특히 디카페인 커피는 어찌나 요긴한지! 한국까지 가져와서 아주 잘 챙겨마셨음.








차를 타고 10분쯤 갔던가... 베어 크릭 공원은 주택가 주변에 있는 흔한 공원이었다. 엄마, 아빠들이 애들 데리고 나와 놀이터에서 뛰놀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가끔 지나가고... 근데 대체로 인적이 없고! ㅎㅎㅎ 날이 흐리고 평일이라 그랬을까?


저멀리 까만점 빨간 점이 애들... ㅠ.ㅠ

햇빛도 없는 흐린 날씨에 꽤 쌀쌀해서 다들 패딩을 입고도 춥다며 한 30분쯤 걸어다니다가 돌아섰던 것 같다. 우와 새파랗다 싱싱하다 감탄했던 잔디밭과 나무들도 금방 시들해지고... 놀이터에서 노는 애들이 예뻐서 그걸 더 마냥 구경했는데 초상권 침해라고 당근 싫어하겠지 싶어 애들 사진은 못찍었다. 엉덩이 토실토실 정말 귀여운 아가들이 애완견들과 함께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놀이터와 잔디밭에서 뛰놀고 있었다. 

근데 애들 다 키웠거나 아예 자식이 없는 우리 일행들은... 저 잔디밭에 개똥 많을 것 같지 않냐. 절대 누우면 안되겠다... 뭐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ㅋㅋㅋ

으스스 추워져서 저녁 메뉴는 다시 국물있는 일식으로 정해졌다. 검색해서 찾아간 '사쿠라'(Sakura)는 주인이 한국인이었다. ^^; 짬뽕과 야끼소바, 냄비우동, 캘리포니아롤(으잉?)을 시켜서 맥주랑 냠냠 맛있게 먹었는데 사진이 없네그려. 특히 멋진 음식 사진 담당이었던 K언니가 이날부터 감기를 심하게 앓는 바람에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하실 수가 없었다. 밤마다 계속 약을 사먹고 자야했을 정도니 원... 그나마 편의점과 주유소 가게에서 감기약이랑 타이레놀 같은 걸 팔아서 제일 잘 듣는 약이 뭘까 계속 찾아다녔다. 

벌써 로드무비 찍은 지도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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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산 꽃다발과 과일, 간식, 스타벅스 1호점에서 산 컵들을 호텔방에 내려놓고는 일단 저녁을 먹은 뒤 스페이스니들에 가는 것이 남은 오후의 일정이었다.

창가 테이블에 놓여있던 얼음통을 활용해 내가 얼른 꽃꽂이를 하는 사이 E언니는 이왕 사왔으니 먹어보자며 딸기와 블루베리를 씻었다. 그렇다면 또 인증샷을 남겨야지 ㅋㅋ

5천원짜리 꽃다발치고 정말 풍성하고 예쁘지 않은가?! 금방 시들지도 모른다고, 튤립이 원래 얼마 못간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내일 아침에도 멀쩡하면 차에 싣고 다닐 거라고 내가 예고했다. 니가 은근 꽃순이구나, 라며 언니들이 놀렸다. 넹, 맞아요...

과육이 단단한 딸기는 한국 딸기랑은 정말 느낌이 다르고 단맛이 덜한 반면 훨씬 싱싱하다. 블루베리는 뭐 한국에서 먹는 거랑 별 차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역시나 싱싱하고 알이 되게 굵었다!

그나마 대도시엘 왔으니 저녁은 한식집을 찾아가서 먹어도 크게 실망하진 않을 것이라는 E언니의 판단 하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국 식당을 찾아갔다. 음식점 이름은 Chili and Sesame. '고추와 참깨'다. ㅋㅋ 손님은 우리 말곤 한국인들 하나도 없었고, 한국인 주인이 어디서 오셨냐며 반색했다. 프라이드 치킨부터 김치찌개까지 ㅠ.ㅠ 온갖 음식이 다 망라되어 있는 메뉴판을 보며 우린 좀 불안해졌다. 이거 메뉴가 너무 많다.. 주력상품이 없다는 뜻이다. 옐프 앱의 별표도 세개 반이라던가..

암튼 그래도 일단 다들 많이 먹고 있는 '치맥'을 시킨 뒤 순두부찌개, 김치찌개, 비빔밥을 골랐다. 닭고기를 튀기면 웬만해선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지만 ㅋㅋ 좀 짰던 것 같고, 밑반찬을 계속 종류별로 리필해주는 인심 때문에 계속 감사하긴 했으나 솔직한 맛 평가는 그저 그랬다.  

참이슬 가격좀 보라지! 처음처럼.. ㅋㅋ

LA주민들은 한식은 역시 LA가 최고라며 지난번 한국 가서 먹어보니 어떤 건 LA가 더 낫더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일단 한국은 양이 너무 적어서 불만이라나 ㅋㅋ

암튼 이날 저녁 우린 미국 시애틀까지 가서 굳이 카스 생맥주에 '프라이드 양념치킨 반반 무마니'를 즐겼고, 배부르다며 치킨을 남긴 대신 밥과 찌개도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메뉴가 하나하나 나오는 바람에 이날 저녁엔 메뉴판 말고 음식 사진이 없다. 잔해만 찍기도 뭣하고 해서...

음식점 이름 기억하려고 메뉴판을 찍은 건데 나중에 술 이름 영어표기 보며, 그 가격대 때문에 한참 낄낄 웃었다.

 

7시가 다 됐어도 아직 바깥은 환한데 걸어다니는 사람은 진짜 드물었다. 범죄율은 LA보다 낮다면서 자꾸만 안심시키려드는 E언니가 오히려 겁을 냈던 게 아닌가 싶다. 미국선 워낙 걸어서 시내를 활보하는 일이 없다보니 그럴 만도 한듯.

몰랐는데 시애틀에도 트램이 다닌다. 반가워서 얼른 한장 찍었음.    

두블록 쯤 걸었던가.. 드디어 스페이스니들이 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높은 데 싫어하는 나도 서울 관광 와서 서울타워 꼭 가보는 사람들 마음이 돌연 마구 이해가 됐다. 게다가 서울타워보다는 스페이스 니들이 더 도시의 상징성을 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을 비롯해서 영화에도 좀 많이 나왔어야지.. ㅎ

전망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페이스니들에 올라가는 비용은 1인당 $22. 평일 저녁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아 금방 올라갔지만, 줄 안서고 빨리 올라가는 특별표도 따로 팔던데 30달러던가? 33달러던가... 역시 자본주의의 나라라고 우리가 한마디씩 했다. 노인, 장애인 우대도 아니고 돈 우대 줄이 따로 있다니 원... (비행기에서 퍼스트클래스 먼저 타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하여간 날씨도 좋고 하늘도 새파래서 노을구경 야경구경에 기대가 컸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탈 땐 몰랐는데, 아니 월요일 저녁에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곳곳에 놓인 테이블엔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둥근 전망대를 한바퀴 돌면서 호시탐탐 빈자리를 노리는 수밖에...

 

 

 

서쪽 바닷가 위쪽 하늘엔 주황색 노을이 물들고... 반대편 동쪽 시내 방향은 분홍색 하늘이 펼쳐졌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둥근 금빛 철구조물은 스페이스 니들 가장자리에 달린 것. 저거 없이 잘 좀 찍어보고 오래 난간에 매달려 있으면 멀미가 나서리 ㅠ.ㅠ 

마지막으로 더욱 활활 타오르는 노을. 그날의 실감이 반도 안난다 ㅠ.ㅠ

드디어 서쪽 하늘에 남아있던 햇빛과 노을이 꼴까닥 사라지고... 하늘이 깜깜해지면서 본격적인 시애틀의 야경이 별밭처럼 드러났다.

 

시애틀 그레이트 휠을 중심으로 한장 더.. ^^;

환하게 불을 밝힌 배가 주인공

가운데 보이는 배가 움직이는 건지 아닌지 그걸 확인하느라 엄청 오래 지켜봤던 것 같다. 파티라도 벌어지는 듯 너무도 환하게 불을 밝힌 배는 아주 조금씩 부두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뭐하는 배일까... +_+

 

내가 찍고도 흐뭇했던 사진! ㅎ

본격적인 야경이 펼쳐지기 전까진 아무도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더니 그래도 완전 깜깜해지자 테이블 하나가 간신히 비었다. 오렌지 주스와 카모마일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앗.. '공짜 디저트' 먹으려면 우리 9시 전에 호텔로 돌아가야해! 킬킬대면서 전망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물론 기념품 가게도 빠지지 않고 들렀으나 뭐 딱히 사고싶은 건 없더라는;;

뚜벅이로 걸을 땐 또 내가 구글맵의 도움으로 앞장을 서서 길을 찾는 것이 요번 여행의 암묵적인 임무였다. 본인의 방향 감각을 몹시 믿는 편이지만 가끔 오작동을 하기 때문에 살짝 긴장을 했고, 더욱더 인적이 사라진 시애틀의 밤길을 언니들이 워낙 무서워해서 엄청 빨리 걸어갔던 것 같다.

다행히 격자무늬 도로는 방향만 잘 잡으면 헤맬 이유가 없었고, 언덕길을 20분쯤 걸어서 해변으로 내려온 다음 부두와 기차길(예전에 석탄과 하역용 짐을 실어나르던 기찻길이라는데 딱 경의선 숲길--일명 연트럴 길--느낌이다 ^^ 사라진 철길 따라 앙상한 나무 심어진 것까지도;;)을 따라 호텔에 무사히 들어갔다. 오히려 구글맵은 주소를 찍으면 호텔은 눈앞에 있는데 이상한 뒷길로 더 가라고 가르쳐주더만! 헷...

우린 곧장 로비라운지 디저트 코너로 돌진했으나, 시간이 너무 늦은 탓인지 과일은 없고 쿠키류와 브라우니, 피칸 파이만 조촐하게  남아있었다. 브라우니보단 피칸파이가 더 맛있다며 배부른 여자들 같지 않게 한 조각씩 먹어치우고는 아줌마 정신 발휘해서 한조각씩 더 싸 가방에 넣으며 또 킬킬 웃었다. 아... 일주일만에 정말 허릿살 뱃살이 장난이 아니라면서... 오늘 섭취한 열량은 아마 평소의 두배쯤 될 듯! (평소 거의 점심 한끼만 먹고 사는 S는 3배라고 투덜댔다. 깡마른 친구는 드디어 청바지가 안맞기 시작했단다. 다행히 난 죄다 고무줄 바지를 가져갔기 때문에 ^___^v 상관없었다. 

이날밤은 정말로 배가 불러서 식곤증으로 다들 일찍 잠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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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를 떠나는 날 아침. 여전히 흐렸지만 차츰 날이 개려는 듯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파란 하늘이 보였다. 에잇! 우리가 떠나려고 하니깐 날씨가 좋아지고 난리! 아쉬워도 어쩌랴... 전망 좋은 호텔방 창앞에서 이리저리 풍경을 구경했다.

앞 건물 옥상 정원 부러워라;;

호텔 바로 건너편에 고급 아파트가 있었는데 아침 일찍 옥상 정원에 나와서 어슬렁 거리는 사람들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저런 데는 월세가 얼마나 하려나 ㅎㅎ K언니는 마음에 드는 도시마다 아파트 하나씩 사놓고 싶다고 E언니에게 시세를 물었다.  

암튼 밥보다 잠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S가 국물 먹고싶다며 전날 저녁에 사놓은 '농심' 사발면(1개만 샀는데도 결국 남김)을 비롯해 먹어치울 게 너무 많았기에 우린 쿨하게 조식 뷔페를 포기한 뒤 방에서 각자 짐 챙기고 화장하는 동안 왔다갔다 주섬주섬 사과와 토마토, 우유, 견과류, 요구르트로 아침을 '배불리' 때웠다.   

짐 가방을 다 챙겨 차에 싣고 10분쯤 거리에 있는 페리 항구로 향했는데, 아이고 입국 심사 대기만 1시간 30분이 걸린 끝에 드디어 10시 30분 배를 타고 다시 포트앤젤레스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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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여행후기를 빨리 마쳐야할텐데... 생각하고 보니 으아.. 오늘 날짜로 쓰는 이날의 후기는 딱 석달 늦은 셈이다. 기억 다 사라지기 전에 어서 마무리를 지어야한다는 압박감이 스멀스멀...

여행가서 나름 기록한답시고 작은 수첩을 가져가서 메모를 하긴 했는데 벌써부터 게을러져서 이때부턴 간단히 동선만 적혀 있고 느낌이나 감상은 거의 없다. 심지어 끼니별로 뭐 먹었는지 안 적어놓은 날도 많다. ㅠ.ㅠ 수다떠느라고 그랬을까? 흠.. 사진을 보며 기억을 재구성하는 수밖에 ㅋ

캐나다에 있는 사흘간은 아쉽게도 계속 날씨가 안좋아 비가 오락가락했다. 햇빛이 찬란했더라면 꽃구경이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라고, 사진도 훨씬 더 예뻤을 것이라고 E언니는 계속 아쉬워했지만, 우산 쓰고 돌아다니는 우중산책도 나름 운치 있고 좋았다. 

호텔에서 조식부페를 먹고 (귀찮아서 이 때쯤엔 조식 사진도 안찍기 시작;; ㅎㅎ) 일단 나름 관광지라는 크레이그더랙 '캐슬'(Craigdarrach Castle) 구경에 나섰다. 영어로 적힌 표지판 보면서 대체 발음 어떻게 하는지 몰라 기념품 가게 직원한테 물어봤다. ㅋㅋ

캐나다 정착민의 역사가 얼마 안되다 보니, 초창기에 유럽에서 건너와 돈 많은 사람들이 빅토리아풍으로 (대충?)지은 이런 집 정도에 막 '캐슬'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유적지 취급을 한다.  하긴 뭐 우리나라도 아파트에 ㄹㄷ캐슬이란 이름 붙이는 국민이니 뭐랄 수는 없지만 암튼 막상 가보곤 애개개.. 그랬다. ^^; 설상가상 일요일이라 집안엔 못들어가게 하고 기념품 가게만 열어놨어! ㅋㅋ 

사기다 사기 그러면서 구경했던 유료 브로셔 ^^

한 10분쯤 후딱 돌아보고 나오는 걸로 족했으나, 재미 있었던 건 이 건물이 약간 언덕지고 깔끔한 고급 주택가에  있어서 주차장 입구 찾느라 주변을 한바퀴 괜히 더 돌아야했다. 그러다가 어느 집 마당에서 너구리를 보았다는 것! 몸집이 제법 큰 귀여운 너구리 한 마리가 도망도 안가고 어슬렁 어슬렁 남의 집 꽃밭을 돌아다니다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더니 또 시큰둥 가던 길을 가는 게 아닌가. 방향이 애매해서 사진은 못찍었지만, 이 캐슬을 보고 나와서 우리의 촌평은... '예쁜 꽃밭에서 귀여운 너구리를 봤으니깐 괜히 여기 들렀던 이유로 충분해!'였다. ㅎㅎ

그러고는 다시 빗길을 달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부처트가든'을 찾았다. 역시나 돈많은 (아마도 귀족출신?) 초창기 이민자가 오래오래 공들여 가꾼 정원이라는 것 같다. 유럽식 정원도 있고 일본식 정원도 있고(일본풍 정원은 세계 어딜 가나 다 있는듯)... 암튼 계절별로 꽃들이 지천이어서 언제 가도 보는 맛이 있다고 브로셔에 써 있었다. 우린 튤립이 만발한 시기를 노리고 간 거였는데, 좀 일러서 만개한 튤립보다는 봉오리를 더 많이 보았고 그래서 E언니가 느므느무 아쉬워했다. 만개하면 튤립이 거의 애들 머리통만하다나 뭐라나... 우린 비교대상이 없으니 그저 이 정도도 예쁘다고 좋아라 했을 뿐이다.

부처트 가든은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속하는 빅토리아 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란다. 비가 부슬부슬오는데도 사람들이 꽤 있어서 의외였고.. 주차장 구석구석 공원 입구에 아무나 쓰다 놓고 가라고 투명비닐우산이 놓여 있었다. 우린 각자 우산이 있는데도 투명한 우산을 쓰는 게 더 구경하기 좋다고 해서 얼른 두 개 집어들었다.

꽃그림 들어간 입장권도 예뻐서 한번 찍어보았음. 캐나다 달러는 미화보다 환율이 약간 더 낮아서 $30이면 3만원이 채 안된다. 제주도에 새로 생긴 식물원이나 곤지암 화담숲 입장료가 이 절반도 안되는데도 비싸다고 버럭 화낸 적이 있다. 확실히 우리나라 물가가 훨씬 싸고, 문화생활비는 더더욱 저렴하다고 느꼈다. 캐나다는 예쁜 정원 구경하는 비용이 막 놀이공원 자유입장권 가격이다. +_+ 

암튼 표를 내고 들어가면 곳곳에 예쁜 건물들이 있고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꽃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다. 튤립은 아직 덜 자랐거나 봉오리 덜 벌어진 게 많았고, 활짝 핀 건 주로 수선화, 히야신스, 아이리스... 그밖에 수많은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층층이 촘촘이 꽃을 심어놓아서 막 이런 느낌...? 

 

노란건 모르겠고 분홍색은 금낭화 히야신스 자주색이 정말 예뻤던 튤립과 히야신스

확실히 비를 맞아서 꽃들이 더 촉촉한 느낌으로 말갛게 사진에 담긴 것 같다.

개인적으로 뜻밖에 신기한 경험은 '성큰?선큰?가든'(Sunken Garden)이었다. 으음... 여기서 또 나의 운명론이 등장하고 마는데... ㅋㅋ 노트북까지 싸들고 가서 번역하던 소설에 스토리상 매우 중요한 장치로 'Sunken Garden'이 등장했다. 나름 구글로 검색해보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았어도 모호하고 막연한 느낌이라 일단 '침상정원'으로 번역하고는 구차하게 역주를 달았었다. 언덕 지형을 활용하여 지표면보다 낮게 어쩌구 저쩌구... 그러고도 딱히 이거다 싶은 느낌이 없었는데, 작품 속에서 여주인공이 만들려는 '선큰 가든' 개념이 뜻밖에 내 눈앞에 뙇~~~!! ㅋㅋ 역시 마감 미뤄두고 놀러간 명분이 바로 이거였어! 라고 막 홀로 끼워맞추기 한판을 하고는 내친 김에 친구에게 또 어거지 운명론을 하나 더 고백했다.  '남자주인공이랑 너랑 생일이 똑같이 만우절이야! 우연의 일치 치고는 뭔가 되게 이상하지 않냐? 아무래도 이 책 영화 개봉되면 대박날 것 같아...' (그러나 몇달 뒤 현실은 내 예상과 빗나간다 ㅋ)

이것이 Sunken Garden

나무로 만든 쓰레기통에도 예쁘게 꽃을 얹어놓은 정원을 구석구석 몇시간이나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아파서 카페에 들어가 좀 노닥거린 뒤 앙증맞고 예쁜 쓰레기(!)들이 지천으로 깔린 기념품 가게에서 한참 이것저것 집어들고 고민하다 계속 염원하던 '플리스 후드티'를 일단 구입해 뿌듯했다. (캐나다라고 적힌 검정색 삼선 지퍼후드를 저렴하게 사서 좋아라했는데 ㅋㅋ 나중에 친구집에서 빨아보니 100% 폴리에스터라 보풀이 장난 아니게 일었다. ㅠ.ㅠ)

카페와 기념품 가게 카운터에도, 테이블에도 도무지 생화 같아보이지 않는 꽃화분과 화병이 놓여 있었는데.. 설마 조화겠거니 만져보면 다 생화였다! 조화파는 가게에서 종종 너무 과장됐다고, 색깔이며 모양이 좀 웃기게 생겼다고 생각했던 꽃들이 진짜로 다 실화였음을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ㅎㅎㅎ

맨 오른쪽 사진은 대표로 방명록에 한마디 쓰라고 언니들이 시켜서 비와서 아쉽지만 그래도 좋았다고 적는 중이다. 여행기라고 막 인물사진 대방출 ㅠ.ㅠ 등산복 입고 관광하는 한국인들 유럽에선 흉본다지만 흥! 캐나다엔 나처럼 우산 안쓰고 바람막이에 달린 모자 뒤집어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엄청 많이 봤고, 어쨌거나 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죄다 얇은 옷과 반팔만 가져가서 저 겨울용 바람막이가 얼마나 요긴했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날 점심은 뭘 먹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부처트 가든 카페에서 머핀으로 때운 듯. 그러나 차에서 계속 간식을 먹었기 때문에(무려 구운 쥐포와 문어다리가 지퍼백 가득 들어있었고, +_+ 주유소 들를 때마다 젤리며 과자를 꼭 사가지고 차에 올랐다 ㅎㅎ) 열흘 내내 배가 고팠던 순간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출출해질 새도 없이 노상 뭘 입에 집어넣고 있었음.

부처트 가든을 나와 차로 또 한참을 이동하다, 캐나다 과일도 좀 맛을 보자며 유기농 마켓에 들렀다. 과일값은 그래도 한국이랑 비슷하군.. 했던 것 같다. 홍옥처럼 반질반질 윤기나는 작은 사과랑 방울토마토랑 블루베리를 샀던가... ㅠ.ㅠ 암튼 호텔이 있는 항구쪽으로 이동하자 점점 날이 개었다. 그렇다면 또 부두 구경을 좀 해볼까나...

관광객인지 주변에 사는 주민인지 우리처럼 부두를 괜히 어슬렁거리는 가족과 어린이를 만나 슬며시 도촬. ^^; 부두에 정박해있는 배들은 하나같이 새로 칠한 듯 깨끗했고, 고기잡이배가 분명한 파란색 어선들도 어찌나 깔끔한지 약간 놀랐다. 비린내도 안나고, 부두와 선창 주변 물도 바로 뛰어들어도 될만큼 맑았다. 

아직 배는 안꺼졌지만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내비에 주소를 찍고 찾아갔는데도 도무지 음식점이 눈에 띄질 않아 일단 길에 주차부터 하고 (일요일이라 무료!) 이쪽 저쪽 건물마다 기웃거리고 다녀야했다. 분명 주소로는 근처인데... 그러면서. 

 

별점 후기를 참고로 선택한 음식점을 찾아 헤매느라 뜻밖에 골목골목 들어가본 것도 괜히 재미나고 신났다. 저녁을 먹기에 너무 이른 시간인지 인적 드문 이런 골목으로 쭉 들어가보면 안쪽 모퉁이에 예쁜 음식점들이 콕콕 박혀있고, 이른 저녁을 먹는 손님들도 꽤 있었다. 그저 인구가 적어서 대체로 한가로운 분위기인가?

 

암튼 구글맵을 켜고 거의 부두 바로 앞까지 한참 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에라이, 포기하고는 차로 돌아가 다시 내비를 찍어보자 그랬는데 ㅋㅋ 주차해놓은 도로 바로 위쪽에 음식점이 있었다. 간판이 작아서 못보고 지나친 뒤 계속 아래쪽 거리만 뒤졌으니 나올 리가 있나...

여행을 가서는 길을 좀 잃고 헤매는 것도 다 추억거리라며, 그래서 배 좀 더 꺼졌으니 저녁밥 많이 먹자! 언니들이 하하 웃으며 우릴 위로했는데, 아이고 위로하실 필요 없어요... 전 그냥 막 돌아다니는 게 좋다니깐요.

샐러드는 요리로 칠 수 없다면서 우리가 메뉴판을 차마 안 내려놓고 뭘 하나 더 시킬까 고민하고 있었더니 웨이터가 음식 갯수 니네 넷이 먹기 충분하다고, 막 말렸다. ^^; 감자튀김 그릇을 보고서야 우리도 그 마음을 이해했다. 맥주랑 같이 신나게 먹었으나.. 저 바삭한 감자튀김을 결국 다 못먹고 남기고 왔다. 테이블은 엄청 좁고 그릇은 어찌나 큰지... ㅎㅎ

봉골레 파스타와 해산물 리조토, 프라이드 치킨을 시켰던 것 같다. 근데 또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양이 많지 않아 보이는데? ㅋ 하지만 밥이 산처럼 쌓였던 리조토는 우리나라 음식점 양의 거의 세배쯤? 느끼함에 강한 나는 대체로 냠냠 맛있게 먹었는데 봉골레 파스타에 치즈를 많이 넣어서 느끼하다며 친구는 김치먹고 싶다고 막 괴로워했다. S는 은행에서 퇴근해 집에 들어갔는데 밥 하기 귀찮으면 김치만 한 그릇 퍼먹고 잘 때도 있다는 기인이다. *_*

암튼 우린 부른 배를 두들기며, 저녁식사 후엔 미리 웨이터에게 물어본 '캔디 가게'를 찾아갔다. 단풍국엘 왔으니 메이플시럽은 사가야하지 않겠냐는 것. 헤맬 것도 없이 메인스트리트 정 가운데 떡하니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메이플시럽과 단풍잎 모양 과자 따위를 샀다. 

날이 흐려서 벌써 하늘이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E언니와 S자매는 치안 위험한 캘리포니아 주민들이라 미쿡이든 캐나다든 밤중에 돌아다니면 큰일나는 줄 아는 분위기여서 어두워진 뒤론 거의 호텔에서 꼼짝도 안했다. 이날 처음으로 가로등 켜진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제 겨우 나같은 올빼미의 시간이 시작되는 거라고 아쉬워했다. ^^;  그러나 일요일 저녁 캐나다 거리엔 간간이 술집과 마트 빼곤 가게가 다 문을 닫았다! ㅎㅎ

동그랗게 다듬은 가로수를 보라! 다스베이더의 투구 같기도 하고.. 단발머리를 형상화한 건가 싶기도 하고... 도로쪽은 큰차에 닿지 않게 하려는 건지 일부러 더 파놓았다. 여기가 메인 스트리트인데 길도 별로 안 넓고 이렇게나 한산하다. ^^; 횡단보도 건너면서 후다닥 찍은 사진이다.

캐나다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니, 낮에 캐나다 유기농 마켓에서 선 과일을 안주 삼아 맥주라도 한잔 하자고 다시 호텔 근처 마켓에 들렀지만 ㅎㅎㅎ 결국 마시는 요구르트, 우유, S가 자긴 아침으로 꼭 먹어야겠다면서 고른사발면만 사가지고 나왔다. 배불러서 뱃속에 맥주를 더 우겨넣을 여유도 없을 것 같고... 요즘 또 나는 맥주 한두잔에 후딱 취해버리고... 아쉽지만 그렇게 캐나다 과일을 술 없이 먹으며 빅토리아 섬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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