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역시 나는 집이든 작업실이든 일한답시고 컴퓨터를 끼고 앉아 있어야 블로그질도 열심히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저것 수다거리도 많지만 일단 아메바스러운 기억력을 믿지 못하겠으니
까먹을 것 같은 이야기부터 적어놔야지.
간만에 지하철을 타고 외출을 했는데 동네 근처 전철역에서부터 흥미로운(?) 일이
꽤 있었다. 벌써 어제가 되어버렸지만 심정상으로는 오늘 만난 지인들에게 벌써 털어놓은 이야기긴 해도 입이 근질거려 더 떠벌려야겠다. ㅋㅋ
1.
전철역에 내려가서 전철 오기를 기다리며 자판기 주변을 서성서성 구경하고 있으려니
어느 외국인이 접근했다.
다분히 인도인스러워 보이던 그 남자는 나에게 사진이 붙은 목걸이형 신분증 '비슷한걸' 보여주며 서툰 한국말로 "저는 인도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대뜸 클리어 파일 하나를 펼쳐서 휙휙 넘기며 조악한 사진들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역시 서툰 한국말로
"인도에는 학교 많이 없어요. 애들이 공부해야 돼요. 한쿡사람들이 조큼만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다.
내가 어떻게 도와달라는 뜻이냐고 물으니, 그제야 그 남자는 맨 마지막쯤에
적힌 목록을 보여주었다.
이름과 연락처, 서명 란이 있고 맨 마지막엔 기부금 액수를 적은 목록이었다.
기부금은 대개 만원, 5천원 정도였던 것 같다.
아 뭐야...
지금 당장 기부금을 내놓으라는 뜻이었던 거다.
하지만 또 의심많은 내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파일 맨 앞에 적혀 있던 재단 이름도 Indian Foundation of Development 였던 걸로 기억하고(재단 이름이 너무 허술하지 않나??) 인터넷 사이트는 없이, gmail 주소만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떤 단체인지 몰라서 함부로 기부금을 낼 수가 없으니, 일단 인터넷 사이트 같은 게 있으면 먼저 알아보고 기부금을 낼 수 있는 연락처를 주면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아 그랬더니 이 인도인, 금세 "한국말 잘 못해요. 조큼이면 돼요. 많이 없어도 돼요..."
뭐 이러면서 발뺌을 하는 거다.
정식 단체였다면, 당연히 나에게 연락처를 주고 송금 계좌번호라든지, 기부 방법을 안내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몇장 보여주지도 않았던 사진들도 별 의미 없었던 것 같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 사진과 교실 사진이 몇장 있었는데..
그걸로 지가 뭘 증명하겠다는 건지??
암튼 바쁘다고 그길로 외면했는데, 그 인간의 정체와 의도가 생각할수록 의심스럽다.
그 사람이 정말 인도의 어느 재단에서 교육 기부금을 모금하기 위해 한국에 왔을 확률이
단 1%라도 있긴 한 걸까???
아니면 외국인 노동자를 앵벌이로 내세운 또 다른 착취의 방법이었을까?
아님 그냥 머리 좋은 그 인도인의 돈벌이 수단이었을까?
흠...
나 말고도 누구든 또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은 없는지, 궁금하다.
어쨌든 그 전철역엘 내려가면 늘 '참 인상 좋으시다'는 말로 접근해 '도'를 운운하는
도인들 때문에 짜증났었는데 없어진지 오래라 기뻐했더니만 으휴...
조만간 또 전철 탈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전철타러 가기 찝찝할 것 같다.
담에 또 만나면 좀 더 꼬치꼬치 물어보고 확 신고를 해버릴까.. ㅋㅋㅋ
2.
퇴근시간에 시내로 향하는 전철은 한가해서 난 타자마자 자리에도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역에서 탄 어린 연인이 바로 내 건너편 좌석 앞에 서서 계속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 얼굴을 5센티미터 간격으로 쳐다보며 대화를 하더니
거의 10초 간격으로 계속 입을 맞춰댔다. *_*
둘 다 20대 초반인 것 같았는데 남자애 키가 훨씬 커서 둘이 키를 맞추려면 좀 구부정하게 서야 할 정도였고, 여자앤 귀엽게 생겨 갖고 얼굴을 바짝 들고 남자친구와 대화를 나눴는데 어쩜... 둘 다 주변의 시선은 그리도 안중에 없는지.
물론 뭐 그들의 태도가 하도 당당하기도 했고, 그리 끈적거리는(?) 입맞춤을 한 게 아니라
가볍게 정말로 서로 예뻐 죽겠다는 듯이 뽀뽀를 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10초마다 자꾸 해댈 건 또 뭐람.
괜히 나 혼자 민망해서 시선을 거두며 주변을 살피니 다들 뭐 흔히들 있는 일이라는 듯 담담했다.
-_-;;
아... 내가 지하철을 멀리하는 동안 요새 젊은 연인들은 다들 이리도 과감해졌단 말인가!
늦은 밤에 전철역이나 전철 안에서야 예전에도 가벼운 작별의 키스 장면 같은 건 꽤
본 기억이 나는데, 완전 초저녁에 나랑 같이 환승역에 내릴 때까지 십여분을 계속 그럴 줄은 진정 몰랐다.
스스로 얼마나 촌스런 아줌마처럼 느껴졌는지 원...
생각해보면 외국에선 광장이나 분수대나 길거리 벤치나 버스나 전철이나, 아침이든 대낮이든 가리지 않고, 게다가 젊고 늙고 구분마저 없이 연인들은 거리낌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껴안고 키스하고 그러는데, 그런 걸 코앞에서 보면서도 딱히 거부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아 부러워라..' 그러면서 지나갔던 것 같다.
뭐 물론 한국에서도 그렇게 닭살을 떨고 길거리에서 영화를 찍어대는 연인들을 보며 순간 부러운 마음이 안드는 것은 아니지만(ㅜ.,ㅜ) 이상스럽게도 언제나 그보다 민망한 거부감이 먼저 든다는 거다.
아... 연인들에게마저 나는 인종과 문화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내가 와락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ㅎㅎ
3.
대학로엘 가기 위해 환승역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아주 잠깐 가는 동안에도
흥미로운 연인을 만났다.
역시 20대 초반의 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사람 가운데 여자애가 툴툴거렸다.
"여자는 살을 빼면 '12배' 예뻐 보이고, 머리를 길면 '6배' 예뻐보이는 법이래."
헐... -_-;;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여자들의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싫어하고 짧고 경쾌한 머리모양이 좋다. 특히 전지현 머리로 대표되는 청초한 긴 생머리는 아으.. 정말 지루하다. 그런 의미에서 쌘이도 이번 기회에 머릴 좀 확~ 볶거나 잘라보시지? ^^;;)
암튼 난 또 남자애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남자애는 사랑에 겨운 나머지
"넌 살 안빼도 예쁘고 머리 안 길러도 예뻐."라고 정석대로 대답했다. ^^;;
(그 여자앤 짧은 단발 정도의 생머리였다.)
그러면 여자애도 그냥 흐뭇해 하고 말면 좋으련만, 얄밉게도 이렇게 대답했다.
"살 빼서 예뻐지는 건 남자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깐 너도 얼른 살 빼! 우리 같이 빼자."
으으으으...
내가 보기에 그 여자앤 완전 표준...에서 약간 말랐다고 해도 될 성 싶었고
남자앤 내가 좋아하는 약간 오동통 곰돌이 스타일이었다.
"둘 다 뺄 필요 없어!"라고 말참견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으며 나는 속으로 길게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가 이놈의 사회가 여자나 남자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생긴거랑 몸매에 목매는 시대가 되었는지 원...
어차피 좋아하는 사이가 됐다면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이 좋아서 반한 거 아닌가?
머리를 길러라, 치마를 입어라, 화장을 해라 말아라, 살을 빼라 마라..
이딴 '외모' 간섭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면 또 몰라도;;) 인간들 나로선 참 이해가 안된다.
이래서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걸까??? ㅋㅋ
하여간...
대학로까지 그리 길지 않은 전철 여행에서 어젠 꽤 많은 걸 경험한 하루였다.
앞으로도 단조로운 삶이 지루해지면 저녁무렵 전철을 타봐야겠다. 이제보니 전철은 버스보다 훨씬 더 많은 인간군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회더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