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매번 며칠 일찍 넘겨 다음달을 준비한다.
지저분하게 이런저런 약속과 메모가 적힌 달력을 한 장 넘기면
제일 먼저 초록색으로 적어둔 원고마감일이 눈에 들어오고, 그 다음으로 각종 기념일이 눈에 띈다.
어제 상담하면서 11월 스케줄 확인하느라 하루 먼저 달력을 넘긴 뒤
선물받은 베어브릭 달력도 11월에 맞춰 다시 조립을 했다.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시간과 세월 속에서 단순히 달력이 몇장 남았다는 것 때문에
언제는 여유롭고 언제는 조바심나고 지난 열달을 돌아보고 그러는 거 참 부질없는데
그래도 11월쯤 되면 매번 나는 비감에 젖는다.
올해도 별로 해 놓은 것 없이 다 갔네.
지혜도 지식도 깨달음도 여유도, 더 얻은 건 없는 듯한데 또 나이 한 살 먹겠네.
가뜩이나 나이값 못한다고 퉁박인데 이거 원 나이 먹기도 민망하여라...
뭐 이런 서글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거다.
원래 11월이 가장 우울증이 기승을 부리는 달이고 일조량이 급격히 적어져 자살률도
높다고는 하지만 내게 가을은 늘 넘기 어려운 고비였던 것 같다.
오히려 한해를 '정말로' 마감하는 12월보다 자학하는 마음도 더 깊어지는 것이
매사에 짜증도 늘어나, 사소하게 달콤함을 즐기거나 지인과의 편한 대화로도 쉽게 풀어지지 않는, 막연하고도 끊질기고 고집스러운 '그 무엇'이 묵직한 쇠스랑처럼 내 발목을 붙든다.
11월은 가을의 끝자락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분명 겨울의 시작이다.
가뜩이나 왜소하고 볼품없이 느껴지는 내 몸뚱이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드는 추위는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어깨가 결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내일로 다가온 11월이 참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