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토박이지만 내가 어렸을 땐 아카시아꽃을 한송이씩 따서 먹고 놀았다. -_-;; 하얀 꽃잎을 하나씩 입에 집어넣으면 달콤한 꿀맛이 입안으로 퍼졌는데 성급한 남자애들은 포도송이처럼 달린 꽃을 몽땅 입에 넣고 주르륵 줄기를 잡아당기기도 했더랬다. 그 추억 때문인지 나는 아카시아꽃이 참 좋아서 5월만 되면 이제나 저제나 아카시아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이제 공해 때문에 더는 꽃을 따먹을 순 없지만 온 동네를 휘감는 달콤한 꽃향기는 옛날과 다르지 않다. 어젯밤 처음으로 깨달은 아카시아꽃 향기 때문에 우리 동네 공기가 새삼 맑아진 것도 같다. ^^; 며칠 또 밤마다 온 창문 다 열어놓고 꽃잔치 기분 내야겠다!
음.. 향기롭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언제 필까 언제 필까 궁금했는데 오늘 아침 댓바람부터 나들이 나갔다 돌아오는데 온 동네가 아카시아꽃 향기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지금도 뒷베란다 활짝 열어놓고 향기를 음미중이다.
봄꽃의 제일 마지막은 아마도 아카시아꽃이 아닐까 싶다.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게 주렁주렁 피어난 아카시아꽃이 시들시들 말라 종잇장처럼 떨어지고 나면 정말로 여름이 오는 거겠지. 아카시아 나무는 재래수종도 아니고, 아마도 일제시대에 들여온 것 같다는.. 토양을 산성화 시키는 나쁜 수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이리 향기로워 좋은 걸 어쩌랴. 어차피 이 동네 언덕이며 산기슭에 자라는 게 굳이 아카시아 나무가 아니어도 딱히 쓸만한 데도 없지 않을까?
몇년 새 집앞을 꽉 막고 높이 선 집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더 이상 북한산은 우리집 앞마당이 아니게 되었고, 낡은 집 구석구석에선 가끔 낯선 벌레들이 스멀스멀 출현해 나를 기겁하게 하지만, 이렇게 아카시아향이 온 집안에 스며들만큼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면 25년쯤 붙박이로 살아온 이 집이 참 좋다. [2005 5. 17]
[2007년엔 5월 14일에 아카시아꽃이 핀걸 발견했으니 며칠 빠르군. 2006년엔 왜 기록해두지 않았을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