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사랑해마지 않는 주변의 많은 이들을 보며 늘 나란 인간은 왜 이럴까
의구심에 젖게 되는데,
남매가 함께 스컹크 구조작전에 힘쓴 쌘의 포스팅을 읽으며
과연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니(다짜고짜 온동네 떠나가게 비명을 질러 '뿌림'부터 당했을 게다) 머리가 다 띵했다.
그나마 주변에서 부딪치는 동물이 이웃에서 괴롭게 짖어대는 개와 길고양이 정도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사람마다 취향이 가지각색이긴 하지만 나는 동물을 '몹시' 싫어하는 편이다.
동물원엘 마지막으로 간 게 아마도 10년은 된 것 같은데, 가끔 기린이나 팬더, 코알라를 신기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동물원 특유의 '냄새'도 싫을 뿐더러 웬만한 동물들은 쳐다보기조차 무섭다. +_+
그나마 애완견은 하도 흔하다보니 그렇다 쳐도
길거리에서 토끼나 병아리 따위를 파는 행상을 보면 나는 얼른 눈을 질끈감고 그곳을 피해야 한다.
지금도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파는 나쁜(!) 행상들이 있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 교문 앞 햇살 좋은 곳에 병아리 상자를 놓고 아이들을 현혹시키는 좌판이 있는 날이면
나는 병아리와 혹시 눈이 마주칠까봐 무서워서 교문을 못나서고 서성이다 눈물을 질끈 삼키고는
다다다다~ 뛰어지나가곤 했다.
동네 골목을 지키는 개가 무서워 집에 못가고 빙글빙글 동네를 방황했다거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는 고양이 때문에 밤엔 절대로 혼자 심부름을 못갔다거나
(십여년 전에 한번은 집앞 계단에서 연이어 튀어나오는 고양이 세 마리에 놀라 목이 갈라지도록 비명을 질러댄 탓에 강도 당하는 줄 알고 울 아부지를 비롯해 동네 사람들이 몽둥이 들고 튀어나오기도 했다ㅠ.ㅠ)
하는 사연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쥐라도 보는 날이면 꺅꺅 비명은 물론이고 놀라 길길이 뛰다 발목을 접지른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물론 쥐는 지금도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다. ㅠ.ㅠ
명절 연휴때 혹시 길고양이가 굶을까봐 통조림까지 갖다 주셨다는 루인님도 계시지만
나에게 길고양이는 그저 골목길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물어뜯어놓는 공포와 짜증의 대상이었는데 요샌 고양이로 인한 골칫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우리 집 바로 옆에 빌라가 들어서면서 골목길은 물론 우리집 차고 바닥까지 아스팔트로 깨끗이 깔아준 것이
몇년 전이던가. 암튼 몇년 된 것 같긴 한데 언제부턴가 아스팔트 사이로 조금씩 잡초가 나기 시작하더니만
우리가 게으름을 부리며 한해 두해 지나는 사이 차고 가장자리는 마치 잡초들의 화단처럼 꽤나 무성하게
식물들이 터를 잡았다.
사실 '잡초'라는 건 인간이 그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해 싸잡아 식물을 폄하하는 나쁜 습관임을 잘 알고 있는 데다, 얼마 전엔 잡초를 제거하지 않고 밭농사를 짓는 방법도 있다는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했고(잡초가 농사는 물론이고 환경에 큰 도움이 된단다!),
또 차고에 돋아난 이름모를 식물들 속엔 내가 아는 민들레와 개망초도 있어서(역시 이럴 땐 아는 게 병이다 ㅋㅋ) 차를 넣고 뺄때 긁힐 정도까지 무성해지지 않는 한은 그냥 두고 봐야하지 않을까 고민'만' 하고 있었다.
봄부터 지금까지 화려하진 않지만 작고 하얀 꽃들을 피우기도 하고 빨간색 수술열매 같은 걸 매달기도 한
잡초들을 그저 깨끗한 차고로 유지한답시고 모질게 뽑아버려야할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툼한 아스팔트를 뚫고 자란 녀석들의 생명력도 참 대단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차고 가장자리가 잡초로 무성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으니
그건 바로 고양이똥. -_-;;
예전에도 고양이들이 두어마리씩 차 밑에서 어슬렁 기어 나오면 기겁을 하고 놀라곤 했는데
(특히 겨울엔 따뜻한 엔진 때문에 차 밑에 고양이들이 많은데, 놀라는 건 늘 내 쪽이지 녀석들은 아주 귀찮다는 듯 나를 째려보며 서서히 사라진다!)
요샌 녀석들이 우리 차고를 완전히 지네들 놀이터로 아는지 전용 화장실까지 만들어놓은 모양으로
고양이 똥이 굴러다니면서 냄새까지 고약해졌다. 에효...
길고양이들이 득실거리도록 만든 건 애당초 애완고양이를 기르다 무책임하게 내다버린
인간의 탓이 크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가엾은 거리 고양이들을 데려다가 살뜰히 키우는 사람들도 많다지만
동물을 사랑하기는커녕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엔 놀러가기도 싫어하는 나 같은 동물혐오증 환자에겐
그저 무섭고 싫은 존재일 뿐이다.
집앞 라일락 나무랑 무궁화는 벌써 단풍이 들었기에
날이 추워지면 잡초들도 곧 시들겠지 싶었는데 웬걸 오늘 보니 하얀 꽃들이 아직도 성성하고
맨 구석에 서 있는 잡초들은 줄기도 아주 튼실해서 내 힘으론 아예 뽑히지도 않게 생겼다.
그러니까 우리 동네 고양이들에게 꽤나 좋은 놀이터겸 화장실로 자리를 잡았겠지만
아무래도 조만간 다시 내가 주인텃세를 좀 해야할 것 같은데
어째 자꾸 잡초들한테도 고양이들한테도 좀 미안하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