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꾸러미'에 해당되는 글 198건

  1. 2007.11.21 두 번째 눈
  2. 2007.11.19 안경 욕심 14
  3. 2007.11.03 장갑 5
  4. 2007.10.31 운수 없는 날 8
  5. 2007.10.29 구멍 6
  6. 2007.10.25 신문 구독 6
  7. 2007.10.23 잡초와 길고양이 10
  8. 2007.10.18 습관 14
  9. 2007.10.14 취향 11
  10. 2007.09.15 착각 8

두 번째 눈

삶꾸러미 2007. 11. 21. 23:09
첫눈에 이어 그 다음날에도 또 눈이 오다니
올해는 눈이 흔하려는 징조인가?

동네마다 휘리릭 날리다 마는 것으로 그치는 예년의 첫눈과 달리
올 첫눈은 그래도 눈발이 꽤나 굵었다.
눈이 올 가능성을 알리는 기상예보엔 둔감했었는데, 첫눈 온다고 창밖을 내다보라는
정민공주의 전화를 받고서 후다닥 밖을 내다보니 옛날과는 달라도 조금은 가슴이 설렜다.
첫눈 온다고 호들갑 떠는 메시지를 몇개나 날렸을 정도로... ^^
물론 곧이어 내린 비에 첫눈의 흔적은 죄다 씻겨 내려갔지만
두 번째 눈은 오늘 오후까지 응달에 쌓여있을 정도니 꽤나 내린 모양이다.

그런데 첫눈과 두 번째 눈에 대한 대우는 사뭇 다르다.
첫눈이 다 녹아 흔적도 없는 건 그리도 아쉽더니만
두 번째 눈이 고스란히 쌓여 하얗게 뒤덮인 차를 보니 제일 먼저 눈 치우는 게  귀찮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인간이 참 어찌나 간사스러운지...

드륵드륵 앞창과 뒷창의 눈만 간신히 긁어낸 뒤 짧은 외출을 하며
그리 춥지도 않은데 히터를 세게 틀고 툴툴거렸다.
작년엔 그래도 12월 들어서 공식 겨울을 인정했는데
올해는 12월을 열흘이나 앞두고서 겨울을 받아들여야하는 것인가, 하는 쓰잘데기 없는 푸념과 함께.

그나마 한 데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제라늄이랑 화분 몇개는 며칠 전에 뒷베란다로 들여놓아 다행이다.
지들이 안 얼어죽으면 내년에 다시 살아나든지 하겠지.

어쨌거나 세번째 눈이 내리는 날엔
찻집에서 마음 편한 지인들과 수다라도 떨 수 있으면 좋겠다.
주책없이 너무 늦게 내리거나 너무 일찍 내리지 말고, 웬만하면 시간 맞춰서 눈이 오면 좋을텐데
하늘한테 너무 욕심 부리면 안되는 건가?

겨울이 온 건지 어쩐 건지는 몰라도
암튼 나의 가을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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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욕심

삶꾸러미 2007. 11. 19. 15:50
안경을 쓰는 사람이 다들 그런지 어쩐지는 모르겠는데...
내 경우 자꾸만 새로운 안경테를 쓰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쉽사리 지름신을 받아들이는 인간도 아니다 보니
새 안경 갖고 싶다고 마음을 먹게 되면 몇달간은 머릿속으로만 내가 진정 원하는 안경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결국 평균 1, 2년에 한번 정도 새 안경을 장만한다.

안경테도 유행에 워낙 민감한 탓도 있지만
난 또 유행과 상관없이 한 번 끼고 싶은 테는 껴봐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_-;;
그간 자주 번갈아 끼고 지내는 안경 두 개 말고도 그 전에 3년 넘게 주야장천 끼고 살았던 거랑
할머니 유품에 렌즈만 바꿔 낀 것,
동그란 무테 안경이 쓰고 싶어져서 안경사의 만류를 무릅쓰고 내 상상대로 디자인(?)해 렌즈를 커다란 동그라미로 오려낸 무테안경,
그리고 봄부터 끼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다가 드디어 오늘 맞춰 낀 검은뿔테 안경까지...
총 6개인가보다.
그나마 재작년부턴 시력이 더 나빠지질 않아서 한꺼번에 렌즈 다시 맞춰끼느라 목돈 들어갈 일이 없어서 다행...
아, 맞다. 테가 마음에 들어서 미리 장만해두고 렌즈는 아직 끼지 않은 안경도 하나 있다. ㅋ
선글래스는 물론 별도;;;

시력이 달라져서 무용지물로 변해 책상서랍 어딘가에서 뒹굴던 안경도 두어 개는 될 텐데
그건 아무래도 버리게 될 것 같다.

내가 처음 안경을 낀 건 고1때.
그땐 안경을 하나 맞췄다가 좀 지나 시력이 달라지면 테는 그대로 두고 렌즈만 바꾸는 것을 당연하다 여겼다.
하지만 계속 똑같은 안경을 끼기 싫은데 안경테가 너무 멀쩡해서 대학 다니던 시절 한번은 일부러 안경 다리를 부러뜨렸던 적도 있었던듯 ㅋㅋ
우리 집에선 안경을 쓰는 사람이 아버지와 나밖에 없었는데, 검소한 아버지는 안경테가 망가지지 않는 한 렌즈만 바꾸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 회사에 다니게 되니 콘택트렌즈를 껴야했다.
면접보러 갈 때부터 조교 언니가 안경 벗고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에 맨눈으로 뵈는 것도 없이 면접을 하고 나서 취업이 결정되고는 부랴부랴 렌즈를 맞췄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왜 굳이 안경을 벗고 면접을 봐야했는지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때 유행하던 안경은 두툼하고 커다란 뿔테였기 때문에 답답해보였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다 내가 콘택트렌즈를 포기하고 안경으로 완전히 돌아서게 된 것은 2000년.
그 전에도 밤샘 작업이 많은 날엔 눈이 빡빡해 렌즈를 끼기가 힘들어 안경을 낄 때가 많아지긴 했지만
늙다리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면서는 도저히 렌즈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눈이 피곤했다.
설상가상 안과엘 갔더니 인간 나이 30살이 넘으면 눈물의 양도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순도도 떨어지기 때문에 웬만하면 안경끼고 살라는 충고를 듣고 보니, 시력교정 수술을 하지 않는 한 안경은 내 삶에 필수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시력교정 수술을 생각해본 적도 있기는 했는데
일단 "눈을 깎아낸다"는 시술 방법도 너무 무섭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전전긍긍 고민하다
누군가 라식 수술 후 부작용으로 시각장애인이 됐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확실하게 수술을 포기했던 것 같다.
그러곤 수술 포기 기념으로 수술비의 "5분의 1밖에" 안된다며 사상 최고가의 안경을 장만하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오늘 맞춘 안경은 소박한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테보다 렌즈 가격이 더 비싸다 보니 드디어 소망하던 검은 뿔테 안경을 끼게 되서 기쁘긴 하지만
굳이 꼭 필요하지도 않은 사치를 또 부린 것 같아 동시에 죄책감도 든다.

수도원을 떠나는 어떤 수녀님의 짐이 작은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가는 걸 보고
반성하며 단촐한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다던 이의 글을 읽고선
나 역시 욕심을 버려야한다고 다짐한 게 불과 며칠 전 같은데
이 무슨 충동인지... 작년부터 사고 싶어했던 레이스업슈즈도 사고 싶고
캐시미어 질감이 좋은 코트도 장만하고 싶고 (작년엔 알파카 코트 일색이라 수백만원짜리 명품 아니면 아예 캐시미어 코트가 시중에 없어서 나에겐 너무 좋았는데!)
LP판 들을 수 있는 전축도 사고 싶다. -_-;;;
이 욕심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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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삶꾸러미 2007. 11. 3. 15:35


종교와 상관없이 크리스마스를 유별나게 따지던 시절,
그리고 찬바람이 불 무렵 생일을 맞은 이들에게
나는 별 고민 없이 늘 장갑을 선물했다.
스카프나 목도리가 많을수록 좋은 것처럼, 장갑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언제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장갑은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기 참 좋은 물건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장갑; glove*에 '사랑; love'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사랑과 관련된 복합어가 아닌 한, 저렇게 love가 단어 안에 들어가 있는 말은 glove 말고는 없는 듯하다 (찾아내시는 분께 700원*a 드리겠습니다!)

장갑을 선물할 때 그래서 난 꼭 glove와 love 이야기를 전하곤 했는데
그렇게 십수년간 사랑을 전파했음에도 -_-;;; 정작 내가 사랑이 깃든 장갑 선물을 '타인에게' 받아본 기억은
딱 한 번 뿐이었다.
생일이 여름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굳이 안챙기게 된 탓임을 알기에
언젠가 한 번은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부러 고급스런 장갑을 고르고나서 혼자 민망해한 적도 있었다.
하이고, 내가 이리도 사랑에 굶주렸구나 싶어서 말이다.

여전히 겨울만 되면 나는 장갑 코너에서 만지작만지작 욕심을 부리다가
집에 열 개쯤 있는 장갑을 떠올리고는 지름신을 물리친 뒤
정 사고 싶으면 지인에게 선물할 것을 하나쯤 고르는 게 다였다.

그런데 어제 '드디어' 간만에 나도 장갑 선물을 받았다.
가죽느낌이 부드럽고 손목을 꽤 길게 덮는 리본 달린 날씬한 장갑이다.
역시 주는 사랑보다 받는 사랑이 따뜻하고 푸근하다는 걸 실감하며
싱글벙글 오늘까지도 주책맞게 자꾸 장갑을 껴보고 있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
난 또 겨울이 온 것을 슬퍼하겠지만
그래도 새 장갑 끼고 나갈 생각에 잠깐이나마 흐뭇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것이 행복이려니 하련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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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없는 날

삶꾸러미 2007. 10. 31. 17:22

살다보면 그런 날도 있으려니.. 하지만 오늘처럼 짜증이 연달아 치밀면
요즘 같이 인내심이 바닥인 경우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다.

가뜩이나 짜증나는 은행 볼일이 또 생겨 노친네 모시고 기껏 동네 농협에 갔더니만
이 노친네 통장만 챙기곤 지갑을 집에 두고왔단다. -_-;;
신분증이 없어서 결국 볼일을 못봤음은 물론이고, 지난번에 창구에서 노친네를 면박준 문제의 은행원과
한판 붙으려고 눈에 쌍심지를 켰다가 신분증이 없어 아무것도 못하게 됐다는 사실을 안 순간 민망한 얼굴로 돌아서야 했다.
그래도 한판 붙어줬어야하는 건데 말일이라 은행에 사람이 너무 많아 나도 정신이 없었다.

이어 농협 옆에 붙은 마트에서 장을 보자고 하기에 엄마랑 같이 카트를 밀며 다니고 있는데
5분도 안돼서 안내방송이 왕왕 울렸다.
주차단속 나왔으니 얼른 길가에 세운 차를 옮기란다.
헉.. 나한테 한 말이었다.
단숨에 뛰쳐나가니 주차단속원 아저씨들이 주차딱지 붙여놓고 사진을 막 찍으려던 상황...
그나마 훈방조치. 빨리 차나 빼라고 해서 마트 주변 길을 한바퀴 돌아 주차단속 안될만한 곳을 찾다보니
동네 어귀까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씩씩대고 다시 마트 쪽으로 걸어가려니 울 노친네 장도 다 안 봤는데 그것만 달랑 계산해 가지고 나와서는
길바닥에서 헤매고 계시다고 전화가 왔다. 아 짜증..
장바구니도 일부러 챙겨갔는데 비닐봉지를 2개나 사질 않았나 현금영수증 전화번호도 엉뚱한 걸로 불러줬단다.
그 새를 못 참고!
남은 열받아 죽겠는데 이 노친네, 내가 고른 양파가 하필 맨 위 하나가 썩은 거였다면서 더욱 화를 부채질 하신다. 그걸 발견했으면 바꿔오시든지!

다시 마트 들어가기도 귀찮아서 씩씩대며 양손에 짐들고 차 세워둔 곳으로 찻길 건너 올라가니
아 이건 또 뭐람.
단체로 소화불량 걸린 닭둘기의 짓인지 회백색의 새똥이 차 문짝에 '한 바가지' 떨어져 있었다. >.<
오래 전 새똥의 지독함을 모른 채 세차 안하고(원래 차를 더럽게 해서 다니는 편이고 그땐 또 잘난 척 손세차만 하던 시절이었다 ㅠ.ㅠ)  2, 3주 버티다 세차장에 갔더니만 범퍼에 새똥 떨어진 부분 도장이 완전히 홀라당 벗겨졌더랬다. 세차하던 아저씨가 오히려 더 놀라서 나를 막 불러내 설명을 하며 새똥이 떨어지면 암모니아 성분 때문에 도장이 쉬 상하기 때문에 얼른 닦아줘야 한다고 가르쳐줬다.
바빠죽겠는데 내일 당장 세차해야 하게 생겼다.

집에 노친네랑 장 본 거 내려놓고 또 서대문 도서관에 자료 좀 찾아보러 갔더니만
아 된장... 내가 찾는 책들이 하나같이 관외대출중이거나 서고에 없었다. ㅠ.ㅠ
이 무렵이 대학 중간고사 기간인가??
지난번에 주욱 찾아서 청구번호 적어놨을 땐 다 있었는데 미리 좀 빌려올 것을!!
게으름부리며 자료확인을 미루어왔으니 다 내 탓이긴 하지만 퍼뜩 머피의 법칙이 떠올랐다.
컴퓨터 자료검색엔 책이 있다고 나와도 책꽂이에 없는 책일 경우 서고 근처에서 책보는 사람을 살펴봐도
경험상 절대로 찾아내리란 보장은 없다. 설사 누가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고 해도 내 주변머리로 책을 빼앗아(?) 올 리도 만무하지만 암튼 인원수도 많지 않은 서고 옆 책상을 둘러봐도 내가 보려는 책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서점에 나가보는 수밖에. 으휴...

마지막으로...
신경질 잔뜩 부리면서 집에 돌아와 차고에 주차하다가
그간 잘만 피해왔던 고양이똥을 보란듯이 타이어로 밟아주었다.
다른 때는 한번에 잘만 꺾이던 핸들이 왜 빌빌거리며 말을 안 들은 것일까, 왜 하필 오늘!!
그저 더럽게 운수없는 날이기 때문이려니 하면서
얼른 10월의 마지막날이 가버리길 빌고 있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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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삶꾸러미 2007. 10. 29. 19:52

가끔 뇌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시기를 겪는다.
창작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텅 빈 모니터 화면에서 깜박이는 커서나
빈 노트 또는 원고지를 앞에 두고 그저 바라보며 막막함을 느끼는 때가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번역은 누군가 써놓은 텍스트에 기대어 '글을 옮기는' 작업이므로
그들처럼 원초적인 막막함은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한정된 용량의 두뇌에서 끊임없이 말을 꺼내 써먹다 보면
어느 순간 사고를 지닌 인간이 아니라 번역기계가 되어버린 자신을 느낀다.
성의없이 번역기로 돌려 생성해 놓은 어처구니 없는 정보를 보듯
풍요롭지 못한 어휘로 쥐어짜 놓은 문장들은 무미건조하고 단조롭다.
거기서 더 기계를 혹사시키면 아예 삐걱삐걱 고장 직전의 덜컥거림이 감지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어제는 trap이라는 단어를 보며 '함정'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뭐더라, 뭐더라, 내가 옮기려는 문장에 더 어울리는 우리말이 있었는데 뭐더라... ㅠ.ㅠ
자존심이 상해서 사전을 뒤져볼 생각은 안하고 계속 몇분째 trap을 째려보고 있으려니
정말로 내가 함정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마감을 앞두고 그런 걸로 소모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자존심이고 뭐고 결국 인터넷 사전에 trap을 쳐넣으며
비감에 젖었다.
내가 쓰고 싶은 말은 '덫'이었다...

기계가 삐걱거릴 때는 심지어 요즘 초등학생조차 알 것 같은 기본단어 앞에서도 머리가 멍하다.
두개골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말랑말랑한 뇌가 뭉텅이로 녹아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원래 한 권의 작업이 끝나면 일주일쯤은 마감을 자축하며
시체놀이하듯 실컷 자고, 책방에 가서 읽든말든 일단 허영심을 채워줄 책도 좀 사오고, 굳이 '문화생활'이라고 하 것까진 없어도 영화를 보든 연극을 보든 공연을 보든 많이 보고 경험하고 느끼는 일종의 '자양분 섭취' 기간을 둬야 한다.
하지만 그간 개인적인 사정으로 너무 오래 지체된 일들을 한꺼번에 마무리하며 그런 여유를 부릴 순 없었다.
아니 집에서 무기력하게 빈둥거릴지언정 그런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다고 미련하게 단정했다.
결국 미련함의 뒤끝에서 타격을 입는 건 자신임을 알면서 왜 이런 짓을 반복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에 난 구멍은 꽤나 커서 메우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
사실 지금은 정말로 구멍을 메울 여유조차 없다.
당분간은 고장난 기계를 억지로 부려 써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

평생 공포영화는 제대로 본 적도 없는데 문득,
머리 뒤쪽이 절반쯤 날아간 것도 모르고 어정어정 걸어다니는 가엾은 영혼이 마치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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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구독

삶꾸러미 2007. 10. 25. 11:58


신문구독을 계속 해야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이다.
매일 날아오는 것이 신문이지만 어쩔 땐 일주일치가 손도 대지 않고 고스란히 쌓여 있다가
재활용품 수거 날에 한꺼번에 쫓겨나기도 한다.
두 여자가 원래 매일 신문을 들춰볼 만큼 시사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주말섹션에 나오는 북리뷰 정도나 챙겨볼까, 나는 시간이 많고 한가로울 때도 신문과 별로 친하지 않다.
어차피 주요 기사는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으니 굳이 신문을 펼칠 마음이 안들 때가 많다.
게다가 논조까지 편파적인 보수언론이니 가끔 사설을 보면 기가 찰 때도 있다.
그런데도 확 신문을 끊을까... 하는 문제에 직면하면
두 여자 모두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_-;;

신문의 구독 이유가 단지 '정보 습득'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나라 처럼 신문의 용도를 광범위하게 쓰는 나라가 또 있을까?
나물이나 대파 다듬을 때, 김치 담글 때, 명절마다 전 부칠 때, 집에서 삼겹살 구워 먹을 때, 손톱발톱 깎을 때,
먼저 바닥에 척 깔고 보는 것은 물론 신문이다. (설마 우리 집만 그러는 건 아니겠지? ^^)

옛날에 회사 다니던 시절에도, 점심식사를 사무실로 배달시키고 나면
너무도 당연하게 누군가 회의실이나 빈 임원실에 신문을 깔아놓곤 했다.
나중에 치우기 쉬우라고 그러는 것일 테지만, 잉크 냄새 나는 신문 위에서 밥을 먹는 것이 그리 즐겁진
않았던 것 같다.
외국인들이 보기에도 그 모양이 좀 우스워보였던지, 본사에서 출장온 직원들이 짜장면 탕수육 따위의
중국음식을 시켜 회의탁자 위에 죽 늘어놓고 부페식으로 점심을 같이 먹게 되면
참 '독특한' 테이블보도 다 본다는 언급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디자이너 하나는 그런 우리가 영 불쌍해 보였던 듯, 뉴욕으로 돌아가서 비닐로 된 체크무늬 식탁보를 샘플 박스에 넣어 보내며 '제발'(please를 두번이나 썼더랬다 ㅋㅋ) 신문지 대신에 그걸 깔고 맛있게 점심을 먹길 바란다고 전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는 밥먹고 나서 식탁보를 휴지로 닦아 보관하는 수고를 피하고 싶었으므로
오후 새참이든 점심이든 사무실에서 뭘 먹게 되면 그 뒤로도 줄기차게 신문지를 깔았다. ㅎㅎ
(아, 이 대목에서 요즘 사무실 풍경도 그러한지 현재 직딩이신 이웃 분들의 참고발언 부탁드립니다 ^^)

둘째, 20년 가까이 보던 신문을 끊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자전거, 스팀청소기, 전화기, 상품권 따위의 선물을 들이밀며 신문구독을 꼬드기던 경쟁 신문사 때문에
우리도 몇번 신문을 바꿔보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무쇠힘줄처럼 질긴 이 신문보급소에서는 3개월 구독료 무료, 유사 선물 제공 따위의 당근으로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우리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선물만 받아먹고 야멸차게 구독을 끊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막상 또 저들의 구구절절한 푸념과 사탕발림 얘기를 듣고 나면 계속 신문을 보게 된다고 했다. -_-;;
째뜬 현재는 그나마 아버지 통장에서 빠져나가던 자동이체를 해지한 상태라 신문 구독 중단을 선언하고
신문대금을 안내면 그만일 것도 같다.
이 참에 내가 보고 싶었던 신문으로 확 바꿔버릴까 했더니, 심약한 우리 엄마께서 신문값도 할인받고 있는데 사람도리가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고 또 꼬리를 내리신다. 으으으...
냉정하게 신문 안본다고 했는데 혹시라도 계속 신문을 배달하는 바람에 "XX일보 사절"이라고 써놓고 보급소와 싸움이라도 벌이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면 아마 울 엄만 단박에 스트레스 받아 앓아누우실 거다. +_+

셋째 이유는... 뭔가 더 있을 것도 같은데 딱히 생각나질 않는다.
아무튼 신문도 우리 식구들에겐 뿌리 깊은 습관인 것 같다.
보지도 않으면서 단순히 아침마다 배달온 우유와 함께 집어오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익숙한 반복행위가
너무 깊이 자리를 잡은 셈이다.
사실 그 임무가 엄마에게 떨어진 것은 몇달 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그걸 아주 대단한 과업인양 생각하신다.언뜻 보기에 별 것 아닌 사소한 일이지만, 남편이 하던 일을 당신이 이어 하고 있다는 생각에 엄마는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우리 모녀는 둘 다 생각이 너무 많아 탈이다.
게다가 우유부단하기까지.
아...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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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와 길고양이

삶꾸러미 2007. 10. 23. 13:42

동물을 사랑해마지 않는 주변의 많은 이들을 보며 늘 나란 인간은 왜 이럴까
의구심에 젖게 되는데, 남매가 함께 스컹크 구조작전에 힘쓴 쌘의 포스팅을 읽으며
과연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니(다짜고짜 온동네 떠나가게 비명을 질러 '뿌림'부터 당했을 게다) 머리가 다 띵했다.

그나마 주변에서 부딪치는 동물이 이웃에서 괴롭게 짖어대는 개와 길고양이 정도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사람마다 취향이 가지각색이긴 하지만 나는 동물을 '몹시' 싫어하는 편이다.
동물원엘 마지막으로 간 게 아마도 10년은 된 것 같은데, 가끔 기린이나 팬더, 코알라를 신기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동물원 특유의 '냄새'도 싫을 뿐더러 웬만한 동물들은 쳐다보기조차 무섭다. +_+
그나마 애완견은 하도 흔하다보니 그렇다 쳐도
길거리에서 토끼나 병아리 따위를 파는 행상을 보면 나는 얼른 눈을 질끈감고 그곳을 피해야 한다.
지금도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파는 나쁜(!) 행상들이 있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 교문 앞 햇살 좋은 곳에 병아리 상자를 놓고 아이들을 현혹시키는 좌판이 있는 날이면
나는 병아리와 혹시 눈이 마주칠까봐 무서워서 교문을 못나서고 서성이다 눈물을 질끈 삼키고는
다다다다~ 뛰어지나가곤  했다.

동네 골목을 지키는 개가 무서워 집에 못가고 빙글빙글 동네를 방황했다거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는 고양이 때문에 밤엔 절대로 혼자 심부름을 못갔다거나
(십여년 전에 한번은 집앞 계단에서 연이어 튀어나오는 고양이 세 마리에 놀라 목이 갈라지도록 비명을 질러댄 탓에 강도 당하는 줄 알고 울 아부지를 비롯해 동네 사람들이 몽둥이 들고 튀어나오기도 했다ㅠ.ㅠ)
하는 사연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쥐라도 보는 날이면 꺅꺅 비명은 물론이고 놀라 길길이 뛰다 발목을 접지른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물론 쥐는 지금도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다. ㅠ.ㅠ

명절 연휴때 혹시 길고양이가 굶을까봐 통조림까지 갖다 주셨다는 루인님도 계시지만
나에게 길고양이는 그저 골목길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물어뜯어놓는 공포와 짜증의 대상이었는데 요샌 고양이로 인한 골칫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우리 집 바로 옆에 빌라가 들어서면서 골목길은 물론 우리집 차고 바닥까지 아스팔트로 깨끗이 깔아준 것이
몇년 전이던가. 암튼 몇년 된 것 같긴 한데 언제부턴가 아스팔트 사이로 조금씩 잡초가 나기 시작하더니만
우리가 게으름을 부리며 한해 두해 지나는 사이 차고 가장자리는 마치 잡초들의 화단처럼 꽤나 무성하게
식물들이 터를 잡았다.
사실 '잡초'라는 건 인간이 그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해 싸잡아 식물을 폄하하는 나쁜 습관임을 잘 알고 있는 데다, 얼마 전엔 잡초를 제거하지 않고 밭농사를 짓는 방법도 있다는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했고(잡초가 농사는 물론이고 환경에 큰 도움이 된단다!),
또 차고에 돋아난 이름모를 식물들 속엔 내가 아는 민들레와 개망초도 있어서(역시 이럴 땐 아는 게 병이다 ㅋㅋ) 차를 넣고 뺄때 긁힐 정도까지 무성해지지 않는 한은 그냥 두고 봐야하지 않을까 고민'만' 하고 있었다.

봄부터 지금까지 화려하진 않지만 작고 하얀 꽃들을 피우기도 하고 빨간색 수술열매 같은 걸 매달기도 한
잡초들을 그저 깨끗한 차고로 유지한답시고 모질게 뽑아버려야할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툼한 아스팔트를 뚫고 자란 녀석들의 생명력도 참 대단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차고 가장자리가 잡초로 무성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으니
그건 바로 고양이똥. -_-;;

예전에도 고양이들이 두어마리씩 차 밑에서 어슬렁 기어 나오면 기겁을 하고 놀라곤 했는데
(특히 겨울엔 따뜻한 엔진 때문에 차 밑에 고양이들이 많은데, 놀라는 건 늘 내 쪽이지 녀석들은 아주 귀찮다는 듯 나를 째려보며 서서히 사라진다!)
요샌 녀석들이 우리 차고를 완전히 지네들 놀이터로 아는지 전용 화장실까지 만들어놓은 모양으로
고양이 똥이 굴러다니면서 냄새까지 고약해졌다. 에효...

길고양이들이 득실거리도록 만든 건 애당초 애완고양이를 기르다 무책임하게 내다버린
인간의 탓이 크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가엾은 거리 고양이들을 데려다가 살뜰히 키우는 사람들도 많다지만
동물을 사랑하기는커녕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엔 놀러가기도 싫어하는 나 같은 동물혐오증 환자에겐
그저 무섭고 싫은 존재일 뿐이다.

집앞 라일락 나무랑 무궁화는 벌써 단풍이 들었기에
날이 추워지면 잡초들도 곧 시들겠지 싶었는데 웬걸 오늘 보니 하얀 꽃들이 아직도 성성하고
맨 구석에 서 있는 잡초들은 줄기도 아주 튼실해서 내 힘으론 아예 뽑히지도 않게 생겼다.

그러니까 우리 동네 고양이들에게 꽤나 좋은 놀이터겸 화장실로 자리를 잡았겠지만
아무래도 조만간 다시 내가 주인텃세를 좀 해야할 것 같은데
어째 자꾸 잡초들한테도 고양이들한테도 좀 미안하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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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삶꾸러미 2007. 10. 18. 23:43
반복되는 습관에서 벗어나면 못내 불안해지는 것.
그건 곧 변화를 두려워하는 '늙어감'과 동의어라고 언젠가 들은 것 같다.
'나는 가능한 한 평범하게 늙어가진 않을 테야!'라고 다짐하듯
사소한 습관을 바꿔보려 하지만
결국엔 늘 제자리다.

자는 방에 시계를 한동안 없앴었다.
방방마다 벽시계가 하나씩 꼭 걸려 있어야 하는 건 참 구태의연한 발상이지만
노친네들이랑 오래 산 터라 그게 너무도 당연한 듯했다.
그러다 부엌 시계가 고장나는 바람에 옳다구나 내 방 시계를 그리로 옮겨놓고는
벽시계 없이 살아보리라 생각했다.
밤마다 극도로 예민해진 순간 째깍거리는 소리 때문에 시계 건전지를 빼놓고 자는 날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횡뎅그러니 못만 남은 벽을 나는 하루에도 몇번 씩이나 습관처럼 쳐다봤다.
집에 있을 땐 늘 휴대폰을 지니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얼 그렇게 시간에 쫓기며 사는지 스스로도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나 늘 쳐다보았을 때 있던 물건이 졸지에 사라졌다는 상실감은 의외로 컸고,
흘긋 돌아본 벽에 남은 못이 너무 을씨년스러우니 빼버리거나 다른 액자라도 걸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무음시계를 사다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차츰 강해졌다.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몇달 전 조카 그림을 거실에 걸어두게 되면서 거기 있던 가족사진이 엄마 방 시계 걸린 자리로
물러나고, 벽시계는 다시 화장대 옆 자리로 쫓겨나고 말았는데
엄마도 나도, 시간을 확인하려면 먼저 10여년 이상 시계를 걸어놓았던 자리에 걸린 사진을 쳐다본뒤
아차 하면서 다시 새로 걸린 시계 자리로 시선을 돌린다.

별것 아닌 물건에도 이리 습관성 집착이 강한 인간이니
다른 것에야 오죽할까.
생각해보면 내 주변의 모든 관계와 만남 역시 습관에 의한 반복 행위인 듯하다.
그래서 가장 습관적이었던 관계의 단절, 아버지의 부재가 이토록 허망하고 크게 느껴지는 것일 게다.

결국 벽시계 없이 지낸 지 채 한달도 못 되어 내 방엔 소리없이 초침이 유연하게 돌아가는 무음시계가 걸렸다.
정신도 육체도 차츰 늙어간다는 걸 마음 편히 받아들이면
습관에서 못 벗어나는 것도 큰 흉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데, 어차피 세 살은 지난 지 오래고 여든까지도 절반은 왔으니
이제 와서 제 버릇 남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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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삶꾸러미 2007. 10. 14. 17:30
친구, 지인, 또는 그저 '아는 사람'의 범주로 분류되는 사람들과 나의 취향이
꼭 맞아 떨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성격이 정 반대인 사람들끼리 만나야 잘 산대"라는 말은 걸핏하면 툭탁거리는 커플들을 위해
확실히 조작된 위로이며, 실제로 잘 지내려면 친구든 가족이든 공통점도 많고 취향도 엇비슷해야 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때로는 비슷한 취향과 공통점 때문에 뜻밖의 상황에서 친구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친구라 해도 당연히 취향이 같아야 우정의 깊이도 더 깊어지는 듯하다.
다만 친구의 경우엔 가족이나 파트너와 달라서, 이해심과 봐주기의 여유가 한껏 늘어나기 때문에
비록 취향이나 성격이 다르더라도 참아주고 넘겨주고 눈감아주게 되는 것 같다.

오늘 만난 지인들과 오랜 수다를 나누던 중에 친구와 떠나는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사람은 제대로 친해지려면(또는 그 사람을 잘 알아보려면) 밥(때론 술) 같이 먹고, 여행 같이 가고, 고스톱 한 판 쳐봐야 한다는 말이 있듯, 여행은 친구에 대한 새삼스러운 발견의 경험일 때가 많다.
절친한 친구가 아니면 쉽사리 동행을 결정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여행길에서
의외의 골칫거리나 '웬수'로 돌변하는 경우도 있고, 우정과 이해의 폭이 더욱 돈독해지는 때도 있다.

나는 두 부류의 친구를 모두 경험해 보았는데,
솔직히 고백하건대 여행길에서 *웬수* 같은 존재임을 깨달았던 친구는 나와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친구임에도
그뒤로 많이 멀어졌다. 최소한 내쪽에선 그렇다는 뜻이다. ^^;;

여행뿐만 아니라 그저 사소한 만남의 자리에도 취향과 배려는 중요하다.
어떤 만남에서도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약속을 선도하는 주축이 있기 마련인데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내가 그런 역할을 도맡는 건 꽤나 드문 일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역할을
담당했을 경우 상대방의 취향에 맞을지 장소와 먹거리를 고민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가령, 중년 아저씨가 되어버린 친구들은 주문하기도 복잡한 커피전문점이나 파스타집을 죽도록 싫어한다.
심지어 나이 40 넘도록 스파게티를 단 한번도 안 먹어본 이도 있을 정도다. ^^
그들이 선호하는 곳은 뻔하다. 편안하게 방바닥에 앉을 수 있는 고깃집이나 찜, 탕 같은 음식을 취급하는 곳이면 어디나 합격점이니, 이렇게 좋고 싫음이 분명한 친구는 차라리 별 문제가 없다.
골칫거리는 "네 마음대로 해. 난 아무데나 좋아."라고 *말*은 해놓고 가타부타 트집을 잡는 친구다.

지인들 중에선 그나마 활동범위가 많은 내가 아는 곳도 많을 것 같다며
가끔은 만나자마자 괜찮은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찻집, 커피집을 데려가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가
드문드문 있다.
취향을 빠삭하게 아는 절친한 지인이라면 어딜 데려가든 걱정할 것도 없지만
어중간한 관계에선 은근히 고민스럽다.
나름대로 신경써서 데려간 곳인데도 취향에 따라 반응은 천차만별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주워온 듯 똑같은 의자가 드물고, 테이블이라야 몇개 되지도 않아 긴 탁자에 남들과 나눠 앉아야 하지만 커피와 코코아 맛은 일품인 찻집엘 가서도
어떤 이는 분위기 독특하다, 탁자의 나뭇결이 마음에 든다, 코코아랑 와플 맛있다, 소품이 아기자기해서 재미있다...라고 내 선택을 칭찬해주는 반면에
어떤 이는 인테리어가 거칠어서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 이러고도 장사가 되는 게 신기하다, 와플와플 난리라서 어떤 맛인가 궁금했더니 별 맛도 없는 게 가격만 비싸다, 자기 같으면 20년 전에 갖다 버렸을 물건들을 빈티지라면서 생색내는 게 웃기다... 따위의 타박만 하기도 한다.

아 그럼 독특한 분위기의 찻집을 데려가라고 하질 말든가!!! -_-;;

농담삼아 늘 반어법을 쓰는 친구라든가, 매사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씹어대는 걸 사심없는 취미로 삼은 친구라면 또 나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 취향이 촌스럽고 감각이 없다고 웃으면서 된통 빈정거려주면 그뿐이다. 상대 역시 내 반응을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내 취향과 노력을 감안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최소한 상대방에 대한 배려마저 잊은 채 시종일관 구시렁구시렁 타박을 일삼는 지인에겐 정이 똑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나와는 맞지 않는 본인의 취향을 강요하는 이 또한 경계 대상이다.

책이든 영화든 먹거리든, 사람마다 취향은 가지각색임을 잘 안다.
그리고 나란 인간은 특별히 고급스럽거나 까다로운 취향을 지니지도 못했고, 최신 유행을 좇아서 차를 마시러 다니고 맛집을 찾아다닐 만큼 부지런하고 엽렵하지 못하다. 다만 뭔가 맛있고 멋스러운 곳을 '발견'하면 그 기쁨을 가족이나 지인들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
그들도 나에게 그래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고.

말로는 모든 측면에서 사회구성원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부르짖으면서
뒷구멍에서는 은근히 주변 이들에게 취향의 공유까지 바라는 내 마음이 모순이란 것도 인정한다.
그렇기에 취향의 다름이 인간에 대한 실망이나 감탄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마음이 좁아지고 너그러움마저 줄어드니 안타깝다.
살면서 점점 더 편협한 인간으로 변해가진 말아야 할 터인데,
아무리 돌아봐도 가는 방향이 딱 그쪽이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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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삶꾸러미 2007. 9. 15. 21:43
사람들은 어느 정도 착각의 늪에 빠져 살아야 행복하긴 하다.
신모씨처럼 그 정도가 겉잡을 수 없이 심해질 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며
패가망신을 넘어서 범죄로까지 치닫게 되는 게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자기만 살짝 기대어 사는 사소한 착각은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사소한" 착각의 효과 마저도 사라져 진실이 드러나는 경우엔 크고 작은 실망을 피할 수 없지만 말이다.  바로 오늘 나처럼... ㅠ.ㅠ

그동안 측근들에게 '동안'이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듣고 살아온 터라
"정말로" 그런 줄만 알고 있었거나(여기서 자기기만의 혐의가 포착된다) , 그런 착각의 늪에 빠져온 것이 사실이다.
정신연령도 심히 부족한데 어리게 봐주면야 그저 기쁘지 아니한가.
하지만 측근들은 대개 나를 과거부터 꽤 오래 보아왔기 때문에 조금씩 늙어가는(!) 내 모습에 익숙해져 옛날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 객관적인 잣대로 본다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하나도 안 변하고 옛날이랑 똑같다!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인다!"는 말은 뻔한 거짓임을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동창회에 나오셔서 하는, "어머 얘는 여고시절하고 어쩜 이렇게 똑같니.."라는 말처럼, 내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보인다는 말은 측근들이 보기에 그저 얼굴의 특징적인 느낌들이 크게 '변질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정도일 것이다.
 
어쨌든 근거 박약한 나의 '동안 미신'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논리적으로 수긍은 하면서도
막상 현실에서 누군가 내 착각을 일깨워주면 그 충격의 강도가 꽤나 크다.

오늘 외출은 어째 시작부터 불길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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