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별로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않는 나는 웬만한 푸시알림 기능을 다 꺼놓고 내킬 때만 들여다본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조금씩 하기는 하지만 주로 구경하는 쪽이라 SNS의 과잉현상에선 한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언제부턴가 그놈의 카카오톡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겼다. 문자와 달리 카톡은 무료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또 무료이기 때문에 사방팔방으로 시답잖은 내용을 복사해 전송하는 사람들은 왜 또 그리 많은지! 4040 번호로 오는 전화를 받으면 순식간에 2만5천원이 결제된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의 메시지는 아마 그날 대여섯번 쯤 받은 것 같다. 유행하는 유머 동영상 링크를 수시로 보내는 사람들도 꼭 있다. 참 정성도 뻗쳤다고 하겠다. 하지만 안부인사를 겸한 것이든 아니든 대뜸 띵동 띵동 일방적으로 복사해 전송하는 그런 메시지가 나는 하나도 고맙지가 않다.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유유상종인지, 보내오는 메시지 내용이 똑같을 때도 많다. 알고 보면 퍽 비좁은 카톡 세상에서 돌고 도는 유행인지 몰라도, 그들이 원한 반응은 '지루한 오후 너 때문에 한참 웃었다. 고마워!' 따위의 것인지 몰라도, 그냥 내겐 귀찮은 스팸일뿐이라고!!
얼마전까지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을 때 받는 이가 정식으로 읽지를 않으면 전송시간 앞에 적힌 숫자가 없어지질 않는단다. 초기화면에 알림기능으로 내용이 뜨기 때문에 완전히 읽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간 귀찮은 메시지가 오면 읽지 않는 것으로 나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하게 무딘 사람이 아니고서야 읽지도 않고 답장도 안하고 씹으면 싫어하려니 싶어서 관두겠지 여기기도 했고. 헌데 나처럼 메시지 읽음 표시 기능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아직도 끈질기게 재미난 유머 링크나 꼭 알아야 할(?) 뉴스 따위를 친절하게 보내오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카톡스토리라나 뭐라나 새로운 앱이 나왔는지 새로이 친구신청을 하는 이들도 생겼다. 이쯤 되니 대인기피증이 심해지는 듯, 카톡 계정을 확 삭제해버릴까 충동이 인다. 내게 연락을 하고픈 사람이라면 문자 메시지 비용쯤은 감당하기를 바란다고 하면 너무 이기적인가? 안 그래도 수익구조에 야로가 많은 통신회사에 굳이 유료 문자전송으로 돈 벌어줄 이유가 없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있으려나?
어쨌든 충동 대로 곧장 카톡탈퇴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데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전화기피 증상이 심하고, 차츰 사교성도 줄어들고 그렇다고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도 아닌 삶이 이어지다보니 밖에서 친구 만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친구라고 해도 다들 거의 비슷한 성향의 인간들이 어울리다 보니, 누군가 성격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은 어영부영하다가 결국 곁에 남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궁금하고 보고싶고 만나서 수다떨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실천은 하게 되지 않는 이 망설임을 과거엔 그래도 '갑갑함' 때문에라도 떨칠 수 있었지만, 이젠 정말이지 집구석이 제일 좋고 일주일, 열흘 집안에서 꼼짝하지 않아도 별로 갑갑하지 않다.
나의 전화 기피증과 게으름을 알기에 먼저 연락해주는 이가 아직 더러 있는 건 고맙고, 막상 불러주면 기쁘게 달려나가지만 내쪽에서 오랜 침묵을 깨고 만남을 청하는 건 또 쉽지가 않다. 머릿속으로 늘 생각하고 있으면서 막상 연락은 못해 아쉬운 이들도 있지만, 차라리 이렇게 서서히 관계가 정리된 것이 반가운 친구들도 있지 않은가! 나도 그렇게 정리되어 차라리 반가운 인물이면 어떡하지?! 아무려나 점점 은둔형 인간이 되어가는 탓에 소통의 도구가 점점 줄어드는 마당에, 몇몇 과도한 친철형 인물들 때문에 카톡마저 관두는 건... 소외를 자처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일방적이고 뜬금없는 메시지가 짜증스러운 것일뿐 또 관계 자체를 아예 끊고 안 볼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조금 전, 오늘의 유머 동영상 링크를 보내온 이에게 까칠하게 답장을 보냈다. 그런 거 안 좋아해서 별로 안 고맙다고. 그래도 계속 보내면 카톡차단할지도 모른다고 경고도 했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쪽도 앞으로 내게 그런 쓸데없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더 편하지 않을까. 일단은 좀 만만한 상대라서 이런 방법으로 해결을 했지만, 문제는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대상도 있다는 점이다. 대체 왜 내게 그런 정성을 들일까, 혹시 보험 같은 걸 팔려는 것일까, 의아스러운 몇몇 인물은 눈 딱감고 차단해두긴 했으나, 원천적으로 봉쇄된 게 아니라 퍽이나 찜찜하고 껄끄럽다. 아마도 메시지를 보낸 저쪽에선 그냥 내가 읽지 않은 걸로만 나온다지... 스마트 한 세상에서 스마트하게 관계를 맺는 것도 참 쉬운 일은 아니란 생각에 마음이 묵직하다. 이러다 완전히 혼자가 되고 말 거라는 두려움은 또 별개의 것이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니까...
이웃 주민들이 연달아 올린 글을 보며 나도 트랙백하고 싶다 생각은 하면서도 일단 대체로 기억이 가물가물 또렷하게 생각나는 게 드물었다. 게다가 요즘 유행하는 말마따나 '멘붕'상태에 가까운 마감스트레스 때문에 뭔가 끼적일 마음의 여유도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또 쓸데없는 곳에 집착하는 나의 뒤끝성향 탓에 틈만 나면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자꾸만 더듬고 있질 않겠나... 난생 처음 혼자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대체 뭐더라.. 뭐더라.. 이러면서. +_+ 아직도 통 기억을 붙들어내지 못한 항목이 많지만 일단 포스팅 하고 나면 오히려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ㅎㅎ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 언젠가 포스팅에서도 썼듯, 어릴 때 방학마다 삼촌이 종로통으로 불러내 나의 형제들에게 만화영화를 보여줬기 때문에 김청기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이 나의 첫 극장영화임엔 틀림이 없다. 그 이전에는 어린이가 영화관에 가서 볼만한 영화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그게 <로보트태권V>가 였는지 <마루치아라치>였는지 <똘이장군>이었는지 <칠칠단의 비밀>이었는지 아쉽게도 콕 찝어낼 수가 없어 검색해보니, <로보트태권V>가 1976년에 나왔단다. 그렇다면 내가 열살 때이니 아마 그게 첫 영화일듯. 연년생 큰동생은 방학마다 늘 같이 다닌 게 확실한데, 처음부터 네 살 차인 막내까지 대동하고 갔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느 해인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막내동생 손을 잡고 영화관을 향해 종로통 인도를 걷다가 지하철 환풍구에서 나온 바람에 갑자기 주름치마가 확 올라가 당황하여, 애먼 막내동생한테 막 화를 냈던 장면은 기억난다. 아마도 그날, 소심 & 뒤끝 작렬로 영화 보는 내내 집중 못하고 창피한 생각만 하고 있었을 듯. ㅋㅋ
어른 대동 않고 처음 본 영화.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엄마들이 애들만 영화관에 넣어놓고 나중에 픽업하고 그러는 문화는 없었고, 영화관이란 모름지기 어른과 함께 가야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5학년 때였나, 같은 동네 살 던 큰고모가 사촌동생을 데리고 영화를 보고 오라고 부탁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영화관이 하나 있었고, 거기서 <쾌걸 조로>를 상영하는데 사촌동생이 그걸 보겠다고 떼를 쓴 모양이었다. 동생들이 놀러나가고 집에 없었기 때문인지, 예나 지금이나 '짠순이'로 유명하신 큰고모가 영화값 아끼려고 나만 가라고 한 것인지 내막은 모르겠으나 암튼 나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사촌동생을 데리고 동네 영화관(동시상영관은 아니고 나름 3류 개봉관이었다)을 찾았다. 난생처음 내가 영화 표를 사고 거기 적힌 번호를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으나, 시내 영화관과 달리 동네 영화관에서 주는 영화표엔 좌석번호도 아예 없었던 것 같다. 드문드문 앉아 있는 아저씨들이 괜스레 무서워서 바짝 긴장해 처음엔 영화에 집중도 잘 하지 못했고, 원래도 부산하고 정신 사나운 사촌동생은 음료수 한병을 다 마시더니 영화 보다 말고 화장실엘 간다고 했다. 큰고모가 애지중지하는 외아들한테 또 무슨 일 생기면 안되지 싶어서 화장실 앞까지 쫓아갔다 캄캄한 극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영화는 꽤나 흥미진진했는데 녀석 때문에 줄거리를 놓쳐 짜증도 났고, 나중에 밖에 나오니 생각보다 어두워져 덜컥 겁도 났었다. 아무튼 동생들과 버스 타고 우리끼리만 화전이니 삼송리니 논바닥 스케이트장에 간 것보다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친구들과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
중학교엘 들어가니 한학기에 두번은 단체로 영화관람을 했다. 며칠씩 시험을 보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마지막날 시험이 끝나면 시내 극장에서 출석까지 확인하는 단체 영화관람을 하는 것이 그 학교의 전통(?)이라면 전통인 모양이었다. 그때 처음 본 것이 <사랑의 스잔나> 아니면 <디어 헌터>인 듯한데, 어느게 먼저인지 그걸 모르겠다. <사랑의 스잔나>는 슬펐다는 것말고는 별 기억에 없지만, 베트남전을 다룬 <디어 헌터>는 어찌나 충격적이고 인상 깊었는지, 지금도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최초의 영화로 손꼽는 작품이다. 나중에 비디오로 다시 보니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던데 우린 어떻게 단체관람을 했었는지 그것이 불가사의할 뿐. +_+ 영화음악도 인상적이라 라디오 심야 영화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걸 일일이 녹음해서 반복해 듣곤 했다. 혼자 조숙한 척 하면서;;
단체관람이 아니고 친구와 처음 시내 영화관엘 간 것도 그 즈음이었다. 같은 반이기도 하고 집도 가까운 친구랑 단둘이 영화를 보러가기로 했다가, 나의 막내동생도 데려갔다. (막내딸인 그 친구가 조잘조잘 수다 많고 말 잘듣는 우리 막내를 귀여워했었다. 자기도 그런 남동생 있으면 좋겠다고까지;;) 굳이 막내가 따라붙은 이유는 아마도 영화구경보다는 기사까지 딸린 친구네 검정색 세단 자가용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날 우리끼리 시내 영화관엘 찾아가는 걸 못미더워한 친구 엄마가 차로 대한극장(혹은 국도극장;;)까지 데려다주라고 했기 때문이다. 암튼 뭔가 대단히 거창하고 역사적인(?) 날이어서 그날의 주변 기억은 또렷한데, 결정적으로 그날 본 영화가 뭐였는지 모르겠다. ㅠ.ㅠ 막내는 기억하려나, 나중에 한 번 물어봐야지.
처음 아버지랑 단둘이 본 영화.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 <세계의 명화>를 밤늦게까지 참 열심히도 봤는데, 놀랍게도 아버지는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는 물론이고 서부영화까지 이미 본 것일 정도로 젊어서 퍽 영화를 좋아하셨던 모양이다. 내가 갓난아기 때, 부모님이 연애시절처럼 영화를 보러갔다가 깜깜해지자마자 내가 하도 우는 바람에 둘이 번갈아면서 극장에 들락날락하면서도 끝까지 영화를 보고 나온 적이 있다는 전설을 듣기도 했다. 그 뒤론 아예 포기했다고. 암튼 부부동반 영화관람은 불가능했을지라도 아버지는 가끔씩 TV 영화로 달래지지 않는 영화에 대한 갈증을 극장에서 친구분들과 푸셨던 것 같다. 내가 중고생 때 단체관람을 하고 온 영화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으니까.
그러다 아버지가 보고픈 영화가 있으니 토요일에 단둘이 극장에 가자고 했다. 엄마와 동생들에게는 비밀로 하자면서. ^^; 나는 좋아라 약속을 잡았고, 학교를 파하자 마자 종로로 달려가 단성사 앞 빵집에서 아버지와 만났다. 문제는 영화가 알 파치노 주연의 <스카페이스>였다는 것! 아버지는 <대부> 정도로 생각하신 모양이었는데, 영화는 훨씬 더 잔혹할 뿐만 아니라 부녀가 보기에 좀 민망한 장면도 더러 나왔다. 어쨌거나 숨을 죽인 채 영화를 보고 나와서, 아버지는 내게 미안했는지 영화가 너무 자극적이라고 요즘 영화들은 옛날처럼 낭만이 없다고 투덜투덜 하셨던 것 같다. 아무리 아버지와 같이 갔더라도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에 어떻게 교복까지 입은 중학생을 들여보냈는지, 그것도 좀 의아하지만, 이미 <디어 헌터>도 중학생 때 단체로 들어가 본 걸 보면 옛날엔 마구 가위질을 해서 등급을 낮췄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렇듯 아빠와 딸의 이 오붓한 데이트를 나는 최근까지도 분명 중학생 때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빵집서 아빠랑 만난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헌데 저런 내용을 다른 블로그에 댓글로 달고 나서 찾아보니 <스카페이스>는 1983년에 만들어졌대고 우리나라엔 1984년에나 개봉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 뭐냐... 중학생 교복시절이 아니고 고3때란 말인가. -_-; 그러면 또 한 가지는 의문이 풀린다. 교복 자율화 세대라 사복 입고 다녔을 때니까 아무리 애가 좀 작아도 보호자 동반이니 극장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여간 그날 결국 부녀는 둘만 영화데이트한 게 들통나서 엄마에게 혼이 났다. 미리 얘기 하고 가면 누가 말리나, 왜 그 걸 비밀로 해, 기분나쁘게! 라는 것이 엄마의 요지. 혼이 나면서도 나는 내심 그날의 데이트가 뿌듯했던 것 같다. 이후로도 대학시절까지, 가끔씩 부녀의 영화 데이트는 이어졌지만 이후 같이 본 영화는 뭐였는지도 생각이 안난다.
보다가 뛰쳐나온 영화. 대학에 들어간 뒤로 나의 영화관람 양상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유명 신작 영화를 종로통 개봉관에 가서 보거나, 잘난척 하는 겉멋이 좀 들어 경복궁 옆에 있던 프랑스문화원에 가서 오래된 프랑스 영화를 영어자막으로 보거나(그러니 제까짓게 얼마나 이해를 했겠나!), 학교 근처 동시상영관에 가서 좀 지난 영화를 보거나. 암튼 신입생이라고는 해도 아직 미성년자라 성인영화는 제대로 본 적이 없던 나는 프랑스문화원에서 이런저런 영화를 보며 처음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벌거벗은 남녀의 몸은 물론이고 주요부분이 정면으로 막 나오는 게 아닌가! 나를 그런 문화생활로 이끌었던 동기이자 언니 하나는 나에게 성교육 제대로 시켜준다고 킥킥댔다. 암튼 예술과 문화를 핑계 삼아 프랑스문화원에서는 상당히 수위 높은 성인영화도 꿋꿋이 버텼던 것과 달리, 나는 학교 앞 동시상영관에서 슬그머니 도망쳐나오는 사건을 맞이한다.
당시 동시상영관에서는 괜찮은 외화 한편, 한국 영화 한편을 번갈아 상영했고, 아마도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보러 갔던 날인 것 같은데 하필 그때 상영된 한국영화가 애마부인 시리즈였다. -_-; 개봉관과 달리 그냥 영화 중간에도 들어가서 보고 싶은 영화 한 편만 제대로 보고 나오거나, 종일 앉아서 영화 두편을 구색 갖춰 보거나 그건 관객 마음이었다. 이미 수위 높은 프랑스 영화로 단련된 터라, 애마부인 시리즈 정도는 가뿐하게 보아주리라 마음 먹고 들어간 것이었는데, 허걱 뜻밖의 복병이 있었다. 영화 주인공이 내가 아는 사람(말하자면 친척;;)이 아닌가! ㅋㅋㅋ 영화배우인 거야 원래도 알았지만, 막상 스크린에 대문짝만하게 얼굴이 나오는데다 연기는 엄청 어색하고 성우가 더빙한 야릇한 목소리로 얄딱구리한 장면까지 자꾸만 나오는데, 민망해서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ㅋㅋㅋ 결국 나는 속이 좋지 않다면서 도망나와 복도 의자에서 그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음번 친척모임에서 '그분' 얼굴을 어떻게 보나 걱정하면서...
첫 데이트 영화.
아.. 정말 기억해내고 싶은데 이게 통 확실하지가 않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떼로 몰려다니며 영화를 봤고, 그 무리엔 영화감독이 꿈인 친구가 둘이나 있어 종류별로 참 다양한 영화를 보러다녔다. 하지만 사실 떼로 몰려다녔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친구들이 '걔'랑 나랑 엮어주려는 것이어서, 꽤나 시간이 지난 후 그 노력이 은근슬쩍 결실(?)을 맺고 말았기 때문에 어느덧 둘만 영화를 보러 가게 된 시점이 대단히 모호하다.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던 것도 같고 <영웅본색>이었던 것도 같고... ㅋ
암튼 <영웅본색>은 걔가 하도 좋아해서 같이 세번은 본 것 같다. 자기도 그런 진한 우정 영화를 만들고 싶다나 뭐라나. 마지막엔 대부분의 개봉관에서 다 내리고 하는 데가 없어서 시설 엉망이고 퀴퀴한 냄새도 나는 파고다 극장(!)까지 찾아가 봤었다.
더불어 돌이켜보니 마지막 데이트 영화가 무려 <살인의 추억>이다. -_-;; ㅋ
난생 처음 혼자 본 영화.
이웃 주민들은 혼자 영화 본 시기가 꽤나 일러서 20대 초반 아니면 청소년기라는 사실에 좀 놀랐다. 아무래도 세대차의 탓이 좀 있겠지만 (혼자서 영화보는 문화는 역시 90년대에나 생겨났다는 것이 나의 견해;;) 독립심 차이도 있을 것 같다. 암튼 내게 영화란 오래도록, 누구랑 함께 보고 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중요한 소재이자 공통점을 나눌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몇번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보기 싫은 데도 척 노리스 나오는 액션 영화 여러번 끌려가서 봤다 ㅋㅋ) 친구들별로, 또는 사귀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같이 볼 영화를 나누어 분배했던 것 같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같이 볼 친구 없으면 동생을 데려가기도 하고.
그러다 서른 즈음에 회사생활을 관두고 번역일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전체적인 홀로서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밥도 혼자 식당 가서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카페도 혼자 가고, 술도 혼자 마시고, 영화도 혼자 보고. 출장 가서는 이미 다 해본 가닥이지만, 특별상황이 아닌 일상에서는 소심함을 핑계로 아직 시도하지 못할 때였다. 게다가 준백수가 되고보니, 정말 남들 다 일하는 평일 대낮에 홀로 다닐 일이 많았다. 나름 거창하게 <홀로서기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붙여 하나씩 시도했고 뿌듯해 했던 장면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은 있는데, 아 또 결정적으로 처음 혼자 본 영화가 잘 기억나질 않는다. ㅠ.ㅠ
할리우드 영화는 대형영화관에서 보고 그외 소규모로 상영하던 영화들은 종로에 있는 코아아트홀/씨네아트를 많이 이용할 때라, 혼자 처음 영화를 본 것도 코아아트홀이었던 건 확실하다. 거기서 혼자 <씨클로>를 혼자 보며 울다가 끝나고 민망했던 것도 기억 나지만, 그게 정녕 처음이었는지 그걸 모르겠다. 젠장. 어쨌든 혼자 영화관 가기를 트기는 했어도, 혼자 자주 보러다니진 않았고 늘 영화 파트너를 찾았던 것 같다. 씨네큐브가 생겨난 2000년 이후로는 퍽이나 스스럼 없이 가끔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지만, 아직도 영화는 누구랑 같이 봐야 더 재미있고 뿌듯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혼자 보는 영화는 어쩐지 외롭다. ㅋ
볼 때는 좋아라 했는데 나중에 그 사실이 부끄러웠던 영화 파피는 이 항목에 <타이타닉>을 넣었던데 나도 막 공감했다. 재난영화 별로 안 좋아하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좋아했고 빅토리아시대 풍 배경도 마음에 들어서 얼결에 기회가 되는 바람에 두번이나 봤다. 나중에 케이블이나 TV로 본 것까지 합치면 몇번이나 더 봤을지 원. ㅋ 나는 카메론 감독이 직접 그렸다는 영화 속 그림도 좋았는데! ㅋㅋㅋ 하지만 나중에 그놈의 뱃머리 장면까지 하도 많이들 패러디를 하니까 민망해지더라는;;;
고등학교 때 단체로 본 <사관과 신사>도 그런 영화에 속한다. 주제곡 Up where we belong 까지 엄청 좋아했었는데, 내가 좋아하던 국어선생님이 입에 막 거품을 물고 영화를 막 비판하는 거다. 구태의연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그렇구나 새삼 생각하며 감상문까지 써놨던 걸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리처드 기어 팬이라 <프리티 우먼>도 헤벌쭉 좋아라 하며 봤고, 당시엔 예뻐 보였던 줄리아 로버츠의 의상(특히 흰색 땡땡이 무늬 갈색 원피스!)도 마음에 들어했으나 뭐 이젠 리처드 기어 본인도 욕하는 영화가(세계 금융을 위기로 몰아넣은 기업 사냥꾼 미화했다고;;) 되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ㅋ
그밖에 절대 두번 볼 영화가 아닌 데 두번 봤다든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는데 본 영화라든지, 그런 항목들은 여전히 기억의 늪에 빠져있다. 착한 어린 시절, 차마 봤다고 말을 못해서 두번 보거나 싫으면서도 꾹 참고 본 영화가 분명 있었는데 말이지... 이번 기억을 더듬으며 깨달은 사실 한가지. 십여년 전 기억보다 왜 까마득한 옛날 기억이 더 선명한 것이냐! 치매형 기억력인 것 같아서 좀 뜨끔했다. ㅠ.ㅠ
내가 중학생 때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아도 도통 기억이 선명하질 않다. 그때만 해도 성적은 그리 중대사가 아니었으니 아마도 친구 문제였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요즘 중학생의 최대 관심사는?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조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뭐니뭐니해도 첫째가 '외모'다. -_-; 친구도 '외모'가 따라줘야 만들수 있는 거라나 뭐라나. 내 경우 그 시절 외모는 최대 관심사가 아니었다. 확실하다. 미용실보다 커트 비용이 훨씬 싸다는 이유로 엄마는 가끔 나를 우리집 바로 옆에 있던 '이발소'에 보낸 적도 있었는데, 들어가고 나올 때 누가 볼까봐 창피해서 그렇지, 맞다 이발소 의자에 앉으면 키가 너무 작아서 이발소 의자 팔걸이에 판자를 가로 얹고 그 위에 앉아 머리를 자르는 어린이 취급을 받는 게 민망하긴 했어도 어차피 귀밑 1, 2센티미터로 자르는 단발머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헌데 요즘 여중생은 확연히 다르다.
중학생이 되면서 여드름을 가리느라 비비크림을 상용해 '심히' 뽀얀 얼굴을 만들고 다니던 조카는 여름 방학에도, 이번 겨울 방학에도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였다. 방학 전부터 제 부모에게 염색을 졸랐으나 개학때 또 다시 검정색으로 바꾸는 미용실 비용까지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반대했더니 친구랑 손수 염색약을 사서 해치웠다고 했다. 예뻐보이려고 어른들도 흔히 하는 염색을 아이라고 못하게 하는 건(파마약과 염색약이 유전자 변형을 가져온다는 말 정도는 안통한다. 거리에만 나가봐도 머리 물들인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 논리적으로 납득시킬 수가 없어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 후엔 며칠 버티다 다시 검정 물을 들였었다. 하지만 2학년으로 올라가는 이번엔 '학생인권조례'를 빌미로 버티기를 할 모양이다. 원래도 고리타분하고 규율이 엄한 그놈의 학교의 반응은 어떨지 30년 동문 선배이자 고모인 나는 벌써부터 걱정인데, 녀석은 천하태평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똘똘한 일부 학생들과 깨어 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얻어낸 '학생인권조례'는 교과부의 반발로 허공에 붕 떠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상태다. 기껏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정책이 교권과 상충한다는 이유로 무산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학생인권조례'가 발표됐을 때, 몇몇 보수 단체에서 '임신, 에이즈, 동성애 창궐' 따위의 피켓을 들고 반대시위를 하는 걸 보고 나는 기가 막혔다. 서울교육청에 가서 학생인권조례 전문을 다운받아 읽어보았지만, 도대체 어떤 문구에서 그런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임신이나 질병, 종교, 동성애 따위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아이들의 권리가 어떻게 그런 상황을 부추기고 조장할 거라는 논리로 발전하는지 원. 그럼 그런 아이들은 무조건 퇴학시키고 또래들과 차단하여 '격리'시켜야 옳단 말인가?
학원폭력과 왕따 문제로 가해자 아이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그 어느때보다 높고 경찰까지 개입해 해결하려는 추세지만, 나는 결과를 놓고 처벌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예방교육이 더 시급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어쩌다가 중고생 아이들이 조폭 수준의 폭력과 증오를 실천하게 되었는지, 근본원인이 있지 않겠나. 이렇게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학벌주의 사회에서는 더는 그들을 '선도'할 희망이 없으며, 단죄밖에 길이 없다고는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다. 가정도, 학교도 우리 아이들을 끌어안지 못하면 대체 어쩌라고!
학창시절 불행히도 나는 존경할만한 스승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 괜찮은 선생님들도 더러 있긴 했지만 '존경'스럽진 않았기에, 기억나는 선생님 이름이 거의 없을 정도다. 대신 죽도록 싫었던 교사들의 얼굴은 잘 잊히질 않는다. 걸핏하면 "너희는 노예근성에 물들었다"면서 단체기합을 주거나 몽둥이로 다섯대씩 우리 엉덩이를 때렸던 사람, 소풍 때 '빨간색 진바지'를 입고 왔다는 이유로 다음날 교단에서 가위를 번득이며 아이의 귀 옆머리를 싹둑 달랐던 여선생(웃기는 건 그 사람의 별명이 하도 빨간바지를 애용해 '빨간바지'였다는 것;; 빨간바지를 입는 것이 교사만의 특권이라 생각했을까? 당시엔 무려 '교복자율화 시대'라 사복입고 다닐 때였다.), 별 이유도 없이 플라스틱 분필통이 부서져라 학생의 머리통을 두들긴 사람.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그들의 폭력을 지켜보며 우리는 더욱 분노하고 좌절했을 뿐, 학습태도가 좋아지거나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어서 빨리 졸업해 지긋지긋한 그들을 안보게 될 날을 기다렸다고나 할까.
교사일을 하는 친구 말을 들으면, 정말로 아무리 인간적으로 대해도 소용없는 '근본이 사악하고' '구제불능인' 아이들이 있으며, 못되게도 온갖 조롱으로 선생 길들이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 실행은 안 그래도 바닥에 떨어진 교권을 더욱 위태롭게 하는 조치라고. 현장에서 현실을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니 뭐라고 말을 보태기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과거 학창시절을 돌아볼 때 학생들의 인권은 중요하며 폭력과 체벌은 어떤 이름으로든 미화될 수 없다. 사랑의 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단체로 두들겨 맞으며, 사랑의 매라고 느껴본 적 나는 단 한번도 없다. 별것도 아닌 말썽을 부려 교사에게 매를 맞는 친구를 지켜보면서도, 같은 학생으로서 자존심이 상했으면 상했지 그것이 사랑의 매라고 생각한 적은 결단코 없다. 그저 교사로서 자기 자존심이 구겨졌기 때문에, 분노를 삭이지 못해 하는 분풀이로 여겨졌을 뿐이다.
스스로 삐딱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다고 아무리 되뇌여도 사춘기 조카를 지켜보거나 대화를 나눠보면 내가 꽤나 고리타분한 어른이라는 실감이 수시로 든다. '다리 길~어보이려고' 교복 치마 허리춤을 접어 짤뚱한 미니스커트로 입고 다니고, 영하 십몇도까지 내려가도 얇은 스타킹만 고집하는 건 자꾸 눈쌀이 찌푸려진다. 책가방으로 맨 베낭의 어깨끈이 너무 길어 축 늘어진 가방이 엉덩이에 대롱거리는 것도 안 예쁘고, 또 복장 상관없이 흉측한 삼선슬리퍼를 똑같이 신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중고생들은 정말 밉다. 그런데 그들에겐 또 그게 개성이고 멋이다. 나도 안다. 어떻게든 내 생각을 설득해보려하지만 결국 말문이 막히는 쪽은 늘 나다. 고모가 Why not?이라며! 헉. 맞다. 교복 좀 짧게 입고 다닌다고, 여중생이 머리를 물들이고 파마를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어차피 옛날처럼 귀밑 1, 2센티미터 단발머리나 까까머리로 통일시키는 게 아니고서야, 학교에서 원하는 통일성 따위는 이미 불가능하다. 학생은 머리색이 반드시 검정이어야 한다는 것도 크게 보면 순혈주의, 인종차별의 냄새를 풍길 수 있다. 머리모양 하나, 똑같은 교복의 모양새 하나에서부터 일탈을 시도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획일화 사고를 벗어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창의력까지 높아진다는 사례는 혹시 없으려나? -_-;
새까만 머리는 촌스러움을 대변한다는 미용업계의 세뇌에 힘입어, 나도 한동안 열심히 머리색을 이리저리 바꿔본 사람이다. 그래봤자 흐리고 짙은 톤의 다양한 갈색머리를 시도하거나 부분염색으로 얼룩덜룩 파격을 시도했던 것인데, 그도 관둔지 오래다. 그땐 그게 '스타일리시'하고 멋져 보이더니만 이젠 귀찮음이 더 크고 자연스러운 게 좋다. 그러니깐 애들도 그냥 놔두면 지지고볶고 이리저리 난리를 피우다가 결국 자기가 원하는 개성을 찾게 되지 않을까? 하지 말라고 하니까 자꾸만 더 하고 싶은 아이들의 심리를 교육자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TV만 틀면 하나같이 샛노랗게, 새하얗게, 새파랗게 머리를 물들인 연예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인데 말이다.
애어른인 듯 굴었던 나의 학창시절과 비교하면 요즘 사춘기 아이들이 훨씬 더 어리고 의존적이며 철도 없으면서 이기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애들이 그렇게 자라난 데는 어른들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성적만이 유일한 미덕이라고 부추기면서 그 외의 인간성 교육은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사교육에 밀려나고, 체벌 대신 벌점제도를 도입하면서 상당수 교사들은 더욱더 '선생님'이기보다 '평가요원'과 '행정직원'의 성향이 짙어졌다.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 문제 있는 아이는 걸러내버리면 그만이라는 듯한 요즘 학교 분위기가 나는 참 무섭다. 계속 거르고 걸러서 뽑아낸 '엘리트' 아이들과 버려진 아이들의 근본적인 차이는 과연 무얼까. 공부 잘하는 능력과 체제순응형 DNA?
블로그 이웃이신 두분 선생님(한분은 한국에서 사회를, 한분은 영국에서 수학을 가르치신다)의 학교 이야기를 기웃거리다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각자 고군분투하시는 걸 보면 계속 감탄스럽고 그곳 학생들이 참 부럽다. 학교에 정말 그런 선생님이 한분이라도 계신다면 학생노릇 할 맛이 날 것 같다. 이왕이면 조카들도 그런 선생님을 한분이라도 만나게 되길 바라고 있으나, 그런 행운이 쉽진 않을 것이다. '내 아이를 안심하고 맡겨도 좋겠다 싶은 선생님'이 이상적인 교사상이라는 말이 있지만, 세상에 그런 선생님이 어디 흔한가. 그러니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는, "개떡같은 학교라고 해도 몇년만 버티면 돼. 원래 세상이란 데가 불공평한 곳이야. 스무살 때부턴 정말 니 맘대로 하고 살 수 있어" 정도다. 참 내... 질풍노도의 사춘기 아이에게 이게 과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냐고!
어쨌거나 조카는 오늘 치렁치렁 길러 밝은 갈색으로 물을 들인 머리로 개학을 맞았을 것이고 새 담임에게 첫눈에 '찍혔'을 지도 모르겠다. 벌점이 무섭든 선생님들의 잔소리가 귀찮든 해서 녀석이 머리칼을 다시 검게 물들일지 어쩔지는 두고봐야알겠지만, 'why not?'의 태도가 퍽이나 긍정적이라고 가르친 사람으로서 나는 조카의 삐딱함을 계속 응원하고 지지해줄 수밖에 없다. 좀 지나면 녀석도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게 미덕임을 깨닫게 될 날이 올거라 믿으면서. (그치만 또 평범한 게 진짜 제일 어려운 건데... 아 젠장)
올해도 어김없이 제일 어린 조카의 유치원 재롱잔치에 다녀왔다. 작년에 이미 녀석의 끼가 얼마나 출중한지 깜짝 놀라며 감탄했기에 올해도 기대가 컸는데, 역시나 녀석은 요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울 엄마의 촌평을 그대로 빌리자면, "비싼 돈 주고 가서 본 뮤지컬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났다". 정말로 무대가 어찌나 화려하고 프로그램도 다양한지 주최측에서 심혈을 기울인 티가 팍팍 났다. 집중력이 5분, 10분도 안되는 꼬마애들을 데리고 얼마나 진을 빼며 연습을 시켰을지 선생님들의 노고도 노고려니와, 개인당 대여섯 개는 되는 출연분량에 따라 율동과 노래, 때로는 대사를 연습하고 무대를 오르내리며 매번 옷을 갈아입어야했을 아이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어휴... 감탄과 더불어 탄식도 절로 나왔다.
10여년 전, 첫조카가 유치원을 다닐 때만 해도 재롱잔치는 그야말로 유치원 강당에서 선보이는 원생들의 소규모 발표회였다. 의상이래봤자 흰티에 청바지, 한복 정도였고 동식물 역할 같은 특수의상도 유치원 선생님들이 약소하게 꾸며 만든 소품이었던 것 같다. 아, 그때도 운동복이나 태권도복을 입고 나와 시범을 보이는 순서는 있었다. 헌데 몇년 지나지 않아 둘째조카 때부터 재롱잔치가 점점 규모도 커지고 화려해지더니, 요샌 의상이며 조명이 가히 아이돌 그룹의 단체 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를 위해 전문 시스템을 동원하고 체육관 같은 공연장을 빌려 '빵빵하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나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 역시 관람을 매우 즐겼기 때문이다. 유치원 재롱잔치의 목적이 아이들의 성취감과 발표력, 혐동심을 높이는 데 있다고 하니, 이왕이면 번듯하게 포장하고 싶은 원장님들의 마음도 알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꼭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의구심이 떠나질 않았다. 어차피 의상비며 소요비용을 학부형들이 부담해야하는 형편임을 알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똑같이 무대의상비를 부담했는데, 자기 아이가 입고 나온 무대의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공연장 대관 형편 때문에 평일 저녁 6시로 잡힌 재롱잔치를 나로선 기쁜 마음으로 보러갔지만, 직장 사정상 참석 못하는 부모는 없을까 괜한 걱정을 했던 게 사실이다. 정말로 콘서트장에 오듯 형광글씨 요란한 피켓까지 만들어들고 집안 식구들 대거 동원해 온 가족들도 있는 반면, 그럴 형편이 안되는 집안도 당연히 있지 않겠나. 작년엔 우리도 피켓이랍시고 스케치북에 색종이를 오려 급조한 응원판을 들었으나, 올해는 쿨하게 스마트폰 전광판을 이용하기로 했고 편한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조카의 순서가 아니더라도 앙증맞은 아이들의 몸놀림이 너무 귀엽고 깜찍해서 웃음과 박수가 절로 나왔다. 특히 올해는 완전히 모든 출연 프로그램의 '메인'을 꿰차고 무대 중앙에서 제일 열심히 신나게 정확한 동작으로 춤과 연주를 보여주는 조카 덕분에 어깨까지 으쓱했다.
그.러.나. 까칠한 인간의 취향은 어디 가도 드러나는 법. 대체로 훌륭했다고 평할 수 있는 공연이건만 중간중간에 눈쌀이 찌푸려지는 순간이 몇번 있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싶은 시대착오적인 면이랄까.
첫번째 불만은 유치찬란한 아이들의 의상.
물론 멋지고 괜찮은 공연의상도 꽤 있었다. 짐작컨대 재롱잔치 이벤트 회사에서 프로그램과 안무, 의상까지 촐괄하여 제공하는 모양이다. 작년에 조카가 입고 나왔던 변형한복을 5살짜리 애들이 또 입고 나온 걸 봐도 매번 의상을 새로 제작할 리 없다. 아이들 연령에 맞는 프로그램과 무대복을 교사들이 골라서 정하는 것일 듯.
문제는 장식이 너무 과해 흉측할 정도로 화려한 의상이 많고, 아직도 여자아이들에겐 붉은계통, 남자아이들에겐 푸른계통을 입히는 색깔의 성별 고착화가 여전히 포착된다는 점이다. 아이들과 부모가 혹시라도 상술과 편견에 떠밀려 여자색, 남자색을 구분하더라도, 제대로된 유치원 교육이라면 그런 선입견을 깨뜨려주어야하지 않을까?
남녀아동 공히 같은 색깔과 무늬가 들어간 옷을 입고 공연을 펼친 프로그램도 많았지만, 3분의 1 이상은 이런식으로 색깔로 남녀를 구분해 놓았던데 나로선 무척 못마땅했다. 어차피 같은 색깔이라도 여자애들은 거의 스커트, 남자애들은 바지던데 왜 꼭 색깔로도 차별을 하는지? 그리고 솔직히, 저렇게 촌스럽고 요상한 무대의상이 진짜로 애들 예쁘라고 입혀놓은 것으로 보이는가? +_+
게다가 어떤 공연의상은 나의 여자조카가 입었더라면 불끈 화가 났을 것 같은, 천박하고 저급한 쇼걸 의상을 연상시키는 색깔과 모양새였다. 선정성으로 논란이 된 걸그룹 따라하기도 아니고 왜 천진난만한 아이들한테 그런 옷을 입힐 생각을 하는지 기가막힐 정도였다. 발레나 라틴댄스 같은 장르라면야 아무리 한겨울이라도 팔과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걸 안쓰러워하면서라도 이해할 수 있겠으나, 그냥 아이돌 노래에 맞춰 '섹시하게' 춤을 추기 위해 배꼽은 물론이고 갈비뼈까지도 다 드러나는 조막만한 상의를 입힌 건 불쾌했다. 나로선 차마 사진을 찍어오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고 한다면 느낌 전달이 되려나? 부모와 친척들에게 보이는 공연에서 어린 딸들이 왜 그런 야한 옷을 입어야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귀엽고 깜찍하면서도 어린이다운 의상이 얼마나 많을텐데...
두번째는 공연내용에서 드러나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
딱 하나뿐이긴 했지만, 남녀의 역할에 대해서 설마 이게 유치원 교육의 수준과 사고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일까 당혹스러운 장면이 있었다. 6세반이었던가... 아마도 유명 아이돌의 노래에 맞춘 춤 공연이었던 것 같은데 (어차피 20가지가 넘는 공연 내내 동요는 서너 곡밖에 들을 수 없었고, 나머지는 거의 아이돌의 최신유행가와 그에 맞는 안무였다. 그 점 또한 매우 불만. 왜 유치원에서마저 어린아이들을 다 아이돌 연습생 취급을 하는지?) 무뚝뚝하게 서서 신문을 보며 외면하는 남자아이들에게 커다란 리본을 묶은 인형같은 차림을 한 여자아이들이 다가가 아양을 떠는 내용이었다. -_-;;
일반 드라마는 물론이고 어린이드라마나 그림책의 삽화 내에서도 구태의연한 성별역할을 허무는 노력을 오래전부터 해왔기에, 요리하는 아빠와 자동차 고치는 엄마의 모습이 당연시되는 선진국의 수준은 나도 아예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땐데 아무리 대한민국의 현실이 고리타분하기로서니, 신문보는 남성마초한테 아양과 교태를 떠는 연약한 여자의 역할을 유치원 아이들한테 주입한단 말인가! 설마 아직도 여성교육의 지상목표가 현모양처요부 양성이란 얘기는 아니겠지?!
저렇게 떡하니 신문으로 얼굴 가리고 선 남자아이들의 파트너로 나온 여자아이들의 모습은 이러했다. 깜찍하게만 보아줄수도 있는 무대를 내가 공연히 삐딱하게만 보았다고 나무랄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선의에 의한 행동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불편하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어른들이 정한 안무와 내용이 어떠하였든, 영문도 모른 채 최선을 다해 애쓴 아이들에겐 계속 갈채를 보내면서도 이런 장면에선 찝찝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나의 조카는 이런 못마땅한 프로그램에 한번도 동원되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이었달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마 나는 내년이 마지막일 조카의 재롱잔치에 초대되면 또 군말없이 달려갈 것이다. 제발이지 이상한 공연 내용이나 의상 때문에 나의 특출난 조카의 활약이 빛을 잃지 않기를 빌면서. 하지만 재롱잔치를 준비하는 모든 유치원과 어린이집, 이벤트 담당자들에게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다. 부디 더는 구태의연하고 촌스러운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파릇파릇한 아이들한테 세뇌하지 말아달라고. 이미 이토록 화려한 재롱잔치에 익숙해져 조촐한 발표회 수준은 못마땅해할지 모를 철없는 부모들한테도 당부하고 싶다. 대규모 공연이 아이들에게나 교사에게나 얼마나 스트레스 넘치는 일인지 잘 생각해보기를. 무대에선 펄펄 날았던 나의 조카도 사실 그날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신경을 쓰더니 9시 넘어 끝난 공연 탓에 10시 넘어 먹는 저녁밥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구경간 고모와 할머니는 한껏 즐거웠고 녀석도 뿌듯해하는 눈치였지만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꼭 그렇게까지 애들을 잡아야 하나... 진정 어느 쪽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길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인 듯하다.
며칠 뒤면 만난지 꼭 13년째 되는 이들을 주말에 만났을 때 어쩌다 나온 이야기인데, 나를 알기 이전에는 책을 읽을 때 한번도 번역자에게 신경을 써본 적이 없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지금도 내가 번역한 책이나 돼야 옮긴이 이름을 눈여겨 볼 뿐, 다른 책은 여전히 무관심하다나. 그렇다면 나는 과거에 어쨌더라? 번역을 생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다음에야 당연히 번역의 질과 번역자가 최고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겠으나, 그 이전에는?
흔히들 가장 훌륭한 번역자는 투명인간이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번역서를 읽고 있으되 번역서를 읽고 있다는 의식이 들지 않을 만큼 문장이 매끄럽고 작품의 결을 살려, 지은이와 독자 사이에서 '번역'이라는 중간단계의 존재를 가능한 한 일깨우지 않아야한다는 뜻이다. 순수하게 책읽기를 즐기고 감동하였다면 그 찬사는 오로지 작가를 향한 것일뿐, 번역자가 누구인지는 굳이 몰라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별 생각 없는 독자 시절에도 확실히 번역자에게 관심을 두었다. 그 옛날 세계문학전집류의 번역이야 다 거기서 거기였으므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간간이 손에 들어오는 단행본 번역서의 경우엔 중고등학생의 눈에도 느낌이 달랐다. 같은 루이제 린저의 책이라도 전혜린 번역은 감동스러운데 다른 사람이 번역한 책은 이게 뭔소린가 싶어 여러번 되돌아가며 읽어야했다. 고려원에서 출간되어 라디오에 광고까지 나오던 당대의 화제작들 가운데서도, 밤을 홀딱 새가며 손에서 놓지 못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책에서 묘사되는 상황과 인물이 그려지지 않는 책도 있어 짜증이 났다. 그런 부실한 책의 번역자는 부러 눈여겨봐두곤 했다. 나중에 피해 읽으려고. -_-; 특히 고려원의 단골 번역자 중에 영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십수년 뒤 내가 이 분야에 들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하생들에게 원고료 반값도 안주며 번역시키고 자기 이름으로 책 내는 걸로 유명한 분이었다. 아직까지도 현역에서 활동중이시던데 설마 여전히 그러지는 않으니까 출판사에서 계속 일감을 주는 것이기를 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특히 교수입네 하는 사람들이 번역한 책을 유독 못미더워했다. 웬만한 교수님들은 시간도 없고 논문 한편으로밖에 인정해주지 않는 번역에 힘쓸 이유가 없기에, 죄다 제자들한테 번역 시켜 원고정리만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특히 전공책 같은 건 어떻게 번역본보다 차라리 원서가 더 쉬울 수가 있는지! @.,@ 하지만 나 같은 사람들의 의구심과 불신을 알면서도 묵묵히, 꾸준히 손수 번역에 힘쓰는 교수님들도 분명 존재한다. 본인이 아니고선 누가 하겠나 싶어 사명감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고, 고전의 경우엔 공신력 있는 번역을 원하는 출판사들이 교수진을 설득해 본인에겐 크게 득될 것도 없는 일감을 맡기는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종신교수직도 갖고 있으면서 번역도 잘하는 분들은 나에겐 워낙 넘사벽이라, 외국어를 두세개씩 전천후로 막 번역하는 다재다능 번역가들에게 품는 질투심 같은 것도 아예 생기질 않는다. 요번에 드디어 줄리언 반스를 읽어보겠다고 사둔 책들을 들춰보니 번역자가 모두 신재실 선생이다. 호흡도 그렇고 소설 내용도 박학다식하여, 쉽지 않았을 것 같은 번역 문장도 마음에 들어 어떤 분인가 슬쩍 약력을 살피니 1941년생이시란다. 그렇다면 울 엄마와 동갑! 올해로 일흔둘의 나이다. 초판이 나온 건 2005년이니까 그보다 몇 해 전에 작업했다고 해도, 60대 초중반에 번역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교수 정년이 65세니까 어쩌면 투잡족의 시기에 번역을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내 상상 시나리오에 그칠 수도 있다;;) 2011년 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최신작 <The Sense of an Ending>도 아마 같은 분이 지금 막 번역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하며(파피, 블루고비, 새알밭님이 모두 원서로 읽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작품이다;;), 나는 또 괜히 비감에 젖었다.
처음 생업이자 천직이라 여겨 이 길에 들어섰을 땐 정말 득의양양했다. 좋아하는 책 노상 끼고 볼 수 있고, 시간 자유롭고, '정년'도 없고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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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일로 10년을 넘기고 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정년'이 없다는 게 그렇게 환상적인 업무조건은 아닐지 모른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딱 예순살까지만 일하고 은퇴해서 소박하지만 유유히 놀고 먹을 순 없을까. 길게 잡아도 예순다섯살까지만 일하고 싶은데! 내가 이런 말을 하고 다니면 주변에서 끌끌 혀를 차거나 한심해 했다. 늙어서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게 얼마나 큰 특혜일 텐데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았구나. 그 정도 벌이와 씀씀이로는 아마 너 평생 죽기 직전까지 일해야 할걸? 누가 그때까지 계속 일감을 주기는 한다냐?
설상가상 요샌 평균수명이 '너무' 늘어 100살까지 산다고들 난리다. 노령화사회의 폐해가 어쩌고 저쩌고 겁을 줘가면서. 심지어 남들은 철밥통으로 알고 있는 종신교수직에 있는 지인도 65세에 정년퇴직하고 나면 얼마 되지 않는 사학연금으로는 100살까지 살기 어렵다며 무언가 다른 방도를 내야한다고 엄살을 떤다. 으윽. 그렇다면 결국 결론은 내가 '정년'과 '은퇴'에 관한 생각을 바꾸고 십수년전의 나로 돌아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희희낙락 열심히 일을 해야한다는 의미다. 계속 신뢰를 쌓아 노년에도 계속 찾는 이가 있도록 깊은 내공을 쌓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별 내공도 쌓지 않은 채 올해로 '겨우' 번역 17년째 접어든 나는 자꾸 꾀가 나서, 뭔가 더 내게 잘 맞고 머리를 덜 쓰는 일은 없을까 두리번거리고 있을 뿐이고... ㅠ.ㅠ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는 좀 쉬라고 노인들에게 말해줄 복지사회 따윈 이 땅에 거의 불가능한 것 같은데 대체 어쩌려는지!
신경이 끝까지 곤두선 어느 순간에는 확~ 살의를 느낄 정도로 미워하던 개였건만 막상 쫓아내는데 성공을 거두고 나니 마음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어쨌든 주말부터 동네엔 평화가 찾아왔고, 나도 더는 개짖는 소리 때문에 작업의 흐름이 끊겼다는 핑계를 들이댈 수가 없게 되었다. 다 잘 된 일이다... -_-;
사건 해결의 전말은 이러하다. 컹컹 짖어대는 송아지만한 아래층 똥개의 횡포에 대하여 나는 무던히도 참다 참다, 지난 여름부터 진지하게 소음과 위험성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한번은 개끈 쇠사슬이 풀려, 차에서 내리던 나를 향해 정면에서 짖어대는 놈을 발견하고 도로 차에 올라타 몸을 숨긴 적도 있었다.) 이미 개 문제를 제기한 다른 이웃들과의 불화를 지켜보매, 큰소리로 항의하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인간유형임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작전상 나는 아래층 아저씨에게 사정하는 말투로 부탁했다.
1년이 넘었음에도 볼 때마다 하도 짖어대니 무서워서 내 집을 잘 드나들 수도 없고, 물려 죽는 꿈까지 꾸었을 정도며, 가장 중요하게는 번역작업에 심히 방해가 된다고. 주로 아침에 자는 사람이라 안면방해가 된다는 말은 부러 하지 않았지만, 문자 오는 소리에도 잠을 깨는 인간인지라 하루하루가 정말 괴로웠다. ㅠ.ㅠ 내 이야기를 들을 땐 금방 조치를 취해줄 것처럼 말만 앞세우던 아래층 아저씨는 매번 자기네 딸들의 안전을 위한 방법견 목적을 빌미로 약속을 어겼다. 한번은 본가인 이천에 보내겠다고 했었고, 두번째는 전기충격기 목줄을 달겠다더니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12월 초 내가 또 한번 개 문제를 꺼내자, 개주인은 그럼 외부인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건물앞에 철제대문을 만들어 세우자는 의견까지 냈다. 자기네 두 딸 때문에 방범문제에 대한 우려를 버릴 수가 없다나. (이 동네 30년 가까이 살았어도 도둑 한번 없던 동네라니깐! 실수로 현관문 안 잠그고 외출 다녀와도 아무일 없었다고!) 나로서야 일단 개만 없애준다면 비용을 분담하겠다고 동의했다.(물론 속으론 울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아래층 가족 구성원들의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아침 일찍 나간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집을 비워두기 일쑤고 우편물이며 택배는 노상 오던데, 그럼 그 때마다 나더러 저 아래 계단까지 현관문 대문 차례로 열어주고 우편물 및 택배 관리인까지 하란 말이냐?) 허나 세입자 입장에서 언제까지 살지도 모를 집에 한두푼도 아닌 대문설치 비용을 감당하고 싶진 않았는지, 대문 건은 흐지부지 무산되었다.
그렇게 또 한달여 속만 부글부글 스트레스를 받던 지난주 수요일, 온종일 빈 밥그릇을 발로 차고 팽개치며 미친듯이 짖어대던 아래층 똥개의 횡포는 밤 10시가 다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주말에 집에 주인이 있을 땐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짖는 빈도수나 시간도 좀 주는데, 온종일 집이 비어있는 날엔 아무 이유없이 길길이 날뛰며 짖어, 나의 살기를 돋우는 녀석이었다. 그날도 내가 두번이나 내려가 호통을 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고, 나는 곧장 구청에 민원신고를 할 것인가 한번 더 대화를 해볼 것인가 고민하다--아 일단 개주인을 만나야 이야기를 하지!--편지;;를 썼다.
강력한 경고문을 쓸까 했으나, 아예 얼굴 안보고 살 것도 아니고 일단은 또 한번 인정에 호소해보기로 했다. "정말로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번역작업에 심히 지장이 있으며, 현재도 원고마감에 힘쓰고 있는데 오늘 같아선 정말 일을 하기가 힘들다. 가족 모두 외출 기간이 길어 개를 통제해줄 사람이 없으니, 외출할 때는 입마개를 해놓고 나가는 건 어떠냐. 부디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주시길 빈다." 작년에 출간된 책도 적겠다, 내가 그간 얼마나 일에 지장을 받았는지 실제로 인터넷 서점에 확인해보라며 내 이름이 인쇄된 책 한권(학생과 직장인인 듯한 그 집 딸들도 확실히 알 만한, 제일 잘 팔리고 유명한 '그' 책)도 동봉해 그 집 현관문 앞에 놓아두었다.
인쇄된 이름의 힘을 빌다니(아날로그형 손편지의 힘이 좀 더 컸기를 빈다) 꼼수를 쓰는 것 같아 약간 찔리기는 했지만, 정말 나는 이번 편지와 읍소로도 해결이 안되면 이를 악물고 구청과 파출소에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 신고하고, 개 짖는 소리의 소음도를 측정해 주거권 피해 사례로 볼 수 있을지 전문가에게 알아볼 작정이었다. (실제로 똥개의 짖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과 녹음 파일도 갖고 있다 -_-v) 더는 못 참아! 헌데 바로 그 다음날 아침, 개주인이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알겠다고, 주말에 개를 치우겠다고 선선히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전날 밤까지 거의 악에 받쳐 있다가, 그런 말을 들으니 고맙다, 죄송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비록 기쁜 마음으로 돌아서서는, 혹시나 개주인 아저씨가 또 마음을 바꾸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염려와 달리 개는 토요일 오전에 정말로 모습을 감추었다. 다만 찜찜한 것은 마당 한구석을 매일 한강으로 만들며 놈이 싸질러놓은 오줌이 얼어붙은 자국과 함께 개집과 파라솔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 -_-; 예전에도 본가에 갔다줬다가 다시 데려온 적 있었는데 설마 또 그러려는 것은 아니...겠지? 어쨌든 올해 나의 첫 쾌거는 골칫덩어리 똥개를 쫓아냈다는 것이다.
지난 금요일 MBC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 황제펭귄 편을 보며 정말 어찌나 울었는지, 머리가 다 지끈거렸고 눈을 자꾸 문질러댄 탓에 다음날 눈이 탱탱 부었다(경험상 눈물을 안닦고 그냥 질질 흘리며 울면 자고 나서도 눈이 덜 붓는다). 그간 동물은 몰라도 인간의 모성애니 부성애니 하는 것들은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사회가 철저히 교육하여 얻어낸 압력의 결과라는 주장에 심히 동조하는 편이었다. 하물며 영하 60도씩 내려가는 남극의 겨울에 하필 알을 낳아서는(그래야 천적이 없고, 새끼들이 봄에 성장하기 좋기 때문이라나;;), 어렵사리 옮겨받은 알을 발등에 올려 배에 품은 채 두세달씩 꼼짝 않고 알을 부화시키는 아빠 펭귄을 보노라니 경이롭다 못해 눈물이 줄줄 났다. 요즘 인간은 걸핏하면 자식을 아무데나 버리고 도망갔다는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던데... 황제 펭귄은 실수로 놓쳐버린 알이나 새끼가 순식간에 꽁꽁 얼어 터지고 딱딱해져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다시 배에 품으려 했다. 심지어는 알과 비슷한 크기의 얼음덩어리라도.
마침 다음날 아침 절에 갔다 돌아오던 엄마는 절집 앞 골목에서 태어난 지 며칠 안된 것 같은 새끼고양이 세 마리를 보았다며, 노란 줄무늬가 있는 주먹만한 새끼 고양이가 추운 길바닥에서 무얼 먹고 한겨울을 날지 걱정이라고 했다. 한 마리 데려다가 키웠으면 싶은 생각도 들었을 정도라고. 엥? 엄마가 애완동물을? 그것도 길고양이를? 음식물 쓰레기 봉투 내다놓으면 죄다 뜯어놓는다고 욕하시더니 새끼에 대한 태도는 다른가 보았다. 그렇지만 엄마나 나나, 집에 함부로 애완동물을 들여 키울만한 사람들은 아니다. 밥 챙겨줘야지, 똥오줌 치워야지, 씻겨야지, 예방접종 시켜야지... 아우 다 귀찮아! 게다가 겁이 많아서 새끼고양이라고 해도 덥썩 집어 안고 올 용기도 없었을 테고. 새끼 고양이들이 어떻게 추운 겨울을 날 것인지 그건 안타깝지만, 누군가 데려다가 키워준다면 좋겠지만, 그 책임을 기꺼이 내가 나눌만한 용기는 없다. 정말로 가족처럼 반려동물을 키울 자신과 다짐이 없는 사람들은 함부로 시작도 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 하나는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로 딸에게 애완견 한마리를 사주었는데, 태생이 얌전한지 계속 잠만 잔다던 그 강아지가 병이 나서 계속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병원에선 계속 오늘내일이 고비라고 한대고, 부모님 입원했을 때도 매일 안찾아뵙던 병원을 꼬박 며칠째 빠짐없이 들여다보며 살아나기를 기도하는 중이란다. 짐승도 작고 약한 애들이 더 사랑을 받는다는 건 알지만, 처음 친구가 강아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자랑했을 때부터 나는 심술이 났다. 하필이면 인간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일부러 작고 약한 아이들을 교배하여 컵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게 만든 강아지를 왜 굳이 선택했는지? 수요와 공급 중 어느쪽이 먼저인지, 파는 사람이 잘못인지, 사는 사람이 잘못인지 원론적인 이야기를 파고들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강아지들은 핏줄도 너무 약해 어디가 아파 주사를 꽂으려 해도 핏줄이 죄다 터져버릴 정도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배에서 태어나도 어쩌다 약한 애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일부러 사람 보기 귀엽고 앙증맞으라고 열성인자만 애써 모아 탄생시켜, 수명도 턱없이 짧고 건강에도 문제가 있는 강아지를 머그잔에 쏙 들어간다고 한껏 자랑하면서 애완동물로 파는 건 파렴치한 죄악이다.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그저 귀엽고 안쓰러운 마음에 자기가 먹는 음식을 자꾸만 나눠주는 이들도 있다. 특히 우리 큰고모. -_-; 같이 늙고 병들어가는 처지라 불쌍하다면서 고모는 이미 십여년 전부터 그 개에게 온갖 음식을 '지나치게' 싸다 먹였고 결과적으로 현재 그 못생기고 늙은 개는 이미 수술도 몇차례 했대고, 비만에 관절염, 백내장 뿐만 아니라 아직 달고 있는 병명이 수두룩하다. 개들은 땀 배출 능력이 없어서 염분 많은 인간의 음식은 치명적이라고 주변에서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소용없다. 팔순 큰고모의 핑계는 늘 같다. 먹을 거 달라고 이렇게 꼬리를 치고 아양을 떠는데 불쌍해서 어떻게 안 주니! 어휴... 고모는 늙으셔서 그렇다 치고, 젊은 사람들 가운데도 심지어 키우는 강아지가 너무 오래 살면 안된다면서(농담인지 진담인지!!) 일부러 간간한 인간의 음식을 먹이는 이도 있다(이 글 읽고 있다면 반성해라. 바로 당신 말이야!! -_-+++). 그러다 나중에 병들어서 아파할 땐 어쩔 거냐고 옆에서 호통을 치면서도, 정말 아무나 애완동물을 키울 자격이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참으로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인간들. 하긴 나도 조카네 파랑이한테 먹다 남은 양념 고기 준 적 꽤 있다. 나는 동물혐오자니깐 뭐... -_-aa
한번 장가까지 들러 색시네 집에 다녀왔느나 2세 출산에 실패했던 파랑이는 결국 며칠 전 중성화수술을 했다. 배 밑엔 붕대를 붙이고 목둘레엔 투명한 삿갓 같은 깃을 두르고 있는 파랑이를 보노라니 만화에 나오는 애 같다고 놀리다가 문득 측은했다. 개는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서 가장 교활하게(?) 진화에 성공한 동물이라는 설도 있지만, 인간 세상에서 그렇게 편히 사료를 먹고 재롱을 부리며 같이 사느라 본래의 구실도 못하도록 변형되는 삶은 진정 행복할까. 이웃에 시끄러울까봐 성대수술을 해주는 애완견들도 그렇고, 별 생각없이 들였다가 책임지기 싫으니까 슬쩍 내다버리는 유기견들도 그렇고, 막 기르다 잡아먹히는 잡종견들도 그렇고, 음식쓰레기 봉지 뜯어먹고 살다가 염분 때문에 팅팅 부어 얼마 못살다 가는 길고양이들도 그렇고, 굳이 겨울이 아니더라도 먹이가 없어 가끔은 서울 도심까지 내려오곤 하는 멧돼지들도 그렇고... 인간 때문에 니들이 고생이 많구나 싶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인간이 얼마나 치명적인 천적인지 알 도리 없는 펭귄들은 겁도 없이 다가와 사람과 카메라를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부모 펭귄 없는 사이 사냥꾼 새가 공격해오자 아기 펭귄은 도와달라는 듯 촬영진에게 안겨들었다. 300일이나 남극의 혹한에서 고생한 제작진 덕분에 귀한 환경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수 있는 건데도, 한편으론 온난화 영향으로 서식지가 많이 줄은 것 이외에 이미 조류독감까지 돌아 펭귄들이 폐사하고 있다는 남극에 또 무슨 질병 바이러스라도 옮겨놓고 온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물론 문제는 남극이 흘리는 뼈아픈 눈물을 우리에게 알리겠노라고 환경 다큐 찍고 돌아온 제작진이 아니라, 앞다투어 남극개발과 진출에 힘쓰는 (우리나라 포함) 힘깨나 쓰는 나라들이다. 세상에는 그냥 좀 내버려두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많고 많은데,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왜 그렇게도 꼭 들쑤시고 파헤치며 '개발'하려 하는지 원. 제목을 동물 생각이 아니라 인간 환멸로 바꾸어야 하려나. 으휴.
게으름 뒷설거지 하느라 연말연시는 늘 쫓기듯 바쁘지만 그래도 노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한해 정리 포스팅을 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는데 차일피일 미룬 이유는 우유부단한 속성 탓에 좀체 항목별로 셋을 뽑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_-; 마음에 꼭 드는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도, 베스트 사유를 쓰는 것도 은근히 시간 많이 걸리는 일이라 스스로 찔리기도 했다. 하지만 또 그런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또 이렇게 얼렁뚱땅 하고만다. 2011 베스트 포스팅. ㅋㅋ
1. 2011 베스트 책
책 목록에서 인상 깊었던 걸로만 색을 달리해두고도 꽤나 뽑기 어려웠다. 결국 독서노트를 뒤져 가장 인용문을 많이 적어둔 책을 보니 얼추 세권의 윤곽이 드러났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용경식 옮김/문학동네
의외로 남들이 다 읽은 책을 하도 안 읽은 게 많아, 이 책 또한 안 읽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주인공 모모가 낯익은 건 순전히 <모모>와 동명이인이기 때문일 거라고. 그런데 중간쯤 하밀 할아버지와 로자 아줌마가 결국 어떻게 어떻게 될 것인지, 모모의 반전 비밀이 뭔지 다 기억이 났다. 아마도 대학 다닐 때 쯤 읽었던가. 그런데도 폭풍 감동에 눈물을 훔치며 읽었다.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수많은 구절을 적어놓아 대체 뭘 인용할까 또 고민스럽다. 그래도 대강 골라 적자면...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 p95
"그녀는 정해진 법 때문에 자기 뜻대로 죽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할 적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법이란 지켜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p113-114
" <식스펜스 하우스>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
킥킥대고 책을 읽고 나서 감동후기를 올릴까 하다가, 블루고비가 옮긴 책이라 또 다시 팔이 안으로 굽는 주례사후기(?)로 오인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뒀었다. 특유의 유머와 집요함, 박식함이 넘치지 않게 어우러진 폴 콜린스의 글쓰기 묘미에 나도 빠져든 것 같은 데다, '책들의 종착지'라는 헌책 마을 웨일스 헤이온와이에 무작정 살려고 갔던 지은이의 좌충우돌 체험기라 소재부터 흥미진진했다. 헤이온와이를 책마을로 만든 장본인인 리처드 부스 할아버지가 작년 무슨 도서전에 한국에도 왔던데 구경갈까 하다 관뒀을 정도. 책의 가치에 대해서, 어쩌면 운명이 비슷한 인생에 대해서 소소한 생각거리를 주는 책이다.
"책을 썼다는 사실에는 참 희한하고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책은 읽히기도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생명력이 질겨서 대개의 경우 작가보다 오래 남는다." - p168.
"원래 작가라는 일이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 p254
<연민>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이온화 옮김/지식의숲
다른 주민들의 책 베스트에도 많이 보이는 책을 나도 꼽았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이라는 부제에 모든 단서가 담겨있다. 나 역시 <광기와 우연의 역사> 밖엔 읽은 적이 없어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이 이토록 맛깔스러울 줄 짐작도 못했다. ^^; 다른 책도 찾아 올해 '몰아읽기' 할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그저 어린아이가 우표를 수집하듯 열심히 친구를 모으고, 모은 표본(친구)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말하자면 태생적으로 거리낌이라곤 없는 사람에 속했다." - p9
"반만 행한 일과 반만 내뱉은 암시는 언제나 악의 원인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어중간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 p123
"사람은 아무리 나쁜 규율일지라도 그것이 옆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면 곧바로 가볍게 느끼기 때문이다. 정의는 신비롭게도 폭력에도 적용된다." -p404
흐이구... 책 읽자마자 리뷰를 올렸으면 간단히 끝낼 수 있었을 것을... 아주 베스트 뽑으며 리뷰 올릴 기세다. +_+
적어둔 인용문이 거의 길어서 짧은 것 중에 골라 옮겨 적으려니 안타깝다.
2. 2011 베스트 영화 비기너스
천국의 속삭임
주노
이탈리아 영화 <천국의 속삭임>(역시나 애들이 주인공인 영화 좋다! 게다가 음향감독의 실화라니 더욱 감동;;)은 연초에 봤는데도 기억에 오래 남아 단연 베스트 후보였고 연말에 본 <비기너스>(시작하는 연인들, 유안 맥그리거와 멜라니 로랑의 만남도 좋았지만, 일흔다섯 병든 아버지의 설레는 사랑 또한 눈물겹게 흐뭇했다. 소소한 소품과 배경도 딱 내 취향)또한 보자마자 베스트 후보임을 실감했다. 나머지 하나를 뽑는데 살짝 고민을 하긴 했으나, 역시 뒷북으로 본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과 <주노>(개성 넘치는 주인공 주노의 선택과 식상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주노 새엄마는 <웨스트 윙>의 CJ였어! ㅎ 좋아하는 캐릭터였는데;; <If you're in, I'm still in>이라고 주노가 광고지에 적어준 쪽지를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는 마지막 장면까지 흡족~) 가운데 유쾌한 영화를 골랐다. <파니 핑크>를 만들기도 한 도리스 되리 감독을 좋아하지만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슬퍼서 또 보려면 가슴 아플 듯.
3. 2011 베스트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최고의 사랑
공주의 남자
압도적인 1위이자 군말없는 올 최고의 드라마였던 <뿌리깊은 나무>를 억지로 꼽은 나머지 둘과 같이 올릴 수야 없지. ㅋ
3회였나, 4회부터 보다가 완전 빠져들어 앞부분 재방송 찾아본 뒤엔 거의 본방사수 하려고 노력했다.
별로 닮지 않았음에도 송중기에서 한석규로 이어지는 이도 세종역할의 전환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니! 송중기도 다시 봤고 한석규한테는 정말 감탄했다. 극의 짜임새며 구구절절 가슴을 후벼파는 대본이며, 주조연의 연기(진정 충신 무휼과 조말생 대감까지!)며... 피칠갑을 했던 마지막회가 좀 보기 힘들었던 것만 빼면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한가놈의 마지막 반전까지 숨겨놓은 작가들 정말 존경스럽다. +_+
"임금의 마음이 지옥이지 않은 태평성대가 어디 있더냐"고 했던가, 가슴을 쿡쿡 후비는 감탄스러운 대사가 매회 툭툭 쏟아졌는데 그때그때 적어놓지 않아 다 까먹었다. 밀본 정기준과의 마지막 대면에서 세종이 "백성은 속아도 되고 지더라도 괜찮다. 또 싸우면 된다"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사극 보면서 어쩜 그리도 요즘 정치 세태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사가 많던지. 드라마 보다 말고, 그래, 속아서 대통령 뽑은 사람들도 대선 총선에서 또 싸워주면 된다고 중얼거리고 앉았었다. 참 놀라운 드라마 아닌가!?
두번째는 <최고의 사랑>인데 가나다순으로 사진이 밀렸;;다. ㅋ 후반부로 가면서 재미와 관심도 점점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구애정과 독고진, 띵똥 보는 재미에 끝까지 의리를 지키며 봤던 드라마다. 공효진을 원래 좋아했지만 연기에도 묻어나는 듯한 매력이 궁금해서 책(공효진의 <공책>)까지 사봤으니 뭐 말 다했지. 책 편집과 만듦새는 참 엉망이라는 걸 알고 봤음에도 공효진이 전하려는 환경 메시지와 생각은 마음에 들었다. 공효진의 다음 작품 기대중.
<공주의 남자>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한정적인 얼개 탓인지 중반 이후에는 거의 재방송을 보는 것 같은 상황의 반복이라 차츰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특별히 베스트에 넣어주었다. 세령 역의 문채원의 연기력이 좋아지는 과정을 응원하며 보던 생각도 나고(한복이 참 잘 어울렸던 <바람의 화원> 때부터 팬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마음에 안드는 한복이 너무 많았음! 특히 그네탈 때 입었던 것.. 으으), 김종서와 수양대군을 연기한 중장년배우(이순재/김영철)도 좋았다. 울먹이며 "우리 삼촌이 맞습니까?" 묻던 아강이 역할의 김유빈은 최고였고! <뿌리깊은 나무> 마지막회에서 한가놈의 정체가 드러난 뒤 성삼문, 박팽년과 스쳐지나는 장면을 보며, 먼저 방영한 이 드라마에서 본 사육신 참살 과정이 떠올랐던 것도 베스트 선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
그러고 보니 사극 잘 안보는데 베스트에 둘이나 뽑혔고, 외국 드라마는 아예 없다. BBC <셜록>을 기대했는데 아예 제작이 무산되어 안타까웠다. 올해는 설마 제작되겠지.
전시도 둘만 선정했다. 둘 다 후기 올렸으니 링크 참조.
훈데르트 바서 전시회를 갔더라면 셋을 채울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만 잔뜩.
올해는 가고픈 전시를 안 빼먹고 다 갈 수 있으려나.
6. 2011 베스트 발견
엄마의 건강
정유정
Snoopy's Street Fair
게임중독자의 자질
내가 번역한 책 한권의 힘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년 한해 엄마는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체중은 7kg정도 줄었고 10분도 채 못걷던 분이라는 걸 믿기 어려울 만큼 걸음도 경쾌해졌으며, 심리적으로도 대단히 안정적이다. 우울증 약도 꽤 줄였는데 정신적인 안정상태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모습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도 잘 본 적이 없었다. 일년에 열달은 울증, 한달은 조증, 나머지 한달만 말짱하다고 내가 농담삼아 툴툴거렸던 게 거짓말 같다. 이젠 나더러 운동 안한다고 잔소리를 하실 정도고, 최근엔 심지어 잠든 나를 그냥 내버려두고 혼자 버스타고 대학병원엘 다녀오셨다. 동네 의원은 몰라도, 복잡하고 진료과도 많은 대학병원은 아버지 계실 적에도 반드시 내가 운전해 모시고 다녔었는데... 아마도 엄마가 혼자 대학병원엘 가서 진료받고 약 타온 건 근 10년만에 처음이 아닐지. 암튼 과거의 엄마는 매일매일 '죽으려고' 살았다는데, 요즘 엄마는 '열심히 살려고' 사신단다. 합창단 연습도 여전히 열심히 참여중. 매우 고무적이고 감동이다.
정유정은 <7년의 밤> 읽고 반해 국내작가 중 유일하게 전작을 찾아볼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읽고 나니 군더더기랄까 좀 과하다 싶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던 <7년의 밤>보다 <내 심장을 쏴라>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마지막에 읽은 청소년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가 제일 좋아 두세번은 본 것 같다. 책표지가 기묘하게도 지우 그림과 많이 비슷해서였을까(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전무함에도!), 이상스레 정이 가는 작품. 어쨌거나 주류 문학계에선 정유정을 완전 무시하고 있대서 더욱 관심을 기울여 지켜볼 작정이다. 흥!
[#M_비슷하다고 우기기;; |접기|
아직도 안드로이드 마켓엔 없고 아이튠즈에만 있다는 스누피 마을 게임. 정말 지난 연말부터 삶의 낙이다. ㅠ.ㅠ
눈내린 겨울배경 업그레이드 버전도 좋지만 어서 봄이 와 초록 잔디 깔린 마을을 구경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데 벌써 22단계. 마지막 26단계가 머지 않았다. 마지막 단계를 이루고도 그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리세트 하고 처음부터 다시 마을을 가꿀지도 모르겠는데 어느쪽이 나을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무료 앱이라 깔아놓고, 결국엔 10불짜리 기프트 카드까지 사서 캐릭터를 사모았다. +_+ 처음엔 하루에도 몇시간씩 끊임없이 붙들고 있었는데 그래도 요샌 틈틈이 실행해서 동전만 벌어들이는 쪽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ㅋㅋ 어제였나 연속 27일째라며, 자주 이용하는 사람에게 주는 동전 10만개를 또 받았다. 이러니 매일 접속을 안할 수가 없다니깐! ㅠ.ㅠ
산타 스누피 기념 캡쳐
200점 증거 사진 -_-;
네번째는 베스트가 아니라 워스트 발견이어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우겨서 이 항목에 넣으련다. 스스로 중독자 기질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서... 작년에 이웃에 불었던 타일깨기 게임 열풍 때도 혼자 뒷북으로 열올라선, 다들 시들해 관뒀다는데도 홀로 악착같이(?) 중독자 답게 매달리더니(하도 시간낭비가 심해 즐겨찾기에서 지웠는데도 매번 구글 검색으로 찾아내 하고 있는 나를 발견;;;) 끝내 <200점>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그제야 관심에서 멀어져 더는 타일을 깨지 않고 있다. 대신 아이폰으로 스누피 게임에 매달리는 중. ㅠ.ㅠ 그러나 중독자임을 자각하여 자제하려고 노력한다는 데 의의를 두련다. ㅋ
7. 2011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멍하니 살았다.
적고 보니 두 마디로군.
아무리 돌이켜봐도 베스트나 워스트로 뽑을 만한 기억도 없고, 뭘 딱히 지른 것도 없는 것 같고(기껏해야 연말에 산 거위털 이불 정도?), 인상 깊은 사건도 없이 그저 소소한 아쉬움 뿐이다.
그래서 베스트 항목을 더 뽑으려야 뽑을 수도 없었다. 참 재미없게도 살았구나 싶은 느낌. 그래서 2011년을 보내는 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차라리 빨리 가버려서 속 시원.
8. 2011년 번역작업 달랑 3권이 출간됐다. 그중 하나는 두권짜리라며 위안을 해보지만, 8월 이후 하반기 출간된 책이 전무하다는 것은 아마도 출판 불황과 나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합작품일 듯.
작업한 책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벌려놓은 수만 잔뜩이다. 스스로 채찍질이 필요. 그래서 일부러 적어놓았다. 정신 차리라고 쫌!
9. 2012년의 계획이라면 1. 일과 관련해서 좀 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될 것
2. 조금 긴 여행 (홀로 두고갈 엄마 걱정도 덜었겠다, 여행비 모을 욕심에 더욱 열심히 일하던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3. 기타든 그림이든 뭘 좀 배우러 다니고 싶단 소망을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을 발휘할 것
4. 큰 마음 먹고 이사 (과연;; ㅎㄷㄷ)
참 구슬픈 노래다. 어려서 정확히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는 통 모르겠다. 어쩌면 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게 아니고 TV <누가누가 잘하나>를 통해서 배운 노래일 수도 있겠다. 암튼 어려서도 커서도 <섬집아기>는 좋아하는 동요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연유는 잘 모르겠으나, 첫 조카가 태어나고 나서 자장가로 불러주던 노래이기도 했다. 잠투정이 심할 때는 안고 서서 집안을 걸어다니며 스무 번도 넘게 무한반복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대개는 볼륨을 점점 낮추고 곡조를 느리게 바꿔가며 2절까지 한 다섯번쯤 부르면 노랫말 속 아기처럼 조카도 스스르 잠이 들었다.
4년뒤 태어난 둘째 조카도 마음 같아선 <섬집아기>를 불러 재워주고 싶었지만 준우는 태어나면서부터 워낙 기골이 장대하여(4.5kg를 넘겨 태어났다;) 안고 흔들어 재우는 걸 습관들이면 엄마아빠가 너무 힘들다고 처음부터 눕혀놓고 옆에 같이 누워 퍽퍽 두들겨(!) 자장자장 재우는 쪽이었다. <섬집아기> 자장가 시대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래도 조카들에게 가끔 <섬집아기>를 불러줄 기회가 없지는 않았으나, 준우에게도 세번째로 태어난 지환이에게도 이 노래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너무 슬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엄마 없이 혼자 집에서 놀다 지쳐 잠드는 아기에게 심히 감정이입이 됐는지 지환이는 노래를 부르다 중간에 눈물을 쏟을 정도였다. 아기 혼자 집에서 놀다가 다치면 어쩌냐고, 엄마 나쁘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옛날 노래임에도 일하는 엄마들의 애환을 가사에 참 잘도 담아냈다.
원래도 슬픈 노래라 조심해야 하는데, 아까 낮에 이웃 블로그에 올려진 <섬집아기> 오케스트라 연주 동영상을 보다가 질질 울고 말았다. 병들어 가끔씩 정신을 놓치는 부모에게 바치는 자식과 손녀들의 선물이라는 사연을 미리 듣기도 했지만, 자장가로 <섬집아기>를 불러 재우던 조카가 어느새 훌쩍 자라 이제는 어른들과 눈도 잘 맞추려 하지 않는 뾰족한 폭풍 사춘기를 보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연말이랍시고 마음은 바쁜데 날씨는 춥고 할 일은 많고 뜻하는 대로 되는 건 잘 없다보니 사방에 복병이고 수도꼭지는 걸핏하면 고장날 기미를 보인다. 아주 슬픈 영화나 보면서 잉여 수분을 아예 다 말려버릴까보닷.
쿠쿠밥솥이 고장났다. 쌀이 안익는 건 아닌데, 수증기가 다 옆으로 새는 바람에 푸실푸실 끈기없는 낱알 같은 밥을 만들어냈다. 2년전에도 겪어본 일이라 AS 신청을 해 패킹을 갈아야겠군, 의연하게 중얼거리고는 실로 간만에 냄비 밥짓기에 도전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또 쿠쿠밥솥에 쌀을 앉혀 한번 더 끈기없는 밥을 먹으면 좋겠건만, 왕비마마가 별로 어렵지 않다며 냄비밥을 명했기 때문이다. (아 그러면 엄마가 직접 하시든지! +_+ 아마 엄마도 냄비밥을 지어본 건 20-30년을 넘기지 않았을까. 쳇)
백미, 현미, 흑미, 서리태, 보리, 기장쌀, 율무까지 죄다 쌀독에 섞어놓은 잡곡인지라, 제일 바닥이 두툼한 냄비에 쌀을 씻어 앉히고 (까마득한 옛날 놀러가서 코펠에 밥할 때 압력솥보다 밥물 넉넉히 두던 걸 떠올려가며) 밤새 두었다가 무려 다섯시반에 일어나 '새벽밥'을 지었다. 한시간 내 곁에 붙어서서 불조절을 한 덕분에 태우진 않았지만 결과는 젠장, 죽밥이었다. 삼층밥, 꼬두밥보다는 그래도 진밥이 낫지 홀로 위로하며 상전(?)에게 새벽밥을 해먹이고 나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취사예약 버튼 눌러놓고 잊어버리면 그만인 쿠쿠밥솥의 힘과 편리함이 실로 대단한 것이었구나. 보온밥통이 있거나 없거나 옛날 엄마들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솥이나 냄비에 밥을 짓고 도시락까지 몇개씩 싸주었는데, 그 고된 노동을 최소 십수년씩 어떻게 견뎠을까. 내 경우 아버지가 보온밥통에 들었던 헌밥을 드시고 출근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도시락에 누렇게 변색된 헌밥을 싸간 적은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이야 해놓은 밥 금세 얼렸다가 전자렌지에 돌리면 새밥처럼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종류별로 햇반도 나오는 시절이지만(그나마도 급식을 하니 특별한 날 아니고선 도시락 쌀 일도 없겠다만;;), 옛날엔 정말로 새벽마다 부엌에서 솔솔 풍겨오는 밥짓는 냄새를 맡으며 어렴풋한 아침 잠에서 깨어나곤 했던 것 같다.
하기야 엄마가 새벽밥을 지어주면 뭐하나. 중학생 때까지는 꼬박꼬박 밥상에 둘러앉아 다같이 아침밥을 먹었지만, 등교시간이 훨 빨라진 고등학생 때부턴 밥보다 잠이 더 중요하다며 아침을 거르는 대신 5분, 10분 더 자는 쪽을 택했었다. 정 배고프면 학교 올라가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꼬마김밥이나 못난이 만두를 사먹거나, 2교시 끝나고 도시락 까먹기를 해도 된다고 큰소리를 쳤으나, 엄마는 그래도 집밥이 최고라며 집에서 들기름 발라 재고 구운 김(사실 당시 김 재는 담당은 바로 나였다 뭐;;)에 싼 밥덩이 몇개를 접시에 담아 헐레벌떡 등교준비를 하는 내방에 가져다주며 눈을 흘겼었다. 그렇면 또 난 옷 갈아입고 책가방 싸면서 희희낙락 낼름낼름 주워먹었으니 참 얄밉기도 했겠다.
어쨌거나 밥솥은 AS를 신청해 해결했으므로 난데없는 냄비밥 짓기는 한번으로 끝인데, 냄비 하나 가득 만들어놓은 죽밥은 아직도 절반이나 남았다. 그나마 위안은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밥에 물 부어 끓여먹으면 퍽 맛있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계속 전기압력밥솥만 쓰면서 일부러 누룽지를 만들 수도 없어 그게 아쉬웠는데, 뜻밖의 고장으로 약간의 삽질과 고생은 있었지만 얻는 것도 있긴 하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