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입시생이 없어진지 꽤 되서 수능이 언제인지 별 관심도 없는 삶이 죽~ 이어지고 있었는데, 작년부턴가 친구들이 하나 둘 수험생 부모노릇을 시작했다. 운 좋게 제 앞가림을 알아서 잘 하는(달리 말해 공부를 잘하는;;) 자식을 둔 부모든 아니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입시 때문에 다들 골머리를 앓았다. A형 문제를 선택하면 어떻고 B형이면 어떻고, 과목별 등급 컷이 어쩌고 저쩌고... 우웩~!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였지만, 들어도 통 모를 소리만 해대는데... 덩달아 한숨이 나왔다. 몇년 째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선배 하나는 매년 바뀌는 입시정책을 대학별로, 해당 학생 별로 따로 '열공'해야 하기 때문에 수업 준비는 할 시간도 없다고 푸념했다. 어차피 수능영어는 애들도 학교에서 배우겠단 기대도 하지 않는다나.
암튼...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명심할 건 단 하나라고 했다. 입시 과정이든 결과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 말것. 대학 어떻게 됐느냐고 괜히 물으면 향후 '20년간' 계속 재수가 없단다. ㅎㅎ 얼마나 싫으면 그런 속설을 만들어냈을까. 모범생 딸 둘의 입시를 연이어 치른 친구가 얼마전 만났을 때 그랬다. 2년 간 지켜보니 드디어 알겠더라고. "대한민국 입시의 정답은 무조건 특목고, 자사고야! 거긴 내신이며 모의고사 점수 바닥인데도 대부분 수시로 합격하더라고." (그 조언에 힘입어 다른 친구들은 요번에 죄다 애들을 특목고, 자사고에 밀어넣었다. 물론 애들도 실력이 되고, 뒷바라지 할 경제력도 되니깐 보냈겠지만;;)
친구의 두 딸은 경기 지역에서 일반고를 다녔다. 고교평준화 이전의 마지막 세대였다는 것 같다. 특목고, 자사고 특유의 강압적인 분위기가 싫다며 성적이 우수한데도 일반고를 선택한 아이들이었다. 듣자하니 그런 학교에 다니려면 학비며 기숙사며 비용이 대학 등록금에 버금가게 든단다. 좋은 기업에 다니면 자녀 학자금 지원도 받을 수 있다지만, 암튼 그 아이들은 일반고를 선택했고, 줄곧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듯했다. 이른바 '좋은 대학'에 수시 원서를 넣을 정도로.
하지만 둘 다 수시는 모두 낙방. 결국 정시로 대입에 성공했다. 서울 소재 대학이긴 하되 부모도 아이도 별로 성에 차지는 않아 했다. 나도 좀 놀랐다. 일반고에선 전교 10등, 20등 안에 들어야 마음 놓고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겨우 갈 수 있는 수준이라더니 정말이로군... 입시 뒷바라지 내내 아이들 얘기는 일언반구 하지 않았던 친구들(그래서 수험생인 줄도 몰랐던;;)은 한참 지나고 나서야 지방 사립대를 보내놓고 걱정을 토로했다. 요샌 SKY 나와도 취직이 안된다는데... +_+ (심지어는 '하바드'를 나와도 문과 전공이면 실업자가 수두룩하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대학 진학률에 목매는 부모들은 너도나도 특목고, 자사고를 보낼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든다. 하물며 이젠 예고도 예체능 특기로 가는 곳이 아니란 놀라운 사실. 미술학원에 다니며 예고 준비를 했던 나의 조카는 중3이 되자, 그림 실력은 다 거기서 거기니깐 미술 실기 중단하고 내신성적이나 올리라는 학원 선생의 조언을 들어야했다. 아니 공부 잘 하는 애가 뭐 아쉬운 게 있어서 예고를 가냐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예고는 이제 대학 가기 유리한 방편으로서 일종의 '특목고'에 불과한 듯했다. 어차피 이미 예중 출신이 아니라면 예고도 반에서 5등 안엔 들어야 수월하게 갈 수 있다네. ㅠ.ㅠ 맙소사.
세상 꼬라지가 어떻게 되려고 이 모양인가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한심스럽기 그지없지만, 입시 관련해선 더더욱 기가 막히다. 선행학습 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지만 과연 그런다고 사교육이 줄고 교육이 정상화될까? 애들은 학교 교사의 무능력을 탓하고 교사는 또 애들의 방만함을 탓하고.. 악순환만 지속될 뿐인 것 같던데. 순진하게도 나는 조카들이 클 무렵엔 다들 공부에 목매지 않아도, 대학따위 가지 않아도 제 인생을 펼쳐나갈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상상했었다. 그런데 이놈의 빌어먹을 학벌주의 사회는 이 나라가 망하는 날까지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얼추 학교만 졸업하면 다들 '정규직'으로 취직해 제 앞가림은 하고 살던 때 역시 다시 돌아올 것 같지도 않고.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며 성적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게 당연한 풍토 속에서 난 중뿔나게도 "어떻게 모든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할 수 있냐! 공부가 싫고 못하는 애들도 있는 거지!"라고 투덜대자니 괜히 욕만 들어먹는다. 니 자식 아니니까 함부로 말하는 거라나. 그래도 난 모두들 입시와 성적과 성공을 목표로 아예 초등학생 때부터 노선을 정해 애들을 잡는 부모들을 도통 이해 못하겠다. 알바까지 해가면서 애들한테 들이는 사교육비만큼 따로 떼서 차라리 노후 준비나 하라고, 그게 미래를 위한 나은 투자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어차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혹시 이젠 성적순이 맞는 건가?)
덩치만 컸지 아직 정신연령은 애기처럼 느껴지는 큰조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너도나도 '이제 입시지옥 시작이구나' 한다. 지옥이란 걸 안다면 거기 발을 내딛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내 자식 일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흔히 100세 시대라고 하는 길고 긴 인생에서 굳이 다 똑같은 길을 가야하는 건지, 튀지 않는 평범한 삶을 위해선 그냥 대세를 따르기만 해야 하는건지, 뭔가 다른 길이나 미래는 없는 건지, 대답 없는 질문만 머리를 맴돈다.
일주일이 아직 다 가지 않았는데, 직딩 시절 월요일부터 연일 야근에 시달리다 맞은 금요일처럼 축 늘어진 파김치 신세다. 그간은 약간씩 '기운'만 돌다 말았을 뿐 매번 내가 먹어대거나 푹 쉬거나 하는 수법으로 늘 물리쳤던 감기가 드디어 내 면역력을 넘어섰다. 다행히 요즘 유행한다는 독감은 아니고 그냥 지저분한 콧물감기. 요란한 재채기 몇번 이후 코찔찔 흘리느라 목소리가 변했다. 코를 풀다풀다 지쳐 코주변에서 껍질이 벗겨질 때쯤이면 감기가 떨어지겠지.
조카의 중학교 졸업식에 갔었다. 삐까번쩍 멋지게 들어선 아트센터 건물에서 거행된 졸업식은 어쩜... 수십년 새 그렇게 하나도 안변했을 수가 있나. 심지어 더 나빠진 것 같다. 예전에도 애국가를 4절까지 다 불렀던가? 어쨌거나 저 아래층의 학생들도 2층 객석의 나도 몸을 배배 틀며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개그콘서트에서 박지선이 늘 "몸이 고생을 기억해요~" 따위의 대사로 웃기는데, 30년 넘게 부를 일 없었던 교가와 졸업식 노래가 다 기억나서 깜짝 놀랐다. 하와이 민요에 붙인 그 졸업노래는 딴 데 가서도 진짜 들을 일 없을 텐데 ㅋ.
식이 끝난 후 멀고먼 교실 건물까지 또 낑낑대고 따라가서 보니 여전히 복도는 좁아터져 학부형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고, 저 안에 어떻게 70명이 바글거리고 앉았나 싶게 교실도 작았다. 이제는 학생 수가 그 절반도 안되는 30명이라던가. 왁자지껄한 교실엔 그래도 누군가 풍선도 매달고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종이도 붙여 놓았고 교탁에 케이크도 놓여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담임이 뭐라고 하건 말건 지들끼리 수시로 왁왁 괴성을 질러대는 아이들이 나는 조금 무서웠다.
모든 게 끝나고, 싫다고 도망치는 조카를 애써 담임 옆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지만 당연히 흔들려 하나도 건질 게 없다. 괜히 찍으라고 그랬나.
돌아오는 길에 봐온 장으로 어젠 또 종일 대보름 먹거리를 준비했다. 여름부터 엄마가 말려놓은 호박, 가지, 시레기, 나물 3종세트에 콩나물과 시금치를 더해 5종 세트 완성. 9가지엔 못미쳐도 그나마 작년보다 한 가지 더 많아졌다. 냉장고가 그득하니 안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지금 배가 부른 건 오곡밥을 하도 많이 먹어서지만...
고된 일주일을 씩씩하게 보낸 나에게 장하다고 뭔가 상이라도 줘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날짜를 보니 발렌타인 데이. 옳다구나 냉장고를 열어 친구가 보낸 초콜릿을 한귀퉁이 쪼개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달콤쌉싸름한 카카오의 맛이 고단함을 달래 잠시라도 영혼을 말랑말랑하게 해주기를.
명절 때만 되면 남북 양쪽에서 정치적인 카드로 써먹으려드는 느낌이 강한 이산가족 상봉. 요번에도 실무 접촉이 시작되고는 있지만 꾸준히 연례적으로도 못하고 걸핏하면 중단되는 양상이 참 못마땅하다. 뉴스에 나오는 이산가족 상봉 회담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가 중얼댔다. 이젠 다들 돌아가시거나 너무 늙고 병들어 만나러 갈 사람도 없지 않나...
실향민인 우리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셨더라면 올해로 무려 105세가 되시는 셈이고, 10년쯤 전엔가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다녀오신 큰고모님도 어느덧 80대 중반이 되셨으니 정말로 몇년 안에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유명무실한 생색이 되고 말 것이다. 큰 기대를 안고 떠났던 큰고모님 말씀으로는 얼굴 알만한 노인들은 다 사망해 다 그 자손들이랍시고 나와 상봉을 하니 별 감흥이 없으셨다던데.
암튼 얼마 전 중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한통 받았다. 돌아가신 울 아버지 성함을 대며 찾는데, 대번에 중국동포 말투가 너무 확연해서 보이스피싱이구나 싶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표독스럽게 대꾸하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기는 중국에서 북한을 드나들며 무역업을 하면서 더러 북한 사람들을 돕고 있는데, 북한에 있는 아버지의 친척들이 아버지와 연락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의 연락처는 오래 전 이산가족 상봉 때 큰고모님한테 받은 것이라며 고모님의 이름과 주소 그 아들들 이름을 줄줄이 읊어 신빙성을 주려 애를 썼다. 의도는 알겠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이기적이게도 내심 이거 골치아프게 금전적 지원이나 탈북 알선에 연루되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도, 내가 알기론 아버지랑 실제로 아는 친척은 하나도 없는 것 같던데. 어쨌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전하니, 저쪽에서도 그럼 자기도 뭘 더 도와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죄송하다는 말로 전화를 끊고는 부산 큰고모님께 연락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며칠 고민하다 그냥 나 혼자 씹고 말았다. 엄마한테 이야기하면 또 괜한 걱정과 공포에 잠이나 설칠 게 뻔하고, 이산가족 상봉 후 큰고모님도 고생스럽게 괜히 갔다고 말씀하셨던 걸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통일을 앞두고 당연히 더 많은 탈북자 새터민들이 생겨날 것이고 지금도 여러 민간단체에서 북한 주민을 돕고 있듯이 꾸준한 물밑 교류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어쩌면 남북 정권의 정치적이고 극단적인 결정보다는 차츰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과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할 테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개인적으로 그런 기회가 가능할 수도 있는데 대번에 꼬리를 내리고 움츠러드는 나를 보니 어찌나 한심스러운지. 늦었지만 큰고모님께라도 실토하고 조언을 구해야하는 게 아닐까. 그 고민조차도 며칠째 계속 전전긍긍.
블로그를 일기삼아 매일 뭔가를 끼적이면 좋겠지만, 도무지 그런 부지런함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고 2014년을 맞아 매달 집계용 월기(? 블루고비 따라하냐? ㅋㅋ)를 남겨볼 생각이다. 그러면 민망해서라도 독서량이 좀 늘까, 아닐까. ;-p
1월엔 달랑 책 1권을 읽고 영화 4편과 전시회 둘을 보았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반권이라고 해야하나 ㅠ.ㅠ)
인 디 에어(Up in the Air, 2009)
변호인(2013)
어바웃 타임(About Time, 2013)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 <종가>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중남미 소설 읽기의 일환으로 오래 전에 장만해놓고 계속 겉표지만 구경하다 드디어 시작했다.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가 동기로 작용하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다. ㅠ.ㅠ 고사 직전이라는 출판계에서 요새 그나마 움직이는 건 드라마에 인용된 책이라고 넋두리들을 한다는데, 아무 맥락없이 드라마에 PPL로 등장하는 책들은 모르겠고 확실히 작가가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책들은 효과가 큰가 보다. 어쩐지 끼워팔기나 묻어가기로만 살아가야 하는 책의 신세가 서글프지만 그래도 아예 주목 못받는 것보다는 낫겠지... 어쨌든 난 이번에 산 게 아니고 사둔지 몇년 된 책이라규~
조지 클루니의 영화라 다운 받아놓은지 오래 된 <인 디 에어> 빼놓고는 다 영화관에서 봤다. <그래비티>에서 아주 잠깐 나오고도 존재감이 컸던 조지 클루니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나 (한때 온라인에서 '마이클루니'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적도 있을 만큼 ER 시리즈 속 클루니의 팬이었다 내가 ㅋㅋ) 벼르기만 했던 <인 디 에어>를 봤고, 조금 울었다.
그러고 보니 네 편의 영화 모두 한줄 감상을 쓰자면 어느 순간 조금씩 울었다는 이야기일 듯.
주변에서도 혹평과 호평이 나뉘었던 <변호인>과 <어바웃 타임>은 그 이유와 한계가 뭔지 알겠지만 대체로 뭐 괜찮았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1월 최고의 영화로 선정. 우와... 감탄했고, 집에 돌아와 나도 여행 상품을 한참 뒤졌다. ^^;
박수근 전시는 방금 포스팅했으니 됐고...
2월 23일까지 경복궁 옆 민속박물관(무료!)에서 하는 <종가>는 제사와 손님맞이를 전통적으로 이어온 종가집의 의미와 자취에 대해서 실제 여러 종가의 유물까지 아기자기하게 마련해놓은 전시였다. (어느 종가에서 종부에게 대대로 내려졌다는 '악어가죽 핸드백'도 있다. ㅋㅋ) 무료라서 유치원생들과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바글바글한다는 것만 빼면 꽤 볼만하고 일부 구간에는 신기한 신문물(일정한 지점을 밟으면 탁한 유리가 촥~ 투명하게 변하며 사당의 제사상과 제주가 나타난다든지;;)을 전시에 응용한 것도 좋았다.
그밖에 상설전시관도 함께 둘러보았는데 민속악기 전시실 앞엔 전화 수화기 모양으로 생긴 걸 귀에 대면 악기 소리가 들린다더니만 주로 지지직~ 소음만 들리거나 고장! 애들 등쌀에 쉬 고장나는 건 이해하겠지만 음질에 더 신경 좀 쓰시지... 쯧쯧...
이렇게 적고 보니 꽤나 바지런을 떨며 보낸 것 같지만 사실 1월은 내내 아직 새해가 밝지 않았어, 설날이 남았잖아.. 그러면서 미적거렸다. 이젠 정말 빼도박도 못하는 새해임을 감안하여 2월부턴 좀 더 나사를 조일 것.
Best 포스팅을 빌미로 한해정리를 한하고 넘어가면 새해를 제대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기분은 정말... *.*
괜스레 일감 진도 잘 안나가는 것 같다. 얼른 마무리하고 열심히 일해야지!
2013 최고의 책 3
읽고 난 직후엔 어찌나 별점 평을 후하게 주는지, 별 넷짜리중에서도 세 권 고르느라 좀 힘들었다. ㅋㅋ 주로 상반기에 읽은 책들이 많아놔서 기억이 가물가물...
<감응의 건축> 너도나도 큰돈 들여 흉측하고 에너지 낭비하는 괴상한 건물 짓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요즘이라 지은이의 건축관과 무주 프로젝트가 더 감동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등나무 꽃이 한창 피어 꽃그늘을 드리울 때 나도 무주 공설운동장에 한번 가보고 싶다. 게으름 부리다가 과천에서 열렸던 정기용 아카이브 전을 못본 것이 천추의 한. ㅠ.ㅠ
<그레이스 1, 2> 마거릿 애트우드는 오래 전 다시 공부를 시작하며 혼자 속으로만 논문 주제로 생각했던 작가였는데 ㅋㅋㅋ 정말 완벽한 꿈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선 현대소설을 잘 읽히지도 않고, 특히 캐나다 작가는 다루지도 않는 걸 몰랐지 뭔가. 암튼 원서로 읽다가 어딘가 던져둔 책의 번역본이 나왔길래 얼른 꿍쳐놓았다가 읽었다. 잠자기 전에 읽으려다 날을 하얗게 새우곤 할 정도로 탐독했던 건 생각나는데 벌써 그 감흥은 다 지워지고 이거 원....
1843년에 벌어졌던 실제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미스터리 소설이다. 1권은 정말 홀딱 빠져들어 읽었는데 다 읽고도 진실은 저 너머에 ㅋㅋㅋ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순전히 나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준 독서의 의미로 막판에 선택됐다. 연말은 다가오고 밀린 일에 치여 잠을 자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글자는 쳐다보기도 싫던 나날이 있었으나, 이 책 덕분에 좀 킬킬대며 그런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었다.
2013 최고의 영화 3
<레미제라블> 다들 2012년 연말에 보고 베스트로 꼽기도 했던 영화를 난 느즈막히 1월에 본 덕분에 2013 베스트에 넣을 수 있었으니 퍽 다행이다. 러셀 크로의 노래는 좀 안습이었지만 앤 해서웨이의 연기와 애절한 노래가 그의 삐끗함을 다 덮었다.
<마지막 4중주> 결국 한번 더 보러 가진 못했지만 먹먹한 감동의 여운은 잊히지 않았다. 말로 잘 설명이 되지 않는 영화.
<그래비티> 누군가는 산드라 블록의 허벅지에 관한 영화라고 우스개소리를 하던데, 그 말도 맞다. 역시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스토리랄 것도 없지만 온몸이 뻐근한 감동이 있었다. 대단한 영화라고 느꼈음.
그밖에 본 영화들: 베를린 / 라이프 오프 파이 / 7번방의 선물 / 파파로티 / 위대한 개츠비 / 비포 미드나잇 / 감시자들 / 알마냐 / 500일간의 썸머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내 아내의 모든 것 / 아티스트 / 그래비티
앞의 두 전시에 대해선 꼼꼼히 포스팅도 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김환기 탄생 100주년 전은 기대보다 더 좋았다. 꽁꽁 얼어붙은 혹한의 부암동 미술관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한가하게 찬찬히 그림과 건물을 다 감상할 수 있었다. 환기미술관은 건축물로도 유명해서 실내에선 그림은 물론이고 창문 하나도 사진을 못찍게 한다. ㅎ
겉에선 뭐가 그리 잘 지은 건물인가 잘 모르겠다 싶지만 전시실을 돌아다녀보면 미술관으로 딱 맞게 참 공간을 잘 만들어냈다 싶고 부암동의 언덕배기에 잘 어울리게 들어앉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크고 작은 김환기의 작품을 실컷 둘러보며, 그림 하나 가져가라면 뭘 가져갈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가 아트숍 2층에 있는 유품과 기념사진들까지 다 보고난 뒤 건물 외관을 한 바퀴 돌고는 엄청 뿌듯했다. 손가락이 곱아 사진은 죄다 흔들리고 그날의 감흥이 살지 않았지만.... 서울도성 성벽을 본떠 두른 담벼락에 매달린 담쟁이도 김환기의 작품 같았다.
왼쪽 사진 문 안쪽의 우물 같은 모양은 1층 중앙전시실에선가 올려다보이는 천창이고, 그 위로 솟은 두 개의 아치가 3층 지붕인데... ㅋ 사진 참 못찍었다. 우주를 담은 김환기의 점화 못지 않은 자연의 작품이라고 감탄했던 담쟁이는 확실히 실물이 훨씬 멋지다. 2013년 연말까지 전시로 알고 있었는데, 1월 26일까지 연장했다는 듯하다. 그치만... 입장료 만원이나 받으면서 100주년 기념 브로셔도 없는 건 좀 불만.
2월에 몰아서 본 프라하, 풍속화, 팀버튼 전은 역시나 몰아서 후기를 올렸으니 언급 생략하겠고, 정선 화첩과 헝가리 왕실 보물전은 경복궁 옆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걸, 안내 없는 시간에 후딱 둘러보고는 포스팅도 못했다. 겸재 정선화첩이 외국에 팔렸다가 한국에 되돌아오게 된 사연을 담은 방송을 얼핏 본 것 같다. 아주 작은 화첩이라 애개개 싶었지만 <금강내산전도>는 복제본으로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1주일에 한번씩 화첩 그림을 달리 펴놓는다니
금강내산전도, 겸재정선화첩
틈날 때 한번 더 들여다봐야지 싶다.
헝가리 왕실 보물전은 뭐 크게 감탄할 건 없지만 옛날 유럽 복식이나 식기류를 참고하기엔 좋음. 어차피 고궁박물관엘 갈 거라면 상설전시를 보는 쪽이 더 알차다. 궁궐에 있던 진짜 보물들은 죄다 고궁박물관으로 옮겨놓았기 때문. ^^; 주문제작품이라 롤스로이스 사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순종의 어차 두 대는 언제 봐도 참 새끈하다. 그 모든 볼 거리가 다 무료라는 점!
최고고 자시고 공연이랍시고 딱 이 셋을 봤다. ㅠ.ㅠ 그나마 대비마마가 연말에 스스로 예매해 놓고 강권한 호두까기 인형 아니었으면 셋을 꼽을 수도 없었겠다. thanks to mom. ㅋㅋ 이원국 발레단은 지역 문화회관에서 해마다 공연을 하는 모양인데 나로선 첫 경험이었지만 가격대비 완전 훌륭했다.(단돈 만오천원) 전막 공연도 아니고 공연장이 구청 문화회관이다보니 무대의 제약도 많지만, 그래도 볼만했다. TV에서나 보던 이원국 단장의 나이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내심 젊은 사람들한테 주인공 안맡기고 왜 본인이 주연을 하나 의아했더니 도약이며 회전이며 젊은 발레리노 못지 않더군! 정말 놀랐다. 그리고 겨우 중3이라는 여주인공도 완전 예쁘고 실력도 뛰어나고... *_*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가 크리스마스 분위기 제대로 만끽하며 흐뭇했다.
2013 최고의 발견 3
1. 붙이는 핫팩 ^^
친구가 하나 써보라고 주어서 알게 된 붙이는 핫팩. 주머니에 넣는 작은 핫팩은 궁궐답사할 때도 몇번 써봤지만 효과가 몇시간 못가는데 반해, 파스처럼 붙이는 스티커형은 옷 위에 붙여놓으면 6, 7시간은 족히 뜨끈뜨끈하다. 12시간짜리도 파는 듯. 대비마마가 체기가 있다던 날 내복 위에 두개를 떡 붙여드렸더니 찜질팩 못지않은 효력을 발휘했고, 한달에 한번 마법에 걸렸을 때 아랫배에 붙여놓으면 뜨뜻하니 아주 좋다. 10개들이로 사놓았는데 담엔 아주 박스째로 사댈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도 코스코에 가서 박스째로 사다놓고 쓰는 집이 꽤 되는 것 같다. 난방 부실한 학교에 맵시 때문에 절대 외투 안입고 교복만 입고 등교하는 딸들에게 억지로 붙여준다나 ㅋㅋㅋ
2. 서촌 골목길
경복궁 서쪽의 서촌이 뜬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뭐 또 삼청동 꼴 나겠지 하고만 생각하다가 직접 가보니 삼청동이나 북촌과는 또 다른 자연미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정선의 그림으로 남아있는 수성동 계곡도 볼만했고... 대표로 서촌 골목길을 적긴 했지만 성곽 둘레길 주변에 아직 꽤 볼만한 정겨운 골목들이 남아있는 것 같아 더 찾아볼 생각이다.
스페인에서 찍어왔다고 뻥칠 수도 있을 듯한 서촌 골목의 어느 건물 ^^; 가우디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도 확인가능한 수성동 계곡의 돌다리
3. 동네 산책로
서울 반대편에 사는 후배가 아 글쎄 '안산'으로 가벼운 등산겸 나들이를 온다는 말에 엥? 했다. 동네 산책로를 정비했다는 얘기는 벌써부터 들었고 대비마마의 실버합창단이 봄엔가 동네 뒷산 쉼터에서 공연도 한다고 들었지만 나몰라라 했었는데 퍽 아기자기하게 가꿔놓아 다른 동네에서도 원정 올 정도란 얘기였다. 그제야 나도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동했으니 참... 못말린다 ㅎㅎ 암튼 동네마다 지자체에서 공원정비는 참 잘하는 것 같다. 겉보기 생색만큼 생태보존도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해발 500미터도 안되는 뒷산 정상을 나도 언젠가는 올라갈 날 있겠지. 아래 사진은 모두 안산 오르는 산책로 초입이다. ㅋ
2013 최고의 드라마, 음반, TV 부문은 뽑지 못하겠다. 진득하니 애정을 품고 본 드라마가 거의 없다. 노희경 드라마도 실망스러웠고, <나인>이 괜찮다는데 한꺼번에 봐야지 그러고선 결국 못봤으며, <응답하라 1994>도 난 별로여서 보다말다 했다. 스팅이 10년만에 낸 앨범은 여러 장 사서 사방에 막 선물도 했지만 너무 뮤지컬 ost같아서 무조건 칭송하기 좀 뭣하고.... 애들 재롱 보는 맛에 보던 <아빠 어디가>나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놓치는 때가 더 많고, 심지어 꼭 챙겨보던 <개그콘서트>도 깜박잊고 안보는 날이 많았다. 2013년엔 테순이 노릇을 좀 덜하고 살았던 듯...
p.s. 벨로의 댓글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보영과 이종석 나왔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꽤나 열심히 그리고 즐거이 챙겨보았다. 그러나 결국 못보고 지나친 1, 2회는 다시 찾아보지 못한 탓에 '완벽하게' 본 게 아니라고 생각했나보다. 특히나 주인공 이름 '장혜성'은 무려 우리 친할머니 이름과 똑같아서 엄청 반색도 했었는데... 이런 정신머리 하고는... 친구들의 할머니 성함이 최간난, 박점례... 같은 이름인데 반해 우리 할머니 이름은 내 이름보다도 세련된 느낌이라 어려서도 괜한 자부심을 품었던 것 같은데 그 이름을 요즘 드라마에서 딱 만나다니 이제껏 별로 연기 잘하는 줄 모르겠다 생각했던 이보영이 다시 보일만도 했는데, 암튼 여리여리한 느낌의 남녀 주인공 연기와 호흡이 엄청 좋았고, 조연들도 하나같이 제 몫을 다 했고 짜임새며 이야기며 다 훌륭했다. 특히 민준국으로 나온 정웅인 섬뜩하고 무서워서 죽는 줄...
2013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영부영하다 다 지났네
2012년에 이어 우겨댔던 안식년 타령은 어영부영 가난이 무서워서 6개월을 채 채우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게다가 2주에 한번씩 꼬박 하루를 떼어 낯선 일을 시도하는 건 한편으로 삶의 자극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 의미를 잘 모르겠어서 잘하는 짓인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어쨌든 궁궐의 4계절 변화를 코앞에서 보는 건 즐거웠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겨울 내내 이상하게 궁궐 가는 날만 유독 한파가 몰아치는 이유는 뭘까? ㅋㅋ
암튼 궁궐공부나 하면서 탱자탱자 한가롭게 보내던 봄이 가고 여름부턴 꽤나 치열하게 다시 일에 매진했다. 돈벌이를 안하고 사는 삶은 어차피 내게 주어진 길이 아니니 어쩌겠나. 마감에 쫓기며 사는 인생을 탈피할 순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 좀 성장을 하긴 한건가. ㅎㅎ
2014년 계획
1. 여전히 마감일정에 매여 살아가겠지만 그 사이 틈틈이 긴 여행을 반드시 갈 수 있기를... 계획에 앞선 결심부터 오래 걸리는 인간인지라 여차하면 패키지 여행이라도 따라갈 참이다. 불끈!
2. 운동을 좀 하긴 해야겠다. 연말에 한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또 고혈압과 빈혈 판정. ㅠ.ㅠ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인 것으로 보아 혈압은 그냥 그 전날 불면 때문인 것으로 여기고 싶지만 아무래도 부모님의 유전자가 있는데다 150을 넘긴 건 좀 심했다. 요즘 집에서 재본 혈압도 계속 정상범위보단 좀 높으니 일주일에 세번은 좀 나가서 걷기로. ㅠ.ㅠ 방구석족을 탈피하는 것이 관건이다. 일단 오늘은 실천했음. 한집에 두 여자가 살며 똑같은 음식을 먹는데, 한 사람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늘 정상이거늘 왜 나는 빈혈일까? 연말엔 특히 고기도 많이 먹으러 다녔고 평소 커피도 많이 안마시는데 왜?! 역시나 아는 게 병. ㅋㅋ
공사중 불이 나질 않나, 종친부 담장 문제로 전주이씨와 싸워대질 않나, 계속 말도 많고 탓도 많았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드디어 개관을 했다. 11월 개관 직후엔 사람들이 엄청 몰렸대고 인터넷 예약이 아니면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해서 (내가 바쁘기도 했고) 12월 들어 별렀다가 가봤다. 경복궁 옆 길가에서 보면 옛날 학교 건물 같기도 하고 오래 된 창고 건물 같기도 해서 볼품없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는데(있던 건물 그대로 쓰려니 어쩔 수 없었겠으나;;;) 안에 들어가보고선 일단 건물이 맘에 들었다. 사방으로 툭툭 트여 시선 가리는 거 없고, 지하층인데도 통창이 있어서 환하고, 유리창 밖으로 너른 마당 보이는 거 좋아! (그런 의미에서 종친부 담장은 원래 계획대로 안 세웠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의견. 그러나 뭐 일부만이라도 세우기로 했다지 아마?)
건물이나 공간은 그런대로 흡족했던 반면 특별 기획전시는 한 마디로 기대에 좀 못미쳤다. -_-;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물론 가장 기대가 컸던 서도호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은 좋았고, 그래서 통합관람권 7천원이 하나도 안아깝다고 여겼지만, 개막 특별전이면 앞으로도 계속 상설전시할 작품들도 엄청 유명한 대작들을 좀 턱턱 가져다 놨어야하는 게 아닐까나? 전시실이 꽤 많다고는 하지만 1층과 지하 전시실 돌다보니 다리만 아프고 금세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2층엔 굳이 미술관 공사과정 장면들과 공사소음까지 재현해놓은 공간을 마련해놓았던데, 발상 자체는 기발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나 같은 사람은 싫다규~ ㅋㅋ
특별전시를 다 포함한 통합관람권은 7천원. 각각의 전시를 3천원, 5천원으로 볼 수도 있게 해놓아, 전시실 입구마다 표를 보여달라고 하는 게 좀 성가셨다. 가방과 소지품은 디지털도어락 달린 무료 사물함에 넣어두고 다녀서 홀가분했지만, 핸드폰이랑 티켓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다가 결국 일행 하나는 전시장 바닥에 표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통합권은 팔찌 같은 걸로 대체해야 하지 않을까, 직원에게 툴툴거렸더니 그렇게 건의 해달라고... 티켓 떨어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한가보다.
1층에 아마도 제일 큰 제1전시실이 있고 거기에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이라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거대한 도마뱀 조형물이 인상적이었고, 미래의 로봇이었던가... 새하얀 여체의 기계식 몸매가 멋졌던 이불 작가의 조각도 좋았다. 전시실 맨 안쪽 구석에 노숙자(?)를 형상화해놓은 작품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귀찮아서 이날은 도슨트 설명을 안듣고 그냥 내키는 대로 돌아다닌 탓도 있지만, 대체 뭐가 <시대정신>이라는 건지 주제가 딱히 와닿지는 않았다. 조선총독부 건물이며 숭례문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도 그렇고, 뭔가 중구난방이란 느낌... 이 시대가 워낙 개판이란 의미인가? ㅋㅋ
설치미술 말고는 죄다 작품 사진을 못찍게 해서 별로 사진도 없다. 남들은 몰래몰래 다 찍는다면서 일행 하나도 어느틈에 몇 개 찍어오긴 했던데, 뭐 굳이 찍지 말라는데 싫은 소리 들을까봐 조마조마하면서 도촬까지 할 마음이 드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p 뭐니뭐니 해도 내가 기대했던 서도호 작품은 맘껏 사진 찍어도 되는 거니까 ㅎㅎㅎ
작품 내부에서 찍은 사진
작품 전체 외형은 위층에서 내려다보아야 다 보임
서도호의 작품은 지하1층 중앙에 '서울 박스'라고 하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리움 미술관 전시 때도 본 적 있는 미국 유학시절의 3층짜리 서양집 안에 다시 성북동의 한옥집이 들어앉아 있는 모양새다. 둘 다 실물 크기라는 것 같다. 제목이 왜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이냐면, '한옥을 품은 양옥, 양옥을 품은 서울 박스, 서울박스를 품은 서울관, 서울관을 품은 서울'까지 공간이 확장되는 개념을 담은 거라서 그렇다고... 상설전시가 아니라서 5월 11일까지만 볼 수 있단다. 끝나기 전에 한번 더 가서 봐줘야지, 라고 마음 먹었다.
서도호의 작품을 한바퀴 돌아나오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청아한 가곡이 들려왔다. 어머나, 여긴 전시장에 음악도 트나보다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고 <리밍웨이>라고 하는 대만 작가의 <소닉 블로섬>이라는 작품이었다. 병환 중인 어머니에게 슈베르트의 가곡을 틀어드리면서 느꼈던 교감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관객들과도 느낌을 교류하려했다는 것 같다.
리밍웨이, 소닉 블로섬, 가운데 서 있는 분이 성악가
전시장 통로 같은 곳에 의자 하나와 나무 틀 같은 게 덩그라니 놓여있는데, 시간대 별로 진한자주색 가운을 입은 성악가가 나타나 직접 선택한 관객 한 사람을 의자에 앉히고 혼자만을 위한 노래를 들려준다. 남녀 성악가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는 듯...
슈베르트의 가곡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이날 처음 알았다. 뭔가 괜히 울컥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작가의 어머니가 아팠을 때 들려드렸다는 글귀를 보았기 때문만은 아닌듯...),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스피커로 흘러나온 아리아를 들은 죄수들이 잠시 느꼈을 자유의 희열이 뭔지 알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암튼 천장 높은 전시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저 성악가의 목소리가(앳된 얼굴로 보아 어쩐지 성악전공 학생 같다고 짐작했음) 참으로 좋아서, 다른 전시 보다가 노래소리 들리면 다시 달려가 옆에 서서 구경하곤 했다. 그치만 만약에 성악가가 나를 콕 집어 저 의자에 앉히겠다고 하면, 아마 난 얼굴 뜨겁고 민망해서 처음부터 거절하거나 제대로 음악을 감상할 수도 없을 것 같다. ^^;
암튼... 서울대 동문회 하냐는 뒷말을 들었다는 1, 2관 전시에서 시큰둥하고 애걔걔 싶었던 마음이 서도호 작품과 슈베르트 가곡 작품 딱 두 개로 무마되는 기분이었다.
리밍웨이는 이 <소닉 블로섬>(굳이 번역하자면, 소리 꽃, 음향 꽃라는 뜻인데, 또 다른 작품과의 연계성도 있고 하니 번역해서 제목을 달아주지 그랬나 싶었다. '블로섬' 정도는 누구나 아는 영어인가? -_-;;) 보다도 <움직이는 정원>이란 작품으로 더 언론이나 블로그계의 조명을 받은 것 같다. 별것도 없는 길다랗고 시커먼 콘크리트 틈새 같은 데 진짜 꽃을 꽂아놓고 관객들이 집어가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요는 그렇게 집어간 꽃을 본인이 갖는 게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 주면서 또 다시 교류와 소통을 하라는 거란다. 그런 경험을 sns 같은데다 남기는 게 조건이라던가.. (작품 설명 자세히 안 봤음 ㅋㅋ)
암튼 수시로 수백 송이씩 꽃을 꽃아놓아도 워낙 관객들이 많으니, 꽃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더러 봤어도 작품에 꽃이 꽂혀있는 장면은 한번도 보질 못했는데 부지런한 일행이 어느 틈엔가 한 송이 뽑아와 내게 바쳤다. ^^; 낯선 사람 아니면 뭐 어때.. 이러면서. ㅋㅋ
사실 남들 들고 다닐 땐 거베라 조화인가보다 했는데, 실제로 받고 보니 철사로 줄기를 튼튼하게 버텨놓은 생화였다. 줄기가 엄청 길어서 오래 들고다녔더니 자꾸 부러져 줄기는 점점 짧아지고, 부러진 줄기는 버릴 데도 없어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자니.... 어느 순간 꽃이 짐스러워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 사진을 기념으로 남기고는 주변 인물을 물색하다, 어쩐지 예뻐보이는 커플을 골라 아가씨한테 불쑥 건네주었다. 엄청 좋아하며 고맙다는 아가씨에게, 속으로 약간 미안하긴 했지만 뭐 작가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교류가 아니겠냐며 돌아섰다.
고대 화석 같기도 하고, 심해 생물체 같기도 한 이 작품은 최우람 작가의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 ^^;
중앙홀 천장에 매달려 있는데 저 갈비뼈 같은 돌기들이 아주 유연하게 움직이며 그림자도 달라져서 신기해하며 한참을 구경했다. 첨단 과학기계문명과 고고학적인 상상력의 만남이라나 뭐라나.. 그랬던 것 같다. 이 작품은 그래도 내년 11월까지 전시 예정.
'타시타 딘'이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제목도 안 적어와서 까먹어 모르겠다. 7명의 큐레이터가 7명의 작가를 선정했다던가 하던 <연결-전개> 전시 중 하나였는데, 깜깜한 전시실 저 끝에서 영상물이 계속 돌아가고 바닥에 길쭉한 방석 같은 걸 놓아 앉아 쉴 수 있게 해놓은 게 좋아서 꽤 오래 다리를 쉬었다. 그래서 일부러 내 발도 같이 찍었음. ㅋㅋ
그밖에 <알레프 프로젝트>라고 해서 도무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신개념이론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있었는데 전기고문이 바로 이런 거겠구나 싶게 계속 스파크가 터지는 깜깜한 방도 있고(나는 그 안에서 5분도 못 버티겠다 싶어서 그 전시실 담당 직원이 불쌍할 정도였다), 이상한 액체를 담아 특수섬유로 만들어 사람이 다가가면 촉수처럼 막 움직이는 거대한 샹들리에 같은 작품도 있었다.
새빨간 고딕체 글씨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듯한 장영혜중공업 프로젝트도 나로선 난해했고....
어우.. 난 역시 현대미술은 어려워서 잘 못보겠어, 라는 좌절감을 안겨주는 작품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
암튼 그래서 빙글빙글 전시실을 한바퀴 다 돌고 나선 체력 완전 방전. 씩씩한 일행들이 더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자꾸만 앉아 쉴 곳을 찾고 있었다. 전시장 안에 벤치를 마련해놓은 곳도 있는 건 반가웠지만, 서울박스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자리잡은 전시장 사이사이마다 쉴 곳이 있진 않았음. 날씨가 춥기도 했지만 그나마 지하 공간 안마당은 뭔가 공사중이라 출입금지.
그래도 날씨 따뜻해지면 나가서 쉴 수 있을 것 같아 사진 한방 박아왔음. 오른쪽은 어느 구석에 있던 아주 푹신한 소파. 전시장을 죄다 돌고 났을 즈음엔 다리허리가 너무 아파서 저 공간이 제일 마음에 든다며 오래도록 처박혀 일행을 기다렸다. ㅎㅎ
이날 가장 큰 불만사항은 카페테리아가 로비 밖에 있다는 것! 전시장은 입구와 출구도 달라 재입장이 안되기 때문에, 전시 보다가 카페인을 충전하고 다시 관람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아닌가! 아 젠장. 3시간 가까이 가열차게 전시를 구경한 나는 어차피 볼 만큼 봤으니 퇴장을 선언했으나, 뒤늦게 합류한 일행 하나가 전시를 절반도 못본 상황이라 여차하면 싸울 태세였는데 ^^; 직원이 융통성을 발휘하여 그럼 다녀오시라고 허락해주었다. 앞으로도 전시 보다가 카페 들락거리는 문제는 좀 개선이 되어야할 듯.
암튼 아직 초창기라 도서관도 디지털아카이브도 개장을 안했다는 것 같다. 따뜻한 봄쯤 되면 죄다 이용할 수 있으려나. 그런 기대를 안고 나왔음.
정명우, [움직이는 바닥에게] 2013/12/6
인사동으로 이동하려고 마당을 뒤쪽으로 가로지르려니 마침 아트선재 앞에선 행위예술이 준비중. 트럭에 온갖 기계와 장비를 올려놓고 퍼포먼스를 벌이는 <움직이는 바닥에게>란 작품. 춤도 출 거라면서, 시간 되면 구경하고 가라기에 서서 좀 구경했는데 ㅋㅋㅋ 춤이 아니라 수줍은 율동 수준. ^^; 마지막까지 참 현대 예술은 어렵구나야....
귀하는 올해 위암검사대상이니 꼭 검진을 받으라는 건강보험공단의 문자를 받은 게 벌써 몇번이던가. 요샌 개인적으로 검진을 받았으면 공단에 연락해 대상자 취소하라는 문자까지... 으음. 하지만 2년에 한번씩 공단에서 날아오는 건강검진 안내표대로 내가 찾아가 검진을 받아본 적은 한번도 없다.
공단의 건강검진을 계속 외면하다가 나중에 큰병에 걸리면 본인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공단부담 병원비의 비율을 확 깍는다는 괴담을 들은 터라 (근데 정말 믿을만한 소문일까?) 올해는 검진을 받긴 해야겠다고 생각은 아직 있는데 벌써 연말이 코앞이다. 젠장. 거금을 들여 대학병원에서 내가 전격적인 건강검진을 받아본 건 따져보니 2009년. 한 2, 3년 됐으려나 생각했지만 4년이나 지났다는 뜻이다. 그때의 결과는 나도 놀라울 만큼 건강한 편이었다. 나보다 체중도 적게 나가는 친구가 과다한 체지방량으로 '마른비만' 판정 받았다고 하길래 나도 그러려니 했지만, 검진 결과 체지방은 적당하되 근육이 모자라서 신체나이가 실제 나이를 한살 정도 넘겼었다. 그 밖엔 누구나 다 있다는, 치료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표재성 위염. 근육량 증가를 위해 체중을 2, 3킬로그램쯤 더 늘리라는 조언이 적혀 있어서 나름 뿌듯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선천적으로(가족력의 편견이 작용했을 거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니 고혈압을 조심하라는 건 좀 염려스러웠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검진 전전날 모임에서 잔뜩 먹은 삼겹살 구이때문이었던 걸로 자체 판단. 혈압이 좀 높은 것도 잠을 못자고 가서 그렇다고 자평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재보니 정상이던 걸 뭐;;) 공복에 먹은 것도 없이 소변 짜내는 것 때문에 또 스트레스는 좀 많이 받았느냐고!
하여간 위내시경한지 5년 되는 해는 내년이니까 올해 공단검진을 통해야 저렴하게 할 수 있지 싶었다. 내시경 도구가 깨끗한 것으로 이름난 2차 병원도 몇 군데 알아놓았는데 몸관리 좀 더 하고 근육량도 더 늘여서 가봐야지 하다가 어느덧 11월. ㅋㅋㅋ 참 못말리는 게으름이다. 어쨌거나 계속되는 지지부진 게으름병으로 마냥 늘어난 마감일 때문에 연일 스트레스는 만땅이고 잠자는 시간과 끼니까지 막 불규칙해지고 보니, 요샌 위가 쓰라리고 아픈 지경에 이르렀다. 위도 아프고 끝나지 않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는 심하고, 그러니 당연히 혈압도 막 올라가고... 최근들어 이상하게 혈압관리가 안되는 대비마마 때문에 나도 혈압계의 성능도 확인할 겸 수시로 혈압을 재보는데, 모녀 둘 다 아주 혈압이 가관이다.
그렇지만 까칠한 성깔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가끔 위가 부은 듯 쓰라린 느낌이 드는 건 오래 전부터 있던 증상이고 가끔 역류성 식도염도 있지 않나 고민했었는데 4년전 검진에서 말짱하게 나왔으니, 이번에도 잘먹고 잘자고 잘 쉬면 위도 다시 멀쩡해지리라는 걸 굳게 믿는다. 더불어 혈압도 정상으로 내려가겠지. 괜히 지금 건강검진 받으러가면 4년전보다 더 심한 고혈압 위험군으로 치부될 위험도 있으니 차일피일 건강한 몸 만들기 핑계 대다가 올해가 다 갈지도...
하여간에 오늘 새벽엔 유독 위가 많이 아파서 올해 가기 전에 내시경을 하긴 해야겠다 쪽으로 더 기우는 중. 아... 푹 자고 싶다. ㅠ.ㅠ.
고1때였다. 좀 이상한 구석이 많았던 담임은 아침 조회시간마다, 그리고 자기 과목인 영어시간마다 '책상을 장단 맞춰 두들기며' <진인사대천명>을 세번 외치게 했다. 한자 찾는 건 귀찮아서 안할란다. 어떤 성취를 이루려면, 인간이 먼저 할 일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맡기라는 뜻이다. 니들이 대학엘 가려면 일단 최선을 다해 공부한 다음에 나머진 운에 맡겨라, 는 취지였다. 매부리코 아래 동굴 같은 콧구멍에서 코털마저 숭숭 길게 빠져나온 담임이 어찌나 진저리나게 싫던지그해엔 영어성적이 바닥을 칠 정도였다. 영어 교과서도 싫었을 정도. 게다가 우스꽝스럽게 책상 두들기며 주문을 외우라니 으악.
반항의 의미로 책상은 내리치되 늘 입을 씰룩거렸지만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 뭘 얻으려면 천운만 기다려선 곤란하지, 본인이 노력을 해야지 말이야... 그러고는 어른이 되어 죽 인생을 살아오며, 나름 늘 주어진 상황 속에서 아등바등 노력하며 지냈다고 생각한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으면서.
그런데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은 대단한 성취란 본인의 노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게 아닌가 싶다. 모든 건 천운에 달렸다. 인간이 아무리 바둥거리며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고, 우주의 큰 흐름은 원래 정해진 대로, 가려던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새삼 운명론의 무게에 허덕허덕대는 중. 진인사대천명은 개뿔!
결과적으론 1년도 못 채우고 끝나고 만 알량한 안식년을 맞아 새로운 배움으로 시작한 궁궐 공부. 1월부터 석달간 교육받고, 현장 답사 다니고, 봄부터 뜨거운 여름까지 수습활동에 힘쓴 끝에 드디어 9월말에 모든 과정을 끝냈다. 중간에 관둘까 말까 고민도 되고 나가기 싫어서, 또는 바빠서 몇번 빠지기도 하면서 일단은 마무리를 짓기로 결심해놓고, 그게 옳은지 그른지도 계속 고민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버텨낼 수 있을지 그 또한 미지수다. 뭐랄까, 내가 그간 생각해온 나름의 취향과는 워낙 맞지 않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숫기도 없고 낯선 사람들이 단체로 한꺼번에 쳐다보면 움츠러드는 '주목공포증'도 있는 게 분명하고, 생활한복은 '도를 아십니까' 관련자들이나 입는 '도나기 복장'이거나 머슴/몸종 같아 보여 싫다고 부르짖던 내가...
어찌보면 이제는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생각에 종종 억울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모름지기 자원봉사란 여유있고 잘난 사람들이 벌이는 일종의 '허세놀음'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정식으로 2주에 한번씩 궁궐 안내를 시작했다. 문화재청 소속 해설사들은 1시간 안팎으로 깔끔하게 딱 끝내는 해설을 자원봉사자들은 친절하게도 1시간 반은 기본, 더 자세한 해설을 원하면 3시간까지도 정성을 들여 구석구석 안내를 한다. 각자 만든 안내 매뉴얼을 모조리 익혀서 관람객 수준에 따라 적절히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드넓은 궁궐을 쏘다니며 떠들어대려면 체력이 필수!
마지막 수습활동 이후 근 한달간 집에만 콕 박혀 있다가 엊그제 정식 활동을 시작한 날, 오전에는 그 무시무시하다는 중2 여학생들과 1시간 반, 오후에는 천방지축 초딩들을 데려온 열혈 학부모들과 2시간을 꼬박 돌아다녔더니 집에 와 장렬히 전사한 건 물론이고 일어나 보니 입술과 입안이 다 부르텄다. 또 한 번 이 뭔짓인고 싶어지는 순간. 게다가 초절정마감기간에 연일 밤샘까지 ㅠ.ㅠ
그런데도 우스운건 그런 부담스러운 상황 속에서 일말의 '보람' 같은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점이다. 배워도 배워도 도무지 끝이 없는 듯한 역사와 건축, 동양사상, 한옥 관련 지식들을 주워듣는 기회가 많기도 하지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졸졸 따라다니는 관람객들을 대하다 보면 왠지 궁궐과 한옥 애호가 동지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은 정말 귀엽다! 교생실습 나갔을 때도 편애할 수밖에 없는 예쁜 아이들이 있음을 깨달았지만, 궁궐에 현장학습을 나온 아이들 중에서도 하는 짓 예쁜 아이들은 척 보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따분하다는 듯 시큰둥하게 굴던 여중생들도 "얼른 그늘로 들어오세요, 여러분 피부는 소중하니까요!"라고 한 마디 해주면 빵 터져서 잘 따라온다. 귀여운 녀석들...
암튼 그래서 싫어하는 생활한복을 떨쳐입고 한달에 두번이나 내가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의미다. 으뜸 궁궐에 어울리게 이왕이면 화려한 한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선배 해설사샘들은 철철이 수십만원, 심지어 백만원도 넘는 멋진 한복을 장만하는 모양이지만, 고1 이후 한복을 입어볼 기회가 전혀 없던 나로선 그나마 비교적 저렴한 생활한복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내 기준으론 저렴하지도 않아! 다달이 회비 내고 활동하는 자원봉사를 위해 이미 의상비에 수십만원을 지출했다는 것이 나도 놀랍다. 그치만 내 눈에 전혀 안 예쁜 옷을 입을 순 없잖나... ㅠ.ㅠ 이러다 나중엔 나도 눈 뒤집혀서 막 수공예 전통 한복 맞춰입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ㅋㅋ
엊그제 안내 도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자경전 앞에서 열한살짜리가 던진 질문. "어? '십장생'이래! 그거 욕 아니에요?" +_+ 요즘 애들은 '시베리아'와 더불어 '십장생'도 욕이라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줄 알았나보다. 어휴... 십장생은 말이죠, 욕이 아니라 죽지 않고 아주 오래 사는 열 가지 자연과 생물을 말하는 거예요. 해, 달, 구름, 바위(산), 물, 거북, 학, 사슴.. 등등을 가리키지요. (나도 아직 다 못외었다 ㅋ) 어쩌면 배워야 할 게 무궁무진하고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아직은 이 난데없는 시도에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연휴 전 만난 후배가 고부갈등의 가능성을 피해갈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내 머리가 시원찮아 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진 않는데, 암튼 남아있는 기억으론 시어머니를 자기 남편 예뻐해주는 친절한 옆집 할머니라고 생각하면 그저 매사에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라는 거였다. 크핫, 하고 웃으며 대단한 묘안이라 칭찬해주고보니, 내게도 아주 유용한 발상의 전환이란 생각이 들었다. 맞다, 우리가 또 피붙이들에겐 뾰족한 말 턱턱 내지르고 짜증과 성질 막 부리면서도, 남들에겐, 특히나 이웃 노친네들에겐 좀 친절하고 관대하게 구는가 말이다.
물론 가끔 만나서 잔소리 듣는 시어머니와 24시간 붙어 살아야하는 노년의 엄마를 동급으로 취급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그런 태도를 취하는 한은 나 또한 버럭 화도 덜 내고 막말도 덜하고 짜증도 덜 부리지 않을까나. 수년동안 말짱했던 대비마마의 심신이 다시 불안해지면서, 난 왜 그리도 안쓰러운 마음보다 짜증이 더 치미는지 원.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라, 병이 그러는거라는 걸 머리론 아는데 입에선 이미 뾰족한 말이 튀어나가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노처녀 히스테리(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인데!) 아니면 갱년기 예비증상이 아닐까 하고 주변에서 염려를 할 지경이다.
째뜬 한번 시도해보자 싶으면서도 무딘 머리로는 생각전환이 잘 안돼서 계속 명절증후군과 후유증을 호되게 앓는 며느리에 빙의된 딸노릇을 며칠 내내 하다가는 어젯밤 드디어 '상냥한 이웃집 아줌마 코스프레'를 결심했다. 노파심에 잔소리는 좀 심해도 친절하고 마음 약한 이 이웃 할머니는 청력까지 나쁘시니, 같은 말 반복하는 거 싫어서 버럭 화를 내기보다는 측은지심을 더 발휘해야 할 때라고 굳게 결심한 거다.
그 결과 비오는 아침 출근시간과 맞물려 엄청 막히는 길을 뚫고 병원 모시고 가면서 오면서는 물론이고(고백하자면 주변 얌체 운전자들과 멍청한 주차장 직원들한테는 미친듯이 욕설을 퍼부었다;;) 저녁이 다 된 지금까지 아직 인상쓸 일은 없었다. 끈기없는 내가 얼마나 더 이 코스프레를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상냥한 이웃집 아줌마 빙의 상태에서 빠져나와 못된 딸년의 본색이 드러나면 얼른 심호흡을 한 뒤 세팅을 다시 하면 되겠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