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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1.02.28 선물 고민 12
  10. 2011.02.21 파랑이의 수난 26

어떻게 팔릴까

책보따리 2011. 5. 10. 18:32

꾸준히 책을 읽은 감상을 올리는 블로거와 달리 독후감 못쓰는 지병을 탓하며 가뭄에 콩나듯 독서 후기를 올리면서 한 가지 착각을 했던 것 같다. 파워 블로거도 아닌 주제에 마치 내가 후기를 올리면 조금이라도 책 판매에 도움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깊이 생각해볼 것도 없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같은 타령이다. 하루 접속 인원이 수백 명, 수천 명 되는 도서 전문 블로거라면 몰라도 행여나!

하여튼 출판계에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단군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푸념이 한해도 빠지지 않을 만큼 열악한 이 업계의 구조적 한계를 알고 있기에 나와는 별 상관없는 희소식에도 그저 반갑기만 하다. 나는 신간, 구간 따지지 않고 내키는 대로 책을 사기 때문에 나온지 몇년 지난 책을 처음 접할 때도 꽤 많은데, 그럴 때 찾아본 서지정보에서 5쇄, 10쇄 이상 발행됐다는 내용이 눈에 띄면 괜스레 기쁘다. 또한 베스트셀러를 일부러 기피하는 성향이 있으면서도 100만부를 넘겨 팔렸다는 책이 뉴스에 등장하면(물론 이제 100만부 넘겨 팔리는 책이 드물어 뉴스거리가 되고 만 현실이 서글픈 것과는 별개로) 역시나 아직도 책을 읽거나 사는 사람이 깡그리 사라지진 않았다는 생각에 슬몃 안심이 된다.

처음 번역에 발을 디디면서 깨달은, 출판기획은 도박이나 다름없다는 나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스캔들에 휩싸였던 전직 큐레이터의 자서전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리라고 짐작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의 판매 호조도 내겐 그저 놀랍다. 일단 탄성이 붙어 화제에 오르고 난 다음엔, 뇌화부동하는 군중들이(워낙 이 나라 사람들은 집단주의에 휩쓸리는 경향이 많다고 생각한다. 언론에도 꽤 오르내리고 주변인들이 좀 아는 체 하면 따라 읽는 심리;;) 너도너도 덩달아 사보는 분위기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가 궁금한 건 어쩌다가 탄성이 붙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과거엔 주요 일간지에 서평이 실리는 게 책 판매실적을 크게 좌우했다. 조중동 서평난에 실리면 기본 1만부는 거뜬히 넘긴다고 장담하던 때도 있었다. 내가 번역으로만 밥벌이하기가 힘들어 출판사 외서기획을 돕던 시절, 서로 친분이 두터운 소규모 출판사 사장님들은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그 주요 일간지 서평 담당 기자들을 불러다가 깍듯이 '접대'했다. 한번은 나도 그들과 얼굴을 익혀두는 것이 좋겠다며 인사동으로 불려나간 적이 있었다. 기쁨조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어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앉은 내 심사를 파악한 사장님은 어차피 저 사람들 2차로 보낼 데도 있으니 밥만 먹고 일어나라고 달랬다. 그날 따라 몸이 좋지 않아 2차까지 '수행'하지 못하게 된 사장님은 동석했던 다른 출판사 사장님에게 한껏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고는 준비해간 돈봉투를 은밀하게 기자들에게 하나씩 찔러주었다. 그 봉투에 얼마가 들었는지 나는 이미 경리직원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빳빳한 만원권 100장씩이었다. 늘상 있는 일인 듯 그걸 받아드는 기자들은 몹시 태연자약 여유로웠고, 나는 속으로만 부르르 치를 떨었다.

벌써 십수년 전 일이긴 하지만 그 당시 작고 이름없는 출판사의 경우는 그렇게 밥과 술과 돈과 여흥으로 서평 담당 기자를 접대해도 조만간 일간지에 서평이 실린다는 보장이 없었다. '나름' 괜찮은 책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대규모 출판사는 특별히 기자 접대를 하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서평이 실렸다. 자금력이 확보되어 있으니 대형 화제작을 언제든 터뜨릴 수 있지 않겠나. 출판계에도 통용되던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 내게 기획자 명함을 파주었던 그 출판사의 서평이 드디어 일간지에 실린 건, 직접 목도했던 돈동투 사건으로부터 1년이나 지나서였다. 로열티도 꽤 많이 주고 계약한 경제경영서를 출간했을 때였다. 일간지 서평 덕에 과연 그 책의 손익분기점을  넘겨 혜택을 보았는지 결과는 알지 못한다. 내가 곧 그 출판사 기획일을 때려치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작컨대 분명 '밑지는' 장사였을 것이다. 1, 2년 꼬박 기자들에게 그런 접대를 해야 했다면 들인 돈이 대체 얼마인가! 기가 막혀서... 

웃기는 건 서평 담당 기자들 가운데 실제로 책을 꼼꼼히 읽고 기사를 쓰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고, 출판사에서 자체 제작한 홍보자료를 순서만 약간 바꾸어 서평을 올려놓고는 그 기사의 저작권을 신문사에서 주장한다는 점이었다. 그 시절엔 나도 종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고 비상근이긴 해도 출판사에 나가보면 주요 일간지가 매일 수북하게 쌓여있었는데, 거기서 가끔 실제로 책을 읽고 쓴 게 틀림없는 서평을 발견하면 우와 놀라며 감동할 정도였다. 그때 만난 서평 담당 기자들에 대한 인상이 너무도 나빴던 나머지, 요즘도 인터넷으로 일간지 서평을 보게 되면 못내 궁금하다. 책을 직접 읽고 쓴 걸까, 홍보자료를 읽고 쓴 걸까? (화제작에 대해서 일간지 별로 대동소이한 서평이 올라오면 십중팔구 출판사 홍보자료라고 장담한다 ^^;) 아직도 서평 담당 문화부 기자들은 출판사의 깍듯한 접대를 받을까?

일간지 서평과 함께 당시엔 일간지 4, 5단 통광고나 전면광고가 '꽤 먹히던' 시절이었다. 물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전면광고, 통광고 좋아하다가 마케팅 비용에 들인 돈 만큼 책이 팔리지 않아 결국 부도를 내거나 크게 손해를 본 출판사들이 쎄고 쎘지만 말이다. 요샌 종이 신문을 본 적이 거의 없어 경향이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과거만큼 영향력이 없는데도 여전히 일간지에 4, 5단 통광고나 전면광고를 턱턱 내는 출판사들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설마 옛날보다 광고비가 싸졌을 리는 없는데 미약하기는 해도 여전히 효과가 있기 때문일까? 그 또한 궁금하다.

이제는 인터넷 서점의 엄청난 위용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의 힘이 날로 줄어들고는 있지만, 옛날엔 대형서점의 진열대도 책의 판매실적을 좌우했다. 그래서 영업사원들은 서점 직원들과 각별히 친하게 지내며 유리한 진열 위치를 선점하려 했고, 따로 돈을 내야 하는 특별 판매부스 코너도 종종 설치했다. 서점에 영업을 나가선 슬쩍 경쟁사의 책을 구석쪽으로 밀어두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과연 그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서점에 나가서도 베스트셀러는 눈으로만 구경할 뿐 괜히 못마땅해하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라며 수북하게 쌓여 있으면 선뜻 손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일부 출판사에서 책 사재기까지 해가며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려고 안달을 하는 게 아닐까.

출판계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과 달라진 현실 때문에 책 영업에도 고충이 많다. 요즘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입소문과 온라인 서점의 판매지수, 거기 올라간 독자 서평이라는 것 같다. 그래서 웬만한 출판사들은 책이 나오면 으레 온라인 북카페나 자체 출판사 회원 사이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 무료로 책을 나눠주고 자신의 블로그와 온라인 서점 게시판에 서평을 올리는 것이 조건인 것 같다. 그걸 알기에 나는 책이 출간된 후 후딱 올라온 온라인 서점의 후한 서평을 믿지 않는다. 출판사의 입김이 닿은 서평단의 글일 확률이 백프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닌 경우도 더러 있을 텐데 그들에겐 좀 미안타;;) 출판사에서 굳이 서평단을 모집하지 않더라도, 지은이 쪽에서 사람을 풀기도 하는 것 같다. 영어교사를 하고 있는 선배가 종종 교재를 출간하는데, 책이 나오면 어김없이 단체문자가 날아온다. 온라인 서점에 별 다섯개짜리 서평을 책임지고 두개씩 올리라고. -_-; 학교 제자들한테도 그러라고 시켰다는 후문이고, 나중에 선후배 모이는 자리에선 출석확인 하듯 서평 올렸나 안 올렸나 따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과연 인세 대박이 났는지 그건 또 잘 모르겠다. 최근 이삼 년 간은 조용한 걸 보면 인기 교재 집필자는 아닌 것 같다. ㅋㅋ

얼마전 신간 소설 읽고 올린 후기 때문에 출판사의 검색망에 딱 걸려든 적도 있었지만, 확실히 출판사에선 1인 미디어시대라는 요즘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 소셜미디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웬간한 출판사는 공식 사이트뿐만 아니라, 장르별 북팬카페를 운영하기도 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다 열어두고 어떻게든 독자들과 소통하려 한다. 또한 출간 기념회 같은 행사에도 주요 블로거와 북카페 회원들을 반드시 초청해 기념품과 책 선물을 안긴다. 어느 정도 위상이 높은 서평 전문 블로거나 북카페 회원의 경우 공짜로 책을 받았다고 해서 터무니 없이 호의적이기만 한 서평을 올릴 리는 없다고 믿는다. 애서가로서 자신의 신뢰도에 금이 가는 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판사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지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적절한 예일지 모르겠지만, 부정선거가 판을 치던 시절 울 엄마는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불려 다니며 공짜밥을 먹었다. 어쩔 때는 누가 내는 밥인지도 모르고 갔다가 나중에 집에 와서야 전화로 어느어느 후보가 낸 밥이라는 통보와 한 표 부탁한다는 인삿말을 듣기도 했다. 울 엄마는 밥은 얻어 먹되 안 찍어주면 그만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순진하게도 나중엔 양심이 있지 어떻게 그러느냐며 그놈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뒷구멍으로 돈을 쓴 놈은 나중에 당선되면 선거비용을 죄다 뽑으려고 부정부패를 일삼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내가 길길이 뛰며 화를 내도 소용없었다. 요새는 부정선거운동이 발각되면 당선무효가 되는 데도 여전히 뇌물성 선심을 쓰거나 밥을 내는 지자체 선거 후보자가 사라지지 않는 걸 봐도 사람들은 아직 뇌물에 약한 것 같다.

나 역시 애서가 이웃 블로거들의 리뷰를 보고 따라 읽으려고 책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짜로 받은 책이나 아는 사람의 책에 근거 없이 후한 평가를 내리는 분들이 아니다. 또한 책에 대한 내공이 깊어 팔랑귀에다 변덕 심한 나의 감상과는 평가수준도 다르다. 어차피 책 또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책을 많이 읽은 분들의 평가는 대체로 옳다. 그렇다면 나는? 독서량이 일천하여 비교대상이 현저히 적은 나로서는 그때그때 즉흥적인 감상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좀 괜찮다 싶으면 어떻게든 좀 더 '팔아줄' 방법이 없나 고심하게 된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리도 주제넘은 생각을 하는지 원. 그나마 위안은 이제껏 올린 후기치고 빌려본 책은 있을망정 출판사나 지은이, 번역자에게 홍보용으로 받아 읽은 책은 없다는 것 정도다. 

독서 후기 자체의 충실함보다 이런저런 책의 판매에 먼저 관심을 쏟는 나의 태도는 어쩌면 인세 대박을 향한 흑심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물론 번역료의 인세/매절 계약 여부를 내 쪽에서 정하는 건 아니고 출판사의 원칙을 따르는 것 뿐이다. 별로 안 팔릴 것이 너무도 뻔한 책을 인세로 계약할 땐 속으로 꿈을 꾼다. 아는 언니가 <체게바라 평전>을 인세로 낼 때만 해도 그렇게 많이 팔릴 줄 상상도 안했다잖아 결과는 모르는 거야, 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괜한 동병상련이랄까, 지은이든 번역가든 약간이라도 괜찮은 책은 인세로도 혜택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다. 하지만 출판은 도박이라, 어떻게 팔리는지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요지경이다. 수천만원을 들여 일간지 전면광고를 낸 만큼 수익을 뽑으려면 책을 최소한 수만부는 팔아야 할 텐데, 온라인 서점 반값 할인으로 수익구조는 나날이 열악해지는 가운데 일간지 전면광고, 버스 광고를 계속해서 해대는 출판사가 나는 더 신기하다. 베스트셀러 내고 광고 빵빵 쳐대다가 망하는 출판사를 그간 하도 많이 봤어야지. 

사실 책이 어떻게 팔릴지는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닌데 책으로 밥벌이를 할 운명을 선택하고 보니 신경이 쓰이는 것뿐이다. 언젠가 쓴 포스팅에 당신이 읽는 책 한권이 이 나라의 출판계와 라니의 밥줄을 지킵니다, 라고 눙쳤던 게 생각난다. 어디까지나 목표대로 예순 살까지 번역으로 먹고 살기 위한 안간힘이라고 생각하면 한편 눈물겹다. 누군가 책이 어떻게 팔릴지 걱정하지 말고, 마감일이나 잘 지켜 일감이나 짤리지 말라고 충고할 것만 같다. 암, 그래야 하고 말고.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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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오후, 거실쪽 TV에선 어김없이 동요가 들려온다. <누가누가 잘하나>를 하는 시간이다. 채널 충성도가 대쪽같은 영자씨가 꼭 놓치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 몇 가지 있는데 <누가누가 잘하나>는 그 가운데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41년생인 영자씨의 어린시절 소원이 <누가누가 잘하나>에 뽑혀 나가 상을 타는 것이었다고 하니 프로그램의 역사가 정말 오래 됐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반 친구가 이 프로그램에 나가서 예선을 통과해 TV에 나왔던 적도 있다. 비록 상은 타지 못했지만 그 친구는 한동안 교내 스타였다. 영자씨는 본인이 못 이룬 소망을 자식들이 이루어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지만 우리 삼남매는 일단 노래실력을 제쳐두고라도 그런 데 나설 만큼 숫기 있는 아이들이 못됐다. 합창할 때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처지에 감히 독창이라니. 어린시절 TV에서 <누가누가 잘하나>가 방영되면 영자씨는 니들도 저기 나가면 좋을텐데, 라고 몇번 아쉬워 했지만 자식들의 깜냥을 알고 쉽사리 포기했다. 그저 동요를 따라부르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듯했고, 지금도 못말리는 동요 사랑은 여전하다. 

영자씨는 장래 희망이 한때 성우였을 만큼 목소리도 고운 편이다. 음치는 아니라서 옛날 동요는 거의 모르는 것이 없이 다 알고 불러줄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심한 박치다. TV를 보며 동요를 따라 불러도 늘 혼자 뒤쳐지면서 숨차다고 막 짜증을 낸다. 본인도, 자식들도 <누가누가 잘하나>에 못나간 한이 어찌나 깊은지 영자씨는 손자들한테도 잠시 희망을 품었었다. 문제는 손녀손자들이 아주 잠깐 동요를 즐겨부르다 이내 가요로 관심이 넘어가는 바람에 <누가누가 잘하나> 같은 프로그램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금요일 오후가 되면 손녀딸한테 전화를 걸어 <누가누가 잘하나> 하니까 니들도 좀 보라고 종용하곤 했는데,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는 <누가누가 잘하나>에 어린이만 출연하는 게 아니라 아무나 다 나온다. 동요를 좋아하는 애어른이 연합으로 가족 팀을 이루어 나오기도 하고, 할머니나 대학생이 혼자 나와 동요를 부르기도 한다. 평생 염원을 품었던 영자씨는 옳다구나 싶었던지, 언젠가 "우리도 노래 하나 연습해서 저기 나가면 저 사람들보다 잘하지 않을까..."라고 말을 흘렸다. 당연히 나는 펄펄 뛰었다. 창피하게 온 가족이 TV엘 나가서 노래를 부르자고요??? +_+ 동요야 요즘 아이들에게도 길이길이 전해야할 문화유산(?)이라고 나도 동감한다. 동요보다 유행가를 더 잘 부르는 요즘 아이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지만 동요 부르기 운동을 위해 직접 나설만큼은 아니다. 게다가 영자씨의 노래솜씨는 결단코 '대회'에 나갈 만한 수준이 아니시라고요! 가족 중창단으로 밀어붙인다고 해도 우린 도무지 구성원이 안나온다. 대학시절 노래 깨나 한다고 껄렁댔던 동생들은 둘 다 혼자 질러대는 스타일이지 결코 조화로운 합창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아니고, 올케들도 음치를 면한 정도일 뿐 대회 재목은 아니다. 집안 내력 따라 숫기 없는 조카들은 또 어떻고!

그러고 보면 영자씨는 동요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몇년 전까지는 구청에서 하는 노래교실도 꽤 오래 쫓아다녔다. 아무리 노래교실을 다니며 새 노래를 익히고 연습해도 그놈의 고질적인 박자 틀리기는 변함없었지만서도.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열린음악회> 같은 다른 노래 프로그램도 열심히 보는 편이지만, 영자씨가 노래를 따라부르기까지 하는 열정을 드러내는 건 어디까지나 <누가누가 잘하나> 하나 뿐이다. 그러니 내가 보기에 결론은 하나다. 중간에 TV에서 사라졌다 다시 시작된 <누가누가 잘하나>가 앞으로도 계속 방영되어 영자씨의 동요 열망을 일부나마 풀어주는 수밖에 없다. 다음엔 이왕이면 영자씨가 제일 좋아하는 동요 '오빠 생각'을 누가 나와서 불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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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하나마나 푸념 2011. 4. 14. 16:06

가뜩이나 시끄럽게 온 사회가 떠들어대는 문제에 흥분한 입 하나 더 얹는 거 별로 좋은 일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계속 신경이 쓰이니 몇자 적어두는 것으로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유명 한복 디자이너가 신라호텔 뷔페식당에서 한복을 입어 '드레스코드'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절당했다. 폭 넓은 한복이 거추장스러워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란다.(도무지 말이 안된다. 외할머니 산수연을 그 호텔 영빈관에서 했을 때, 당연히 음식은 뷔페식이었고 한복입고 참여한 친지들은 수십 명에 달했다. 한복입고 밥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다했어도 사고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실화니까 믿어도 좋다). 신라호텔 측은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사장이 직접 그 한복 디자이너를 찾아 사과했지만(이 소식을 나는 어제 밥먹다 뉴스에서 보았다) 논란은 계속되는 모양이다. 한복 디자이너의 인터뷰 영상까지 나오는 뉴스를 보며 나는 문득 카이스트 논란을 떠올렸다. 이 나라엔 자살공화국의 오명이 붙은지 오래고 살인적인 등록금 문제와 취업난에 이중으로 시달린 대학생들은 해마다 이미 수백명씩 목숨을 끊어왔음에도 이토록 대학생 자살과 등록금이 사회적 이슈가 된 건 역시 단기간에 되풀이된 비극적인 자살의 장본인이 카이스트 대학생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물론 우수한 과학 인재를 국가적으로 지원 양성하겠다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설립된 카이스트의 징벌적 차별 등록금제는 사라져야 마땅하고, 학계에도 가차없이 적용되는 신자유주의식 무한경쟁은 타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명 국립대라서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문제가 사회적인 논란과 비판과 대안을 촉구하는 계기가 된 건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신라호텔 뷔페에서 한복 입었다고 쫓겨난 사람이 힘없고 이름없는 어느 개인이 아니라 청담동에 번듯한 한복숍을 소유하고 있는 유명 디자이너라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만약에 내가 한복입은 울 엄마를 모시고 그 식당을 찾았다가 쫓겨났더라면 똑같이 트위터와 블로그에 불만을 토로했더라도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삼성가의 3세 사장이 찾아와 직접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을 테고.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원인 1위가 암이라는 건 온갖 민영 건강보험 광고에서 귀에 못이박히도록 떠들어대지만, 그건 연령대를 통합했을 때의 일이다. 10대와 2, 30대의 경우엔 압도적인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이는 통계상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라해도, 작년 한해에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리나라 '대학생'이 3백명에 가깝다는 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일년 내내 거의 하루에 한명꼴로 젊은이들이 희망이 없어 생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닌가. 도무지 희망이 없어서 안타까운 생각을 하는 건 이 나라 10대도 마찬가지다. 성적을 비관해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는 중고생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뉴스에서 흘러나와도, 사람들은 다들 치러내는 그깟 부담감과 경쟁을 못 이겨낸 패배자로 치부하고 금세 잊는 분위기다. 기껏해야 만연된 우울증을 잠시 조명하면 다행이고.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데 많은이들이 공감하는데도 해마다 수백명씩 죽어나가는 이들의 자살이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무명의 힘없는 개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제도를 변경하기는 해도 절대 물러나지는 않겠다고 버티는 카이스트 총장은 외국 명문대에도 학과 부담을 못 이겨 자살하는 학생들이 많다고(더 많다고 했던가? 까먹었다) 항변했다. 얼추 맞는 말이다. 먼 옛날 나의 대학 친구 하나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유는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이런저런 추측만 나돌았을 뿐이었다. 찾아보면 대학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살한 학생들을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처럼 그 동기가 '살인적인 등록금', "무한경쟁 스펙 쌓기',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취업난'으로 명확하게 밝혀진 적은 없었다.

신라호텔 한복 사건과 카이스트 논란이 내게 공통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언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변화의 움직임을 촉발하려면 다수의 무명인들보다는 소수의 유명인이 앞장서 행동하는 게 빠르다는 너무도 뻔한 진실 때문이다. 특급호텔이 저마다 매출저조를 이유로 한식당을 없애버렸다는 사실은 이미 몇년전에도 지적됐던 점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수십억의 예산을 영부인한테 쏟아부으며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선답시고 떠들어내는 판국이다. 특급호텔이 한식의 세계화를 외면하는 건 이명박 정부로선 당연히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식으로 시장논리에 따라 없애겠다는데 어떻게 말리겠나. 하지만 이번 한복사건과 더불어 한복에 대한 이 사회의 전반적인 홀대 문제는 특급호텔 업계의 한식 외면 문제에까지 불똥이 튄듯하다. 카이스트 대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키라고 정부에 촉구하는 전국적인 움직임으로 확산된 것과 마찬가지다. 해마다 등록금 투쟁 때문에 언론 앞에서 삭발하는 총학생회장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최근 학내 집회와 수업거부, 거리 시위에 그토록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걸 본 적은 정말 드문 것 같다. 신자유주의식 경쟁논리에 물들어 자기 스펙 쌓기에만 바빴던 학생들도 드디어 무명의 힘이 뭉치면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한 것일까. 과연 그들은 정말로 죽음으로 항변할 만큼 힘든 현실을 뒤집어놓을 때까지 뚝심있게 버텨줄까 자못 기대된다.

아무튼 이름 높은 한복연구가 덕분에 앞으로 신라호텔 뷔페식당에서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무명인들은 결코 없을 것이다. 참 다행이다. 학비 부담 없이 마음껏 과학을 연구해볼 욕심에 카이스트 입학을 꿈꿨을 텐데 징벌적 등록금제 때문에 크나큰 부담을 느꼈을 상당수 학생들이 학점을 비관해 자살하는 일은 앞으로 줄어들 것이다. 더불어 말도 안되는 전과목 영어강의 같은 제도도 바뀔 모양이니 정말 다행스럽다. 영문학 박사 따느라 유학생활만 10년 하고 돌아온 교수 친구도 영어강의 전날은 수업준비 때문에 술도 안마신다. 우리말 수업 때는 유머와 농담으로 재미있는 강의를 한다고 점수가 높지만 영어강의 때는 통 재미가 없다고 학생들도 아우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물며 영어전공 강의도 그런데, 어렵기 짝이 없을 심도 깊은 과학논리를 영어로 강의하고 수업듣는 교수와 학생들은 얼마나 죽을 맛이었을까. 이참에 모든 대학의 영어강박증도 좀 사라져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러려면 또 어느 유명인의 놀라운 에피소드가 필요할까? 역시 이름값이 가진 권력 때문에 사람들이 다 성공하고 유명해지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라는 걸 또 한번 깨닫기는 했지만, 이젠 좀 무명인들의 힘없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는데 행여나... 그 날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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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

하나마나 푸념 2011. 3. 24. 02:35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세상을 떠났단다. '여배우'라는 말과 함께 내 의식과 무의식에 동시에 자리잡고 있었을 두 사람이 바로 오드리 햅번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였는데, 이제 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어리고 깜찍한 모습으로 <녹원의 천사>, <작은 아씨들>에 나온 리즈 테일러를 보면서 어린 나는 세상에 저렇게도 예쁜 사람이 다 있군, 하며 놀라워 했다. 인형처럼 생겼다는 말의 의미가 뭔지도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리즈 테일러가 나온 여러 영화를 봤지만,  고등학생 때까지 우상이었던 제임스 딘과 함께 나온 <자이언트>에서의 모습이 내겐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다. 타블로이드판 신문에서 늘 욕 먹고 씹히던 남성편력도 내겐 멋졌다. 남자만 여러 번 결혼하란 법 있나. 게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마다할 남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고혹적인 입술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나라도 혼이 쏙 빠져나갈 것 같던데. 다만 오드리 햅번처럼 외형적으로도 자연스레 아름답게 늙어가지 못한 게 안타깝긴 해도 온갖 지병과 싸우며 끊임없이 사회에 기여한 노력은 똑같이 우러러보인다. 대중과 미디어가 아무리 제 멋대로 소모해버리려고 파고들어도 당당히 버텨냈으니 이젠 고이 잠들어 편히 쉰다고 생각하면 될텐데, 왠지 기분이 착잡하다. 

리즈 테일러의 부고가 아니어도 온종일 잡념이 많아 별로 일을 하지 못했다. 학력위조 파문과 정치권 특혜 의혹으로 언론을 홀딱 뒤집어놓았던 장본인이 이번에는 또 책으로 세상을 들쑤시고 있다. 당시엔 나도 한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력위조 문제가 이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주의가 낳은 폐해라 생각했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 질겅질겅 씹어대듯 한 여자를 매도하는 분위기가 못마땅했다. 도무지 실체가 잡히진 않지만 누구나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연예계 성상납 비리와 마찬가지로, 줄줄이 엮인 굴비처럼 오르내리던 수많은 정치권 인사의 개입은 진실 여부를 떠나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남성 중심의, 상품으로서의 여성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도 그 여자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는데, 요번에 대대적인 출판기념회를 열어 선정적인 회고록을 내놓은 걸 보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책을 냈을까? 하기야 요즘은 굳이 자비출판을 하지 않더라도 책 내는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느 쪽에서 기획을 하든 일말의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나무에게 부끄럽든 말든, 일단 책의 형태로 출간된 책은 세상에 나올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는 출판계의 속설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자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 어처구니 없고 힘빠지는 소식은 그런 황당한 자서전이 벌써 나온지 하루만에 2만부가 팔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나는 출간기념회도 그렇고 책 속에 언급되었다는 정치인의 이름도 그렇고, 그 여자가 들고 나왔다는 명품 가방이 더 큰 이슈가 되는 찌라시 언론에 그저 코웃음만 치고 있었는데, 이 나라 출판시장이 겨우 그 꼴이라니 맥이 탁 빠졌다. 노이즈 마케팅이든 아니든 자서전을 낸 그 사람으로서나 출판사 입장에선 두손 들고 환영할 일일 것이다. 이 엄청난 불황에 초판을 5만부 씩이나 찍어서 1, 2주 만에 2쇄 인쇄에 돌입하는 책이 어디 흔한가.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백만부 이상 팔리는 초베스트셀러를 일년에 서너 권씩 냈던 어느 대형 출판사도 작년에는 10만부 이상 팔린 책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게 요즘 현실이다. 최근 1, 2년 새 초베스트셀러 경향을 보면, 인기 작가 몇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연예인이나 아이돌의 팬덤에 편승해 낸 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연예계와 가요계 뿐만 아니라 출판계 마저도 연예인과 아이돌이 접수하는 거 아니냐고 씁쓸해 하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거라던데, 정말 출판시장에서 이제 팔리는 책은 떠들썩한 유명세를 업어야만 나올 수 있다는 뜻일까?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번역을 하든 글줄만으로 밥벌이를 제대로 하는 게 그리 쉽지 않고,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출판계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남은 한 가지 잡념은 가끔 주제도 모르고 펄럭대는 내 오지랖에 대한 자책이다. 주변에서 간혹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지인들이 있으면 펄펄 뛰며 말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막연하게 아련한 희망을 심어주지도 않는 편이다. 그저 혹독한 현실을 일러주고 스스로 가능성을 점쳐보도록 이끄는 것밖엔 해줄 수가 없는 걸 어쩌랴. 그리고 책이란 게 백이면 백 모든 사람에게 다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문장 역시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친구의 문장력과 외국어 이해력을 속속들이 알 방법 또한 없다. 그러니 나로선 얇디 얇은 연줄을 대어줄 순 있으되 그 이상의 생존은 어디까지나 본인에게 달렸다. 실제로 지난 십수년간 우연한 기회로 몇몇 지인들을 '추천'해본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어느 출판사든 초짜 번역가를 선뜻 쓰려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책의 검토나 시험번역의 기회를 어렵사리 주선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연줄'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서로 운대가 맞아야지 소심의 극치인 내가 먼저 불쑥 누군가를 소개해주겠다고 나섰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돌이켜보면 양쪽에서 만족하는 결과가 나온 적이 별로 없다. 시험번역을 통과했던 친구 하나는 결국 자기 이름으로 번역서를 한권 내기는 했지만, 자기는 죽어도 번역으로 못 먹고 살겠다며 떨어져나갔다. 현재는 학원 원장님이신데, 나더러도 만날 그 골빠지는 일 때려치우고 고액과외나 하라고 권유한다. 친구 하나는 안타깝게도 시험번역 단계를 통과하지 못했다. 수년에 걸쳐 서로 재고 테스트하고 망설이는 과정을 거쳐 동료 번역가 대열에 접어든 친구가 둘 있는데, 하나는 출산 후 육아에 전념하다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하려니 아무데도 찾아주는 데가 없다고 괴로워하는 중이다. 얼마 전 다행히도 검토 일을 하나 연결해줬건만, 작품 분석력이 떨어져 안되겠다는 출판사 지인의 귀띔을 들었다. ㅠ.ㅠ 다른 친구 하나는 세번째 책이 요번에 나올 예정인데, 마침  잘 아는 후배가 그 책의 외주 편집을 맡았다. 뜻밖에도 문장력도 없고 원고의 첫장부터 오역 투성이라면서 온통 새빨갛게 된 교정지를 후배가 내게 보여주었다. 그 친구에게 일을 맡긴 최종 결정은 출판사가 했음에도, 내 얼굴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물론 친구에겐 여태껏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앞으로 절대로 사람을 추천하지 않기로 홀로 결심만 세웠다. 그러면서 총체적으로 또 다시 시작된 고민. 과연 나는 이 일을 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잡념인데 잘 떨쳐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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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은 참 토론을 못한다. 지금은 아예 볼 생각도 안하지만, 손석희 교수가 진행을 하던 시절의 <100분 토론>을 보아도 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주장을 바락바락 우겨댈 뿐인 패널들을 보는 게 지치고 짜증스러워 중간에 채널을 돌리기 일쑤였다. 다른 토론 프로그램도 마찬가지고, 토론이라고 할 수도 없는 국회 청문회는 아예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다. 과거 청문회에서 '스타'로 떠오른 정치인을 다분히 의식한 국회의원들이 조목조목 논리로 검증하는 건 못배우고 대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호통치는 것만 따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보면 온 국민이 토론에 익숙하지 않고 토론을 못하는 게 당연하다. 평생 주입식 교육만 받아온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앞뒤 맥락에 맞는 언어와 주장으로 토론에 끼어든단 말인가. 대학에서도 대부분이 강의식 교육만 받는 실정이니까. 그러다 보니 소수 세미나 수업으로 진행된다는 대학원 수업도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수업마다 발제자가 있어 발제문을 줄줄 읽고 나면 몇몇 도드라지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상투적인 질문이, 또는 너무 뻔한 질문이 이어지고 그나마 성의 있는 교수의 경우 다양한 논쟁거리를 제시하고 주제를 아우르는 정도다. 페미니즘 분석의 경우 간혹 재미있는 말들이 오가는 경우가 있기는 했으나, 상대의 논리적 오류를 짚어내는 토론으로 무언가 서로를 설득하고 합의점을 도출하기보다는 그저 놀라운 생각의 차이를 확인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되는 때가 많았다. 세미나식 수업의 목표는 발제자가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다퉈 입증해야 한다는 것인데, 별로 새로울 것도 없이 기존 연구자들의 논문과 주장을 이리저리 참고해 이른 대학원생 수준의 결론엔 딱히 이의를 제기할 것도 사실 없다. 괜히 누군가 뭣 하나 물고 늘어져 수업이 길어지면 오히려 눈총만 받을 뿐.

마이클 샌델 본인도 의아해했다는 한국인들의 '정의' 열풍에 힘입은 덕분인지 EBS에서는 하버드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라는 <정의란 무엇인가> 수업 동영상을 벌써 몇번째 방영하고 있다. 빠짐없이 전회를 다 본 건 아니지만 연말엔가 처음 채널을 돌리다 프로그램을 알게 된 이후, 부러 시간을 기다려 일부러 찾아본 강의 수업에서 나는 강의 내용은 일단 제쳐두고 교수가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학생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에 따라 논리를 펼치고, 각자 생각에 따라 학생들이 편을 나누어 논리를 지원하고 보태다가 다시 강의 주제로 돌아와 다양한 정치철학을 제시하는 토론식 수업법이 너무도 매력적이고 경이로웠다.

공리주의 입장에서 개인의 기본권은 얼마나 침해되어도 좋은지, 완전한 자유주의가 공동체의 이익과는 어떻게 상충되는지를 주로 살펴보는 강의 내용은 사실 새로울 건 없는 것 같다(라고 주장하며 책은 안읽을 생각이다. 역시 나는 문자 매체보다 영상매체를 선호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음. ㅠ.ㅠ). 그런데 다양한 인종적 민족적 배경을 안고 모인 수많은 학생들이 본인의 입장에서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거침없이 일어나 주장하고, 교수는 또 그런 주장에 대한 반박 의견을 이끌어내고 모든 학생들의 주장을 일일이 기억했다가(학생들의 이름까지!) 강의주제와 연결해 결론을 내리거나 철학적인 논리를 설명하는 외적인 강의 모양새가 참 감탄스럽다. 

내게 놀라운 건 자칫하면 바보 되기 십상인 편협한 주장을 펼치는 학생들도 매우 당당하고 나름 논리적 근거가 탄탄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교수가 이끄는 반대토론을 거쳐 학생들 스스로 논리의 허점을 발견하게 하는 과정이다. 게다가 조단조단 또박또박 설명하는 마이클 샌델의 목소리와 말투는 또 얼마나 정갈한 느낌인지. 하버드대학이나 서울대의 엘리트주의가 나라를 망친다는 사람들의 주장에 공감하기는 하지만, 강의 동영상을 보며 불쑥 나도 저런 명강의 한 번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더불어 손석희 교수의 강의도 문득 궁금하다). 물론 나는 토론되는 사안에 대한 내 주장이 어느 쪽인지 자신이 없어서 (실제로 강의 동영상 보며 어느 쪽이 옳고 정의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 주제들이 꽤 있었다) 절대로 손들고 나서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일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간혹 전해듣는 현실속 학교 현장은 여전히 한심스럽다. 중학생이 된 조카는 요즘 이른바 교사들의 '군기잡기' 분위기에 퍽 괴로운 모양이다. 자유로운 초등학교 분위기에 익숙한 아이들이 뭔가 부당하다고 느껴 이의를 제기하면 선생님이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식으로 반응한단다. 나도 겪어본 일이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처음이라 주도권 잡으려고 더욱 그럴 거라고.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일방적인 소통은 억울할 수밖에 없고, 부당한 건 부당한 거다. 하물며 그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이성적인 토론의 자질이 어떻게 싹틀 수 있겠나. 

예를 들어, 체육복 문제. 산꼭대기 학교의 특성상 대운동장은 건물 바로 앞이 아니라서 산너머 언덕을 한참 내려가야 한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엔 절대로 옷을 갈아입고 운동장까지 시간 내에 갈 수 없다. 체육시간 전에 미리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있어야 한다. 체육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교실로 돌아와 다음 수업 이전에 교복으로 갈아입을 시간 역시 없다. 그런데 체육시간 바로 직전이나 직후에 배정된 일부 과목 교사는 애들이 '모양빠지게' 체육복을 입고 자기 수업을 듣는 걸 못견딘다. 다음 수업이 체육이든 아니든,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충분하든 말든, 자기 수업시간엔 모두 교복을 단정히 입고 있으라는 주장이다. 아 왜??? 물론 체육교사는 이전 과목 선생의 취향이 어떠하든 자기 수업시간에 늦는 학생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체육 수업에 많이 늦었다간 벌로 언덕배기 중간에 있는 감나무까지 선착순 뛰기를 몇번이나 해야할지 모른다. 딜레마다.

30여년 전에도 교사간의 알력은 우리를 괴롭게 했다. 설마 중학교 신입생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가 아닌 다음에야, 왜 아직도 그러고들 앉았는지! 물론 체육복을 입고 있어도 이해해주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원칙이 뭔가 더욱 헷갈린 거다. 과거에 우리는 그나마 만만한 체육선생에게 부탁했다. 체육복 미리 입지 말라고 강요하는 선생을 설득해달라고. 결과는? 둘이 교권을 두고 으르렁거리며 싸웠을 뿐이다. -_-; 조카에겐 별 수 없이 과거 우리의 비법을 전수할 수밖에 없었다. 체육복 바지만 미리 갈아입고 위엔 교복을 입은 채 다른 수업을 받으라고. (그런데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교복 웃도리에 체육복 바지만 입고 있는 건 정말 더욱 모양빠지는 일이다! 흉측하기 이를데 없는! 게다가 그 꼴로 화장실이라도 갈 때 학생부 교사에게 걸리면 '복장불량'이란 지적을 받는다. 체육복이면 체육복, 교복이면 교복을 입으라고. 대체 어쩌라는 거냐!) 그러고서 한편으로는 반장을 보내든지 해서 선생과 다시 협상을 시도해보라고 권했다. 교실에서 단체로 아이들의 왁왁대며 불평을 쏟아내는 건 교권에 대한 발칙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교사들이 좀 많은가. 은밀히 교무실로 찾아가 '간절히' 부탁하면 권위를 세울 수 있으니 혹 들어주려나... 물론 과거처럼 괜히 교사들끼리 싸움만 붙이는 수도 있겠지만. ㅎㅎ

아직도 윽박지르고 일방적인 주장을 강요하면 씨알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느 분야에든 많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기주장이 강한 요즘 아이들은 그 방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어린 조카들도 합당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는 의견을 관철시키기가 쉽지 않던데 교육학도 배운 사람들이 왜들 그러실까. 답답하다. 하기야 그러니까 너도나도 팍팍한 이 나라 교육현실을 외면하고 조기유학을 보내거나 이민을 떠나는 것이겠지. 그리고 대대로 토론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고 나면 모든 주요 협상 테이블에서 늘 불리할 수밖에 없을 테고. 

조카의 고민을 듣고 돌아온 탓인지 리모컨질 하다 걸린 EBS 정의 재방송을 또 한번 구경하며 입맛을 다셨다. 우리나라 애들도 저렇게 멋지게 토론하는 어른으로 커야 하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텐데 그저 시스템과 어른들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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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추억주머니 2011. 3. 11. 23:12

이번에 중학생이 된 조카가 배정된 학교는 공교롭게도 나의 모교다. 무려 30년도 더 차이나는 동문이 된 셈이다. 아무리 같은 학교라도 30년이 더 흘렀으니 내가 아는 선생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 놀라워라. 내가 중3때 막 대학을 졸업하고 솜털인지 수염인지 보송보송한 얼굴로 부임했던 한문 선생이 요번 조카네 담임이란다. 담임들 이름도 얼굴도 다 까먹은 내가 이름까지 기억할 정도면 몹시 치 떨리게 싫어했거나 퍽 괜찮게 생각했거나 둘 중 하나인데, 다행히도 후자쪽이다. 어눌하고 착하고 순박한데다 어리바리 부임 첫 해라 중3인 우리들에겐 간혹 '밥'이 되기는 했지만, 한문을 정말로 유려한 필체로 잘 썼고 서예반 담당이라 미술반에서 힘 쓸 일이 있을 땐 자주 일꾼으로 불려다녔다. 환경미화나 채점 도우미 같은 일로 늦게 집에 가게 됐을 때 하굣길에 만나면 혼자 집에 가서 밥해먹기 싫다면서 우리들과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 김밥, 우동 같은 걸 사주기도 했다. 출석부로 머리통을 찍는 선생이 없나, 대걸레 자루로 엉덩이를 퍽퍽 때리는 선생이 없나, 조각분필 담아놓은 플라스틱 통으로 뒤통수를 쳐 깨뜨리는 선생이 없나, 여학생에게도 살벌한 체벌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선생도 기다란 나무 막대를 꼭 가지고 다니긴 했지만(그 학교 교사들 사이에선 일종의 패션이었을까?), 그건 어디까지나 칠판 가리키기 용이었을뿐 체벌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미친개, 똥싼바지, 변태, 복부인, 입걸레, 싸롱화, 손버릇 따위의 부정적인 별명이 대세인 학교에서 그 선생의 별명은 상당히 우호적이고 귀여운 구석마저 있는 '도날드덕'이 되었다. 단지 입술이 좀 투툼하고 튀어나왔다는 이유로. (조카가 대번에 지네 담임 별명 뭐였냐고 묻기에 안 가르쳐줬다. 저절로 알게 되면 모를까.. 30여년 전 별명으로 아직도 불리는 거 싫을지도 모르잖아;;) 애들이 막 장난치고 떠들어도 그냥 담임이 허허 웃는다는 조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별로 안 변하신 것 같기는 한데, 진실이야 알 수 없어도 어쨌든 다행이다 싶다.   

재단이 부유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거느리고 있는 그 사립학교는 원래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에선 언감생심 절대 배정되는 일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졸업하던 해 처음으로 우리 동네 아이들을 꽤 많이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몇몇 선생들이 가끔가다 한 마디씩 학생들 들으라고 가시돋친 소리를 해댔다. 출신학교 성분이 과거와 달라져서 학교 '질'이 떨어졌다나. 가뜩이나 산꼭대기에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 학교에 정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건 되먹지 않은 일부 선생들 때문이었다. 인근 구와 달리 아무래도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OOO구' 출신 아이들이 많아져 자기네 '부수입'이 줄어드는 걸 안타까워했으리라는 건 나중에야 알 수 있었지만, 당시에도 선생들 가운데 누구누구가 돈봉투를 특히 밝히는지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들은 성적과 상관없이 같은 재단의 사립 국민학교 출신들을 드러나게 예뻐하는 분위기였다. 사립 국민학교 학비를 댈 정도면 퍽 부유한 집안이니 '당연히' 때마다 상당 금액의 촌지 봉투를 상납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고등학교까지 그 재단 학교로 진학하고 말았는데, 거긴 더 심했다. 그 학교 고3 담임을 연이어 3년만 하면 집 한채를 거뜬히 살 수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들으니, 사업가 아버지를 뒀던 친구 하나는 고3때 담임(나도 같은 반이었다 -_-;;)이 진학조언을 핑계로 한달에 한번씩 집으로 찾아와 '정기수금'을 했다고 고백하며 치를 떨었다. 내가 졸업 후 완전히 학교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도, 교생실습을 모교로 정해 나가는 애들을 보며 '미친 거 아닌가' 생각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비록 그런 학교지만 더러 의롭고 '착한' 선생들이 없지는 않았다.(학교 축제 때 액자 값도 안 낸 나의 그림을 걸어준 미술반 선생도 그 가운데 한 분이다 ^^;) 주로 부임한지 얼마 안되는 풋풋한 신참 선생들이었다. 스승의날 두당 정해진 돈을 내서 담임에게 고가의 전기밥솥을 선물했는데(선물 품목도 학급 서기를 통해 넌지시 지시된 사항이었다) 색깔과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다시 바꾸러 다니게 만들었던 닳고 닳은 아줌마 선생이 있는가 하면(자기가 바꾸지! 지금 생각해도 화난다;), 꽃과 편지만 받고 선물은(스카프였던가 그랬다;;) 굳이 돌려주며 나무라던(너희들이 돈이 어디 있다고 이런 비싼 걸 사느냐고)  해맑은 풋내기 담임 선생도 있었다. 세속에 찌들지 않은 그런 선생들을 반기긴 했지만, 이미 시니컬해진 우리는 그들도 지금 젊어서 그렇지 몇년 더 지나면 탐욕스러운 다른 선생들이랑 똑같아질지 모른다고 씁쓸해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총각선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사춘기 여학생 특유의 무대포 감수성으로 짝사랑을 불태우는 아이들은 없었다. 의도적으로 성적을 올려보겠다고 선생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영악한 학생은 있었을망정.  

모교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어서 통 모르고 살다가, 악연 때문인지 학교와의 고리를 끊지 못해 지금까지도 끌려다니는 친구의 말을 듣자니 탐욕스럽기로 유명했던 선생들은 하던 가락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벌써 오래 전에 정년퇴직을 한 사람도 있고, 정년 이전에 관두고 음식점 같은 걸 차린 선생도 있는데 불쌍한 그 친구는 개업식에 화분을 보낸 것도 모자라서 간간이 그 집에서 모이는 퇴물 남녀 선생들 모임(역시나 유유상종이다)에 불려나가 음식값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30년전 제자를 여전히 봉으로나 여기는 선생들이라니 에잇! 전화번호를 확 바꾸고 다시는 이용당하지 말라는 나의 충고에, 친구는 하필 퇴물 선생 하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공교롭게 동네 마트에서 만났을 때 예의상 장본 비용을 한번 내줬더니만, 그 담에 만났을 땐 잘 나가는 제자(친구는 전업주부라고!!!) 덕을 수십년째 본다고 마트 점원에게 마구 자랑하면서 또 내달라는 식으로 뻔뻔함을 보이더란다. 아니 왜?!?! 게다가 만나는 동창들 있으면 다음번 모임에 어디 한번 데려와보라고도 하더라나. 정말로 애정을 쏟으며 사제지간을 다진 것도 아니고, 순전히 촌지로 얽힌 악연을 그들은 왜 계속 누리려고 하는지 원! 나는 거의 게거품을 물다시피 흥분하며 욕을 하다가, 앞으로 또 그런 속물퇴물들한테 연락오면 시댁이든 친정이든 우환이 생겨 지방에 내려갔다고 거짓말 하라고 시켰다. -_-"
 
교수에 대한 나의 인상이 나쁘듯, 안타깝게도 교사에 대한 나의 인상도 그리 좋지 않다. 간혹 정말로 아이들의 인성교육과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전해듣기는 하지만, 내가 겪어보고 주변에서 전해들은 교사의 모습은 교육자가 아니라 그냥 월급쟁이 조직원에 가깝다. 전반적인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 교사가 무능하다고 무시하고, 선생들은 선생들대로 학생들이 걸핏하면 교육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협박이나 한다며 교권이 땅에 떨어졌느니, 말세니 운운한다. 나도 한때 잠깐 교사가 천직이 아닐까 상상한 적이 있지만, 역시 그 길을 안 가길 잘했다 싶다.

내가 교생실습을 나갔던 모 중학교엔 마침 엄마와 이래저래 아는 분이 영어과 주임 선생님이었다. 교생실습을 하던 당시에 그 사실을 알았던 건 아니라서, 실습 점수에 부당한 이득을 누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실습이 끝나고 나서 세상 참 좁다며 웃어 넘긴지 몇달 후, 나에겐 그분과 엄마를 통해 모종의 교직 협상안이 들어왔다. 교생실습을 나간 그 학교에 영어교사 충원 계획이 있는데, 이미 서로 안면도 있고 시범수업도 해보았고 하니 '천만원'의 기부금을 내면 나를 곧장 취직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형편에 상당히 큰 돈이었는데도 엄마는 그분의 설득에 약간 넘어가서 (빚을 내서라도 일단 취직을 하고 나면 평생 '우량 직업'이 생기는 거고, 그 정도 돈은 금세 만회할 수 있다고 했다나;) 아버지까지 포섭할 기세였다. 그러나 당시가 어느 때인가, '압제와 굴종'을 깨치고 나아가 투쟁해야 한다고 노상 나라와 대학가가 들썩이고 있었다. 불의와 타협하면 큰일나는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말로만 듣던 교직비리라며 당장 고발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물론 엄마의 지인의 안위까지 걸린 사안이라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내가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한 뒤에도 엄마는 교직에 대한 미련을 오래도록 버리지 못했다. 졸업한 다음해였던가, 걸핏하면 철야에 야근에 시달리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엄마는 심지어 나와 상의도 하지 않고 덜컥 임용고사 시험에 접수를 해놓고 아무 준비도 없이 내게 "혹시 아니? 한번 시험이나 봐  봐라."고 종용했다. 서울/경기 지역에 영어교사를 세 명인가 뽑는 그 시험에 내가 합격할 리는 만무했지만 말이다. ^^; 암튼 그 이후 직장을 옮겨다니면서 간혹 나도 가지않은 길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교직비리에 응해 그때 천만원을 내고 영어교사 자리를 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하긴 했다. 설마 그 천만원을 단기간에 벌어들이느라고 부임 첫해부터 부잣집 애들 학부모 면담하며 노골적으로 촌지를 달라고 하진 않았겠지? 라고 킥킥거리면서.

살기 좋은 나라인지 아닌지 선진국인지 아닌지는 국민소득이 아니라 사회의 투명성과 아이들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우하는 시스템을 보면 된다고 했다. 겉으로는 학교 체벌도 사라지고 촌지도 불법이고 교직비리도 없는 사회가 된 것 같지만, 주변의 학부형들을 보면 알게 모르게 여전히 백화점 상품권을 스리살짝 담임교사에게 건네고 티 안나게 집으로 택배선물을 부친다. 작년 배추파동 때는 몇몇 엄마들이 아예 담임선생의 김장김치까지 책임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 자기 자식을 잘 보이기 위한 극성 엄마들의 몸부림 같아서 씁쓸하지만, 30년 전에도 촌지 수금하러 다녔던 선생이 존재했듯 지금도 여전히 백화점 상품권 수십장 들고 다니며 바리바리 쇼핑하는 '일부' 교사 목격담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더러 오가는 걸 보면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어디나 썩은 구석은 있다지만, 그런 몰상식한 교사들이 존재하는 한 학교 현장에서 피해를 보는 학생들이 존재하리라는 것은 뻔한 사실이고, 학부모 교육열은 어디에 내놔도 최고라는 이 나라 교육의 현실은 확실히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이제 궁금한 건 딱 하나다. 30년 넘게 한 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쳐온, 젊은 시절 청렴하고 곧아 보였던 조카네 담임 선생님의 현재 성품은 어떠할까. 사람은 좀체 안변한다는 게 진실이듯, 사람은 세월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라는 사실도 진실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한낱 인간이 30년간 어떻게 안 변하겠나. 너덜너덜해져서 버릴까말까 하다가 못 버리고 그냥 서랍장에 들어있던 중학교 졸업앨범을 새삼 꺼내 '도날드 덕'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한번 확인하며 간절히 빌었다. 휙휙 갈겨쓰듯 칠판에 적어도 멋드러졌던 선생의 한문 필체가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듯이, 착했던 선생님의 인품은 안변했기를. 그리고 이젠 최고참 교사에 속할 그분의 조용조용한 카리스마로 촌지 밝히던 속물 선생들이 끼리끼리 목청 높이던 학교 분위기는 확 바꾸어 놓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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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한번씩 이 무슨 난리인지... 갑작스런 간병 무수리 생활 사흘째다. 이젠 마음 놓고 투덜댈 수 있는 상황이니 천만다행이지만, 그렇다고 걸핏하면 반복되는 이런 상황에 대한 짜증이 줄어들진 않는다. 인체의 신비인지, 인간의 한계인지, 현대의학의 무능인지 좀체 알 수 없는 질병 상황 앞에서 난 또 닥터 하우스를 그리워하고 있다.

수요일 밤부터 왕비마마의 상태가 심상칠 않아서 응급실엘 가야하나 고민하다 담날이 정기외래 진료라 주치의와 의논후에 결정하기로 했다. 자꾸 앞으로 쏟아질 것처럼 걷고 간간이 판단력도 떨어져 헛소리까지 하는 걸 보더니 의사는 전격 입원을 권했다. 혹시 뇌졸중이라면 빨리 머리 MRI를 찍는게 좋겠다면서...

허나 의욕 충만한 정신과 주치의의 생각과 달리 MRI는 갑작스런 입원절차를 다 거치고도 한밤중에나 겨우 찍을수 있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 응급실로 들어갔어야 하는 거였다. 정신과 환자들은 생명을 다투는 증상이 아니니 순서에서 뒤로 밀린다는 걸 교수된지 얼마 안되는 주치의는 몰랐겠지. ㅡ.ㅡ; 어쨌거나 머리 사진에선 뇌졸중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도한 수면, 균형감각 상실, 보행 어려움, 간간이 섬망증, 이명, 판단력상실 등의 증상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과연 뭘까. 가능한 요인은 수십가지나 된다고 말하며 병실담당 레지던트는 내 속을 뒤집었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다고!! 혈액과 소변 검사 결과로 신장이나 간 기능 이상으로 인한 전해질 균형 문제의 가능성도 사라졌다. MRI 결과 이상없으면 바로 퇴원하라던 주치의 교수는 퇴근해버리고 결국 왕비마마는 일흔한번째 생신을 병실에서 맞았다. 미역국이고 주말 파티 계획이고 다 물 건너 간 거다.

병원체질이신 왕비마마는 무수리 속이 새카맣게 타든지말든지 잘 자고 잘 먹고(병원밥 싹싹 다 비우는 노인환자 정말 드물다 ㅋㅋ) 하루하루 정신이 맑아지더니 어제부턴 걸음걸이도 제대로 돌아와 부축해 드리지않아도 될 정도다.

은근히 알츠하이머의 가능성도 타진하던 눈치더니 간단한 몇가지 검사 이후 그 말도 쑥 들어갔다. 나머지 유력한 가능성은 수많은 약들 사이에 생긴 충돌현상이라는 것 같다. 약을 하나씩 줄이고 빼며 지켜보자는 얘기. 아 맞다. 심전도에도 약간 이상소견이 있어서 심장초음파도 할 예정이다. 주말이 끼어서 빨라야 내일...

그러는 사이 우린 마냥 멍하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병실생활의 절반은 막막한 기다림이고 절반은 킬링타임이다. 링거하나 안꽂은 이른바 '나이롱 환자'는 시방 TV 시청중이시고, 마감인생 무수리는 홀로전전긍긍 하고있다. 금요일에 온 원고독촉 전화에 사정 이야기하며 얼굴이 뜨거웠다. 그쪽에선 아마 거짓말이라 생각할지도... ㅡㅡ; 장기전이면 간병인을 부르겠지만 며칠 안걸릴 것 같으니 그럴수도 없다. 닥터 하우스도 절실하지만 내겐 손오공 변신술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나를 하나 더 복제해놓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이럴 때마다 한숨 나오는 비혼의 늙은 고명딸 노릇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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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이 되는 걸 두려워했던, 아니 두려움까지는 아니더라도 괴로워했던 이들이 주변에 꽤 된다. 배우는 쪽이든 가르치는 쪽이든 학교와 새학기는 기피의 대상이 아닐까. 봄 방학을 끝으로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 그런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뿌듯한 축배를 들어야할 것 같다.

이른바 보따리 장수를 하고 있는 지인 하나는 지난 방학동안 생병을 앓다가 개강을 앞둔 며칠 전까지 감기몸살이 낫지 않아 큰 걱정이었다. 사단은 새학기 교양영어 강의에서 이유 없이 떨려났던 일이었다. 연말까지만 해도 강의일정 조정안에 대한 연락을 주고받았던 대학에서 1월이 다 지나도록 강의 계획서 내라는 통보가 없더란다. 15년째 그 대학에서 교양영어를 맡아온 지인은 순진하게 학사일정이 늦어지는 줄로만 알았단다. 헌데 그게 아니라,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은 영어과 교수가 아무런 이유 없이 강사들 여덟 명을 그야말로 단칼에 잘라버렸더란다. 나의 지인은 자기가 나이도 많고 박사학위 미소지자라서 짤렸나보다 했더니, 박사학위도 소지한 젊은 여자 강사도, 박사학위 소지한 적당한 경력의 남자 강사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납득할 만한 이유나 원칙도 없는 독단적인 인사행정이었던 셈이다.

일언반구 언질도 없이 그런 만행을 저지른 교수는 그렇게 지시해놓고 방학동안 가족이 있는 호주로 날아가버렸다나. 분노한 나의 지인은 결국 구구절절 설득하는 메일에 이어(읽지도 않더란다) 강경한 메일을 계속해서 그 담당교수에게 보냈고, 메일이 계속 씹히자 담당 조교를 통해 대신 연락을 취해 거의 협박에 가까운--인권위원회와 교과부에 청원함은 물론 학교앞 일인시위도  불사하겠다고--내용을 통보하는 '단독투쟁' 끝에 교무과장의 개입으로 잘렸던 강사들 모두 늦게나마 한 과목씩 강의를 재배당 받을 수 있었단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마무리가 되자 덜컥 병이 났던 것인데, 심성 약하고 소녀같기만 하던 그 지인이 그런 싸움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내가 못믿어하자 재미삼아 보라며 증거 메일까지 보내주었다. 

이번 학기야 그럭저럭 다시 강의를 맡기는 했지만, 담당 교수와 정면대결을 했던 자신은 15년 역사를 뒤로 하고 다음학기엔 그 대학을 떠나야할 것 같다고 말하는 지인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대학 강사의 자살소식이 들려오는 이유가 딴 게 아니라고. 그리고 하루이틀 겪은 건 아니지만 잘난 전임교수라는 사람들이 더러 부리는 포악이 상상 이상이라고. 그 인간과 학교에서 마주칠 생각을 하면 오금이 저리다고.

제자를 폭행하고 온갖 권력형 교내 비리를 저지른 유명 국립대 교수가 최근 파면되는 사건도 있었지만, 대단히 존경받는 직업으로 생각되는 교수는 사실 내가 보기에 그리 멋진 인간상과 거리가 멀다. 내가 좋아해마지않는 선생님이 자조적으로 원래 교수란 '사회성 부족하고 어딘가 좀 이상하고 외골수인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좀 이상한' 성품 부분이 종종 이기심이나 독단으로 발현되는 교수들을 꽤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 유형에서 벗어나는 교수들은 또 지나치게 정치적이라 그 조직내에서도 최고자리로의 승진을 꿈꾸거나 최대한 약자들에게 권력을 휘두르거나, 아예 폴리페서가 되어 정계로 진출하는 식이다.

실제로 겪어본 은사님들 가운데 유능하고 존경스러운 교수 유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익히 소문으로 듣고 눈으로 보아온 교수들은 절반 이상 부패하고 무능하고 이기적인 군상이었다. 교수 임용때부터 실력보다는 인맥 학맥 동원해 '룸살롱 접대'로 점수를 따는 인간이 없나, 각종 연구비는 그냥 일종의 공짜 보너스로 여기며 논문 한편 가지고 이리저리 제목만 바꿔 돌려 싣기를 하질 않나, 산학협동이라도 해서 대형 프로젝트라도 진행할라치면 제자들 종 부리듯 주무르며 사리사욕을 채우질 않나. 도제식 수업이 이루어지는 예술대학 뿐만 아니라 막대한 연구비가 오가는 공대나 이과대 쪽에서도 교수 비리는 늘 있어왔고, 진로나 눈앞의 이익(매달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연구비나 공연, 수상 기회 따위) 때문에 제자들은 함부로 교수에게 대들 입장이 아니었다.

소문으로 듣자니 어느 교수는 자신의 부친상에 대학원생들을 '조'별로 짜서 장례식장 도우미로 보내달라고 당당하게 과사무실에 요구했단다. 지도교수의 부친상에 문상을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제자 입장에서 막상 문상을 가고보니 일손이 모자라는 것 같아 자진해서 도울 마음이 생길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절대 그런 생각 안하겠지만!) 그러나 노동 분담제도 아니고, 몇시간씩 육개장 쟁반을 나르며 학생들이 노동을 제공하는 걸 당연시하는 교수의 구태가 놀랍다. 하기야 그러니까 문제의 그 음대교수도 팔순 노모의 산수연에 아무 거리낌 없이 제자들을 대거 동원해 합동 공연을 했겠지. 아니, 본인이 굳이 학생들을 동원하지 않았더라도 학생들이 먼저 눈치로 알아차리고 축하공연을 하겠다고 자청했을지도 모르겠다. 안 그랬다간 나중에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르니까.

아직도 진심으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을 훌륭한 교사/교수가 많다고 믿고 싶지만,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면서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교권은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같다. 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평가해서 분류하는 행정기관으로 점점 자리잡고 있고, 대학마저도 하는 짓거리를 보면 그냥 고수익사업이지 '배움의 전당' 느낌은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교사도 교수도 '스승'이 아니라 그저 한낱 조직원으로서 학생들에게 또는 상대적 약자인 강사들에게 군림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닐까. 

수년간 보따리 장수를 전전하다 어렵사리 전임자리를 꿰차고 드디어 '교수님' 칭호를 듣게 된 친구 하나는 암암리에 학연지연으로 나뉜 교수패거리들 속에서 현명하게 운신하는 것이 너무도 어렵고, 강의평가제로 학생들 눈치도 봐야하니 교수직이 철밥그릇이라는 얘기는 다 옛말이라고 불평한다. 열심히 수업준비해서 깊이 있는 강의를 이어가면 대번에 어렵다고, 취직해야하는데 학점 짜게 준다고 싫어한다나. 이곳저곳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머리 나쁜 나로서는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대서 개선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그런 부패한 조직에 연루되어 개강을 두려워하는 상황이 아니란 것만을 기뻐하기엔 찜찜하다. 그래도 길은 그것밖에 없다며 교수를 꿈꾸는 수많은 친구들, 후배들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뭔가 크게 바뀌긴 바뀌어야 할 텐데 말이다.

하여튼 날씨도 쌀쌀한데 개학과 개강을 맞은 가엾은 모든 이들 씩씩하게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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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고민

투덜일기 2011. 2. 28. 16:51

1900분짜리 전화카드를 샀다는 친구랑 요 며칠 계속 통화를 했다. 친구의 언니가 부탁한 화장품 때문이다. 미 서부지역엔 웬만한 한국 제품이 다 들어가있는 것 같아 보여도, 세부품목이 거의 기함할 정도(손바닥 두개로 가려지는 얼굴에 발라야 한다고 사람들이 '주장'하는 화장품은 왜 그리 많은 건지! 나는 다 무시하는 쪽이다 ㅋㅋ)인 화장품은 아직 온갖 브랜드가 다 수출되진 않나 보다. 더구나 요즘엔 피부과 병원이랑 연계해서 만드는 기능성 화장품도 좀 많은가. 암튼 친구 언니와 딸들이 한국 사이트에 들어와 수많은 사용후기를 읽어본 뒤 골랐다는 *앤* 화장품을 사보내는 건 내겐 일도 아니다. 친구는 예전부터 로션도 잘 안바르고 다니는 사람이고, 그 언니들도 화장을 열심히 하는 이들은 아닌데 작은언니는 유독 피부에 신경을 쓴다. 원래 미인은 다 그런듯.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작은언니의 교복입은 모습이 워낙 아름다워, 하도 남학생들이 쫓아다닌 탓에 친구 어머니(몹시 보수적이신 분;)께서 이를 갈았던 역사는 나까지 알고 있을 정도.

암튼 종종 작은언니가 고르는 화장품을 사보낼 때면 나는 또 고민에 빠진다. 친구 말로는 자기는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다지만 그래도 뭔가 또 덩달아 같이 보내야 내 마음이 뿌듯하지 않은가. 근데 진짜 사보낼 품목이 마땅하지가 않다. 일과 집, 잠밖에 모르는 친구라서 특별히 기호품도 없고... 오죽하면 지난번 작은언니 화장품 보낼 때는 아줌마스럽게 그냥 멸치(볶음용 및 국물용)와 오징어, 쥐포를 보냈다. 가끔 내가 친구한테 다니러 갔을 때에도, 친구 역시 한국에 왔다가 돌아갈 때에도 멸치와 오징어, 쥐포는 빠지지 않는 쇼핑 품목이었다. ㅠ.ㅠ 2년전엔가 친구가 남편과 함께 다녀갈 때엔 그 세  품목에다 맥심 커피믹스까지 바리바리 사서 아예 이민가방 하나를 꾸렸었다. 물론 LA 한인마트에도 다 파는 물건이지만 여기 거랑은 맛이 다르다는데 어쩌랴.

노상 보는 친구의 선물도 역사가 길어지면 품목과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고민스러운 마당에 태평양까지 건너가려면 정말이지 난감하다. 좀 민망해도 제일 만만한 건어물은 무게가 많이 나가서 물건 값이나 부치는 비용이나 비등비등해서 좀 억울하긴 하다. 그래도 친구와 그 가족들이 제일 반기는 선물인 것 같아서 요번에도 염두에 두고는 있지만, 그거 말고 또 뭔가 참신한 선물을 보내면 좋겠는데 아무리 머리를 짜도 생각이 안난다. 작은언니가 오매불망 물건을 기다리고 있으니 화장품 배송되어 오는대로 나 역시 우체국으로 직행해야할텐데 뭘 사야하나. 친구가 이민간 초기엔 책도 많이 보냈는데, LA 인근 한인서점에 가면 웬만한 책은 다 있다. 초창기에 내가 번역한 책을 그곳 서점에서 발견하면 친구가 감격해하며 전화도 할 정도였지만, 요즘 새로 나온 책 증정본이 와도 우리 가족이 시큰둥한 것처럼 친구와 언니들 역시 이젠 **이 책 또 나왔네 하며 그냥 지나친단다. ^^; 미국에서 살며 굳이 번역서를 읽을 이유는 없잖은가.

최근 왕래가 뜸해지긴 했어도 친구 역시 한국 나올 때마다 선물 때문에 고민이란다. 한국에 수입 안되는 물건이 어디 있어야 말이지. 그래도 내가 커피를 좋아하니까 십수년년 전까지는 코스코에서 대용량으로 산 인스턴트 봉지커피를 사 나르다, 그 담엔 원두커피를 대형 깡통으로 안겨주었었는데 와서 커피를 먹어보더니 여기 커피 원두가 더 맛있다고 인정한 뒤엔 주로 육포로 승부를 걸었다. 그러나 또 광우병 광풍이 부는 바람에...  그 뒤로 서로 짬을 내지 못한 수년 사이, 몇번은 아주 실용적으로 서로의 계좌에 마음에 드는 선물 사라고 송금을 하기도 했으나, 하면서도 찝찝한 느낌이라 친구와 합의 하에 관두고 말았다. 미국에 살며 볼펜도 한국 걸로 사서 쓰는 친구에겐(디자인이 예쁘단다) 현금보다는 역시 여기 물건을 보내야 제대로 선물했다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만우절인 친구 생일도 머지 않았다. 화장품 보내면서 이참에 미리 챙겨야 마음이 편하겠는데 과연 뭐가 좋을까나. 그다지 무겁지도 부피가 크지도 않으면서 유용하고 뿌듯한 선물 뭐 없을까? -_-; 예쁜 메모지와 필기도구는 부록이니 제외하고, 목걸이는 지난번에 해봤으니 건너뛰고, 친구에게도 기능성 화장품을 보낼까? 그렇다면 어떤 종류로? 화장품에 대해서 나 잘 모르는데... 으으으. 이러다 또 멸치랑 오징어 냄새 안나게 비닐과 랩으로 꽁꽁 싸고 앉았는 내가 그려지는 것 같다. 뭐 없을까????? 이웃 여러분의 뾰족한 아이디어 대환영합니다.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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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의 수난

투덜일기 2011. 2. 21. 02:54
파랑이네 가족이 파랑이만 남겨두고서 9박10일간 여행을 떠났다. 그럴 때마다 파랑이를 기꺼이 도맡아주는 사람은 유명한 애견인이신 나의 막내고모인데, 주말까지 녀석을 맡을 사정이 되지 않아 일요일 오후부터나 파랑이를 맡아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은 옵션은 두 가지. 그나마 얼굴을 익혀 친해진 우리집에서 파랑이를 이틀 데리고 있다가 고모네 집에 데려다주는 것. 그게 아니면 파랑이가 겁을 내든 말든 동물병원에 이틀 맡겼다가 역시나 고모네 집으로 데려가는 것. 두 경우 모두 파랑이 픽업은 나의 몫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금요일에 나는 외출할 약속이 있었고 밤열두시에나 들어올 예정이었다. 혹 파랑이를 우리집에 둔다면 처음이라 사방에 영역표시 하느라고 질질 싸댈 똥오줌을 왕비마마가 치우셔야 한다는 얘긴데, 나의 개혐오증은 돌연변이가 아니라 물려받은 것이므로 그런 일을 왕비마마가 해봤을 리도 없고 잘 해내실 리도 없었다. 물론 나 역시 그런 개수발엔 영 자신이 없었다. 다만 파랑이가 낯선 동물병원에서 이틀밤을 보내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심난해할지 그건 좀 걱정스러웠지만, 나 역시 동물병원엘 맡기는 게 최선이라는 데 동의했다. 어차피 병걸린 강아지들은 입원도 시키잖아, 라고 위로하면서. 물론 애견인인 막내고모는 절대로 동물병원에 보내지 말라고, 병에 걸려올지도 모르고 파랑이가 '트라우마'를 겪게 될 거라며 결사반대하는 쪽이었다. 나도 왕비마마도 마음이 약해져 그럼 그냥 죽이되든 밥이 되든, 아니 개판이 되든말든 집에 파랑이를 데려다놓을까 마음이 흔들려, "그럼 그냥 이틀만 우리가 한번 데리고 있어 볼게..."라고 '자신없이' 말했다. -_-;
 
그런 태도에 선뜻 파랑이를 맡길 순 없었을 거라는 거 나도 인정한다. 그래서 결국 파랑이는 난생 처음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암튼 새 주인과 산 이후 처음으로 동물병원에서 이틀밤(개주인이 토요일 아침에 출국했으니 하룻밤일 수도 있음)을 보내게 됐다. 그리고 드디어 일요일 오후, 죄책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파랑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인 사과를 한 조각 잘라 은박지에 싸들고 동물병원을 찾았다. 솔직히 동물병원에 들어가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옛날 대한극장으로 영화 보러 다닐 때 밖에서 보이는 애견가게 우리 안에 든 강아지들처럼 파랑이도 그런 요람 같은 데 들어있을 줄 알았더니 나의 착각이었다. -_-;

병원 2층으로 올라가니 얼핏 보기엔 닭장 같기도 하고 개들의 독방 감옥 같기도 한 케이지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데 그 안에 강아지들이 한마리씩 갇혀 있었다. 예방접종의 차이나 질병의 가능성 때문에라도 당연히 한마리씩 격리수용(?)하는 것이 원칙일 것 같기는 했다. 어쨌거나 좀 크기가 넉넉한 독방 마다 이름표를 매달고 있는 첫번째 방에는 파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문을 하나 열고 들어간 또 다른 방엔 아 글쎄 이름표가 안 달려 있지 않은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안면인식장애로 여러 번 본 사람 얼굴도 잘 몰라보는데 다 똑같이 생긴 말티즈 중에서 파랑이를 어떻게 알아본담! 나는 담당 직원이 당연히 적어둔 파일 같은 걸 찾아보고 개를 인계할 줄 알았더니만, 나더러 찾으란다. ㅠ.ㅠ

다행스럽게도 당황한 내가 방안을 훑어보다가 하얀 개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파랑이 같아 보였다. 내가 파랑아~! 하고 부르니까 녀석도 철창을 마구 긁어댔고, 직원은 얼른 녀석을 꺼내 나에게 안겼다. 헌데 내 품에 안긴 파랑이가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놀러갈 때마다 친한 척 했던 건 다 거짓이었는지, 계속 불안하게 발발 떨면서 품을 벗어나려고 하질 않나 네 다리를 버둥거리며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병원 직원은 애가 좋아서 그러는 거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낯설음과 불안감의 표현일 뿐이었다. 주인님들은 어디가고 대체 이사람은 뭔가? 날 또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가?

그때까지만 해도 얘가 정말 파랑이가 맞는지 나 역시 불안했다. 엉뚱한 개를 데려가서 두 집에 혼란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 상상하게 된 거다. 어쨌거나 녀석이 하도 불안해 하니 얼른 차로 데려와서 잘라간 사과를 먹여주었다. 아그작아그작 사각거리는 사과를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녀석이 파랑이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파랑이네 식구들도 파랑이가 사과 먹을 때 제일 예뻐할 정도로, 아삭거리는 사과를 씹는 자태가 귀엽기 때문이다. 

사과로 조금 친해지긴 했지만 막내고모 댁까지 가는 40여분간, 파랑이는 계속해서 극도로 불안해하며 조수석에서 덜덜 떨었고 운전하는 내 팔을 자꾸만 툭툭치며 쓰다듬어달라고 요구했다. 나를 낯선 사람으로 인식하긴 하지만 일말의 믿음은 있는 모양이었다. 사흘전만 해도 깨끗하게 목욕해서 뽀얀 자태를 자랑하던 녀석이었건만, 케이지에 갇혀서 오줌을 사방에 지렸는지 꼬리와 배, 다리엔 누런 오줌이 묻어 말라뭍어 냄새도 퀴퀴했고 케이지 안이 더러웠는지 전체적으로 꼬질꼬질했다. 내가 그런 더러운  녀석한테 한 팔을 아예 내주고 왼손으로만 운전을 하다니... 역사에 남을 일이었지만, 녀석에 대한 미안함이 더러움에 대한 거부감을 이겼다.

고모댁에 도착할 무렵엔 내 가방을 둥지삼아 드디어 떨기를 멈추고 엎드려 안정세에 점어든 파랑이는, 원래도 자주 가본 곳이고 워낙 자기를 예뻐하는 사람인 막내고모를 만나 집안으로 들어가자 드디어 제 세상을 만난듯 뛰어다녔다. 제 침대와 쿠션, 담요까지 모조리 옮겨다 주었으니 안심할 만도 했다. 그래도 불안한지 오후면 노상 꾸벅꾸벅 졸거나 코를 골며 자던 녀석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엔 내가 벗어놓은 옷위에 달랑 올라가 잠을 청하더니 걸핏하면 깨어나 내 손밑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막내고모 옆으로 가 온기를 나눴다.

파랑이의 크리스마스빔(?) 차림

저녁까지 있다가 다시 녀석을 떼어놓고 집으로 돌아와 전화를 해봤더니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막내고모를 졸졸졸 쫓아다니는 중이란다. 막내고모가 지난 여름엔 일주일 내내 계속 함께 데리고 다녔다는데(심지어 치과에 갈 때조차!) 요번엔 전시회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더 남은 여드레 동안 사나흘은 또 녀석 혼자 두고 나가야한단다. 과연 파랑이는 애견인이고 완전 낯설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인의 집은 아닌 곳에서 홀로 밤중까지 견디는 시간을 어떻게 버텨낼까. (그렇게 걱정되면 데려다 놓으시지! 하는 말이 들리는 것 같지만 나는 정말로 자신없다니까!) 파랑이 주인들에게는 아무 염려말고 여행이나 즐기다 오라고 했어도 은근히 걱정스럽긴 하다. 요번에 받은 스트레스로 나중에 주인들한테 복수한답시고 막 대소변 실수하면 어쩌나. -_-; 이사하면서 가까스로 쫓겨날 위기를 넘긴 녀석인데 과연. 모든 강아지를 상전 모시듯 하는 막내고모의 각별한 애정으로 하루 이틀밤의 충격쯤은 말끔히 치유될 수도 있기를 빌 뿐이다. 지난번 아파트 단지에서 무작정 달아나는 바람에 한번 잃어버려 이틀인가 사흘 만에 찾은 적도 있으니 주인과의 인연은 꽤 진한 편이라고 치고, 부디 파랑이의 수난은 이것으로 끝이기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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