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 푸념'에 해당되는 글 109건

  1. 2008.05.05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들 5
  2. 2008.04.24 이민 11
  3. 2008.04.17 천 81만명 중 한 사람 12
  4. 2008.04.10 허탈2 7
  5. 2008.04.07 어떻게 막을까 9
  6. 2008.03.26 나더러 좋은 하루가 되라고? 17
  7. 2008.03.13 뉴스가 무서워 6
  8. 2008.02.20 예의없는 것들 2
  9. 2008.02.04 헤이리와 공동묘지 8
  10. 2008.01.30 등록금 천만원 시대? 18
이명박 대통령 당선, 대운하, 의료보험 민영화, 수돗물 민영화, 한나라당 총선승리, 미국 쇠고기 협상타결...
도대체 이 나라를 믿고 참으며 살아갈 희망이란 게 과연 있는가 연일 고민하던 나는 요 며칠 갑작스레 미래에 대한 희망을 느낀다.
수없이 욕을 먹으며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치이다 퇴임직전까지 보수언론의 악성 루머에 시달려야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몇 가지 <업적> 가운데 나는 대통령의 권위가 철푸덕 땅바닥에 떨어져 이놈저놈 아무나 대놓고 씹어댈 수 있게 된 것을 최고로 여긴다. ^^; 대통령 욕 함부로 하다간 쥐도새도 모르게 안기부로 잡혀가는 공포시대를 거쳐, 늙고 낡은 양김씨의 시대를 청산한 뒤라 그리 젊은 것도 아닌 데 새파랗고 만만하게만 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걸핏하면 언론의 딴죽걸기에 쓰러져 대국민사과문이나 담화문을 발표해야 했고 심지어는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하는 공직자의 의무를 위반하고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탄핵사유로는 완전히 깜냥도 안되는 이유로 의회에서 탄핵까지 당하지 않았던가.

국민들 70%가 탄핵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며 연일 촛불집회를 벌이던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기는 하였으되, 탄핵될만큼 그 사유가 중대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노무현의 손을 들어주었더랬다. 하지만 국민들이 직접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정치인들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갈아치우겠다고 날뛰었던 당시의 웃기는 코미디는 분명 어린 학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이 틀림없다.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가 헌법과 법률을 심각하게 위해한 때에 해당되기 때문에, <헌법이나 법률의 해석을 그르친 행위, 위법차원이 아닌 부당한 정책결정행위, 정치적 무능력으로 야기되는 행위 등은 탄핵의 사유가 되지 아니한다>는 당시 헌재의 해석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실제로 온/오프 라인의 움직임이 실질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 이들도 거의 없다.
하지만  어느 고등학생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는 다음 아고라의 명바기 탄핵 서명운동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당장 자기 집값 땅값 올라간다면 영혼이라도 팔 준비가 되어 있는 기성세대나, 정치엔 별 관심도 없고 경제살려 일자리만 만들어준다면 대통령이 나라를 회사 경영하듯 주무르는 CEO가 되어 직원들을 다그친대도 뭐 어떠냐고 생각하는 꼴통 이십대와 달리, 당장 수시로 바뀌는 입시제도와 교육 제도 때문에 갈팡질팡 헤맬 수밖에 없고 전국학력평가고사로 성적이 백분율 전국석차까지 나와 자괴감에 젖어 있으며, 뜬금없는 영어몰입교육, 우열반이나 다름없는 수준별 이동학습, 자립형 민사고 확대 등 도무지 사교육비를 무한대로 대지 않고선 따라갈 수 없는 제도들을 정부가 거듭 내놓는 바람에 당장 가장 피해를 많이 입게된 십대들이 정치적인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정치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그들의 <못살겠다>는 외침과 더 나은 미래를 요구하는 주장은 미국 쇠고기 협상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 한우농가나 FTA를 반대하는 농축산민들의 <못살겠다>는 시위와는 확실히 다르다. 값싼 쇠고기가 쓰일 수밖에 없는 급식을 먹어야하는 상황이기에 똑같은 생존권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목소리엔 확실히 직접적인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욕심보다 불합리한 정책을 바꿔야한다는 순수한 정의감, 그리고 개인과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는 애틋한 충정이 더 크게 깃들어 있다.

3일에는 2만이나 모였다는 촛불문화제 현장에 나가보지는 않았지만 흥미롭게 기사들을 찾아 읽어보면, 인파의 6, 70 퍼센트가 중고생이었고 그 대다수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었다고 한다(현장에 있었던 파피도 그렇게 증언했다^^). <나도 대학 가고! 결혼하고! 애낳고 싶어요!>라는 귀여운 문구나 <미친소 먹고 민영의료보험으로 돈없어 죽거든 대운하에 뿌려주오>라고 적힌 기발한 전단을 들고 나와 있는 여학생들의 사진을 보며, 어떤 이들은 순진한 어린학생들이 정치선동에 물들었다고 염려한다지만 나는 그저 흐뭇할 뿐이다. 요즘 아이들은 누가 정치적으로 선동한다고 해서 그렇게 우르르 행동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고, 자기 앞가림 정도는 확실히 할 만큼 똑똑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대통령 탄핵 서명에 가담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 문화제를 열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간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지켜보고 뭔가를 배웠기 때문이다. 나처럼 뒷구멍에 앉아 구시렁구시렁 투덜투덜 욕이나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다.

나는 계속 이런 꼴로 돌아가면 이민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린 국민들이 이렇게 똘똘하고 행동력이 있다면 기성세대들도 뭔가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고 그들이 이십대 삽십대가 되는 미래엔 뭔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청출어람이란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러니 부디 썩어빠진 딴나라당 정치인들과 수구언론들은 뜬금없이 배후에 좌파 세력의 음모가 있느니 어쩌느니 헛소리 좀 집어치우고(국민건강 우선으로 생각하라며 미국 쇠고기 광우병 문제 집중적으로 떠들어댄 건 작년까지 니들이었거든!!), 국민들이 마음 편히 쇠고기도 먹고 채소도 먹고, 병원 걱정, 수돗물 걱정, 온 나라 파헤쳐질 걱정 없이 좀 살게 해주면 좋겠다.
그런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명바기 탄핵서명 천만 명은 꼭 이루어졌으면!
영화 한편에도 천만 명 관객이 드는 시대인데, 한달만에  백십만 명이면 목표가 그리 멀지도 않았다. ^^  
2002 월드컵때 시뻘건 집단주의의 광기가 무서워 단 한번도 단체응원 해 본 적 없고, 월드컵 생중계도 거의 보지 않았으며, 개봉 초반엔 몰라도 천만 명이나 봤다는 거창한 꼬리표가 붙은 영화는 보기 싫어질 만큼 떼거지로 하는 건 죄다 싫어하는 나이지만, 이번엔 귀찮아서라도 침묵하는 나머지 3천5백만명에 드느니 상대적 소수이지만 엄청난 숫자인 천만 서명인에 포함되기로 했다.
혹시 아직 서명 안 하신 분이 계시다면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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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하나마나 푸념 2008. 4. 24. 16:41
"심상정, 노회찬 후보 다 떨어지면 나 이민 갈 거야! 이 나라엔 희망이 없어."
지난 총선때 엎치락뒤치락하는 개표방송을 보며 내가 엄마한테 외친 말이었다.
어딜 가도 한국인으로서 한국만큼 살기 편한 나라는 없다(언어 하나만 따져도!)는 나의 지론을 익히 알고 있는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디로 가려고?" 라고 물었다. 막상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그간 <이민>은 누가 등떠밀어도 안간다는 것이 나의 근본적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기세가 한풀 꺽인 목소리로 나는 "뉴질랜드에나 가지 뭐. 심심하긴 하겠지만..."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물론 뉴질랜드에서 나를 받아줄 것인가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이민 자체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당연히 없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또는 더 나은 삶을 계획해보려 한다거나 이 나라에 환멸을 느껴서 이민을 작정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과거의 나는 그들을 안쓰러워하거나 콧방귀를 꼈다. 열악한 어린이캠프 화재로 유치원생 아이를 잃은 부모가 배신감과 상처를 감당 못해 이민을 결심했다거나 용인 서해교전 희생자의 부인이 전사한 남편에 대한 처우가 불합리하다며 나라를 등지고 떠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에도 오죽했으면 낯선 곳으로 떠날 결심을 한 그들의 참담한 마음이 안쓰럽긴 했어도, 이민가서 그들이 행여나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겠나 의아스러운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돈이 엄청 많아 싸짊어지고 간다면 모를까, 말 설고 물 설고 문화도 다른 그곳에서 기껏해야 차별 받으며 살아야 할 터인데 왜들 그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샌 <오죽했으면> 가난한 신세로 이민을 결심했을 그들의 마음에 차츰 더 동화됨을 느낀다. 대통령이라는 작자는 나라를 기업 경영하듯 휘두르겠다며 스스로 CEO임을 자처한다. 기업의 최대 목표는 이윤 추구이니, 이윤을 남기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소리다. 기업 중심의 구조조정, 비정규직 양산,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무한경쟁체제 돌입 같은 웃기는 짓거리를 전국민 대상으로 해치우겠다는 심보다. 정부가 내세우는 제도들 또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자율의 이름으로 어린 학생들을 말려 죽이거나 잡아먹을 태세다.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겠다면서 어떻게 정반대의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다. 놈들의 뇌는 머리 속에 든 게 아니라 발가락 사이에 때처럼 들러붙어 있는 것일까? 질 좋고 값싼 광우병 쇠고기를 국민들에게 널리 대접하겠다는 정신나간 대통령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소값이 떨어지고 농민들은 헐떡거리는데 설상가상으로 조류독감에 걸린 닭과 오리들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만 마리씩 산채로 땅속에 묻히고 있다. 오염된 침출수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문제는 차라리 엄살처럼 들린다. 하기야 수십, 수백억씩 재산 많은 인간들이 돈없는 서민의 마음을 어찌 알겠나. 어차피 너도나도 땅값, 집값 올려 돈 좀 만져보겠다는 얕은 야심에 눈이 어두운 국민들이 아닌가. 투명경영이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당연하게 비자금 만들고 재산 빼돌리며 승승장구해 온 재벌 삼성 비리는 확실한 증거를 특검 손에 쥐어주었는데도 변죽만 건드리다 결국 무혐의란다. 지나던 개가 웃을 일인데, 삼성 망하면 나라 망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우국충정들의 결집된 힘이 참 놀랍긴 하다.  

원래부터도 정치에 별 관심 없었고 애국심이니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니 하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이었지만, 요새 같아선 김연아와 박태환이 아무리 멋지게 태극기를 휘날려 주어도, 박지성이 맨유에서 아무리 잘 뛰어도 그들 때문에 이 나라가 덕본다는 생각보다는 걔들이 더 좋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모름지기 희망이란 앞으론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꿈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이 나라 꼬락서니는 그야말로 점입가경, 망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아니지, 있는 놈들의 견해로는 발전이되 속으로는 곪아터진 겉다르고 속다른 사기공화국으로 치닫고나 할까.

허나 더욱 서글픈 건 내가 이렇게 욕을 해대면서도 버리고 떠나고 싶어도 도저히 능력이 없어서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스란히 이 땅에서 더러운 분탕질을 지켜보거나 겪으며 살아야한다는 게 참 짜증나고 서럽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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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명이면 대충 남한 인구 4천 5백만 명(4천 8백만 명이던가?) 가운데 4분의 1이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천만 명 단위에 속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천만 명 넘는 관객이 봤다는 영화는 안 보는 식이다. 3G 화상전화와 010 번호 사용자가 천만 명이 넘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고집스레 촌스럽고 어감도 안좋은 018 식별번호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쓸데없는 인간관계의 정리를 위해 확 번호를 바꿀까 하는 생각도 간간이 들기는 하지만, 몇년 만에도 다시 연락을 해오는 <비즈니스> 관계자들을 생각하면 선뜻 호기를 부릴 수가 없기도 하다.

그런데 자그마치 천 81만명이 당했다는 옥션 해킹 명단에 나도 들어 있단다. +_+
옥션 사이트에서 정보유출 여부를 알려준다기에 온종일 접속했는데 사이트가 다운됐는지 통 안열리더니
이제야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계좌번호와 신용카드 정보까지 유출된 것은 아니고, <단지> 내 이름과 아이디와 주민번호, 전화번호 따위<만> 유출됐다니 기가 막히다. 그 정도면 온라인 상에서 내가 발가벗겨진 것이나 다름없잖아!!!
피해자들이 공동소송 준비를 한다는 소식도 있던데, 일단 나는 그저 망연자실 어떻게 해야하나 멍하기만 하다. 사실 이런 공동소송에서 승소할 확률이나 있는 것인지 1인당 2백만원으로 피해액을 책정했다는 것 따위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이제 어디를 믿고 온라인 쇼핑생활을 할 것인지 패닉 상태라고나 할까. 며칠 전엔 대형마트 응모권을 빼돌려 소비자들의 정보를 팔아먹은 직원이 있다는 뉴스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이젠 누굴 믿어야 하나??

언젠가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잘 내려받을 수가 없어서 전화 문의를 했더니, 통화하다 말고 곧장 그 휴대폰 회사 직원이 내 컴퓨터로 슥삭슥삭 들어와(물론 내가 접속을 허락하긴 했지만) 제 마음대로 내 컴퓨터 속을 들여다보고는 이것저것 작동한 뒤 문제를 해결해준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양손은 분명 수화기를 잡고 있는데 내 모니터 속에서 제 멋대로 마구 움직이는 커서와 바뀌는 화면을 보며 <해킹>을 당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로군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워낙 해커들의 솜씨가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IT 개발업자와 운영자들의 수준은 정말 안전한 것일까? 하다못해 대학병원에 입원을 할 때도 보호자 두 명의 연대보증이 필요한데, 보증인은 가능한 한 집을 소유하는 것이 좋다고 적혀 있다. 2년 전 엄마 입원시키면서 아버지랑 내 이름을 적으며 주소를 자세히 안 적었더니만 원무과 직원은 곧장 우리 집 건물 주소로 된 (그러니까 층과 호수로 나뉘기 전) 거주자들의 이름을 주르륵 읊으며 확인에 들어갔다. 경황이 없어 재빨리 내가 사는 쪽의 층과 호수를 불러주긴 했지만, 돌아서며 소름이 오드득 돋았다. 동사무소도 아니고, 한낱 병원에서도 그런 정보를 다 갖고 있다는 게 놀라웠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쇼핑을 하면 이런저런 안전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영 불안해서 나는 될 수 있는대로 계좌이체는 하지 않고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편이다. 나중에 잘못되면 신용카드 지불취소를 하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 그러나 여러 피싱 사기 사건을 들여다보면, 하늘 아래 안전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인터넷 뱅킹의 인증서도, 암호카드도, 고액 이체를 위해 새로이 고안했다는 암호 단말기 사용도 전문 해커들에겐 다 뚫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KT 요금이 64만원 체납됐다는 이상한 전화가 수시로 걸려오며, 서울 검찰청 재출두 명령을 안내하는 자동응답 전화가 걸려오는 판국이니, 세상엔 온통 사기꾼들로 득시글 거리는 듯하다. 하기야 대통령이란 작자도, 정치인들도 대거 사기꾼 대열에서 뽑았으니 나라꼴이 오죽하겠나 싶지만 이건 너무하다. 힘없는 소시민은 늘 그저 당하고만 살라는 건가 뭔가. 도대체 누굴 향해서 가장 분노해야 할지 멍청한 이 소시민은 방향조차 잡을 수가 없어서 더욱 화가 나고 맥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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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2

하나마나 푸념 2008. 4. 10. 00:29

진보신당의 두 대표 심상정 후보와 노회찬 후보는 결국 낙선했다.
이명박이 대통령 됐을 때만큼이나 허탈하다.
더욱이 노회찬 후보의 상대는 홍정욱이었다.
나는 홍정욱이 별 생각도 고민도 없이 기득권만 놓지 않으려 하는 젊은 보수층의 표상이라고 생각해왔다.
요새 젊은이들은 이유도 없이 노친네들보다 더 보수적이니까.

노원 병의 두 후보 대결에 대해 조국 교수는 익히 <정글자본주의>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의
충돌이라며 향후 우리 삶의 방식과 질이 어떻게 변할지를 예고하는 징표라고 예상했다.

그 글을 읽으며 나도 백번 공감하면서도 결과가 노회찬 후보의 패배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정치라고는 쥐뿔도 경험없이 정몽준 조카사위라는 집안 배경과 경영자 경험으로 감히 노회찬과 붙다니 가소롭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역시나 딴나라당의 조직력과 당세는 놀라운 것이었나보다. 노회찬 후보의 초반 우세를 뒤집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은평구에서 문국현 후보가 승리를 거두어 이명박의 최측근이자 대운하 최강옹호자인 이재오 후보가 떨어졌다는 점, 고무적이게도 민노당의 강기갑 후보와 권영길 후보가 어렵사리 당선됐다는 점, 그리고 또 딴나라당의 총 의석수가 출구조사 예상보다도 떨어져 과반을 간신히 넘겼다는 사실이다. 딴나라당이 180석까지도 가능하다더니 150석을 겨우 넘겼으니 한숨 놓기는 했지만 그밥에 그 나물인 친박떨거지들과 이회창을 비롯한 꼴통보수들이 또 어떻게 이합집산할지 보나마나 혼탁양상이 될 것은 뻔하고, 국회의 정부견제 의무는 애저녁에 글렀다.  

대운하 문제야 딴나라당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있으니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 쳐도
당장 FTA 비준은 따놓은 당상이고, 의료보험 민영화도 슬슬 큰소리를 내겠지.
으이구..
노무현 대통령 당선된 대선 때 빼놓고 내가 이렇게 심란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개표방송을 지켜보긴 처음인 것 같다.

예의주시하고 있던 지역구의 엎치락뒤치락하는 결과를 쳐다보다 결국엔 홧김에 술병을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한동안 술깨나 잘 팔려 경기가 좀 살아나려나?
낙선한 이들은 속상해서, 된놈들은 됐다고 희희낙락 술잔을 들지 않을까...

세상의 잣대가 가리키는 성공이 반드시 성공은 아니라고 여기며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낙오자로 살더라도 양심에 거리낌없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나 같은 투덜이에겐 분명... 세상은 우습게 변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실용주의와 정글자본주의가 판쳐 결국 1%의 사람들이 99%의 부를 누리고 향유하며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래서 슬프다.
술 한병 더 따야겠다.
술김에 겁날 것 없이 용감해지면 또 어떻게 막을까 묘안을 떠올리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아직 살아갈만한 세상이라는 희망이 샘솟기를 빌면서.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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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일 며칠 전부터는 총선관련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금지되어 있다더니
어찌된 일인지 한나라당이 과반을 훌쩍넘는 180석까지도 확보가능하다는 예측이 주를 이룬단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따로 없다.
투표율이 낮을수록 딴나라당과 꼴통보수에게 유리하다는 관측은 예로부터 규명된 진리인데 설상가상으로 투표일에 비가 온다 하니 투표율 저하는 불을 보듯 빤한 일이라, 어떻게 해야 이 나라 꼬라지가 좀 덜 미친 쪽으로 돌아가도록 놈들을 막을 수 있을지 나로선 가슴만 답답하다.

집으로 날아온 선거안내문과 정당선전물을 꼼꼼히 살폈지만, 역시나 경제를 살립네 하는 번드르르한 놈들의 표어엔 구체적인 방안이 단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다들 서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빈그릇 뿐이라며, 서민들을 위한 알찬 밥상을 차리겠다는 진보신당의 한장짜리 홍보물이 유독 가슴을 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대기업과 재벌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게 법규 완화해주고, 대운하 파헤쳐서 대규모 토목공사로 반짝 경기 살려내면 정말로 경제가 살아날까? 전 세계 경제가 뒤흔들리고 있는 마당에 단 5년만에 지들이 무슨 수로 이 나라 경제만 살리겠다는 건데? 그걸 순진하게 믿는 사람들은 대체 두뇌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을까?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땅부자 장관들로만 구성된 정부 각료들만 보아도 그들이 펼쳐나갈 정책이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 같은 부자들을 위한 특혜 정책일 뿐 정말로 서민들을 위한 밑바닥 경기 부활 방안은 전혀 없음을 도대체 왜 이나라 절반의 인구는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
기업이 살아나려면 비정규직 양산은 어쩔 수 없다는 따위의 발언이나 하고 앉아 있는 인간을 대통령이랍시고 뽑아놓았으면, 그 인간이 더 기괴한 미친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고 견제할 방법을 어떻게든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몇년 전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상연된 영화 <이멜다>를 번역한 적이 있다.
구두 3천 켤레로 유명한 이멜다가 직접 자기 입장을 적극 변호한 것으로 주목을 끌었던 라모나 S. 디아즈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이른바 <너도나도 국민을 위해 몸바쳐 일한다는 정치인들>의 사고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현실감이 없는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국고와 해외 원조자금에서 최소 1억 6천만 달러를 횡령했으며 20년간의 독재기간 동안 수많은 인권을 침해하고 야당 정치인들을 탄압했던 권력의 핵심이었던 이멜다는 <하느님이 주신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 당당하다>며 <주님께서도 환히 웃으며 자기를 천국과 영생이 길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이명박을 비롯한 소망교회파 각료들도 아마 마찬가지겠지..)

망명당시 대통령궁엔 보석만 트렁크로 4, 50개 분량인데 자기는 손주들을 위해 기저기와 우유병을 쌌다고 이멜다는 천연덕스럽게 인터뷰하고 있지만, 당시 미국 세관에서 찍힌 사진엔 트렁크마다 호화로운 보석과 귀중품들이 가득 들어 있는 식이었다.
더 웃기는 건 쫓겨나듯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뉴욕 중심가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던 이멜다가 겨우 5년 반만에 필리핀으로 돌아갔을 때 수천명의 국민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전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의 영부인으로만 알고 있던 이멜다는 당시 마닐라 시장과 주거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권력의 실세였고, 모든 독재자들이 그러하듯 눈에 드러나 보이는 전시행정을 위해 쓸데없이 여기저기 지었던 문화센터 따위의 건축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사고로 죽어나가도 공기를 맞추기 위해 시체발굴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공사 강행을 명했던 장본인이었다.
그런데도 시체로 돌아온 마르코스와 이멜다를 추앙하며, 독재자의 아들 딸을 각각 주지사와 하원의원으로 당선시킨 필리핀 국민들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름마저 친박연대로 뭉친 자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어마어마한 금액의 횡령 혐의로 정부에게 소송당해 배상 판결이 났음에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배상금 지불을 거부한 채, 오히려 참전용사 미망인 연금으로 매달 90달러씩 받고 있다는 이멜다는 자기 이름이 다이아몬드로 알알이 박힌 수제 콤팩트를 보란듯이 꺼내 화장을 했다. -_-;; (전재산이 29만원이라며 남은 배상금은 못내겠다 배째라고 하면서 사업번창한 자식들과 함께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연희동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요새 이 나라가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머지않아 대한민국도 필리핀처럼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진저리가 난다. 1퍼센트에 불과한 부자들이 99퍼센트의 부를 소유하고 누린다는 나라가 바로 필리핀이다.
더 좋은 나라로 유학보낼 여유가 안되는 우리나라 극성 부모들은 영어라도 배우게 하겠다고 아이들을 필리핀으로 조기유학 보내지만, 필리핀에서 좀 산다하는 집안의 자녀들은 전부 해외로 유학을 떠난다. 우리나라보다 더 심하게 미국병에 걸린 필리핀의 엘리트 집단은 독재정치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그 나라를 지배하고 지들끼리만 부를 세습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10%의 부자들이 90%의 부를 소유하고 있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소득 2만불로 대한민국과 같은 수준이라는데, 맨발에 다 떨어진 티셔츠를 입고 배에서 내리는 관광객들을 물에 젖지 않게 업어 내려주는 대가로 1불씩 받던 보라카이 짐꾼들을 맞닥뜨렸던 충격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날 배 주변에 수십명이나 몰려든 그들 가운데 그나마도 1불짜리 지폐를 받아들 수 있었던 이들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대한민국 국민들은 필리핀 국민들처럼 무지하다 싶을 만큼 순진하고 감정적이지 않다고 믿으며 희망을 버리진 않고 있지만 과연 그럴지 며칠만 지나면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명박을 과반 넘은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뽑게 만든 책임을 단순히 언론과 정치인들에게만 돌릴 수 없듯이
누구를 선택하든 총선의 결과에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정치 얘긴 밥맛 없어서라도 하기 싫어하는 내가 굳이 구구절절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쓰는 이유도
혹시나 단 한사람이라도 마음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박근혜의 친박연대나 이회창의 자유선진당이나 다 딴나라당 떨거지이니 그나물에 그밥이고
정치철새들 다 모아놓은 통함민주당도 꼴우습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최악의 정당과 후보들을 하나씩 제거하다보면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날 비록 비가 철철 내리더라도, 쉬는 김에 꽃구경 갈 생각에 마음 부풀었더라도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나라 꼬락서니를 염려하며 투표에 참여하면 좋겠다. *_*

백두대간을 속속들이 망가뜨릴 대운하는 절대로 안 될 일이며
서민들이 훌륭한 병원에서 훌륭한 의사들에게 평등하게 진료받을 권리까지 뒤흔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도 절대로 안될 일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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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방송은 물론이고 공공기관이며 은행, 음식점 따위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하도 많이 들어 귀와 입에 익다보니 들을 때마다 늘 마뜩찮아 하던 나도 혹시 어디선가
덩달아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우려될 정도다.
아니, 나 역시 아무 생각 없던 시절엔 당연한 듯 따라 썼음을 고백하자. 
특히 메신저나 이메일의 경우엔 더더욱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많이들 주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좋은 하루 되세요>나 <즐거운 시간 되세요>는
참 말도 안되는 말이다.
인간에게 좋은 하루가 되고, 즐거운 시간이 되라니!

분명 영어의 Have a nice day, Have a great time 따위를 대책없이 빌어다 쓰고 있는 말일 터인데
아침 인사로 뜬금없이 "좋은 아침!"이라는 말을 들을 때처럼 나는 혼자 속이 쓰리다.
엄밀하게 따져서, <좋은 하루 되세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행복한 여행 되세요>라는 말은 비문이다.
게다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명령형이므로 높임말과는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구조다.
올바르게 쓰려면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빌어요>, <여행 잘 다녀오시길 빕니다> 쯤으로 바꿔야 한다. (사실, "좋은 하루, 즐거운 시간"의 관형어구도 트집 잡으려면 이야기가 또 길어진다)
같은 명령형이라도 오래전부터 써내려온 <안녕히 가세요> <살펴 가십시오>와는 또 다르다.

그런데도 영어병에 찌들은 대다수의 이 나라 사람들은 비문이든 아니든 그저 좋은 말인 줄로만 알고
아무 생각 없이 영어식 문장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우리네 아침 인사라는 것이 하도 못먹고, 난리를 겪으며 살던 백성들의 삶을 반영한
"식사 하셨어요?"나 밤새 "안녕하세요?"라는 것이 못마땅해 다른 인삿말을 찾으려는 심리도 깔려 있으리라고
짐작은 된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아침인사로 동료들끼리 "좋은 아침!"이라고 외치거나
상사에게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문제는 그렇게 내눈에 말도 안되고 우스꽝스러운 인사법이 너무도 당연하게 방송이나 인쇄물을 통해
재생산되고 강화되어 '옳은 말'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문득 은행 ATM에서 거래를 하고 명세표를 받으니 맨 아래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 좋든 나쁘든 <하루>가 되느냐 말이다!

얼마 전 뉴욕필의 평양 공연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미국인 지휘자는 애써 우리말을 외운 듯, 연주 시작전 인사말의 끝을 이렇게 맺었다.
"좋. 은. 시. 간. 되. 세. 요."
(혹, '즐거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_-;;)
어눌하게라도 한국어로 북한 관객에게 마음을 전하려 한 그의 의도는 감동적이었지만
나는 Have a great time 쯤 되는 영어를 누군가 번역하여 한국어라고 가르쳐주었을 그 말이 못마땅했고
과연 북한 관객들은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의아했다.
지휘자의 한국어 맺음말 뒤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으니, 다들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이왕이면 누가 좀 제대로 가르쳐주지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런 내 불만은 이미 대세로 기울어 버린 우리말의 변화를 못 받아들이고
혼자만 고집을 부리는 쓸데없는 투정인지도 모른다.
언어는 생명체와도 같아서 끊임없이 성장, 변화하므로
수많은 외래어와 외국어식 표현으로 <감염>된 한글의 영역이 오히려 넓어지고 어휘가 풍부해졌기에
무작정 일본식, 영어식 어휘를 배척하기만 해서도 안됨을 안다.
하지만 어휘가 풍부해지는 것과, 비문이 올바른 문장인 양 막강하게 터를 잡고 앉는 것은 다르다.

아, 물론
나 역시 매일 번역하는 문장에서 주술 관계가 맞지 않은 비문을 양산하고 있을지도 모르며
누군가 내 블로그의 글을 죄다 분석해 빨간 펜으로 비문을 찾아낸다면 시뻘겋게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비문을 쓰지 않으려고, 가능하면 제대로 된 문장을 짓고 맞춤법도 틀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으므로 약간의 면책 가능성은 있을 것이라고 혼자 자위하고 있다.


얼마전엔 나 역시 맞는 말이라 여기고 있던 <감사드린다>는 말도 잘못된 말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감사>는 남에게 주는 게 아니라 본인이 고맙게 느끼는 마음이므로 <드리면> 안되고,  그냥 <감사해야> 한단다.
정 <드리고> 싶으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로 쓰는 게 옳다고.
그런데 우리는 <축하드린다>와 헷갈려 <감사>마저도 드리는 게 당연하다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쓰고 사는 우리말이지만 알면 알수록 더 어려운 게 한글이고 조심스럽다.
그래도 명색이 우리말과 글로(물론 영어와 더불어) 먹고 산다는 사람이 제대로 된 우리말을 써야한다는
생각에 어깨는 자꾸 무거워지는데 나를 둘러싼 세상은 내게 그리 협조적이지 않은 듯하다.

내가 이리도 마뜩찮게 여기는 <좋은 하루 되세요>가 10년쯤엔, 아니 불과 2, 3년 뒤엔
당연히 옳은 말로 여겨지면 어쩌나 마음이 찜찜하다.
하물며 관공서에 나붙은 플래카드에도 <즐거운 명절 되세요>라고 적혀 있는 마당 아닌가!

영어,영어 하지 말고 다들 우리말이나 제대로 하면 참 좋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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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별 연령제한 표시는 뉴스에도 꼭 붙여야 하고 그 나이는 12세 미만 금지로 해야한다는
생각이 되풀이될 만한 사건들이 요즘 참 잦다.

요샌 TV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뉴스도 공교롭게 식사시간과 겹치는 경우에만 보게 되는데
연이어 너무도 무서운 소식에 밥숟갈을 뜨는 내 손길이 무색할 정도였다.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잔혹한 살인사건이 차츰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일부 사회심리학자들은 잔인한 비디오게임에 노출된 세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과
전 세계에서 자행되는 온갖 범죄 유형을 세세하게 전하는 미디어와 그것을 재생산하는 영화 및 드라마의
유통 때문이라고 본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도 일리가 있는 의견이다.

입으로 옮기기에도 무서운 토막살인, 암매장이라는 말이 요샌 아무렇지도 않게 뉴스에서 흘러나온다.
자주 보는 미국드라마 CSI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그리 멀지 않은 안양, 수원, 마포, 전남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그리고 똑같이 CSI 조끼를 입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과학수사대는 피해자의 DNA 분석 정도나 할 뿐인지 현장에서 발견된 신발 발자국과 머리카락으로 범인을 찾았다는 소식은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

실종된 아이들과 네 모녀의 가족사진을 보며 부디 무사하기를 빌었건만
불길한 예감은 좀처럼 빗겨가질 않는다.
범죄자들이 유능해지는 정도를 수사권은 왜 따라가지 못할까.
수사는 걸핏하면 헛발질이고, 안타까운 인명의 희생은 계속해서 반복되니 이거 어디 무서워서 살겠나 싶은 생각 뿐이다.

특히 무고한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한 범죄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터인데
왜 자꾸 이런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다큐 프로그램에서 어린이 상대 범죄의 검거율은 99%라고 PD가 장담하며 반드시 잡힌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일까?
그렇다면 내가 기억하는 개구리소년 사건과 예슬이 사건이 현재 미결인 유일한 사건이었나?
수많은 어린이 실종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지 못한 것은 아니고?

답답하고 슬픈 현실인데,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것밖엔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더욱 참담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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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확실히 옛말이다.
살아보면 요즘 한국사람들 참 예의가 없다.
아직도 어른을 공경하는 편이고 존대말이 통용되며  상대적 강자에겐 굽실거리는 사회이긴 하지만
예의란 강자에게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약자의 태도가 아니지 않은가!
다시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도,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사람에게도 최소한 지켜야할 예의란 것이 있건만, 요샌 그런 걸 기대하는 내가 몹시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인간으로 생각될 정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운전을 할 때, 공공건물의 출입문을 열고 닫을 때,
사람들 많은 식당이나 병원에서, 몰염치하고 예의없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참으로 허다하다.

'익스큐즈미'와 '땡큐'를 입에 달고 사는 외국인들과 비교하자는 게 아니다.
어차피 그들은 개인주의가 극대화된 사회에 익숙한 이들이고,
우리야 어려서부터 '일동 차렷, 경례!' 구호에 익숙한 집단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터라
뭐든 서로 엉켜 뒤죽박죽 '같이' 행동하고 니 것이 곧 내것이라는 근거 없는 동질감 같은 것이 팽배하니
타인의 프라이버시와 공간에 대한 배려는커녕 복잡한 길바닥이나 장터에서 비켜달라는 말대신 손으로 툭툭 치고 지나가는 것쯤은 싫긴 해도 눈감아줄 수 있다.
원래 뒷간 앞에서도 말을 아끼느라 '흐흠' 헛기침으로 의사를 주고받던 민족인 것을 어쩌랴.

하지만 금연인 공간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남들이야 시끄럽든 말든 낮술을 먹고 식당에서 왁자지껄 떠들어 대고
경적금지구역 표지판과 저속 운전 당부 표지판이 붙어 있는 학교 앞에서 보란듯이 빵빵빵 경적을 울려대고
남들 다 줄서서 기다리다 합류하거나 빠져나오는 병목구간과 램프에서 뻔뻔하게 끼어들며 오히려 협박하듯 차체를 들이밀거나 욕설을 하고
걸음이 느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뀐 뒤에도 천천히 길을 건너고 있는 노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뒤에서
재촉하며 신경질적으로 빵빵거리고
골목길 막고 주차해놓은 주제에 연락처도 안 남기고
재활용품도 아닌 쓰레기를 남의 집앞에 몰래 내놓고
한밤중에 소움기를 제거했는지 일부러 요란한 엔진을 달았는지 아무튼 폭주족임을 광고하는 듯한 시끄러운 오토바이 타고 골목길 쏘다니고...

내가 사는 동네에 특히 예의없는 것들이 몰려사는지
요 며칠 계속 짜증스런 인간들을 많이 만났다.
타인을 조금 만 더 배려하고 최소한의 예의만 지켜도 자신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 될 터인데
다들 왜 그모양일까.
고리타분하고 권위적인 유교 이념이야 사라지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요즘사람들이 기본적인 예의까지도
밟아버린 채 자기본위적인 삶이 제일이라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렇게 예의없는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니
예를 떠받드는 문이라는 숭례문도 불타버린 게 아닌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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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를 따라 문산쪽으로 얼마간 달리다 보면 통일전망대가 나타나는데, 그 근방은 언제부턴가
'통일동산'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이루어져 지금은 헤이리 예술마을이니, 영어마을 파주캠프니 해서
꽤나 복잡한 곳이 되고 말았다.
사진이 예쁘게 나오고 볼 거리가 있다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는 열성을 보이는 사람들은
예쁜 카페와 갤러리가 있고 책 전시장이며 멋진 건축물이 있다는 헤이리에 꾸역꾸역 참 많이도 찾아가는 듯하다.
나 역시 일년에 서너 번 이상 그들과 같은 길을 따라 달려가긴 하지만
언제나 내 목적지는 헤이리가 아니라 그 번듯한 '예술마을'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펼쳐져 있는
동화경모공원, 쉽게 말해 '공동묘지'다.
어찌된 경유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동화경모공원은 이북5도 출신의 실향민을 위해
그나마 고향인 이북땅을 바라보는 듯한 자리의 강가 언덕배기에 조성된 공원묘지였고
평안북도가 고향이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나란히 그곳에 누워계신지 13년째다.
그러니까 헤이리니 영어마을이니 해서 그 동네가 북적이기 이전부터 우리 가족은 간단한 먹을거리와
술을 싸들고 소풍삼아 공원묘지를 찾았다는 뜻이다.

어린시절엔 '공동묘지'라는 말이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TV에서 <전설의 고향>을 할 시간이 되면 겁이 나서 채널도 잘 못 돌리는 겁쟁이였던 나는
무서운 이야기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동묘지'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하얀 유골이 굴러다니고 파란 도깨비불이 날아다니며 어디선가 불쑥 머리를 길게 풀어헤진 소복입은
여자가 입가에 피를 흘린 채 나타나는 공포의 장소로만 인식했다.
그래서 가끔 '망우리 공동묘지' 앞을 지나가는 차라도 타고 있으려면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렸고
전국 어느 곳을 가나 만날 수 있는, 야트막한 산이나 언덕배기에 동그랗게 봉분을 올린 가족묘를 보고서도
무서움에 떨었던 것 같다.

이북 출신이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장수하셨기 때문에 서른이 다 되도록 제대로 성묘란 걸 하러
공원묘지를 찾은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더욱 그런 편견이 자라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도 한식때, 추석때, 설날에 찾아갈 묘소가 생긴 뒤로는
죽음이 삶의 연장이듯 공동묘지도 그저 삶의 한 공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동그란 봉분이 모여있는 것만 보고도 무서움에 떨던 어린시절의 나와 달리
어린 조카들은 공원묘지에 줄지어 있는 봉분 사이를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고 메뚜기를 잡고
고모에게 술래잡기를 하자고 청한다.
처음 몇년은 성묘하러 갈 때마다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리느라 다들 분위기가 무거웠지만
이제는 어른들도 소풍나온 사람들처럼 두 분 묘소 앞에 깔아놓은 자리에 앉아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 아버지,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 몇달 있다 또 올게요!"라고 큰소리로 인사하고는 돌아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우리 식구들에게 헤이리 예술마을은 난데없이 공원묘지 앞에 생겨난 '이상한 동네'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전국이 묘지화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돈많은 예술인들이 돈자랑을 하듯 세운 공동체 마을이
드넓은 공원묘지 코앞이라는 사실에 아무렇지도 않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리고 최근엔 아버지를 그곳 납골당에 모셨으니
우리 가족 같은 사람들이야 '묘지'보다 '공원' 느낌으로 친근해졌음에도
헤이리에 놀러간다는 건 어쩐지 배신 같기도 하고
어차피 돈이 많아 끼리끼리 모여든 그곳 예술인들에게 비싼 입장료까지 내며 그들을 배불려주고 싶은
생각 또한 없기에 지금껏 나는 한번도 헤이리에 들어가본 적이 없다.

물론 헤이리를 마뜩찮게 여기는 건 나 뿐인듯
어제도 설날 성묘를 미리 당겨 공원묘지를 찾았더니, 헤이리 마당엔 사방에서 몰려든 차들이 빼곡했고
주변에 마련된 식당 마을에도 사람들로 버글거렸다.
그들은 모두 일찍이 삶과 죽음이 바로 이어지는 연장선 위에 있음을,
그래서 공원묘지 바로 옆의 아트갤러리에서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멋진 사진을 찍는 것은
마치 시신을 떠내려보내는 갠지스강에서 바로 그 물로 태어난 아기의 몸을 닦으며 신의 축복을 비는 것과
같은 행위임을 깨닫고 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아니면 예술인 마을 바로 옆에 거대한 공원묘지가 있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고 신경쓸 겨를도 없었기에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인지 문득 몹시 궁금했다.
어쩌면 공원묘지에 큰 의미를 두는 건 <전설의 고향> 세대인 나 같은 노땅에게나 해당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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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주변에 대학에 입학하는 측근이 없었다.
사촌동생들 역시 오래 전에 대학을 졸업했고
그나마 최근에 등록금 고민에 근접했던 건 내가 모아둔 돈도 별로 없이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하며 매학기 삼백만원쯤이었던 등록금과 책값, 용돈을 방학동안 잠깐 번역 작업으로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했던
2000년 여름부터 2003년까지였다.

한 학기에 보통 3과목 수업을 들으니 한 과목당 백만원 꼴이었고, 한 학기라봤자 수업은 15주면 끝이니
약간 과장해 수업 한번에 10만원짜리라는 계산이 나왔다.
계속 공부해서 박사학위 딸 것도 아니고, 일에 필요해서 다시 공부하러 왔다는 사람이 쓸데없이 뭘 그리 열심히 공부와 과제에 매달리는지 모르겠다고 어린 동기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부모님이 대준 것도 아니고, 설렁설렁 고액과외로 번 돈도 아니고, 한자한자 골빠지게 번역작업으로 번 돈을 뭉텅이로 써가며 더욱이 공부하는 동안엔 일도 못하는 악순환을 감수하면서 2년반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나로서는 허투루 등록금을 낭비하기가 싫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거금의 등록금을 내 본 적이 없어서 더욱 아까워했는지도 모르겠다.
공부를 잘해서 장학생으로 입학했기 때문이 아니라 ^^;; 모든 대학엔 자기네 대학의 교직원 자녀들이 입학하는 경우 학비를 면제해주는 복지제도가 있기 때문에 그 혜택을 받은 덕분이다.
그 옛날에도 대학 등록금은 웬만한 직장인들 두달 치 월급에 육박하는 거금이었다.
대학생이 되었다고 흥청망청 놀며 지내다 성적표를 받아들고 좌절하며 귀향했던 친구들은
고향 집으로 돌아가 밭이 팔려 없어졌다거나 동생처럼 아끼던 소 한 마리가 사라졌다며
눈물을 머금고 올라와 삭발로 공부 각오를 다지기도 하고, 자진해서 입대를 하기도 했다.

우리집도 그리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으니 아마 나도 등록금을 내야하는 사정이었다면
장학금에 더욱 목을 매달고 매일 아르바이트에 찌든 생활을 해야했거나
걸핏하면 휴학을 하고 돈벌이에 나섰을게 뻔하니, 그땐 툴툴거렸어도
두고두고 우리집 딸로 태어난 걸 감사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학 합격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등록금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문과계열 학비가 비교적 저렴한데 비해 의대나 자연과학, 예술 분야의 학비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비교적 저렴하다는 그 문과계열 입학등록금도 사립대는 5백만원에 육박하고
의대 같은 경우는 정말로 천만원을 넘거나 몇만원 빠지는 천만원이라니
빈부의 대물림은 이제 어쩔 수 없는 대세인가 보다.
물론 자녀의 등록금 천만원쯤 아무렇지도 않게 대주는 '억대' 연봉의 능력있는 부모들도 수두룩하겠지만
평범한 부모들은 과연 얼마를 벌고 저축해야 무리없이 아이들을 대학교육까지 시킬 수 있단 말인가.
어휴...

이번에 정민공주의 사촌오빠가 미대에 합격을 했단다.
당연히 잔치가 벌어졌고 집안 어른들이 노트북 같은 선물을 안기고 축하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미술 전공이다보니 등록금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나까지 마음이 무거웠다.
대학 입학도 어렵고, 일단 입학하면 등록금이 비싸 학교 다니기 어렵고, 어렵사리 학업을 마치면 또 취직이 어려워 청년백수의 길로 접어들고...

좀처럼 끝나지 않는 악순환은 언제나, 어디쯤에서나 끝날 수 있을 것인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정처없이 헤매는 것처럼 암담하기만 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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