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해졌다가 한번씩 영어 공용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영어에 미쳐 날뛰는 사람들은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참 궁금하다.
원칙없이 며칠만에 영어교육 방침을 뒤집었다 메쳤다하는 명바기와 그 추종자들도 마찬가지지만
모두들 영어에 목매달고 죄없는 애들을 잡는 이 세태가 나는 너무도 한심하다.
왜 모든 이들이 남의 나라 말인 영어를 잘해야하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하면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된다고?
쓸데없이 모든 분야에서 영어성적을 성공이나 진학, 승진의 척도로 삼는 이상한 문화 때문이 아니고?
온 국민이 영어를 잘하면 국가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그래서 영어를 공용 언어로 쓰고 있는 필리핀은 국가 경쟁력이 그렇게 높은가?
(한국과 GNP가 비슷한 수준이라던 필리핀은 내가 직접 가보니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고 사회 부패도 심화되어
대단히 '못사는' 나라로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국가 경쟁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영어실력 하나로 그렇게 쉽사리 높아지는 것이었던가? *_*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어로 밥벌어먹고 사는 축에 들다보니
자녀들의 영어교육 문제로 조언을 구하는 지인들이 더러 있다.
가장 흔한 질문은 조기유학이나 어학연수에 관한 것.
마누라가 애들 데리고 영어권 나라에 가서 공부를 시키겠다고 하는데 어쩌면 좋을지..
한 1년만 애들을 휴학시키고 호주나 캐나다, 필리핀 같은 데 가서 영어에 친숙하게 해오면 어쩔지..
묻는 것이다.
내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내 조언은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생각일수밖에 없지만
내가 보기엔 죄다 '돈지랄'일 뿐이라 지인들에게도 가차없이 그렇게 이야기해주곤 한다.
물론 어학연수의 경우 영어를 낯설어하는 아이들에게 잠시 영어와 친해지는 과정을 만들어주는 데 의미를 둔다거나 집중적인 듣기훈련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언어라는 것이 끊임없는 반복에 의한 학습인데 한국에 돌아오면 그 '약발'이 얼마나 가겠는가 하는 게
내 생각이다.
게다가 외국에 한 1년 나가 있는 동안 혹시나 귀국해서 다른 학과목 성적이 떨어질까봐
엄마가 직접 나서든 따로 과외교사를 두둔지 해서 수학과 국어, 과학 따위는 거기서도 한국식 주입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하니, 난 도무지 영어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유학비용을 감당하며 조기유학을 선택했다고 치자.
외국대학에서도 좋은 대학가기는 하늘의 별따기이고, 그 나라 사람들 역시 웬만한 대학을 나와서도 좋은 일자리를 잡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대한민국 국적의 외국인이 현지에서 좋은 일자리를 잡는 것이 얼마나 가능하겠나?
극소수는 운좋게도 현지에 남아 일자리를 잡을 수 있겠지만, 결국 대부분 유학의 끝은 한국으로 돌아와 그럴듯한 직업을 찾는 것일 게다.
하지만... 조기유학으로 외국문화와 개인주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데다 한국의 역사나 사회 전반에 걸친 여러가지 미묘한 문제들을 알 리 없는 유학파들은 한국의 주류 사회와 엘리트 집단에 편승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영어만 잘하면, 그리고 그럴듯한 외국 대학 졸업장이 있으면 취직이 쉬울 거라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같은 얘기다.
한 10여년 전엔 정말로 그런 이들이 '단순히 영어를 모국어처럼 한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주요 재벌기업에 스카우트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세상물정 모르고 개인주의 앞세우는 조기유학파는 집단주의의 총체 같은 국내기업의 '조직'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아니, 그들은 하다못해 국내기업의 입사시험 체계조차 뚫기 어렵다. 며칠씩 합숙해가며 실시하는 최종면접에서 팀플레이나 조직 적응도를 파악하는 잣대에서 떨려나고 말기 때문이다.
아 물론... 대단히 든든한 재벌 혈통을 지닌 터라 유학만 끝나면 언제든 대기업 기획실장으로 입사할 수 있는
'배경'이 있다면야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_-;;
외교와 무역을 담당하는 사람들이야 영어를 잘하는 게 필수임은 당연하지만
은행 승진과 제조업체 입사 따위에조차 왜 유창한 영어가 필요한 건지 정말이지 나는 모르겠다.
살면서 조금도 필요한 적이 없었던 수학을 12년간이나 배우며 골머리를 썪어야했던 이유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꼭 해야 한다니까, 필수 교과과정이니까 어쩔 수 없이 수학 때문에 고생을 했고 수학성적은 늘 형편이 없었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별한 수학은 이제 더는 내 인생을 좌우하지 않는다.
영어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아닌한, 영어 과목 역시 모든 이들에게 그런 정도의 교과과정이어야 하는게 아닌가?
물론 해외여행이 잦아지면서 영어권 국가에서 답답함을 느껴 영어를 잘하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볼 때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의 영어병이 다만 영어권 국가들만 놀러다녔기 때문은 아닐까?
여행에 필요한 영어를 잘하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바람은 그저 내가 여행지에서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중국어 따위를 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과 같은 막연한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
어차피 언어천재가 아닌 바에야 간간이 여행에서 써먹을 요량으로 남의 나라 말을 죄다 잘하겠다는 건
억지스러운 욕심일 뿐이다.
영어병에 걸린 중증 환자놈 하나가 대통령으로 뽑히고 나니
영어로 수업을 하는 몰입교육을 하네마네, 교원충원 계획이 어떻네 저떻네 말이 많은데
나에겐 하나같이 세상물정 모르고 영어교육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신념이 없는 미치광이들의 탁상공론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채널을 돌리다 잠깐 들어보니 영어교육 관련 공청회에 나온 초등학교 영어전담교사가 하는 말이 귀에 꽂혔다.
"우리 말로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수업 내용보다 조용히 시키고 집중시키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영어수업에선 영어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놈들의 변명거리는 영어사교육비를 줄일수 있도록 공교육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수십년간 12년 영어교육 후에도 입 한 번 벙긋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영어교육을 해온 교사들을
하루아침에(아니 2년만이라던가) 유창하게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로 변신시키거나 물갈이를 하겠다는 생각 자체도 말이 안될 뿐더러,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못따라갈까봐 학부모들이 더더욱 애들을 영어학원으로 몰아넣을 것임을 왜 모르는지 어휴... 놈들의 썩은 머리통을 열어 씻어줄 수도 없고 그저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