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 푸념'에 해당되는 글 109건

  1. 2007.10.06 빈축을 사는 광고 10
  2. 2007.09.11 미꾸라지가 너무 많다 3
  3. 2007.09.11 그 놈의 학벌 4
  4. 2007.08.16 가방끈 6
  5. 2007.05.03 어린이날 5
  6. 2007.04.24 귤과 오렌지 13
  7. 2007.04.22 싱글이 어려워 9
  8. 2007.04.18 동창회 6
  9. 2007.04.17 개인의 자유 9
  10. 2007.03.17 옹졸한 라니씨 15
얼마 전부터 나혼자 심히 '재수없어' 하던 광고가 있었는데
혹시나 이웃 블로거가 만드셨으면 어쩌나 싶어서;; (사실 지금도 좀 조심스럽다 ㅎㅎ)
투덜대지 않고 그냥 넘어가렸더니
나만 불쾌했던 게 아니었던 듯 소비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광고에 대한 기사에 그 광고도 언급되었다.
바로 삼성 래미안 아파트 광고다.

요새 어린이와 어른 버전, 두 가지 종류로 제작되어 수시로 TV에서 볼 수 있는데
골자는 애나 어른이나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를 처음 집에 데려가면서
"나 여기(놀이터마저도 삐까번쩍한 래미안 아파트에) 살아"라고 뻐긴다는 내용이다.
물론 친구와 애인 집에 초대되어 간 꼬마 여자애와 어른 남자는 래미안 아파트임을 발견하고
아주 흡족하게 '봉' 잡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_-;;
이런 내용의 광고가 아이디어 단계를 거쳐 최종 제작되어 소비자에게까지 선을 보였다는 사실은 그만큼 요즘 사람들에게 너무도 당연히 통용되는 가치를 반영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더 그 광고가 재수없고 기분이 언짢다.

같은 초등학교에서도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 사는 아이들 사이에 두터운 벽이 존재하고
아파트 사는 아이들과 일반 주택에 사는 아이들 사이에 위화감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이젠 아예 광고마저도 그런 세태를 자랑삼아 강조하고 나선 게 아닌가.

물론 고급 승용차 광고에는 늘 차가 그 사람을 대변해준다는 식으로 소비심리를 조장하는
경우가 많았고, 모든 사치품들이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는 이유도 바로 물건으로 자신의 격을 높여보겠다거나 자신이 속한 계층을 과시하겠다는 속물근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넉넉한 사람들이 '집'마저도 자기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삼게 되어
이름만 대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거릴 만큼 계급과 부의 상징이 되어버린 수많은 주상복합아파트의 존재를 우리도 익히 알고는 있지만;;;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 삶의 공간인 '집'에 대한 광고마저도 그런 논리를 따라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서글프다.

내가 아파트에 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싫어하기 때문에 더욱 입에 거품을 물고 성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광고는 막연하게 아... 저 아파트에 살면 좋겠다.. 는 동경으로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유명 건설회사의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아니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에 살지 않고서는 뿌듯한 마음으로 애나 어른이나 친구를 집에 선뜻 데려갈 수 없을 거라는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
니들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그런 마음을 갖고 상처 받는 이들이 있단 말이다!

흠..
광고의 효과는 일단 욕을 먹더라도 내용을 각인시키고 기억이 오래 가도록 만들면 성공이라던데 그런 의미에서라면 퍽이나 성공한 광고일 듯 하다.
나를 비롯해 그 광고를 짜증스럽게 생각한 소비자들은 래미안 아파트만 보아도 재수 없는 그 광고를 떠올릴 테니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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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미꾸라지 몇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는 하지만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고만 있기엔 미꾸라지가 너무 많아 보인다.
특히 내가 요새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 미꾸라지는 바로 종교계 인사들.. -_-;;

종교와 정치 문제는 심도 있는 사색과 논리 없이는 피해야할 주제임을 잘 알지만
내가 욕하려는 건 종교 자체가 아니라 '종교인'들이기에 그냥 잠시 주절거려도 상관없다고
믿으련다.
부패하는 건 늘 불교나 기독교 자체가 아니라 승려와 성직자들이 아닌가.
종교계 지도자들입네 하는 작자들이 요즘 보이고 있는 행태는 참으로 봐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최소한 성직자가 됐다면 세속적인 권력과는 멀어져야 마땅할 것 같은데
저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성직자'라는 지위를 이용하고 있는 듯하다.

재산을 빼돌리질 않나 정치 비리에 연루되질 않나
주먹다짐을 앞세운 패거리 싸움을 벌이질 않나
오만불손하고 구태의연한 선교론을 펼치질 않나...
하나같이 썩을 대로 썩은 것이 악취를 풍긴다.

물론 묵묵히 구도와 수행의 길을 가거나 높은 분의 은혜를 세상에 전하려는
제대로 된 성직자들도 여전히 많을 것을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
하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건 언제나 속물스럽고 부패한 종교인들이니
종교에 대한 나의 회의는 나날이 깊어만 간다.
전지전능한 높은 어르신은 왜 저런 미꾸라지들이 마냥 판을 치게 내버려두는 것일까.
악에 물든 세상을 확 갈아엎기 위해 종말을 준비하기 위함이라면
과연 그분은 자비로운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_-;;

나 같은 삐딱이의 좁디좁은 사고로는 역시
종교 또한 인간이 사회통제를 위해 만들어낸 '제도'이기에 헛점이 많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ㅋ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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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인사의 학벌 위조로 시작된 사회적 파문이 정말 끝이 없다.
어떤 이는 수사의 대상에 올랐고
어떤 이는 외국으로 떠났고
어떤 이는 사실을 밝히고 나서 거짓이든 아니든 눈물의 참회를 하고 있다는데
이어지는 폭로와 고백을 계속 지켜보기가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뿐인가 이젠 조직적으로 정부측에서 비인가 대학에서 학위를 받아 버젓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 학벌 사기꾼들을 색출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니
정말 투명하고 정직한 '학벌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건 좋지만
점점 마녀사냥을 닮아가는 분위기가 이 나라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나 보다.

며칠 전 지인의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다.
XXX라는 사람을 아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늙다리 대학원생이던 시절, 미국 대학에서 유학중이던 XXX가 방학동안 귀국했을 때 인사를 나눈 정도라고 했더니 지인은 대뜸 그가 다닌 학부가 '본교'인지 '분교'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나야 학부는 전혀 다른 대학을 다닌 사람이고 학번 차이도 워낙 커서 잘은 모르지만
'본교'인듯 했다고 대답했더니 확실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했다. -_-;;
학교마다 거의 다 마찬가지겠지만 타학교 학부 출신은 물론이고 '본교생'과 '분교생'에 대한 차별과 선입견도 꽤 큰 것이어서,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출신'이 어딘지는 은밀하게 쑤근댈 근거를 제공하는 꼬리표로 인식되는 듯했었다.
내가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누구는 타교 출신이고 누구는 분교 출신임을 저절로 알게 되었으니까.

나중에 알고보니 사연인즉,
XXX라는 사람이 최근에 어느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는데
그 대학 강사들 사이에서 XXX가 본교가 아닌 "분교 출신"이라는 소문이 횡행하고 있어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였다.
내가 알기로 XXX는 꽤 괜찮은 미국 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왔으니, 최근 몇년은
교수 임용을 위한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는 '강사 생활'을 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우스운 건 그의 학벌에 대한 의심의 이유였다.
그의 아내가 같은 학교 '분교 출신'이라는 것. -_-;;;

학벌 파문이 이토록 시끄러운 와중에, 설마 자격도 없는 사람을 떡하니 영문과 교수로 임용시키지는 않았을 터인데도 단지 아내가 같은 학교 '분교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무조건 그의 출신 성분을 의심하고 '자체 진상 조사'에 들어간 그 동네가 몹시 무서웠다.
비인가 대학의 학위로 버젓이 교수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어느 학교든 교수임용 과정에서도 권력의 비호나 비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교수 임용 과정의 최종 단계에 같이 올랐던 자격 있는 인사의 논리적인 반발이나 양심선언도 아니고 단지 부인이 분교 출신이니 남편도 분교 출신임에 틀림없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얘기는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다.
설사 그의 학부가 '분교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적절한 절차를 밟아 대학원을 다니고
외국에서 학위를 따고(사실 영문과는 미국 대학 학위만 권위를 인정하는 못된 편견이 심하기도 하다)
또 교수임용 자격에 준하는 논문도 발표하여 정식으로 선발된 교수라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XXX가 교수로 뽑힌 그 대학출신의 경쟁자 강사들은
감히 '타대학 분교 출신'이 임용되었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사건은 씁쓸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 듯하지만 (나야 중계방송만 들었으니 실제 속내는
알 수 없다) 나로선 잘 알지도 못하는 XXX가 혹시라도 학교에 그런 소문과 분위기가 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이 어떨까 괜스레 안타깝고 찝찝하다.
부디 말 많은 동네에 잠시 떠돈 헛소리가 그의 귀에까지 전해지진 않길 바랄 뿐이다.

이렇듯 내 주변까지 파고든 학벌 사기꾼 사냥의 열기를 새삼 경험하며
결국 온 나라를 몇달째 뒤흔들고 있는 가방끈 파문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건, 가방끈 화려하고 긴 자들의 사기꾼 색출작전이 아닌가 말이다.
감히 거짓 탈을 쓰고 권위의 아성에 끼어든 보잘것 없는 존재들을 단죄하겠다는 그들만의 리그에 우린 괜히 덩달아 춤추고 있는 건 아닌지?

학벌 위조 파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이 비난을 받는 이유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학벌 위조로 큰 이익을 누렸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그들의 학벌이 비천하고 낮기 때문인지 돌아봐야 한다는
며칠 전 누군가의 주장이 자꾸 가슴을 친다.
 
기회와 돈만 있다면 너도나도 외국 유학을 떠나 학위를 따오고 싶어 하고,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고도 좀처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실업율 최고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괘씸죄가 적용된 게 분명한 이 사회적 파문은
우리들 가운데 누구도 돌을 던질 자유가 없음을 역설적으로 시사하는 게 아닐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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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끈

하나마나 푸념 2007. 8. 16. 01:17
신정아, 김옥랑, 이창하, 심형래, 정덕희, 윤석화...
요즘 학력위조 문제로 꼬리에 꼬리를 물듯 언론에 등장한 사람들이다.
다들 느끼는 기분이겠지만
나는 정교하게 학력을 위조하고 보란듯이 그 지위를 이용한 저들에게 분노하는 마음 보다
여전히 가방끈에 목매다는 이 사회 풍조가 어처구니 없고 슬프다.
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얼마나 학력이 중요하면 검증 잣대로 폭로될 수 있다는 불안한 가능성을 담보로 저런 짓을 해댈까.
현재 검찰에서 조사중인 유명 학원들의 강사진들도 다들 벌벌 떨고 있다는데
그간 알게 모르게 학력을 속인 사람들이 얼마나 더 폭로되어 나타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더는 알고 싶지 않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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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하나마나 푸념 2007. 5. 3. 00:23
어린이날 선물을 사느라 오밤중까지 북적북적 선물코너가 요란한
O마트에 다녀오면서
요새 어린이는 예전보다 불행한 삶을 살기 때문에
그 보상으로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린시절..
그러니까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린이날 전날이 되면(어린이날은 휴일이니까)
수업도 거의 안하고 대강 노래나 부르면서(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이딴 노래)
놀다가 가끔씩 나타나는 엄마들이 들고 오는 과자며 사탕, 아이스크림 같은 걸 받는 게
큰 선물이었다.

그러니깐 몇몇 엄마들이 반 아이들 머릿수대로 '자야'(라면과자), '왔다바'(쵸코바였던듯), '줄줄이 사탕'  같은 걸 사갖고 와선 교실에서 나눠주었는데;;
언젠가 울 엄마도 친구 엄마랑 둘이 함께 '쮸쮸바'를 반친구들에게 돌려서 내가 기분이 아주 으쓱했던 것 같다.

그날 집에 갈 때 가방엔 남은 과자봉지와 사탕 따위가 들어 있어서
착한 누나답게 동생들에게 가져다주었던 것으로 기억함.

그런데 초등학생 조카를 보니, 어린이날이 되면 엄마들이 아예 돈을 많이씩 걷어서
전체 반 아이들에게 시계나 보조가방 같은 걸 사준다고 했다.
서로 고르겠다고 난리치면 안되니깐, 여자애들 남자애들로 무조건 나눠서 다들 똑같은 걸로..
그런데 그게 모든 엄마들이 다 돈을 내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 큰 아줌마들이 전화를 돌려서 무조건 내라고 하는 액수만큼 내야한다고 했다. -_-;; 무서운 아줌마들..

내가 그 얘길 하며 마구 분개했더니만
어제 만난 후배네 조카 학교는 한술 더 떠서
엄마들이 아예 단독으로 반아이들 선물을 30-40개씩(그나마 인원수가 적어 다행이겠다) 다 맞춰서 선물해야 한단다.
후배의 동생은 그래서 우산을 30개 맞췄고
다른 엄마는 줄넘기를 30개 사기로 하는 식으로...
켁..
그럼 어린이날 선물을 30종류나 받게 되는 거냐고 물으니, 모든 엄마들이 선물을 마련하는 건 아니니까 30종류는 아닐 거란다.
거기다 또 선생님 선물비는 따로 내야 한다고... +_+

아...
요즘 출산율 낮아지고 교육비 무서워서 도저히 애들 못 키운다며
아이들 많이 낳는 게 부의 상징이라고 빈정거리는 건 정말 진실이겠더라.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은데다, 철철이 선물값도 엄청나고, 이런저런 파티도 해줘야 한대고
(울 올케도 정민공주 1학년 생일 때 전체 반아이들 다 초청하고 엄마들까지 떼거리로 몰려와 생일잔치 치르는 바람에 병났는데, 1학년때만 다들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해서 참았더니 요즘도 계속 그렇게 하는 엄마들이 많은데다, 심지어 요샌 생일 당사자가 초대된 친구들에게 답례품을 돌리는 '풍습'까지 생겨 더 골치라고 했다. 어휴.. 엄마들까지 아이들 생일잔치에 따라가는 건 순전히 탐사용이고--가정형편이나 교육열의 따위가 자기 애와 어울려 놀아도 되나 안되나 검사한단다--학습지나 학원 정보를 캐내기 위함이라는 얘길 듣고 보니, 나는 올케에게 그냥 확 '개무시'하라고 조언해줬다. 아.. 또 화난다)
애가 학교에서 좀 뒤떨어지면 선생한테 확실하게 '약'을 써줘야 한다나 뭐라나.
게다가 가끔씩 교장선생이 엄마들 단체로 불러다 놓고 반반마다 에어컨을 바꾸라거나
TV를 대형 벽걸이형으로 바꾸라거나 요구를 하기도 한단다.
세상이 완전 미치지 않고서야!

다른 직업은 몰라도 교직만은 인간의 자질을 제대로 보고 뽑았으면 정말로 좋겠는데
교육꼬라지는 나날이 우습게 돌아가고
애들 가르치는 건 순전히 엄마들과 사교육의 힘에 맡기는 시대가 되었으니
어쩌면 좋을꼬.

아동 심리치료를 하는 친구 말을 들으면
애들은 그저 뛰어놀며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또 해결하고 협상하고 그래야한다는데
방과후 초등학교 앞에 주욱~~ 늘어선 노란색 학원차와 엄마들 자가용을 보면
자폐아가 폭주하고, 여러가지 사회적응 장애를 보이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가 다 있다.

그나마 울 정민공주는 학원따위 안다니니깐 공부 스트레스를 거의 안받을 줄 알았는데
아까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한테 '인생게임'이란 보드게임을 (물론 본인이 원한 거다) 선물
받고는, 재미있게 놀라는 내 말에
'내 인생은 엄마한테 혼나는 것밖에 없으니 그거라도 갖고 놀아야 한다'고 말해 충격을 안겨줬다. 헐... *_*
겨우 10살짜리 입에서 '인생'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놀라운데, 하물며 저런 말을 하다니;;;

어린이날 기념으로 거금 들여 선물을 사주고도 고모의 마음이 아주 씁쓸했다.
나의 어린시절은 그저 행복하게 뛰어놀던 추억밖에 없는 것 같은데
우리 정민공주도 다 커서 뒤돌아보면 그렇게 행복한 추억으로 오늘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몹시 염려스럽다.

세상이 어쩌려고 이렇게 돌아가는지 원...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날 단 하루만 어린이가 행복해지라는 건 아닐 터인데
요즘 아이들은 정말로 어린이날 단 하루만 어린이 대접을 받고 사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어린이다운 건 수십만원짜리 선물이나 어린이날 특별공연이나 놀이공원 소풍이
없어도 그저 신나고 행복한 건데 참...

(머리를 쥐어짜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계속 말줄임표로 말이 끝나는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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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 옳다고 믿는 것과 실제 행동 사이엔 늘 괴리가 존재한다.
그래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여기면서도
뭔가 소신을 행동에 옮기긴 어려운 이기주의자로 살아가는 나날이 이어진다.

가령, FTA협상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도 정작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열심히 주시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가장 덜 타락한 인물이라 여겨 지지했던 대통령이 실망스러운 일들을 차례로
저지르는 걸 보며 어느샌가 덩달아 욕을 해대면서도,
이번엔 보수세력의 'FTA 음모론'을 믿고 싶었다. "최대한 협조하는 척하다가 최종 협상 테이블에서 대통령이 판을 뒤엎을 것"이라는... ㅋㅋ
그러나 그런 급진적인 시나리오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그 역시 큰형님을 깍듯하게 대접하고 모시는 이 나라 정치인이었으니까.

그가 탄핵을 당했을 땐 추위를 무릅쓰고 광화문 네거리로 달려가 촛불시위를 벌였는데
똑같은 장소에서 FTA 관련 촛불시위가 벌어질 땐 단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몇년 새 그만큼 세상일에 대한 열정이 식고 늙어버려 귀찮음이 앞선다는 핑계를 대는 건
누워서 침뱉는 격일 게다.

이번 FTA 협상으로 어마어마한 액수의 농가 피해액이 점쳐지고 있고
무역수지에 대한 우려가 연일 흘러나온다.
덩달아 한숨을 쉬면서도, 막상 우리 집 냉장고를 열어보면 민망하다.

새콤달콤한 과일을 몹시 좋아하는 나는 그간 오렌지와 체리 같은 수입 과일을 많이도 먹어치웠다.
턱없이 비싸다 여기면서도 어김없이 사다 먹으며 나도 모르게 투덜거렸었다.
"아쒸... 미국에선 3불만 주면 오렌지 한 광주리쯤 사다 먹을 수도 있고
체리도 10불어치 사면 엄청난 양인데!"라면서.

귤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귤나무를 불태우며 울부짖던 모습을 본 뒤론, 그간 수입과일에 맛을 들여 더 싸게 많이 먹고파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아직은 유예기간도 있고, 국회 비준도 남아 있고(물론 알아서 기는 놈들이 결국 해치우겠지;;)
우리나라 농촌에 본격적으로 타격이 시작되는 시기는 좀 더 있어야 한다지만,
정책으론 반대한다고 욕을 해대면서 현실의 입맛으론 이기적이었던 알량한 나의 태도라니...
역시 양심은 오래 전에 사라지고 없었던 게 아닐까.

인간이란 모름지기
농약과 방부제로 범벅된 수입농산물보다는
최대 30킬로미터 이내 반경에서 생산된 제 지역의 청정농산물을 먹어야
유통문제의 구조적인 비리도 척결되고 지구를 오래 살릴 수 있다는데,
현실은 자꾸만 거꾸로 흘러간다.
어디서나 횡포를 부리는 강대제국의 오만이 밉고, 그 논리에 편승하는 정치인들이 꼴보기 싫다.

어차피 요새 귤은 제철이 아니지만
작년 같으면 사흘이 멀다하고 냉장고를 채웠을 오렌지 대신 엄마한테 다른 과일을 먹자고 이야기 하는 것으로 그나마 부끄러운 면피를 시도하는 중이다.
오렌지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엄마는 비슷하게 생긴 금귤(내게는 여전히 낑깡인;;)을 사다주셨다.
오렌지를 먹으려면 허옇게 말라붙은 농약과 방부제를 닦아내느라 한참 씻어내고도 찜찜한데, 우리나라산이라며 농협에서 사온 금귤은 그래도 물에 몇번 헹궈내니 싱그럽고 말갛다.  

오렌지와 체리를 좀 비싸게 사먹으며 계속 투덜거려도 좋으니
귤과 금귤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과수원을 뒤로 하고 길거리에서 온몸으로 투쟁하는 일은 부디 없으면 좋겠는데... 이젠 너무 늦은 바람인 것 같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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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싱글이란 말이 한참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게 벌써 또 몇년 전이었을 거다.
출산율 저하와 노령화 사회 문제가 대두되기 훨씬 이전이었으니까.
서서히 결혼연령이 높아지며 비혼(非婚)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을 때 옛날과 달리 결혼에 목매지 않고 자기삶에 충실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그땐, '초라한 더블'과 대조되는 '화려한 싱글'이라는 말이 그닥 긍정적으로  
쓰인 것 같진 않다.
칭찬해주는 척 하면서 예리한 꼬챙이로 슬쩍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것도 물론 나 혼자만의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_-;;)

그러더니 비혼 인구가 워낙 많아진 때문인지 '화려한'이라는 말은 가고
'싱글'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던 것 같다.
싱글의 단출한 살림에 맞춰 소형 가전제품이 쏟아져 나온다는 얘기도 들렸으니까.
그러다 또 얼마 전부턴 '돌아온 싱글'에 대한 이야기도 많아졌다.
영어권에서 '싱글'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그냥 혼자인 사람들, 이혼을 몇번 했든 말든
사별을 했든 말든, 현재 함께 하고 있는 파트너가 없으면 별로 따질 것 없이 그저 '싱글'인데
그에 맞는 우리말을 끼워맞추다 '미혼(未婚)'이란 말은 어쩐지 '결혼을 못한' 모자라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의 뉘앙스가 느껴지는 데다 외래어 사용에 호의적인 사회적인 분위기가 가세되면서 쓰게 된 말인데, 아무래도 '원래부터 싱글'(?)이었던 사람들이 '싱글' 상태를 벗어났다 다시 되돌아온 사람들과 동등하게 취급 받는 것이 싫었든지, 아니면 그렇게 불러주기가 (남들이 보기에) 민망했든지 뜬금없이 '돌아온 싱글', 줄여서 '돌싱'이라는 말도 마구 사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내 나이가 나이다 보니 -_-;;
주변에도 돌아온 싱글들이 꽤 되는데, 본인들도 그 호칭을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이혼녀/이혼남보다 어쩐지 자기들의 처지를 훨씬 높게 대접해주는 것 같은가 보다.
거기다 '돌아온'이라는 말이 주는 과거회귀적인 느낌도 나쁘지 않다.
누구나 애틋하고 소중한 과거와 추억 한 조각쯤 간직하고 있기 마련 아닌가.
그런데 재미 있는 건, 애틋하고 뿌듯한 과거 상태로 '돌아온' 그들이 다시 얼른 또 짝을 찾아
'가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ㅋㅋㅋ
가만 보면 내 주변에 10년도 넘게 꿋꿋하게 싱글 상태를 유지하는 지인들은 워낙에도 거의 늘 혼자였거나, 연애 경험이 전무하거나(심지어 30대 중반임에도 남자랑 손도 안잡아본 이도 있다! *_*) 해서 외로움이 뭔지 뼈저리게 모르는 것 같다. (사실 나도 별로 외로운 거 모르겠다 ㅎㅎㅎ 인간의 본원적인 외로움이야 옆에 누가 있어도 마찬가지 아닌가? 안 그렇다면, 유부녀/유부남들이 왜 외로워하겠어!!)

그런데 돌아온 싱글들은 대개 혼자라는 상태를 잘 못견디기 때문에 또 금방 짝을 찾아 나서고, 신기하게도 또 싱글 탈피에 성공을 거둔다. 참 신기하다. @.@

아.. 이야기가 딴길로 새고 있다 큭..

암튼 내가 싱글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요즘 언론에서 가끔 마주치는
'골드 싱글'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골드'라는 말에서 풍기는 누런 황금빛 풍요와 돈의 냄새가 말해주듯
'골드 싱글'은 부와 명예, 그야말로 모든 걸 다 갖춘 전문직 비혼남녀를 말하는 모양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돈 많은 여자들.

그들을 아름답게 포장해놓은 설명을 읽어보니,
사회적인 성취를 위해 연애의 필요성이나 나이 따위 잊고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부와 명예를 손에 거머쥐어서 딱히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란다.
대기업 중견 간부라든지, 이른바 '사'자가 붙은 전문직 여성들.
이들은 주로 자기관리에 힘쓰느라 열심히 헬스클럽엘 다니거나 취미활동을 하며 '젊게'
살고 있어서 종종 나이차가 엄청난 연하남들을 꿰차기도 한다나. ^^

30대 후반에서 40대까지도 거뜬히 아우르는 '골드 싱글'의 정의를 언뜻 보며
"그래, 데미 무어가 17살 어린(맞나?) 애쉬튼 커처를 데리고 살듯이
이제 우리나라 여자들도 능력 하나로 어린 꽃미남 남편을 거느리고 사는 시대가 됐군..."
이라고 중얼거리다 보니 심사가 뒤틀렸다.
일단 젊음과 성형에 중독된 데미 무어 같은 여자를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하지만
싱글임이 상찬을 받는 건 오로지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반드시 '경제적인 풍요'를 누려야만 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러니까 물질적으로 별로 이뤄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많은 '싱글'들은 여전히 어딘가 좀 모자라고 결함이 있는 반편 취급을 하면서, 돈과 미모와 젊음을 유지하는 사람들만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다고 여기는 분위기, 아 정말 싫다!!
우쒸...


이젠 정말 결혼이 선택인 시대가 왔고
혼자 산다는 것이 그닥 '흉'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기 명의로 된 집이나 거액의 적금통장 같은 유형의 물건으로 화려하고 찬란한 미래를 준비해놓지 않았더라도, 소박하고 성실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비혼'들이 이 땅엔 훨씬 더 많다고 믿는다. (나처럼!! ^^;;)

어차피 한자도 외래어인 셈이니, 한글에서 외래어를 빼면 어휘력이 한참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외국어의 문체까지도 포괄적으로 사용하여 이래저래 '감염된 언어'(고종석 선생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가 곧 살아있는 언어라는 논지에 동감하지만
그래도 외국어의 남용에는 여전히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데,
'골드 싱글'은 내용도 포장도 정말 마음에 안든다!!

'골드'와 더불어 '싱글'이란 말도 꼴보기 싫어져서 뭔가 근사한 말을 만들어내고 싶은데
남들이 찾아낸 '비혼'이란 말 외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역시나 '싱글'은 어렵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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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

하나마나 푸념 2007. 4. 18. 23:34

드물긴 하지만 평일 점심무렵에 백화점 식당가엘 가면
아주 곱게 차려입으신 어르신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연세가 최소한 일흔은 넘으셨을 것 같은 할머니들이지만, "어머, 얘 너 어쩜 옛날이랑 그렇게 하나도 안 변했니, 호호호.."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대로 소녀같다.
그래서 대부분 비싯 웃음이 나오는데...
백화점에서 단체로 곱게 차려입고 (그 분들 중 서넛은 대개 엘리자베스 여왕이 쓸 것 같은
멋드러진 모자까지 쓰셨다) 만나서 점심 먹고 차 마시고 수다떠는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는 건 분명 그 어르신들의 특혜란 생각이 든다.
같은 나이에 아직 재래시장 입구나 전철역 앞에 쪼그리고 앉아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들도 있는데, 그 분들은 한달인지 두달인지 모를 동창회 모임을 위해 그날따라 유독 옷장을 뒤져가며 성장을 하셨을 테고, 오찬이 끝나면 우르르 백화점에서 단체로 쇼핑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늙어서도 그렇게 '격식차려서'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 처음엔 미소를 짓더라도 슬며시 기분이 묘해진다.
왜 '동창회'라는 건 늘 그렇게 자기과시의 장이어야 하는지.

울 왕비마마도 예외는 아니다.
한달에 한번씩 셋째 화요일에 동창들이 모여 점심을 먹는데...
백화점파 할머니 일당들처럼 요란하진 않지만, 그래도 꼭 옷과 머리 때문에 신경을 쓴다.
그간 와병 때문에 동창회를 두달이나 빠져서 이번엔 꼭 가야한다던 왕비마마는
어제 아침 댓바람부터 무얼 입고 나가나 옷장과 씨름을 했다.
누구나 계절이 달라지면 입을 옷이 없다고 타령을 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울 엄마의 경우엔 역시나 옷장 가득 옷이 들어 있고 동창회용의 점잖은 옷들도 꽤 된다.
옷 없다고 타령이 시작되면 내가 먼저 짜증이 나기 때문에
내 옷은 잘 안 사도(난 언제부턴가 옷에 거금을 들이는 것의 가치를 잘 못 느끼겠더라^^)
엄마 옷은 턱턱 사드리는 편이라 더욱 그렇다.
그런데 또 카드춤 한 판 요란하게 추어서 옷을 사드리면, 괜히 비싼 옷 샀다고 또 난리다.
아으...
그럼 동창회 갈 때 입을 옷 없다는 소리나 하지 말든지~!

일단 입을 옷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눈에는 있는 옷도 제대로 안보이는 법..
결국 내가 코디까지 다 해서 골라준 옷을 입은 엄마는
별 볼일 없는 내 드라이 솜씨로 그나마 환자모드를 확실하게 탈피하고 동창회엘 갔다.
다녀와선 또 며칠 어떤 아줌마가 어디로 해외 여행 다녀왔고
어떤 아줌마가 어디에 땅을 샀으며... 어떤 운동을 해서(또는 어느 비만 클리닉을 다녀서) 살을 얼만큼이나 뺐다더라...  뭐 이런 얘기를 할 거다.
엄마 친구들이 정말로 얼마나 부유하고 여유로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울 엄마가 보기엔 당신이 친구들보다 한참 못살고 재테크 재주도 없어 평생 가난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얘기다.

완전 대규모 동창회도 아니고, 열명 남짓 모이는 모임에서 아줌마들이 만날
옷 신경쓰고, 머리 신경써서 만나가지고는 늘상 그런 얘기만
한다면 대체 무슨 재미로 한달에 한번씩이나 만나는지 난 도무지 모르겠다.
그나마 엄마의 사회생활이니 막을 생각은 없지만
나라면 그런 동창회 돈주고 나가래도 싫다.

졸업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대학동기들을 모아서 몇년 전 떼거지로 몇번 만나봤지만
결국 서로 코드도 잘 맞지 않는 친구들의 대규모 모임은 역시 역부족이란 걸 느꼈더랬다.
개개인끼리는 서로 소통이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단체로 모아놓으니
한다는 얘기들이 하나같이 주식, 부동산 따위의 재테크 얘기 아니면
애들 교육얘기, 기껏해야 음담패설이었고, 잘 나가는 것 '같은' 친구와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친구들의 위화감도 만만치 않았는데, 모아놓은 돈도 없고 재테크할 위인도 못 되며 걱정할 처자식 또는 남편자식 없는 나 같은 한량이 제 아무리 중심을 잡으려 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일임을 실감했다.

앞으로도 내게 대규모 '동창회'라는 이름의 모임은 없을 거다.
개별적인 옛친구 상봉이라면 또 모를까...
그리고 다 늙어서 친구들을 만나도 절대로 엘리자베스 여왕이 쓸 것 같은 모자에 우아한 성장을 하고 만나는 일은 없겠지. 청바지에 키높이 운동화라면 몰라도... -_-;;
친구가 보고 싶으면 지금처럼 그냥 몇명씩, 때론 일대일로 그리움을 풀어내면서 살리라.
그러다가 혹시라도 나와의 만남을 자기과시의 장이라 여기는 친구가 있으면
단칼에 잘라버려야지. 흥!

아무려나 다음달 셋째 화요일에 또 왕비마마의 옷타령을 들을 생각을 하니 짜증부터 앞선다.
백화점 봄정기세일 할 때 모셔가서 한판 지르시라고 했어야 하는 건데...
아니지.. 그나마 동창회 나갈 정도로 건강해지신 걸 기뻐해야 하는 건가. 흠.
하여간에 동창회.. 말만 들어도 참 싫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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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버지니아 공과대학 총기난사 사건을 보도하느라 뉴스가 시끄럽다.
범인 포함 33명이 한꺼번에 죽다니..
난리가 날만도 하다.

미국이란 나라가 온갖 잘난 척은 혼자 다 하지만
인권문제를 파고 들어가면 또 제일 별볼 일 없는 곳이고
9.11사건을 봐도 정치하는 놈들이 하도 나쁜짓을 많이 해서 죽어나가는 건 역시 국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국민의 안전 문제를 놓고 보자면 참 한심한 수준이다.

미국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며 낯선 사람들에게도 괜히 인사를 건네거나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건  그네들이 유독 인사성이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에게 "나는 너를 해칠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주어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함이란 얘기를 나는 굳게 믿는다. -_-;;

까놓고 말해서 멀쩡히 걸어오다 누가 내게 총을 들이댈지 모르는 거 아닌가.

강의실에서 수업 듣는 학생들에게 무작정 총질을 해댈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는 나라는
종교나 민족, 영토, 종파의 명분 때문에 오랜 세월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나라의 여건과는 분명히 다르다.

사실 이런 사건에 망연자실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쪽이 더 '민주적'인지 잘 모르겠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느라,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자유까지 허락하는 것과
개개인이 좀 더 안전하게 살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총기 소유를 제한하는 것 사이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민주적'이란 말인가?

다수의 행복을 보장한다면 총기 소유를 제한하는 쪽이라고 생각해야 될 것 같은데
민주주의가 말하는 '다수'란 어떤 경우 '소수'보다 단 1퍼센트만 많아도 되는 것이기에
'다수의 행복'이라는 말은 다수 못지 않게 수많은 '소수의 불행'을 담보로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다수결'이라는 말이 싫었던 건
민주적인 척 하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또 다른 악습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말로 '평등한' 사회라면 다수 뿐만 아니라 모든 소수들의 의견도 얼마든지 목소리를 높일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으며, 다수의 폭력에 무조건 희생당하지 않는 곳이어야 할 것이다.
허나 소수의 목소리는 늘 묵살되고 잊혀지기 쉽다.

이번 참극을 두고 미국에선 또 다시 총기 소지 제한에 관한 이야기가 대두되겠지만
늘 그랬듯, 총기업자들의 집요한 로비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의 논리 때문에라도 야만스러운 미국인들은 또 다시 끔찍한 총질이 언제든 일어날 여건을 계속해서 유지할 것이다.
역시 미국은 살 곳이 못되는 게 틀림없다.

돌연, 이민가 있는 친구들, 유학하고 있는 지인들이 걱정스럽다.
하필 벨로는 이런 난리통이 벌어진 날 그 야만스러운 나라로 출장을 가다니...

9.11사건 이후 단순히 아시아계 외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지인들이 오래도록
주시의 대상으로 살아가느라 다들 힘들었다는 얘길 들었는데
이번에도 범인이 아시아계라는 것 때문에 또 다른 인종 차별이 벌어지진 않을런지.
'인간의 자유' 문제를 놓고도
미국놈들은 자국민만 인간취급하는 곳이니... 더욱 걱정이다.
역시 미국은 참 싫은 나라이고, 오늘 같은 날은 뉴욕에 대해 품고 있는 로망 따위도 부끄럽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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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이해의 폭이 넓어져 너그러워진다는 말과
나이가 들수록 아이가 된다는 말은 둘 다 보편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듯한데
서로 완전 모순되는 뜻에서 알 수 있듯 여기서 '나이'는 전혀 다른 나이를 가리킨다.

예전엔 싫은 사람과는 죽어도 웃는 얼굴로 마주하지 못했고
싫고 좋음이 극도로 확연해서 매몰차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발칵 화를 내고 돌아서는 일도 많았지만
요즘엔 제 아무리 개같은 인간을 만나도, 그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딸, 아들이겠거니,
누군가의 부인/남편/자식/부모겠거니 생각하면 인간적인 연민도 느껴지고
싫어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까짓거 먹고 죽기야 하겠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걸 보면서
나는 '나이가 들수록 이해의 폭이 넓어져 너그러워진다'는 유형에 속하게 된 모양이라고
스스로 기특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나이'는 어느 기점을 끝으로 그 너그러워짐의 정도가 부뎌져 다시 편협함을 향해 달려가게 되나보다.
이제 좀 온화하고 너그럽고 부드러운 인간으로 재탄생했나 싶은 건 잠깐이고
자꾸만 까탈스럽고 짜증이 많아지는 데다, 자신감 결여에서 오는 과잉방어적인 표독스러움까지 품은 인간이 되어가는 듯.

일흔이란 나이를 몇년 앞두고 계신 부모님만 보아도
나이들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실감 나는데, 별것 아닌 일에 잘 토라지고 삐치고 노여워하고
벌컥 화를 내시다가 요령껏 잘 달래드리면 금세 아이처럼 풀어진다.
그런데 뒤끝 많은 인간인 나는 그러느라 속이 곪아터지는 것 같아 다시 또 속으로 독기를 품다 엉뚱한 데로 폭발시키고 있다.

나란 인간의 너그러워짐은 겨우 마흔을 기점으로 그 정점에 올랐다가
다시 편협함을 향해 달려간다는 뜻인가.
그래선 절대로 안될 것 같은데, 벌써부터 헷갈려죽겠다.

옹졸한 중년으로 치졸하게 늙어가긴 싫은데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다.
이왕이면 매사에 투덜대더라도 가능한 한 오래
적당히 너그러운 라니씨로 살아야 할 터인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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