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일 며칠 전부터는 총선관련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금지되어 있다더니
어찌된 일인지 한나라당이 과반을 훌쩍넘는 180석까지도 확보가능하다는 예측이 주를 이룬단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따로 없다.
투표율이 낮을수록 딴나라당과 꼴통보수에게 유리하다는 관측은 예로부터 규명된 진리인데 설상가상으로 투표일에 비가 온다 하니 투표율 저하는 불을 보듯 빤한 일이라, 어떻게 해야 이 나라 꼬라지가 좀 덜 미친 쪽으로 돌아가도록 놈들을 막을 수 있을지 나로선 가슴만 답답하다.

집으로 날아온 선거안내문과 정당선전물을 꼼꼼히 살폈지만, 역시나 경제를 살립네 하는 번드르르한 놈들의 표어엔 구체적인 방안이 단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다들 서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빈그릇 뿐이라며, 서민들을 위한 알찬 밥상을 차리겠다는 진보신당의 한장짜리 홍보물이 유독 가슴을 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대기업과 재벌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게 법규 완화해주고, 대운하 파헤쳐서 대규모 토목공사로 반짝 경기 살려내면 정말로 경제가 살아날까? 전 세계 경제가 뒤흔들리고 있는 마당에 단 5년만에 지들이 무슨 수로 이 나라 경제만 살리겠다는 건데? 그걸 순진하게 믿는 사람들은 대체 두뇌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을까?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땅부자 장관들로만 구성된 정부 각료들만 보아도 그들이 펼쳐나갈 정책이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 같은 부자들을 위한 특혜 정책일 뿐 정말로 서민들을 위한 밑바닥 경기 부활 방안은 전혀 없음을 도대체 왜 이나라 절반의 인구는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
기업이 살아나려면 비정규직 양산은 어쩔 수 없다는 따위의 발언이나 하고 앉아 있는 인간을 대통령이랍시고 뽑아놓았으면, 그 인간이 더 기괴한 미친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고 견제할 방법을 어떻게든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몇년 전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상연된 영화 <이멜다>를 번역한 적이 있다.
구두 3천 켤레로 유명한 이멜다가 직접 자기 입장을 적극 변호한 것으로 주목을 끌었던 라모나 S. 디아즈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이른바 <너도나도 국민을 위해 몸바쳐 일한다는 정치인들>의 사고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현실감이 없는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국고와 해외 원조자금에서 최소 1억 6천만 달러를 횡령했으며 20년간의 독재기간 동안 수많은 인권을 침해하고 야당 정치인들을 탄압했던 권력의 핵심이었던 이멜다는 <하느님이 주신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 당당하다>며 <주님께서도 환히 웃으며 자기를 천국과 영생이 길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이명박을 비롯한 소망교회파 각료들도 아마 마찬가지겠지..)

망명당시 대통령궁엔 보석만 트렁크로 4, 50개 분량인데 자기는 손주들을 위해 기저기와 우유병을 쌌다고 이멜다는 천연덕스럽게 인터뷰하고 있지만, 당시 미국 세관에서 찍힌 사진엔 트렁크마다 호화로운 보석과 귀중품들이 가득 들어 있는 식이었다.
더 웃기는 건 쫓겨나듯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뉴욕 중심가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던 이멜다가 겨우 5년 반만에 필리핀으로 돌아갔을 때 수천명의 국민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전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의 영부인으로만 알고 있던 이멜다는 당시 마닐라 시장과 주거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권력의 실세였고, 모든 독재자들이 그러하듯 눈에 드러나 보이는 전시행정을 위해 쓸데없이 여기저기 지었던 문화센터 따위의 건축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사고로 죽어나가도 공기를 맞추기 위해 시체발굴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공사 강행을 명했던 장본인이었다.
그런데도 시체로 돌아온 마르코스와 이멜다를 추앙하며, 독재자의 아들 딸을 각각 주지사와 하원의원으로 당선시킨 필리핀 국민들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름마저 친박연대로 뭉친 자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어마어마한 금액의 횡령 혐의로 정부에게 소송당해 배상 판결이 났음에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배상금 지불을 거부한 채, 오히려 참전용사 미망인 연금으로 매달 90달러씩 받고 있다는 이멜다는 자기 이름이 다이아몬드로 알알이 박힌 수제 콤팩트를 보란듯이 꺼내 화장을 했다. -_-;; (전재산이 29만원이라며 남은 배상금은 못내겠다 배째라고 하면서 사업번창한 자식들과 함께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연희동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요새 이 나라가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머지않아 대한민국도 필리핀처럼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진저리가 난다. 1퍼센트에 불과한 부자들이 99퍼센트의 부를 소유하고 누린다는 나라가 바로 필리핀이다.
더 좋은 나라로 유학보낼 여유가 안되는 우리나라 극성 부모들은 영어라도 배우게 하겠다고 아이들을 필리핀으로 조기유학 보내지만, 필리핀에서 좀 산다하는 집안의 자녀들은 전부 해외로 유학을 떠난다. 우리나라보다 더 심하게 미국병에 걸린 필리핀의 엘리트 집단은 독재정치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그 나라를 지배하고 지들끼리만 부를 세습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10%의 부자들이 90%의 부를 소유하고 있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소득 2만불로 대한민국과 같은 수준이라는데, 맨발에 다 떨어진 티셔츠를 입고 배에서 내리는 관광객들을 물에 젖지 않게 업어 내려주는 대가로 1불씩 받던 보라카이 짐꾼들을 맞닥뜨렸던 충격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날 배 주변에 수십명이나 몰려든 그들 가운데 그나마도 1불짜리 지폐를 받아들 수 있었던 이들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대한민국 국민들은 필리핀 국민들처럼 무지하다 싶을 만큼 순진하고 감정적이지 않다고 믿으며 희망을 버리진 않고 있지만 과연 그럴지 며칠만 지나면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명박을 과반 넘은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뽑게 만든 책임을 단순히 언론과 정치인들에게만 돌릴 수 없듯이
누구를 선택하든 총선의 결과에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정치 얘긴 밥맛 없어서라도 하기 싫어하는 내가 굳이 구구절절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쓰는 이유도
혹시나 단 한사람이라도 마음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박근혜의 친박연대나 이회창의 자유선진당이나 다 딴나라당 떨거지이니 그나물에 그밥이고
정치철새들 다 모아놓은 통함민주당도 꼴우습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최악의 정당과 후보들을 하나씩 제거하다보면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날 비록 비가 철철 내리더라도, 쉬는 김에 꽃구경 갈 생각에 마음 부풀었더라도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나라 꼬락서니를 염려하며 투표에 참여하면 좋겠다. *_*

백두대간을 속속들이 망가뜨릴 대운하는 절대로 안 될 일이며
서민들이 훌륭한 병원에서 훌륭한 의사들에게 평등하게 진료받을 권리까지 뒤흔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도 절대로 안될 일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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