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확실히 옛말이다.
살아보면 요즘 한국사람들 참 예의가 없다.
아직도 어른을 공경하는 편이고 존대말이 통용되며 상대적 강자에겐 굽실거리는 사회이긴 하지만
예의란 강자에게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약자의 태도가 아니지 않은가!
다시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도,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사람에게도 최소한 지켜야할 예의란 것이 있건만, 요샌 그런 걸 기대하는 내가 몹시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인간으로 생각될 정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운전을 할 때, 공공건물의 출입문을 열고 닫을 때,
사람들 많은 식당이나 병원에서, 몰염치하고 예의없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참으로 허다하다.
'익스큐즈미'와 '땡큐'를 입에 달고 사는 외국인들과 비교하자는 게 아니다.
어차피 그들은 개인주의가 극대화된 사회에 익숙한 이들이고,
우리야 어려서부터 '일동 차렷, 경례!' 구호에 익숙한 집단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터라
뭐든 서로 엉켜 뒤죽박죽 '같이' 행동하고 니 것이 곧 내것이라는 근거 없는 동질감 같은 것이 팽배하니
타인의 프라이버시와 공간에 대한 배려는커녕 복잡한 길바닥이나 장터에서 비켜달라는 말대신 손으로 툭툭 치고 지나가는 것쯤은 싫긴 해도 눈감아줄 수 있다.
원래 뒷간 앞에서도 말을 아끼느라 '흐흠' 헛기침으로 의사를 주고받던 민족인 것을 어쩌랴.
하지만 금연인 공간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남들이야 시끄럽든 말든 낮술을 먹고 식당에서 왁자지껄 떠들어 대고
경적금지구역 표지판과 저속 운전 당부 표지판이 붙어 있는 학교 앞에서 보란듯이 빵빵빵 경적을 울려대고
남들 다 줄서서 기다리다 합류하거나 빠져나오는 병목구간과 램프에서 뻔뻔하게 끼어들며 오히려 협박하듯 차체를 들이밀거나 욕설을 하고
걸음이 느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뀐 뒤에도 천천히 길을 건너고 있는 노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뒤에서
재촉하며 신경질적으로 빵빵거리고
골목길 막고 주차해놓은 주제에 연락처도 안 남기고
재활용품도 아닌 쓰레기를 남의 집앞에 몰래 내놓고
한밤중에 소움기를 제거했는지 일부러 요란한 엔진을 달았는지 아무튼 폭주족임을 광고하는 듯한 시끄러운 오토바이 타고 골목길 쏘다니고...
내가 사는 동네에 특히 예의없는 것들이 몰려사는지
요 며칠 계속 짜증스런 인간들을 많이 만났다.
타인을 조금 만 더 배려하고 최소한의 예의만 지켜도 자신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 될 터인데
다들 왜 그모양일까.
고리타분하고 권위적인 유교 이념이야 사라지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요즘사람들이 기본적인 예의까지도
밟아버린 채 자기본위적인 삶이 제일이라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렇게 예의없는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니
예를 떠받드는 문이라는 숭례문도 불타버린 게 아닌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