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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6 이해불가 10
  2. 2009.05.25 그날 9
  3. 2009.04.09 연예인과 딴따라 10
  4. 2009.03.19 이것이 온난화? 11
  5. 2009.01.20 암담 8
  6. 2009.01.16 편견 10
  7. 2008.12.04 4만원 16
  8. 2008.11.28 유가환급금 12
  9. 2008.11.08 해프닝일까 13
  10. 2008.10.07 길다 길어 12

이해불가

하나마나 푸념 2009. 5. 26. 21:30

매사를 삐딱하게 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나는 납득할만한 까닭없이 무조건 하지 말라면 더 해보고 싶고 다들 한쪽으로 몰려가면 괜한 반항심에 반대로 가고 싶어하며, 자발적인 비주류 또는 소수에 속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왔다. 그럴 때마다 나에겐 양심을 바탕으로 한 고유한 잣대 또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기에 삐딱하게 살아왔어도 크게 남들에게 큰 피해를 주거나 비난 받을 짓은 하지 않았다고 자신한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똑같이 서 있더라도 잔디가 밟아줘도 될 만큼 싱싱하면 냉큼 들어가, "잔디밭은 사람들 들어가 놓으라고 만드는 거지 구경만 하라고 만드는 게 아니잖아!"라고 큰소리 치지만 잔디가 부실하게 막 자리를 잡는 중이면 알아서 냅둔다는 말이다.
그런데 삐딱투덜이과에 속하는 나로서도 도무지 이해불가한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 가령, 경관이 아름다운 자연 속의 바위나 나무, 문화재 같은 것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제 이름을 새기는 인간들. 들짐승들이 겨우내 먹고 살아야 하니 도토리를 주워가지 말라고 부탁하는데도 굳이 배낭과 비닐봉지 한 가득 바리바리 도토리를 따고 주워 내려오는 사람들. 새로 조성한 동네 공원에 심어 놓은 식물 이파리가 나물거리라면서 남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죄다 따가는 아줌마들. 자기밖에 모르는 무식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라고 그들을 욕하지만, 최소한 그들에겐 이익을 추구한다는 (이름을 남겼고, 맛있는 도토리묵과 나물을 해먹을 테니까) 명분이라도 있으니 용서할 순 없어도 납득이 가긴 한다.
그런데 딱히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면서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최근 우리 동네 산책로는 자연천 복원이다, 자전거길을 새로 닦는다 해서 몇달째 계속해서 공사중이었는데 장마 전에 공사를 마무리하려는지 요즘들어 거의 막바지 포장 작업을 하는 곳이 많다. 한동안 흙길이었던 곳 한쪽을 먼저 아스팔트로 덮고 나머지는 특수 포장재를 깔 모양인데, 며칠 전 소나기가 내리는 날 하필 포장 작업을 했는지 산책을 나가보니 길 한쪽편으로 뭔가 하얀 재질을 깔고는 길게 비닐을 덮어 군데군데 벽돌로 고정시켜놓았고 새로 포장한 길 양쪽 끝에는 통행금지 표지판이 가로막고 있었다. 아직 포장길이 마르지 않아서 그렇게 해놓았으리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
그런데 놀랍게도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막아놓은 길로 접어들어 버젓이 비닐을 밟고 다니고 있었다. 일반 보행자 뿐만 아니라,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아이들, 어른들, 자전거를 타고 끄는 사람들까지. 나는 그 사람들을 하나 하나 붙잡고 인터뷰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들어가지 말라고 표지판도 서 있고 아직 안 말라 비닐 안쪽으로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게 빤히 보이는 그 위로 왜 굳이 들어가 걸어다니고 있는지? 바로 옆에 더 넓은 길이 얼마든지 뚫려 있는데?
그 구간을 더 지나니 새로 아스팔트를 깔아 놓은 넓은 공간 중간중간엔 찐득한 페인트를 쏟아놓은 것처럼 빨간색 과 초록빛 안료 같은 것이 넓게 칠해져 있고 역시나 접근금지를 알리는 빨간 원추모양 기둥과 벽돌이 둘레에 쳐져 있었는데, 표면이 마르기 전에 이미 여러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가 밟고 다녔는지 가혹한 발자국과 안료 엉겨붙은 자국이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도대체 왜일까?

아무 설명 없이 <들여다보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이 문에 붙어 있다면, 오히려 호기심이 동해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많으리라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마르지 않은 시멘트나 포장길, 페인트 위를 걸으면 표면이 망가질 뿐만 아니라 신발도 버릴 수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도 굳이 막아놓은 길을 뚫고 그리로 가는 사람들의 심리는 대체 무언지, 절대 이해가 안된다. 물론 누군가 처음 그짓을 시작하면, 덩달아 따라하고 싶은 군중심리나, 남들도 하니까 나도 아무렇지 않다는 막가파 정신이 발동할 수 있다는 정도는 나도 안다. 하지만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은 뻔뻔한 그들을 지켜보아야하는 사실만으로도 속이 상해서 전전긍긍하고 새로 까는 길 완공도 전에 다 망가진다고 혀를 끌끌차시는데, 그들의 양심이라고 태어날 때부터 철판을 둘렀을 리는 없고 도무지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차라리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서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겉치레 행정에 앙심을 품은 행동가들이 훼방을 놓은 것이라면 이해가 더 쉽겠다. 정치뿐만 아니라 도덕과 윤리 면에서도 후진국민이라 그렇다고는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역시 그게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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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나마나 푸념 2009. 5. 25. 17:26

2009년 5월 23일.
막내 조카가 만 세돌을 맞는 날이었다. 막내동생네 집으로 축하하러 가기 전에 조카가 좋아하는 약식을 만들 작정이라 다른 날보다 일찍 알람을 맞춰놓고 자는데 아침에 엄마가 나를 깨웠다.
이어지는 뉴스 속보를 계속 보면서도 멍한 느낌일 뿐 믿어지지 않았다.
똑같은 화면과 원고 읽기가 되풀이되다가 한시간쯤 지나면 새로운 속보가 이어지는 TV를 계속 틀어놓고 나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약식을 만들어 잣으로 하트를 그려넣었고, 조카에게 줄 생일카드를 적었고, 짤막한 유서 내용이 공개될 즈음 조카들과 놀아주려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조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으려니 큰동생이 물었다. "누나는 조문하러 봉화마을에 안 가냐?"
"나 노사모 아냐! FTA이후로 나 노무현 버렸잖아!" 나는 버럭 화를 내듯 말했다. 왜 화가 나는지 누구한테 화를 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도 꽤 오래 담배를 끊었다가 몇해 전부터 다시 골초가 되어버린 큰동생은, 그 순간 만약에 경호원에게 담배가 있었고 그래서 그가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면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렸다.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
문득 나는 2년전 아버지의 죽음 뒤 수없이 <만약에>를 상상하며 자책했던 모녀를 떠올렸다.
만약에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그냥 집에 있었더라면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지 않을까.
만약에 몸살 기운 있는 아버지의 전날 등산을 못가게 말렸더라면.
만약에 응급실 의사가 엉뚱한 말라리아로 의심하는 대신 뇌수막염을 먼저 의심해 척수검사를 했더라면.
만약에 아버지가 숨겼던 건강진단 결과서류를 진즉에 내가 빼앗아 읽었더라면...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불리고 조카들의 재롱에 깔깔 웃고 있던 저녁 무렵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마음이 아파서 혼자 술 한잔 하고 있는데 전화 할 데가 없더라..."
2002년 대선에서 선거 전날밤 정몽준이 전격적으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철회를 발표했을 때, 마침 메신저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 녀석이 손수 만든 전단지를 들고 나가 동네에라도 뿌려야겠다고 울분에 떨며 접속을 끊던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나는 가벼운 목소리로 시답잖은 위로랍시고 몇 마디를 떠든 뒤 이내 전화를 끊었고, 다시 조카들과 애니메이션을 보며 웃어댔다.

늦은 밤 집에 돌아와 계속되는 뉴스를 이리저리 돌려보면서도 가슴 깊은 곳의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나 말고도 화와 분을 삭이지 못한 이들이 더러 뉴스에 비쳤지만 그들의 분노와 내 화가 같은 종류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틀이 지난 지금 화는 묵직한 응어리로 내 팔다리에 매달려 나를 자꾸 끌어내리고 있는 듯하더니, 이제야 비로소 영정사진이며 생전 영상을 볼 때 눈물이 난다. 이제는 편한 곳에 계시길 빈다는 말, 명복을 빈다는 말을 하거나 쓰는 것도 구차하게 느껴지는 내 기분은 아직도 슬픔보다 분노에 훨씬 더 가깝다. 안과 밖을 동시에 향한 나의 분노가 속으로 곪을까봐 결국 배설하고 있는 이 행위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에 또 화는 꼬리를 문다. 그래도 이건 오래 담아두고 기억하고 끝까지 지켜보리라는 결심의 기록이라는 것으로 위안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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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로 생을 마감한 젊은 연예인과 관련된 연예계 비리와 고질적인 이 사회의 접대문화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걸 보며 계속 마음이 언짢았다. 젊고 예쁜 여자들을 옆에 끼고 술을 마시는 자리에 유력인사를 초대해 사업을 도모하는 행태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렇고,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 절반이 연예인일 정도로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여자 연예인을 아무렇게나 소모해도 되는 물건 취급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기막힌지.
뇌물을 써서 권력을 매수하는 행위는 아마도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을 것도 같지만, 뇌물로 쓰이는 도구에 아직도 인간이, 특히 젊고 예쁜 여자들이 포함되어도 <무방>하다고 여기는 생각의 근본엔 아직도 뿌리깊은 성차별 의식과 특정 직업에 대한 멸시가 동시에 담겨있는 것 같다. 예로부터 예술하는 이들을 무조건 천것이라 깔보는 사람들의 편견이 연예인을 얕잡아 부르는 <딴따라>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정도이니까.

나 역시 어려서부터 <딴따라>에 대한 좋지 못한 편견을 품고 자란 경험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친척 가운데 이른바 연예인(배우가 더 적당한 말이긴 하겠지만, 연예인엔 배우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이 있는데, 어린 내 눈에도 그리 건전하고 바람직한 인간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끔 대면하는 그분의 모양새는 늘 흐트러져 있었고(요즘의 나처럼 밤낮을 거꾸로 살았던듯^^; 가보면 언제나 방에 누워 뒹굴며 우리에게 만화책을 빌려오라거나 군것질거리를 사오게 하거나 다리를 밟으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텁수룩하게 기른 장발을 사자갈기처럼 뻗친 채로 좀체 사랑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러면 우리 아버지는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끌끌찼고, "<딴따라>는 저래서 안돼...젊은 놈이..."라고 나중에 나무라듯 말씀하셨다. 불규칙한 생활과 불규칙한 수입, 허망한 인기, 보장없는 미래, 알려진 얼굴 때문에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삶, 실제 형편과 상관없이 품위유지(?)를 위해 부려야 하는 허세. 어려서부터 지켜보아도 어느 것 하나 <바람직한> 직업은 아니었기에, 나 역시 <딴따라는 안돼>라는 구식 편견을 그대로 물려받고도 당연하다 여겼다. 멋진 배우들과 연예인을 동경하는 마음 따로, 현실적인 잣대 따로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주변에서 누군가 연예인이 되겠다고 하면 본인의 재능여부를 떠나 일단은 말리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요즘 연예인은 성공만 하면 단순히 인기를 누리는 것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이윤을 내는 일인기업으로 촉망받는 유망직종이다.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연예인이 되겠다고 유명 기획사에 들어가 몇년씩 가수 연습생 생활을 견디기도 하고, 노예계약이든 아니든 일단 어딘가에 소속되어 연기자로 빛 볼날을 감내하는 것이겠지. 오래 전 친구의 취재를 돕느라 SM과 JYP 엔터테인먼트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곳 연습실엔 정말로 열살 전후의 어린아이들이 제2의 보아를 꿈꾸며 수십명씩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고, 연습실 밖 복도에 줄지어 서서 기다리던 엄마들은 춤연습이 끝나면 아이의 연기지도를 위해 곧장 연기학원엘 데려가야한다고 말했다. 정말로 제2의 보아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원하고 끼도 있으니> 힘닿는 데까지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 예비 연예인 엄마들의 각오였다. 그때 그 아이들 가운데 과연 몇명이나 혹독한 훈련을 견디고 오랜 기다림 끝에 데뷔에 성공을 했을지, 요즘 떼로 나오는 아이돌 그룹을 보면 혹시 그 중에 그때 그 아이들이 있는 건 아닌지 문득 궁금해진다. 하기야 데뷔를 하고 음반을 내거나 단역으로 배우생활을 시작했더라도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고, 연예계의 특성상 언제 어떻게 허망하게 사라질지 모를 위치에 놓인다는 것을 알면서 그들은 왜 그렇게 매달리는 것인지. 확률이 적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매주 1등이 나오는 걸 알기에 로또를 사는 사람들처럼, 그들도 희박하지만 자기가 제2의 보아나 비, 배용준이 될 거라는 꿈을 먹고 살기 때문일까. 

학교 후배 가운데 동아리 활동 때의 열정을 살려 뮤지컬 배우가 된 아이가 있다. 노래하는 걸 옆에서 들으면 정말 소름이 오드득 돋을 정도로 가창력이 뛰어나고, 팔이 안으로 굽는 걸 감안하더라도 연기력이나 춤솜씨도 손색없는 편이다. 몇몇 뮤지컬에서 조역으로 활약해온 그녀의 궁극적인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꽤 오래 음반준비를 한다더니 작년이었나 난데없이 가스펠 음반을 냈다고 알려왔다. 일반 음반을 내려니 우선은 기획사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아직 20대인데도!)도 걸림돌이라 난색을 표했고, 쓸데없이 수많은 <접대 자리>에 수시로 불려나가 관계자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어야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괴로웠단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업계인 가스펠 음반사와 계약을 해 노래를 한 것으로 만족했다나. 아니, 관계자 얼굴 도장을 왜 꼭 술자리에서 찍어야하는지!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자리야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지만, 일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같이 술을 마셔줘야한다는 상황은 굳이 연예계가 아니어도 흔한 일이지만 참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악습이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터지는 연예계 비리도 그렇고, 상하를 막론하고 도대체가 비뚤어진 접대 문화도 그렇고,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나 양심과 도덕성의 결여다. 크든 작든 권력을 손에 쥐면 잇권에 개입하고 약자들을 장난감 주무르듯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기막히고 공분할 비리들은 언제든 터져나올 것임을 각오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하기야 청렴한 체했던 대통령도 힘있는 동안 당당히 수십억씩 해먹는 나라에 살면서 양심이니 도덕이니 따지고 있는 나 같은 인간이 이상한 건가 싶기도 하다. 손가락질 받고 벌 받아야 하는 놈들은 떵떵거리며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잘 살고, 힘없고 억울한 이들만 죽어가는 이 사회를 잠시라도 잊으려면 잘생긴 꽃남이나 예쁘고 늘씬한 소녀들에게 정신을 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예계 사업이 날로 번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무 비약이 심한가. 어쨌거나 오늘도 나는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멋진 딴따라들을 발굴하려고 눈을 번득이고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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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전부터 꾸준히 오가고 있지만 무지한 나로서는 춥지 않은 겨울, 녹아 없어질 위기에 놓인 북극 빙하, 마른 장마, 세계 각지의 이상기온을 그저 막연하게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뉴스를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바깥 공기는 며칠 만에 한번씩 접할 때도 많기 때문에 기온 파악을 전혀 못하고 살다가 잘못된 옷 선택에 민망한 순간이 있긴 해도 요즘 기온이 평년보다 얼마나 더운지 추운지는 잘 모른다.

아무리 봄이 왔다고 해도 춥게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못견디기 때문에 늘 남보다 뒤쳐지는 두툼한 옷을 입는 편인데, 어제는 과연 입을 때가 됐을까 아닐까 고민하며 그간 꺼내지 못했던 할머니의 유품 스웨터를 드디어 꺼내 걸치고 장보러 나갔다가 쪄죽을 뻔했다. +_+ 예년엔 3월과 늦가을에 입었던 것 같은데...
골목 어귀의 목련도 이제 막 벌어지려는 듯 물이 올라 있었다. 봄꽃은 원래 4월이나 돼야 피는 거 아니던가? 어쨌든 아름다운 꽃들이 좀 빨리 피는 것이야 반가우면 반가웠지 나쁠 일은 없다.


문제는 얼마전부터 우리 동네에 미친듯이 생겨나고 있는 모기떼다.
특별 방역이 필요할 정도로 벌써부터 모기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다. 어차피 요즘 모기들이야 아파트촌의 뜨뜻한 하수구에서 한겨울에도 버젓이 살아 날아다닌지 꽤나 오래 되지 않았나. 그런데 최근 출몰한 우리 동네 모기들은 한겨울에 몇마리씩 날아다니는 수준이 아니다. 자연하천 복원이랍시고 한강물을 끌어들이고 분수에다 물레방아, 폭포까지 생돈을 쳐들여 물이 흘러가게 만들어놓은 홍제천이 핵심 원인이라는 심증이 가기는 하는데, 흐르는 물에도 모기들이 알을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동네에 날아다니는 모기들은 군데군데 시커먼 갈색구름처럼 수백, 수천마리씩 뭉쳐 윙윙거리는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아직 그나마 기온이 낮기 때문인지 여름날 보이는 모기처럼 몸집이 크지 않아 그 절반도 안되는 듯부실하고 아직은 사람을 물지도 못한다. 자칫하면 하루살이처럼 보일 정도로 작은 놈들이 가끔 집안으로 숨어들었다간 제풀에 지쳐 비실비실 죽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놈들이 방충망 바깥에 수십마리씩 앉아 있는 광경을 보노라면 으으으으....
방충망을 향해 모기약을 뿌려대도 놈들은 후르륵 날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며칠 전 꽃샘추위가 왔을 땐 모기들이 하나도 안보이길래 다 얼어죽었나보다 기뻐했더니 어느새 다시 살아났더라. 이른 봄부터 벌써 이 지경이면 여름엔 어쩌란 말인가.
경상도 어느 도시였던가. 근처 공장에서 내보낸 높은 온도의 폐수 때문에 모기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져 구름처럼 날아다니는 바람에 집밖으로 외출을 하려면  벌치는 사람들처럼 망을 내려뜨린 모자를 써야할 정도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본 것 같은데, 설마 우리동네도 그런 지경이 되는 것은 아닐까.
모기 잡으라고 구청에 민원전화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만날 구시렁거리면서도 정착 전화해볼 용기는 못 내고 있다. 이미 누군가 불평을 해서 상황을 알고 있을 거야, 라고 막연히 짐작하면서...

이런 것이 지구 온난화로구나 싶어서 문득 두렵고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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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

하나마나 푸념 2009. 1. 20. 20:30

여기가 한국 맞나?
조금전 저녁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다.
불타는 건물, 무시무시한 차림새를 한 일단의 특수기동대 모습, 검은 복면을 한 사람들이 건물 아래로 던지는 화염병, 촛불시위 때 본 것처럼 사람들을 향해 쏘는 물대포인지 불을 끄려는 소방호스인지 알 수 없는 굵은 물줄기. 활활 타오르는 불길만 얼핏 봤을 땐 억지휴전을 선언한다던 이스라엘이 또 다시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내 눈에 익은 한글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확실히 한국이었고 군사독재 시절도 아닌 현재 오늘 일어난 일들이었다.
서울 어디에서 철거민들이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는 뉴스는 어제 들은 바 있었다.
우리 동네 구청 앞에도 수시로 가재울 철거민대책위원회 사람들이 봉고차를 세워놓고 확성기를 틀어 시위를 하기 때문에 갈곳 없는 철거민들의 극단적인 저항은 익숙한 터였다.
당장 나만해도 아무런 보장도 받지 못하는 세입자 입장이라고 할 때 이렇게 어려운 경제상황에 맨손으로 쫓겨나야 한다면 머리띠와 몽둥이 뿐 아니라 화염병인들 손에 못들까 싶었다. 원래 본인과 가족을 살리기 위해선 죽기를 무릅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옛말에 궁지에 몰리면 하물며 생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그러니까 일말의 숨통은 틔워놓고 몰아야 하는 거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미 여섯명이 목숨을 잃었고 철거민 시위대 가운데 부상자가 많아 희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란다.
영하날씨는 아니라지만 이 추위에 물대포를 쏘고 곤봉 든 특공대를 투입해 진압을 시도하다니.
그것도 겨우 농성 하루만에.

아주 오래 전 시국이 흉흉하던 나의 대학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대학연합 반정부 시위가 있었고 정부는 당연히 강경진압을 계획했다. 광장에 모여있던 수많은 시위 학생들을 비롯하여 오후 수업이 과연 휴강일까 아닐까 소심하게 걱정하느라 강의실을 지키던 일부 학생들까지 독안에 든 쥐처럼 학교에 갇히고 말았고, 새카맣게 몰려드는 전경부대의 서슬에 밀려 학생들은 모두 건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점거농성이었다. 점거농성이란 것이 외부에서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그때 난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겁을 먹고 오후 휴강을 틀림없이 믿으며 사방의 교문을 막아선 전경부대를 피해 부속중고등학교 쪽 샛길로 피신했지만, 여러 친구들은 미련하게 문과대며 학생회관 건물에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캠퍼스 곳곳에서 화염병과 돌멩이와 최루탄이 어지러이 오가더라도 다음날이면 여느 때처럼 교문이 열릴 줄 알았던 나의 기대는 착각이었고, 그날 저녁 뉴스에는 수백명의 학생들이 **대학에서 극악무도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복면 쓴 시위대와 전경부대의 대치 모습이 보도되었다. 실제 농성 학생들의 수는 무려 2천명에 달했다.
그래도 하루 이틀이면 끝나려니 믿었던 대치상황은 일주일 가까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결국 유례없는 대학 <점거> 농성은 몇날몇일이나 지난 뒤 가혹한 강제 진압과정을 거쳐 천명도 넘는 시위대의 전원 연행으로 끝이 났다. 그 기간 내내 전경측에선 학생들의 투항(=순순히 걸어나와 자수하고 체포되는 것을 의미했다)을 요구했고, 학생들은 전경들이 먼저 철수하기를 요구했으므로 팽팽한 갈등은 결코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없었다.
학교가 다시 열렸지만 수업은 진행될 수 없었다. 우리 과에서 연행된 학우들만 해도 이십여명이었고 당연히 내 친구들도 몇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매일 큰 강의실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며 교수와 학생들 모두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우선 두툼한 파카를 사서 유치장에 있는 이들에게 보내주면서 우리는 너무 억울하고 허무해서 많이 울었다. 내가 그날따라 조금만 더 강의실에서 꾸물거렸거나, 학관 앞에서 운동화끈을 고쳐매며 "오늘은 너도 같이 구경갈래?"라고 묻던  K나 S를 따라 구경을 갔었더라면 나도 복면을 한(시위때 마다 최루탄 가스가 너무 심해 마스크나 스카프로 입을 가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극악무도한> 점거농성자가 되었을 터였기 때문이다. 

20년도 넘은 그 때의 기억이 오늘 본 뉴스장면과 겹쳐지며 기가 막혔다.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면,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그간의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철거민의 입장이라면 과연 경찰청장은 그런 진압명령을 내릴 수가 있을까?
왜 다른 나라는 현대적이고 번화한 수도에서도 한켠에 남아 있는 수백년씩 된 건물과 집에서 멀쩡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 나라는 겨우 수십년 된 집과 건물들을 죄다 허물고 삐까번쩍한 고층건물과 아파트를 지어 번드르르하고 숨막히는 공간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개발은 반드시 과거를 지워야만 성공한단 말인가?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은 어차피 권력의 시녀이자 하수인일 수밖에 없지만
지금이 어느 땐데...
이런 살육극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저들의 사고방식이 정말 두렵다.
주먹을 불끈쥐고 욕하면서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것뿐인가 싶어서 자꾸 비감에 젖는다.
뉴타운이니 재개발이니, 하는 것들은 결코 서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란 걸 서서히 서민들도 깨달아가고는 있다지만 금전만능주의에 눈이 뒤집힌 수많은 기득권자들이 자기 밥그릇을 양보하지 않는 한 위정자들의 개발논리는 뒤집힐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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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하나마나 푸념 2009. 1. 16. 22:04

며칠 전 왕비마마와 공주를 모시고 느닷없이 찜질방엘 갔을 때의 일이다.
날씨가 워낙 추웠던 탓인지 시설이 워낙 노후한 곳이기 때문인지 찜질방은 놀랍도록 한산했다.
원래 가려던 찜질방은 하필 정기휴일이라 다음을 기약하려 했으나 고집쟁이 조카 공주의 강짜에 어쩔 수 없이 갔던 것인데 약간 뜬금없는 일을 겪었다.

황토방이었던가 소금방이었던가, 잘 기억은 나질 않는데 워낙 사람이 없어서 딱 한사람이 누워있는 찜질방엘 공주와 함께 들어갔더니 드러누워 있던 아줌마가 반색을 하며 자꾸 말을 걸었다.
"사람이 너무 없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추워서 그런가봐요."
공주와 나는 노코멘트.
"그나저나 오늘 평일인데 너는 어떻게 학원에 안가고 엄마를 따라왔니?"
여전히 우리는 노코멘트. 엄마가 아니라 고모라는 말도 해주기 싫었다.
"아유 엄마가 젊어서 큰언니랑 동생 같아 보이네요. 넌 오늘 학원 안갔나보다? 추워서 안갔어? 불이 어두워서 이런데서 책 보면 눈 나빠지는데..."
당시 조카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가져간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의 침묵이 답답했는지 급기야 아줌마는 벌떡 일어나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얜 학원 안다녀요?"
하는 수 없이 내가 대꾸했다. "네, 안 다녀요."
드디어 집요하게 나의 반응을 이끌어낸 아줌마는 속사포처럼 수다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어머나, 왜 학원을 안 보내요! 요새 학원에 안다니는 애들이 어디 있다고! 이런데까지 와서 책 읽는 거 보니까 얘는 시키면 잘하겠구만. 눈빛도 초롱초롱한 게 똘똘하게 생겼네. 요즘 공부는 엄마가 신경써서 시켜야 잘 되는 거예요."
"왜요, 학원에 안다니는 애들 많지 않은가..."
졸지에 무식한 엄마 취급을 받으며 더욱 말대꾸 하기가 싫어진 내가 혼잣말을 하듯 대꾸했더니 아줌마의 댓거리는 더욱 가관이었다.
"요즘에 학원에 안다니는 애들은 다 문제 있는 애들이에요.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혼자 데리고 있거나 가난한 할머니가 키워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애들이나 학원에 안가는 거지, 제대로 된 집안 아이들은 다 학원에 다닌다니깐요! 학원도 동네 속셈학원 같은 데는 아무 소용없고, 아주 잘 가르친다고 이름난 학원엘 보내야 돼."
공주와 나는 내심 발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이렇게 무례하고 무식한 편견에 사로잡힌 아줌마가 다 있나 싶었던 것.
정민공주는 일찌기 학원에 다니기를 거부하여 집에서 학습지 방문교사와 사촌오빠의 과외교습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주가 그날 우리집에 온 것도 무수리 선생과 영어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조카는 아줌마 들으라는 식으로 나에게 말했다.
"내 친구들도 학원에 안다니는 애들 많은데... 현지도 안다니고 예림이도 안다니고 **도 안다니지만 걔네들 다 엄마아빠 다 있고 아무 문제도 없어."

나는 어떻게든 무식한 아줌마로부터 정민공주를 보호하며 변호도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앞뒤없이 말했다.
"애들 공부를 학교에서 가르쳐야지 어려서부터 너도나도 학원에 보내는 이 사회가 잘못된 거죠.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순전히 나의 실수였다. 나의 논리를 받아들일 상대가 아니란 것쯤은 미리 파악했어야 하는데.... 아줌마는 한심하다는 듯 나에게 훈계를 했다.
"어떻게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에요? 인생의 전부지! 공부를 잘해야 인생이 성공하는데! 공부 못하면 요새 사람취급도 못 받아요!"
"어떻게 모든 아이들이 공부를 다 잘할 수가 있겠어요. 잘하는 애들도 있고 못하는 애들도 있고, 공부 못하는 애들은 또 잘하는 특기를 살려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죠. 저는 꼭 큰돈 들여 공부시켜야 성공하는 이 사회가 틀려먹었다고 생각해요..."
벽창호 같은 아줌마를 단시간에 설득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내 목소리는 점점 약해졌고 더는 대꾸하기가 싫어져 그만 일어나 나가버릴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미 옷이 다 젖도록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그 아줌마는 별 희한하고 무식한 여자를 다 보겠다는 식으로 금방이라도 혀를 끌끌 찰 것 같은 표정이더니 "참 내..."라고 중얼거리며 찜질방을 나갔다.

뒤에 남은 나는 인상을 찡그리다 그 아줌마의 뒷모습에 대고 혀를 낼름거렸는데, 그 모습을 본 조카가 물었다.
"고모, 왜 메롱 했어?"
"저런 아줌마랑은 아무리 얘기해봤자 쇠귀에 경읽기거든. 어떻게 공부가 인생의 전부겠니.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한 거지."
"맞아. 저 아줌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웃긴다."
공주는 그렇게 말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다시 책을 읽었지만, 나는 혹시나 조카가 아줌마의 폭언에 마음을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다.

사실 그 아줌마의 생각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 사회의 대다수 엄마들과 부모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편견이 더욱 무섭고 씁쓸했다. 그런 아줌마들은 단지 학원엘 안다닌다는 이유로 문제 가정의 아이로 단정하고 자기네 아이들과 못놀게 격리시킬 것이 뻔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인간취급도 안할 테니까.
조카들이 태어났을 때 나는 그들이 자라 대학엘 가고 어른이 될 때쯤엔 입시지옥, 취업지옥도 없는 근사한 사회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꿈꾸었는데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오히려 옛날이 좋았지.. 라고 회상하게 될 뿐 도무지 발전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 것 같다.
이렇게 이기적으로 다들 사회적 특권을 누리기 위한 편법에만 목표를 두면 안되는 거 아닌가.
늘 뾰족한 대안은 생각나질 않고 불만만 가득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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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원

하나마나 푸념 2008. 12. 4. 12:25

오전에 세무서에서 전화가 왔다.
유가환급금 신청서 심사하고 있는데, 내가 낸 3건의 원천징수 영수증으로는 두 달치밖에 환급해줄 수 없다는 것이 통화의 요지였다. 원천징수 영수증 3건 가운데 2건은 한 하필 8월에 중복되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라 어디든 소속되어 사업을 영위하는 게 아니라 다른 증빙서류는 낼 수 없다고 설명했더니만
(아으, 동생녀석이 필요하면 그냥 만들어주겠다고 할 때 그러라고 할 것을 그랬나! -_-;;)
<원칙>상 다른 달에도 내가 일을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고, 현재 일을 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번역계약서 <따위>는 증빙서류가 안된단다) 원천징수영수증이 발행된 5월과 8월에 해당하는 4만원이 이달 말 안으로 입금될 것임을 통보하고 세무서 직원은 전화를 끊었다.
자다말고 누워서 전화를 받은 나는 기가 막혀서 멍하니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다가 더는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아 일어나고 말았다.

우라질 놈들.
전액 다 환급해주지 않을 지 모른다는 예상은 했지만... 4만원이라니.
나는 그래도 세무서에서 원천징수 영수증을 낸 8월까지 인정해주겠다고 그럴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8월에 받은 번역료 2건만으로도 연봉의 절반에 달하는 거금이거늘!!
그런데 나의 착각이었던 거다.

ㅋㅋㅋㅋ
4만원.
겨우 4만원이라니 분명 껌값이 아님에도 괜히 신청했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렇게 기분 더러울 줄 알았으면 아예 그까짓 푼돈 안받고 만다, 고 대범하게 처음부터 포기했을 것을!!
다른 번역가들이 신청 안한다 그럴때 그냥 나도 묻어가는 게 속편하다고 생각할 것을!!
그랬으면 이렇게 치사한 모멸감 같은 건 안 느껴도 됐을 텐데.
후회스럽다. 
하긴,  믿을 구석 없는 정부가 하는 일에 뭘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누굴 탓하겠나.
우라질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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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환급금

하나마나 푸념 2008. 11. 28. 17:27

마감일을 하루 앞둔 줄 알고 어제[각주:1] 나도 드디어 신청을 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환급이 될지 어떨지는 미지수다. 혹시 돈 나오면 절반은 엄마한테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니, 울 엄마의 기도발을 받아서라도 잘 해결되려나?

유가환급금의 정체를 내가 알게 된 것은 국세청에서 보낸 안내문 때문이었다.
사업소득자는 11월에 유가환급금을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는데, 사업등록을 한 것이 아니라 건건이 계약으로 일을 진행하는 나도 과연 환급금 해당자에 속하는지 알아보느라 국세청 사이트에도 들어가보고 주변에 알아보았지만 통 확신할 수는 없었다.

2007년 종합소득금액 2400만원 이하인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문구만 보고선, 해당사항이 없나보다 믿었더니
나에게 날아온 안내문에 인쇄된 종합소득금액은 놀랍게도 작년에 내가 신고한 총 수입액보다 훨씬 낮은, 거의 4분의 1에 불과한 금액이었고, 종합소득금액이란 총수입액에서 단순경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이란 걸 새삼 알게 되었다.
게다가 사업등록을 하지 않았더라도 유가환급금의 대상이 되는 <면세 인적용역제공자>의 범주엔 보험모집인, 방문판매원, 연예인, 저술가 등이 포함된다고 했다. 저술가라고? 그렇다면 과연 나는 해당이 되는 것일까? 아닐까?

일단 절친한 대형 출판사 지인에게 다른 번역가들은 유가환급금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으니
놀랍게도 담당자에게 유가환급금과 관련하여 서류를 의뢰하거나 문의를 한 번역가들이 단 한사람도 없다고 했다! 그 시점에서 나는 움찔했다. 나도 해당사항이 없나보구나, 싶었던 것.
그게 아니라면 다른 번역가들은 모두들 게을러서 환급신청을 전혀 하지 않거나, 부동산 임대료 같은 다른 수입원이 있거나, 종합소득금액 2400만원을 훨씬 넘는, 즉 연간 총수입 7, 8천만원을 넘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긴데! *.* (내 관계망에 들어온 번역가들 가운데 그쯤 되는 고액연봉자는 없단 말이닷!)

게다가 사업등록을 하지 않은 이들은 해당 개월의 원천징수영수증을 첨부하고 사업영위확인서도 내야 한다는데, 문구를 보니 <____에 소속되어 사업을 영위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어쩌구>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거늘, 어느 출판사에 저런 서류를 해달라고 한단 말인가!

최소한 출판사별로 연락해 원천징수증을 받아야 한다는 데 급좌절한 나는 거의 포기상태에 이르렀다.
까짓것 나올지 말지도 모르는데 관두자...
그러나 또 다른 출판계 지인이 나를 독려했다. 이명박정부가 서민을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눈물묻은 돈이라도 돌려주겠다니 악착같이 받아내야 한다고! 일단 환급안내문이 나왔으니 당연히 환급해당자라는 증거이며, 공돈을 준다는데 왜 지레 포기를 하느냐고 되물었다. 원천징수 영수증을 fax로 보내달라고 전화나 email 하는 게 귀찮으면 밥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타박도 들었다. ^^
어차피 내년에 종합소득세 신고할 때를 위해서도 원천징수영수증은 당연히 받아놓아야 하는 거라고.

채찍질을 받고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결국 연락처도, 담당자도 몰라 가장 골치아픈  의사협회 건은 제외하고
세 건만 간신히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고 바로 그날로 원천징수 영수증을 fax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원천징수 영수증이 매달 발급된 것이 아니니 과연 12개월치의 유가환급금 24만원이 모두 나올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귀찮음을 극복하고 일단 환급금 신청을 하기는 했지만, 이 나라의 세금행정을 보면 늘 짜증스럽다.
종합소득세 신고 때도, 이미 전자신고서에 기록된 총수입액을 보면 내가 어느 회사에서 얼만큼 돈을 받고 얼만큼 세금을 원천징수 당했는지 다 알고 있는 마당에 왜 일일이 원천징수영수증을 첨부하라고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이번 유가환급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2008년에 일을 하고 있는지(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거라고?)는 그간 번역료를 받을 때마다 원천징수 세금 3.3%를 제했으니 당연히 출판사에서 세금신고를 했다는 얘긴데(그 확인서가 바로 원천징수영수증이거늘!) 시침 뚝 떼고선 2008년에도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지 확인서를 내라니 이 무슨 우스꽝스러운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확률은 반반이라고 여기며 어제 세무서에 들르기는 했지만 다음달에 환급이 안된다면 무척 마음이 상할 것 같다. 결과는 추후 보고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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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실제 마감일은 12월 1일까지라고 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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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올린 글의 맥락파악도 할 줄 모르는 건축가 이창하씨의 권리침해 신고로 나의 글이 임시삭제조치 된 것은 지난 10월 2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블로그는 그날로부터 정확히 2년 전인 2006년 10월 2일에 개설되었다.
이 묘한 날짜의 일치를 나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꽤나 고민했다. 블로그질을 작파하라는 누군가의 계시일까, 블로그질 2주년을 기념하는 일종의 (몹쓸) 축하 장치일까, 아니면 그냥 정말로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어쨌든 전의를 불태우며 나 또한 법적조치를 불사할 것이라는 다짐을 이곳에 적어 알린 뒤 한달을 기다렸다. 처음엔 실제로 소송이 시작될 경우 얼마나 돈이 들까, 과연 돈과 권력으로 막강한 변호사를 대동할 게 뻔한 그자를 내쪽에서 이길 수는 있을 것인가, 티스토리에서 같은 날 나와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 같으니 그들과 연대를 해볼까, 더러운 진흙탕 싸움이 몇년씩 지속될지도 모르는데 과연 나는 그런 걸 견딜 인내심과 열의를 발휘할 수 있을까, 처음 며칠은 심히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 자체에 내가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것조차 아깝게 느껴져 한달동안은 잊고 살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고 나서 30일이 훨씬 지난 11월 5일, 트랙백으로 연결해둔 문제의 글을 클릭했으나 여전히 <권리침해 신고로 임시 삭제조치된 글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뜰 뿐이었다.
30일간 권리침해 신고자가 추후 법적조치나 해당기관에서 명예훼손 여부를 입증받아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 임시 삭제되었던 글은 복원된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일까. 그간 나는 법원이든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해당기관에서 이 문제로 아무런 전갈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글이 복원된다고 해서 앞으로 또 다시 같은 사안으로 권리침해 신고가 접수되는 일은 피할 수 있다거나 명예훼손 소송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티스토리/다음 측에선 같은 글이 앞으로 또 문제의 소지가 되더라도 거듭 글만 삭제조치할 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밝힌 바 있다.

어쨌거나 30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티스토리/다음 측에 화가 난 나는 담당자에게 세번째로 이의를 제기했다. 함부로 글이 삭제된 것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것도 억울한데 왜 약속도 안지키느냐고.
이창하씨가 권리침해에 대한 법적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에 약속 기일 내에 글이 복원되지 않은 것인지 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오늘에야 비로소 담당자의 메일이 왔는데, 운영툴 오류로 복원이 늦어졌단다.
"아무쪼록 고객님의 너그러운 양해를 바랍니다"라지만 나는 양해도 못하겠고 이해도 안된다.
포털사로서 중재의 역할과 책임에 충실할 생각은 전혀 않고 실질적인 권리침해 여부도 관심없이 삭제조치는 득달같이 시행하더니, 복원조치는 일주일도 넘게 지연시켰으면서 운영툴의 오류로 늦어졌다며 사과 한마디로 끝이라니.

게다가 권리침해를 신고한 이창하씨 측의 의도는 또 뭐란 말인가? 자칫 명예훼손 소송을 당할 수 있으니 니가 알아서 깨갱하고 꼬리를 내려 자진해서 글을 삭제하라는 협박을 대신하여 권리침해 신고를 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방통위에서 내 글의 권리침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먼저 방통위의 사면을 받아보려고 접속했으나 이창하씨의 주민번호를 비롯한 인적사항을 알아야 신고가 가능하다기에 포기하지 않았던가. 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나도 이미 동의하긴 했지만, 티스토리/다음 측에선 나의 허락 없이 저쪽에 내 인적사항을 알려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밝혀왔고 아직 해당기관의 소환장 비슷한 연락은 받아 본 적 없다.)
단순히 1년전 사건인 학력위조 파문으로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렸던 사실이 싫어서 무조건 관련글을 권리침해로 신고하는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짐작하려 해도 도무지 앞뒤가 맞질 않는다. 허위학력으로 교수임용이 된 것은 아니라는 무혐의 처분을 받고 난 뒤, 불과 몇달 전에 본인이 직접 TV쇼에 나와서학력위조 파문을 겪었던 그간의 심정을 직접 토로도 했다던데? 다 잊은 사건을 굳이 들고 나와 해명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괜찮았을까?
오히려 나는 이번 권리침해 신고 사건 때문에 별 관심도 없는 그 사람이 TV에 나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무혐의 처분을 받은 내용이 교수임용당시 서류에 허위학력을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 그의 저서나 약력에 사용된 일부 학력이 허위였음은 본인도 유감임을 밝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거늘! 

티스토리의 글 복원이 늦어진 것도 내겐 의심스럽기만 하다. 운영툴의 오류라고? 운영툴의 오류가 일주일 가까이 지속됐는데 모른단 말인가? 30일 이후에 자기 글이 복원되었는지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닌 한, 은근슬쩍 글의 임시 삭제상태를 유지하거나 영구 삭제하는 것이 혹시 관행은 아닐까?
어차피 같은 글이 복원된 후 또 문제가 된다해도 자기네는 아무 책임 없다면서, 추후 귀찮은 문제를 피하려면 자진삭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함의를 담은 은근한 압박까지 느껴지는 과거의 안내문을 보아도 확실히 포털사에서는 권리침해 조항의 남용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할 의향이 없다. 

요즘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인사 사고가 아닌 한 경찰관이 개입을 회피하며 쌍방합의로 해결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도 같다. 하기야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났을 때 가만히 서 있다가 받친 게 아닌 한 요즘은 웬만하면 쌍방과실이기도 하고 경찰관이 정식으로 개입해 사건을 보고하면 공연히 범칙금만 더 나오니, 그건 차라리 현명한 해결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경찰관은 최소한 정식으로 개입하지 않더라도,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잘못을 억울하게 덮어씌우려는 얌체 운전자를 지그시 말려주기라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30일이 지나면 별 일 없었다는 듯 학력위조 파문을 다뤘던 나의 글이 복원되고 스리슬쩍 잊혀질 확률이 80%라고 짐작은 했지만, 어쨌거나 현재 아무것도 말끔히 해결된 것은 없으니 기분이 아주 더럽고 불쾌하다.
얼마전 <일단 소송을 걸었다가 아니면 말고... >라며 물러나는 무고죄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기사를 읽은 것도 같다. 글의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무조건 권리침해 운운하며 신고를 해도 당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상황도 사이버 세상의 무고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한나라당에선 아직도 사이버모욕죄 신설를 추진하고 있는 모양인데, 현행 법률로도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고 표현의 자유를 저해할 수 있는 소지가 높음을 실감하고 나니 그들이 하는 짓거리가 더욱 치떨리게 싫다. 방송과 언론도 장악하고 싶고, 국민의 입과 손가락까지 재갈과 족쇄를 물리고 채워서 과연 그들은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이번 권리침해 사건이 하찮고 불쾌한 해프닝일지, 앞으로 또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인지 힘없는 일개 국민인 나로선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해도 우리는 계속 바위에 달걀을 던져야 한다.
깨진 달걀이 바위로 스며들고 썩어 자양분이 되고 미세한 틈에서 이끼가 생겨 언젠가는 바위에 금이 가 깨질 날이 올 것라고 믿으면서. 
달걀이 아깝고 귀찮기는 하겠지만 나는 부족한 운동삼아서라도 던질란다.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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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 길어

하나마나 푸념 2008. 10. 7. 22:37

그야말로 뜬금없이 사이버 권리침해자로 몰려 글을 삭제조치 당하고 보니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했다.
한꺼번에 와락 치밀어오르는 생각들도 매우 다양하여,
내쪽에서 먼저 표현의 권리 및 사생활 보호 권리 침해 사안으로 상대를 '고소'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억지,
왜 내 최측근 가운데는 이럴 때 조언을 구할만한 법조인이 없는가 하는 푸념,
도대체 관련법이 어떻기에 무작정 근거없는 신고로 내 글이 삭제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억울함,
내 글을 권리침해로 신고한 놈에 대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증오심과 전투욕,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들을 공개적인 공간에 털어놓는 것은 아닐지 종종 뒷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시답잖은 솜씨일망정 이런저런 글로 배설의 희열을 느끼고 있는 이 블로그에 대한 총체적인 회의,
나 또한 허튼 말과 글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기도 하는 '사이버범죄자'와 한통속으로 몰려 도매급으로 매도당하는 것 같은 모멸감, 
인간과 이 사회에 대한 막연한 절망감 따위가 두서없이 밀려왔다 빠져나갔다.
물론 충동적으로 확 블로그를 폐쇄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왜?
이 경우 피해자는 오히려 내가 아닌가?
한달 내에 법적으로 글의 명예훼손 여부가 결정되지 않으면 복원될 것이라는 전제가 있긴 해도 이미 나는 한달간 글이 임시 삭제 당한 수모를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일로 인한 허탈감과 억울함으로 심리적, 정신적 타격이 작지 않고, '놈'의 근황을 확인하고 관련법규 및 관련기사를 검색하느라 며칠 째 확실히 번역일은 뒷전으로 내팽개쳐두고 있으니 경제적인 손실 또한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마음 같아선, 그리고 관련법규만 있다면 정신과에 가서 신경쇠약으로 진단서 끊고 앞으로 한달 동안 신경 쓰느라 손해보게 될 원고료에 정신적 위자료까지 포함한 손해배상금이라도 놈에게 청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

허나, 짧은 내 식견으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현재 내가 손쓸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일단 한달안에 그자가 나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신고하는 법적조치를 밟기 이전에는 말이다.
한달 안에라도 구제방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러려면 그자의 주민번호를 비롯한 인적사항을 알아내야 하는데 Daum측에서는 개인정보를 나에게 유출하는 것또한 불법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고
그렇다고 내가 그자의 건축사무소 전화번호를 알아내어(이건 뭐 그리 어렵지 않을 듯;;) 전화를 걸어 사장 바꾸라고, 티스토리 게시글 삭제 건으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를 받아야겠으니 당신 주민번호를 대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 인간과 통화하는 걸 상상하는 것조차 혐오스럽지만 상황이 완전 코미디라 웃음부터 나온다)

현행법의 명예훼손죄와 관련한 법률은 이렇단다.

형법 제307조【명예훼손】①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공연히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10조 (위법성의 조각)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그러니까 허위사실 유포가 아닌, 사실을 언급하더라도 사람이나 법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엔 죄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생판 없는 사실을 허위로 꾸미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리든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생각한 사람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 이 법률의 목적인 듯 하다.
무지한 나로서는 '적시'라는 말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놀랍지 않은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언급하더라도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다니...
하기야,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보호 받으려면 제 아무리 사실인 경우에도 사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세상에 시시콜콜 노출되지 않을 권리를 누려야 마땅하긴 하다.

헌데 인터넷 상의 명예훼손과 권리침해 사안은 특별법인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제61조)'이 적용되어 좀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단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제61조(벌칙)

①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
다.

②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특별법 역시 사실을 다루더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사실이든 허위사실이든 유포해야 법에 저촉이 된다는 점일 것이다. 비방목적 여부에 따라 죄의 형성여부도 판가름될 수 있다는 뜻인데,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목적성의 입증은 전문가들의 견해와 판례에 따라야할 듯. 

비딱한 내 성품으로는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명제가 아직도 <법은 (딱)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말로 읽힌다. 능력있는 법조인을 고용할 만큼의 부와 권력을 지닌자에게만 이 나라의 법이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그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도 최대한 상황을 비약해, 실질적인 형사, 민사 소송 단계까지 치닫는 경우 과연 나는 얼만큼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지를 생각하면서 기분이 참담해졌다.
게다가 요즘 한나라당에서 길길이 날뛰며 당장 신설해야 한다고 큰소리를 내고 있는 <사이버모욕죄>까지 더해진다면 나를 포함한 누리꾼들은 얼마나 지레 자기검열에 노심초사하며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 표현이 위축될 것인지 암담하다. 큰 파장을 일으킨 최진실의 자살 사건으로 고무된 사이버수사대에서 이미 권리침해자의 신고 없이도 상습 악플러와 악성루머 유포자를 '색출'하는데 힘쓰고 있다지 않은가!

인격존중이나 책임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일부 몰지각한 누리꾼들의 혐오스러운 행동은 반드시 근절되야 하겠지만 마치 익명을 이용하여 명예훼손과 인격모독 등의 사이버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양 침소봉대하여 유명인의 안타까운 죽음마저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태도는 그야말로 한심하다.

아무려나...
아직 나는 명예훼손죄나 이름도 숨차게 긴 정보통신****법 위반으로 기소당한 것도 아니고, 사이버상 권리침해 신고로 해당  글을 임시삭제조치 당한 것에 불과한데 중재자 역할을 해야할 Daum에서는 신고자가 문제를 제기한  게시글의 내용을 읽고 명예훼손에 해당되는지 아닌지 판단해볼 의사 및 개입의지가 전혀 없다.
신고자가 권리침해 의사를 밝혔으니 문제의 글을 임시삭제하고, 한달 내에 법률적인 명예훼손의 입증이 없으면 다시 글을 복원시켜주겠으나 추후에 또 같은 글로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역시 Daum에선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현재로선 내 게시글에 대한 권리침해를 Daum에 신고한 자가  경찰에도 수사를 의뢰하진 않은 듯하고
짐작컨대 겁을 주어 본인과 관련된 글의 게시자들이 지레 겁을 먹고 자진해서 글을 삭제하도록 하려는 심산인 모양이다.
물론 내가 자진해서 해당글을 삭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셋방살이의 서러움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래서 다들 돈을 써가면서 독립 계정을 마련해 둥지를 트는 것이로군, 하는 생각이 든다.
독립 계정이라면, 사이버 권리침해로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무작정 운영자측이 게시글을 삭제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며칠 간 블로그고 자시고 다 귀찮고 짜증나고 글도 쓰기 싫고, 뭔가 끼적이고 싶다가도 생각의 정리가 되질 않아 머뭇거리긴 했지만, 누에고치 실 풀어내듯 입으로든 손끝으로든 끝없이 수다를 풀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겨우 이런 일로 블로그 생활을 포기하는 건 말도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방법은? 
나도 슬슬 티스토리를 버리고 이사를 가야하는 건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된 것도 같다.
컴맹에 가깝긴 해도 블로그 선배들의 조언과 도움을 얻으면 까짓것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드러워서 똥을 피하고 싶다고, 제풀에 미리 겁부터 먹고 도망칠 순 없으니 당분간은 버텨야할 것이다.

아무튼 이번 일로 1년도 더 지난 학력위조 파문 이후 당사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보니 예상대로 다들 버젓이 '잘' 지내고 있었다. 학력 위조 파문이 일어난지 1년이 되는 시점에 언론에서 앞다투어 그간의 정황을 보고하는 기사를 실었기에 쉽게 검색할 수 있었다.
(혹시 궁금하시면 여기를...)

학력위조 파문으로 “한때는 자살기도까지 생각했었다”는 고백을 굳이 방송에 나와서 했다는 그의 근황을 보며 나는 미안하지만 안쓰러운 마음보다 역시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인 것이다. 원래부터 내가 싫어할 수밖에 없는 유형의 사람.
대중에게 끊임없이 노출되고 그 관심과 인기를 생명처럼 여기는 연예인도 아니면서 이름을 팔겠다는 욕망 때문인지 방송과 언론에 끊임없이 얼굴을 내밀어 소비되기를 즐기는 사람을 나는 경멸한다. 그런데 그는 분명 그런 사람이라는 심증이 굳어진 것이다. 과거에도 광고 등장은 물론 심심찮게 여성지 탐방기사에 응하더니, 학력위조 파문으로 검찰조사를 받은 내용이 무혐의 처리되자 당장 아침방송에 나와 대중의 동정심과 관심을 사려는 사람. (하지만, 그의 무혐의 내용은 교수임용 당시 서류에 허위학력을 기재하지 않았기에 허위학력을 이용한 범죄 혐의가 없다는 것이지, 그가 과거 저서 및 약력에서 인용했던 과장 및 허위 학력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도 잘못된 것임을 시인했다) 
물론 그런 개인의 성향을 소비하려는 수요층이 당연히 존재하기에 그들의 공생관계가 유지되는 것일 테지만, 존경과 흠모를 바탕으로 하는 격조 높은 유명세와는 확연히 다른 저속한 스타성을 추구하는 일부 인사들에겐 이렇게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언급할 가치도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따라서 <비방의 목적이 전혀 없으나, 사실의 언급이 오로지 공익의 이익에 관한 것>도 아니라 할 수 있으므로 ^^ 그에 대한 관심과 언급은 오늘로서 완전히 끝을 낼 작정이다. 

그저 그간 포스팅하려고 마음 먹었다가 억울하게 밀려나버린 자질구레한 생각거리들이 아까울 뿐이다.
그새 <비포선셋>이랑 <첨밀밀> dvd도 다시 봤고
홍대앞 예쁜 카페도 갔었고
세어보니 자그마치 스물네 장이나 되는 스카프 사진도 찍었었고...
아... 씨...
또 뭔가 많았는데 다 까먹었다.

내 나름대로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생각의 흐름이 유연하질 못해서
사실 이 글도 어제 오후에 시작했는데 마무리하기까지 네다섯 번이나 중단했다가 다시 이어가는 난항을 겪었으되 여전히 근사하고 깔끔하게 맺을 가망은 없어 보인다.

한달 뒤에 결과가 어떻게 되든 뭐 당분간은 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수다를 떨겠다는 다짐 정도로 이만 끝!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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