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 푸념'에 해당되는 글 109건

  1. 2010.03.29 야로가 있다 10
  2. 2010.02.19 재개발 8
  3. 2010.01.26 친절도 좋지만 23
  4. 2010.01.13 외래어 발음 24
  5. 2009.12.09 내부공익제보자 : 호루라기부는사람 14
  6. 2009.11.11 누더기 서울 7
  7. 2009.09.04 적반하장도 유분수 18
  8. 2009.07.23 세상과 나 6
  9. 2009.07.17 그냥 두기 12
  10. 2009.05.30 이유 6

<야로가 있다>는 말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자주 쓰셨던 표현이다. 살림살이가 비교적 넉넉했던 이북 및 만주생활과 달리 남한에 내려와 정착해 살면서는 무엇 하나 당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던 삶 때문인지 할아버지는 특히 정치사회 문제에 의심이 많으셨고, 뉴스나 신문을 보시다간 종종 "이놈의 아새끼들 분명 야로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야로>라는 말의 어감상 나는 그게 일본말이라고 생각해왔다. 급히 찾으실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 입에서 흘러 나오는 아지노모도(조미료), 사리마다(팬티) 따위의 아류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커서 알고 보니 <야로>는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순우리말이었다. 뜻은 <남에게 드러내지 아니하고 우물쭈물하는 속셈이나 수작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고 <이번 일에는 무슨 야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식으로 쓰인다. 못마땅한 정국이나 공무원 비리 뉴스 같은 걸 보면서 "무슨 야로가 있다"고 지적하신 할아버지의 우리말 표현은 그야말로 정확했다는 의미다.

지난 금요일 밤 마치 금세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연이은 속보로 한반도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초계함 침몰 사건 보도를 지켜보며 내 입에서도 자꾸 그 말이 흘러나온다. "뭔가 분명 야로가 있다." 군사 정보에 완전 무지하고 해군 함정의 구조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 없지만,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군의 발표와 뉴스 내용은 의문 투성이다. 빤히 침몰한 배의 선체가 뒤집혀 물 위에 떠있는 걸 뉴스 화면에서 봤는데 어젠 그 반동강 조차 떠밀려가 가라앉은 위치 파악이 안 됐대고, 수많은 장병들이 갇혀 있을 선미는 사흘이 지난 오늘에야 겨우 찾아냈단다. 아무리 시계가 나쁘고 조류가 심한 곳이라지만 수심이 그리 깊지도 않은 연안에서 레이더로는 잔해의 위치 파악이 불가능하단 말인가? 요샌 고기잡이도 바닷속 물고기떼를 레이더로 탐지해서 잡던데? 망망대해에 뜬 조각배 하나도 위성과 레이더의 공조만 있으면 찾아내는 게 아니었나? 세떼는 레이더에 잡혀 무려 76mm 대포를 쏴댔다면서?

부디 배 안에 생존자가 있어 다들 무사히 구조되기를 빌고 또 빌지만, 희생자 가족이 아닌 나도 당국과 군의 뜨뜻미지근하고 수상쩍은 태도에 열통이 터지는 판국이니 당사자들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사고 원인 짐작조차 쉬쉬하는 분위기고, 초계함의 작전상 이동은 당연히 명령을 통한 것일 테니 애당초 왜 그렇게 연안 가까이에 접근했는지 이유가 있을 텐데 군사 기밀이라서 그런지, 명령체계의 오류나 작전실수라서 그런지 시원한 해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여권과 주류언론에선 지방선거 앞두고 이런 비극조차 이용하려고 자꾸 북한 개입설을 들먹여 불안감을 조성할 테지만, 진짜 불안한 건 터무니 없이 무너져버린 해상 방어능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도무지 신빙성이 가지 않는 군의 사건 개요 발표와 대처도 그렇고 뭔가 중요한 걸 감추느라 말 짜맞추기를 하는 것 같던 함장의 말을 보아도 확실해 보이는 건 현재 <뭔가 야로가 있다>는 심증뿐이다. 부디 실종자들의 극적인 생존 속보와 함께 차츰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속보 나오자 마자 지하벙커에 숨어 <국가 안보회의>를 소집한 뒤 "한점 의혹 없도록 진실 규명에 힘쓰라"고 지시했다는 '그분'의 말에 오히려 의혹의 무게가 실리는 걸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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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하나마나 푸념 2010. 2. 19. 15:00

지금으로부터 딱 5년전인 2005년, 내가 사는 동네에도 재개발 광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몇년 간 줄곧 재개발 얘기는 있었지만 그저 오며가며 도는 풍문일 뿐이었는데, 2005년도엔 제대로 업자가 나서서 주민회의를 개최하고 계획안을 집집마다 돌리더니 주민동의서를 받기에 이르렀다. 당시 이 동네 재개발 계획안은 그야말로 화려번쩍했다. 오래된 다가구 주택 십여채를 허는 수준이 아니라 3천 세대가 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메이저 건설사를 끌어들이겠다나. 그땐 30년 넘은 헌집에서 탈피해 새집에서도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고, 재개발을 해서 아파트를 받으면 이 낡은 집을 끼고 사는 것보다는 훨씬 이익이라는 논리가 당연한 줄 알았다. 물론 우리집 같은 다가구 주택은 지분이 작아서 큰평수를 받으려면 최소한 1억쯤 돈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지금 사는 집이 두 집을 터놓은 거라 지분이 두 개니까 분담금 대신 한쪽은 내놓으면 된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기야 그때도 재테크나 부동산에 밝은 이들은 펄쩍 뛰었다. 왜 지분 하나를 내놓느냐고, 두개 다 분양 받아서 나중에 팔면 돈이 얼만데 정신 나간 소리 한다고. 어쨌거나 우린 그냥 흐흐 웃고는 일단 재개발이 되봐야 아는 거라면서, 융자가 어떻고 중도금이 어떻고 하는 조언에 귀를 닫았다.

재개발에 대한 주민동의율이 80% 넘겼다는 축하 플래카드가 동네 여기저기 나붙은 뒤 한 1, 2년은 정말이지 금세 뭔 일이라도 벌어져 당장 집 비워주고 이사를 가야하는 건 아닌가 불안할 정도였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 동네 재개발은 잠잠하기만 하다. 20층을 넘기는 고층 아파트를 지어야 업자들에게 남는 장사인데 구청 앞이라 15층까지밖에 허가가 나질 않아 메이저 건설사는 관심을 잃었다는 풍문이었고, 3천세대 규모라고 떵떵 큰소리치던 단지 규모도 형편없이 축소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재개발이 얼마나 빛좋은 개살구인지, 어디든 원주민의 입주율이 30%도 안되며 제집 갖고 편히 살던 사람들이 재개발로 쫓겨나 세입자로 전전하는 문제가 연일 신문방송에 오르내렸다. 집주인들도 대거 떨려나는 마당이니 전월세로 살던 사람들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갑자기 한꺼번에 집들을 다 부숴버리는 바람에 아예 들어가 살 집이 없어 전셋값이 폭등해 난리라고들 했다. 그러다 용산 재개발 현장에선 믿기 어려운 참극이 벌어졌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내 머리에도 재개발은 부자들을 위한 부동산 잔치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아갔고, 5년전 재개발에 찬성 도장을 찍어준 사실이 부끄러웠다. 내가 사는 이 집은 지은지 30년이 넘었어도 목욕탕이 좀 추울 뿐 금간 데도 없고 새는 데도 없는데, 아파트는 30년 넘으면 골조가 위험수준으로 망가져 다시 지어야 한대고 심지어 새로 지어 분양받은 아파트에 물이 줄줄 새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왜 꼭 아파트가 이 나라의 평균 주거공간으로 어딜 가나 흉물스럽게 군집을 이루어야 하는지! 이미 온 나라에 지은 아파트를 가구 수대로 나눠주면 더 짓지 않아도 된다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며칠 전 지네들 마음대로 <재개발 추진위원회>를 만든 사람들이 (그나마도 파가 갈렸는지 비공인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2군데나 된다 ㅋㅋ) 우편물을 보내왔다. 일부 주민들이 구청에 제출한 <재개발 철회 청원>에 대하여 결사 대항하겠다는 취지의 편지였다. 괜스레 흐뭇해서 웃음이 나왔다. 조합 결성도 요원하고 이 추세로는 한 10년 또 말로만 재개발 운운할 판국으로 보였는데, 반대하는 이들도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니 정말로 재개발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닌가. 

사실 왕비마마의 계단 사고 이후 얼른 계단 없는 집으로 이사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잠시 집을 내놓았을 때, 재개발을 노리고 집값을 후려쳐 장사를 하려는 부동산 업자들 대신 진짜로 우리 집에 살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집을 보러 왔었다면 나도 큰 거부감 없이 집을 팔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이웃집을 샀다가 몇달만에 시세차익을 보고 집을 되판 부동산 업자가 득달같이 쫓아와서 집값을 후려치며 흥정을 붙이는데, 나는 정나미가 똑 떨어졌고 낯선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집을 내보여야 한다는 사실이 죽도록 싫어 얼마 안 가 집 안 판다고 선언하고야 말았다.

지금도 이재에 밝은 지인들은 재개발 추진이 극에 달했을 때, 즉 이 동네 집값이 최고로 올랐을 때 팔았어야 했다고 내 옆구리를 쥐어박는다. ㅠㅠ 하지만 멍청한 내 셈으로는 어차피 그 땐 다른 동네 집값도 비쌌으니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라 그 말이 잘 이해되질 않는다. 서울지역 부동산이야 늘 비슷하게 오르내리지 않나? 어차피 내가 돈놀이 하듯 부동산으로 재테크를 하는 인간이 아닌 바에야 이 집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듯 어딜 가든 또 집 한채 깔고 앉아 마냥 살아야 할 텐데... (돈 벌려고 몇년에 한번 이사 다니는 거 상상도 하기 싫다.)

아무려나 그래서 나는 재개발이고 나발이고 신경 안쓰기로 했다는 얘기다. 계단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으로의 이사 문제도 만날 이랬다 저랬다 마음이 바뀌지만, 점점 거동이 힘들어지고 있는 왕비마마의 노구를 생각하면 언제고 이사를 안할 순 없으니 미칠 노릇이긴 하다. 계단 걱정도 없고 앞으로 또 재개발 광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으면서 낡은 이 집에서 부채 없이 옮겨갈 수 있는 두 모녀의 보금자리는 과연 어딜지 아무리 둔한 머리를 두들겨도 묘안이 나오질 않는다. 나의 로망인 <안 춥게 개조한 아담한 한옥집>에서 <마당>도 누리며 살려면 로또에 당첨되거나, 한 20만부쯤 인세 대박이 나는 수밖에 없고... (둘 다 허황한 꿈인 걸 안다!) 

ㅋㅋ 그나마 당장 재개발로 살 집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걸 감사해야 한다고 위로하는 의미로 쓰기 시작한 글이 결국엔 제욕심 차리겠단 결론으로 맺어지누만. 암튼 집값도 안오르는 동네에 눌러앉아 멍청하게 30년 가까이 사느라 그 흔한 아파트 한 채 못 만들고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지 못한 우리 부모님을 한심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고, 나 또한 어린 마음에 그런 부모님을 못마땅히 여겼는데 막상 그런 결정을 내려야할 입장이 되고보니 핏줄 때문인지 똑같이 망설이고만 있다. 집장만 고민 같은 거 안하고 그냥 붙박이로 100년씩 한 군데서 살 수는 없을까나.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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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비스업계 종사자의 우리말 파괴 실력이야 익히 알고는 있어 이젠 그러려니 하지만, 막상 겪으면 매번 어처구니가 없다. 좀 전에 정수기 때문에 AS 기사가 다녀갔는데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실소가 나올 만큼 극강의 높임말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었다. 

"냉수 조절 센서가 고장나 것 같아요."
"이게 바로 센서이데요, 부품이 없으서 오전에 못왔습니다."
"지금은 얼음이 다 녹으네요."
"다 되습니다."
그러더니 다 고치고 나서 집을 나서며 우리 모녀에게 한 마디 했다. "수고 많이 하십시오." -_-;

백화점 점원의 "15만원이십니다", "사이즈가 없으십니다" 정도는 한방에 날려버리듯, 정수기 부품과 센서와 얼음까지 한껏 높여주더니만 우리더러 수고를 많이 하라니 뭐냐. 우습게도 AS 평가서를 바로 자기 눈앞에서 작성해달라고 내미는데, 천편일률적인 항목만 체크하도록 주르륵 적혀있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따로 쓰는 고객의 의견란이 있었더라면 우리말 존칭 교육부터 다시 시키라고 적고 싶었다. 멀끔히 생긴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아무데나 '시'자를 붙여대는지, 그게 친절이고 고객을 높이는 행동이라고 착각하는 이유가 뭔지 정말 궁금하고 짜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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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외래어 발음 때문에 놀림을 받는다. 아니지, 외래어가 아니라 외국어로 붙인 우리나라 브랜드 발음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어로 EVERLAND라고 적어놓고 한글은 <에버랜드>라고 쓴다. 피터팬에 나오는 NEVER LAND의 짝퉁이 분명하다. 나에게 번역을 하라도 해도 피터팬의 NEVER LAND는 <네버 랜드>라고 하겠지 만 EVERLAND를 외래어 표기법대로 쓰면<에벌랜드>가 맞지 않나? <에버랜드>로 읽히고 싶으면 EVER LAND로 쓰든지! 아무튼 나는 무의식중에 <에벌랜드>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주변에서 핀잔을 준다. 에벌레들이 노는 동네냐고.

Tous Les Jours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어에 무지하지만 특히 연음이 중요한 프랑스어 발음이라면 <뚤레주르>로 읽어야 옳다고 믿는다. 하지만 한글 브랜드명은 <뚜레쥬르>다. 이곳 역시 나는 내 맘대로 <뚤레주르>라고 읽는 게 보통인데, 그때도 눈총을 받는다. 잘난 척 한다고.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상 특정 외국어(태국어, 베트남어?)를 제외하고는 경음 ㄲ, ㄸ, ㅃ 대신에 ㅋ, ㅌ, ㅍ를 써야한다. 아직은 프랑스어 발음이 아무리 <뚤레주르>에 가깝더라도 <툴레주르>로 표기해야 옳다는 뜻이다. 하지만 광고 카피에서 흔히 맞춤법을 무시하듯, 브랜드명에 있어서 국립국어원이 정한 외래어표기법은 코웃음의 대상인 모양이다. <뚤레주르> 보다는 <뚜레쥬르>가 부드러운 느낌이라 브랜드명으로 당첨되긴 했겠지만, 어땠든 나는 못마땅하다. 어쩐지 발음이 다양하지 않은 일본어식 표기법 때문에 과거 많은 외래어들이 요상한 형태로 자리잡았던 관습의 연장선 같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제일 마음에 안드는 건 너도나도 영어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써대는 언어습관이지만...
얼마전 TV에서 나오는 금연 공익광고를 보고는 기가 막혔다. <SELF 하지 말고 HELP 하세요>라더라. 누군가는 그 표어 지어놓고 무릎을 치며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으니 광고 카피로까지 쓰였겠지만, 내 반응은 "미친 것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용인 자연농원>보다 <에버랜드>가 더 멋지고 세련됐다고 여기는 한, 저런 미친 짓거리들은 더욱 많이 생겨날 거다.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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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MBC PD수첩을 봤다. 미국산 쇠고기 보도 소송 이후 정신나간 인간들이 폐지운동을 하고 있을 정도로 어떤 이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프로그램이겠지만, 방송에서 그런 사회고발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나라라면 정말 실오라기 같은 희망도 없지 않은가. 내가 열심히 봐준다고 시청률 오르는 것도 아니고 광고가 더 붙는 것도 아니지만 시간이 되는 한 찾아보려 애쓰는 중이다.
마침 어제는 한 나라의 희망이랄까 투명성의 한 가지 잣대가 되는 공익제보자들의 현실을 다뤘다. 어마어마한 삼성 비리를 폭로했지만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언론과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오히려 탐욕스러운 배신자에 사기꾼으로 내몰린 김용철 변호사를 비롯해서, 공익을 위해 용기를 내어 군부재자투표 비리, 감사원 비리, 건축비리 등을 폭로한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했는데, 익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한숨이 나왔다. 분명 공익을 위한 소신있는 행동이란 점은 똑같은데 한국과 선진국의 차이가 어찌나 극명한지. 비교 대상이 미국에 국한된 점은 아쉬웠지만 어쨌거나 제도적으로 공익을 위한 내부제보를 널리 권유하고 법적으로 보호하고 생계를 보살피는 미국과 달리, 앞에서는 소신 있는 행동이라며 박수 쳐주고는 왕따시키고 업계에 절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그 가족까지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무서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정의감과 사회적 투명성을 테스트하는 유명한 설문이 있단다.
1)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단둘이 밤길을 가는 데 친구가 자꾸만 과속을 한다. 나는 친구가 과속중임을 알고 있다.
2) 험악하게 차를 몰던 친구는 그만 길가던 행인을 치어 죽이고 말았다. 사건 현장의 목격자는 친구와 나 뿐이다.
3) 친구의 변호사는 친구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나에게 거짓으로 친구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OECD 국가 CEO에게 위 설문을 해보았는데, 미국과 영국 CEO의 경우 95-6%가 진실을 말한다고 대답했으며 다른 나라들도 70%이상 거짓증언 대신 진실한 증언을 하겠노라고 대답을 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인의 대답은?


해서 외국 기업가들 사이에선 한국인 기업가의 말을 100% 믿지 말라는 공공연한 조언이 나돌 정도란다. 호언장담한 약속을 언제든 어길 수 있는 게 한국 사람들이라는 이미지.
이윤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업가는 어느 나라든 어느 정도 사기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전세계 사업가 가운데 제일 못믿을 사람은 중국인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실제로 내가 다니던 회사와 거래하던 영국 회사는 중국과도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합작투자 계약을 준비하다 투자금은 한푼도 못받고 주요 도면과 기술자료만 빼앗기고 마는 바람에 한국으로 방향을 돌렸다.),  정말이지 한국인 기업가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정관계 로비를 비롯해 뒷구멍으로 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탐욕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렇게 끼리끼리 봐주고 덮어주고 함께 부와 권력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의를 위해 공익을 위해 본인의 희생을 무릅쓰고 비리를 고백한 제보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곱기만 할 리 없다. 현재 그들은 하나같이 기득권 사회와 조직에서 떨려나 무직으로 버티거나 막노동을 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10년 넘게 외로이 홀로 소송을 이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꼭 했어야 할 일이더라도 막상 내부제보자를 접하면 같이 어울리기엔 어쩐지 꺼려지는 모난 인생이자 배신자로 낙인찍어 버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나는 떳떳하게 욕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이 뒤따르겠지만 나 역시 친구를 위한 거짓증언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어차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라는 핑계를 대면서. 물론 옆집에서 아이가 좀 오래 울거나 아내가 얻어맞는 듯한 기미만 보여도 즉각 경찰에 신고부터 하는 탁월한 신고정신을 지닌 국민과 그 뒤처리가 합리적인(아동학대와 배우자 학대에 대한 처벌이 즉각적인) 선진국과는 이미 국민성도 다르고 제도와 정서도 엄청 다르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은 어디서도 달라져선 안되는 게 아닌가. 
내부공익제보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는 <whistleblower>, 즉 호루라기부는사람이다. 내부인으로서 잘못과 비리를 맞닥뜨렸을 때 위험을 알려 사람들을 대비시키듯 호루라기를 분다는 뉘앙스는 다분히 호의적인 반면에 여러단어가 조합된 <내부공익제보자>엔 확실히 긍정적인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공익>이라는 말부터 거부반응이 드는 건 나뿐인가. 그간 <공익>이라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리사욕>을 채웠는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다못해 <공익근무요원>마저도 군대비리의 또 다른 이름처럼 들리는 판국이니.

다행스러운 것은 뒤늦게라도 <내부공익제보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법안이 마련되는 중이라는 점이다. 다시는 그들이 억울한 손해와 구조적 따돌림의 폐악을 입지 않도록 당장에 정말로 현실적인 법안과 제도가 마련될 것이라고는 선뜻 믿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달라져야 하기에 용감하게 <호루라기부는사람>이 많아지기를, 그리고 지금과는 달리 내부자로서 비리를 고발했더라도 그들의 권익이 철저하게 박탈되는 일은 차츰 없어지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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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초였나, 전시회 보려고 인사동에 갔을 때 놀라운 인파도 인파려니와 또 다시 죄다 뜯어내고 <또> 공사중인 인사동길에 식겁해 얼굴을 찌푸려야 했다. 인사동은 몇년째 공사중이 아닌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아스팔트 뜯어내고 하이힐 뒷굽 잡아먹기 딱 좋게 생긴 울퉁불퉁 돌을 깔아놓은지 얼마나 됐다고 또 한복판을 네모나게 파놓았었다. 이번엔 또 무슨 돈지랄을 하려나 싶어 짜증이 더욱 치밀었는데, 지난주에 나가보니 유럽 구시가의 뒷골목 자갈포장을 흉내낸 짝퉁 같았던 작은 돌포장 대신 널찍한 박석을 네모지게 깔아놓았다. 왜 당국자들은 애당초 처음부터 튼튼하고 전통적인 느낌의 길바닥을 깔 생각을 하지 못할까. 서울시가 하는 짓을 보면 뭐든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이다. 설마 이번 포장도 1년만에 뜯어내고 또 딴 걸로 바꾸는 거 아닌지 염려스럽다. 혹시라도 몇년에 한번씩 한국에 들렀다가 인사동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갈 때마다 공사중인 인사동에 뭐 볼 게 있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의아할 것 같다. 100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10년, 20년쯤 뒤를 내다보는 행정은 이 땅에서 불가능한 것일까.

똑같은 놈들이 권력을 잡고 하는 일이야 늘 뻔하지 싶어 별 기대도 안했지만 일년 넘게 생돈 처들여 만들어 놓은 광화문 꼬라지는 또 어떤가. 시청앞도 그렇지만 사방에서 차들이 빼곡히 돌아다니는 길 한복판에 광장이랍시고 만들어놓은 그곳이 정말로 시민들에게 도심 휴식처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지, 거길 만들어놓은 장본인들한테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당신 같으면 그 정신 사납고 조잡한 곳에 들어가 진짜로 쉴 수 있겠느냐고. 많이 양보해서 쉬는 공간이 아니라 구경하는 공간이라고 치자. 이순신 동상이 거기 서 있는지 수십년이 넘었지만 차도 때문에 그거 구경하기 어려워 불만 품은 사람이 있었던가? 세종로라 이름에 걸맞게 원래 자리 꿰차고 앉게 된 세종대왕님도 불쌍하다. 그 혼잡한 매연 속에 얼마나 정신 사나울까 싶어서.

가끔 새로 닦은 광화문을 차로 지나거나 그 앞 버스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어보면, 아스팔트 대신 깔아놓은 조그만 타일 같은 포장재 때문에 소리가 아주 요란하다. 다다다다.... 목욕탕 타일 붙이듯 일일이 그 포장재를 붙였을 건설노동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눈물겨울 지경이지만, 그런쪽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장담할 수 있다. 아스팔트도 눈비맞고 혹독한 여름과 겨울을 지나면 몇년안에 다시 깔아주어야 하는데, 그런 얄팍하고 조잡해 보이는 포장재는 그보다 먼저 떨어져나가 이빠진 것처럼 흉물로 변하고 말 거라고. 아주 가까운 인사동에 그 전례가 있지 않았던가! 설마 남은 예산 모두 써버리느라 연말만 되면 보도블럭을 교체해대는 서울시와 지자체들의 <불가피한> 예산확보의 방편으로 광화문에도 <일부러> 내구력 짧은 포장재를 선정한 것은 아니겠....지?

지자체에서 저마다 생색용 돈지랄에 재미를 붙인 이후 동네마다 이런저런 공원이 많이 생겨났고, 요샌 대학로에도 중학천 복원공사인지 뭔지해서 청계천 짝퉁 같은 실개천을 다시 만든다고 난리라는데, 내가 보기엔 하나같이 한숨만 나온다. 어쩜 그렇게 공원마다 천편일률적으로 생긴 게 똑같은지. 보나마나 중학천도 청계천과 똑같이 시멘트로 온통 싸바른 뒤 물풀 몇개 심어놓고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복원>했다고 자랑할 게 틀림없다. 공원조경 업체에서 서울시나 구청 쪽에 대거 뇌물을 쓰거나 담합 독점이라도 한 것일까?
특히 공원마다 내가 제일 꼴보기 싫어하는 것은 땅바닥에서 솟아나오는 분수. 시청앞에도 있더니 광화문에도 만들어놓았다. 여름이면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땅바닥 분수 사이를 뛰어다니며 철딱서니 없이 놀던데, 어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 분수의 수질이 얼마나 엉망인지 굳이 뉴스에서 다루지 않았더라도 나 같으면 그런 분수 근처에 절대 발도 들이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도 못들어가게 할 텐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기야 새로 세운 세종대왕상 보겠다고 주말이면 우글우글 몰려드는 사람들이 내 눈엔 이상해만 보이니 내가 비정상인가?
나 역시 분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어린이대공원 정문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높은 분수대는 나에게 아련한 꿈과 행복의 상징이었고, 덕수궁 미술관 계단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분수의 모습도 가슴 찡하도록 아름답다. 하지만 온동네 공원마다 죄다 땅에 수도관을 묻고 시멘트나 돌을 덮어 바둑판처럼 똑같이 만들어놓은 바닥 분수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르네상스 서울이니, 디자인 서울이니 해서 특히 요즘 서울은 온통 누더기다. 아니지, 막가파식으로 삽을 떠버린 4대강 죽이기 사업에다 툭하면 토목공사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어리석은 우두머리 때문에 온 나라가 누더기다. 그런 인간들이 또 세종시 건설 원안을 반대하는 걸 보면, 자기네가 확보한 땅값 떨어질 토목공사는 절대로 용납 안한다는 뜻이니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다. 오래된 집에 비가 새지 않게 하려면 조금씩 고쳐가며 살아야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런 공사는 깨진 기와를 바꾸고 금간 벽을 채워넣고 노후한 수도관을 갈거나 구둘장을 다시 까는 것일 뿐, 건넌방 전체를 확 깨부수고 거기만 <르네상스 양식> 따위로 다시 짓는 건 미친 짓이다.

서울서 나고 자랐어도 고향이라는 말을 하기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이지만,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고 다른 도시나 시골에서 살 자신이 없다. 제주도라면 가서 평생 살 수 있을지 몰라, 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거기 혼자 뚝 떨어져 살라고 하면 1년 내내 행복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곳에도 더러 행복한 추억이 깃들어 있지만 40년 넘게 살아온 서울만큼 개인적인 역사와 추억이 깊을 수야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나의> 서울을 나날이 망가뜨리는 저들의 행태가 원망스럽고 숨막힌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모든 이들이 집을 갖고 살려면 위로 높이 올려짓는 아파트 밖엔 방법이 없다지만 이미 양적으로 따지면 이 나라에 필요한 가구수는 넘은지 오래다. 집마저도 수백채씩 많이 가진 놈들이 나눠주면 더 짓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는 일은 죽었다 깨나도 벌어지지 않을 테니 여기저기 죄다 동네 째로 허물고 다시 아파트를 올리는 거다. 그렇게 흉물스러운 아파트를 동네마다 죄다 세워올려도, 부동산으로 돈벌려는 인간들만 좋아라할 뿐 정말로 집이 생기는 서민의 비율은 턱없이 낮다는 걸 놈들은 왜 모르는지...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닥치는대로 누덕누덕 기워놓은 서울이 조각보 이불처럼 예쁘게 마무리될 리는 만무하다. 어쨌거나 내가 덮을 이불인데 싫어서 치를 떨면서도 당분간은 덮고 살아야 하는 이 현실을 참아내려면 한 가지 희망밖에 없다. 몇년 지나면 다시 뜯어내고 제대로 만들거야. 암.. 그래야지. 그럴 거야... 다음 세대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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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첫 회사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한국과 홍콩, 중국 등지에서 만든 여성의류를 대량으로 수입해다 월마트, JC페니, 시어스 같은 대중적인 백화점에 파는 회사의 서울 사무소였다. 미국 회사랍시고 퇴직금이 없는 대신 다른 국내 회사에 비해 월급이 좀 많았고 매월 달러로 책정된 금액이 한달에 한번 송금되어 오면 환율에 따라 조금씩 액수가 달라져 환율 몇십원에 일희일비했으며, 선적이든 제품 하자든 뭔가 커다란 문제가 생기면 책임자가 미국에서 날아온 팩스 한 줄로 즉각 해고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아직 80년대 말, 90년대 초였음을 감안해야 할듯;;), 인종차별은 있을망정 남녀차별이 없고 자기 일 끝나면 상사 눈치 볼 필요 없이 (지점장 빼놓고는 각자 자기 할 일을 할 뿐 상사 개념이 아예 없기도 했다) 칼퇴근을 해도 되는 자유로운 분위기라 큰 불만 없이 꼬박 3년을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나 경력직원으로 물갈아타기를 할 때 필요한 세월이 3년이란 말에 버티던 마지막 무렵엔 당연히 차츰 불만이 쌓여갔다. 퇴직금이 없기 때문에 수시로 아무때나 부담없이 수틀리는 직원을 단칼에 잘라버릴 수 있는 <미국식> 인사구조가 우선적으로 마음에 안들었고, 아무리 본사 직원과 서울 사무소 직원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양키들은 서울 출장 나오면 특급 호텔에 그것도 '한강 보이는 방'으로 예약해 상전취급하면서 주말까지 희생해 놀아주고 관광시켜주고 선물 사주고 그래야 하는데, 우리는 본사에 출장 보내주는 것자체를 혜택처럼 여기는 게 당연한 듯했고 뉴욕에 가서도 호텔은커녕 한국인 파트너 집에서 하녀/하인처럼 출장기간 내내 업무와 가사일(엄연한 출장임에도 재워주는 밥값은 하라는 건지 뭔지!)을 도와야 해야 했다.

오죽하면 내가 첫 뉴욕 출장 3주동안 브로드웨이에 있던 본사 사무실을 들락거리면서 단 하루도 개인시간을 즐기지 못해 관광은커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먼 발치에서 한번 본 게 다였을까. 평생 코피라곤 흘려본 적 없는 내가 출장 일주일 만에 코피가 터진 누런 얼굴을 욕실 거울로 볼땐 정말 참담했었다. 기사 딸린 리무진을 타고 매일 뉴저지에서 맨해튼으로 출퇴근을 하면 뭐하나. 만날 다이어리 무릎에 펼쳐들고 아침 댓바람부터 씨부려대는 한국인 동업사장의 업무지시를 적어야 하는 판국에.

3년만에 회사에서 꽤나 열심히 일하는 주요 직원으로 주목받기에 이른 나는 슬슬 못마땅한 점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워낙에도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대신 부당한 일은 겁없이 싸우던 나였다. 지금과 달리 고용불안 따위는 큰 걱정이 아닌 시절이라, 까짓것 최악의 경우 해고 당하면 다른 회사 다니면 되지 싶었다. 게다가 별것 아닌 본사 직원의 실수 때문에 억울하게 해고당한 예전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알아보니, 미국회사라도 한국에선 한국 노동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5인 이상의 사업장은  퇴직금을 반드시 주어야한다고 했다. 해고당한 직원은 그날로 짐을 싸 집에 보내고 월급도 딱 출근한 날수 대로만 계산해서 송금해주는 그 회사의 방식 역시 불법이라고했다. 아 글쎄, 열흘만 다니면 무조건 한달치 월급을 주어야 한다는 게 아닌가!

지점장과 한국인 사장의 비자금 관리(?)까지 하고 있던 나는 잘려도 아쉬울 게 없던 터라 마구 큰소리를 쳤다. 법대로 퇴직금 안주면 이 회사 오래 다닐 의미가 없으니 나가겠노라고. 그들은 여러가지 당근을 내밀며(퇴직금 대신 비자금에서 너만 특별히 매달 얼마씩 돈을 주마, 하기 싫다는 비자금이랑 통장 관리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게 해주마... 따위)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결국 나는 사표를 썼다. 아니 해고 당했다. ^^ 그들의 자존심상 내가 먼저 관두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지 저들은 내가 사표를 던진 게 아니라 골치아픈 직원으로 분류되어 단칼에 해고되는 것처럼 교묘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정식 송별회 같은 것도 허락지 않았다.

만 3년하고도 한달만에 회사를 관둔 나는 직장을 옮긴 예전 동료들 둘과 뜻을 모아 노동위원회에 퇴직금청구를 위한 정식 제소를 했고, 당연히 노동위원회에서는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행법상 퇴직금은 반드시 지급해야하므로 우리 세 사람에게 각각 얼마씩 퇴직금을 주라는 정식 통지서가 그 회사와 우리에게 각각 날아왔고 우리는 환호했다. 그 회사에 남아있던 동료들이 계속해서 내부 돌아가는 사정을 알려주고 있었기에 우린 정말로 퇴직금 을 받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놈들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동부의 조정 의견을 깡그리 무시했고 배째라는 식으로 나왔다. 두번인가, 세번인가 계속해서 노동부의 조정의견이 나와도 사업주가 무시하는 경우는 기막히게도 민사소송 소액재판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저들은 사업장을 폐쇄해버렸다. 물론 명목상 그랬다는 것뿐이고 다른 이름으로 서울사무소를 다시 열고는 같잖은 니들이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나왔다. 

결국 민사소송은 하지 않았다. 그 또한 알아보니 재판 한번에만 몇년씩 걸린다는데 놈들 하는 꼬라지를 봐서는 거기서 승소해도 또 배째라고 나오기 십상이라나. 우리가 받을 돈이 몇천만원, 몇억도 아니고 겨우 몇백만원인데 소송비용은 또 어쩌라고...  세 사람은 씁쓸하게 퇴직금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의 <투쟁>으로 놀랐는지 은근히 사업장을 폐쇄했다 다시 연 그 회사도 본사와 별도로 서울 사무소 직원들의 경우는 퇴직금 제도를 신설했다는 후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배은망덕하게 회사를 노동부에 제소한 우리들이 의류 업계엔 발을 못들이게 하겠다며 이를 갈았다나. 그때 알고 지냈던 전현직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한동안 우리는 그 사건을 안주삼았다. 정말로 있는 놈들이 더하는구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법적으로 줄 돈이라는데 어떻게 안줄 수가 있냐. 뼈빠지게 일해준 건 우린데 왜 지들이 배은망덕을 운운하냐... 그러면서.

황산테러를 당한 박정아씨의 사건을 <PD수첩>으로 자세히 접하고서 20년 가까이 된 그 일이 새삼 떠올랐다. 당연히 줘야할 돈을 주라는데 되레 부하직원을 시켜 살인을 교사한 이 모 사장이나 그 옛날 파르르 주먹을 떨며 우리의 업계 취직 방해를 지시했다는 마이클 뭐시기 사장이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건 똑같은 놈들이지 싶다. 한쪽은 악독함이 극에 달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놓았고, 한쪽은 미약하게 시도하려 했을 뿐.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황산테러를 지시할 수가 있는지. 인간이  다른 인간의 목숨을 앗는 결정은 또 다른 형태의 살인이므로 사형제도는 없어져야한다지만, 저런 짓을 저지른 놈들은 감형으로도 절대 세상에 나올 수 없도록 250년쯤 선고하고 정신적 신체적 손해배상을 몇십억원 물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번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높은 변호비용으로 이 모사장은 몇년 살다 풀려나기 십상일 텐데, 난데없이 테러를 당한 박정아씨의 삶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지 마음이 무겁다. 그분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쉽사리 떨치긴 어렵겠지만 부디 이 사회에 아직 정의가 남아있다고 믿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빌뿐이다. 더불어 <PD수첩>도 mbc도 힘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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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나

하나마나 푸념 2009. 7. 23. 22:00

석탄공사 사장님이 제발이지 광부들의 애환이 서린 <막장>이라는 말을 함부로 비하의 뜻을 담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했던 말이 화제가 됐음을 잘 알고 있지만,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 정말 <막장이구나>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 나온다. 아니, 막장이라는 말도 아까워서 더 심하게 부패하고 냄새나고 끝간데 없이 타락한 곳을 지칭하는 말을 떠올리고 싶은데 어휘력이 모자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어쩜 이 나라 정치하는 놈들의 수준은 점점 그 모양일까. 최소한 4년간은 희망을 꿈꾸지 말아야함을 잘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열불이 나는 속을 어찌 달래야할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구렁텅이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방법은 귀막고 눈 가린 채 세상을 외면하는 것뿐인가.

<반지의 제왕>은 책도 영화도 빠져들게 좋았지만 이상스레 <해리포터> 시리즈는 정이 가질 않았다. 출판사의 돈 벌 욕심 때문이겠지만 너무 잘게 쪼개 나온 번역본도 싫었고 그렇다고 언제 끝날 지 모를 시리즈 원서를 읽을만한 열의도 생기지 않았다. 전 지구적인 해리포터 열기가 나로선 뜨악하고 의아할 뿐이었달까. 당연히 영화도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가끔 채널을 돌리다 해리포터를 만나게 되면 호기심에 지켜보아도 역시나 채 5분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뜬금없이 몇번째 시리즈인지도 모를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를 영화관에서 보고 돌아왔다.
판타지 소설을 리뷰하거나 번역하는데 참고하려고 약간 책을 들춰보았을 뿐이라 바로 전 시리즈에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모르는 와중에 영화를 봐야한다니 황당하기까지 했는데, 사전지식이 없어도 생각보다는 영화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누가 착하고 누가 악한지는 척 봐도 알 수 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런데 놀랍게도 세상 꼬라지가 하도 가관이다 보니, 영화 속의 런던 상황이 지금 이 세상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둠의 마왕이 세상을 휘저어 악의 세력이 득세하고 있어, 여기도 해리포터 같은 <선택받은> 마법사가 나타나지 않는 한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내용 전개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골목마다 폐허처럼 문을 닫은 상점들과 암울한 거리가 딱 죽어가는 이 나라의 소상인들과 서민들의 거리처럼 느껴졌다. 소설 시리즈는 종결된 것으로 알고 있으니, 영화의 다음 내용이 궁금하면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선이 악을 이겨 해피엔딩일 게 뻔한 데(혹시 아닌가?)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의 세계로 위안을 받겠다는 순진한 희망을 품기엔 나 같은 삐딱이에게  너무 무리다. 

세상이 엉망으로 돌아가든 말든 나몰라라 맛난 거 먹고 재미나게 수다떨고 영화보고 시시덕거리고 나니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풀린 기분이다. 효력은 얼마 안 가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잠깐씩 세상을 잊으며 살다보면 악몽같은 세월이 흐르긴 하겠지. 가끔 황당하게 정의로운 마법사의 출현을 꿈꾸기도 하면 더욱 힘이 나려나. 문득 해리 포터 시리즈가 그토록 전폭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가 혹시 전지구적으로 팍팍하고 암담한 현실 때문이었나, 의문이 들었다. 마법이 아니고선 도저히 현실을 희망으로 되돌릴 방법이 안보이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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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두기

하나마나 푸념 2009. 7. 17. 01:38

일하기가 싫어서 조금 전까지 4대강 살리기 사업 논란을 다룬 100분토론을 보다 짜증이 밀려와 TV를 껐다. 어쩌면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전문가라는 양반들의 의견은 노상 상반되는지 원!
어쨌거나 나는 대운하 사업과 더불어 죽어가지도 않는 4대강을 굳이 살리겠다는 쓸데없는 사업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특히 2, 3년 안에 그 엄청난 규모의 토목사업을 한꺼번에 벌여 끝내겠다는 얄팍한 발상이 너무도 무섭다.

청계고가를 없애고 청계천을 복원한다고 할 때 나는 크게 기뻐하며 결과물을 기다렸던 사람이다. 한 여름 도심의 온도를 몇도나 낯출 수 있고 주변 부동산 값도 올라가며 시민들에겐 도심속 쉼터를 제공할 것이라는 아름다운 청사진을 처음엔 곧이 곧대로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공사가 끝났을 때 보니, 말이 <복원>이지 청계천은 그냥 이름뿐 옛모습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새로이 시멘트로 물길을 싸바르고 한강물을 억지로 끌어다 놓은 뒤 그럴듯하게 물풀을 좀 심어놓고는 화려하게 조명시설만 갖춰놓은 <죽은> 공간이었다.
대통령 될 욕심에 당시 서울 시장 명바기가 임기내에 공사를 서둘러부친 결과 시멘트로 마구 싸바른 물길 곳곳은 이내 시퍼런 이끼로 뒤덮였고 역한 물비린내가 나서 나는 두번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시위 때문에 청계광장에 가는 거라면 또 모를까. 하긴 청계광장도 내가 싫어하는 장소다. 순전히 그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돈만 처들여서 세워놓은 (어느 대기업에서 자금을 기부해 외국 조각가에게 사온 거라더라) 플라스틱 소라탑이 꼴보기 싫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놀이공원 한 구석이라면 모를까 어쩌면 시내 한복판에 그렇게 안 어울리는 조형물을 선택해서 세워놓았는지, 관련자들의 저질스러운 안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처음 청계천이 생겼을 때야 사람들이 죄다 구경 삼아 몰려들었고 물 좋아하는 아이들이 섣불리 뛰어들어 놀기도 하더라마는, 장담컨대 그렇게 조악하게 급조해 놓은 청계천은 앞으로 끊임없는 청소비용과 복구비를 잡아먹는 예산 물귀신이 될 테고, 사람들한테도 점점 외면당할 게 뻔하다. 정말로 북한산 어느 물줄기부터 착실히 살려내려와 올챙이며 가재가 되돌아오도록 수십년에 걸쳐 복원하지 않는한 말이다.

청계천의 전례를 익히 보았던 터라 우리 동네 개천을 자연하천으로 복원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나는 약간의 설렘보다는 더럭 불길한 예감이 크게 들었다. 청계천처럼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대강 시멘트로 처발라놓고 예산만 낭비 하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더욱이 몇번이나 연임하고 있는 구청장은 한나라당 패거리가 아니던가.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나날이 달라지는 홍제천의 모습은 기가 막혔다. 하수관을 따로 묻어도 이미 북한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연결되기엔 유량이 턱없이 적어진 홍제천에 가압장을 설치해 한강물을 끌어오는 것까지야 그러려니 했지만, 이미 자연미와 풍광이 아름답던 안산 주변엔 느닷없이 조악해 빠진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촌스러운 형광조명의 음악분수를 만들더니 급기야 그 예쁜 동산 꼭대기까지 파이프를 끌어올려 폭포를 설치한 것이다. 얼마 전엔 도저히 봐주기에 민망한 황포 돛배까지 만들어 물레방아 앞에 띄워 놓았던데, 내눈엔 혐오스럽기만 한 그 시설들이 <무한도전>에까지 소개됐다는 걸 보면 참 사람들 취향은 다양하다고 해야하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자전거 산업 육성책에 발맞추어 홍제천의 자연하천 복원사업은 자전거도로 확충 사업과 연계된 듯했고, 역시나 <자연>하천 <복원>은 순전히 말 뿐 서대문구청에선 하는족족 인공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행위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화학성분 냄새가 풀풀 풍기는 샛노란 포장재가 깔린 개천 옆 자전거 도로 옆엔 대체 어디에서 파왔을지 궁금한 큼지막한 바위들이 차곡차곡 벽처럼 쌓여갔고, 하천 양 옆으론 인도네시아에서 수입됐다는 이상한 자재를 쌓고 군데군데 시멘트를 발라 수생식물을 심었으며, 야심차게 조명과 무대처럼 화려한 진입로를 만들어놓은 안산 폭포와 분수 바로 옆엔 큼지막한 디지털 광고판까지 설치되었다. 연일 구내 소식과 정부시책을 광고하는 화면이 나오는.

물론 새로이 인공적으로 가꾸어진 분수와 폭포 앞에서 많은 이들은 기뻐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음악분수가 가동되는 시간엔 자전거를 타고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구경나온 사람들이 많으니 이명박과 한나라당과 같은 패거리인 구청장 일당은 <참 잘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을 게 뻔하다. 
그러나 내가 홍제천변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고 칭송하며 사진까지 올렸던 바로 그 안산 계곡을 지날 때마다 유달리 서늘하게 여름밤의 더위를 식혀주었던 냉기와 바람은 요상한 복원사업 이후 더는 느낄 수가 없다. 그대로 두어도 철철이 바꿔 피는 꽃과 나무들이 바위와 어우러졌던 동산을 흉측한 파이프가 휘감고 있는 생각을 하면 정말 부아가 치민다. 그 앞 음악분수는 또 어떻고! 나 역시 그 유명한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 앞의 분수쇼를 좋아하며, 하다못해 예술의 전당 앞 음악분수만 봐도 좋아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음악분수라도 있어야할 곳이 따로 있지 않은가! 번쩍이는 광고판 같은 대형 디지털 화면을 배경으로 한물 간 가요에 맞춰 개천 한가운데서 물을 뿜는 음악분수는 홍제천에서 황포돛배 다음 가는 흉물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이 계속해서 변해가는 홍제천에 산책을 나가 보면 터무니없이 바뀐 모습과 공원화 사업 때문에 집값 오르겠다며, 또는 그저 애들 데리고 놀러 나올 곳이 생겨서 희희낙락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쓸데없이 어마어마한 예산을(사업비가 무려 200억이란다!) 처들여 <자연하천 복원>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게 과도하게 겉치장에만 힘쓰는 꼬락서니를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한여름 장마때면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고 몇년 전엔 사람도 떠내려갔던 판국에 하천 양옆에 왜 굳이 계단식 정원을 만들어 꽃은 심어놓았는지, 군데군데 왜 쓸데없이 나무나 벽돌로 바닥에 멋을 부려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이다.
지각있는 사람들의 염려는 언제나 들어맞는 법. 요번 집중호우때 홍제천 산책로는 그간 엄청나게 쏟아부은 예산이 무색할 정도로 엉망으로 망가지고 말았다. 하천 주변을 정리한답시고 심어놓은 식물들은 대거 뽑혀나가, 개천 중간 음악분수 시설에 죄다 걸려 있었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분수 주변엔 엄청난 토사가 밀려내려와 높은 언덕을 이루어놓았으며, 서대문의 새로운 명물이라던 황토돛배는 떠내려가다가 하천 기둥에 부딛혀 산산조각이 났단다. 한 마디로 쓸데없이 <돈지랄>을 해놓은 새로운 바닥들도 패이고 주저앉고 엉망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새로 놓은 다리 난간마저 중간이 뚝 잘려 나갔을 정도니 오죽하랴.
비가 많이 오면 한강 둔치도 물에 잠겨 한참을 청소하고 복구해야하는 형편이니 집중호우때나 장마때 홍제천 산책로가 물에 잠길 것이라는 정도를 설마 전문 사업자들이 예상 못했을 리는 없지 않나? +_+ 나처럼 비전문가도 빤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인데 설마!
어쨌거나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홍제천 산책로엔 오늘도 운동 나온 사람들이 북적였고, 난간이 떨어져 나간 다리 아래에선 동네 주민들이 노심초사 안부를 빌었던 오리 가족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다.

내가 바랐던 자연 하천 복원은 오래 전 내가 국민학교때 소풍을 가서 가재를 잡고 놀았던 부암동 백사실처럼 작고 자연스럽고 고요한 하천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청와대 주변이어서 오래도록 통행을 금지했던 터라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심 속 계곡의 모습, 내가 기억하고 있던 바로 그 <백사실> 계곡이 화면에 비추던데, 한 십년쯤 걸리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정말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망치지 않으면서 깨끗한 하천을 복원하면 왜 안되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손길이 과도하게 닿으면 자연은 분명 망가질 수밖에 없음을 그렇게 겪고도 왜 사람들은 깨닫지 못할까.
설령 정말로 온 나라의 강에 문제가 있어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해도, 한번에 한군데씩 여러모로 살피고 조사하고 재보면서 혹시라도 망쳐버렸을 때의 엄청난 결과를 최소로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지 않고, 왜 한꺼번에 백여군데의 강줄기에 수십조나 되는 <빌린> 예산을 투자해 실제로 치수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를 걱정스러운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인지 아무리 양보해서 이해해보려고 해도 납득이 안된다.

청계천 정도의 무모한 삽질이라면 수십년 후에 누군가 환경지향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행정가가 나타나 되돌릴 수나 있겠지만, 금수강산 곳곳을 파헤쳐놓고 물길을 망가뜨리면 백년이 지나도 제대로 <복원>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지금 이 나라 자연에 필요한 건 억지로 갖다 붙인 <살리기>가 아니라 분명 <그냥 두기>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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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하나마나 푸념 2009. 5. 30. 16:40

그저 궁금했다.
인간적인 연민과 슬픔이야 나도 느끼는 것이지만 무작정 미화되는 그의 모든 정치행적에 동감할 순 없었기에 조문은 애초부터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저께밤부터 시청앞엔 나가서 머릿수를 보태야한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죽음의 정치적 이용이니, 소요사태 우려니 하는 돌머리 인간들의 입바른 말도 나의 삐딱함을 부추겼다. 촛불과 광장 공포증에 걸린 듯한 현정부를 조롱하는 의미에서라도, 그리고 자기 재직시절에 만든 광장이라 제 땅인줄 착각하는지 명바기가 걸핏하면 차벽을 쌓아 막아놓는 시청앞 잔디도 좀 밟아주고 싶었다. 굳이 덕수궁으로 찾아가 꼬박 세시간을 기다려 조문을 하고도 마지막날 밤 아직 조문 못한 지인을 데리고 또 가보겠다는 측근들과 헤어져 홀로 집으로 돌아오며 궁금증이 동하기도 했다. 봉하마을과 덕수궁을 비롯한 빈소를 지키고 찾아가고 일주일 내내 애통해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이들이며, 현직때는 그토록 욕하며 낮은 지지율을 보이더니 국민들이 고인의 열혈지지자로 돌변한 이유는 뭘까. 
영결식은 관두고 처음부터 1시 노제를 목표로 했으면서도 뜨거운 햇살아래 나서는 게 망설여질만큼 시큰둥한 참여자였던 내 눈으로는 도무지 까닭을 알 길이 없었다. 광장을 메운 사람들의 면면은  참으로 다양해서 어떻게든 뭉뚱그려 파악할 수 없었고 검은 물결속에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노란 풍선과 노란 모자 때문에 분위기는 숙연하면서도 경쾌하기까지 했다. 노제가 끝나고 눈물로 영구차를 떠나보낼 무렵, 나로선 가족에게도 잘 하지 않는 말인 "사랑합니다"라는 외침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크게 따라했다. 다들 울며 잊지 않겠다고도 다짐했다. 그 옆에서 나는 속으로 "정말? 과연 그럴까? 그 다짐들이 얼마나 갈까?"하며 의구심을 되뇌이고 있었다.

추도사를 거부당한 김대중 대통령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국민들이 이토록 슬퍼하는 건 민주주의가 퇴보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대중과 국민을 위한 정책과 정치는 사라졌고, 순순히 말 안들으면 잡아 가두고 일터에서 쫓아내 굶겨 죽이겠다는 서슬 퍼런 칼날만 휘두르는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늙은 엄마와 어린 조카까지 이끌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 촛불을 들러 나갔을 때, 나는 광장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고 생각했었다.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사기꾼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이긴 해도 대중들만 똘똘하게 지조를 지키면 일개 권력자가 나라를 완전히 들어먹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촛불의 물결에 놀랐는지, 반성하겠노라며 겸허히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던 사기꾼 대통령은 손바닥 뒤집듯 이내 태도를 바꾸었고, 군사독재 시절처럼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걸핏하면 잡아가두는 공포정치를 실천하고 있다. 게다가 국민들도 예전과는 다르다. 대의니 정의니 하는 것들은 이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광우병 우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었던 건, 정치적 대의보다는 유달리 건강에 신경을 쏟는 현대인들의 강박증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자기네 집값 땅값 올라가고 재산 많이 모으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 철거민 세입자들이 길바닥으로 나앉든 말든 시위하다 죽어가든 말든 조금도 관심 없고 주거환경 나빠진다며 주변에 임대아파트 들어서는 걸 반대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 요즘 국민의 전형이다. 어차피 연임도 안되는 대통령은 3년만 더 참다가 갈아치우면 된다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수치심 없이 탐욕을 최고 선으로 당연시하는 한 희망은 없으니 그게 더 큰일이다.

어쩌면 어제 나는 수십만명이 운집한 시청앞 광장에서 또 한번 희망을 꿈꾸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방송에서 되풀이되는 고인의 과거 영상 속에서, 살기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 끊는 사람들이 더는 없는 공평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나도 그를 믿고 지지했던 때의 장면을 보며, 어느 노동자의 분신 자살 사건을 두고 이제는 분신으로 자기 뜻을 관철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냉혹하게 말하던 재임 대통령 시절의 그가 떠올랐었다. 그러던 그 역시 스스로 몸을 던져 자신의 뜻을 표했으니, 이 사회는 여전히 수십년 전의 불공평하고 암울한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몸소 입증했다는 의미다. 파르르 쉽게 들끓었다가 또 단세포 동물처럼 쉽사리 잊기를 잘하는 이 나라 국민들도, 과거엔 억울한 죽음 앞에서 퍽 의미있게 여론을 수렴해 역사와 사회에 변화를 이끌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젠 웬만한 죽음 앞에서도 쉽게 고개를 돌리는 이기심이 팽배하고 있지만, 부디 이번 죽음은 유의미한 국민들의 자각을 오래오래 이끌어주기를 빈다. 아무리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고 하더라도 제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토록 가열된 추모열기를 촉발할 순 없었을 테니까.
내 손으로 투표를 해놓고도 정말 대통령이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감격했고, 말도 안되는 탄핵 사태때는 연일 광화문으로 달려가 촛불을 들었으되, 그 이후로는 거의 모든 정책에 실망해 계속 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나는 특별히 미안할 것도 없지만, 퇴임 후에도 언론의 무시와 억측 속에 고뇌에 찬 극단의 선택을 한 그의 죽음이 나 역시 안타깝고 서글펐기에 어제 시청앞에 나간건 어쨌거나 잘한 일인 것 같다. 이젠 남겨진 자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뿐인데, 또 다른 절망의 가능성도 없지 않으므로 섣부른 희망의 여지는 아주 조금만 남겨둘 작정이다. 삼성재벌은 면죄부를 받았고, 시청앞 광장은 다시 빼앗겼고, 고인에 헌화하며 야유를 받았던 명바기는 뜨끔하기 보다는 속으로 이를 갈았을 거다.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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