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삶꾸러미 2007. 9. 14. 19:59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울 엄마가 그렇다.
자기는 끼니 외에 별로 먹는 것도 없고, 당뇨 때문에 과일도, 달콤한 빵도 먹고 싶은 만큼 못 먹고 살며 운동도 매일 하는데 도무지 살이 안빠진다고 화를 내신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절대로 '물만 먹어서' 살이 찌는 게 아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나름대로 먹는 걸 절제하느라 꽤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평범한 사람보다 확실히 많이 먹는다. ^^;;

지난 두달간 허허로움 때문인지 자꾸만 간식에 손을 대는 엄마에게 시시콜콜 잔소리를 했더니 엄만 그걸 '딸의 구박'이라고 여기며 서러워했다.
당뇨에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초기 증상까지 골고루 갖춘 엄마에게 먹을 것 때문에
내가 잔소리를 한 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건만, 엄마는 새삼 그걸 남편 없는 서러움으로 연결시켰다. -_-;; (물론 아버지는 나보다 엄마의 식탐에 관대했던 게 사실이다)
나도 과부 된 엄마를 구박하는 못된 딸이 되고 싶지 않았으므로, 한동안은 잔소리를 포기하기로 하고 결과를 지켜보았다.
신이 난 엄마는 운동한답시고 동네 친구들과 산책을 나가선 자랑스레 호떡을 사먹고  찐옥수수 한 봉지까지 사들고 들어오곤 했다. 옥수수는 다이어트 음식이라면서. -_-;;
나의 예상대로 엄마는 단 5일만에 2킬로그램이 늘어 체중 75킬로그램을 돌파했고
허리둘레 36인치짜리 바지들이 다 맞지 않게 되었다. ㅠ.ㅠ
(참고로 울 엄마 신장은 159센티미터다.)

그 상태로 나가다간 혈당과 혈압도 겉잡을 수 없이 올라갈 형편이라
나는 또 다시 지독한 악역을 맡고 있는데, 참...
식탐 유전자를 나에게 물려주신 울 엄마의 끊임없는 식탐을 말리는 게 너무도 힘겹다.
끼니 외엔 간식을 못드시도록 냉장고를 거의 비워놓다시피 해도
주말에 조카들이 다니러오면 모든 게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원래 한참 크는 애들은 수시로 입에 먹을 걸 달고 살지 않나?
착한 올케들은 차마 나처럼 혹독하게 엄마에게 먹을 걸 차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잠시 한눈을 팔기라도 하면 다같이 홀라당 아이스크림, 도넛, 햄버거 같은 걸 거침없이 먹어치우시는 거다.
아니 왜 금방 밥먹고 나서 또 다들 출출하다는 건지!!! *_*

엄마 때문에 음식의 칼로리 계산에 빠삭해진 나는 김밥 한줄, 아이스크림 하나, 햄버거 한 개의 추가 열량(각각, 2, 3백 칼로리는 족히 나간다) 소모하려면 2시간 동안 열심히 걸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우리 엄마의 운동이라곤 고작해야 쉬는시간 30분을 합하여 1시간 동안 동네 근처를 걷는 것뿐이다.
그나마도 운동을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알량한 운동을 핑계로 간식을 덥썩 먹는다는 게 문제인데;; 본인께서는 "나름" 간식을 쬐끔밖에 안 먹었기 때문에 양에 안 차 그게 다시 스트레스로 남는다. 흑...

그렇다고 당뇨병 환자인 엄마를 마구 굶길 수도 없는 일이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혈당이 더욱 올라가니까.
괜히 출출하면 간식 찾아먹을 생각 말고 물을 드시라고 아무리 충고해도 못들은 척
냉장고를 뒤지던 엄마에게 오후에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은 뒤 바쁜 일을 핑계로
작업실로 도망쳤는데 은근히 걱정이다.
내가 없는 틈을 타서
토마토 한 광주리, 포도 몇 송이, 귤 10개쯤은 순식간에 우습게 '작살내던' 과거의 과일킬러 실력을 발휘하고 계시면 어쩌나... ㅠ.ㅠ

뚱뚱한 딸 다이어트 시키려고 같이 헬스장과 에어로빅 다니는 엄마는 봤어도
뚱뚱한 엄마 다이어트 때문에 같이 운동 다니는 딸 얘기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이참에 구박만 하지 말고 나란히 헬스클럽엘 등록해볼까...
당뇨 합병증으로 손발 신경이 변형돼 오래 서 있지도 못하는 엄마를 데리고 헬스장엘
가서 과연 어떤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도 막막하긴 하다.
어휴.. 그렇지만 난 운동이 정말 싫단 말이지. (운동 싫어하는 것도 유전인듯;;)

어디 쉽고 간단한 다이어트 비법은 없는지.. 오늘도 나는 인터넷의 바다만 헤매고 있다.
ㅠ.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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