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다녀오신 해리님은 이 제목을 보시고 퍼뜩 알아차리셨으려나 모르겠다. ^^;;
런던 지하철에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던 저 말은
나중에 알고보니 런던 관광상품 여기저기에서 새겨질 만큼 독특하고 고유한 표현인듯.
처음 영국엘 간건 순전히 출장이라 남쪽 작은 항구도시의 거래처를 방문한 뒤
귀국하던 날 반나절쯤 시내를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돌아본 터라 제대로 런던구경을 하지 못했던 나는 몇년 뒤, 프랑크푸르트 출장을 빌미로 파리를 거쳐 친구가 살던 런던으로 놀러갔었다.
처음과 달리 정기권까지 사들고 주로 전철과 지하철로 홀로 시내관광을 하다 저녁이면 친구를 만나 뮤지컬도 보고 저녁도 먹고 그랬는데, 지하철 문이 열릴 때 마다 방송에서 웅웅거리던 "요상한" 말을 나로선 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친구가 가르쳐주는 바람에 비로소 굵직한 아저씨 목소리가 정류장마다 "불친절하게" 외치는 소리가 바로 한국에서 흔히 듣는 "이 역은 승강장과 객차의 간격이 넓사오니 발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얼추 맞나??^^;;)의 뜻인 "Mind the gap"이란 걸 알게된 나는 거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요샌 어쩌려나 모르겠지만 심지어 'please'도 안 붙었다)
아쒸.. 그렇게 간단한 말을 못알아듣다니...
영어로 밥벌어 먹는 거 맞나 싶었던 것. -_-;;
그러고 보니 모든 관광지의 기념품에서도 "Mind the Gap"이란 문구를 자주 본듯했다.
마지막 두 회사에서 영국 회사와 거래를 하느라 나름 영국식 영어와 발음에 익숙해졌다고는 생각했지만(말랑말랑한 미국영어만 익숙했던 나는 회사를 옮기고 나서 처음엔 거래처에서 전화만 와도 식은땀을 흘렸고, 콧소리 강한 영국식 발음이 내게는 '독일어'처럼 낯설기만 했었다) 며칠 놀러다니면서도 못알아먹은 말들이 너무도 많아 비감에 젖었던 것 같다.
벨로도 언젠가 얘기했지만
격식차린 회의 같은데서 상담하는 것보다, 시시껄렁 밥먹는 자리 같은 데서 나누는 생활영어가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처음 미국출장 가서도 직원들 사이에서 빠르게 오가는 농담들을 못알아먹고 그저 따라 웃느라 개탄하기도 했었는데, 시기적으로 훨씬 전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 "Mind the gap"에 버금가는 '충격'(?)으로 다가왔던 단순한 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I will." ^^;;
미국인들이 낯선이들에게 수시로 말을 걸고 친절하게 대하며 먼저 인사를 하는 건
총기난사와 무시무시한 범죄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난 너를 해칠 의사가 없다"는 걸 밝히던 수단이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암튼 미국인들은 괜히 인사하기를 정말로 즐긴다. -_-'''
건물 로비를 지나든 백화점을 서성이든
꼭 누군가 "Have a nice day."또는 "Enjoy your day." 정도의 인사를 건넨다.
("Hi"나 "Hello"라고 인사를 걸어주면 물론 아주 고맙다. 대꾸도 똑같이 하면 되니까^^)
보통은 OK나 All right, thanks, You too 정도로 답하니 나도 따라하는데
간혹 인간들이 대꾸하는 말을 나로선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웅얼웅얼 얼버무리듯 지껄이고 지나가는 그 짧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느라 나는 참으로 오래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뭐 결국엔 동료 직원에게 물어서 그 대답이 "I will."("즐거운 하루 보내라" -- "그럴게" 정도의 대꾸였던 것!)이란 걸 알게됐지만, 그땐 참 심정이 어찌나 참담하던지.
유심히 살펴보면 천편일률적인 대꾸를 싫어하는 영어권 인간들은 단순한 인삿말에도 참 다양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How are you?"에 대하여 "I'm fine, thanks. And you?"라는 판에 박힌 대꾸가 뇌리에 박혀버린 우리네와는 퍽 다르게 말이다. ^^;;
회사일이나 영어수업, 여행 때문에라도 영어를 가끔이나마 씨부리고 살았던 게 벌써
까마득한 옛날 일 같다.
그나마 정민공주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영어는 매일매일 씨부려줘야 안까먹는 거라고 당부하면서 나는 단순한 말조차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심하게 엉켜 버벅댈지라도 문득 여행이 떠나고프다.
영어가 공식언어라면서도 영어를 쓸 필요가 완전히 없었던 "필리핀" 같은 데 말고 ^^;;
(여행사 따라 간 덕분이기도 했지만, 거기 사람들 한국말 잘도 하더라)
또 다시 언어 때문에 내 뒤통수를 툭 쳐줄만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먼나라로 말이다.
파리에서 작은 호텔이라 종업원조차 영어가 안통해 45가 프랑스어로 무언지 친구 남편에게 전화로 물어 겨우겨우 "실부쁠레 샹브르 꺄트르쌩끄"(나름 "45호실 부탁합니다"라고 한 말이었다 ㅋㅋ)라고 한 담에야 친구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던 진땀나는 기억 때문에
여행에서 돌아와 한동안 프랑스어를 열공하여 제대로 프랑스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둔 기초 프랑스어 책이 어디에 있더라??? +_+
헉.. 그때가 벌써 9년 전인가 보다.
오 유럽유럽...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