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국가 중 자살율이 1위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요즘 뉴스에서 들리는 태안주민들의 자살 소식은 더욱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문득문득 시국이 몹시 어수선했던 80년대가 떠오른다.
그때도 자고 일어나면 어떤 젊은이가 또 철길에서 몸을 날렸거나 분신을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었다.
너희 젊은이들의 참담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니 이제는 부디 죽음으로 그 뜻을 알리려는 시도는
그만두어 달라는 내용의 당부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던 때였다.
그땐 정말로 독재타도와 민주쟁취만이 살 길이라고 믿었으며 그것이 곧 민중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직격 최루탄에 맞거나 고문을 당해 젊은이들이 걸핏하면 죽어나갔고, 대학가에서 시위에 앞장섰던 친구들은
쥐도새도 모르게 영장이 나와 군에 끌려가 사상교육과 함께 모진 얼차려를 받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피끓는 청춘도 아닌 연로한 어르신들이 생계가 막막하고 답답하여 죽음으로 항변하는
모습을 보면, 죽음을 불사하던 그때의 혈기는 어쩌면 차라리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장엄한 죽음을 논하며 감히 낭만적이라는 말을 한다는 것자체가 '투사'로 역사에 기록된 그분들에 대한 모욕일까봐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생계형 자살인구", 즉 도저히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차라리 손쉬운 죽음을 택하거나 시답잖은 이 나라의 복지 체계에 회의를 느끼고 그 부당함을 알리기 위하여 죽음을 택하는 어르신들의 선택이 내겐 훨씬 더 가슴 아프고 처절하게 다가온다는 뜻이다.

몇십년이 걸려야 회복될 수 있을지 모를 만큼 훼손된 자연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하루하루 바다에 의존해 생계를 이었을 사람들은 당장 수중에 단돈 천원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는데
태안 주민들과 수백만명 자원봉사자의 노력으로 오염지역의 사정이 얼마간 나아졌는지를 자랑하고,
태안 자원봉사자들을 노벨상 후보로 추대를 합네 마네 하는 소식들은
버럭 짜증스럽다.

물론 나는 연일 수없이 몰려든다는 자원봉사의 대열에 낄 엄두조차 내질 않고 뒷전에 물러앉아
구시렁거리고만 있으니 이런 말 할 자격도 없겠으나
외환위기 닥치게 해놓고 윗대가리들이 속수무책으로 망신살 뻗쳐 수그리고 있을 때 국민들 앞세워
금모으게 시키고 졸지에 수많은 가장들 직장에서 잘려 걸거리로 나앉게 만들었듯이,
이번에도 큰일은 엉뚱한 놈이 저지르고 그 뒷수습은 국민들에게 슬쩍 떠맡기는 식의
일처리 방식은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몰려가 헤진 내복과 옷가지로 기름 찌꺼기를 닦아내고 숟가락으로 파내는 노력도 몹시
필요하고 소중하겠지만 일단은 주민들이 산 입에 거미줄은 치지 않도록, 그래서 비감에 젖은 노인들이 차라리 농약을 대신 먹는 일은 없도록 어서 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나서야하는 게 아닐까.
그나마 태안주민들을 위한 긴급생계자금이 수백억 내일 전달된다는 소식이 들리니
또 다시 죽음으로 항변하는 태안주민들의 자살 뉴스는 들리지 않기를 바라고는 있는데
과연 그 자금이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순진한 셈법으로 따져 그 돈을 피해 주민들 인구 수대로 나눠준다고 할 때 과연 몇푼이나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너무 불편해서 괴로운 현실은 슬쩍 보지 않고 피하려는 나의 이기심은 이번 태안 기름유출 사건에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절에서 단체로 태안에 자원봉사 떠나겠다는 엄마를 강추위 핑계로 만류한 이유는
어쩌면 왕비마마 무수리로 당연히 따라가야할 내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욕하고 불평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막상 눈앞에 닥치면 주변을 얼씬거리며 방관자의 선을
좀처럼 넘지 못하는 나의 태도 역시 그때나 요즘이나 똑같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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