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불가

하나마나 푸념 2009. 5. 26. 21:30

매사를 삐딱하게 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나는 납득할만한 까닭없이 무조건 하지 말라면 더 해보고 싶고 다들 한쪽으로 몰려가면 괜한 반항심에 반대로 가고 싶어하며, 자발적인 비주류 또는 소수에 속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왔다. 그럴 때마다 나에겐 양심을 바탕으로 한 고유한 잣대 또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기에 삐딱하게 살아왔어도 크게 남들에게 큰 피해를 주거나 비난 받을 짓은 하지 않았다고 자신한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똑같이 서 있더라도 잔디가 밟아줘도 될 만큼 싱싱하면 냉큼 들어가, "잔디밭은 사람들 들어가 놓으라고 만드는 거지 구경만 하라고 만드는 게 아니잖아!"라고 큰소리 치지만 잔디가 부실하게 막 자리를 잡는 중이면 알아서 냅둔다는 말이다.
그런데 삐딱투덜이과에 속하는 나로서도 도무지 이해불가한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 가령, 경관이 아름다운 자연 속의 바위나 나무, 문화재 같은 것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제 이름을 새기는 인간들. 들짐승들이 겨우내 먹고 살아야 하니 도토리를 주워가지 말라고 부탁하는데도 굳이 배낭과 비닐봉지 한 가득 바리바리 도토리를 따고 주워 내려오는 사람들. 새로 조성한 동네 공원에 심어 놓은 식물 이파리가 나물거리라면서 남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죄다 따가는 아줌마들. 자기밖에 모르는 무식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라고 그들을 욕하지만, 최소한 그들에겐 이익을 추구한다는 (이름을 남겼고, 맛있는 도토리묵과 나물을 해먹을 테니까) 명분이라도 있으니 용서할 순 없어도 납득이 가긴 한다.
그런데 딱히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면서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최근 우리 동네 산책로는 자연천 복원이다, 자전거길을 새로 닦는다 해서 몇달째 계속해서 공사중이었는데 장마 전에 공사를 마무리하려는지 요즘들어 거의 막바지 포장 작업을 하는 곳이 많다. 한동안 흙길이었던 곳 한쪽을 먼저 아스팔트로 덮고 나머지는 특수 포장재를 깔 모양인데, 며칠 전 소나기가 내리는 날 하필 포장 작업을 했는지 산책을 나가보니 길 한쪽편으로 뭔가 하얀 재질을 깔고는 길게 비닐을 덮어 군데군데 벽돌로 고정시켜놓았고 새로 포장한 길 양쪽 끝에는 통행금지 표지판이 가로막고 있었다. 아직 포장길이 마르지 않아서 그렇게 해놓았으리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
그런데 놀랍게도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막아놓은 길로 접어들어 버젓이 비닐을 밟고 다니고 있었다. 일반 보행자 뿐만 아니라,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아이들, 어른들, 자전거를 타고 끄는 사람들까지. 나는 그 사람들을 하나 하나 붙잡고 인터뷰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들어가지 말라고 표지판도 서 있고 아직 안 말라 비닐 안쪽으로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게 빤히 보이는 그 위로 왜 굳이 들어가 걸어다니고 있는지? 바로 옆에 더 넓은 길이 얼마든지 뚫려 있는데?
그 구간을 더 지나니 새로 아스팔트를 깔아 놓은 넓은 공간 중간중간엔 찐득한 페인트를 쏟아놓은 것처럼 빨간색 과 초록빛 안료 같은 것이 넓게 칠해져 있고 역시나 접근금지를 알리는 빨간 원추모양 기둥과 벽돌이 둘레에 쳐져 있었는데, 표면이 마르기 전에 이미 여러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가 밟고 다녔는지 가혹한 발자국과 안료 엉겨붙은 자국이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도대체 왜일까?

아무 설명 없이 <들여다보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이 문에 붙어 있다면, 오히려 호기심이 동해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많으리라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마르지 않은 시멘트나 포장길, 페인트 위를 걸으면 표면이 망가질 뿐만 아니라 신발도 버릴 수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도 굳이 막아놓은 길을 뚫고 그리로 가는 사람들의 심리는 대체 무언지, 절대 이해가 안된다. 물론 누군가 처음 그짓을 시작하면, 덩달아 따라하고 싶은 군중심리나, 남들도 하니까 나도 아무렇지 않다는 막가파 정신이 발동할 수 있다는 정도는 나도 안다. 하지만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은 뻔뻔한 그들을 지켜보아야하는 사실만으로도 속이 상해서 전전긍긍하고 새로 까는 길 완공도 전에 다 망가진다고 혀를 끌끌차시는데, 그들의 양심이라고 태어날 때부터 철판을 둘렀을 리는 없고 도무지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차라리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서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겉치레 행정에 앙심을 품은 행동가들이 훼방을 놓은 것이라면 이해가 더 쉽겠다. 정치뿐만 아니라 도덕과 윤리 면에서도 후진국민이라 그렇다고는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역시 그게 이유일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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