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로 생을 마감한 젊은 연예인과 관련된 연예계 비리와 고질적인 이 사회의 접대문화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걸 보며 계속 마음이 언짢았다. 젊고 예쁜 여자들을 옆에 끼고 술을 마시는 자리에 유력인사를 초대해 사업을 도모하는 행태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렇고,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 절반이 연예인일 정도로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여자 연예인을 아무렇게나 소모해도 되는 물건 취급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기막힌지.
뇌물을 써서 권력을 매수하는 행위는 아마도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을 것도 같지만, 뇌물로 쓰이는 도구에 아직도 인간이, 특히 젊고 예쁜 여자들이 포함되어도 <무방>하다고 여기는 생각의 근본엔 아직도 뿌리깊은 성차별 의식과 특정 직업에 대한 멸시가 동시에 담겨있는 것 같다. 예로부터 예술하는 이들을 무조건 천것이라 깔보는 사람들의 편견이 연예인을 얕잡아 부르는 <딴따라>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정도이니까.

나 역시 어려서부터 <딴따라>에 대한 좋지 못한 편견을 품고 자란 경험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친척 가운데 이른바 연예인(배우가 더 적당한 말이긴 하겠지만, 연예인엔 배우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이 있는데, 어린 내 눈에도 그리 건전하고 바람직한 인간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끔 대면하는 그분의 모양새는 늘 흐트러져 있었고(요즘의 나처럼 밤낮을 거꾸로 살았던듯^^; 가보면 언제나 방에 누워 뒹굴며 우리에게 만화책을 빌려오라거나 군것질거리를 사오게 하거나 다리를 밟으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텁수룩하게 기른 장발을 사자갈기처럼 뻗친 채로 좀체 사랑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러면 우리 아버지는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끌끌찼고, "<딴따라>는 저래서 안돼...젊은 놈이..."라고 나중에 나무라듯 말씀하셨다. 불규칙한 생활과 불규칙한 수입, 허망한 인기, 보장없는 미래, 알려진 얼굴 때문에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삶, 실제 형편과 상관없이 품위유지(?)를 위해 부려야 하는 허세. 어려서부터 지켜보아도 어느 것 하나 <바람직한> 직업은 아니었기에, 나 역시 <딴따라는 안돼>라는 구식 편견을 그대로 물려받고도 당연하다 여겼다. 멋진 배우들과 연예인을 동경하는 마음 따로, 현실적인 잣대 따로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주변에서 누군가 연예인이 되겠다고 하면 본인의 재능여부를 떠나 일단은 말리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요즘 연예인은 성공만 하면 단순히 인기를 누리는 것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이윤을 내는 일인기업으로 촉망받는 유망직종이다.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연예인이 되겠다고 유명 기획사에 들어가 몇년씩 가수 연습생 생활을 견디기도 하고, 노예계약이든 아니든 일단 어딘가에 소속되어 연기자로 빛 볼날을 감내하는 것이겠지. 오래 전 친구의 취재를 돕느라 SM과 JYP 엔터테인먼트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곳 연습실엔 정말로 열살 전후의 어린아이들이 제2의 보아를 꿈꾸며 수십명씩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고, 연습실 밖 복도에 줄지어 서서 기다리던 엄마들은 춤연습이 끝나면 아이의 연기지도를 위해 곧장 연기학원엘 데려가야한다고 말했다. 정말로 제2의 보아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원하고 끼도 있으니> 힘닿는 데까지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 예비 연예인 엄마들의 각오였다. 그때 그 아이들 가운데 과연 몇명이나 혹독한 훈련을 견디고 오랜 기다림 끝에 데뷔에 성공을 했을지, 요즘 떼로 나오는 아이돌 그룹을 보면 혹시 그 중에 그때 그 아이들이 있는 건 아닌지 문득 궁금해진다. 하기야 데뷔를 하고 음반을 내거나 단역으로 배우생활을 시작했더라도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고, 연예계의 특성상 언제 어떻게 허망하게 사라질지 모를 위치에 놓인다는 것을 알면서 그들은 왜 그렇게 매달리는 것인지. 확률이 적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매주 1등이 나오는 걸 알기에 로또를 사는 사람들처럼, 그들도 희박하지만 자기가 제2의 보아나 비, 배용준이 될 거라는 꿈을 먹고 살기 때문일까. 

학교 후배 가운데 동아리 활동 때의 열정을 살려 뮤지컬 배우가 된 아이가 있다. 노래하는 걸 옆에서 들으면 정말 소름이 오드득 돋을 정도로 가창력이 뛰어나고, 팔이 안으로 굽는 걸 감안하더라도 연기력이나 춤솜씨도 손색없는 편이다. 몇몇 뮤지컬에서 조역으로 활약해온 그녀의 궁극적인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꽤 오래 음반준비를 한다더니 작년이었나 난데없이 가스펠 음반을 냈다고 알려왔다. 일반 음반을 내려니 우선은 기획사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아직 20대인데도!)도 걸림돌이라 난색을 표했고, 쓸데없이 수많은 <접대 자리>에 수시로 불려나가 관계자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어야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괴로웠단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업계인 가스펠 음반사와 계약을 해 노래를 한 것으로 만족했다나. 아니, 관계자 얼굴 도장을 왜 꼭 술자리에서 찍어야하는지!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자리야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지만, 일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같이 술을 마셔줘야한다는 상황은 굳이 연예계가 아니어도 흔한 일이지만 참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악습이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터지는 연예계 비리도 그렇고, 상하를 막론하고 도대체가 비뚤어진 접대 문화도 그렇고,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나 양심과 도덕성의 결여다. 크든 작든 권력을 손에 쥐면 잇권에 개입하고 약자들을 장난감 주무르듯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기막히고 공분할 비리들은 언제든 터져나올 것임을 각오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하기야 청렴한 체했던 대통령도 힘있는 동안 당당히 수십억씩 해먹는 나라에 살면서 양심이니 도덕이니 따지고 있는 나 같은 인간이 이상한 건가 싶기도 하다. 손가락질 받고 벌 받아야 하는 놈들은 떵떵거리며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잘 살고, 힘없고 억울한 이들만 죽어가는 이 사회를 잠시라도 잊으려면 잘생긴 꽃남이나 예쁘고 늘씬한 소녀들에게 정신을 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예계 사업이 날로 번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무 비약이 심한가. 어쨌거나 오늘도 나는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멋진 딴따라들을 발굴하려고 눈을 번득이고 있을 게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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