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담

하나마나 푸념 2009. 1. 20. 20:30

여기가 한국 맞나?
조금전 저녁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다.
불타는 건물, 무시무시한 차림새를 한 일단의 특수기동대 모습, 검은 복면을 한 사람들이 건물 아래로 던지는 화염병, 촛불시위 때 본 것처럼 사람들을 향해 쏘는 물대포인지 불을 끄려는 소방호스인지 알 수 없는 굵은 물줄기. 활활 타오르는 불길만 얼핏 봤을 땐 억지휴전을 선언한다던 이스라엘이 또 다시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내 눈에 익은 한글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확실히 한국이었고 군사독재 시절도 아닌 현재 오늘 일어난 일들이었다.
서울 어디에서 철거민들이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는 뉴스는 어제 들은 바 있었다.
우리 동네 구청 앞에도 수시로 가재울 철거민대책위원회 사람들이 봉고차를 세워놓고 확성기를 틀어 시위를 하기 때문에 갈곳 없는 철거민들의 극단적인 저항은 익숙한 터였다.
당장 나만해도 아무런 보장도 받지 못하는 세입자 입장이라고 할 때 이렇게 어려운 경제상황에 맨손으로 쫓겨나야 한다면 머리띠와 몽둥이 뿐 아니라 화염병인들 손에 못들까 싶었다. 원래 본인과 가족을 살리기 위해선 죽기를 무릅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옛말에 궁지에 몰리면 하물며 생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그러니까 일말의 숨통은 틔워놓고 몰아야 하는 거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미 여섯명이 목숨을 잃었고 철거민 시위대 가운데 부상자가 많아 희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란다.
영하날씨는 아니라지만 이 추위에 물대포를 쏘고 곤봉 든 특공대를 투입해 진압을 시도하다니.
그것도 겨우 농성 하루만에.

아주 오래 전 시국이 흉흉하던 나의 대학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대학연합 반정부 시위가 있었고 정부는 당연히 강경진압을 계획했다. 광장에 모여있던 수많은 시위 학생들을 비롯하여 오후 수업이 과연 휴강일까 아닐까 소심하게 걱정하느라 강의실을 지키던 일부 학생들까지 독안에 든 쥐처럼 학교에 갇히고 말았고, 새카맣게 몰려드는 전경부대의 서슬에 밀려 학생들은 모두 건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점거농성이었다. 점거농성이란 것이 외부에서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그때 난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겁을 먹고 오후 휴강을 틀림없이 믿으며 사방의 교문을 막아선 전경부대를 피해 부속중고등학교 쪽 샛길로 피신했지만, 여러 친구들은 미련하게 문과대며 학생회관 건물에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캠퍼스 곳곳에서 화염병과 돌멩이와 최루탄이 어지러이 오가더라도 다음날이면 여느 때처럼 교문이 열릴 줄 알았던 나의 기대는 착각이었고, 그날 저녁 뉴스에는 수백명의 학생들이 **대학에서 극악무도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복면 쓴 시위대와 전경부대의 대치 모습이 보도되었다. 실제 농성 학생들의 수는 무려 2천명에 달했다.
그래도 하루 이틀이면 끝나려니 믿었던 대치상황은 일주일 가까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결국 유례없는 대학 <점거> 농성은 몇날몇일이나 지난 뒤 가혹한 강제 진압과정을 거쳐 천명도 넘는 시위대의 전원 연행으로 끝이 났다. 그 기간 내내 전경측에선 학생들의 투항(=순순히 걸어나와 자수하고 체포되는 것을 의미했다)을 요구했고, 학생들은 전경들이 먼저 철수하기를 요구했으므로 팽팽한 갈등은 결코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없었다.
학교가 다시 열렸지만 수업은 진행될 수 없었다. 우리 과에서 연행된 학우들만 해도 이십여명이었고 당연히 내 친구들도 몇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매일 큰 강의실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며 교수와 학생들 모두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우선 두툼한 파카를 사서 유치장에 있는 이들에게 보내주면서 우리는 너무 억울하고 허무해서 많이 울었다. 내가 그날따라 조금만 더 강의실에서 꾸물거렸거나, 학관 앞에서 운동화끈을 고쳐매며 "오늘은 너도 같이 구경갈래?"라고 묻던  K나 S를 따라 구경을 갔었더라면 나도 복면을 한(시위때 마다 최루탄 가스가 너무 심해 마스크나 스카프로 입을 가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극악무도한> 점거농성자가 되었을 터였기 때문이다. 

20년도 넘은 그 때의 기억이 오늘 본 뉴스장면과 겹쳐지며 기가 막혔다.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면,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그간의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철거민의 입장이라면 과연 경찰청장은 그런 진압명령을 내릴 수가 있을까?
왜 다른 나라는 현대적이고 번화한 수도에서도 한켠에 남아 있는 수백년씩 된 건물과 집에서 멀쩡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 나라는 겨우 수십년 된 집과 건물들을 죄다 허물고 삐까번쩍한 고층건물과 아파트를 지어 번드르르하고 숨막히는 공간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개발은 반드시 과거를 지워야만 성공한단 말인가?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은 어차피 권력의 시녀이자 하수인일 수밖에 없지만
지금이 어느 땐데...
이런 살육극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저들의 사고방식이 정말 두렵다.
주먹을 불끈쥐고 욕하면서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것뿐인가 싶어서 자꾸 비감에 젖는다.
뉴타운이니 재개발이니, 하는 것들은 결코 서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란 걸 서서히 서민들도 깨달아가고는 있다지만 금전만능주의에 눈이 뒤집힌 수많은 기득권자들이 자기 밥그릇을 양보하지 않는 한 위정자들의 개발논리는 뒤집힐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암담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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