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첫 회사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한국과 홍콩, 중국 등지에서 만든 여성의류를 대량으로 수입해다 월마트, JC페니, 시어스 같은 대중적인 백화점에 파는 회사의 서울 사무소였다. 미국 회사랍시고 퇴직금이 없는 대신 다른 국내 회사에 비해 월급이 좀 많았고 매월 달러로 책정된 금액이 한달에 한번 송금되어 오면 환율에 따라 조금씩 액수가 달라져 환율 몇십원에 일희일비했으며, 선적이든 제품 하자든 뭔가 커다란 문제가 생기면 책임자가 미국에서 날아온 팩스 한 줄로 즉각 해고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아직 80년대 말, 90년대 초였음을 감안해야 할듯;;), 인종차별은 있을망정 남녀차별이 없고 자기 일 끝나면 상사 눈치 볼 필요 없이 (지점장 빼놓고는 각자 자기 할 일을 할 뿐 상사 개념이 아예 없기도 했다) 칼퇴근을 해도 되는 자유로운 분위기라 큰 불만 없이 꼬박 3년을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나 경력직원으로 물갈아타기를 할 때 필요한 세월이 3년이란 말에 버티던 마지막 무렵엔 당연히 차츰 불만이 쌓여갔다. 퇴직금이 없기 때문에 수시로 아무때나 부담없이 수틀리는 직원을 단칼에 잘라버릴 수 있는 <미국식> 인사구조가 우선적으로 마음에 안들었고, 아무리 본사 직원과 서울 사무소 직원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양키들은 서울 출장 나오면 특급 호텔에 그것도 '한강 보이는 방'으로 예약해 상전취급하면서 주말까지 희생해 놀아주고 관광시켜주고 선물 사주고 그래야 하는데, 우리는 본사에 출장 보내주는 것자체를 혜택처럼 여기는 게 당연한 듯했고 뉴욕에 가서도 호텔은커녕 한국인 파트너 집에서 하녀/하인처럼 출장기간 내내 업무와 가사일(엄연한 출장임에도 재워주는 밥값은 하라는 건지 뭔지!)을 도와야 해야 했다.
오죽하면 내가 첫 뉴욕 출장 3주동안 브로드웨이에 있던 본사 사무실을 들락거리면서 단 하루도 개인시간을 즐기지 못해 관광은커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먼 발치에서 한번 본 게 다였을까. 평생 코피라곤 흘려본 적 없는 내가 출장 일주일 만에 코피가 터진 누런 얼굴을 욕실 거울로 볼땐 정말 참담했었다. 기사 딸린 리무진을 타고 매일 뉴저지에서 맨해튼으로 출퇴근을 하면 뭐하나. 만날 다이어리 무릎에 펼쳐들고 아침 댓바람부터 씨부려대는 한국인 동업사장의 업무지시를 적어야 하는 판국에.
3년만에 회사에서 꽤나 열심히 일하는 주요 직원으로 주목받기에 이른 나는 슬슬 못마땅한 점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워낙에도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대신 부당한 일은 겁없이 싸우던 나였다. 지금과 달리 고용불안 따위는 큰 걱정이 아닌 시절이라, 까짓것 최악의 경우 해고 당하면 다른 회사 다니면 되지 싶었다. 게다가 별것 아닌 본사 직원의 실수 때문에 억울하게 해고당한 예전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알아보니, 미국회사라도 한국에선 한국 노동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5인 이상의 사업장은 퇴직금을 반드시 주어야한다고 했다. 해고당한 직원은 그날로 짐을 싸 집에 보내고 월급도 딱 출근한 날수 대로만 계산해서 송금해주는 그 회사의 방식 역시 불법이라고했다. 아 글쎄, 열흘만 다니면 무조건 한달치 월급을 주어야 한다는 게 아닌가!
지점장과 한국인 사장의 비자금 관리(?)까지 하고 있던 나는 잘려도 아쉬울 게 없던 터라 마구 큰소리를 쳤다. 법대로 퇴직금 안주면 이 회사 오래 다닐 의미가 없으니 나가겠노라고. 그들은 여러가지 당근을 내밀며(퇴직금 대신 비자금에서 너만 특별히 매달 얼마씩 돈을 주마, 하기 싫다는 비자금이랑 통장 관리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게 해주마... 따위)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결국 나는 사표를 썼다. 아니 해고 당했다. ^^ 그들의 자존심상 내가 먼저 관두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지 저들은 내가 사표를 던진 게 아니라 골치아픈 직원으로 분류되어 단칼에 해고되는 것처럼 교묘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정식 송별회 같은 것도 허락지 않았다.
만 3년하고도 한달만에 회사를 관둔 나는 직장을 옮긴 예전 동료들 둘과 뜻을 모아 노동위원회에 퇴직금청구를 위한 정식 제소를 했고, 당연히 노동위원회에서는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행법상 퇴직금은 반드시 지급해야하므로 우리 세 사람에게 각각 얼마씩 퇴직금을 주라는 정식 통지서가 그 회사와 우리에게 각각 날아왔고 우리는 환호했다. 그 회사에 남아있던 동료들이 계속해서 내부 돌아가는 사정을 알려주고 있었기에 우린 정말로 퇴직금 을 받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놈들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동부의 조정 의견을 깡그리 무시했고 배째라는 식으로 나왔다. 두번인가, 세번인가 계속해서 노동부의 조정의견이 나와도 사업주가 무시하는 경우는 기막히게도 민사소송 소액재판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저들은 사업장을 폐쇄해버렸다. 물론 명목상 그랬다는 것뿐이고 다른 이름으로 서울사무소를 다시 열고는 같잖은 니들이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나왔다.
결국 민사소송은 하지 않았다. 그 또한 알아보니 재판 한번에만 몇년씩 걸린다는데 놈들 하는 꼬라지를 봐서는 거기서 승소해도 또 배째라고 나오기 십상이라나. 우리가 받을 돈이 몇천만원, 몇억도 아니고 겨우 몇백만원인데 소송비용은 또 어쩌라고... 세 사람은 씁쓸하게 퇴직금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의 <투쟁>으로 놀랐는지 은근히 사업장을 폐쇄했다 다시 연 그 회사도 본사와 별도로 서울 사무소 직원들의 경우는 퇴직금 제도를 신설했다는 후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배은망덕하게 회사를 노동부에 제소한 우리들이 의류 업계엔 발을 못들이게 하겠다며 이를 갈았다나. 그때 알고 지냈던 전현직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한동안 우리는 그 사건을 안주삼았다. 정말로 있는 놈들이 더하는구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법적으로 줄 돈이라는데 어떻게 안줄 수가 있냐. 뼈빠지게 일해준 건 우린데 왜 지들이 배은망덕을 운운하냐... 그러면서.
황산테러를 당한 박정아씨의 사건을 <PD수첩>으로 자세히 접하고서 20년 가까이 된 그 일이 새삼 떠올랐다. 당연히 줘야할 돈을 주라는데 되레 부하직원을 시켜 살인을 교사한 이 모 사장이나 그 옛날 파르르 주먹을 떨며 우리의 업계 취직 방해를 지시했다는 마이클 뭐시기 사장이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건 똑같은 놈들이지 싶다. 한쪽은 악독함이 극에 달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놓았고, 한쪽은 미약하게 시도하려 했을 뿐.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황산테러를 지시할 수가 있는지. 인간이 다른 인간의 목숨을 앗는 결정은 또 다른 형태의 살인이므로 사형제도는 없어져야한다지만, 저런 짓을 저지른 놈들은 감형으로도 절대 세상에 나올 수 없도록 250년쯤 선고하고 정신적 신체적 손해배상을 몇십억원 물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번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높은 변호비용으로 이 모사장은 몇년 살다 풀려나기 십상일 텐데, 난데없이 테러를 당한 박정아씨의 삶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지 마음이 무겁다. 그분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쉽사리 떨치긴 어렵겠지만 부디 이 사회에 아직 정의가 남아있다고 믿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빌뿐이다. 더불어 <PD수첩>도 mbc도 힘내길.
그러나 경력직원으로 물갈아타기를 할 때 필요한 세월이 3년이란 말에 버티던 마지막 무렵엔 당연히 차츰 불만이 쌓여갔다. 퇴직금이 없기 때문에 수시로 아무때나 부담없이 수틀리는 직원을 단칼에 잘라버릴 수 있는 <미국식> 인사구조가 우선적으로 마음에 안들었고, 아무리 본사 직원과 서울 사무소 직원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양키들은 서울 출장 나오면 특급 호텔에 그것도 '한강 보이는 방'으로 예약해 상전취급하면서 주말까지 희생해 놀아주고 관광시켜주고 선물 사주고 그래야 하는데, 우리는 본사에 출장 보내주는 것자체를 혜택처럼 여기는 게 당연한 듯했고 뉴욕에 가서도 호텔은커녕 한국인 파트너 집에서 하녀/하인처럼 출장기간 내내 업무와 가사일(엄연한 출장임에도 재워주는 밥값은 하라는 건지 뭔지!)을 도와야 해야 했다.
오죽하면 내가 첫 뉴욕 출장 3주동안 브로드웨이에 있던 본사 사무실을 들락거리면서 단 하루도 개인시간을 즐기지 못해 관광은커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먼 발치에서 한번 본 게 다였을까. 평생 코피라곤 흘려본 적 없는 내가 출장 일주일 만에 코피가 터진 누런 얼굴을 욕실 거울로 볼땐 정말 참담했었다. 기사 딸린 리무진을 타고 매일 뉴저지에서 맨해튼으로 출퇴근을 하면 뭐하나. 만날 다이어리 무릎에 펼쳐들고 아침 댓바람부터 씨부려대는 한국인 동업사장의 업무지시를 적어야 하는 판국에.
3년만에 회사에서 꽤나 열심히 일하는 주요 직원으로 주목받기에 이른 나는 슬슬 못마땅한 점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워낙에도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대신 부당한 일은 겁없이 싸우던 나였다. 지금과 달리 고용불안 따위는 큰 걱정이 아닌 시절이라, 까짓것 최악의 경우 해고 당하면 다른 회사 다니면 되지 싶었다. 게다가 별것 아닌 본사 직원의 실수 때문에 억울하게 해고당한 예전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알아보니, 미국회사라도 한국에선 한국 노동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5인 이상의 사업장은 퇴직금을 반드시 주어야한다고 했다. 해고당한 직원은 그날로 짐을 싸 집에 보내고 월급도 딱 출근한 날수 대로만 계산해서 송금해주는 그 회사의 방식 역시 불법이라고했다. 아 글쎄, 열흘만 다니면 무조건 한달치 월급을 주어야 한다는 게 아닌가!
지점장과 한국인 사장의 비자금 관리(?)까지 하고 있던 나는 잘려도 아쉬울 게 없던 터라 마구 큰소리를 쳤다. 법대로 퇴직금 안주면 이 회사 오래 다닐 의미가 없으니 나가겠노라고. 그들은 여러가지 당근을 내밀며(퇴직금 대신 비자금에서 너만 특별히 매달 얼마씩 돈을 주마, 하기 싫다는 비자금이랑 통장 관리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게 해주마... 따위)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결국 나는 사표를 썼다. 아니 해고 당했다. ^^ 그들의 자존심상 내가 먼저 관두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지 저들은 내가 사표를 던진 게 아니라 골치아픈 직원으로 분류되어 단칼에 해고되는 것처럼 교묘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정식 송별회 같은 것도 허락지 않았다.
만 3년하고도 한달만에 회사를 관둔 나는 직장을 옮긴 예전 동료들 둘과 뜻을 모아 노동위원회에 퇴직금청구를 위한 정식 제소를 했고, 당연히 노동위원회에서는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행법상 퇴직금은 반드시 지급해야하므로 우리 세 사람에게 각각 얼마씩 퇴직금을 주라는 정식 통지서가 그 회사와 우리에게 각각 날아왔고 우리는 환호했다. 그 회사에 남아있던 동료들이 계속해서 내부 돌아가는 사정을 알려주고 있었기에 우린 정말로 퇴직금 을 받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놈들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동부의 조정 의견을 깡그리 무시했고 배째라는 식으로 나왔다. 두번인가, 세번인가 계속해서 노동부의 조정의견이 나와도 사업주가 무시하는 경우는 기막히게도 민사소송 소액재판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저들은 사업장을 폐쇄해버렸다. 물론 명목상 그랬다는 것뿐이고 다른 이름으로 서울사무소를 다시 열고는 같잖은 니들이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나왔다.
결국 민사소송은 하지 않았다. 그 또한 알아보니 재판 한번에만 몇년씩 걸린다는데 놈들 하는 꼬라지를 봐서는 거기서 승소해도 또 배째라고 나오기 십상이라나. 우리가 받을 돈이 몇천만원, 몇억도 아니고 겨우 몇백만원인데 소송비용은 또 어쩌라고... 세 사람은 씁쓸하게 퇴직금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의 <투쟁>으로 놀랐는지 은근히 사업장을 폐쇄했다 다시 연 그 회사도 본사와 별도로 서울 사무소 직원들의 경우는 퇴직금 제도를 신설했다는 후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배은망덕하게 회사를 노동부에 제소한 우리들이 의류 업계엔 발을 못들이게 하겠다며 이를 갈았다나. 그때 알고 지냈던 전현직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한동안 우리는 그 사건을 안주삼았다. 정말로 있는 놈들이 더하는구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법적으로 줄 돈이라는데 어떻게 안줄 수가 있냐. 뼈빠지게 일해준 건 우린데 왜 지들이 배은망덕을 운운하냐... 그러면서.
황산테러를 당한 박정아씨의 사건을 <PD수첩>으로 자세히 접하고서 20년 가까이 된 그 일이 새삼 떠올랐다. 당연히 줘야할 돈을 주라는데 되레 부하직원을 시켜 살인을 교사한 이 모 사장이나 그 옛날 파르르 주먹을 떨며 우리의 업계 취직 방해를 지시했다는 마이클 뭐시기 사장이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건 똑같은 놈들이지 싶다. 한쪽은 악독함이 극에 달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놓았고, 한쪽은 미약하게 시도하려 했을 뿐.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황산테러를 지시할 수가 있는지. 인간이 다른 인간의 목숨을 앗는 결정은 또 다른 형태의 살인이므로 사형제도는 없어져야한다지만, 저런 짓을 저지른 놈들은 감형으로도 절대 세상에 나올 수 없도록 250년쯤 선고하고 정신적 신체적 손해배상을 몇십억원 물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번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높은 변호비용으로 이 모사장은 몇년 살다 풀려나기 십상일 텐데, 난데없이 테러를 당한 박정아씨의 삶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지 마음이 무겁다. 그분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쉽사리 떨치긴 어렵겠지만 부디 이 사회에 아직 정의가 남아있다고 믿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빌뿐이다. 더불어 <PD수첩>도 mbc도 힘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