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MBC PD수첩을 봤다. 미국산 쇠고기 보도 소송 이후 정신나간 인간들이 폐지운동을 하고 있을 정도로 어떤 이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프로그램이겠지만, 방송에서 그런 사회고발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나라라면 정말 실오라기 같은 희망도 없지 않은가. 내가 열심히 봐준다고 시청률 오르는 것도 아니고 광고가 더 붙는 것도 아니지만 시간이 되는 한 찾아보려 애쓰는 중이다.
마침 어제는 한 나라의 희망이랄까 투명성의 한 가지 잣대가 되는 공익제보자들의 현실을 다뤘다. 어마어마한 삼성 비리를 폭로했지만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언론과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오히려 탐욕스러운 배신자에 사기꾼으로 내몰린 김용철 변호사를 비롯해서, 공익을 위해 용기를 내어 군부재자투표 비리, 감사원 비리, 건축비리 등을 폭로한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했는데, 익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한숨이 나왔다. 분명 공익을 위한 소신있는 행동이란 점은 똑같은데 한국과 선진국의 차이가 어찌나 극명한지. 비교 대상이 미국에 국한된 점은 아쉬웠지만 어쨌거나 제도적으로 공익을 위한 내부제보를 널리 권유하고 법적으로 보호하고 생계를 보살피는 미국과 달리, 앞에서는 소신 있는 행동이라며 박수 쳐주고는 왕따시키고 업계에 절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그 가족까지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무서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정의감과 사회적 투명성을 테스트하는 유명한 설문이 있단다.
1)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단둘이 밤길을 가는 데 친구가 자꾸만 과속을 한다. 나는 친구가 과속중임을 알고 있다.
2) 험악하게 차를 몰던 친구는 그만 길가던 행인을 치어 죽이고 말았다. 사건 현장의 목격자는 친구와 나 뿐이다.
3) 친구의 변호사는 친구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나에게 거짓으로 친구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OECD 국가 CEO에게 위 설문을 해보았는데, 미국과 영국 CEO의 경우 95-6%가 진실을 말한다고 대답했으며 다른 나라들도 70%이상 거짓증언 대신 진실한 증언을 하겠노라고 대답을 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인의 대답은?


해서 외국 기업가들 사이에선 한국인 기업가의 말을 100% 믿지 말라는 공공연한 조언이 나돌 정도란다. 호언장담한 약속을 언제든 어길 수 있는 게 한국 사람들이라는 이미지.
이윤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업가는 어느 나라든 어느 정도 사기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전세계 사업가 가운데 제일 못믿을 사람은 중국인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실제로 내가 다니던 회사와 거래하던 영국 회사는 중국과도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합작투자 계약을 준비하다 투자금은 한푼도 못받고 주요 도면과 기술자료만 빼앗기고 마는 바람에 한국으로 방향을 돌렸다.),  정말이지 한국인 기업가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정관계 로비를 비롯해 뒷구멍으로 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탐욕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렇게 끼리끼리 봐주고 덮어주고 함께 부와 권력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의를 위해 공익을 위해 본인의 희생을 무릅쓰고 비리를 고백한 제보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곱기만 할 리 없다. 현재 그들은 하나같이 기득권 사회와 조직에서 떨려나 무직으로 버티거나 막노동을 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10년 넘게 외로이 홀로 소송을 이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꼭 했어야 할 일이더라도 막상 내부제보자를 접하면 같이 어울리기엔 어쩐지 꺼려지는 모난 인생이자 배신자로 낙인찍어 버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나는 떳떳하게 욕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이 뒤따르겠지만 나 역시 친구를 위한 거짓증언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어차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라는 핑계를 대면서. 물론 옆집에서 아이가 좀 오래 울거나 아내가 얻어맞는 듯한 기미만 보여도 즉각 경찰에 신고부터 하는 탁월한 신고정신을 지닌 국민과 그 뒤처리가 합리적인(아동학대와 배우자 학대에 대한 처벌이 즉각적인) 선진국과는 이미 국민성도 다르고 제도와 정서도 엄청 다르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은 어디서도 달라져선 안되는 게 아닌가. 
내부공익제보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는 <whistleblower>, 즉 호루라기부는사람이다. 내부인으로서 잘못과 비리를 맞닥뜨렸을 때 위험을 알려 사람들을 대비시키듯 호루라기를 분다는 뉘앙스는 다분히 호의적인 반면에 여러단어가 조합된 <내부공익제보자>엔 확실히 긍정적인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공익>이라는 말부터 거부반응이 드는 건 나뿐인가. 그간 <공익>이라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리사욕>을 채웠는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다못해 <공익근무요원>마저도 군대비리의 또 다른 이름처럼 들리는 판국이니.

다행스러운 것은 뒤늦게라도 <내부공익제보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법안이 마련되는 중이라는 점이다. 다시는 그들이 억울한 손해와 구조적 따돌림의 폐악을 입지 않도록 당장에 정말로 현실적인 법안과 제도가 마련될 것이라고는 선뜻 믿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달라져야 하기에 용감하게 <호루라기부는사람>이 많아지기를, 그리고 지금과는 달리 내부자로서 비리를 고발했더라도 그들의 권익이 철저하게 박탈되는 일은 차츰 없어지기를 빌어본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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