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싱글이란 말이 한참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게 벌써 또 몇년 전이었을 거다.
출산율 저하와 노령화 사회 문제가 대두되기 훨씬 이전이었으니까.
서서히 결혼연령이 높아지며 비혼(非婚)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을 때 옛날과 달리 결혼에 목매지 않고 자기삶에 충실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그땐, '초라한 더블'과 대조되는 '화려한 싱글'이라는 말이 그닥 긍정적으로  
쓰인 것 같진 않다.
칭찬해주는 척 하면서 예리한 꼬챙이로 슬쩍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것도 물론 나 혼자만의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_-;;)

그러더니 비혼 인구가 워낙 많아진 때문인지 '화려한'이라는 말은 가고
'싱글'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던 것 같다.
싱글의 단출한 살림에 맞춰 소형 가전제품이 쏟아져 나온다는 얘기도 들렸으니까.
그러다 또 얼마 전부턴 '돌아온 싱글'에 대한 이야기도 많아졌다.
영어권에서 '싱글'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그냥 혼자인 사람들, 이혼을 몇번 했든 말든
사별을 했든 말든, 현재 함께 하고 있는 파트너가 없으면 별로 따질 것 없이 그저 '싱글'인데
그에 맞는 우리말을 끼워맞추다 '미혼(未婚)'이란 말은 어쩐지 '결혼을 못한' 모자라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의 뉘앙스가 느껴지는 데다 외래어 사용에 호의적인 사회적인 분위기가 가세되면서 쓰게 된 말인데, 아무래도 '원래부터 싱글'(?)이었던 사람들이 '싱글' 상태를 벗어났다 다시 되돌아온 사람들과 동등하게 취급 받는 것이 싫었든지, 아니면 그렇게 불러주기가 (남들이 보기에) 민망했든지 뜬금없이 '돌아온 싱글', 줄여서 '돌싱'이라는 말도 마구 사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내 나이가 나이다 보니 -_-;;
주변에도 돌아온 싱글들이 꽤 되는데, 본인들도 그 호칭을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이혼녀/이혼남보다 어쩐지 자기들의 처지를 훨씬 높게 대접해주는 것 같은가 보다.
거기다 '돌아온'이라는 말이 주는 과거회귀적인 느낌도 나쁘지 않다.
누구나 애틋하고 소중한 과거와 추억 한 조각쯤 간직하고 있기 마련 아닌가.
그런데 재미 있는 건, 애틋하고 뿌듯한 과거 상태로 '돌아온' 그들이 다시 얼른 또 짝을 찾아
'가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ㅋㅋㅋ
가만 보면 내 주변에 10년도 넘게 꿋꿋하게 싱글 상태를 유지하는 지인들은 워낙에도 거의 늘 혼자였거나, 연애 경험이 전무하거나(심지어 30대 중반임에도 남자랑 손도 안잡아본 이도 있다! *_*) 해서 외로움이 뭔지 뼈저리게 모르는 것 같다. (사실 나도 별로 외로운 거 모르겠다 ㅎㅎㅎ 인간의 본원적인 외로움이야 옆에 누가 있어도 마찬가지 아닌가? 안 그렇다면, 유부녀/유부남들이 왜 외로워하겠어!!)

그런데 돌아온 싱글들은 대개 혼자라는 상태를 잘 못견디기 때문에 또 금방 짝을 찾아 나서고, 신기하게도 또 싱글 탈피에 성공을 거둔다. 참 신기하다. @.@

아.. 이야기가 딴길로 새고 있다 큭..

암튼 내가 싱글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요즘 언론에서 가끔 마주치는
'골드 싱글'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골드'라는 말에서 풍기는 누런 황금빛 풍요와 돈의 냄새가 말해주듯
'골드 싱글'은 부와 명예, 그야말로 모든 걸 다 갖춘 전문직 비혼남녀를 말하는 모양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돈 많은 여자들.

그들을 아름답게 포장해놓은 설명을 읽어보니,
사회적인 성취를 위해 연애의 필요성이나 나이 따위 잊고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부와 명예를 손에 거머쥐어서 딱히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란다.
대기업 중견 간부라든지, 이른바 '사'자가 붙은 전문직 여성들.
이들은 주로 자기관리에 힘쓰느라 열심히 헬스클럽엘 다니거나 취미활동을 하며 '젊게'
살고 있어서 종종 나이차가 엄청난 연하남들을 꿰차기도 한다나. ^^

30대 후반에서 40대까지도 거뜬히 아우르는 '골드 싱글'의 정의를 언뜻 보며
"그래, 데미 무어가 17살 어린(맞나?) 애쉬튼 커처를 데리고 살듯이
이제 우리나라 여자들도 능력 하나로 어린 꽃미남 남편을 거느리고 사는 시대가 됐군..."
이라고 중얼거리다 보니 심사가 뒤틀렸다.
일단 젊음과 성형에 중독된 데미 무어 같은 여자를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하지만
싱글임이 상찬을 받는 건 오로지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반드시 '경제적인 풍요'를 누려야만 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러니까 물질적으로 별로 이뤄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많은 '싱글'들은 여전히 어딘가 좀 모자라고 결함이 있는 반편 취급을 하면서, 돈과 미모와 젊음을 유지하는 사람들만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다고 여기는 분위기, 아 정말 싫다!!
우쒸...


이젠 정말 결혼이 선택인 시대가 왔고
혼자 산다는 것이 그닥 '흉'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기 명의로 된 집이나 거액의 적금통장 같은 유형의 물건으로 화려하고 찬란한 미래를 준비해놓지 않았더라도, 소박하고 성실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비혼'들이 이 땅엔 훨씬 더 많다고 믿는다. (나처럼!! ^^;;)

어차피 한자도 외래어인 셈이니, 한글에서 외래어를 빼면 어휘력이 한참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외국어의 문체까지도 포괄적으로 사용하여 이래저래 '감염된 언어'(고종석 선생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가 곧 살아있는 언어라는 논지에 동감하지만
그래도 외국어의 남용에는 여전히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데,
'골드 싱글'은 내용도 포장도 정말 마음에 안든다!!

'골드'와 더불어 '싱글'이란 말도 꼴보기 싫어져서 뭔가 근사한 말을 만들어내고 싶은데
남들이 찾아낸 '비혼'이란 말 외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역시나 '싱글'은 어렵다.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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