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이해의 폭이 넓어져 너그러워진다는 말과
나이가 들수록 아이가 된다는 말은 둘 다 보편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듯한데
서로 완전 모순되는 뜻에서 알 수 있듯 여기서 '나이'는 전혀 다른 나이를 가리킨다.

예전엔 싫은 사람과는 죽어도 웃는 얼굴로 마주하지 못했고
싫고 좋음이 극도로 확연해서 매몰차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발칵 화를 내고 돌아서는 일도 많았지만
요즘엔 제 아무리 개같은 인간을 만나도, 그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딸, 아들이겠거니,
누군가의 부인/남편/자식/부모겠거니 생각하면 인간적인 연민도 느껴지고
싫어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까짓거 먹고 죽기야 하겠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걸 보면서
나는 '나이가 들수록 이해의 폭이 넓어져 너그러워진다'는 유형에 속하게 된 모양이라고
스스로 기특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나이'는 어느 기점을 끝으로 그 너그러워짐의 정도가 부뎌져 다시 편협함을 향해 달려가게 되나보다.
이제 좀 온화하고 너그럽고 부드러운 인간으로 재탄생했나 싶은 건 잠깐이고
자꾸만 까탈스럽고 짜증이 많아지는 데다, 자신감 결여에서 오는 과잉방어적인 표독스러움까지 품은 인간이 되어가는 듯.

일흔이란 나이를 몇년 앞두고 계신 부모님만 보아도
나이들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실감 나는데, 별것 아닌 일에 잘 토라지고 삐치고 노여워하고
벌컥 화를 내시다가 요령껏 잘 달래드리면 금세 아이처럼 풀어진다.
그런데 뒤끝 많은 인간인 나는 그러느라 속이 곪아터지는 것 같아 다시 또 속으로 독기를 품다 엉뚱한 데로 폭발시키고 있다.

나란 인간의 너그러워짐은 겨우 마흔을 기점으로 그 정점에 올랐다가
다시 편협함을 향해 달려간다는 뜻인가.
그래선 절대로 안될 것 같은데, 벌써부터 헷갈려죽겠다.

옹졸한 중년으로 치졸하게 늙어가긴 싫은데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다.
이왕이면 매사에 투덜대더라도 가능한 한 오래
적당히 너그러운 라니씨로 살아야 할 터인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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